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5월 대선(大選)

안철수 10대 의혹

자신의 정치 행보 따라 널뛰는 안랩 주가 방관 … ‘개미’ 18만7550명은 2640억원 날려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안철수 부인, 남편과의 동반 채용 결정 사실 미리 알고 지원서·관련 서류 준비”(더불어민주당)
⊙ ‘정치테마주 최대 수혜자’ 안철수 … 정치하면서 ▲주가 급등 ▲‘착한 부자’ 이미지 획득
⊙ 2011년 7월 안랩 주식 372만주는 744억원 … 주식 수 절반으로 줄었지만 가치는 2080억원
    (4월 12일 기준)
⊙ ‘기업 사회공헌’ 역설 … 대표이사 시절인 2001~2005년 안랩 기부금은 연간 628만원
⊙ 주식 백지신탁 안 하는 상임위 고르다 한 달 허비 … 복지위 가려고 국회의장 찾아가 사정
⊙ 속칭 ‘딱지’로 재개발 아파트 매입 … 부부 모두 ‘다운계약서’ 작성
⊙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이사회 1회 참석에 1900만원 받아 … 안건 235건 중 3건 반대해 ‘거수기’
    논란
⊙ 연말 이웃돕기 성금 출연 반대하면서 포스코의 부실기업 인수는 못 막아
⊙ “경제범죄 단죄 엄정하지 않다”고 성토하면서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저지른 최태원 풀어
    달라 탄원
  《월간조선》은 안철수(安哲秀)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둘러싼 의혹들을 정리했다.
 
 
  ① 안철수 부부의 ‘1+1 서울대 교수 동시 특혜 채용’ 의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그의 부인 김미경씨는 각각 2011년 6월과 8월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를 두고 ‘1+1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됐다.
  2011일 11월 30일, 강용석 당시 의원은 “서울대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 그의 부인 김미경(金美暻) 교수를 정교수로 임용하는 과정에서 특별채용 규정을 무시하고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안 원장은 ‘대학(원) 신설 등에 따른 전임교수 특별채용에 관한 지침’에 근거해 채용됐지만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채용 전인) 2009년 3월에 설립돼 근거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도 ‘전임교수 특별채용에 관한 규정’에 근거해 새로운 학문분야의 연구 및 강의를 담당할 자를 임용하는 경우로 채용됐지만 심사 때 김 교수의 독창적 우수성을 판단하기가 어려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대의 ‘정년보장교원 임용심사위원회 회의록(2011년 제6차)’과 ‘대학인사위원회 회의록(제863회)’에 따르면 “김 교수의 모집 분야 관련 논문을 검토한 결과 생명공학정책이 새로운 분야이므로 독창적 우수성을 판단하기는 어려웠다”는 내용이 제기됐다.
 
  강 의원은 “부부가 동시에 정교수로 특채된 경우는 서울대 역사상 최초”라며 “두 사람은 2011년 6월과 8월 각각 임용된 이후 단 하나의 강의도 개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또 “카이스트(KAIST) 재직 당시 부교수 7호봉에 불과했던 김 교수가 서울대에서는 정교수 21호봉을 적용받았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그해 10월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김세연 당시 새누리당(현 바른정당)에 따르면 김미경씨 임용 관련 심사 회의록엔 “학교의 정책적 고려에 의해 교수를 정년 보장으로 신규 임용하는 경우 별도의 심사절차 논의가 필요” “최근 3년간의 연구 실적 미흡” “대외적인 논란 발생 가능성 크므로 신중한 검토 필요” 등의 의견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이 중 특히 ‘학교의 정책적 고려’란 표현은 김미경씨가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 연구 실적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안 후보가 2012년 대선을 중도 포기하면서 ‘김미경씨 특혜 채용 의혹’은 가라앉았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다시 제기됐다.
 
