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不通 리더십’과 ‘정치 무시’, 야당의 무기력, 청와대 정무팀 취약이 어우러져
수직적·기형적 黨·靑 관계 형성
⊙ 헌법상 내각제적 요소가 행정부와 국회, 與野 관계를 망가뜨리는 근본원인
⊙ 대통령, 與野 지도부를 청와대로 부를 게 아니라 국회로 가서 만나는 모습 보여줘야
金亨俊
⊙ 57세. 한국외대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수직적·기형적 黨·靑 관계 형성
⊙ 헌법상 내각제적 요소가 행정부와 국회, 與野 관계를 망가뜨리는 근본원인
⊙ 대통령, 與野 지도부를 청와대로 부를 게 아니라 국회로 가서 만나는 모습 보여줘야
金亨俊
⊙ 57세. 한국외대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지난 3월 7일 국가조찬기도회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지켜보는 가운데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출범한 지 약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바뀌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지난 두 달을 평가해 보면 다소 실망스럽고 혼란스럽다. 정부 조직 개편 지연, 연속적인 인사 실패, 북한의 지속적 도발 위협 등이 몰아닥치면서 새 정부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준비 안 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조롱마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역대 최저치인 4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김영삼(YS) 정부와 김대중(DJ) 정부 시절 집권 초기 대통령 지지도가 80%대로 높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분명 예사롭지 않은 징조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헌정(憲政)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부정적인 것이 훨씬 많다. 정권 초기 국무총리 내정자가 자진 사퇴한 것도 초유(初有)의 일이지만, 대통령이 핵심 국정 키워드로 제시한 분야의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창조경제’(김종훈 미래부 장관), ‘경제민주화’(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법질서 확립’(김학의 법무차관), ‘안보 강화’(김병관 국방부 장관), ‘중소기업 상생’(황철주 중기청장) 등이다.
더구나 “국회를 존중하겠다”던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개편이 미뤄지자 취임 일주일 만에 “저의 신념이자 국정(國政)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는 초강경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야당을 압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권 여당(與黨)과 친박(親朴) 인사들이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청와대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하면 앞장서서 방어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청와대를 공격하면서 당·청(黨靑) 관계를 흔들고 있다.
與黨의 폭발
이상일(李相逸) 새누리당 대변인은 초기 인사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인사검증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준다”며 인사검증 관계자들의 책임을 거론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경한 논평을 내놓았다. 정부 조직 개편 협상에서 ‘청와대 요청’에 의해 새누리당 원내 대표부가 야당 요구안을 전폭 수용하자 이에 반발해 협상 당사자인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 수석 부대표가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급기야 지난 3월 30일에 열린 박근혜 정부 첫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는 그동안 누적되었던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원조 친박근혜계인 새누리당 유승민(劉承旼) 의원은 유민봉(庾敏鳳)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창조경제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는 들지 않고 장황하게 설명하자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라며 제동을 건 뒤 “그런 에피소드가 어떻게 국정철학입니까, 빨리 끝내주세요”라고 몰아세웠다. 유 의원은 종합토론에서도 “대통령이 쓰신 단어들을 모아 국정철학이라고 하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국정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여당 의원들에게도 이렇게 전도(傳道)하듯이 하는데 어떻게 국민과 소통이 잘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비록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정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집권 초기에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불통(不通)의 리더십’, ‘정치 무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강부자 내각’보다 심각”
최근 한 언론사가 새 정부 출범 한 달을 맞아 실시한 심층인지(認知)면접조사 결과, 박 대통령이 ‘소통(疏通)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70%에 달했다. 박 대통령 지지층의 절반가량도 “여야(與野)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각 인선에 대해서도 56.5%가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강부자 내각’보다 심각하다”, “수첩만 보고 인사한 것 같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집권 초기부터 당·청 관계가 흔들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도보다 낮은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리얼미터가 3월 25~2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45.0%인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47.1%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기현상(奇現象)에 대해 새누리당 지지자 중에서 중도 성향에 가까운 40~50대가 박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 실망해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청와대 비판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마저 여당보다 낮은 조사 결과가 나오자 향후 당·청 관계가 상당히 험난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한구(李漢久)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월 27일 “당은 앞으로 대선공약 실천을 위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이 입법화되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정부, 일하는 여당이 각각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게 중요하며, 그래야 비로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국민행복과 관련한 정책 또는 현상 정보를 공유하고 국정운영과 관련해서는 허심탄회한 의견 교류를 통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여당과 정부가 공감하는 게 중요하며 입법과 행정이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최근 “모든 정책은 여당에 사전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밝혔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인사 실패’를 비롯해 창조경제 개념을 둘러싸고 여당 내에서도 비판적 언급이 나오는 것과 관련, 여당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당·청 관계는 참으로 ‘기이하고 변형적이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집권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
