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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선(大選)

박정희와 딸 박근혜, 유수호와 아들 유승민

“TK 민심, 유수호 떠올리며 아들 유승민 바라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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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K 민심, 4개월 사이 1위 후보 5차례 바꿔… 유승민은 2~4% 저조한 지지율
⊙ 아버지 유수호는 반(反)박정희·반유신… 아들 유승민은 반박근혜로 탄핵 주도
⊙ 유승민이 외치는 ‘경제민주화’, 1992년 아버지 유수호가 먼저 주장
⊙ 유수호, 민자당 탈당 후 새한국당→국민당→신민당→자민련으로 당적 옮기다 정계 은퇴
⊙ 유승민, 대선보다 대선 이후의 행보에 더 관심 가
지난 4월 7일 오전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5층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른정당 부산 필승결의대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대선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劉承旼) 대선 후보가 과연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까. 4월 10일 발표된 《조선일보》·칸타퍼블릭 여론조사에서 유 후보 지지율은 1.9%. 그의 고향인 대구·경북에서도 4%였다. (조사일시 4월 7~8일. 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TK에서조차 외면당한 채 ‘마이 웨이’를 걸을지 미지수다. 막대한 대선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바른정당 내부에서조차 계산이 안 선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 때마다 보수 표심을 택해온 TK 민심은 지난해 4·13총선에서 뜻밖의 선택을 했다. ‘배신자 프레임’에도 유 후보를 당선시켰고 김부겸(더불어민주), 주호영(바른정당), 홍의락(무소속) 의원에게 금배지를 안겼다. 경북은 몰라도 대구만큼은 보수 대신 중도 표심이 작동했다.(경북은 새누리당의 싹쓸이였다.)
 
  대통령 탄핵 이후 TK 민심이 급속히흔들리는 양상이다. 보수(반기문·황교안)→진보(안희정·문재인)→중도(안철수) 후보로 지지 후보가 요동치며 지난 4개월 동안 1위 후보가 5차례나 바뀌는 롤러코스트 민심을 보였다. 1위 후보의 지지율 변화 양상은 이렇다.
 
  반기문 24.5%(《조선일보》 ‘차기 대통령 적합도’ 2016년 12월 30~31일 조사)→황교안 20.3%(《조선일보》 3월 3~4일)→안희정 26%(한국갤럽 ‘대선 후보 지지도’ 3월 14~16일)→문재인 25%(한국갤럽 3월 28~30일)→안철수 40%(《조선일보》 4월 7~8일)로 요동쳤다.
 
  반면 같은 기간 유 후보는 2.5%→3.1%→기타 후보로 분류(이름 없음)→2%→4%로 지지율 변화가 미미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도 정체되긴 마찬가지. 이념보다 ‘될 사람’을 밀자는 전략적 선택이 작동한 것일까.
 
  바른정당 선대위조직본부장인 김성태 의원은 유 후보의 지지율 답보를 두고 “연구대상이다. 저희도 속이 터지고 답답해 죽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후보는 안철수·홍준표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 완주의 뜻을 밝혔다. 4월 10일 대전 지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유 후보는 “안철수 후보는 진보 후보이기 때문에 단일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홍준표 후보는 재판을 받는 무자격 후보라서 단일화할 수 없다. 저는 ‘제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
 
  유 후보의 ‘제 갈 길’ 선언이 아버지인 고(故) 유수호(劉守鎬) 전 의원을 떠올리게 한다. 유 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형제 중에선 용모나 성격 측면에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13대(1988년)·14대(1992년) 국회의원을 지낸 유 전 의원 역시 ‘황소 고집’으로 유명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아버지는 아들이 정계에 나서려 할 때 두 마디의 덕담을 전했다고 한다. “의협심을 가져라. 절대 비굴하지 마라.”
 
 
  ‘반(反)유신’ ‘양심수 석방’ 주장한 민정당 초선
 
지난 2015년 11월 8일 유수호 전 의원 빈소가 마련된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승민 후보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는 모습. 곁에 황교안 국무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보낸 조화가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유수호(직함 생략)는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43세 때(1973년) 판사 재임용에 탈락된 인물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그가 반(反)박정희 대통령 시위를 주도한 학생을 석방시켜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유 후보는 2015년 《월간중앙》 12월호 인터뷰에서 선친이 겪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선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울산 지역 개표 결과를 조작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산지법 부장판사였던 아버지께서는 그해 8월 17일 조작을 주도한 당시 울산시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27일 시위를 주도했던 부산대 총학생회장의 구속적부심에서는 그에게 석방을 허가했습니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보신 거죠. 그 총학생회장이 나중 노무현 정부에서 행자부 장관을 지낸 김정길씨입니다.”
 
  유 후보는 “선친께서 직접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 두 사건이 (판사) 재임용 탈락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제가 경북고에 갓 입학한 무렵이었는데 재임용 탈락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많이 우셨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법복을 벗은 유수호 변호사는 대구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그의 나이 46세 때였다.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한 대구 법조계를 감안하면 무척 이른 나이에 회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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