안철수(우) 후보는 ‘1+1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내가 그때 카이스트 교수였는데, 무슨 정치권력과 압력을 서울대에 행사했겠느냐”고 반박하면서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실권을 가진 사람의 아들 취업문제가 있다면 그거야말로 명명백백히 풀어야 한다”고 문재인(좌) 후보 아들 준용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강조했다.
  4월 12일 더불어민주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은 “김미경 교수는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각각 채용 계획이 수립도 되기 이전에 이미 채용 지원서와 관련 서류를 작성해 놓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앞서 채용된 남편 안철수 후보와 함께 ‘끼워팔기식’으로 채용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서류를 준비한 것으로 안 후보 측이 ‘절차상 하자 없이 채용됐다’는 해명은 거짓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 자리를 1+1로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이 서민들에게 가능한 일인가?”라며 “안철수 부인이라는 이유로 특별 채용되고 사전에 채용 계획을 미리 고지받은 것이라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는 논평을 내놨다.
 
  김재두 국민의당 대변인은 “김미경 교수는 성균관대 의과대학 부교수로만 8년을 근무했으며 워싱턴주립대 법학박사를 마치고, 미국 변호사 시험 중 가장 취득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며 “융합과학이라는 신분야의 교수로 근무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감사에서도 김미경 교수의 채용엔 아무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나온 지 오래”라며 “서울대에서도 채용에 문제가 없음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또 “당시 안철수 후보가 권력이 있었나? 아니면 돈으로 심사위원들을 매수했는가? 안철수 후보가 김미경 교수의 채용에 도대체 어떤 비위를 저질렀다는 것인지 문재인 후보측은 먼저 이 점부터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면서 “민주당은 아무리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이 붕괴됐다고 멘탈까지 붕괴돼서야 되겠는가. 자중자애하라”고 따졌다.
 
  안철수 후보 역시 ‘1+1 특혜 채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4월 14일 TV조선에 출연해 “임용비리나 취업비리는 정치권력으로 외압을 행사하거나 돈으로 매수하는 것이다. 내가 심사위원을 돈으로 매수했겠느냐”며 “내가 그때 카이스트 교수였다. 무슨 정치권력과 압력을 서울대에 행사했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그런 대학들의 임용 과정은 이미 2012년 국정감사를 통해 낱낱이 다 새누리당에서 파헤쳤다”며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실권을 가진 사람의 아들 취업문제가 있다면 그거야말로 명명백백히 풀어야 한다”고 문재인 후보 아들 준용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강조했다.
 
 
  ② ‘정치 테마주’ 안랩 주식 가격 폭등 방관
 
안랩 주식은 대표적인 ‘정치 테마주’다. 2011년 7월까지 2만원에 머물던 안랩 주가는 안 후보가 정치 행보를 보인 8월부터 상승했다. 이후 주가는 기업 실적과 관계없이 안씨의 정치적 언행에 따라 요동쳤다.
  안 후보의 재산은 1630억원(2016년 12월 말 기준)이다. 이 중 대부분은 그가 만들고 대주주로 있는 안랩의 주식이다. 안랩 주식은 2011~2012년 안 후보가 대선 출마를 준비할 당시 대표적인 ‘대선 테마주’였다.
 
  안 후보는 2011년 8월 초부터 언론에 자주 등장해 대기업을 비롯한 ‘기득권층’을 비판하면서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이와 함께 안랩 주가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11년 8월 9일(2만2150원)부터 상승폭이 커져 같은 달 19일 4만950원이 됐다. 디도스 대란, 특허 취득, 신제품 출시, 매출 증가 등을 거치면서도 이전 9년 동안 넘지 못했던 4만원대의 벽이 대주주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 이후 깨졌다.
 
  같은 해 12월 31일 각종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 그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6%p 차이로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2012년 1월 2일 안랩 주가는 15만9800원을 찍었다. 이후 7만4300원(3월 12일)으로 떨어졌다가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보도가 나간 4월 16일 12만8200원을 기록했다.
 
