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선정지역은 당협위원장 극렬한 반대로 무산… 갑·을 위원장, 전·현직 위원장의 대립도
⊙ “사회적 약자인 여성 위해 유리한 지역 줘야” VS. “능력 있는 남성 후보에 대한 역차별”
⊙ 여당에 유리한 지역으로 급히 이사한 여성 후보도
⊙ 현직 당협위원장이 특정 여성 후보 밀며 선관위에 직접 ‘알아봐 줬다’?
⊙ “사회적 약자인 여성 위해 유리한 지역 줘야” VS. “능력 있는 남성 후보에 대한 역차별”
⊙ 여당에 유리한 지역으로 급히 이사한 여성 후보도
⊙ 현직 당협위원장이 특정 여성 후보 밀며 선관위에 직접 ‘알아봐 줬다’?
-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기초단체장 여성우선공천지역 7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4월 10일 새누리당의 여성우선공천지역 기초단체 7곳의 단체장 후보 공천이 마무리됐다(표1).
새누리당은 3월 17일 서울 종로・용산・서초, 경기 과천・이천, 부산 중구, 대구 중구 등 7곳을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확정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이어 서울 강남과 부산 남, 부산 해운대, 부산 사상, 대구 북, 경북 포항 등 6곳을 2차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혀 추가선정을 사실상 포기했다. 1차로 선정된 지역의 해당 지역 남성 후보들은 ‘낙하산 공천’과 ‘역차별’을 주장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여성우선공천지역은 원안대로 확정됐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우선공천지역 공천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특정지역 선정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조병돈 이천시장 등 공천 탈락 이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력 남성 후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또 2차 후보지였던 지역에서 여성 후보들이 맹렬하게 공천을 위해 뛰고 있는 한편 남성 후보들이 여성 후보 우대 및 공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여성할당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공직선거법상 여성할당제가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고 비례대표 여성 공천이 정례화된 지도 오래됐지만 특정지역을 전략지역 아닌 ‘여성공천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이번 새누리당이 처음이다. 지역별로 ‘여당 공천=사실상 당선 확정’인 지역이 적지 않다. 이 경우 과연 민주적으로 진행한 상향식 공천이라 할 수 있을까. 여성우선공천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을까.
《월간조선》은 새누리당 공천 관련 인사들을 취재해 여성공천 과정의 막전막후를 들었다. 당협위원장들의 묵인하에 선정된 서울, 남성 후보들의 반발로 아수라장이 된 경기, 당협위원장들의 전쟁터에 가까웠던 부산 등 지역별로 상황이 달랐다.
선정기준이 당선 가능성과 후보 경쟁력?
3월 초부터 새누리당 최고위 회의에서는 여성우선공천지역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2005년 제정된 새누리당 당헌 제103조(우선추천지역의 선정 등)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 후보 신청이 없는 지역,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된 지역 등에 대해서는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할 수 있다. 국회의원과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선정하고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통해 확정토록 돼 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재원 의원은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선 가능성과 적당한 여성 후보가 있는 지역이 가장 큰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얘기다. “일단 당선이 가능한 지역에 보내야지, 어려운 지역에 여성 후보를 보내면 여성할당제 숫자만 채우고 쇼하는 격 아니겠습니까. 기존의 남성 후보자도 당선될지 안 될지 모르는 지역에 보낼 순 없는 겁니다. 또 우리가 내세울 만한 여성 출마자가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여성우선지역을 선정했는데, 논란이 많은 지역이나 여성 후보의 경쟁력이 탁월해 경선을 통과할 수 있다고 판단된 지역은 보류했습니다.”
최고위 회의에 배석하는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의 얘기다.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공천은 당협위원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잘 해왔던 구청장·시장도 당협위원장과 사이가 틀어지면 다음에 공천 못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고요. 전략지역 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략지역이 돼야 하는 명분과 당협위원장의 강력한 의지, 두 가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물론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을 때 명분과 의지도 생기겠지만요.”
서울 3곳, 모호한 선정기준
여성공천지역 선정기준이 당선 가능성과 후보 경쟁력이라는 김재원 의원의 얘기는 일견 맞는 듯하지만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과 들어맞지 않는 면이 있다.