다음 <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집권 초기에 드러난 당·청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2003년 노무현(盧武鉉) 정부 이전까지 대통령들은 당의 총재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당 대표뿐만 아니라 당 사무총장을 자신의 최측근으로 임명해 집권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특히 대통령의 힘에 눌려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집권당 내 유력 대권(大權) 후보가 부상(浮上)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제왕적(帝王的)인 총재로서의 힘은 더욱 막강했다. 대통령의 낙점(落點)을 받아야 차기 대선가도에서 유리한 고지(高地)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집권당은 대통령을 무오류(無誤謬)의 신성한 존재로 떠받들었다. 2003년 이후 집권당 대표는 당원과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선출되었지만,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8년 4월 총선에서 부적격자로 판단해 공천 탈락시켰던 박희태(朴熺太) 전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암묵적(暗黙的) 지시에 따라 친이(親李) 세력에 의해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말이 당·청 관계이지 집권당은 종종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다. 집권당은 청와대 앞에서 무조건 작아지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지극히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수직적인 관계가 만들어졌다.
이런 당·청 관계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대통령의 리더십, 정국 상황, 야당의 정치적 위상(位相),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 집권당 내 계파 갈등 심화 정도, 시민단체의 위상 등의 요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다.
YS, 개혁드라이브로 黨 완전 장악
집권 초기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야당의 위상이 지나치게 낮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으며,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미미할 경우, 당·청 관계는 대통령의 ‘리모컨 정치’에 의해 철저하게 작동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대통령이 높은 국정 운영 지지도를 등에 업고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경우, 집권당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이런 현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사례가 1993년에 출범한 YS 정부 시절이다. YS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법에도 없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했고, 군내(軍內) 사(私)조직인 하나회를 척결(剔抉)했으며, 대대적인 사정(司正)을 단행함으로써 정치권 모두 숨을 죽이며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당시 정국은 ‘여대야소(與大野小)’ 상황이었고, 야당은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정계 은퇴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집권당인 민자당 내에 민정·민주·공화 등 세 계파(系派)가 있었지만 사정 개혁에 눌려 대통령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은 꿈도 꾸지 못했다.
YS와 아주 대조적인 사례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당의 대표직을 포기하고 평(平)당원의 길을 자처하면서 당정분리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청와대가 과거와 같이 집권당에 지시하고 통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새천년민주당)의 ‘주류 당권파(主流 黨權派)’는 호남의 김대중(DJ) 세력이었다. 반면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은 비주류 ‘친노(親盧) 386 세력’이었다. 집권 초기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對北送金) 특검(特檢)을 수용하고 DJ의 분신(分身)인 박지원(朴智元) 전 비서실장에게 칼을 겨누자 이들 두 세력 간의 관계는 급속하게 악화(惡化)되었다.
급기야 집권당 내에서 당권파를 상징하는 ‘난닝구’(호남+구민주계)와 개혁파를 대변하는 ‘빽바지’(수도권+친노무현계) 간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정동영(鄭東泳) 의원을 포함한 친노세력들이 새 정부 출범 9개월 만에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나가면서 집권당은 분열되었다. 어떻게 보면 역대 최악(最惡)의 당·청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정계 은퇴 이후 초(超)강경의 최병렬(崔秉烈)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강력한 대여(對與)투쟁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더구나 집권 초기에 실시된 4월 재보선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참패(慘敗)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의 당·청 관계는 불안정하고 위험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 당·청 관계는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당내(黨內) 친이-친박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상당히 취약했다. 집권 초기 한반도 대운하, 미디어법 개정 등을 둘러싸고 비주류인 친박의 MB 정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도를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당·청 관계는 당 전체가 아니라 청와대와 주류 친이 세력 간의 관계로 국한되면서 절름발이 모습을 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가 유력한 대권 후보인 비주류의 박근혜 전 대표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렇다 보니 집권당 지도부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채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철저히 배제된 집권당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당·청 관계는 어떠한가? 과거와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 수직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만 기형적인 면이 강하다. 집권당은 정부 조직 개편안, 인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의 첫 진용(陣容)을 짜는 과정에서 정치권 출신 친박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과거에는 집권당이 아무리 대통령의 눈치를 보더라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인사를 추천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집권당의 무기력(無氣力)한 정도가 너무 심하다. 박 대통령이 정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고, 집권당 내 권력 투쟁을 용납하지 않으며, 제2인자를 두지 않으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 정치 무시와 집권당에 대한 무(無)배려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강력한 야당이라도 존재하면 대통령이 집권당에 힘을 실어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야당인 민주당은 존재감을 상실한 채 대선(大選) 패배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오로지 친노-비노(非盧) 간에 당권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현재 민주당의 지지도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얻었던 득표(48%)의 반(半)토막에 불과하다.
