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이후 再·補選 때마다 保守層 결집시켰던 ‘박근혜 효과’ 기대 어려울 듯
⊙ 관악乙에서 이기면, 오신환 選對본부장 맡은 오세훈 前 시장 입지 넓어질 것
⊙ 새정연 完勝할 경우 汎親盧 연대(친노+박원순+486+권노갑계 동교동) 구축…,
이에 맞서는 汎非盧 연대(박지원 동교동계+김한길·안철수계) 형성될 수도
金亨俊
⊙ 58세.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관악乙에서 이기면, 오신환 選對본부장 맡은 오세훈 前 시장 입지 넓어질 것
⊙ 새정연 完勝할 경우 汎親盧 연대(친노+박원순+486+권노갑계 동교동) 구축…,
이에 맞서는 汎非盧 연대(박지원 동교동계+김한길·안철수계) 형성될 수도
金亨俊
⊙ 58세.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지난 4월 10일 4·29 재·보선 정태호 후보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새정연 대표. 권노갑 고문, 박지원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서만 권력이 창출된다.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은 민심을 얻고 이를 토대로 정국 운영의 동력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집권 중반에 실시되는 재·보궐 선거는 결과에 따라 정부 여당(與黨)을 무력화(無力化)시키고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 만큼 폭발력이 크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박근혜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에 0 대 40의 연패(連敗)를 당했고, 결국 2007년 대선(大選)에서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갔다.
이번 4·29 재·보선(再補選)은 비록 4곳(서울 관악을, 인천 서·강화을, 광주 서을, 경기 성남시 중원구)밖에 안 돼 규모는 작지만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4대 심판론’이 얽히고설켜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지만 정치적 파장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4大 심판론
첫째,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와의 3월 17일 청와대 회동에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실패라고 규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야당은 당초 ‘경제 실패 정부 심판론’을 이번 재·보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거물급 친박 인사들이 포함된 ‘성완종 리스트 파동’ 이후 야당은 선거 프레임을 ‘새 경제’ ‘유능한 경제정당’ ‘국민의 지갑을 지키는 선거’에서 ‘부패 정권 심판론’으로 전환하고 있다.
둘째, ‘종북(從北) 진보’ 심판론이다. 서울 관악을(乙)의 경우,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連帶)로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가 38.2%의 득표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33.4%)를 제치고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었다. ‘종북 진보’ 심판론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진당의 잔재 세력과 지난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새정연(2012년에는 통합민주당)에 대해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여야(與野) 대표들의 향후 대권(大權) 경쟁력에 대한 심판이다. 이번 선거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연 대표가 각각 여야의 수장(首長)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맞붙는 선거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두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유력 대선 후보들에 대한 정서적 일체감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야권분열의 악조건 속에서도 새정연이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문 대표의 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향후 문 대표의 대권 행보는 큰 탄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새정연의 강세 지역인 관악을과 광주 선거에서 패배하면 비노계(非盧系)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문 대표가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이기는 정당’을 구호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2곳 이상의 지역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면 향후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동영·오세훈·천정배의 운명은…
넷째, 정치적 부활을 노리는 거물급 정치인에 대한 심판이다. 그 중심에 제3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국민모임’ 소속의 정동영 전 의원이 있다. 2012년 대선 패배 뒤 정계의 변방을 떠돌던 그는 이번에 관악을에 출마했다. 그로서는 설령 낙선한다고 해도 자신이 새정연 정태호 후보보다 많이 득표하면 ‘문재인 저격’에는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다시 말해, 문재인 중심의 야권 구도를 흔들어야 자신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3위를 차지할 경우, 정 후보의 정치 생명이 끝남과 동시에 국민모임을 축으로 야권 재편을 이루겠다는 구상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관악을 선거를 통해 부활을 노리는 정치인은 또 있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던 오세훈 전 시장이다. 그는 이번 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관악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만약, 오 전 시장이 새누리당 불모(不毛)지역인 이곳에서 승리를 일궈낸다면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연을 탈당해 광주 서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천정배 전 의원의 운명도 관심사다. 천 후보는 “무소속 한 석이지만 광주와 호남 민심이 담겨 있는 한 석”이라며 “문재인호 야당에 대한 강한 회초리, 옐로 카드가 될 것이다”고 했다. 만약 그가 당선되면 국민모임과는 거리를 두면서 일단 반노 호남 세력을 규합해 ‘호남 자민련’을 만드는 독자노선을 걸을 개연성이 크다.