강남과 송파의 경우 여당 여성 후보의 경쟁력이 강하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 지역이다. 종로와 용산의 경우 새누리당 우세지역도 아니며 현재 공천을 받은 인물이 탁월한 경쟁력이 있는 후보도 아니다. 심지어 서울 종로와 용산은 1차 공천심사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해 추가 공천신청을 받았을 정도다. 선정기준에 대한 의문이 나오기에 충분하다.
새누리당 이준우 조직국장은 “서울시 기초단체장 여성공천지역의 경우 이견이나 잡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선 이와 관련해 당협위원장 또는 기타 후보의 반발이나 저항이 적지 않았는데, 서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종로는 여성 후보가 여러 명 있었음에도 경쟁력에 의문이 있어 추가신청을 받았지만 결국 원래 신청했던 후보가 선정됐고, 용산은 후보를 수소문해야 했고, 서초는 현재 후보에 대한 이견이 거의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종로구청장 후보로 3명의 여성이 경쟁을 벌인 끝에 공천받은 이숙연 종로구의원은 전・현직 당협위원장과 두루 친밀한 사이다. 박진 전 의원의 추천으로 출마해 종로구의회에 터를 잡은 이숙연 구의원은 현 정인봉 당협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종로구의회 부의장으로 재직했고 종로구의 다양한 사업에 함께해 왔다.
새누리당 서울시당 관계자의 얘기다. “종로는 나름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 유력한 후보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당의 입장이었고 여성우선지역으로 할 명분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공천을 신청한 여성 후보들의 경쟁력도 크게 돋보이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당협위원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습니다.”
반면 강남구의 경우 현직 신연희 구청장은 인지도와 당선 가능성도 높고 여당이 우세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강남구청장 후보 선정의 경우 권문용·맹정주 전 구청장이 탈당경력 때문에 경선에서 배제된 이른바 ‘컷오프’에 강력 반발하며 경선일정도 중지된 상태다.
공천 과정에 관계된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사실 강남은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의 지역구인데 그분이 반대하기도 했고, 유력 후보인 전직 구청장 두 명이 결사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골치 아픈 지역’이 돼 버렸어요. 만약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되면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보였죠. 강남이나 포항의 경우 관계된 실세들이 많아 공천에 잡음이 생기면 최고위도 어떻게 하기 힘들 정도로 난감한 지역입니다. 그런 위험을 갖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2차 선정지역에서 빼는 걸로 결론 냈습니다.”
용산과 서초의 서로 다른 사정
용산은 어떨까. 용산 역시 새누리 우세지역도, 유력 여성 후보가 있는 곳도 아니다. 현재 여성 구청장 후보로 공천받은 황춘자 전 서울메트로 본부장도 지역주민들에겐 낯선 얼굴이다. 당협위원장이 강력 추천한 인물도 아니다. 용산구민들도 왜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됐는지 의문을 갖는 가운데 용산 당협위원장인 진영 의원의 측근 A씨로부터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다른 곳에 출마한 유력 여성 후보가 사실은 용산에 오래 살았어요. 그분이 선출직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진영 의원은 지방선거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용산이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된다는 사실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선정되고 나서 보니 그 여성 후보가 여당 우세지역으로 이미 이사를 한 겁니다. 그러니 여성 구청장 후보로 나갈 사람이 없는 거예요.” 결국 여성지역 선정 이후 공천을 신청한 황춘자 전 서울메트로 본부장이 경선 등의 절차 없이 공천을 받게 됐다.
서초는 전통적인 여당 우세지역으로 ‘여당 공천=당선’의 공식을 갖고 있어 선거 본선보다 공천 경쟁이 더 치열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역대 지방선거에서 당협위원장의 입김이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6~2010년 재임했던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은 재선을 노리다 당시 당협위원장과의 알력에 진익철 현 구청장에게 공천권을 뺏겨야 했다.
