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언급한 대통령 特赦 지하시장의 실체 : 월간조선

성완종(成完鍾)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이 정치자금 불법 제공을 넘어 대통령 특별사면 로비 논란으로 확산하고 있다. 2008년 1월 1일 노무현 정부가 단행했던 성 전 회장의 두 번째 특별사면에 의혹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한 사람을 한 정권이 두 번 특별사면한 예는 아주 드물다. 또 고등법원의 유죄 판결에 대하여 검찰이나 본인이 상고하지 않고 형을 확정 지은 후 한 달 만에 초고속 사면을 받은 것은 사면권자의 사전 내락(內諾)을 받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상식이다.

성 회장의 경우 법무부가 강력히 반대하여 첫 번째 리스트에서는 탈락했는데 나중에 단독으로 추가돼 특별사면 명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으니, 뭔가 특별한 커넥션이 작동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든다.

이런 이유로 성 전 회장의 두 번째 사면 배경을 놓고 여러 추측이 나돌고 있다. 본인들은 부정하지만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고(故)강금원(姜錦遠) 전 창신섬유 회장, 그리고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李相得) 전 의원이 관련돼 있을 것이란 얘기도 있고, 노무현·노무현 정부 양측에 로비를 한 결과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朴範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1월 MBN과의 인터뷰에서 사면을 받아내기 위한 거대한 지하시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박 의원이 했던 이야기다.

“청와대 나온 후 여러 차례 유혹 받아”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사면을 받아내기 위한 거대한 지하시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때 법무비서관을 하면서 사면에 관여했는데 청와대에서 나온 후 여러 차례 유혹을 받았다. 한 번도 (금품 제의를) 들어준 적은 없지만 어마어마한 거액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 (특별사면의) 기준이 투명하지 않고 대통령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로비가 가능할 것이다. 제가 알기에는 거대한 (사면) 지하시장이 있다. 형사재판 절차에서 피고인이 1심에서 받은 것보다 6개월이라도 줄이려고 거액의 변호사 선임료를 내서 재판을 오랫동안 하지 않느냐. 그런데 사면이라는 것은 판결로 모두 확정된 사람을 ‘한 큐’에 내보내는 것인 만큼 시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면을 준비하는 법무부의 행정관리들이나 대통령은 잘 모르는 부분일 것이다.”

박 의원에게 어떤 부류의 사면 대상자에게 어느 정도의 금액을 제의받았는지 상세히 알아보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했지만, 그는 “더는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과연 박 의원의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진정 특별사면을 위한 로비가 지하시장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을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에는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른 정의(正義)가 횡행하는 셈이다. 보통사람들과 달리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권력실세와 막강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재판을 통해 형량을 줄이고, 사면 로비를 통해 그렇게 줄어든 형량마저 없던 일처럼 하고 일선에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사면 로비 대상자를 추려 보니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주선 의원.

실제 특별사면 로비 지하시장이 있다면 ‘구매자’와 ‘판매자’가 존재할 것이다. 소비자는 특별사면을 원하는 기업인, 정치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판매자는 누구일까. 구매자로부터 ‘이 사람에게 부탁하면 특별사면이 된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범위가 넓지만 특별사면의 정의와 절차를 살펴보면 후보군이 추려진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과거 왕조시대 국왕이 내리던 은전(恩典) 조치의 잔재로 보면 된다. 삼권분립이 확립된 이후에는, 사법권의 형벌 부과가 지나치게 불합리하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행정부가 국민을 위해 혜택을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행정부가 입법·사법부를 견제하거나 사회통합 등 고도의 통치행위적 배려가 특별사면의 근거다. 특별사면의 근거가 되는 사면법은 지난 1948년 8월 제정됐다.

구체적인 절차를 보면 특사를 위해서는 먼저 법무부 소속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 대상을 심사하고 의결해야 한다. 사면심사위는 위원장인 법무부장관을 포함해 9명으로 구성한다. 공무원이 아닌 위원을 4명 이상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내부위원으로 법무부 장·차관, 검찰국장, 대검찰청 기조부장이 있다. 대상자를 선정하면 법무장관이 대통령에게 특사를 상신(上申)한다. 대통령이 재가(裁可)하면 이후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 확정해 공포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사면심사위가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역대 특사에서 법무부가 명단을 올릴 때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쳐 정치인과 기업인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 정부에서 사면에 관련한 일을 한 인사들이 말한 바로는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 정무수석, 법무비서관, 민정비서관 정도가 법무부와 조율을 거친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가장 큰 임무는 대통령의 의중(意中)을 법무부에 전달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전 비서실장은 “특별사면은 통치작용의 일환이기 때문에 청와대 입김이 강하다”며 “청와대에서 ‘갑·을·병을 넣어라’ 하면 그렇게 한다”고 했다.

