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새누리 ‘부실’ 당협위원장 교체 논란 막전막후 : 월간조선

2015년 2월 23일, 새누리당의 원외 당원협의회(당협)위원장 A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당 최고위원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당신이 출마도 안 할 거고 당협위원장을 계속할 의지가 없다고 하는데, 정말이야?” 새누리당 최고위원 회의가 열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예비후보자들에 대한 음해와 모략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A위원장은 이 역시 쓸데없는 음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도 지역구에서 사람을 만나는 중이었다. 그는 “에이 누가 그런 소리를…”이라고 답을 보내고 볼일을 계속했다. 이 시간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내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가 부실당협 관련 보고서를 배포한 상태였다.

얼마 후인 3월 2일, 새누리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후 8명의 부실당협위원장을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A위원장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이인제 최고위원의 측근도 포함돼 있어 두 최고위원이 회의석상에서 언성을 높였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A 위원장은 ‘며칠 전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적극적으로 소명했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소명을 한들 달라졌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A위원장은 3월 13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다른 교체 대상 위원장들과 함께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소명했지만 결론은 오리무중인 상태다.

과거 지구당위원장이 상시 사무실을 운영하며 지역구를 관리해 오던 지구당 제도는 사라지고 새누리당은 각 지역구에 당협위원장을 임명하고 있다. 당협위원장이 총선 공천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공천의 필수요건인 지역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어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정치인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자리다.

새누리당은 왜 총선을 1년여 앞둔 상태에서 특정 위원장 교체라는 강수를 띄웠을까. 당내에서도 “객관적인 점수를 공개한 것도 아니고 그 8명이 굳이 ‘잘릴’ 만큼 유별나게 부실했는지는 의문”이라는 반론이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가까운 2인(김형진, 김연광) 및 경선에서 서 최고위원을 지지했던 인물(전평진)이 포함돼 ‘친박 학살’, ‘계파 갈등’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8명의 해당 당협위원장과 일부 최고위원들은 “음해와 모략”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무성 대표 취임 직후 당무감사

이군현 조강특위 위원장이 김무성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조강특위가 마련한 당협위원장 교체안을 의결하려 했지만 일부 최고위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취임한 지 한 달 만인 2014년 8월 다소 흐트러졌던 당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조강특위를 구성했다. 조강특위는 위원장 이군현 사무총장과 위원인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초선인 강은희·김현숙·함진규 의원과 원외인 정양석 제2사무부총장이 멤버다. 실무진으로는 당 사무처 조직국장과 조직팀장이 참석한다. 사안에 따라 기획조정국장이나 여의도연구소 관계자가 배석하기도 한다. 조강특위는 그동안 당협위원장이 없었던 사고당협 위원장을 새로 임명하고 여론조사 결과로 총선 기초자료를 마련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조강특위는 97개 원외 당협에 대해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고 총선 1년 전까지 당 조직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부실당협위원장을 교체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이에 따라 당무감사 결과를 토대로 3월 초 8곳의 당협위원장을 1차 교체 대상으로 선정했다. 기준은 ‘자신의 지역에 거주하지 않거나, 거주하더라도 활동이 거의 없는 경우, 혹은 총선출마 의지가 없는 경우’가 주된 고려대상이었다.

교체대상 명단은 중앙당 조직국 등 실무진이 만든 자료와 보고서를 토대로 조강특위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이다. 이 결과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하게 되는데,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의 반발로 의결은 미뤄진 상태다.

“활동 및 의지가 부진한 당협 선정”

여야는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관리 및 공천준비 작업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최근 여야 의원들이 모여 지역구 공천과 관련, ‘오픈프라이머리 토론회’를 가졌다.

이들은 왜 부실당협으로 지목됐을까.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명단에 반발하는 최고위원들을 향해 “당규 당무감사규정에 의거, 작년 9월 실시한 당무점검 결과와 주요 인사 여론수렴 근거로 했다”고 단언했다.

조강특위의 한 위원은 “지역 내 활동이 부진하거나, 총선출마 의지가 없거나 불분명한 당협위원장이 교체대상이었다”며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자면 지방 당협을 맡고 있으면서 정작 주소지는 서울이거나, 당협 조직관리가 전혀 안돼 조직원들의 불평이 높거나, 오랫동안 외유하는 등 누가 봐도 명확한 사유가 있는 곳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내년이 당장 총선이고 열심히 뛰어도 당선 여부가 불확실한 마당에 위원장 활동도 부진하고 조직이 느슨한 당협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강특위 위원들은 “부실한 당협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며 ‘물갈이’가 시급하다는 입장이었다. 전 당대표와 전 사무총장이 추천한 부적격·자격미달 인물들을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위원은 “해당 위원장들은 음해와 모략을 이야기하기 전에 부실한 지역구 관리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실무진이 당무감사와 지역조사에 나서 객관적 자료와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모두 취합했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결격사유들이 발견된 인물들만 이번 명단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당무감사 당시의 미묘한 분위기

당협위원장 논란이 전당대회와 당 대표 경선의 후유증이라는 의견도 있다. 작년 7월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

몇몇 위원장은 당 대표 경선 및 당무감사 과정에서 ‘찍혔다’는 소문도 있다. 모 위원장은 작년 10월 당무감사 당시 조강특위로부터 “자리(지역구)를 자주 비운다”는 지적과 함께 이와 관련한 소명을 받기 위해 지역을 방문하겠다는 전언을 받았지만, “사실이 아닌 음해인 만큼 변명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한 바 있다.

