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중산층 근로자 쥐어짜는 8·8 세법개정안,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 월간조선

지난 8월 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4 세법개정안’은 전 국민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줬다. 8·8 세법개정안은 ▲중소기업 세제지원 ▲농어민·자영업자 등 서민지원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 ▲납세편의 제공 ▲지하경제 양성화 등 ‘경쟁력을 갖춘 공평하고 원칙 있는 세제’를 강조했다. 원칙대로 각종 세제혜택을 줄여 조세를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세수를 늘려 복지재원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확대’ 의지를 보여준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세법개정안은 중산층 근로자들의 공분(公憤)을 샀다. 세법개정안이 발표될 때마다 증세대상자들의 반발은 으레 있었지만, 이번엔 폭발 수준이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제 방식 개편 등으로 연 근로소득 3450만원 이상인 근로자 434만명의 세금부담이 평균 16만~865만원 늘어난다. 세원(稅源)이 노출된 ‘유리지갑’ 중산층 근로자들만 대폭 세금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들 계층은 불황 중에도 끝없이 상승하는 전셋값과 건강보험료, 교육비 등을 부담해야 하는 계층이어서 더욱 분노가 심했다. 정부 측의 ‘고소득 증세’라는 원칙이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에는 적용되지 않고 고소득 근로자에게만 부담돼 형평성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심지어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은 “거위 깃털을 고통없이 뽑는 것처럼…”이라는 발언을 해 근로자들을 자극했다.

연일 여론의 공격이 쏟아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8월 12일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기재부는 다음 날인 13일 세금부담상한선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다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국민들의 분노는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마디로 법안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부터 “대체 누구 아이디어인가” 또는 “수개월의 입안-심의기간 동안 이런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 하나 없었나”라는 의문까지 불거졌다. 8·8 세법개정안은 어떤 과정에 의해 누가 만들고 그 과정에서 누가 맞장구를 쳤기에 이처럼 심각한 사태를 몰고왔을까. 다시는 그런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과정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稅法개정이 他 법률과 다른 점은

기획재정부 현오석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8월 8일 오후 1시30분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제46차 회의에 참석해 비공개회의를 개최했고, 2시간여의 회의 후 ‘2014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세법개정이 타 법률개정과 다른 점은 입안→법안확정→입법예고 과정 중 입안과 확정 사이에 세제발전심의위원회(세발심)의 심의가 필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공청회나 당정협의는 필수사항이 아니다. 입안은 늘 기재부 세제실이 주축이 돼서 하지만, 세발심에서 어떤 의견이 개진되느냐에 따라 입안된 법안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세발심은 1984년 7월 제정된 재무부(당시) 훈령 제128호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설치·운영규정’에 의해 설치된 심의기구다. ▲세제발전의 기본방향에 관한 사항 ▲세제개편의 방안에 관한 사항 ▲기타 조세발전과 관련된 사항 중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심의를 요구하는 사항 등 세제에 관한 주요사항을 종합적으로 심의한다.

위원은 당연직 위원인 ▲기재부 세제실장 ▲국무조정실 경제행정조정관 ▲안전행정부 차관보 ▲기재부 예산실장 ▲국세청 차장 ▲관세청 차장을 포함해 기재부 장관이 80명 내외로 위촉할 수 있다. 그 조건은 ▲학계 및 연구단체의 조세·재정 또는 경제전문가 ▲경제사회단체의 임·직원 ▲논설위원·해설위원 등 언론인 ▲세제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있는 3급 이상 공무원 ▲기타 조세 및 재정제도와 경제 전반에 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다. 세발심은 소득·기업·재산·소비·국제조세·총괄 등 6개 분과로 나뉘며 세법개정안 전체심의에 앞서 분과위원회별로 회의도 연다.