2011년 5월~2012년 6월, 안랩에 투자한 개인 소액 투자자 18만7750명은 총 2640억원을 잃었다.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7월 20일엔 13만8800원이 됐지만 안 후보가 대선 출마를 중도 포기하면서 안랩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박근혜 대 문재인’의 구도로 치러진 18대 대선일이 가까워지자 안랩 주가는 3만8900원(12월 14일)으로 떨어졌다.
 
  안랩 주가의 급등락은 ‘개미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2012년 9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6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안랩에 투자한 개인 소액 투자자(개미)들의 손실액은 2640억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지금까지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③ 개미들의 피눈물로 만든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
 
2011년 11월 14일, 자신이 보유한 안랩 지분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안 후보가 웃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하기 직전인 2011년 7월 당시 안랩 지분 37.1%에 해당하는 372만주를 갖고 있었다. 이는 당시 시가로 744억원이지만 ‘안철수 현상’에 힘입어 그해 11월엔 3000억원으로 폭등했다. 불과 3~4개월 사이에 4배 가까이 뛴 것이다. “정치테마주의 최대 수혜자는 안철수”란 비판이 제기됐다.
 
  안 후보는 2011년 11월 14일 안랩 직원들에게 보낸 ‘더불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며’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안 후보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기부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안랩 사업보고서를 보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안 후보가 대표이사를 맡았던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안랩이 사회공헌을 위해 낸 기부금은 3138만원이다. 이는 각각 같은 기간의 매출 1496억원과 당기순이익 262억원의 0.02%, 0.12%에 해당한다.
 
  안 후보는 평소 ‘기업의 사회공헌’을 역설했다. 그는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기업을 경영할 때도 돈만 버는 영리기업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또 “마치 사회단체나 사회적 기업의 최고경영자처럼 공익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안 후보는 2012년 2월 6일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인 186만 주 중 86만 주는 매각해 현금으로, 나머지 100만 주는 현물 형태로 출연한다”는 안철수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안 후보는 이후 총 6차례에 걸친 장내 매도를 통해 안랩 주식 86만 주를 약 930억원에 매각하고, 양도소득세 등 세금 206억원을 뺀 722억원을 안철수재단에 출연했다. 같은 해 9월엔 안철수재단 이사회가 ‘50만 주 증여, 50만 주 신탁’안을 가결해 증여와 신탁계약을 통한 현물 출연이 마무리됐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측은 “개미들의 피눈물을 딛고 수천억 원의 시세차익을 차지한 것은 착한 기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재단 출연 이후 안 후보의 안랩 지분은 당초 37.1%(372만주)에서 18.6%(186만주)가 됐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
 
  현재 그가 보유한 안랩 주식은 과거의 절반 수준인 186만 주인데도, 그 가치는 2011년 7월 시가의 3배에 달하는 2080억원(4월 12일 기준)이다. 1500억원 상당을 ‘기부’했지만 안 후보의 재산은 결과적으로 급증한 것이다. ‘기부 천사’ ‘착한 부자’를 자처할 수 있게 된 것도 그가 거둔 이익 중 하나다.
 
  안 후보는 2월 15일 한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번 돈일 뿐이다”라며 “사실 재산이 더 많지만 절반을 기부해 동그라미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④ 안랩 주식 매각·백지신탁 안 하려 정무위 배정 거부
 
주식 백지신탁을 피하기 위해 보건복지위로 가길 희망한 안 후보(좌)가 2014년 5월 13일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우)을 찾아가 이를 부탁하고 있다.
  안 후보는 2013년 4월 24일 서울시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들어왔지만 한 달 동안 소속 상임위원회가 없는 상태에서 의정 활동을 했다. 관례대로라면 안 후보는 전임자인 노회찬(魯會燦) 전 의원이 속해 있던 정무위원회로 가야 했지만 안 후보는 다른 상임위를 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을 소관하는 정무위에 가려면 자신이 보유한 안랩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지신탁’이란, 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재산을 공직과 무관한 대리인에게 맡기고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안 후보 측은 일시에 안랩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을 할 경우 주가 하락으로 인해 안랩과 소액주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걸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안 후보는 불과 몇 달 전에 백지신탁 대상인 대통령이 되려 예비후보 등록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는 18대 대선 때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기도 했다. 그가 주장한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실수요임을 입증하지 못한 부동산은 취임 후 90일 이내에 매각하거나 취임과 동시에 수탁기관에 백지신탁하는 걸 골자로 한다.
 
