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과 과거사 논란은 無益,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 지켜주지 못한 것 사죄하고 배상하자
⊙ 독도 문제, 우리가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켜 逆風 맞은 사례는 없는지 돌아봐야
⊙ 유사시 일본의 兵站 지원 필요, 韓美日 삼각동맹으로 중국의 浮上에 대처해야
⊙ 국민감정 부추긴 양국 언론 잘못도 커, 언론이 惡循環 고리 끊어야
許德行
⊙ 60세.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제15회 외무고시 합격.
⊙ 駐 말레이시아 공사, 히로시마 총영사 역임. 現 충북 국제관계대사.
⊙ 독도 문제, 우리가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켜 逆風 맞은 사례는 없는지 돌아봐야
⊙ 유사시 일본의 兵站 지원 필요, 韓美日 삼각동맹으로 중국의 浮上에 대처해야
⊙ 국민감정 부추긴 양국 언론 잘못도 커, 언론이 惡循環 고리 끊어야
許德行
⊙ 60세.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제15회 외무고시 합격.
⊙ 駐 말레이시아 공사, 히로시마 총영사 역임. 現 충북 국제관계대사.
- 지난 2월 10일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일본의 책임과는 별도로 우리 정부가 먼저 사과와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2012년 12월 일본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우경화(右傾化)가 계속되면서 과거사(過去史) 문제와 관련해 중국, 한국과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그 때문에 한중일(韓中日) 3국 정상(頂上)은 2012년 5월 베이징(北京) 정상회의 이후 현재까지 만나지 않고 있다. 한중 양 국민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있으며 일본 국민이 한국, 중국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도 떨어지고 있다.
과거사 문제 가운데 한일 양국 간에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부딪히고 있는 부분은 종군위안부 문제이다. 이 문제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및 일본계까지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민족적 자존심 싸움으로 에스컬레이트 되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한국 정부가 먼저 해결해야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고령(高齡)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恨)을 조속히 풀어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강제동원된 일본군의 성(性)노예라는 측면을 무시하면서, 오히려 이들을 ‘자발적 매춘부(賣春婦)’라고 모욕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의 생전에 사과하고 한을 풀어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불행한 과거사 자체를 부인하고, 이에 대한 청산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더 이상 교섭할 실익(實益)은 없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과거사 해결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 대신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게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치욕을 당하게 한 데 대해 사죄하고 피해 보상을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할 때가 되었다.
물론 일본의 죄상을 잊어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정부는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 남아 있는 종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학계, 언론계와 함께 그 범죄성을 고발하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특히 민간 주도로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하고, 위안부 소재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전파(傳播)함으로써 일제(日帝)의 범죄에 대한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만주국 탈출 일본인들의 추억
필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한일 친선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가나가와현 일한친선협회 창립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친선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한 일본인으로부터 1945년 일본 패전(敗戰) 시 만주를 탈출해 한반도를 거쳐 귀국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소(日蘇)불가침조약을 파기한 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어닥치자 만주개척단으로 만주에 온 일본인들은 야밤에 집단 탈출했습니다. 소련군의 폭격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장거리 도보 이동이 불가능한 노인과 어린이들은 중국에 남겨두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반도로 넘어온 후에는 식민지 지배를 받은 조선인들로부터 고초를 당할까 봐 무척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들은 피란 일본인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제반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중국에 남은 일본 어린이들은 아무런 차별 없이 중국인으로 성장했고, 1980년대 이루어진 중국 잔류 동포 귀환 사업에 의해 희망자 대부분이 귀국했습니다.”
그는 “만주에서 탈출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중국인·한국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배려와 인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 후에도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자란 많은 일본인으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한일 간 관계 개선의 희망을 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을수록 양국 관계는 건강해질 것이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
한국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과거사를 철저하게 청산한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고 한다. 사실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과 독일은 전혀 다른 환경하에서 과거사를 처리하게 되었다.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 현저하게 다른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첫째,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통으로서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을 전범국(戰犯國)으로 처벌하고 모욕을 주는 대신 용서와 회유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돌리고 미국의 지도에 순순히 따르도록 점령 방침을 정하였다. 그래서 히로히토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았으며 천황제를 유지, 국체(國體)를 보존하도록 허용하였다.
