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미르·K스포츠재단의 닮은꼴 ‘청년희망재단’ : 월간조선

청년희망재단은 2015년 9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펀드’ 형식으로 제안하고, 다음날 정부가 설립 계획을 발표해 탄생한 ‘민간단체’다. 5일 후, 박 대통령은 청년희망재단의 운영자금으로 쓸 ‘청년희망펀드’에 ‘1호 기부자’로 나섰다. 펀드에 2000만원을 내고, 자신의 월급여 중 20%를 내겠다고 약정했다. 뒤이어 대기업 총수와 임원들이 1200억원을 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청년희망재단은 최순실이 재단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 미르·K스포츠재단과 ‘판박이’란 지적이 나왔다. 설립 시기와 계기, 대기업이 참여한 모금 방법 등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16년 국회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청년희망재단’ 관련 의혹이 제기됐다.

범정부 조직 동원해 모금 방안 수립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가입신청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년희망재단 관련 쟁점을 종합해 펴낸 〈청년희망재단 대해부〉란 자료집을 펴냈다. 이에 따르면 청년희망재단은 대통령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속하게 설립됐다는 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과 비슷하다.

2015년 9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관련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이날 오후 안종범 경제수석은 “조성 방안과 활용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오전 9시30분,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펀드 가입을 결의했다. 이날 오후 추경호 당시 국무조정실장(현 새누리당 의원) 주재로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들이 모여 펀드 조성 및 활용 방안, 재단 설립 세부 추진 계획을 논의했다. 이후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은 박 대통령이 제안한 지 6일 만에 전 지점에 펀드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입 신청서를 비치했다.

박 대통령은 “공직 사회와 일반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한다”면서 ‘청년희망펀드’ 1호 기부자가 됐다. 이에 대해 이용득 의원은 “갑자기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하면서 펀드를 통해 기부하라고 하고 재단도 만들겠다고 한 건 매우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총수들, 재계 순위 따라 돈 내”

황교안 국무총리(좌)는 대통령 제안 다음날인 2015년 9월 16일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펀드 가입을 결의했다. 이후 범정부적인 ‘청년희망펀드’ 모금 방안이 수립됐다.

2015년 9월 청년희망펀드 모금액은 20억원이다. 매일 은행들로부터 펀드 가입 실적 현황을 보고받던 국무조정실은 2015년 10월 15일 각 은행 실무자들을 불러 ‘홍보 아이디어 제안 및 협조 당부 사항’이란 청년희망펀드 홍보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10월 19일 청년희망재단이 설립된 뒤부터 모금액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대기업 총수들의 참여 때문이다.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비 200억원을 냈다. 삼성그룹 임원진도 50억원을 기부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현대차그룹 임원진은 각각 150억원과 50억원, 구본무 LG전자 회장과 LG그룹 임원진은 각각 70억원, 30억원을 냈다. SK, 롯데, 한화, 두산 등 여타 대기업들도 총수와 임원진이 거액을 내놨다. 재계 1위인 삼성이 금액을 확정하자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이른바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부를 시작했던 셈이다.

이와 관련,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들은 그 순위를 거의 정확하게 맞춰서 돈을 냈다. 일부 재계순위를 맞추지 않은 기업은 법적인 문제나 허가 사항이 걸려 있어 조금 더 성의를 보인 경우”라고 언급했다.

은행권도 모금에 동참했다. 일부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은 월급의 30%를 자동이체 형태로 납부했다. 은행원들도 기부 약정을 했다. 이에 따라 청년희망재단의 모금액은 모금 석 달 만에 1400억원이 됐다. 이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각각 모금한 800억원, 380억원을 합한 금액보다도 220억원 더 많다.

“이사회와 상의 없이 사업 진행”

청년희망재단 이사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청년희망재단은 전두환의 일해재단과 같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제안 이후 한 달여 만에 급조된 탓인지 청년희망재단은 뚜렷한 사업 목표,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사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청년희망재단 출범 당시 이사는 이사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김대환 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장의성 전 서울지방노동청장(재단 사무국장), 류철균 이화여자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등 7명이다. 이 중 김동만 위원장은 2016년 《월간조선》 10월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것(청년희망재단 설립)도 원래 제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인데 지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일해(日海)재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재단 이사인데 전혀 상의도 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초기 설립 취지와도 달라졌어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2015년 10월 1차 이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 없이 출범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정부 및 기업, 비영리재단 등이 청년 일자리를 위해서 많은 사업을 하고 있어, 청년희망재단에서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데도 이사회에 상정도 안 하고, 사전 협의도 없이 언론에 사업 계획을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만들고 사업 계획 확정한 ‘순수 민간단체’

청년희망재단 이사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사회에서 ‘사업 내용 부실’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이사회 배제’ 등을 지적해 왔다.

청년희망재단이 순수 민간단체가 아니란 비판도 있다. 청년희망재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은 때는 2015년 10월 19일이다. 설립 관련 작업을 맡은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파견한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이다.

고용노동부가 이들 설립지원팀을 구성할 때 작성한 〈청년희망재단 설립 지원 T/F 구성(안)〉의 ‘붙임 자료’에 따르면 이미 고용노동부는 재단이 출범하기도 전에 주요 사업 계획들을 확정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틀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청년희망재단 사업 방향을 발표했다. 재단이 출범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사업 계획을 확정한 셈이다.

청년희망재단 이사 박병원 회장은 같은 해 12월 28일 열린 3차 이사회에서 “모든 법인에서 최종 의사결정은 이사회다. 그런데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고 어떻게 사업 결정을 했는지 설명하고, 이사회 안건은 사전에 간담회 등을 개최해 충분히 조율하고 일주일 전에 이사한테 보내야 하는데 발표 하루 전날 보낸 것이 협의하겠다는 자세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재단 이사회는 의사결정 과정서 배제돼 있었던 셈이다.

청년희망재단의 사업 실적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년희망재단이 2016년 8월 8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희망재단은 그동안 1만1305명에게 ▲상담 ▲멘토링 ▲특강 ▲일자리 알선 ▲해외 취업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561명으로 전체의 4.9% 수준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 차은택 개입 의혹도

청년희망재단에 ‘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차은택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청년희망재단은 국회에서 “실적이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자 해명 자료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2016년 11월 7일 기준 청년희망재단은 총 4만5972명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해 전체의 2.5%에 불과한 총 1178명을 취업시켰다. 오히려 취업률은 기존 통계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청년희망재단에 ‘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차은택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 1월 18일 발표한 ‘2016년 업무보고’에서 “청년희망재단과의 연계를 강화하여 문화창조벤처단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의 전진기지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화창조벤처단지는 차은택이 주도해 만든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중 하나다. 이용득 의원은 “만약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청년희망재단이 1400억원으로 누구를 위해, 어떤 사업을 했을지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년희망재단은 “2015년 12월 재단이 사업계획을 확정한 뒤에는 문화창조융합벨트나 문화창조융합센터와는 무관하게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해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청년희망재단 설립을 청와대가 주도’했고, ‘청년희망재단이 미르와 판박이’라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재단설립 전 과정을 공개적으로 추진했다”면서 “재단이 공식 출범한 이후에는 재단 이사회와 사무국이 재단을 자율적·독립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청년 취업 지원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