  안 후보는 자신의 상임위 배정에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와 심상정 당시 진보정의당 대표를 찾아갔다.
 
  이후 민주당은 보건복지위 소속 이학영 의원의 자리를 안 후보에게 양보하기로 하고, 이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안 후보는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고 보건복지위로 배정을 희망하는 신청서류를 제출했다. 그러자 강창희(姜昌熙) 당시 국회의장이 “무소속 의원의 상임위 배정은 국회법상 국회의장 고유 권한”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안 후보는 5월 13일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상임위 배정 절차를 다시 밟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열흘 만인 5월 23일 강 의장은 안 후보를 불러 ‘보건복지위’로 가라고 통보했다.
 
 
  ⑤ 아파트 편법 구매·다운계약서 작성
 
안 후보는 2012년 9월 27일 부인 김미경씨의 다운계약서 작성에 대해 사과했다.
  안 후보는 현재 소유한 집이 없다. 지역구인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소재 아파트(보증금 3억3500만원)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이전에는 용산구 파크타워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았다. 당시 그의 집 면적은 205m²(62평), 전세보증금은 12억원이다.
 
  안 후보가 처음으로 본인 명의의 집을 보유했던 건 1988년 4월 27일 매입한 서울시 동작구 사당2구역 재개발 아파트인 대림아파트가 처음이다. 아파트 매입 당시 26세였던 안 후보는 부인 김미경씨와 함께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살고 있었고 사당2구역 재개발조합 조합원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외부인’인 안 후보가 재개발 조합원으로부터 입주권(속칭 딱지)을 사서 입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사당2구역 재개발’은 건설업체가 고용한 수백 명의 철거반원이 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돼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었다. 특히 대림아파트는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반원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논란이 됐던 곳이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밀어붙이기식 재개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힌 안 후보 본인은 정작 ‘딱지’ 구매를 통해 아파트를 매입했다는 게 밝혀져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은 “모친이 결혼한 뒤에 마련해 주신 것으로 매입 과정은 정확히 모른다”고 해명했다. 증여세 납부 여부 등이 논란이 되자 “축의금, 결혼자금 등을 모아 부모가 신혼집으로 마련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는 2000년 10월 30일 사당동 대림아파트를 매도하면서 ‘다운계약서’를 작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아파트의 등기부등본 등을 살펴보면 안 후보는 2000년 10월 30일 매도하면서 서울 동작구청에 제출한 검인계약서에 거래 가격을 7000만원으로 신고했다. 2000년 7월 이 아파트의 국세청 기준시가는 1억5000만원으로 나타났다. 결국 안 후보는 기준시가보다 8000만원 정도를 낮춰 신고한 것이다. 또 부동산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당시 이 아파트 31평형의 시세는 최저 2억1000만원에서 최고 2억4000만원 수준이었다. 안 후보는 1가구 1주택자로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므로 다운계약서로 이익을 보진 않았다.
 
  1993년 안 후보는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소재 역삼럭키아파트로 이사했다. 이 아파트는 안 후보의 모친 박귀남씨가 1988년 4월 20일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땅을 매입해 입주권을 받았던 곳이다. 안 후보 해명대로라면 박 여사는 일주일 간격으로 재개발 아파트 입주권 2개를 매입한 셈이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탈세가 드러날 경우 일벌백계로 엄중하게 처벌해서 세금을 떼먹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탈세액의 수 배를 벌금으로 내는 ‘징벌적 벌금제’ 도입을 주장했다.
 
  안 후보 부인 김미경씨는 2001년 10월 11일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소재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41평형)를 사들였다. 이때도 실거래가(4억8000만원)보다 낮은 금액(2억5000만원)으로 신고해 취득세·등록세 1100만원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씨는 이 아파트를 10년 뒤인 2011년 9월 23일 11억원에 매도했다.
 