특사의 정의와 절차를 이해하면 ‘판매자’의 자격을 갖춘 인물을 대략 추려볼 수 있다.

첫째는 당연 대통령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로비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유력한 ‘판매자’는 대통령의 측근이다. 정두언(鄭斗彦)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과의 접근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실세이고 측근”이라고 했다. 정 의원 이야기를 따르면 친인척 또는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는 인물이다.

두 번째는 법무부와 사면 대상자를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서실장, 민정수석, 정무수석, 법무비서관, 민정비서관 등을 꼽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사면심사 위원장인 법무장관과 위원 8명이다. 물론 특사 대상자 추천을 야당을 비롯하여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청와대 각 수석실, 각계 단체에서 광범위하게 받는 만큼 관련한 모두가 로비 대상자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인물에 비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의 차이가 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정수석 정도 돼야…”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주선(朴柱宣)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특사를 받고 싶은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만큼 누구에게나 로비를 할 수 있지만, 특사와 관련해 민정수석 정도 돼야 법무장관과 협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에는 민정수석이 없어 법무비서관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럼 민정수석, 법무장관이 대통령 다음으로 특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면 됩니까.

“실무를 하니까 그럴 수 있는데, 사실 법무부는 특사에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될 수 있으면 안 해 주려는 분위기라 로비를 한다면 민정수석 쪽이 더 낫지 않을까요.”

김현철씨 “김기춘, 사면 부탁한 것으로 기억”

YS의 차남 김현철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 사면 부탁을 받은 경우가 한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렇다면 특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인사 중 박범계 의원처럼 로비 제안을 받은 이가 있을까. 전두환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법무비서관을 역임한 강재섭(姜在涉) 전 한나라당 대표, 김영삼 정부의 이원종(李源宗) 전 정무수석,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전 비서실장, 박주선 의원, 노무현 정부의 김병준(金秉準) 전 정책실장 등 해당 정부의 실세 또는 사면에 관련한 인사 다수를 만났다. 돌아오는 대답은 전부 “특사와 관련한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였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이 사면 로비를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면 로비는 곧바로 범죄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박범계 의원과 같은 케이스’를 취재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로부터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 기억이 확실한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 김기춘 장관님이 사면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긴 합니다. 김 장관님이 초원복집 사건 때문에 뭔가 걸려 있었거든요. 김 장관님께서 말씀은 하셨지만 제가 액션을 취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에 이야기하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초원복집 사건으로 난처해진 김기춘(金淇春) 전 비서실장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 11일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부산시장, 검사장, 경찰청장, 안기부지부장 등 기관장이 모여 김영삼 당시 여당 후보 지원 대책회의를 열고, “지역감정을 부추겨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돕자”고 뜻을 모았는데 이 내용을 당시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이 녹취해 폭로한 사건이다.

사건 이후 검찰은 초원복집에 모인 기관장들을 무혐의 처분하고 모임을 주재한 김 전 실장만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실장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규정한 구(舊) 대통령선거법 제36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며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김정훈 기자의 기명 칼럼(1993년 3월20일 자)을 통해 장관 재직 당시 “유난히 선거관련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했던 김기춘 장관이 “막상 이 법률이 자신에게 올가미로 다가오자 이의를 제기했다”며, 이 위헌심판 제청이 “법의 이름을 빌려 면죄부를 구하려는 탁월한 법률가 김기춘 장관의 완벽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1994년 여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김 전 실장에 대한 재판은 공소 취소로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김 전 실장은 1994년 7월 3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 동안 나름대로 근신하고 반성하면서 조용히 생활해 왔다”며 “위헌제청을 해 준 사법부의 현명함과 용기, 그리고 그에 대해 합리적 결정을 내려 준 헌재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상황을 봤을 때 김 전 실장은 형이 확정됐을 경우를 대비, 현철씨에게 사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김 전 실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과거 사례를 통해 본 特赦 거래

과거 특사 청탁과 관련해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를 봐도 실세들에게 특사 로비가 몰리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정무특보였던 박양수(朴洋洙) 전 민주당 의원은 2010년 7~8월 주가조작 혐의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정국교(鄭國敎) 전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8·15 특사로 나올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측근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 2012년 기소된 박 전 의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 전 의원은 특사를 받지 못했다.

