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장에서] 대선주자 남경필 경기도지사 모병제로 정책 어젠다 선점… 한완상 영입은 막판 불발(不發) : 월간조선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대권도전을 앞두고 애초 목표였던 ‘어젠다 선점’에 성공한 모습이다. 모병제(募兵制) 도입을 주장해 여론의 높은 관심을 얻은 데다 같은 당의 또 다른 잠룡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과 맞붙으면서 정책대결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대선주자들이 개헌이나 소비세 인상 등 특정 정책을 놓고 정면대결한 사례가 적지 않지만 아직 국내에서 후보들이 정책으로 맞붙거나 정책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선택받은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남 지사의 한 측근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젊고 개혁적이면서 정치 및 행정경력은 풍부한 것이 남 지사의 강점이어서 인물대결에도 자신 있지만,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대결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 지사는 이미 수도 세종시 이전, 공유적 시장경제, 사회통합부지사를 통한 여야협치 등 눈에 띄는 제안을 해 놓은 바 있다.

남경필 지사가 주장하는 모병제의 핵심은 “2025년 전후로 인구절벽이 도래하면 50만 이상의 병력규모 유지가 불가능해지는 만큼 30만 수준의 작지만 강한 군대를 유지하고 월급 200만원의 9급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9월 초 한 강연장에서 ‘대한민국 리빌딩(재건)’이라는 주제로 협치, 공유적 시장경제, 수도 이전이라는 기존의 주장 외에 모병제까지 내세워 ‘한국형 정치모델’을 제시했다. 사실상의 대권 도전 선언이다.

모병제는 특히 청년층에 이슈가 되는 사안이다. 여론의 반응이 뜨거웠고 또다른 여권 잠룡 유승민 의원이 맞불을 놓았다. 유승민 의원은 7일 한 강연에서 “모병제가 실시되면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대에 갈 것이며,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공격했다. 남 지사는 즉시 SNS를 통해 “정책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규정은 오만”이라며 “공개토론하자”고 맞섰다. 유 의원은 공개토론 제안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정우택 의원과 원유철 의원도 모병제를 도입하면 국가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남 지사를 공격하고 나섰다.

남 지사는 모병제 주장 후 같은 당 내에서도 공격을 받고 있으며 여론조사(9월 7일 리얼미터)상 모병제 찬성률(27.0%)도 반대(61.6%)에 비해 저조하지만, 뜨거운 이슈가 되는 정책어젠다를 선점했다는 것은 대선주자로서 큰 의미가 있다.

주변 조직 관리에도 나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최근 어젠다 선점에 나서며 윤여준·한완상·김범수·김화수 등(왼쪽부터)을 영입, 대권행보를 가속화 중이다.

의제 선점에 성공한 남경필 지사는 취약점으로 꼽히는 ‘조직’에도 신경쓰기 시작한 모습이다. 지난 7일 그는 새누리당 사무처 실·국장급 당직자 20여 명과 함께 수원 모 음식점에서 3시간여에 걸쳐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는 “경기도에 있다 보니 중앙당 분들을 뵌 지 오래된 것 같아 만나고 싶었다”고 모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내가 입당한 지 18년이 됐는데,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인 20년간 당을 지켜 온 당직자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1998년 7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입당, 출마해 당선됐다. 참석한 당직자들은 30대 초반의 그가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또 남 지사는 5선 의원을 지내며 당 대변인, 경기도당 위원장, 원내수석부대표, 최고위원 등 각종 당직을 맡은 바 있어 당직자들과 두루 친밀한 사이다. 남 지사는 모임의 취지를 축소 설명했지만 남 지사가 주변과 스킨십을 통해 조직관리를 시작했다는 것은 자명했다. 참석자 연배가 대부분 40대였던 이 자리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참석했던 한 당직자는 “요즘 야권에 비해 여권 대선주자들의 이슈가 적었는데 남 지사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지지 여부를 떠나 당에는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남 지사는 다른 잠룡에 비해 각계 인사 영입도 독보적이다. 대선주자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을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사업단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최근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까지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영입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남 지사의 외연 확장이 화제가 됐다. 진보 성향의 학자인 한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냈으며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싱크탱크 ‘담쟁이포럼’의 이사장을 맡았던 친문계 원로라는 점이 이슈였다. 그러나 임명 절차만 앞둔 상태에서 한 전 부총리는 이사장직을 고사했다. 원래 한 전 부총리가 이사장직 공모에 스스로 지원했었지만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측의 반발이 크게 작용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전 부총리 영입은 불발됐지만 경기도 산하 및 관련기관 전문가 영입은 현재진행형이다. 판교스타트업캠퍼스 초대 총장에 ㈜카카오 김범수 의장을, 경기일자리재단 대표에 김화수 전 잡코리아 대표를 임명했다. 두 사람은 청년층에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인물들로 남 지사는 원로급과 신진세력을 적절히 안배해 영입 중이다.

경쟁후보처럼 팬클럽 만들까

남 지사는 전문인사 영입과 함께 조직구성에도 나서고 있다. 한 측근은 “대선을 완주하려면 무엇보다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도와줄 분들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다른 잠룡들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며 “웬만한 조직통들은 다른 주자들에게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어 남 지사의 경쟁력과 당선 가능성을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후보들은 이미 다 캠프가 있는데 우리는 아직 캠프에 올인하지 못하고 있어 초조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석에서 만난 남 지사에게 “정식 대권도전 선언은 언제가 되겠느냐”고 질문하니 “내년 초로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금 친박 체제 새누리당에서 경선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새누리당이 그렇게 무질서한 조직은 아니며, 정책선거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들도 같은 대답이었다. 그의 측근들은 대부분 경기도 및 산하기관에서 현직으로 일하고 있어 지금 캠프를 구성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팬클럽 형식의 지지모임도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남경필 지사의 대권행보는 이미 시작됐다. 전국 추석밥상에서는 모병제가 화제가 될 것이고 남 지사는 어떻게든 평가를 받을 것이다. 문재인(문팬) 반기문(반딧불이) 박원순(희망새물결) 김부겸(새희망포럼) 등 경쟁 주자의 팬클럽이 속속 창립하는 가운데 추석연휴 후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