  부인 김씨의 다운계약에 대해, 안 후보는 2011년 9월 27일 “언론을 보고 확인한 다음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어쨌든 잘못된 일이고 국민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 엄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다운계약과 관련해서는 캠프에서 다음 날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안철수 후보가 2001년 매도한 사당동 아파트에 대해 실거래 가격과 다른 금액으로 신고됐다”고 다운계약서 작성은 인정하면서 “당시 부동산 거래 관행이었지만 후보가 어제 국민들께 말씀드린 ‘앞으로 더욱 엄정한 기준과 잣대로 살아가겠다’는 안 후보의 말로 갈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⑥ 안랩 BW 헐값 발행·인수 논란
 
  안랩은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던 1999년 10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신주인수권부사채(이하 BW)를 발행하기로 결의한다. BW(Bond with Warrant)란, 원리금 외에 해당 회사가 새로 발행한 주식(신주)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이다. 당시 안랩 주주는 안 후보와 삼성SDS, 한국산업은행, LG투자조합, 나래앤컴퍼니였지만 BW는 안 후보에게만 발행됐다.
 
  주주총회 의결 후 안랩은 주당 5만원에 5만 주, 즉 25억원 상당의 BW를 발행했다. BW의 이자율은 10.5%, 행사 기간은 1년 후인 2000년 10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0년간이었다. 안 후보는 안랩이 발행한 BW를 전량 인수했다.
 
  BW 발행 직후 안랩은 무상증자를 했다. 이에 따라 안랩 발행 주식 총수는 13만 주에서 25만 주(192.3%) 증가한 38만 주가 됐다. 2000년 2월엔 ‘1대10’의 비율로 액면분할을 해 발행 주식 수가 380만 주가 됐다. 액면분할이란, 납입 자본금의 증감 없이 기존 주식의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분할해 발행 주식 총수를 늘리는 걸 말한다.
 
  2000년 10월, 안 후보는 25억원을 내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한다. 주당 인수 가격은 BW 발행가 5만원이 아닌 1710원이다. BW 발행 후 1년 동안 ▲무상증자 ▲액면분할 등을 거치며 주당 가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 후보는 2000년 10월 13일 주당 1710원에 안랩 주식 146만9888주를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건 안랩 주주총회가 BW 발행을 의결한 지 4개월 만인 2000년 2월 안철수연구소의 대주주였던 ㈜나래앤컴퍼니가 안랩의 주식 1만1500주를 주당 20만원에 장외 매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안 후보가 인수한 BW의 발행가 5만원보다 4배 많은 금액이다. 이 때문에 안 후보가 시세의 1/4 수준으로 BW를 매입해 막대한 평가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1년 7월, 안랩의 코스닥 상장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이 금융감독원에 공시한 예비사업설명서에 따르면 당시 안 후보 보유 지분 가치는 희망공모가 1만7000~2만3000원으로 환산할 경우 248억5400만~336억2600만원이다.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기 위해 지불한 25억원을 빼면 최대 311억원의 평가 차익이 발생한 셈이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안랩의 BW 발행가가 시장가격보다 과도하게 낮았다”며 ‘헐값 발행’ 의혹을 제기했다. 2012년 2월,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은 “BW를 헐값 발행해 수백억 원의 차익을 얻었다”며 안 후보를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BW 논란과 관련, 2012년 당시 안 후보 캠프는 BW 발행 가격이 외부 전문기관 평가액보다 높은 금액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예비사업설명서에는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BW 발행 당시 삼일회계법인이 평가한 3만1976원과 BW 발행 직전 유상증자 시 발행가격 5만원 중 큰 금액으로 산정했다”고 명시돼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배임 의혹’에 대해서도 안 후보 측은 이사회와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거쳤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4월 12일, 안랩 BW와 관련해 박범계 문재인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본부 2실장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와 함께 BW의 발행 목적 및 가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안 후보가 자금 조달 목적이 아닌 상법이 금지하는 지배주주의 지분율 유지 또는 이를 높이기 위해 BW를 발행한 정황이 보이고 이에 따라 안 후보가 현재 보유한 ‘부(富)’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 사안은 이미 2012년도에 강용석 전 의원이 제기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혀졌던 사안”이라며 “문 후보는 더 이상 저급한 흑색선전 재활용을 중단하고 정책과 비전 경쟁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⑦ 국민은행 사외이사 시절 공정경쟁 방해 의혹
 