재·보선은 본질적으로 정부를 심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보선=여당의 무덤’이라는 등식이 종종 거론되었다. 과연 그럴까?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을 보면, 이런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1〉에서 보듯이 41곳의 재·보궐선거(재선거 19곳+보궐선거 22곳)에서 집권당(한나라당+새누리당)은 22곳(53.7%)에서 승리했다. 2명 중 1명은 당선됐다는 뜻이다. 반면 제1야당(민주통합당 및 새정연)은 13곳(31.7%), 무소속 4곳(9.8%), 진보 정당은 2곳(4.9%)에서 승리했다. 14곳의 수도권 재·보선에서도 집권당은 8곳(57.1%), 제1야당은 5곳(35.7%)에서만 승리했다.
재·보선 원인 유발 정당과 당선 정당 간의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집권당이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표2〉 참조). 집권당 때문에 유발된 19곳의 재·보선 중 집권당은 12곳(63.2%), 제1야당은 6곳(31.6%)에서 승리했다. 더욱이 제1야당 때문에 실시된 13곳의 재·보선 지역에서도 집권당(6곳)이 제1야당(5곳)보다 승리한 지역이 많았다.
종합하면, 2008년 보수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지역과 상관없이 집권당 후보는 대략 2명 중 1명이 당선됐다. 오히려 ‘재·보선=야당의 무덤’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再·補選은 인물 선거
왜 이렇게 과거와 다른 양상이 나타났을까. 보수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보수층의 결집력이 진보 세력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박근혜’가 존재한다. 아무리 어려운 재·보선에서도 선거 막판 숨어 있는 보수표가 결집해 박근혜를 돕기 위해 집권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에 반해 ‘이길 수밖에 없다’던 선거에서도 야당이 번번이 패배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진보층을 투표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거물급 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야당은 그 리더십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보면 ‘인물 50%, 정당 30%, 이슈 20%’ 정도다. 따라서 어떤 후보를 공천하느냐가 선거의 반을 결정한다. 아무리 선거 환경이 좋더라도 공천을 잘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가령,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던 민주당이 그해 7월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야권연대까지 이뤘지만 서울 은평을 선거에서 민주당 장상 후보(39.9%)는 이명박 대통령(MB)의 최측근인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58.3%)에게 큰 표 차로 패배했다. 충북 충주에서도 장관 출신 MB맨인 한나라당 윤진식 후보(63.7%)가 정치 신인 민주당 정기영 후보(36.3%)를 압도적인 차이로 물리쳤다.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누가 나가도 당선된다”고 민주당 지도부가 안이하게 공천해서 일어난 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보선에서 인물 경쟁력의 측면에서 볼 때 새정연 후보들이 아주 불리하다. 성남 중원에서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는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난 2012년 총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이에 반해 새정연 정환석 후보는 무명(無名)에 가깝다.
인천 서·강화을에 출마한 안상수 후보와 광주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후보는 인천시장과 법무부 장관을 각각 역임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와 경쟁력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런 가설(假說)들은 ‘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되기 전에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현 정부 최대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는 이슈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참으로 예측하기 힘들다. 재·보선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게임이다. 따라서 투표율이 낮을 경우, 지지자를 많이 끌어들이는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권력형 비리 사건과 같은 이슈는 다른 모든 이슈를 잠재우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전패의 위기에 빠졌던 새정연이 구사일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소득주도 성장론’과 같은 ‘어려운 쟁점(hard issue)’보다는 ‘부패 척결’이라는 ‘쉬운 쟁점(easy issue)’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에서 ‘성완종 리스트’는 분명 여당에는 악재(惡材)이다.
‘성완종 리스트’, 야권 지지층 결집시킬 것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성완종 파동’이 위기에 빠진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초기이거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이런 가설이 먹혀들지 모른다.
그러나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지 오래고, 경제가 너무 어려워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하튼 재·보선을 2주 남짓 남겨두고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중도층과 잠재적 야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거는 구도이고 야권분열로 인한 ‘1여(與)다야(多野)’ 구도 속에서 이번 재·보선 전망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게 변했다.