둘째,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태평양전쟁 최대의 희생국이었던 중국이 공산화되고 미국의 반대 진영에 서게 되면서 전후(戰後) 27년간 중일 관계가 단절되었다.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과거 청산의 기회가 없었다.
셋째, 1945년 일본 패전 후 소련군의 만주 점령, 1949년 중국 공산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했다. 공산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조기 재건과 동맹국화를 결정하고 동북아에서의 세력 균형을 추구하게 되었다.
넷째, 제2차 세계대전을 종합해 볼 때, 유럽전쟁과 태평양전쟁은 그 규모와 피해 정도가 현저하게 달랐으며 승전국들의 패전국에 대한 입장도 달랐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켜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 때문에 연합국들은 철저히 독일의 책임을 추궁해서 독일이 다시 재기하여 3차 대전을 일으킬 여지를 없애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 결과 독일에 대한 분할 점령이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 국민은 조국의 재건과 통일을 위해 나치스 치하의 독일과 철저히 분리, 스스로 과거사를 청산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자들을 엄벌하고, 자발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실시하였다. 독일은 프랑스 등 주변국에 대해 독일의 과오를 인정하고 철저히 반성하였다.
독일과의 비교는 역효과
또 유럽전쟁의 참혹상은 태평양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였다. 전사자 숫자만 단순비교하더라도 유럽전선에서는 소련군 750만, 독일군 420만, 영국군 30만, 프랑스군 20만명 등이 희생됐다. 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군 180만(민간인 포함 약 300만)명이 희생됐다. 미군은 유럽과 태평양을 합쳐 40만명이 희생되었다.
일본의 경우 종전(終戰) 직후 개시된 동서 냉전(冷戰)과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독일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전쟁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양국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독일의 경우를 들어 일본에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기 쉽다. ‘엄친아’ 비교와 같이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비교할수록 일본은 오히려 자신들은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다면서 과거사를 미화(美化), 합리화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 및 여론이 일본을 비난할수록 일본 내 친한(親韓)인사, 과거사 반성을 촉구해 온 양식 있는 인사, 시민단체들의 입지가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 잘못을 반성하라고 비판하고 압박하기보다는 일본이 시민사회의 노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반성하고 미래지향적 우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있다.
과거 한일 관계가 비교적 양호하던 시기에도 일본 우익 정치가의 망언(妄言)은 양국 관계를 긴장시키곤 했다. 아베 정권의 경우 중국의 부상(浮上), 고령화(高齡化), 경기침체 등을 겪으면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경화 정책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선량한 일본 국민들은 가장 인접한 국가인 한국과 잘 지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독도 문제만 해도 많은 일본인은 ‘다케시마’가 어딘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망언을 하는 것은 선거구민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포퓰리즘적 욕망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본 내 혐한(嫌韓) 시위나 일본 정치가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된다.
독도 자료 발굴한 양심적 일본인들
이런 점에서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여겨진다. 과거사 문제 중 하나인 독도 문제를 보자. 우리 정부의 기본 정책은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단호한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 필요에서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켜 양 국민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고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역풍(逆風)을 맞은 사례는 없는지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도 영유권(領有權)과 관련해 한국 측에 유리한 자료와 논리 중 상당 부분이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 발굴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일본은 경제순위에서 세계 3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일본의 국력은 여전히 독일과 프랑스의 국력을 합한 수준이다. 앞으로 중국과의 격차는 커지더라도 일본의 이러한 위상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이러한 경제대국 일본을 과거사 문제 때문에 소원하게 만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몫이 될 것이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용단을 내렸다. 당시에는 일본 문화가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결국은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일본에서 한류(韓流) 붐이 불면서 한국 드라마가 일본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비빔밥·불고기·막걸리 등 한식(韓食)도 대중화되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는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필자는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인 대일(對日) 정책은 높이 평가한다.
