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포커스] 여론조사로 본 국사 교과서 國定化 논란과 總選 전망 : 월간조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를 둘러싼 여야(與野) 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대통령과 정부가 이런 역사 전쟁에 불을 댕겼다. 황우여(黃祐呂)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 1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혔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지난 10월 중순 미국을 방문하기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역사 교육은 정쟁(政爭)이나 이념 대립으로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눠서는 안 된다”면서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國論) 분열을 일으키기보다 올바른 역사 교육 정상화를 이뤄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야당은 ‘역사 쿠데타’라면서 크게 반발했다. 문재인(文在寅)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는 “역사 통제를 통한 영구 집권 야욕은 오히려 국가와 정권을 패망시켰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꾼다”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하지만 11월 3일 황교안(黃敎安) 국무총리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告示)를 발표하자, 국정화 이슈는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역사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갤럽이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직후부터 매주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는 민심의 추이를 고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반대 여론 지속적으로 상승

첫째, 반대 여론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표1]에서 보듯이, 한국갤럽의 10월 2주 조사에서는 찬반 여론이 42%로 같았지만 약 한 달 정도 지난 11월 1주에는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17%포인트 더 많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가장 많은 21%가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다음으로 ‘역사를 왜곡할 것 같다’(16%), ‘이념 편향성 우려’(14%), ‘획일화 우려’(9%), ‘정부 간섭/국가 개입할 일 아니다’(9%), ‘독재, 군사정권, 유신, 친일 미화 우려’(6%),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가 바뀔 것 같다’(5%),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5%) 순으로 나타났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역사는 하나로 배워야 한다’가 23%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18%), ‘일관성 필요’(14%), ‘올바른 역사관 필요’(14%), ‘정부가 하는 일이라서’(6%), ‘국론 분열을 막아야/국가를 위한 일’(5%) 순이었다.

한마디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찬반 이유는 현 정부에 대한 신뢰 여부, 획일성과 다양성 허용에 대한 인식 차로 요약할 수 있다. 찬성자들은 현 정부가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고 믿지만, 반대자들은 오히려 정권에 따라 사실 왜곡과 이념 편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영남권에서도 반대 여론 앞서

둘째, 2040 대 5060의 세대 간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20·30·40대에서는 반대 응답이 훨씬 많았고 그 규모도 시간이 흐르면서 꾸준히 늘어났다. 한편 50·60대에서는 찬성 여론이 더 많았다. 다만 50대의 경우 반대 여론이 꾸준히 상승해 최근에는 40%에 육박하고 있다. 60대 이상의 반대 여론이 50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다.

셋째, 부산·울산·경남과 같은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 여론이 앞섰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에서조차 11월 1주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의 비율이 43% 대 42%로 비슷해졌다.

넷째, 초·중·고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 집단에서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1월 1주(3~5일) 조사 결과, 초·중·고 자녀가 있는 학부모의 경우 일반인들에 비해 역사 국정 교과서 반대 여론이 62%에 이르렀다. 30대의 24%, 40대의 61%, 50대의 15%가 초·중·고 자녀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무당(無黨)층에서 반대 여론이 가파르게 상승(49%→52%→53%→67%)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 여부를 넘어 민심의 이러한 흐름은 한마디로 정부·여당이 국정화 여론전(輿論戰)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행보도 국정화 반대 여론을 돌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11월 2일 취임 후 3년 반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일본 아베 총리와 정상 회동을 가졌다. 위안부 문제 조기(早期) 타결을 위한 협상의 가속화에 합의했지만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 여부에 대해 물은 결과 46%가 ‘성과 없었다’고 봤다. 23%만이 ‘성과 있었다’고 답했다.

無黨層의 반대 비율 67%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1월 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담화를 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론이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한 10월 12일 이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하향(下向) 곡선을 긋고 있다. 지난 8·25 남북합의 이후 최소 54%에 이르렀던 대통령 지지도가 11월 1주 조사에서는 41%로 급락했다.