재·보선 결과를 전망할 때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고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이른바, ‘저여고야(低與高野)’를 많이 얘기한다. 2008년 이후 재·보선 전체 투표율을 살펴보면, 가장 낮았을 때가 32.9%, 가장 높았을 때가 43.5%였다. 투표율이 30% 미만일 경우, 조직 표를 앞세운 여당이 유리하고 40%를 넘기면 바람을 일으키는 야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이런 투표율 가설도 실상 2008년 이후 실시된 재·보선 결과를 분석해 보면 꼭 들어맞지 않는다. 41곳의 재·보선 지역 중 투표율이 35% 미만인 지역이 18곳, 45% 이상이 7곳이었다. 그런데 투표율 35% 미만인 선거구에서 집권당은 10곳, 제1야당은 8곳에서 승리했다. 반면에 투표율 45% 이상인 선거구에서도 집권당은 4곳(57.1%)에서 승리했고, 제1야당은 2곳, 진보 신당이 1곳에서 승리했다.
투표율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야 텃밭 지역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오히려 취약 정당 후보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가령, 2011년 4월 27일에 실시된 재·보선에서 여당의 텃밭인 경기 성남 분당을의 투표율은 49.1%였고, 민주당 손학규 후보가 51.0%의 득표로 승리했다. 지난 2014년 7월 30일에 실시된 재·보선의 최대 이변이었던 전남 순천·고성 지역의 투표율은 51.0%였고,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49.4%의 득표로 승리했다.
투표율과 관련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야당의 텃밭인 관악을과 광주 서을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새누리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여당의 텃밭인 인천 서·강화을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새정연 후보가 승리할지도 모른다.
정두언, “‘保守의 봄날’이 가고 있다”
〈표3〉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의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당-청(黨-靑)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성완종 리스트’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재·보선 4곳 모두에서 패배하면 ‘김무성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퇴진 압박이 거세질 개연성이 컸었다. 그 경우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해서 새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부상(浮上)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기회를 이용해 청와대와 골수 친박이 ‘서청원 대표 만들기’를 시도할 수도 있었다.
‘성완종 리스트’는 이런 시나리오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전패(全敗)하면 ‘친박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김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의 칼을 빌려 친박을 제거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당내에서 보수 이념 노선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정두언 의원은 새누리당 원조 쇄신파 모임에 참석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 “미증유의 메가톤급 부패 스캔들로 한국 보수의 봄날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선거 전패는 친박-비박 계파 갈등을 넘어 ‘신보수’와 ‘구(舊)보수’의 노선 논쟁으로 가속화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신보수의 기치를 든 세력이 민심의 지지를 받고 더 이상 청와대가 당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반대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도 있다. 공멸(共滅) 의식을 느낀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간에 전략적 동반적 관계가 구축될 수도 있다.
박근혜-김무성 밀월도 가능
김무성 대표의 정치 스타일이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직후 밝힌 발언으로 볼 때 이런 시나리오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지난 대선은 내가 책임지고 치른 선거” “대선자금 조사하면 얼마든지 응한다” “대선자금은 여야가 있으며 야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으면 청와대와 자신은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이다. 이런 기조라면 전패 이후 오히려 대통령과 김 대표 간에 새로운 밀월관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이 정례화되고, 당·정·청 회의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1~2석을 얻으면 선방(善防)이고, 3석 이상을 얻으면 완승(完勝)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동’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궈낸 승리이기 때문에 김 대표는 그동안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차별화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청와대도 김 대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선거 이후 ‘성완종 특검(特檢)’ 문제가 불거지면 청와대를 설득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부상할 수도 있다. 김문수 전 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추대해 공천 개혁을 주도한 것처럼 오 전 시장에게 정치자금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중책을 맡길지도 모른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새누리당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2004년에 정치자금 모집 및 정당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한 일명 ‘오세훈법’을 주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 관악을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새 정치를 주도하는 이런 중책을 맡게 되면 오 전 시장은 그야말로 화려하게 정치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새누리당의 대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련한 김무성 대표는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인 오 전 시장에게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이 새누리당 대권 경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고도의 전략적 행보를 할 수도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당 대선 후보가 정치 9단인 DJ와 의미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신한국당 대권 경쟁을 ‘9룡 체제’로 만들었던 것을 벤치마킹할지도 모른다. 김 대표가 이런 구상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고할 수도 있다.