일본의 안보적 중요성
일본은 지리상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일 뿐 아니라 국민정서·문화·사회 등 모든 면에서 가깝다.
과거사 문제로 인해 사이가 나쁘다고 해서 어느 한 나라가 멀리 이사 갈 수 없다. 일본과 이웃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기왕 이웃으로 산다면 과거 잘잘못을 가지고 사사건건 시비하고 갈등하면서 사는 것보다 좋은 이웃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인접국임을 잘 활용하여 이를 우리를 위한 축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존재다. 북한의 오산(誤算)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全面戰) 또는 국지전(局地戰)이 발발할 경우, 동맹국인 미국뿐 아니라 일본으로부터도 병참(兵站)지원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무기와 탄약을 비롯한 각종 군수(軍需)를 신속하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래서 한미일(韓美日) 삼각연대(連帶)를 통해 평소 정보교류 등 협조 관계를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아무리 중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해도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북한 편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한미일 삼각연대를 통해 이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
유사 이래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 과학기술력, 문화 수준을 자랑하던 중국은 19세기 이후 서양 세력에 밀려 몰락했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의 결과 G2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장한 중국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중 관계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여 우리의 국익(國益)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동맹 관계를 맺고 세력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필자도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중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향후 중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통해 동북아(東北亞)에서 세력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從北세력이 反日감정 이용
2008년 4월, 필자는 가족과 함께 해외 근무 때문에 보지 못한 서울의 명물 청계천 나들이에 나섰다.
이때 청계천에서 만난 한미FTA 반대 시위대의 기괴한 모습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60~70대의 노인들이 상기된 얼굴에 정장 차림으로 촛불을 들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의 뒤에는 앳띤 모습의 중·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마치 1980년대 민주화 시위대의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노인들은 광우병(狂牛病) 파동을 이용하여 반미시위에 나선 종북(從北)주의자들이었다. 지난 3월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김기종도 과거 주한 일본대사를 공격하는 등 반미(反美)·반일(反日) 운동에 앞장서온 종북주의자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반공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종북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친북 활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들은 민족주의를 가장하고 반미·반일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마치 제 세상 만난 듯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비판이 모두 종북 활동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반일운동의 상당 부분이 종북주의자들에게 악용되어 온 측면이 분명히 있다.
G2로 부상한 중국은 일본과 동북아 패권(覇權)을 다투면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국과 연대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일부라도 과거사를 청산받았지만, 중일전쟁 시 엄청난 피해를 본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과거를 전혀 청산받지 못했다. 1972년 중일 국교(國交) 정상화 시 저우언라이(朱恩來) 총리를 위시한 중국 지도자들은 일본 대표단에게 전쟁배상금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이를 국교 정상화 발표문에 명기하였다. 이렇게 중일 간 선린우호 분위기를 조성한 덕분에 많은 일본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거나 진출했다. 후일 이들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에 나선 후 중국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데에는 장기적 국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진핑의 중국은 국민의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라도 일본과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연대를 활용해야 하는 만큼 중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미흡하더라도 이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 언론도 반성해야
한일 양국의 정치 체제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양국은 관계 악화의 악순환(惡循環) 고리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국민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을 기사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양국 언론은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쓴다. 그러면 상대국 언론사도 적대적인 기사를 쓰게 된다. 게다가 국내 언론사 간의 경쟁도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쓰도록 유발한다.
언론사가 국민정서를 눈치 보며 과거사 관련 부정적인 기사를 쓰게 되면 국민감정은 더욱 악화된다. 이는 국민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정치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시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동안 양국 언론은 과거사 문제 등과 관련해 사태 악화를 초래하는 결정적인 고리 역할을 해왔다. 양국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정론(正論)을 펴야 한다.
