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總選 이모저모] 20代 총선 앞두고 활개치는 강남 3區 선거 브로커들 : 월간조선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60대 초반의 공기업 사장 출신 A씨는 최근 20대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가족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내와 아들, 딸은 “아버지가 선거 브로커에게 현혹돼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주장하고, A씨는 “주변인 모두가 출마하라는데 오직 가족들만 반대한다”며 가족의 반대에 서운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A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정치를 계속해 온 사람도 아니고, 강남에 아버지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공천을 받을 리가 있느냐”며 “어머니가 ‘브로커 때문에 집안 망하겠다’며 이혼을 불사하고 출마를 말리겠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지나치게 강경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현재 강남 3구의 7개 선거구(강남 갑·을, 서초 갑·을, 송파 갑·을·병) 곳곳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거 룰 미정으로 예비후보들도 혼란

여야 지도부는 선거구 획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수차례 회동했지만 예비후보 선거등록 개시일(2015년 12월 15일)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정치 브로커가 등장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 그러나 20대 총선은 예비후보 등록 시작일(2015년 12월 15일)이 되도록 여야가 선거구 변경안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인데다 각 정당이 공천 룰도 명확하게 결정하지 않아 정치 지망생과 예비후보들은 여느 때보다 앞이 깜깜한 형편이다. 상대적으로 정치 신인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 보니 브로커들이 더욱 활약할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강남 3구 중상류층 인사들을 노리는 ‘강남 선거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 공직이나 전문직에 오래 종사해 퇴직금이나 연금, 부동산 등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정치권 물정은 잘 모르는 50~60대 인물들이 주요 공략 대상이다.

이들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브로커들의 현란한 언변에 솔깃하지만, 브로커의 대부분은 거액의 착수금이나 컨설팅 비용만 받아 챙기고 활동은 거의 하지 않거나 활동을 하더라도 실패 후 책임은 지지 않는 불법 브로커에 불과하다.

과거 선거를 앞두고 활동하는 브로커는 크게 두 부류였다. 기획전문가, 이른바 정치 컨설턴트를 자처하는 부류가 있고 또 다른 부류는 조직전문가, 즉 당원협의회나 당원모임, 유권자 단체 등의 핵심을 자처하는 케이스다. 전자는 컨설팅 비용을, 후자는 조직관리 비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 ‘기획’과 ‘조직’ 외에도 새로운 부류의 브로커가 등장했다. 특정 ‘정당 공천=당선’인 지역에서 당 대표 또는 대통령의 측근을 자처하며 “공천을 책임지고 밀어주겠다”고 주장하는 공천 브로커다. 공천 브로커는 주로 여야의 텃밭인 영남이나 호남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케이스가 많았고, 강남에 공천 브로커가 등장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80~90년대만 해도 무소속 의원이 적지 않았던 강남 3구가 2000년 이후 새누리당의 텃밭이 되면서 영호남 공천 브로커의 활동을 벤치마킹한 강남 공천 브로커가 속속 등장, 강남 3구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강남 3구에서 현재 활동 중인 공천 브로커를 직접 만나기는 어려웠지만 공천 브로커의 제안을 받았던 인물들은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브로커가 “확실히 공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최근 활개치는 강남 브로커는 ‘공천 브로커’

일반적으로 선거 브로커란 당원 및 유권자 명부를 들고 다니며 ‘표를 몰아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직 브로커나 ‘확실한 전략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전략 브로커인 한편, 최근 강남에서 활개치는 브로커들은 거의 다 ‘공천 브로커’다. 강남 3구에서는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하기 때문에 공천을 받는 데 힘을 써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남 공천 브로커들은 새누리당 명함을 갖고 다닌다. 명함에 기재된 명칭은 당원협의회 사무총장이나 국장, 책임당원협의회장, 중앙위원, 직능위원, 여성위원, 대표나 사무총장 등 당직자의 특별보좌역 등으로 다양하다.

요구하는 비용도 다르다. 조직 브로커가 조직관리 비용을 요구하고 기획 브로커가 컨설팅 비용을 요구하는 반면 공천 브로커는 ‘공천헌금’과 ‘활동비’를 요구한다. 공천에 관여할 수 있는 고위 정치인들에게 제공할 금품이 필요한데, 최근 공천이 과거보다 투명해지고 공식적으로 공천헌금이 없어지면서 예전보다 금액이 많이 줄어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것이 공천 브로커들의 주요 레퍼토리다.