그중에서도 무당층에서의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한국갤럽 11월 1주 조사에 따르면 무당층에서는 긍정 비율이 19%인 반면, 반대는 67%로 크게 증가했다. 이것은 국정화 강행으로 무당층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떠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야권과 학계 등의 거센 반발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결과로 보인다.

이는 대통령 국정 운영 부정 평가자 중 가장 많은 30%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그 이유로 지적한 데서 잘 나타난다. 부정 평가 이유로 ‘교과서 국정화’가 4주 연속으로 가장 많았다.

이렇게 반대 여론이 상승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확고하다. 박 대통령은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당위성을 강조했다.

국정화 이슈, 與野 누구에게 유리할까

지난 10월 27일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정의당 의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새정연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지만, 국정 교과서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을 전국적으로 내년 총선(總選) 공약으로 내걸어 국민의 지지를 받겠다”고 했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심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정 교과서 여론은 야권에 유리할까? 국정화 이슈가 전국적인 관심사로 등장한 이후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면, 이 이슈는 보수(保守) 결집만이 아니라 진보(進步) 결집도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진보 쪽의 결집이 더 강한 것 같다. 최근 7~8년 동안의 한국인의 이념 지형은 ‘진보 25%, 중도 35%, 보수 40%’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러나 국정화 논란 이후 ‘40 대 20 대 40’으로 평평한 운동장이 돼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無)기력, 무능력, 무책임’의 ‘3무 정치’에 빠져 대위기에 몰렸던 야당이 일시적으로 진보 세력을 결집시켜 내년 총선에서 여당과 보수 세력을 향해 결전(決戰)을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이슈가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도 폭발력을 가질 것이냐에 대한 전망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국정화 이슈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몰고 갈 정도로 폭발력이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선거 이론에 따르면, 특정 이슈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유권자가 특정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정립되어 있어야 하고, 그 이슈와 관련하여 정당 및 후보자들의 정책 대안(代案)에 대한 인지(認知)가 있어야 하며, 이러한 견해와 인지를 바탕으로 투표 결정을 내릴 만큼 그 이슈가 유권자에게 충분히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그 특성상 갑작스러운 충격에 의해 민감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국정화 반대는 야당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이슈는 내년 총선을 지배할 만한 이슈가 되기에는 내재적(內在的) 한계가 있다.

야당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민주사회의 가치에 따라 국정화 결정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화 교과서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친일(親日)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더구나, 한국갤럽 조사(10월 13~15일)에서 나타났듯이 현행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인지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 “민간에서 출판하고 정부 심사를 거친 여러 종류의 〈한국사〉 교과서 중 하나를 선택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혹은 모르셨습니까?”라고 물은 결과 63%가 ‘알고 있었다’고 답했고 37%는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무작정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찬반을 묻고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내년 4월 총선보다는 2016년 연말 국정화 교과서 시안(試案)을 발표한 후에 큰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계에 도달한 文在寅 리더십

야당의 ‘지지도(支持度) 부조화’ 현상도 국정화 이슈가 탄력을 받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야당 지지도 부조화 현상’이란 야당에 지극히 유리한 이슈가 발생했는데도 정작 그 이슈를 주도한 정당 지지도와 야당 대표의 지지도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표2]에서 보듯이,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10월 12일) 이후 약 한 달간 반대 여론은 꾸준히 상승했다. 동시에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支持度)도 하락하는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국정화 반대를 주도한 야당인 새정연의 지지도는 오히려 하락했다.

11월 1주 조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과 반대 여론이 무려 17%포인트 차이로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새정연의 지지도는 하락하면서 20%에 불과했다. 새정연이 반대 여론을 자신의 지지로 변환시키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 부재(不在)와 정치적 파괴력의 한계 때문이다.

호남, 文在寅破門

지난 10월 12일 새정치연합 ‘비노’ 계파 그룹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토론회에서 박지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표3]에서 보듯이 문 대표의 지지도는 지난 2월 당 대표로 선출될 당시에는 25%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당시 호남 지지도는 29%였다. 문 대표는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난 4·29 재·보궐 선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 이후 문 대표의 지지도는 10%대로 떨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심지어 올 10월부터는 호남에서 문 대표의 지지도가 김무성(金武星) 대표보다 뒤지는 충격적인 상황까지 일어났다.