일본 탓만 하지 말자
한일 양국은 서로 유사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대체로 한국인이 개인적 역량 면에서는 뛰어나나 사회적 역량 면에서는 일본이 우세하다. 일본의 국민적 인기 가수 중 상당수가 한국계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 세계는 일본 국민이 보여준 섬뜩할 정도의 질서 유지 및 위기 대처 능력에 놀랐다. 이는 작년 4월 한국에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 국민이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중동(中東) 지역에서 자국민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잡혀 희생되었을 때에도 양 국민은 현저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고 분노했다. 반면에 일본인 희생자 가족은 정부와 국민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류 붐이 불었을 때, 일본인들이 한국 연예인들에게 열광한 것은 일본인들에게는 없는 개성과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화 등 사회병리 현상을 한국보다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배울 점이 많다. 이처럼 한일 양 국민이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한일 관계는 일시적으로 정치적 냉각기를 맞을 수는 있으나, 앞으로 영원히 상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일 양 국민은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치가의 선동은 없는지, 언론의 편향된 시각은 없는지 면밀히 감시해야 된다.
한국이 일본에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일본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던 역사적 과오에 대해 통렬히 자성(自省)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과된 과거사 청산의 몫이다.⊙
※이 글은 외교부나 충북도청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 없는 필자 개인의 의견임.
과거사 문제 가운데 한일 양국 간에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부딪히고 있는 부분은 종군위안부 문제이다. 이 문제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및 일본계까지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민족적 자존심 싸움으로 에스컬레이트 되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한국 정부가 먼저 해결해야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고령(高齡)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恨)을 조속히 풀어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강제동원된 일본군의 성(性)노예라는 측면을 무시하면서, 오히려 이들을 ‘자발적 매춘부(賣春婦)’라고 모욕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의 생전에 사과하고 한을 풀어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불행한 과거사 자체를 부인하고, 이에 대한 청산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더 이상 교섭할 실익(實益)은 없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과거사 해결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 대신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게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치욕을 당하게 한 데 대해 사죄하고 피해 보상을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할 때가 되었다.
물론 일본의 죄상을 잊어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정부는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 남아 있는 종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학계, 언론계와 함께 그 범죄성을 고발하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특히 민간 주도로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하고, 위안부 소재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전파(傳播)함으로써 일제(日帝)의 범죄에 대한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만주국 탈출 일본인들의 추억
필자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한일 친선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가나가와현 일한친선협회 창립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친선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한 일본인으로부터 1945년 일본 패전(敗戰) 시 만주를 탈출해 한반도를 거쳐 귀국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소(日蘇)불가침조약을 파기한 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어닥치자 만주개척단으로 만주에 온 일본인들은 야밤에 집단 탈출했습니다. 소련군의 폭격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장거리 도보 이동이 불가능한 노인과 어린이들은 중국에 남겨두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반도로 넘어온 후에는 식민지 지배를 받은 조선인들로부터 고초를 당할까 봐 무척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들은 피란 일본인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제반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중국에 남은 일본 어린이들은 아무런 차별 없이 중국인으로 성장했고, 1980년대 이루어진 중국 잔류 동포 귀환 사업에 의해 희망자 대부분이 귀국했습니다.”
그는 “만주에서 탈출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중국인·한국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배려와 인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 후에도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자란 많은 일본인으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한일 간 관계 개선의 희망을 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을수록 양국 관계는 건강해질 것이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
한국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과거사를 철저하게 청산한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고 한다. 사실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과 독일은 전혀 다른 환경하에서 과거사를 처리하게 되었다.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 현저하게 다른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첫째,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통으로서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을 전범국(戰犯國)으로 처벌하고 모욕을 주는 대신 용서와 회유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돌리고 미국의 지도에 순순히 따르도록 점령 방침을 정하였다. 그래서 히로히토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았으며 천황제를 유지, 국체(國體)를 보존하도록 허용하였다.
둘째,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태평양전쟁 최대의 희생국이었던 중국이 공산화되고 미국의 반대 진영에 서게 되면서 전후(戰後) 27년간 중일 관계가 단절되었다.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과거 청산의 기회가 없었다.
셋째, 1945년 일본 패전 후 소련군의 만주 점령, 1949년 중국 공산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했다. 공산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조기 재건과 동맹국화를 결정하고 동북아에서의 세력 균형을 추구하게 되었다.