박 전 의원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07년 12월 노무현 정부에서 두 번째 특사를 받기 4개월 전, 성 전 회장의 초청으로 ‘랜드마크 72’ 기공식에 참석했던 것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성 전 회장에게 사면 로비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기공식에는 박 전 의원과 열린우리당 소속 이용희(李龍熙) 전 국회부의장, 국민중심당 권선택 (權善宅) 전 의원(현 대전시장), 한나라당 이진구(李珍求) 전 의원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 박 전 의원은 “이전에 두세 번 만났던 성 전 회장이 전화를 걸어 와 이용희 부의장과 같이 와 달라고 부탁했다”며 “국익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의장을 설득해 동행하게 된 것이다. 사면 로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시 교통비 등 여비(旅費)는 모두 이 부의장이 지불한 데다 행사 때에도 성 전 회장은 베트남 인사들을 응대하느라 우리 측은 신경도 안 썼다”고 했다.

‘랜드마크 72’는 경남기업이 시공한 베트남 최대의 초고층 건물이다. 생전 성 전 회장은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랜드마크 72’ 매각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9000억원에 매수 희망자가 나타났지만 “손해 보고 팔 수 없다”고 욕심을 부려 매각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실장이었던 변양균(卞良均) 전 장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신정아씨도 2006년 김석원(金錫元) 전 쌍용그룹 회장 쪽으로부터 돈을 받고 사면 청탁을 받은 흔적이 잡혔다. 검찰은 2006년 김 전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 관장으로부터 지난 2007년 2월 대통령 취임 4주년 특사 때 남편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해 주는 대가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까운 사이인 신정아씨에게 2000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신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금품 액수가 적고 청탁 대가로 보기도 어렵다며 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사업가 이모씨로부터 2008〜2010년 특사 청탁과 함께 21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 받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4주년을 맞아 2007년 2월 12일 단행한 특사를 통해 사면됐다. 당시 김 전 회장과 함께 특사 ‘은전’을 입은 경제인은 총 160명이었다.

그때 김성호(金成浩) 법무장관은 “정부는 당면 과제인 경제살리기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사면을 시행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경제를 살리는 길은 경제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용서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에서 나온다.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운운하지 말고 차라리 ‘재계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고 솔직하게 답하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천신일(千信一) 세중나모여행 회장도 배임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업가 이모씨로부터 2008〜2010년 특사 청탁과 함께 21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천 전 회장이 이씨의 청탁에 “알았다”고 했으나 사면 업무를 알선하겠다는 승낙의 의미를 포함하지 않았고, 집행유예에 대한 사면 청탁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잘 알려진 대로 천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같은 과는 아니지만(천 회장은 정외과 졸업, 이 대통령은 경영학과 졸업)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6·3동지회’에서 같이 활동했다. 천 전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은 명절 때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이 전 대통령의 현대건설 회장 시절에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대선 기간에는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아 고대 동문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었고, 2007년 대선 직전에는 이 전 대통령에게 특별당비 30억원을 빌려준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여기서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다. 특사의 구매자들이 ‘어떻게 정부의 측근 실세들에게 접근, 로비를 펼칠 수 있느냐’이다. 과거부터 인연을 쌓아 온 인사가 실세가 됐을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로비를 펼 수 있다. 본인의 측근이 실세와 끈이 닿아 있다면 그를 통해서 실세와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어떻게 실세에게 접근, 로비를 벌일 수 있을까.

대형 로펌이 창구?

취재 중 만난 노무현 정부의 핵심 관계자였던 A씨는 이같이 말했다.