이런 무기력한 야당의 존재가 대통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대통령이 여야 정당을 모두 무시한 채 불통과 독선(獨善)의 리더십으로 빠지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허약한 대통령 비서실장
둘째, 당·청 관계를 책임져야 할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팀이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들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에서 허태열(許泰烈) 비서실장이 원조(元祖) 친박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당과의 가교(架橋)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경내에 박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이팝나무를 심을 때 허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들이 추운 밖에서 1시간 동안 오들오들 떨며 박 대통령의 출석을 기다려야만 했던 일이 발생했다. 박 대통령이 윤병세(尹炳世) 외교부장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느라고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렇게 위상이 낮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떻게 무게감을 갖고 당·청 관계를 효율적으로 조율(調律)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권력의 힘이 비서실장보다는 대통령 보좌관 출신 비서관에게 쏠려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야 할 정권 창출 세력인 친박에 분화(分化)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원조 친박 대(對) 신박(新朴), 쫄박(쫄딱 망한 친박) 대 복박(復朴·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온 친박)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집권 초기에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이 세력인 홍준표(洪準杓) 대표와 임태희(任太熙) 정책위(委) 의장이 러닝메이트로 나와서 경선(競選) 없이 추대되었다.
5월에 실시될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원조 친박(최경환)과 신박(이주영) 간의 대결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4월 3일 새누리당 초선(初選) 의원 20여 명이 청와대 이정현(李貞鉉) 정무수석을 불러 그동안 청와대가 보여준 ‘소통 부재’에 대한 불만과 함께 쓴소리를 쏟아내는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최경환(崔炅煥) 의원만이 초대받아서 청와대가 그를 암묵적으로 지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청와대가 스스로 박심(朴心)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모임 참석자 중 한 사람은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 때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이한구 원내대표 러닝메이트였던 진영(陳永) 정책위 의장 후보 지역구에서 봉사활동을 해 논란을 불렀던 때가 오버랩됐다”고 말했다.
집권 초기에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더구나 일부 친박 인사들은 벌써부터 ‘개털이 됐다’고 팔장을 낀 채 정국 상황을 관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박근혜 정부 집권 초기 당·청 관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취약하다.
대통령과 국회의 二重 정통성
찰스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에 따르면 “수많은 자연변이(變異)는 모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생존(生存)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個體)가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을 거친다”고 했다.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셔머는 “자연선택은 유기체(有機體)들이 살아남아 번식해 자기 유전자(遺傳子)를 다음 세대에 퍼뜨리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선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은 서식(棲息) 환경이다. 남미(南美) 갈라파고스 섬 여러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새인 핀치(finch)들이 먹이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라지듯이 생물체가 어떤 환경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선택(selection)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 “환경 적응에 유리한 부분을 보존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의 핵심은 결국 서식 환경의 부산물(副産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기이하고 퇴행적(退行的)인 정치 서식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핵심은 내각제(內閣制)식으로 운영되는 대통령제이다. 즉, ‘절충적(折衷的) 권력구조 형태’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헌법은 대통령(행정부)과 국회에 ‘이중(二重) 정통성’(dual legitimacy)을 부여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국회와 대통령이 동일(同一)한 위상을 가지며 국회는 입법권(立法權)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행정권(行政權)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의 헌법은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절충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상 내각제적 요소
우리 헌법은 다른 나라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볼 수 없는 국무회의 제도(헌법 제88조 1항)를 두고 있고, 국무총리의 임명은 국회의 동의(헌법 제86조 1항)를 얻도록 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행위는 문서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그 문서에는 반드시 국무총리와 관련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하도록(헌법 제82조)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 헌법은 정부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국회는 국무총리·국무위원 및 정부위원(국회의 본회의 또는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 상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정부 소속 공무원, 국무조정실장, 각 부서의 차관~국장급 공무원)을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시켜 답변을 요구할 수 있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62조 및 제63조). 국회의원은 국무위원과 겸직할 수 있다.