親盧와 동교동의 갈등
새정연의 경우, 선거 결과에 따라 계파 간 역학 관계, 특히 친노계(親盧系)와 동교동계 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새정연은 최소 7개의 계파가 할거하고 있다. 그중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진영, 권노갑 고문이 좌장격인 동교동계, 새정연 탄생의 주역이었던 김한길·안철수계가 핵심축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정연은 ‘문(문재인)-권(권노갑) 연대’를 통해 야권분열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을 세웠다. 원래 친노 진영과 동교동계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실시된 대북(對北)송금 특검,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창당, 그리고 2·8 전당대회 경선 룰 등을 둘러싸고 해묵은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는 동교동계를 대표해서 출마한 박지원 의원이 문재인 의원에게 석패(惜敗)해 동교동계의 친노에 대한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있다.
이런 와중에 당의 재·보선 지원 요청에 동교동계는 집단 반발했지만 권노갑 상임 고문의 결단으로 선거 지원에 나섰다. 권 고문의 선거 지원 배경에는 개인적 감정도 작용한 면이 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정동영·천정배 두 사람은 이른바 ‘정풍(整風) 운동’을 주도하면서 동교동계 맏형격인 권노갑 고문의 2선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의원도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강조하며 지원에 나섰지만 ‘내가 돕더라도 재·보선 승리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더 나아가 그는 ‘문재인 대표를 돕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을 살리겠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만약, 새정연이 ‘성완종 리스트 파동’이라는 호재 속에서도 재·보선 4곳에서 모두 패배하거나 1석밖에 얻지 못하면 문재인 대표는 사퇴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후 한 달여 만에 치러진 7월 재·보선에서 당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자 책임을 지고 정세균 대표가 사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동교동계에서는 권노갑 책임론도 급부상할 것이다. 동교동계의 좌장(座長)이 권노갑에서 박지원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될 수도 있다. 권노갑 고문의 재·보선 지원에 동교동계가 집단 반기를 들면서 불협화음이 표면화됐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박 의원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박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家臣) 그룹 중 유일한 현역 의원이자 친노 진영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다. “좌상(좌의정)인 박지원 의원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동교동계 한 전직 의원의 말이 빈말이 아닐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박 의원이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제기한 ‘당권·대권 분리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김한길-안철수계와 개혁 성향의 박영선과 김부겸 전 의원 등이 가세하면 당내 역학 구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친노 진영이 이런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고 마이웨이식의 독자 행보를 할 경우, 당이 총선을 앞두고 분당(分黨)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親盧-동교동계 相生할 수 있는 代案은?
동교동계는 ‘어게인 1995’를 외칠지도 모른다. DJ가 1995년 7월 정계 복귀와 새정치국민회의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자,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 95명 중 65명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에 참여했다.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되었다.
물론 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박지원 의원이 DJ와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교동계가 일치단결해서 탈당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친노 진영과 박지원 의원이 이끄는 동교동계는 내년 총선 지분을 둘러싸고 죽느냐 사느냐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를 벌일 것이다.
문제는 재·보선 패배에 따른 내홍이 깊어지면 공멸하지 않기 위해 친노 진영과 동교동계는 대안(代案)을 찾을 수밖에 없다.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되었지만 야당분열의 결과로 정대철, 이종찬, 김덕규 등 중진 국회의원들이 대거 낙선하는 등 참패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 양대 세력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정계를 은퇴한 손학규 전 대표를 새로운 대표로 옹립하는 것이다.
이런 합의에 친(親)손학규 성향의 김한길·안철수계가 합류하면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한편, 새정연이 2곳에서 승리하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문재인-권노갑 협력’을 넘어 본격적으로 ‘친노-동교동 합작’이 현실화될 수 있다. 친노와 동교동 간의 신밀월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두 진영 간에 ‘주류 60%-비주류 40%’ 지분 약속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이런 정치적 거래가 형성되면 당내 개혁 성향의 비노 세력들이 반기를 들 것이다. 당장, 추미애 최고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 가신들 지분 챙기라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칙과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 충고한 적이 있다. 김한길-안철수계도 지분 나눠 먹기는 전형적인 구태(舊態) 정치라고 반발하면서 새 정치를 기치로 지도부를 압박할 개연성이 크다.