“제가 특사 로비를 직접 받아 본 적은 없습니다. 다른 부분에서 저에게 부탁하려는 사람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접근하더군요. 제 고등학교 선배가 한번 전화를 해서 골프를 치자고 하는 겁니다. 거절을 하다 하다 너무하는 거 같아서 한 번 필드에 나갔는데 그 선배가 사업하는 사람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는데 그 선배가 ‘이 사람 사업이 잘돼야 하는데 허가가 안 나서 안타깝다’는 말을 여러 번 하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후에 알고 보니 그 선배가 대형 로펌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저곳에서 알아보니까 요즘 로펌에서는 소위 말하는 실세와 연결해 주는 일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로펌에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 번 만나게 해 주고 20만 달러(한화 2억) 정도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그쪽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사실 큰 이득을 위해 로비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20만 달러가 큰돈이겠습니까. 아마 이런 방법으로 실세에게 접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재벌의 인척인 한 인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회장님이 구속돼 있을 때 별의별 사람이 다 찾아옵니다. 자기가 대통령 측근 누구와 각별하니, 얼마를 주면 특사를 알선해 주겠다고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안 믿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니까요. 회장님이 사면을 받았는데 그건 저희가 고용한 변호사 때문으로 알고 있어요. 그 변호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사면을 받았으니, 그분 ‘공’인 것이죠.”

노무현 정부 때 직접 찾아온 실세

취재 도중 실세가 “돈을 주면 특사를 해 주겠다”고 구속 중인 재벌에게 접근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다. ‘판매자’가 직접 영업에 나선 셈이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의 회장을 보좌했던 인사의 증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일입니다. 하루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분이 우리(회장님)를 찾아왔어요.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알 만한 분이 자신의 지인을 통해 회장님과 자신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어느 정도 비용을 주면 특별사면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하더군요. 그때 사실 저희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비용을 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기한 일이 무엇입니까.

“저희한테 안 되니까 다른 쪽 회장님을 찾아갔더라고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입니까.

“그쪽 회장님과 일하는 분이랑 저랑 아는 사이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회장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면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사면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분이 찾아간 뒤로 사면됐으니까 ‘혹시?’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지요.”

이 인사의 증언을 듣고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특사의 대가는 얼마일까 하는 것이다.

이는 박범계 의원의 발언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박 의원은 “형사재판 절차에서 피고인이 1심에서 받은 것보다 6개월이라도 줄이려고 거액의 변호사 선임료를 내서 재판을 오랫동안 하지 않느냐. 그런데 사면이라는 것은 판결로 모두 확정된 사람을 ‘한 큐’에 내보내는 것인 만큼 시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별사면 로비를 하려면 최소 ‘거액의 변호사 선임료+알파’는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수임료는 천차만별이지만 로비 자금이 오간다면 최소한 억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정부 향한 사면 로비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월 생계형 사범에 대한 특사를 단행했다. 사진은 2014년 1월 28일 특사 계획을 발표하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집권 3년차인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딱 한 차례 특사를 했다. 5812명의 대상자에 정치인과 기업인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모두 생계형 사범이었다. 그래서 특사로 인한 논란은 전혀 없었다. 부정부패 관련 정치인이나 개인적 이득을 앞세운 기업인의 사면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만큼은 박 대통령이 확실하게 지킨 것이다.

그렇다고 로비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인 로비가 들어온다고 한다. 사정 당국 관계자의 이야기다.

“한화와 CJ가 끊임없이 사면로비를 해 온 것으로 압니다. 그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BH(청와대) 쪽에 사면의 필요성을 피력했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인 경제인 등의 특사에 부정적이지 않습니까. 특사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종교계, 각계단체 등을 통해 퍼트립니다. 이를 위해 큰 액수의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대(對)언론 홍보도 빼놓지 않지요. 이렇게 해서 여론이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특사 여론이 조성되고 대통령이 결심을 할 것에 대비,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장관, 수석 등 청와대 실세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도 “지금도 청와대 쪽에 사면 부탁이 수도 없이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며 “지연·학연 등의 정치문화 풍토를 새로운 정치문화로 바꾸고 싶어하는 대통령이 특사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에 일이 터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해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김승연(金升淵) 한화 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특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김 회장은 징역형 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은 범죄 관련 회사에 취업할 수 없는 규제 조항 때문에 계열사 임원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지난해 12월 경영 복귀를 사실상 공식화했지만, 이사회 의결권 행사 등 법적 권한은 제한된 상태여서 사면을 받아야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재현(李在賢) CJ그룹 회장은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건강 문제로 구속집행이 정지된 채 상고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형이 확정되면 특사 논의의 직접적 대상이 된다.