출마 권유를 받은 사람들은 새누리당 중앙당에 전화해 브로커의 신원을 확인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 같은 문의가 많아지자 새누리당은 몇 차례 ‘브로커 경계령’을 내렸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황진하 사무총장과 이장우 대변인 등이 나서 “당의 공조직이 아닌 자생적 당원조직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파하고 선량한 당원과 지역주민에 피해를 주며, 이들 조직이 물의를 빚는 경우 해당 행위에 대해 고발 등 강력 조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영인 대변인행정실장은 “선거 때가 되면 자칭 당직자의 진위 여부를 묻는 전화가 엄청나게 많은데, 브로커라는 의심은 들지만 중앙당 당직자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 당원이 아니라고 답할 수도 없고 각 시도 당이나 당원협의회 인원까지 확인해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당직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물의를 일으킬 경우 우리 당의 이미지 손실이 큰 만큼 최대한 단속하고 징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브로커들, “새누리에서 강남 3구 새 얼굴 찾는다” 주장

최근 강남에서 활개치는 이들 공천 브로커의 논리는 ‘물갈이론’이다. 몇 달 전 20대 총선 출마 권유를 받아봤다는 50대 후반 전문직 B씨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출마 권유를 받아보셨다고요.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사람인데 〈새누리당 OO갑 책임당원협의회장〉이라는 명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호감형 외모에 어찌나 언변이 좋던지 역시 정치하는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고 출마를 권유하던가요.

“새누리당 중앙당에서 ‘강남 지역에 공천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새로운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라는 지시가 각 당협에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소문하던 중 저를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새 얼굴을 찾고 있기 때문에 (제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고 가능성도 높다고 했습니다.”

—강남 지역은 새누리 공천=당선이라고들 해서 공천경쟁이 치열할 것이 자명한데 본인이 공천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 사람(브로커)은 19대에서 공천받아 당선된 서초 갑의 현직 의원과 강남 갑·을의 현직 의원을 예로 들었습니다. 공직자 출신이고 일반인에게 별로 인지도가 없던 그들이 강남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어떻게 받았겠느냐고 하더군요. 자기 분야에서 조용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는 한편 충성심 있는 사람을 당 지도부가 선호한다는 겁니다. 강남 서초·송파 현직 의원들이 탤런트 출신인 김을동 의원을 빼면 전부 공직자, 교수, 전문직 출신이라고요. 그분(현직 의원)들이 공천받을 때 나이도 50대 후반에서 60대였고, 지금의 제 조건과 흡사하다는 겁니다.”

—그런 조건의 인재라면 강남에 수백~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요.

“지금 생각하니 그렇죠. 그런데 제안을 받을 때는 그런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듣고 있으면 정말 국회의원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 세 번째 만났을 때는 현재 새누리당 대표와 오래전부터 정치적 동지관계라며 사진도 보여주고 통화도 하면서 책임지고 공천을 받아낼 수 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비용은 얼마나 부르던가요. 착수금부터 요구합니까.

“처음엔 착수금 얘기를 하지 않았고, 일단 당원 명단을 제공하고 사무실과 직원 등을 알아볼 테니 2억원 정도를 마련해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 후 이런저런 활동으로 인지도를 올려놓으면 공천작업을 할 것이니 그때 ‘실탄’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일단 2억원은 크게 무리가 가는 금액도 아니어서 준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가족의 심한 반대에 포기하긴 했지만요.”

새누리 ‘험지출마론’은 브로커들의 좋은 레퍼토리

고위 공무원을 거쳐 공기업 임원으로 은퇴한 50대 C씨도 최근까지 브로커의 출마 권유에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의 얘기다.

“브로커가 말하길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지금 강남 3구에 출마선언을 한 인물들은 모두 공천불가 결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브로커 본인은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 출신이고 거물 정치인의 보좌역을 지내 당 사정에 밝다고 했고요. 그 얘기를 들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언론에 새누리당이 조윤선, 이혜훈 등 서초구 출마 예정자에게 ‘험지에 출마하라’고 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쯤 되니 브로커의 말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내가 안 나가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도 못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주워 먹기’로 강남에서 국회의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초조해지더군요. 여의도 커피숍에서 만났었는데, 거기서 한 국회의원을 만나 인사를 하기도 해서 불법 브로커라고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브로커의 말대로 ‘최소 10억’을 생각하고 공천에 도전해 볼 것인지 고민 중이다.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선거비용은 크게 들 일 없다고 하니 공천에 올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천에 실패하면 출마는 깨끗이 접을 생각입니다.”