10월 2주 조사에서 김 대표는 호남에서 9%의 지지를 받았지만 문 대표는 8%에 불과했다. 한편 11월 2주 조사에서 문 대표의 호남 지지도는 5%에 불과했다.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26%), 안철수(安哲秀) 의원(14%)과 도 큰 격차를 보였다.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 당 대표의 지지도가 한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9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호남 지역에서 문 대표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호남이 그를 더 이상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사(意思)를 표시한 것이다. 문 대표는 호남에서 정치적으로 파문(破門)을 당한 것이다.

호남 표심(票心)은 곧 수도권 호남 출신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야당에는 심각한 문제다. 문 대표를 간판으로 해서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비주류(非主流)의 주장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의 최대 승부처라 할 수 있는 서울에서 6~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두 자릿수 지지율을 얻는 동안 문재인 대표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최근 11월 2주 조사에서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서울 지역 지지도는 각각 12%와 11%였다. 이런 충격적인 상황이 전개되자 박지원(朴智元) 의원은 지난 11월 12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와 회동을 가졌다. 박 의원은 “문 대표가 2선 후퇴를 하지 않으면 탈당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꾸 (사퇴) 기일이 연장돼서 당내(黨內) 불안이 고조되면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대표께서 (사퇴) 일정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으면 문재인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순리이다. 문 대표가 버티면 버틸수록 야당의 내분은 심화되고 그 여파로 국정화 이슈는 탄력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문 대표는 비주류로부터 자신의 거취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전략적으로 국정화 이슈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조차 “문재인 대표가 역사 교과서 문제를 갖고 국회를 파행(跛行)시키면서 장외(場外)로 가는 이유는 새정치연합 내 여러 정치적인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당 실패 5단계 법칙’

지난 11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내세우며 민노총 등이 주최한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표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촛불은 정부·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잘못해서 꺼졌다는 점이다. ‘야당 실패 5단계 법칙’이 있다.

1단계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정부 실책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반대 여론이 고조된다.

2단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야당은 장외 집회 등 거리의 정치에 나서고 지도부는 단식 농성에 돌입한다. 경우에 따라서 야당은 언론의 따가운 비판 속에서 원내외(院內外) 병행(竝行) 투쟁을 한다.

제3단계에서는 과격한 시민단체의 개입과 이들의 과격한 시위,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막말과 돌출 행동이 일어난다.

4단계에서는 이러한 과격한 시위와 행동에 대해 국민들이 극도로 피로감을 느끼고 여론은 급격하게 바뀐다.

제5단계서는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야당이 패배한다.

과거 야당 실패 패턴을 토대로 유추하면 국정화 이슈는 지금 제3단계에 돌입한 것 같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민노총, 전농 등 53개 8만여 명이 모여 노동 개혁과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관들을 상대로 휘두르거나, 철제 사다리를 이용해 경찰버스 위에 있는 경찰관들을 공격했다. 이런 과격 시위는 결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국정화 반대 여론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시 나온 朴槿惠의 ‘總選 심판론’

이런 와중에 터져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총선 심판론은 국정화 이슈를 더더욱 무력화(無力化)시킬 개연성(蓋然性)이 크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주시고, 그렇게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때마다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단지 메아리뿐인 것 같아서 통탄스럽다”며 “모든 것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국회에서 모든 법안을 정체 상태로 두는 것은 그동안 말로만 민생을 부르짖은 것이고, 국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총선 심판론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6월 ‘국회법 파동’ 당시 대통령은 유승민(劉承旼) 원내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했었다.