의회가 행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의원내각제도 아니고, 의회와 행정부가 독자적인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대통령제도 아니다.
이에 따라 여당은 의원내각제처럼 매사 행정부를 옹호하고 지원하며 정부 실정(失政)에 대해 무한(無限)책임을 진다. 반면에 야당은 언제나 정부를 ‘반대’하면서 전략적(戰略的)으로 여당과 상시적(常時的) 대립 관계를 만든다.
더구나 정부 여당은 주요한 정치 현안에 대해 당정(黨政)협의체라는 제도를 통해 사전에 모여서 협의하면서 야당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상임위(常任委) 기능 자체는 무력화(無力化)되면서 야당은 정부·여당을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한다.
결과적으로 순수 대통령제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이 아주 희귀한 일이 되고 있다.
한국 정치의 退行變異
2002년 대선 이후 당권·대권이 분리되고, 제왕적 총재 체제가 종식되었다. 하지만 한국 정당은 여전히 당 대표 또는 소수(少數) 실력자들에게 권력이 독점(獨占)되어 있는 ‘개인화되고 중앙집권적인(personalized and centralized)’인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당 대표와 일반 의원들 간의 관계는 수직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의원들은 국회직보다는 당직(黨職)을 선호하며, 의정(議政)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소신보다는 중앙당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는 퇴행적 구조에 종속된다. 예를 들어, 당 대표가 특정 법안이나 현안(懸案)에 대해 당론(黨論)이라고 규정하면 일반 의원들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문제는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전혀 자율성(自律性)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국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와의 관계는 수직적인 것을 넘어 지나치게 비대칭적이다. 집권당은 대통령의 지시와 통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왔다. 이런 한국의 정치 서식 환경은 발전적 변이(variation)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보적(退步的) 변이가 발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변이가 적자(適者)로 생존해 그 형질(形質)과 특징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는 좌우(左右)의 이분법(二分法)을 넘어서는 ‘통합(統合)의 변이’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世界化)와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위기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념 대립’이 아니라 ‘통합의 이념’이라는 변이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교체 이후 형성된 새로운 정치 환경에서 여야 정당은 ‘통합의 변이’가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을 흔들면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 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이유는 기이하고 퇴행적인 정치 서식 환경에서는 통합 변이보다는 이념 갈등 변이가 생존 경쟁에서 우세하다고 오랜 기간의 정치 학습을 통해 체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여당은 선제(先制) 대응과 속도전(速度戰)으로 입법전쟁을 주도했고, 야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단상 점거 등 극한 저항을 했다.
국회에 ‘협조’ 구하는 순수 대통령제로 돌아가야
이런 한국 정치의 악순환(惡循環)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당·청 관계의 정립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대통령의 역할이자 신념이 되어야 한다.
첫째, 기존의 수직적·비대칭적 당·청 관계를 수평적·대칭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당·청 간의 일사불란함이 안정을 가져다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반대로 권력 분산 시대에서는 여당이 정부에 대해 당당하고 꼿꼿하게 할 말을 할 때만이 당이 활력(活力)을 찾고 국민의 신뢰를 얻으며 동시에 건강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
실패를 은폐하고 부정하거나 나아가 실패를 경험한 곳에서 무엇인가 배우기를 거부할 때 또 다른 치명적인 실패가 잉태된다. 반대로 실패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는 ‘작게 실패하고 크게 성공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지난 두 달간의 혼란과 실패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 청와대는 과거와 같이 여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법 과정과 관련해서 청와대는 더 이상 여당에 지시하고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협조만을 구하는 순수 대통령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 박 대통령은 과거와 같이 수시로 집권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회동하면서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런 행태가 권위주의 대통령의 부활로 비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북핵(北核) 위협과 같이 시급한 국가 현안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국회를 자주 방문해서 여야 대표 및 해당 상임위원장들과 회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 새누리당 競選에 中立 지켜야
둘째, 강제적 당론에 의존하는 당·청 관계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 여야 모두 강제적 당론을 정해 격돌하면 대화와 타협의 상생(相生) 국회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의원들은 거수기(擧手機)로 전락하고 오로지 과반(過半)의 의석(議席)을 가진 정당의 당론만이 채택되거나 이를 막기 위한 여야 간 죽기살기 식의 대립과 파행만 있을 뿐이다.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해 국회의원 3/5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국회 선진화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형태의 당·청 관계 모델로는 새롭게 형성된 의정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지난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결국 여당이 야당에 모든 것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를 입증(立證)해 주고 있다.