동교동계, 分化될 수도
반면, 새정연이 3곳 이상에서 승리하면 ‘문재인 대망론(待望論)’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문 대표는 동교동계를 의식하지 않고 독주(獨走)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4월 둘째 주(4월 7~9일)에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문 대표는 22%로 1위를 유지했고 그 뒤를 박원순 서울시장(12%)과 안철수 의원(11%)이 차지했다. 가상 대선 대결에서도 문재인 대표가 47%의 지지율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33%)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보선에서 완승하면 문 대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문 대표는 친노의 외연 확대를 위해 시민사회 세력을 대표하는 박원순계와 486 운동권 세력과의 ‘가치(價値)연대’를 만들지도 모른다. 당내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고 있는 정세균계는 이 연대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동교동계가 문 대표를 지지하는 친권노갑계 세력과 문 대표를 반대하는 친박지원 세력으로 분화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새정연이 재·보선에서 완승하면 문 대표는 동교동계가 제기하는 당권·대권 분리론을 무력화시키고 동교동계의 권노갑 고문을 포함한 ‘범친노 연대’를 만들 것이다. 이에 대항하는 범비노 연대(박지원 동교동계+김한길·안철수계+손학규계)가 만들어지면서 야당 내 차기 대권을 위한 예측불허의 숨 막히는 경쟁이 전개될 것이다.
여기서 ‘성완종 메모’가 복병이 될 수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완종 회장과 노무현 정권의 유착관계가 드러난다면, 문재인 대표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4·29 재·보선(再補選)은 비록 4곳(서울 관악을, 인천 서·강화을, 광주 서을, 경기 성남시 중원구)밖에 안 돼 규모는 작지만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4대 심판론’이 얽히고설켜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지만 정치적 파장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4大 심판론
첫째,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와의 3월 17일 청와대 회동에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실패라고 규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야당은 당초 ‘경제 실패 정부 심판론’을 이번 재·보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거물급 친박 인사들이 포함된 ‘성완종 리스트 파동’ 이후 야당은 선거 프레임을 ‘새 경제’ ‘유능한 경제정당’ ‘국민의 지갑을 지키는 선거’에서 ‘부패 정권 심판론’으로 전환하고 있다.
둘째, ‘종북(從北) 진보’ 심판론이다. 서울 관악을(乙)의 경우,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連帶)로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가 38.2%의 득표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33.4%)를 제치고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었다. ‘종북 진보’ 심판론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진당의 잔재 세력과 지난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새정연(2012년에는 통합민주당)에 대해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여야(與野) 대표들의 향후 대권(大權) 경쟁력에 대한 심판이다. 이번 선거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연 대표가 각각 여야의 수장(首長)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맞붙는 선거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두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유력 대선 후보들에 대한 정서적 일체감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야권분열의 악조건 속에서도 새정연이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문 대표의 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향후 문 대표의 대권 행보는 큰 탄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새정연의 강세 지역인 관악을과 광주 선거에서 패배하면 비노계(非盧系)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문 대표가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이기는 정당’을 구호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2곳 이상의 지역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면 향후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동영·오세훈·천정배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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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신환 새누리당 관악을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
관악을 선거를 통해 부활을 노리는 정치인은 또 있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던 오세훈 전 시장이다. 그는 이번 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관악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만약, 오 전 시장이 새누리당 불모(不毛)지역인 이곳에서 승리를 일궈낸다면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연을 탈당해 광주 서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천정배 전 의원의 운명도 관심사다. 천 후보는 “무소속 한 석이지만 광주와 호남 민심이 담겨 있는 한 석”이라며 “문재인호 야당에 대한 강한 회초리, 옐로 카드가 될 것이다”고 했다. 만약 그가 당선되면 국민모임과는 거리를 두면서 일단 반노 호남 세력을 규합해 ‘호남 자민련’을 만드는 독자노선을 걸을 개연성이 크다.
재·보선은 본질적으로 정부를 심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보선=여당의 무덤’이라는 등식이 종종 거론되었다. 과연 그럴까?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을 보면, 이런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1〉에서 보듯이 41곳의 재·보궐선거(재선거 19곳+보궐선거 22곳)에서 집권당(한나라당+새누리당)은 22곳(53.7%)에서 승리했다. 2명 중 1명은 당선됐다는 뜻이다. 반면 제1야당(민주통합당 및 새정연)은 13곳(31.7%), 무소속 4곳(9.8%), 진보 정당은 2곳(4.9%)에서 승리했다. 14곳의 수도권 재·보선에서도 집권당은 8곳(57.1%), 제1야당은 5곳(35.7%)에서만 승리했다.