서초구청장은 여당 공천이 곧 당선인 만큼 당협위원장이라면 자기 사람을 심거나 성향이 안 맞는 사람을 밀어내려는 욕심을 낼 법한 자리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서초의 당협위원장들은 구청장 후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역 사람이 아닌 ‘낙하산’에 대한 반발도 없다. 서초구청의 한 관계자는 “갑, 을 두 의원(김회선, 강석훈) 모두 친박이라 ‘하향식 공천’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며 “전・현직 구청장들에다 유력 후보들이 난무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옆동네 강남구와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경기 2곳은 남성 후보들의 전쟁터
여성공천지역 선정에 대한 반발이 가장 심한 곳은 경기도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4월 14일 탈당 및 출마를 선언하고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싸늘하게 외면당했다”며 “이천을 위해 다시 한 번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탈당한다”고 밝혔다.
이천이 여성지역으로 결정된 것은 당협위원장인 유승우 의원의 주장이 먹혀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부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유승우 의원은 이메일을 통해 지난 3월 초 현직 경기개발연구원 사무처장으로 재직 중인 김경희 후보가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경기도 선관위에 문의했다.
선관위가 유승우 의원에게 가능하다는 답을 보내온 3월 14일, 김경희 후보는 새누리당 경기도당에 공천 신청서를 제출했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현직 당협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미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완벽하게 유리한 구조(여성공천지역)를 만들어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과천도 중앙 정치권으로부터의 ‘하향식 공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여성국장 출신인 신계용 예비후보는 2006~2010년 경기 성남시에서 출마해 경기도의원을 지냈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안양만안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한 바 있다. 박요찬 과천・의왕 당협위원장은 애초 “연고 없는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신 후보에 대한 공천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선거를 앞두고 남성 예비후보들에 대한 반발 진화에 앞장서고 있다. 새누리당에 과천시장 공천을 신청했던 이경수 전 과천시의회 의원은 “여성공천의 취지는 인정해도 과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 공천을 준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3월 31일 탈당을 선언했다.
뜨거운 이슈였던 부산 지역
이번 새누리당 여성공천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던 지역은 부산이었다. 부산 중구는 김은숙 현 구청장의 지지도가 높아 어렵지 않게 여성지역으로 선정됐지만, 부산 남구와 사상구는 당협위원장들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김무성 의원이 여성공천과 관련해 공천위원회를 찾은 사건도 이 때문이었다. 김무성 의원은 3월 21일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후 공천위의 홍문종 위원장과 공천위원인 김세연 제1사무부총장과 만나 “이런 비합리적인 일(특정지역 여성우선공천)이 벌어지는 것을 두고만 보지 말고 합리적으로 하라”고 강조했다. 부산 남구를 여성공천지역으로 선정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에 거물급 정치인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는 해당 지역이 아니었지만 그의 과거 지역구인 부산 남구가 2차 여성공천지역 후보로 선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 남구청장 후보자 중 여성은 송순임 전 시의원. 송 후보는 남구 갑 당협위원장인 김정훈 의원과 친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정훈 의원의 두터운 신임을 업고 공천권을 따내려 한다는 것이 상대 후보들의 주장이다. 부산 남구에는 현직 이종철 구청장과 김무성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김선길 부산시의원이 상당한 득표력을 갖고 있는 상태다.
김무성 의원의 측근인 부산 남구 을 당협위원장 서용교 의원은 “(김정훈 의원이) 특정후보를 위해 여성우선지역을 따내려는 의도가 분명한 만큼 여성지역 선정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부산 남구는 여성우선지역에서 배제됐다.