또 당 대표 경선에서 서청원 의원을 지지했던 모 위원장은 “경선 직후 이뤄진 당무감사여서 이른바 ‘친박’인 나를 강도 높게 감사한다는 느낌을 받아 당직자들을 상대로 불쾌한 심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강특위의 한 실무자는 필자의 “이번 명단이 계파갈등 등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몇 달에 걸친 당무감사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모두 종합해 최종적으로 내놓은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증거가 있지만, 활동이 부진하거나 총선출마 의지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판단하나.

“외부활동과 조직활동 등 근거가 남아 있는 활동내역은 모두 점검했고, 의지라는 것은 각종 자료와 주변의 증언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본인이 총선출마 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당협위원장이 있었나. 해당 위원장들은 그런 적 없다고 하는데. 의지가 없으면 스스로 물러났을 것이고 반발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물론 본인이 의지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의견을 다양하게 종합했다. 궁금하면 그 지역에 한 번만 가 봐도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의견이라는 것이 음해나 모략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 정도는 다 알고 있고, 걸러낼 것은 걸러냈다. 중앙당의 자료 요청에 응하지 않거나 위원장이면서도 매달 내야 할 당비가 몇 달째 밀려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 정도면 당협위원장직을 유지할 의지, 총선에 출마해 승리할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교체 대상자들이 제출한 소명자료를 보면 적극적인 지역구 활동을 하고 있는 위원장도 많다.

“그런 자료를 당무감사할 때는 왜 내놓지 않았나. 당무감사에 성실하게 임했다면 ‘의지가 없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성실하게 임한 곳은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추측이지만 경선과 계파갈등의 여파가 있지 않았나 싶다.”

부실당협위원장에 당직 맡겼다니

조강특위 측은 공정하게 심사했다고 주장하지만 경선 패자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가까운 인물들이 여러 명 포함돼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당내에서도 ‘전국 수백개 당협 중 이들 8곳이 유독 부실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하다.

특히 수도권 위원장들의 경우가 그렇다. 서울 동대문을 김형진 위원장은 2014년 8월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에 임명된 바 있다. 새누리당은 당시 수석부대변인으로 8명의 원외 당협위원장을 임명했는데 이들의 면면을 보면 오는 4월 29일 관악을 보궐선거에 공천받은 오신환 당협위원장, 전지명 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 등 지역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위원장들이다. 한 중앙당 당직자는 “열심히 뛰는 사람이어서 수석부대변인으로 임명했을 텐데, 몇 개월 만에 부실당협위원장이라니 황당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청주흥덕갑 최현호 위원장은 지역구에서 여러 차례 출마해 낙선한 경력이 있고, 새누리당이 아닌 당으로 출마한 경력 때문에 이번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은 “부실당협이란 지역구 관리 및 활동을 부실하게 하고 있다는 뜻 아니냐”며 “과거 정치적인 경력 때문에 지금 부실당협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얘기다. “그런 사유가 당협위원장 임명시 결격사유라면 몰라도, 부실당협이라는 사유는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선정기준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특정계파 죽이기 또는 다른 인물을 심기 위해 밀어내기에 나선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새누리당의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당협위원장을 갖고 있으면서 별정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감사직 등 다른 직업에 잠시라도 종사했던 사람은 특히 마이너스 점수가 많았다고 들었다”며 “당협위원장과 다른 직업을 병행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시기와 음해가 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무감사 당시 중앙당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위원장이 선거에서 얼마나 열심히 뛸지 그 ‘의지’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선 서청원 지지자 학살 논란

서청원 최고위원은 ‘친박 학살’을 주장하고 있다. 서청원 의원이 친박계 의원모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번 명단에 가장 분노한 사람은 서청원 최고위원이다. 서 최고위원은 3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부실당협위원장 해임에 대한 의결을 제안하자 책상까지 치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근거없는 비방과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만들어진 명단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언론에 장문의 관련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서 최고위원은 이후 매번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실당협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고 있지만, 김연광 부평을 위원장과 김형진 동대문을 위원장, 장흥·강진·영암 전평진 위원장이 포함된 데 대해 심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평진 위원장은 3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소명을 한 후 기자들에게 “내가 명단에 포함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표 경선 때 서청원 최고위원을 열심히 지지했다는 것밖에 없다”며 “여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30년을 새누리당에 몸바쳤는데 부실당협이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청원 최고위원이 주장하는 ‘친박에 대한 정치적 학살’에 동조하는 세력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무처의 한 고위당직자는 “서 최고위원이 이 문제로 연일 언성을 높이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어서 다른 최고위원들이 다들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문제가 빨리 결론이 나야 정상적인 당무가 이뤄질 지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황우여 전 대표와 홍문종 전 의원이 추천해 당협을 맡은 인물들이 적지 않게 포함돼 친박 학살설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당내에서는 두 사람이 자격미달 인물들을 데려와 조직을 와해시켰다는 의견이 많다”며 “황우여-홍문종계가 타깃이 됐을 수는 있지만 경선과 관련해 서청원계를 겨냥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고위원 회의 통과 쉽지 않을 듯

조강특위는 3월 15일 밤 해당 위원장들로부터 2차 소명을 들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또 부실당협위원장 해임은 당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결론이 나는 데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해당 위원장들이 억울하다며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주변인의 평을 토대로 마련한 자료가 근거가 되는 등 사유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작년 말 한 중앙당 당직자는 기자에게도 모 당협위원장에 대해 “(출마)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꺼내며 평판을 묻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거의 매년 조강특위를 구성하고 당무감사에 나서곤 했지만, 이번처럼 ‘의지’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된 적은 없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새누리당은 올해 유난히 당원들의 충성심과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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