셋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으로 하여금 무게감을 갖고 정치력을 발휘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들이 청와대의 지시나 하달하는 일방통행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5월에 치러질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청와대는 철저하게 중립(中立)을 지켜야 한다. 청와대가 섣불리 개입해 박심 논쟁을 촉발시키면 향후 당·청 관계가 잘못되었을 경우 모든 책임을 대통령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청 관계는 상황이 바뀌면서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새 정부 집권 초기부터 당·청 관계가 이렇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예기치 않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작금(昨今)의 불안한 당·청 관계를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대통령에게 불행이고 국민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인내심은 강하지 않다
역대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총체적으로 실패하는 과정을 면밀히 고찰해 보면 공통된 패턴이 발견된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청와대는 이를 언론 탓, 제도 탓, 야당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대통령은 집권 여당을 무시하면서 “나는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면서 오기(傲氣) 정치를 펼친다. 뒤이어 권력에서 소외된 정권 창출 세력이 노골적으로 ‘청와대 때리기’에 나서고 향후 재보선에서 집권당은 참패한다. 급기야 차기 총선(總選) 승리와 정권 재(再)창출을 위해 집권당이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지게 되고 그 와중에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면서 대통령은 정치적 뇌사(腦死)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로 이런 실패의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나는 당에 빚진 것이 없다”,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 소통을 멀리한 채 기존의 당·청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 결과는 뻔하다. 대통령이 목청껏 외치는 ‘국민 행복 시대’는 사라지고 ‘국민 걱정 시대’만이 도래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열광과 환멸의 주기(週期)는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체념으로 변하고 새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난 두 달간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정치 무시 대신 정치 존중으로, 불통 대신 소통으로, 오기 대신 겸손으로, 무서움 대신 따뜻함으로, 나 홀로 결정 대신 집단이성(集團理性)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역대 최저치인 4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김영삼(YS) 정부와 김대중(DJ) 정부 시절 집권 초기 대통령 지지도가 80%대로 높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분명 예사롭지 않은 징조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헌정(憲政)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부정적인 것이 훨씬 많다. 정권 초기 국무총리 내정자가 자진 사퇴한 것도 초유(初有)의 일이지만, 대통령이 핵심 국정 키워드로 제시한 분야의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창조경제’(김종훈 미래부 장관), ‘경제민주화’(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법질서 확립’(김학의 법무차관), ‘안보 강화’(김병관 국방부 장관), ‘중소기업 상생’(황철주 중기청장) 등이다.
더구나 “국회를 존중하겠다”던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개편이 미뤄지자 취임 일주일 만에 “저의 신념이자 국정(國政)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는 초강경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야당을 압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권 여당(與黨)과 친박(親朴) 인사들이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청와대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하면 앞장서서 방어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청와대를 공격하면서 당·청(黨靑) 관계를 흔들고 있다.
與黨의 폭발
이상일(李相逸) 새누리당 대변인은 초기 인사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인사검증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준다”며 인사검증 관계자들의 책임을 거론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경한 논평을 내놓았다. 정부 조직 개편 협상에서 ‘청와대 요청’에 의해 새누리당 원내 대표부가 야당 요구안을 전폭 수용하자 이에 반발해 협상 당사자인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 수석 부대표가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급기야 지난 3월 30일에 열린 박근혜 정부 첫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는 그동안 누적되었던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원조 친박근혜계인 새누리당 유승민(劉承旼) 의원은 유민봉(庾敏鳳)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창조경제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는 들지 않고 장황하게 설명하자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라며 제동을 건 뒤 “그런 에피소드가 어떻게 국정철학입니까, 빨리 끝내주세요”라고 몰아세웠다. 