부산 사상구도 전・현직 당협위원장의 알력으로 여성우선지역 선정이 불발된 경우다. 사상구의 송숙희 현 구청장은 이미 현직 프리미엄과 지역특성상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당선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손수조 당협위원장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송숙희 구청장이 전 당협위원장인 장제원 전 의원과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장제원 전 의원의 한 측근은 “현 당협위원장이 당협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중앙당 지도부와의 관계만 강조하고 있어 지역구 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내홍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원칙은 30%, 실제 공천은 7곳에 그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김정재 전 서울시의원이 도전하는 포항, 서병수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부산 해운대구, 마땅한 여성 후보가 없는 대구 북구 등 3곳은 명분도 후보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성우선공천지역에서 탈락했다. 물론 당협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류지영 새누리당 여성위원장은 “기초단체장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이 몇 곳에 그치고 원안보다 후퇴한 모습을 보여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솔직히 당 스스로 여성우선추천제도의 본질을 스스로 외면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 공천제와 여성할당제가 본질보다는 지역의 사정과 이해관계에 엮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성비율을 최대한 확대하려 노력했는데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여당이 최초로 실시한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은 정치권에서도, 여성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생채기만 남기고 마무리됐다.⊙
새누리당은 3월 17일 서울 종로・용산・서초, 경기 과천・이천, 부산 중구, 대구 중구 등 7곳을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확정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이어 서울 강남과 부산 남, 부산 해운대, 부산 사상, 대구 북, 경북 포항 등 6곳을 2차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혀 추가선정을 사실상 포기했다. 1차로 선정된 지역의 해당 지역 남성 후보들은 ‘낙하산 공천’과 ‘역차별’을 주장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여성우선공천지역은 원안대로 확정됐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우선공천지역 공천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특정지역 선정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조병돈 이천시장 등 공천 탈락 이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력 남성 후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또 2차 후보지였던 지역에서 여성 후보들이 맹렬하게 공천을 위해 뛰고 있는 한편 남성 후보들이 여성 후보 우대 및 공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여성할당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공직선거법상 여성할당제가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고 비례대표 여성 공천이 정례화된 지도 오래됐지만 특정지역을 전략지역 아닌 ‘여성공천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이번 새누리당이 처음이다. 지역별로 ‘여당 공천=사실상 당선 확정’인 지역이 적지 않다. 이 경우 과연 민주적으로 진행한 상향식 공천이라 할 수 있을까. 여성우선공천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을까.
《월간조선》은 새누리당 공천 관련 인사들을 취재해 여성공천 과정의 막전막후를 들었다. 당협위원장들의 묵인하에 선정된 서울, 남성 후보들의 반발로 아수라장이 된 경기, 당협위원장들의 전쟁터에 가까웠던 부산 등 지역별로 상황이 달랐다.
선정기준이 당선 가능성과 후보 경쟁력?
3월 초부터 새누리당 최고위 회의에서는 여성우선공천지역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2005년 제정된 새누리당 당헌 제103조(우선추천지역의 선정 등)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 후보 신청이 없는 지역,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된 지역 등에 대해서는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할 수 있다. 국회의원과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선정하고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통해 확정토록 돼 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재원 의원은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선 가능성과 적당한 여성 후보가 있는 지역이 가장 큰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얘기다. “일단 당선이 가능한 지역에 보내야지, 어려운 지역에 여성 후보를 보내면 여성할당제 숫자만 채우고 쇼하는 격 아니겠습니까. 기존의 남성 후보자도 당선될지 안 될지 모르는 지역에 보낼 순 없는 겁니다. 또 우리가 내세울 만한 여성 출마자가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여성우선지역을 선정했는데, 논란이 많은 지역이나 여성 후보의 경쟁력이 탁월해 경선을 통과할 수 있다고 판단된 지역은 보류했습니다.”
최고위 회의에 배석하는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의 얘기다.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공천은 당협위원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잘 해왔던 구청장·시장도 당협위원장과 사이가 틀어지면 다음에 공천 못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고요. 전략지역 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략지역이 돼야 하는 명분과 당협위원장의 강력한 의지, 두 가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물론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을 때 명분과 의지도 생기겠지만요.”
여성할당제는 기존 정당법에 국회의원 및 시·도의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명시되어 있으나, 각 정당이 법을 위반해도 처벌할 조항이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2002년 3월 개정된 선거법(현 공직선거법)에 따라 여야 정당이 광역의회 비례대표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의무화했으며 지역구 공천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권장했다. 또 정당법은 지역구의 여성할당 권고를 따르는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2002년 6·13 지방선거의 후보선정 작업이 시작되면서 출사표를 던졌던 여성 후보의 대다수가 경선에서 조직과 자금력이 우세한 남성 후보들에게 밀려 낙선됐다. 이후 2005년 8월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47조에서는 정당이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 비례대표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되, 후보자명부 순위의 매 홀수에 여성을 올리도록 했다. 또한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 지역구 공천은 각각 총 전국 지역구 수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권장하였다. 한편 2010년부터는 정당이 지방의회의원 지역구 공천에서 군 지역을 제외한 지역구마다 1명 이상의 여성을 공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서울 3곳, 모호한 선정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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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인 홍문종 사무총장(오른쪽)과 부위원장인 김재원 의원이 공천 자료를 놓고 대화하고 있다. |
강남과 송파의 경우 여당 여성 후보의 경쟁력이 강하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 지역이다. 종로와 용산의 경우 새누리당 우세지역도 아니며 현재 공천을 받은 인물이 탁월한 경쟁력이 있는 후보도 아니다. 심지어 서울 종로와 용산은 1차 공천심사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해 추가 공천신청을 받았을 정도다. 선정기준에 대한 의문이 나오기에 충분하다.