넷째, 제2차 세계대전을 종합해 볼 때, 유럽전쟁과 태평양전쟁은 그 규모와 피해 정도가 현저하게 달랐으며 승전국들의 패전국에 대한 입장도 달랐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켜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 때문에 연합국들은 철저히 독일의 책임을 추궁해서 독일이 다시 재기하여 3차 대전을 일으킬 여지를 없애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 결과 독일에 대한 분할 점령이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 국민은 조국의 재건과 통일을 위해 나치스 치하의 독일과 철저히 분리, 스스로 과거사를 청산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자들을 엄벌하고, 자발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실시하였다. 독일은 프랑스 등 주변국에 대해 독일의 과오를 인정하고 철저히 반성하였다.
독일과의 비교는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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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는 바르샤바게토희생자 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
일본의 경우 종전(終戰) 직후 개시된 동서 냉전(冷戰)과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독일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전쟁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양국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독일의 경우를 들어 일본에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기 쉽다. ‘엄친아’ 비교와 같이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비교할수록 일본은 오히려 자신들은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다면서 과거사를 미화(美化), 합리화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 및 여론이 일본을 비난할수록 일본 내 친한(親韓)인사, 과거사 반성을 촉구해 온 양식 있는 인사, 시민단체들의 입지가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 잘못을 반성하라고 비판하고 압박하기보다는 일본이 시민사회의 노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반성하고 미래지향적 우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있다.
과거 한일 관계가 비교적 양호하던 시기에도 일본 우익 정치가의 망언(妄言)은 양국 관계를 긴장시키곤 했다. 아베 정권의 경우 중국의 부상(浮上), 고령화(高齡化), 경기침체 등을 겪으면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경화 정책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선량한 일본 국민들은 가장 인접한 국가인 한국과 잘 지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독도 문제만 해도 많은 일본인은 ‘다케시마’가 어딘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망언을 하는 것은 선거구민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포퓰리즘적 욕망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본 내 혐한(嫌韓) 시위나 일본 정치가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된다.
독도 자료 발굴한 양심적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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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 지지도는 올라갔지만, 일본과의 마찰이 심해졌다. |
이러한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 필요에서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켜 양 국민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고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역풍(逆風)을 맞은 사례는 없는지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도 영유권(領有權)과 관련해 한국 측에 유리한 자료와 논리 중 상당 부분이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 발굴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일본은 경제순위에서 세계 3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일본의 국력은 여전히 독일과 프랑스의 국력을 합한 수준이다. 앞으로 중국과의 격차는 커지더라도 일본의 이러한 위상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이러한 경제대국 일본을 과거사 문제 때문에 소원하게 만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몫이 될 것이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용단을 내렸다. 당시에는 일본 문화가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결국은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일본에서 한류(韓流) 붐이 불면서 한국 드라마가 일본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비빔밥·불고기·막걸리 등 한식(韓食)도 대중화되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는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필자는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인 대일(對日) 정책은 높이 평가한다.
일본의 안보적 중요성
일본은 지리상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일 뿐 아니라 국민정서·문화·사회 등 모든 면에서 가깝다.
과거사 문제로 인해 사이가 나쁘다고 해서 어느 한 나라가 멀리 이사 갈 수 없다. 일본과 이웃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기왕 이웃으로 산다면 과거 잘잘못을 가지고 사사건건 시비하고 갈등하면서 사는 것보다 좋은 이웃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인접국임을 잘 활용하여 이를 우리를 위한 축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존재다. 북한의 오산(誤算)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全面戰) 또는 국지전(局地戰)이 발발할 경우, 동맹국인 미국뿐 아니라 일본으로부터도 병참(兵站)지원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무기와 탄약을 비롯한 각종 군수(軍需)를 신속하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래서 한미일(韓美日) 삼각연대(連帶)를 통해 평소 정보교류 등 협조 관계를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아무리 중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해도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북한 편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한미일 삼각연대를 통해 이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
유사 이래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 과학기술력, 문화 수준을 자랑하던 중국은 19세기 이후 서양 세력에 밀려 몰락했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의 결과 G2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장한 중국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중 관계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여 우리의 국익(國益)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동맹 관계를 맺고 세력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필자도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중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향후 중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통해 동북아(東北亞)에서 세력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從北세력이 反日감정 이용
2008년 4월, 필자는 가족과 함께 해외 근무 때문에 보지 못한 서울의 명물 청계천 나들이에 나섰다.