유 의원은 종합토론에서도 “대통령이 쓰신 단어들을 모아 국정철학이라고 하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국정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여당 의원들에게도 이렇게 전도(傳道)하듯이 하는데 어떻게 국민과 소통이 잘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비록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정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집권 초기에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불통(不通)의 리더십’, ‘정치 무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강부자 내각’보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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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6월 3일 청와대에서 단독 회동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집권 초기부터 당·청 관계가 흔들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도보다 낮은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리얼미터가 3월 25~2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45.0%인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47.1%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기현상(奇現象)에 대해 새누리당 지지자 중에서 중도 성향에 가까운 40~50대가 박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 실망해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청와대 비판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마저 여당보다 낮은 조사 결과가 나오자 향후 당·청 관계가 상당히 험난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한구(李漢久)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월 27일 “당은 앞으로 대선공약 실천을 위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이 입법화되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정부, 일하는 여당이 각각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게 중요하며, 그래야 비로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국민행복과 관련한 정책 또는 현상 정보를 공유하고 국정운영과 관련해서는 허심탄회한 의견 교류를 통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여당과 정부가 공감하는 게 중요하며 입법과 행정이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최근 “모든 정책은 여당에 사전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밝혔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인사 실패’를 비롯해 창조경제 개념을 둘러싸고 여당 내에서도 비판적 언급이 나오는 것과 관련, 여당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당·청 관계는 참으로 ‘기이하고 변형적이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집권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
다음 <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집권 초기에 드러난 당·청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2003년 노무현(盧武鉉) 정부 이전까지 대통령들은 당의 총재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당 대표뿐만 아니라 당 사무총장을 자신의 최측근으로 임명해 집권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특히 대통령의 힘에 눌려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집권당 내 유력 대권(大權) 후보가 부상(浮上)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제왕적(帝王的)인 총재로서의 힘은 더욱 막강했다. 대통령의 낙점(落點)을 받아야 차기 대선가도에서 유리한 고지(高地)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집권당은 대통령을 무오류(無誤謬)의 신성한 존재로 떠받들었다. 2003년 이후 집권당 대표는 당원과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선출되었지만,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8년 4월 총선에서 부적격자로 판단해 공천 탈락시켰던 박희태(朴熺太) 전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암묵적(暗黙的) 지시에 따라 친이(親李) 세력에 의해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말이 당·청 관계이지 집권당은 종종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다. 집권당은 청와대 앞에서 무조건 작아지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지극히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수직적인 관계가 만들어졌다.
이런 당·청 관계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대통령의 리더십, 정국 상황, 야당의 정치적 위상(位相),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 집권당 내 계파 갈등 심화 정도, 시민단체의 위상 등의 요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다.
YS, 개혁드라이브로 黨 완전 장악
집권 초기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야당의 위상이 지나치게 낮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으며,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미미할 경우, 당·청 관계는 대통령의 ‘리모컨 정치’에 의해 철저하게 작동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대통령이 높은 국정 운영 지지도를 등에 업고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경우, 집권당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이런 현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사례가 1993년에 출범한 YS 정부 시절이다. YS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법에도 없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했고, 군내(軍內) 사(私)조직인 하나회를 척결(剔抉)했으며, 대대적인 사정(司正)을 단행함으로써 정치권 모두 숨을 죽이며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당시 정국은 ‘여대야소(與大野小)’ 상황이었고, 야당은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정계 은퇴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집권당인 민자당 내에 민정·민주·공화 등 세 계파(系派)가 있었지만 사정 개혁에 눌려 대통령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은 꿈도 꾸지 못했다.
YS와 아주 대조적인 사례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당의 대표직을 포기하고 평(平)당원의 길을 자처하면서 당정분리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청와대가 과거와 같이 집권당에 지시하고 통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새천년민주당)의 ‘주류 당권파(主流 黨權派)’는 호남의 김대중(DJ) 세력이었다. 반면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은 비주류 ‘친노(親盧) 386 세력’이었다. 집권 초기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對北送金) 특검(特檢)을 수용하고 DJ의 분신(分身)인 박지원(朴智元) 전 비서실장에게 칼을 겨누자 이들 두 세력 간의 관계는 급속하게 악화(惡化)되었다.