여하튼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발언이 “경제와 민생을 위한 절실한 요청”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정치권에서는 친박(親朴) 주도 공천 물갈이에 힘을 싣고, 내년 4월 총선을 ‘박근혜 선거’로 끌고 가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전사’들의 전면 배치를 통해 판을 새롭게 짜려는 의도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대통령이 탈당(脫黨)해 ‘진실한 사람’과 함께 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심판받겠다는 정치적 신호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여의도냐, 박근혜냐를 놓고 총선에서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야당뿐만 아니라 국정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 여당 의원들도 물갈이해야 한다는 암시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총선 때만 되면 자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했다. 모든 대통령이 “나는 예외다”라면서 밀어붙였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총선 심판론 이슈는 당분간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내년 총선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스스로 발광(發光)하는 이슈’가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반사체(反射體) 이슈’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총선 물갈이 심판론 발언은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박 대통령은 누구로부터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무런 성과도 없고 세월호 참사, 성완종 리스트 등 대형 악재(惡材)가 터져나와도 선거만 하면 여당이 이기는 특이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을 가르치고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

대통령은 자신이 큰소리 한 번만 치면 쥐 죽은 듯이 바로 꼬리를 내리는 여당은 더더욱 두려워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은 상승하고 있는데 지지도는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초라하고 무기력한 야당은 더욱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文在寅이 사퇴하면 야당 살아날 수도

지난 11월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김무성 대표. 김 대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협력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이인제, 오른쪽은 서청원 최고위원.

데일리한국과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9월(11~13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의 당 대표직 유지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결과,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절반에 가까운 47%였다. 반면, ‘당 대표직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1.9%였다. 분명, 문 대표는 사퇴시기를 실기(失機)한 것이다.

단언컨대 당의 핵심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외면당한 문재인 대표로는 총선에서 국정화 이슈로 바람몰이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문 대표가 적절한 시점에 사퇴하고 친노(親盧)와 비노(非盧)를 아우르는 통합 선거대책위원회나 비상대책위를 발족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고, 정치력을 겸비한 사람이 위원장을 맡아 국정화 이슈를 현 정부의 실정(失政)과 연계해 국민의 공분(公憤)을 일으키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역사 교과서 싸움 지면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할 정도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관한 한 박근혜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보여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전략공천과 컷 오프제, 이원집정제 개헌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국정화 이슈는 표류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국정화 이슈는 내년 총선에서 최고 쟁점(爭點)이 아니라, 다른 쟁점과 연계되는 부차적(副次的)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 전쟁에서 승리하는 세력이 총선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총선에서 승리하는 세력이 역사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50대 전반과 후반의 변화

내년 총선에서는 누가 50대의 지지를 받느냐가 승패(勝敗)의 관건(關鍵)이 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승리의 1등 공신은 50대였다. 82%의 높은 투표율과 박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승리의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인구 지형이 변화하고 있어 새누리당이 과거와 같이 5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최근 50대는 세대(世代)효과와 연령효과가 중첩된 집단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50대는 나이가 들수록 진보에서 보수 성향으로 옮아가는 ‘연령효과’와 과거의 세대 경험에 따른 특징적인 성향을 보이는 ‘세대효과’가 뒤섞여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과거 386세대에 해당되는 50대 전반(50~54세)은 세대효과, 50대 후반(55~59세)은 연령효과가 크게 작동한다.

《문화일보》가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실시한 ‘50대 정치 의식’ 조사 결과, 이 두 집단 간에 차이가 뚜렷했다. 정치 이념 성향에서 50대 전반은 진보 43.9%, 보수 51.2%로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성장을 우선시한다는 응답은 47.8%, 분배를 우선시한다는 응답은 48.6%로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50대 후반에서는 진보(32.6%)와 보수(62.4%) 간의 차이가 크고, 성장 우선(55.3%)이 분배 우선(39.0%)보다 훨씬 많았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찬반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증세(增稅)와 관련해서, 50대 전반에서는 반대가 32.8%였으나 50대 후반에서는 38.5%로 약 6%포인트 높았다. 정치 성향과 정책 선호도에서 두 집단 간의 이런 차이는 교과서 국정화 찬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승패는 50대에서

분명한 것은 50대 전반과 50대 후반을 단일한 성향으로 묶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같이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곳에서는 누가 50대의 지지를 얼마나 끌어내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역사 전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50대 전반을 집중 관리해야 한다. 새정연도 이 집단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역사 전쟁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진보와 보수 양측 어디에도 쏠리지 않는 ‘50대 전반 중도층’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