새누리당 이준우 조직국장은 “서울시 기초단체장 여성공천지역의 경우 이견이나 잡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선 이와 관련해 당협위원장 또는 기타 후보의 반발이나 저항이 적지 않았는데, 서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종로는 여성 후보가 여러 명 있었음에도 경쟁력에 의문이 있어 추가신청을 받았지만 결국 원래 신청했던 후보가 선정됐고, 용산은 후보를 수소문해야 했고, 서초는 현재 후보에 대한 이견이 거의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종로구청장 후보로 3명의 여성이 경쟁을 벌인 끝에 공천받은 이숙연 종로구의원은 전・현직 당협위원장과 두루 친밀한 사이다. 박진 전 의원의 추천으로 출마해 종로구의회에 터를 잡은 이숙연 구의원은 현 정인봉 당협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종로구의회 부의장으로 재직했고 종로구의 다양한 사업에 함께해 왔다.
새누리당 서울시당 관계자의 얘기다. “종로는 나름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 유력한 후보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당의 입장이었고 여성우선지역으로 할 명분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공천을 신청한 여성 후보들의 경쟁력도 크게 돋보이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당협위원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습니다.”
반면 강남구의 경우 현직 신연희 구청장은 인지도와 당선 가능성도 높고 여당이 우세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강남구청장 후보 선정의 경우 권문용·맹정주 전 구청장이 탈당경력 때문에 경선에서 배제된 이른바 ‘컷오프’에 강력 반발하며 경선일정도 중지된 상태다.
공천 과정에 관계된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사실 강남은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의 지역구인데 그분이 반대하기도 했고, 유력 후보인 전직 구청장 두 명이 결사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골치 아픈 지역’이 돼 버렸어요. 만약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되면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보였죠. 강남이나 포항의 경우 관계된 실세들이 많아 공천에 잡음이 생기면 최고위도 어떻게 하기 힘들 정도로 난감한 지역입니다. 그런 위험을 갖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2차 선정지역에서 빼는 걸로 결론 냈습니다.”
용산과 서초의 서로 다른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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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공천이 확정된 이숙연 종로구청장 후보, 조은희 서초구청장 후보, 황춘자 용산구청장 후보. |
“지금 다른 곳에 출마한 유력 여성 후보가 사실은 용산에 오래 살았어요. 그분이 선출직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진영 의원은 지방선거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용산이 여성우선지역으로 선정된다는 사실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선정되고 나서 보니 그 여성 후보가 여당 우세지역으로 이미 이사를 한 겁니다. 그러니 여성 구청장 후보로 나갈 사람이 없는 거예요.” 결국 여성지역 선정 이후 공천을 신청한 황춘자 전 서울메트로 본부장이 경선 등의 절차 없이 공천을 받게 됐다.
서초는 전통적인 여당 우세지역으로 ‘여당 공천=당선’의 공식을 갖고 있어 선거 본선보다 공천 경쟁이 더 치열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역대 지방선거에서 당협위원장의 입김이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6~2010년 재임했던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은 재선을 노리다 당시 당협위원장과의 알력에 진익철 현 구청장에게 공천권을 뺏겨야 했다.