재·보선 원인 유발 정당과 당선 정당 간의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집권당이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표2〉 참조). 집권당 때문에 유발된 19곳의 재·보선 중 집권당은 12곳(63.2%), 제1야당은 6곳(31.6%)에서 승리했다. 더욱이 제1야당 때문에 실시된 13곳의 재·보선 지역에서도 집권당(6곳)이 제1야당(5곳)보다 승리한 지역이 많았다.
종합하면, 2008년 보수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지역과 상관없이 집권당 후보는 대략 2명 중 1명이 당선됐다. 오히려 ‘재·보선=야당의 무덤’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再·補選은 인물 선거
왜 이렇게 과거와 다른 양상이 나타났을까. 보수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보수층의 결집력이 진보 세력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박근혜’가 존재한다. 아무리 어려운 재·보선에서도 선거 막판 숨어 있는 보수표가 결집해 박근혜를 돕기 위해 집권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에 반해 ‘이길 수밖에 없다’던 선거에서도 야당이 번번이 패배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진보층을 투표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거물급 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야당은 그 리더십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보면 ‘인물 50%, 정당 30%, 이슈 20%’ 정도다. 따라서 어떤 후보를 공천하느냐가 선거의 반을 결정한다. 아무리 선거 환경이 좋더라도 공천을 잘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가령,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던 민주당이 그해 7월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야권연대까지 이뤘지만 서울 은평을 선거에서 민주당 장상 후보(39.9%)는 이명박 대통령(MB)의 최측근인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58.3%)에게 큰 표 차로 패배했다. 충북 충주에서도 장관 출신 MB맨인 한나라당 윤진식 후보(63.7%)가 정치 신인 민주당 정기영 후보(36.3%)를 압도적인 차이로 물리쳤다.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누가 나가도 당선된다”고 민주당 지도부가 안이하게 공천해서 일어난 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보선에서 인물 경쟁력의 측면에서 볼 때 새정연 후보들이 아주 불리하다. 성남 중원에서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는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난 2012년 총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이에 반해 새정연 정환석 후보는 무명(無名)에 가깝다.
인천 서·강화을에 출마한 안상수 후보와 광주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후보는 인천시장과 법무부 장관을 각각 역임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와 경쟁력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런 가설(假說)들은 ‘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되기 전에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현 정부 최대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는 이슈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참으로 예측하기 힘들다. 재·보선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게임이다. 따라서 투표율이 낮을 경우, 지지자를 많이 끌어들이는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권력형 비리 사건과 같은 이슈는 다른 모든 이슈를 잠재우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전패의 위기에 빠졌던 새정연이 구사일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소득주도 성장론’과 같은 ‘어려운 쟁점(hard issue)’보다는 ‘부패 척결’이라는 ‘쉬운 쟁점(easy issue)’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에서 ‘성완종 리스트’는 분명 여당에는 악재(惡材)이다.
‘성완종 리스트’, 야권 지지층 결집시킬 것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성완종 파동’이 위기에 빠진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초기이거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이런 가설이 먹혀들지 모른다.
그러나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지 오래고, 경제가 너무 어려워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하튼 재·보선을 2주 남짓 남겨두고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중도층과 잠재적 야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거는 구도이고 야권분열로 인한 ‘1여(與)다야(多野)’ 구도 속에서 이번 재·보선 전망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게 변했다.
재·보선 결과를 전망할 때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고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이른바, ‘저여고야(低與高野)’를 많이 얘기한다. 2008년 이후 재·보선 전체 투표율을 살펴보면, 가장 낮았을 때가 32.9%, 가장 높았을 때가 43.5%였다. 투표율이 30% 미만일 경우, 조직 표를 앞세운 여당이 유리하고 40%를 넘기면 바람을 일으키는 야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이런 투표율 가설도 실상 2008년 이후 실시된 재·보선 결과를 분석해 보면 꼭 들어맞지 않는다. 41곳의 재·보선 지역 중 투표율이 35% 미만인 지역이 18곳, 45% 이상이 7곳이었다. 그런데 투표율 35% 미만인 선거구에서 집권당은 10곳, 제1야당은 8곳에서 승리했다. 반면에 투표율 45% 이상인 선거구에서도 집권당은 4곳(57.1%)에서 승리했고, 제1야당은 2곳, 진보 신당이 1곳에서 승리했다.
투표율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야 텃밭 지역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오히려 취약 정당 후보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가령, 2011년 4월 27일에 실시된 재·보선에서 여당의 텃밭인 경기 성남 분당을의 투표율은 49.1%였고, 민주당 손학규 후보가 51.0%의 득표로 승리했다. 지난 2014년 7월 30일에 실시된 재·보선의 최대 이변이었던 전남 순천·고성 지역의 투표율은 51.0%였고,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49.4%의 득표로 승리했다.