급기야 집권당 내에서 당권파를 상징하는 ‘난닝구’(호남+구민주계)와 개혁파를 대변하는 ‘빽바지’(수도권+친노무현계) 간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정동영(鄭東泳) 의원을 포함한 친노세력들이 새 정부 출범 9개월 만에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나가면서 집권당은 분열되었다. 어떻게 보면 역대 최악(最惡)의 당·청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정계 은퇴 이후 초(超)강경의 최병렬(崔秉烈)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강력한 대여(對與)투쟁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더구나 집권 초기에 실시된 4월 재보선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참패(慘敗)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의 당·청 관계는 불안정하고 위험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 당·청 관계는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당내(黨內) 친이-친박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상당히 취약했다. 집권 초기 한반도 대운하, 미디어법 개정 등을 둘러싸고 비주류인 친박의 MB 정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도를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당·청 관계는 당 전체가 아니라 청와대와 주류 친이 세력 간의 관계로 국한되면서 절름발이 모습을 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가 유력한 대권 후보인 비주류의 박근혜 전 대표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렇다 보니 집권당 지도부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채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철저히 배제된 집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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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0일 열린 당정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에서부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정홍원 국무총리,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현오석 경제부총리. |
첫째, 수직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만 기형적인 면이 강하다. 집권당은 정부 조직 개편안, 인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의 첫 진용(陣容)을 짜는 과정에서 정치권 출신 친박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과거에는 집권당이 아무리 대통령의 눈치를 보더라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인사를 추천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집권당의 무기력(無氣力)한 정도가 너무 심하다. 박 대통령이 정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고, 집권당 내 권력 투쟁을 용납하지 않으며, 제2인자를 두지 않으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 정치 무시와 집권당에 대한 무(無)배려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강력한 야당이라도 존재하면 대통령이 집권당에 힘을 실어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야당인 민주당은 존재감을 상실한 채 대선(大選) 패배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오로지 친노-비노(非盧) 간에 당권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현재 민주당의 지지도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얻었던 득표(48%)의 반(半)토막에 불과하다.
이런 무기력한 야당의 존재가 대통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대통령이 여야 정당을 모두 무시한 채 불통과 독선(獨善)의 리더십으로 빠지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허약한 대통령 비서실장
둘째, 당·청 관계를 책임져야 할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팀이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들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에서 허태열(許泰烈) 비서실장이 원조(元祖) 친박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당과의 가교(架橋)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경내에 박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이팝나무를 심을 때 허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들이 추운 밖에서 1시간 동안 오들오들 떨며 박 대통령의 출석을 기다려야만 했던 일이 발생했다. 박 대통령이 윤병세(尹炳世) 외교부장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느라고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렇게 위상이 낮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떻게 무게감을 갖고 당·청 관계를 효율적으로 조율(調律)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권력의 힘이 비서실장보다는 대통령 보좌관 출신 비서관에게 쏠려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야 할 정권 창출 세력인 친박에 분화(分化)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원조 친박 대(對) 신박(新朴), 쫄박(쫄딱 망한 친박) 대 복박(復朴·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온 친박)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집권 초기에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이 세력인 홍준표(洪準杓) 대표와 임태희(任太熙) 정책위(委) 의장이 러닝메이트로 나와서 경선(競選) 없이 추대되었다.
5월에 실시될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원조 친박(최경환)과 신박(이주영) 간의 대결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4월 3일 새누리당 초선(初選) 의원 20여 명이 청와대 이정현(李貞鉉) 정무수석을 불러 그동안 청와대가 보여준 ‘소통 부재’에 대한 불만과 함께 쓴소리를 쏟아내는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최경환(崔炅煥) 의원만이 초대받아서 청와대가 그를 암묵적으로 지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청와대가 스스로 박심(朴心)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모임 참석자 중 한 사람은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 때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이한구 원내대표 러닝메이트였던 진영(陳永) 정책위 의장 후보 지역구에서 봉사활동을 해 논란을 불렀던 때가 오버랩됐다”고 말했다.
집권 초기에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더구나 일부 친박 인사들은 벌써부터 ‘개털이 됐다’고 팔장을 낀 채 정국 상황을 관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박근혜 정부 집권 초기 당·청 관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취약하다.
대통령과 국회의 二重 정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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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8일 청와대 경내에 이팝나무를 식수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왼쪽부터 박흥렬 경호실장, 허태열 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 김장수 안보실장. |
그런데 이러한 자연선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은 서식(棲息) 환경이다. 남미(南美) 갈라파고스 섬 여러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새인 핀치(finch)들이 먹이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라지듯이 생물체가 어떤 환경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선택(selection)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 “환경 적응에 유리한 부분을 보존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의 핵심은 결국 서식 환경의 부산물(副産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기이하고 퇴행적(退行的)인 정치 서식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핵심은 내각제(內閣制)식으로 운영되는 대통령제이다. 즉, ‘절충적(折衷的) 권력구조 형태’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헌법은 대통령(행정부)과 국회에 ‘이중(二重) 정통성’(dual legitimacy)을 부여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국회와 대통령이 동일(同一)한 위상을 가지며 국회는 입법권(立法權)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행정권(行政權)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의 헌법은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절충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상 내각제적 요소
우리 헌법은 다른 나라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볼 수 없는 국무회의 제도(헌법 제88조 1항)를 두고 있고, 국무총리의 임명은 국회의 동의(헌법 제86조 1항)를 얻도록 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행위는 문서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그 문서에는 반드시 국무총리와 관련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하도록(헌법 제82조)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 헌법은 정부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국회는 국무총리·국무위원 및 정부위원(국회의 본회의 또는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 상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정부 소속 공무원, 국무조정실장, 각 부서의 차관~국장급 공무원)을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시켜 답변을 요구할 수 있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62조 및 제63조). 국회의원은 국무위원과 겸직할 수 있다.