서초구청장은 여당 공천이 곧 당선인 만큼 당협위원장이라면 자기 사람을 심거나 성향이 안 맞는 사람을 밀어내려는 욕심을 낼 법한 자리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서초의 당협위원장들은 구청장 후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역 사람이 아닌 ‘낙하산’에 대한 반발도 없다. 서초구청의 한 관계자는 “갑, 을 두 의원(김회선, 강석훈) 모두 친박이라 ‘하향식 공천’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며 “전・현직 구청장들에다 유력 후보들이 난무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옆동네 강남구와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경기 2곳은 남성 후보들의 전쟁터
여성공천지역 선정에 대한 반발이 가장 심한 곳은 경기도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4월 14일 탈당 및 출마를 선언하고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싸늘하게 외면당했다”며 “이천을 위해 다시 한 번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탈당한다”고 밝혔다.
이천이 여성지역으로 결정된 것은 당협위원장인 유승우 의원의 주장이 먹혀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부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유승우 의원은 이메일을 통해 지난 3월 초 현직 경기개발연구원 사무처장으로 재직 중인 김경희 후보가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경기도 선관위에 문의했다.
선관위가 유승우 의원에게 가능하다는 답을 보내온 3월 14일, 김경희 후보는 새누리당 경기도당에 공천 신청서를 제출했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현직 당협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미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완벽하게 유리한 구조(여성공천지역)를 만들어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과천도 중앙 정치권으로부터의 ‘하향식 공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여성국장 출신인 신계용 예비후보는 2006~2010년 경기 성남시에서 출마해 경기도의원을 지냈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안양만안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한 바 있다. 박요찬 과천・의왕 당협위원장은 애초 “연고 없는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신 후보에 대한 공천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선거를 앞두고 남성 예비후보들에 대한 반발 진화에 앞장서고 있다. 새누리당에 과천시장 공천을 신청했던 이경수 전 과천시의회 의원은 “여성공천의 취지는 인정해도 과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 공천을 준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3월 31일 탈당을 선언했다.
뜨거운 이슈였던 부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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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포항 지역 당원들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를 찾아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김무성 의원이 여성공천과 관련해 공천위원회를 찾은 사건도 이 때문이었다. 김무성 의원은 3월 21일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후 공천위의 홍문종 위원장과 공천위원인 김세연 제1사무부총장과 만나 “이런 비합리적인 일(특정지역 여성우선공천)이 벌어지는 것을 두고만 보지 말고 합리적으로 하라”고 강조했다. 부산 남구를 여성공천지역으로 선정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에 거물급 정치인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는 해당 지역이 아니었지만 그의 과거 지역구인 부산 남구가 2차 여성공천지역 후보로 선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 남구청장 후보자 중 여성은 송순임 전 시의원. 송 후보는 남구 갑 당협위원장인 김정훈 의원과 친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정훈 의원의 두터운 신임을 업고 공천권을 따내려 한다는 것이 상대 후보들의 주장이다. 부산 남구에는 현직 이종철 구청장과 김무성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김선길 부산시의원이 상당한 득표력을 갖고 있는 상태다.
김무성 의원의 측근인 부산 남구 을 당협위원장 서용교 의원은 “(김정훈 의원이) 특정후보를 위해 여성우선지역을 따내려는 의도가 분명한 만큼 여성지역 선정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부산 남구는 여성우선지역에서 배제됐다.
부산 사상구도 전・현직 당협위원장의 알력으로 여성우선지역 선정이 불발된 경우다. 사상구의 송숙희 현 구청장은 이미 현직 프리미엄과 지역특성상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당선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손수조 당협위원장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송숙희 구청장이 전 당협위원장인 장제원 전 의원과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장제원 전 의원의 한 측근은 “현 당협위원장이 당협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중앙당 지도부와의 관계만 강조하고 있어 지역구 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내홍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원칙은 30%, 실제 공천은 7곳에 그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김정재 전 서울시의원이 도전하는 포항, 서병수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부산 해운대구, 마땅한 여성 후보가 없는 대구 북구 등 3곳은 명분도 후보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성우선공천지역에서 탈락했다. 물론 당협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류지영 새누리당 여성위원장은 “기초단체장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이 몇 곳에 그치고 원안보다 후퇴한 모습을 보여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솔직히 당 스스로 여성우선추천제도의 본질을 스스로 외면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 공천제와 여성할당제가 본질보다는 지역의 사정과 이해관계에 엮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성비율을 최대한 확대하려 노력했는데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여당이 최초로 실시한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은 정치권에서도, 여성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생채기만 남기고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