40대 후반의 전문직 D씨는 자신이 친박(親朴) 측근임을 자처하는 브로커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브로커가) 대통령을 오래전부터 모셨는데 일부러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외곽 비선조직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 등 당에서 하는 말은 다 명분 쌓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청와대가 공천을 다 주도한다며 그 근거를 상세히 얘기해 줬습니다. 또 그 사람은 ‘OOOO포럼’이라는 명함을 갖고 있었는데, 2012년 총선 당시 박근혜 직계인 ‘포럼부산비전’이 공천 창구로 이용됐던 내막을 이야기해 주더군요. 그 외에도 대통령이나 당에 대해 언론에선 접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어찌나 실감나게 얘기해 주던지 솔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청와대에서는 구태 정치인보다 능력 있는 신예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현직 의원이나 기존 정치인이 강남 3구에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없고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분구가 예상되는 강남 병(丙) 선거구를 놓고 브로커들의 활동이 거세다. 인구상한요건에 따라 강남 갑 선거구가 갑과 병 두 선거구로 나뉠 가능성이 높다. 강남 병 선거구에는 비례대표 현역인 류지영 의원과 18대 비례대표 의원인 이은재 건국대 교수가 출사표를 낸 상황인데, 모두 60대로 비교적 연령대가 높아 브로커들은 “젊은 사람을 공천할 가능성이 높다”며 40~50대의 인물들을 섭외하고 있다.

브로커는 다 사기꾼일까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심사모습. 외부인사와 당내인사가 함께 공정한 심사에 나선다.

브로커로부터 한 번이라도 출마 권유를 받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브로커를 통해 실제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강남과 형편이 비슷한 영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한 전직 브로커의 얘기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기초단체장이나 광역의원, 또는 재력가 출신이 국회에 입성한 사례가 몇 번 있었는데 이 과정에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브로커들이 있었습니다. 영남 지역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이 당선 보장이기 때문에 선거 브로커보다는 공천 브로커라 할 수 있죠. 공천 브로커는 대부분 당 핵심 당직자 측근을 자처하는데, 진짜 브로커가 있고 사기꾼이 있습니다. 실세 정치인이 직접 돈 받는 것을 피하려고 브로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짜 브로커를 만나면 국회에 입성할 기회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어설프게 출마하려고 나섰다가 접하게 되는 브로커는 상당수가 돈 받고 사라지는 사기꾼이라는 게 문제죠. 진짜 브로커들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섣불리 돈을 뜯어내거나 허황된 말로 사람을 속이지 않아요. 그런데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한탕 하고 뜨는 ‘떴다방’식 브로커가 많습니다. 수도권에서 브로커를 통해 선거에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브로커를 통해 출마하려 했던 인물의 대부분은 브로커의 ‘밥줄’이 됐다가 돈만 뜯기는 것이 전부다. 일만 열심히 하던 가장(家長)이 정치에 뜻을 두면서 그 가정이 불화에 휩싸이거나 빚더미에 나앉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들 가족에게 선거 브로커란 ‘능지처참해도 분이 안 풀릴’ 대상이다. 서초구 출마를 고려했던 60대 공직자 출신 인사의 아들 E씨는 “아버지가 브로커의 말을 믿고 그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강경하게 출마를 고집했는데, 가족들이 사비로 한 여론조사기관에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그 처참한 결과를 눈앞에 보여드려 겨우 포기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에 아버지가 정치에 나서면서 패가망신하고 빚더미에 앉은 집이 얼마나 많은데요. 끝이 뻔히 보이는 길에 뛰어들겠다는데 가족의 말로는 도저히 만류가 안 돼 여론조사를 생각했죠.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현실적으로 브로커 처벌 어려워

국내법에서는 브로커를 인정하지 않는다. 브로커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공직선거법이다. 현재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와 관련해 금품 및 그 밖의 이익 등을 수수한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벌금형이 지나치게 낮다는 의견이 많아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이 정치 브로커가 후보자 등을 매수하거나 금품을 요구하는 등 불법행위를 할 경우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014년 초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일부 브로커가 처벌을 받은 사례는 있지만, 전국에 산재한 선거 브로커의 불법행위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없다.

전문가들은 강남 3구에서 브로커를 통한 공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아직 공천에 대해 100%란 없는 상태며, 김무성 대표가 공언한 오픈프라이머리가 전반적으로 실시된다면 정치 신인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로커들이 주장하는 인맥을 통한 공천이란 어불성설로, 김무성 대표의 처남(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이 서초 갑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주변의 비난만 살 뿐 공천받을 가능성은 미지수이지 않느냐”며 “능력 있는 정치 신인들이 총선에 도전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불법 브로커들의 농간에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강남 지역 여당 지지율이 몇 년간 하락 추세인데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서울 시민들은 ‘박근혜보다 박원순’이라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어서 강남 3구라고 해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을 확신하긴 어렵다”며 “출마를 희망한다면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공천을 시도하기보다는 후보자의 경쟁력, 정당 지지율, 핵심이슈 등 선거와 당선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세운 후 도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