이때 청계천에서 만난 한미FTA 반대 시위대의 기괴한 모습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60~70대의 노인들이 상기된 얼굴에 정장 차림으로 촛불을 들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의 뒤에는 앳띤 모습의 중·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마치 1980년대 민주화 시위대의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노인들은 광우병(狂牛病) 파동을 이용하여 반미시위에 나선 종북(從北)주의자들이었다. 지난 3월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칼을 휘두른 김기종도 과거 주한 일본대사를 공격하는 등 반미(反美)·반일(反日) 운동에 앞장서온 종북주의자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반공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종북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친북 활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들은 민족주의를 가장하고 반미·반일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마치 제 세상 만난 듯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비판이 모두 종북 활동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반일운동의 상당 부분이 종북주의자들에게 악용되어 온 측면이 분명히 있다.
G2로 부상한 중국은 일본과 동북아 패권(覇權)을 다투면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국과 연대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일부라도 과거사를 청산받았지만, 중일전쟁 시 엄청난 피해를 본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과거를 전혀 청산받지 못했다. 1972년 중일 국교(國交) 정상화 시 저우언라이(朱恩來) 총리를 위시한 중국 지도자들은 일본 대표단에게 전쟁배상금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이를 국교 정상화 발표문에 명기하였다. 이렇게 중일 간 선린우호 분위기를 조성한 덕분에 많은 일본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거나 진출했다. 후일 이들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에 나선 후 중국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데에는 장기적 국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진핑의 중국은 국민의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라도 일본과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연대를 활용해야 하는 만큼 중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미흡하더라도 이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 언론도 반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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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형서점에 마련된 嫌韓도서 코너. 양국 관계 악화에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의 책임도 크다. |
국민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을 기사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양국 언론은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쓴다. 그러면 상대국 언론사도 적대적인 기사를 쓰게 된다. 게다가 국내 언론사 간의 경쟁도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쓰도록 유발한다.
언론사가 국민정서를 눈치 보며 과거사 관련 부정적인 기사를 쓰게 되면 국민감정은 더욱 악화된다. 이는 국민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정치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시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동안 양국 언론은 과거사 문제 등과 관련해 사태 악화를 초래하는 결정적인 고리 역할을 해왔다. 양국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정론(正論)을 펴야 한다.
일본 탓만 하지 말자
한일 양국은 서로 유사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대체로 한국인이 개인적 역량 면에서는 뛰어나나 사회적 역량 면에서는 일본이 우세하다. 일본의 국민적 인기 가수 중 상당수가 한국계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 세계는 일본 국민이 보여준 섬뜩할 정도의 질서 유지 및 위기 대처 능력에 놀랐다. 이는 작년 4월 한국에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 국민이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중동(中東) 지역에서 자국민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잡혀 희생되었을 때에도 양 국민은 현저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고 분노했다. 반면에 일본인 희생자 가족은 정부와 국민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류 붐이 불었을 때, 일본인들이 한국 연예인들에게 열광한 것은 일본인들에게는 없는 개성과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화 등 사회병리 현상을 한국보다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배울 점이 많다. 이처럼 한일 양 국민이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한일 관계는 일시적으로 정치적 냉각기를 맞을 수는 있으나, 앞으로 영원히 상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일 양 국민은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치가의 선동은 없는지, 언론의 편향된 시각은 없는지 면밀히 감시해야 된다.
한국이 일본에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일본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던 역사적 과오에 대해 통렬히 자성(自省)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과된 과거사 청산의 몫이다.⊙
※이 글은 외교부나 충북도청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 없는 필자 개인의 의견임.
조정태
(201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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