기재부, “稅發審 논의 내용 공개할 수 없다”

기재부가 8월 8일 발표한 2014 세법개정안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재부와 함께 마련한 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발심은 매년 1~2회의 정기회의를 가졌고 공개로 열렸지만, 2011년부터 비공개회의로 전환됐다. 《월간조선》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13년 8월 8일 열린 제46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 회의록을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 측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비공개한다”고 밝혀왔다. 기재부 담당자는 “해당 회의록 공개 시 위원의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토론이 제한되는 등 심의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월간조선》은 세발심 71명의 명단(표1)을 입수해 2014 세법개정안 심의와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취재했다. 취재원들은 대부분 “별일 없었다”는 답이었으나, 익명을 요청한 몇 명에게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취재원들은 모두 “그날 회의 분위기는 괜찮았는데 이 정도 후폭풍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 사립대 교수 A씨는 “기재부 측에서 조세 형평성과 원칙 있는 조세정책을 강조했고, 학계에서도 그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의 방향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A교수와의 대화다.

—46차 회의 참석자는 몇 명이었나요.

“54명이었습니다.”

—위원 중 몇 명에게 발언기회가 주어졌습니까.

“이전 회의에서는 발언요청한 사람만 발언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모두에게 발언권을 주더군요. 2~3분 이내로 짧게 부탁한다면서요.”

—어떤 얘기들이었나요. 개정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본인의 분야에서 한마디씩 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씩만 했는데도 두 시간이 넘어갔어요. 소득세 전문가인 B교수도 특별한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정협의에서는 근로자 증세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점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기재부 측은 고소득근로자에게 증세를 하는 것이고 근로자의 70% 이상은 증세가 없다고 설명했었어요. 누군가는 증세 대상이 돼야 하지 않습니까.”

지방대 교수 C씨는 “현 정부 경제팀의 첫 작품인데 누가 굳이 이의를 제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의 얘기다.

—기재부 개정안에 이의가 없었습니까.

“대부분 2~3년째 세발심 위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회의가 길어져 봤자 이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다들 이의제기는 특별히 하지 않았어요. 박근혜 정부가 공약가계부를 내놓으면서 학계에서도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죠. ‘증세 없는 복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다들 궁금해했는데, 조세를 특혜 없이 원칙적으로 징수한다는 이번 개정안의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위원회는 중산층 반발을 예상 못 했나요.

“서민층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발심 위원들이 정치인이 아니다 보니 이런 저항은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죠. 노동자나 서민층도 없으니 연봉 3000만~4000만원의 직장인에게 조세저항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었다고 봅니다. 여하튼 이번 개정안이 특별히 심각할 정도로 문제 있다고 느낀 위원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세발심 위원인 전원책 자유경제원장은 “예전에도 세발심 위원들이 회의에서 몇 가지 안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국회의원도 아닌데 얼마나 받아들여지겠느냐”며 “50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한 심의회 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稅發審 규모 비대, 인력 중복

세발심은 규모와 구성면에서 법률 심의기관으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에 원천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규모가 70명이 넘어 한번에, 한 장소에서 회의를 하기가 힘들고 비슷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또 심의기관인 만큼 가부결정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현실적으로 총회의 직후 언론발표가 있는 만큼 총회의에서 문제점이 부각되거나 개정안을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울 사립대 교수인 C 위원은 “법률안을 그나마 심의하는 곳은 분과위원회이고, 총회의는 모여서 통과시키는 자리”라며 “기재부 측에서 내 전문분야에 대해 따로 문의가 온다면 몰라도 먼저 나서서 문제점을 지적한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비슷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많이 중복돼 있다”며 “분야별로 현장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모셔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9월 초 세제발전심의위원회 개편방향을 확정하고 현오석 장관에게 보고했다.

개편방향은 세발심 구성원의 정예화와 분과회의의 효율화가 핵심이다. 현재 교수와 전문직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를 대표할 만한 위원은 1명(한국노총 사무총장)뿐이고, 자영업자를 대표할 만한 민간위원은 단 한 명도 없다.