  안 후보는 2001년 3월 국민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당시 국민은행은 온라인복권 위탁사업 운영기관이었다. 2000년 4월부터 복권사업자 선정 작업을 벌였고, 2002년 1월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발표 전부터 ‘KLS(Korea Lottery System)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될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KLS컨소시엄엔 안랩이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안랩 대표였던 안 후보는 복권사업자 신청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국민은행 사외이사가 됐다가 2002년 1월 KLS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직전에 사임했다.
 
  이를 두고 안 후보가 안랩을 ‘KLS컨소시엄’에 참여시키고, 사외이사로서 사업자 선정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실제 안 후보는 입찰 경쟁자들로부터 문제가 제기되자 2002년 1월 사외이사직을 사임했다. KLS컨소시엄은 안 후보 사임 이후 9일 만인 1월 28일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
 
  입찰 경쟁사인 위너스시스템은 그해 3월 법원에 계약체결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원고 측은 신청서에 “KLS컨소시엄 참가 업체인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이 국민은행의 사외이사를 지내는 등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썼다. 당시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후보는 1년 뒤인 2003년 3월 사외이사직에 복귀해 2004년 3월까지 일했다.
 
  2012년 당시 안 후보 대변인 유민영씨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는 사업 수주와 관련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그럼에도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하고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하기 위해 스스로 사퇴했고, 이런 자세를 높이 평가받아 사외이사에 재선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⑧ 포스코 ‘황제 이사’·거수기 역할 논란
 
  포스코는 2005년 2월 안 후보를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안 후보는 그 다음달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겠다며 미국 유학을 떠났다. 불과 한 달 뒤에 개인적인 사유로 미국에 갈 예정이었는데도 대기업의 사외이사직을 맡았다는 얘기다.
 
  포스코는 미국에 간 안 후보를 위해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항공료를 줬다. 3년 동안의 미국 유학 시절 안 후보는 총 19회 포스코 이사회에 참석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당시 포스코가 안 후보에게 지원한 항공료는 총 1억원이다.
 
  안 후보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총 6년간 포스코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이 기간에 그가 받은 급여 총액은 3억8000여만원이다. 2005년 4월, 포스코는 안 후보에게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자사 주식을 매입하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스톡옵션(2000주)’을 줬다. 안 후보는 이를 처분해 차익 4억원을 남기기도 했다. 6년 동안 포스코로부터 받은 돈이 9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안 후보가 포스코 사외이사 6년 동안 이사회에 참석한 횟수(47회)를 감안하면 그는 회당 1900만원을 받으며 이사회에 참석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고액을 지급받으면서도 안 후보가 사외이사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에 대해서 말이 많다.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안건 반대율이 1.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포스코 사외이사 재직 당시 이사회 안건 235건 중 3건만 반대했다. 그가 반대한 안건은 ‘포스텍 국제관·기숙사 건립을 위한 시설비 출연 계획(2005년 10월 21일)’ ‘연말 이웃 돕기 성금 출연(2006년 12월 19일)’ ‘이사회 운영 개선안(2009년 12월 19일)’이다.
 
  안 후보가 사외이사를 맡을 당시 포스코는 자회사를 38개 늘리는 등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인수한 성진지오텍(2010년 4월)의 경우 부채비율이 700%에 달했지만 안 후보는 부실기업을 사들이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포스코 사외이사 관련 의혹에 대해 2012년 당시 안 후보의 대변인 유민영씨는 “다른 사외이사들과 (안 후보가) 동등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시세 차익 부분도 정상적인 과정이었다”고 해명했다.
 