實勢가 特赦에 미치는 영향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실세, 특별사면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 등 로비 대상자의 영향력은 어떻게 될까. 실제 특사 명단에 로비 받은 인물을 끼워 넣을 수 있을까. 한화갑(韓和甲) 전 의원의 특사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7년 12월 29일 민주당 대표를 지낸 한화갑 전 의원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자택을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갑이, 자네는 이번 복권(復權)에서 제외됐네. 미안하네”라고 말했다. 당시는 특사설(說)이 크게 보도되던 때였고 한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복권을 노무현 정부에 요청해 달라고 부탁해 놓은 터였다. 동교동 사저를 나온 한 전 의원은 평소 친분이 있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 (나는) 복권이 안 된 것 같다. 김 전 대통령도 그리 말씀하시고 신문에도 안 된다고 보도가 됐다”고 말했다. 강 전 회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경제인이자 후견인이다. 다음 날 강 전 회장은 한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사면·복권을 전직 대통령이나 신문이 합니까. 현직 대통령이 하는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강금원 회장.

그 다음 날인 12월 31일 법무부가 특사 명단을 발표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한 전 의원은 당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등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인사들과 함께 2008년 1월 1일 자로 사면 복권됐다. 한 전 의원은 “당시 내가 복권된 것은 동교동계 몫이 아니라 강 전 회장이 시켜 준 것”이라고 했다. 이 사례를 보면 분명히 실세 또는 측근이 특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강금원이란 사람은 ‘오직 노무현’ 이었습니다. 설령 자기한테 큰 이익이 있는 일이라도 노 전 대통령한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간다고 생각하면 절대 하지 않았어요. 이런 점을 노 전 대통령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전 의원 사면 의견을 들어줬다고 봅니다. 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한 전 의원이 사면된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자신이 ‘강 전 회장이 나를 위해서 이런 제안을 하는구나’라고 판단해서 사면을 결정한 것이죠. 결론적으로, 이 사례 하나로 측근이 대통령의 특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김 전 실장은 강 전 회장이 2012년 8월 2일 뇌졸중으로 별세하기 전까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대통령이 직접 판단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대중 정부 김중권 전 비서실장도 김병준 전 실장과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현행 헌법상 총리는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정부구성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실제 이런 권한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청와대의 지시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특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입니다. ‘이 사람을 해 줘야겠다’고 대통령이 결심해야만 명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법무비서관한테 로비한다고요? 어림도 없습니다. 사면 로비를 하는 사람은 뭔가 형량이 무겁거나, 특사 요건이 안 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만약 민정수석, 법무비서관이 이런 사람한테 로비를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명단을 올리면 비서실장이나 대통령이 당장 이 사람이 왜 대상자에 포함됐는지 물을 텐데요. 그때 ‘사실 제가 로비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잘 보세요. 지금 최경환씨가 대통령 측근에다가 경제부총리 아닙니까. 이분이 작년에 구속 수감 중인 재벌 총수들의 사면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어요. 그때 대부분 재벌이 특사 받을 줄 알았어요. 최 부총리가 실세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특사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사면 로비는 통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實勢가 特赦에 넣어 주려고 한다면 가능”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전 비서실장은 실세라도 특별사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주선 의원은 “로비를 한 사람이 특사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사면은 로비 덕이 아니라, 특사 때마다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에 포함돼 사면되는 것입니다. 로비를 하지 않았어도 사면되는 경우죠. 하지만 로비를 한 사람은 로비 때문에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밖에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닐 것이고요. 착각이죠.”

그러나 오랜 기간 정보 활동을 했던 한 인사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실세 출신들의 지나친 방어적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대통령의 성격에 따라 한명 한명을 따져 묻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준을 묻고 눈에 띄는 경우에만 챙긴다”며 “터무니없는 경우야 다르지만, 대통령 측근 실세가 특사에 넣어 주려고 한다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실제 자신도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특사 실무를 다루는 실세에게 부탁해 기업인을 특사 대상에 넣어 준 사례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치권에서 오래 활동한 다른 관계자도 “과거 정치를 오래 한 대통령은 관행적으로 눈감아 주는 게 있었어요. 측근, 실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지요. ‘특사에 실세의 영향력은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사를 거래하기 위한 ‘지하시장’이란 공간은 분명 없지만, 우리 사회 최고위층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한 특사 시장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특사가 행해지는 한 수요자와 공급자의 접점이 어찌 없으랴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