투표율과 관련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야당의 텃밭인 관악을과 광주 서을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새누리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여당의 텃밭인 인천 서·강화을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새정연 후보가 승리할지도 모른다.
정두언, “‘保守의 봄날’이 가고 있다”
〈표3〉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의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당-청(黨-靑)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성완종 리스트’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재·보선 4곳 모두에서 패배하면 ‘김무성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퇴진 압박이 거세질 개연성이 컸었다. 그 경우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해서 새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부상(浮上)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기회를 이용해 청와대와 골수 친박이 ‘서청원 대표 만들기’를 시도할 수도 있었다.
‘성완종 리스트’는 이런 시나리오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전패(全敗)하면 ‘친박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김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의 칼을 빌려 친박을 제거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당내에서 보수 이념 노선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정두언 의원은 새누리당 원조 쇄신파 모임에 참석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 “미증유의 메가톤급 부패 스캔들로 한국 보수의 봄날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선거 전패는 친박-비박 계파 갈등을 넘어 ‘신보수’와 ‘구(舊)보수’의 노선 논쟁으로 가속화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신보수의 기치를 든 세력이 민심의 지지를 받고 더 이상 청와대가 당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반대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도 있다. 공멸(共滅) 의식을 느낀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간에 전략적 동반적 관계가 구축될 수도 있다.
박근혜-김무성 밀월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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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8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오신환 후보, 나경원 서울시당 위원장 등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새줌마! 장바구니를 부탁해!’ 행사에 참석했다. |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으면 청와대와 자신은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이다. 이런 기조라면 전패 이후 오히려 대통령과 김 대표 간에 새로운 밀월관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이 정례화되고, 당·정·청 회의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1~2석을 얻으면 선방(善防)이고, 3석 이상을 얻으면 완승(完勝)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동’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궈낸 승리이기 때문에 김 대표는 그동안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차별화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청와대도 김 대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선거 이후 ‘성완종 특검(特檢)’ 문제가 불거지면 청와대를 설득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부상할 수도 있다. 김문수 전 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추대해 공천 개혁을 주도한 것처럼 오 전 시장에게 정치자금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중책을 맡길지도 모른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새누리당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2004년에 정치자금 모집 및 정당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한 일명 ‘오세훈법’을 주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 관악을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새 정치를 주도하는 이런 중책을 맡게 되면 오 전 시장은 그야말로 화려하게 정치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새누리당의 대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련한 김무성 대표는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인 오 전 시장에게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이 새누리당 대권 경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고도의 전략적 행보를 할 수도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당 대선 후보가 정치 9단인 DJ와 의미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신한국당 대권 경쟁을 ‘9룡 체제’로 만들었던 것을 벤치마킹할지도 모른다. 김 대표가 이런 구상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고할 수도 있다.
親盧와 동교동의 갈등
새정연의 경우, 선거 결과에 따라 계파 간 역학 관계, 특히 친노계(親盧系)와 동교동계 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새정연은 최소 7개의 계파가 할거하고 있다. 그중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진영, 권노갑 고문이 좌장격인 동교동계, 새정연 탄생의 주역이었던 김한길·안철수계가 핵심축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정연은 ‘문(문재인)-권(권노갑) 연대’를 통해 야권분열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을 세웠다. 원래 친노 진영과 동교동계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실시된 대북(對北)송금 특검,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창당, 그리고 2·8 전당대회 경선 룰 등을 둘러싸고 해묵은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는 동교동계를 대표해서 출마한 박지원 의원이 문재인 의원에게 석패(惜敗)해 동교동계의 친노에 대한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있다.