 
  ⑨ 표리부동한 ‘대기업 비판’
 
안 후보는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최태원 SK 회장이 구속기소됐을 때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 제출에 동참했다.
  브이소사이어티는 2000년 9월 설립된 재벌 2세 11명, 벤처기업인 10명이 각각 2억원씩 출자해 만든 주식회사 형태의 ‘사교 모임’이다. 주주로 참여한 이들은 류진(柳津) 풍산 회장, 이웅렬(李雄烈) 코오롱 회장, 최태원(崔泰源) SK 회장, 황철주(黃喆周)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변대규(卞大圭) 휴맥스 사장 등이다. 안철수 후보도 안랩 대표 당시 부인 명의로 3만6000주(지분율 3.88%)를 보유했었다. 액면가 5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억8000만원을 출자한 셈이다.
 
  안 후보는 2003년 4월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인 최태원 SK 회장이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기소됐을 때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최 회장은 같은 해 9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이후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뒤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란 죄에 비해 감옥에 있었던 기간이 짧은 최 회장 사례는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전형으로 꼽힌다.
 
  안 후보가 선처를 바랐던 최 회장은 450억원을 횡령해 선물 투자를 한 것과 관련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5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이 같은 안 후보의 과거는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과 배치된다. 그는 이 책에서 〈기업주가 전횡을 일삼거나 주주 일가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건 범죄가 된다”며 “이런 행위가 법률과 제도적으로는 처벌 대상이 되는데 지금까지 행정·사법부가 입법 취지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이런 것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법치에 대한 불신과 우리 사회가 정말 불공평하다는 절망감을 낳았다〉고 기술했다.
 
  2012년 8월, 당시 새누리당 심재철(沈在哲) 최고위원은 “과거에는 친재벌적 행태를 보이다가 지금은 반재벌적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안 후보를 비판했다.
 
  2012년 당시 안 후보의 대변인 유민영씨는 “당시 브이소사이어티 모임의 일원으로 안 후보가 서명에 동참한 것은 맞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며 “탄원서라기보다는 선처를 호소하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⑩ 세계 최초로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개발했다?
 
  안철수 후보가 지금과 같은 위치로 발돋움하게 된 건 2009년 6월 MBC의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결과 ‘안철수 신화’가 각계각층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방송 출연 당시 안 후보는 여러 ‘자기 과시성’ 발언을 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이 1988년에 만든 V1(Vaccine1)이 ‘세계 최초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이며 미국 업체들은 이로부터 1년 뒤에나 만들기 시작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당시 방송에서 안 후보는 “1988년 그 취미 덕분에 우연히 컴퓨터 바이러스 발견! 국내 최초 백신 개발 장본인! 이후 7년간 백신을 무료로 배포”라고 소개됐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사회자가 “V1이 국내 최초의 백신인가?”고 묻자 안 후보는 “세계 최초 백신 중 하나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의 대기업 백신들도 V1보다 거의 1년 뒤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컴퓨터 바이러스를 찾아내서 기능을 정지시키거나 제거하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국내에선 흔히 ‘백신’이라고 불린다. 국내 최초 백신은 안 후보가 서울대 의대 박사 과정 중이던 1988년 만든 V1이지만, 세계 최초 백신은 1971년 미국 국방성 네트워크 ‘알파넷’에서 세계 최초 바이러스 ‘크리퍼’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퍼’다.
 
  처음 문서로 만들어진 컴퓨터 바이러스 제거 프로그램은 1987년 독일의 로버트 픽스가 만든 ‘번트 픽스’다. 안 후보가 V1을 만들었을 당시 미국에선 백신 제조사 7개가 협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ㅇㅇ    (2017-09-16)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2
백신쪽은 팩첵해야겠다. 의혹 짤 봤을 떄 하나는 거짓말인거 확실히 알고 그다음부턴 의심병 걸림

2017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