개편안에 따르면 전직 장·차관급 고위직 출신이나 정치인들에게도 세발심 위원의 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분과위원회별 회의도 보다 내실 있는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 분과위별 회의는 세제개편안 확정 이전에 3~4회 정도 진행되는데, 이 횟수도 늘리고, 2~3개 분과를 묶어서 교차해서 점검하는 회의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세제개편 기초안 만든 현오석-조원동 라인

조세전문가들은 세발심이 법안확정의 필수 절차이긴 하지만 이미 ‘거수기’화된 만큼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세발심 총회의는 이미 완성된 세법개정안을 사후 심의하는 자리일 뿐 법안을 만든 곳은 기재부와 청와대이며, 당정협의에서 문제점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여당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을 마련한 핵심은 누구일까. 시선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집중돼 있다. 그는 제10대 조세연구원장(2011~2013) 출신이다. 자타공인 조세전문가다. 기재부와 청와대 경제팀은 올 초부터 세법개정안에 매달렸다. 박 대통령의 공약인 ‘공약가계부’와 ‘증세 없는 복지’를 시행하려면 세수 마련이 최우선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세법개정안 마련에는 현오석-조원동-김낙회(기재부 세제실장) 등 핵심 3인방이 호흡을 맞췄다.

이들이 마련한 안은 공청회와 심의, 당정협의 등 예정된 절차를 거쳤다. 지난 4월엔 조세연구원과 소득세·법인세 공청회가, 7월에는 마련된 안을 심의하는 세발심 소득세분과회의가 열렸다. 이때 참석한 소득세분과위원은 이전오 성균관대 교수, 허석균 중앙대 교수, 김기태 김앤장 고문, 김남문 세무법인 명인 대표 등으로 이들은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5일 기재부는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당정협의를 갖고 세법개정안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이때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비과세감면 축소의 큰 틀은 바람직하지만 중산층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정협의 직후 브리핑에서 당정은 “개정안의 방향이 맞다고 보며, 중산층에 부담이 없도록 해달라”고 발표했다. 적극적인 이의제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법개정안 사태 이후 새누리당은 “새 정부의 실기(失期)”라며 맹비난해 “이미 당정협의를 마치지 않았느냐”는 정부 측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세발심 위원인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이번 세법개정안사태는 조세정책이 정치적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줬으며, 국민들에게도 ‘공짜 복지는 없다’는 인식을 다시 한 번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급박했던 黨·政·靑의 8월 12일

8월 8일 세법개정안 발표 이후 여론이 들끓었지만 기재부는 “(원안의) 방향이 옳다”는 입장을 4일간 고수해 왔다. 그러나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세법개정안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기재부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조원동 경제수석은 상황의 심각성을 현오석 장관에게 알렸고, 몇십 분 후인 오전 11시 국회에서 긴급 당정협의가 열렸다. 현오석 장관, 이석준 2차관, 김낙회 세제실장 등 정부 측 인사들과 새누리당 측 황우여 대표, 김기현 정책위의장, 유기준·심재철·한기호 최고위원 등이 참석했다. 회의는 비공개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오후 4시, 두 번째 당정협의가 진행됐다. 현오석 장관과 김기현 정책위의장, 그 외 정책위부의장단과 대변인 등이 참석했고 회의는 2시간 정도 진행됐다. 기재부는 오후 7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밤샘 작업 끝에 13일 오전 증세기준점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 수정안을 발표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원안대로 밀어붙인다는 입장이었는데 12일 오전 대통령 발표는 기재부엔 청천벽력과 같았다”며 “수정안대로라면 세수에서 4000억원 정도가 빠지게 되는데, 이를 고려할 여력이 없어 중산층 증세 부분만 수정한 안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법개정안 ‘첩첩산중’

세법개정안이 나온 만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9월 중순부터 개정안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수정안에 따르면 세입 4000억여 원이 줄어들게 되고, 이를 메우기 위해 또 다른 수정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또 기획재정위원회는 여소야대여서 법률개정안이 정부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재위 새누리당 간사인 나성린 의원은 “현재 기재위는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상황이어서 협상이 필요하다”며 “작년 세법개정 때도 야당에 양보와 타협을 하면서 통과시킨 만큼 올해도 야당 측 주장을 들어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수정안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세법개정안 원안의 애초 원칙과 방향이 옳았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지만, 누더기가 되면 그 방향이 올바를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