이런 와중에 당의 재·보선 지원 요청에 동교동계는 집단 반발했지만 권노갑 상임 고문의 결단으로 선거 지원에 나섰다. 권 고문의 선거 지원 배경에는 개인적 감정도 작용한 면이 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정동영·천정배 두 사람은 이른바 ‘정풍(整風) 운동’을 주도하면서 동교동계 맏형격인 권노갑 고문의 2선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의원도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강조하며 지원에 나섰지만 ‘내가 돕더라도 재·보선 승리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더 나아가 그는 ‘문재인 대표를 돕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을 살리겠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만약, 새정연이 ‘성완종 리스트 파동’이라는 호재 속에서도 재·보선 4곳에서 모두 패배하거나 1석밖에 얻지 못하면 문재인 대표는 사퇴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후 한 달여 만에 치러진 7월 재·보선에서 당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자 책임을 지고 정세균 대표가 사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동교동계에서는 권노갑 책임론도 급부상할 것이다. 동교동계의 좌장(座長)이 권노갑에서 박지원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될 수도 있다. 권노갑 고문의 재·보선 지원에 동교동계가 집단 반기를 들면서 불협화음이 표면화됐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박 의원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박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家臣) 그룹 중 유일한 현역 의원이자 친노 진영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다. “좌상(좌의정)인 박지원 의원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동교동계 한 전직 의원의 말이 빈말이 아닐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박 의원이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제기한 ‘당권·대권 분리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김한길-안철수계와 개혁 성향의 박영선과 김부겸 전 의원 등이 가세하면 당내 역학 구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친노 진영이 이런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고 마이웨이식의 독자 행보를 할 경우, 당이 총선을 앞두고 분당(分黨)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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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새정치연합 계파 구도 분석 |
親盧-동교동계 相生할 수 있는 代案은?
동교동계는 ‘어게인 1995’를 외칠지도 모른다. DJ가 1995년 7월 정계 복귀와 새정치국민회의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자,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 95명 중 65명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에 참여했다.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되었다.
물론 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박지원 의원이 DJ와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교동계가 일치단결해서 탈당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친노 진영과 박지원 의원이 이끄는 동교동계는 내년 총선 지분을 둘러싸고 죽느냐 사느냐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를 벌일 것이다.
문제는 재·보선 패배에 따른 내홍이 깊어지면 공멸하지 않기 위해 친노 진영과 동교동계는 대안(代案)을 찾을 수밖에 없다.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되었지만 야당분열의 결과로 정대철, 이종찬, 김덕규 등 중진 국회의원들이 대거 낙선하는 등 참패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 양대 세력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정계를 은퇴한 손학규 전 대표를 새로운 대표로 옹립하는 것이다.
이런 합의에 친(親)손학규 성향의 김한길·안철수계가 합류하면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한편, 새정연이 2곳에서 승리하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문재인-권노갑 협력’을 넘어 본격적으로 ‘친노-동교동 합작’이 현실화될 수 있다. 친노와 동교동 간의 신밀월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두 진영 간에 ‘주류 60%-비주류 40%’ 지분 약속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이런 정치적 거래가 형성되면 당내 개혁 성향의 비노 세력들이 반기를 들 것이다. 당장, 추미애 최고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 가신들 지분 챙기라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칙과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 충고한 적이 있다. 김한길-안철수계도 지분 나눠 먹기는 전형적인 구태(舊態) 정치라고 반발하면서 새 정치를 기치로 지도부를 압박할 개연성이 크다.
동교동계, 分化될 수도
반면, 새정연이 3곳 이상에서 승리하면 ‘문재인 대망론(待望論)’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문 대표는 동교동계를 의식하지 않고 독주(獨走)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4월 둘째 주(4월 7~9일)에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문 대표는 22%로 1위를 유지했고 그 뒤를 박원순 서울시장(12%)과 안철수 의원(11%)이 차지했다. 가상 대선 대결에서도 문재인 대표가 47%의 지지율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33%)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보선에서 완승하면 문 대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문 대표는 친노의 외연 확대를 위해 시민사회 세력을 대표하는 박원순계와 486 운동권 세력과의 ‘가치(價値)연대’를 만들지도 모른다. 당내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고 있는 정세균계는 이 연대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동교동계가 문 대표를 지지하는 친권노갑계 세력과 문 대표를 반대하는 친박지원 세력으로 분화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새정연이 재·보선에서 완승하면 문 대표는 동교동계가 제기하는 당권·대권 분리론을 무력화시키고 동교동계의 권노갑 고문을 포함한 ‘범친노 연대’를 만들 것이다. 이에 대항하는 범비노 연대(박지원 동교동계+김한길·안철수계+손학규계)가 만들어지면서 야당 내 차기 대권을 위한 예측불허의 숨 막히는 경쟁이 전개될 것이다.
여기서 ‘성완종 메모’가 복병이 될 수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완종 회장과 노무현 정권의 유착관계가 드러난다면, 문재인 대표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