의회가 행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의원내각제도 아니고, 의회와 행정부가 독자적인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대통령제도 아니다.
이에 따라 여당은 의원내각제처럼 매사 행정부를 옹호하고 지원하며 정부 실정(失政)에 대해 무한(無限)책임을 진다. 반면에 야당은 언제나 정부를 ‘반대’하면서 전략적(戰略的)으로 여당과 상시적(常時的) 대립 관계를 만든다.
더구나 정부 여당은 주요한 정치 현안에 대해 당정(黨政)협의체라는 제도를 통해 사전에 모여서 협의하면서 야당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상임위(常任委) 기능 자체는 무력화(無力化)되면서 야당은 정부·여당을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한다.
결과적으로 순수 대통령제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이 아주 희귀한 일이 되고 있다.
한국 정치의 退行變異
2002년 대선 이후 당권·대권이 분리되고, 제왕적 총재 체제가 종식되었다. 하지만 한국 정당은 여전히 당 대표 또는 소수(少數) 실력자들에게 권력이 독점(獨占)되어 있는 ‘개인화되고 중앙집권적인(personalized and centralized)’인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당 대표와 일반 의원들 간의 관계는 수직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의원들은 국회직보다는 당직(黨職)을 선호하며, 의정(議政)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소신보다는 중앙당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는 퇴행적 구조에 종속된다. 예를 들어, 당 대표가 특정 법안이나 현안(懸案)에 대해 당론(黨論)이라고 규정하면 일반 의원들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문제는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전혀 자율성(自律性)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국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와의 관계는 수직적인 것을 넘어 지나치게 비대칭적이다. 집권당은 대통령의 지시와 통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왔다. 이런 한국의 정치 서식 환경은 발전적 변이(variation)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보적(退步的) 변이가 발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변이가 적자(適者)로 생존해 그 형질(形質)과 특징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는 좌우(左右)의 이분법(二分法)을 넘어서는 ‘통합(統合)의 변이’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世界化)와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위기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념 대립’이 아니라 ‘통합의 이념’이라는 변이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교체 이후 형성된 새로운 정치 환경에서 여야 정당은 ‘통합의 변이’가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을 흔들면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 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이유는 기이하고 퇴행적인 정치 서식 환경에서는 통합 변이보다는 이념 갈등 변이가 생존 경쟁에서 우세하다고 오랜 기간의 정치 학습을 통해 체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여당은 선제(先制) 대응과 속도전(速度戰)으로 입법전쟁을 주도했고, 야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단상 점거 등 극한 저항을 했다.
국회에 ‘협조’ 구하는 순수 대통령제로 돌아가야
이런 한국 정치의 악순환(惡循環)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당·청 관계의 정립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대통령의 역할이자 신념이 되어야 한다.
첫째, 기존의 수직적·비대칭적 당·청 관계를 수평적·대칭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당·청 간의 일사불란함이 안정을 가져다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반대로 권력 분산 시대에서는 여당이 정부에 대해 당당하고 꼿꼿하게 할 말을 할 때만이 당이 활력(活力)을 찾고 국민의 신뢰를 얻으며 동시에 건강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
실패를 은폐하고 부정하거나 나아가 실패를 경험한 곳에서 무엇인가 배우기를 거부할 때 또 다른 치명적인 실패가 잉태된다. 반대로 실패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는 ‘작게 실패하고 크게 성공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지난 두 달간의 혼란과 실패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 청와대는 과거와 같이 여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법 과정과 관련해서 청와대는 더 이상 여당에 지시하고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협조만을 구하는 순수 대통령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 박 대통령은 과거와 같이 수시로 집권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회동하면서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런 행태가 권위주의 대통령의 부활로 비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북핵(北核) 위협과 같이 시급한 국가 현안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국회를 자주 방문해서 여야 대표 및 해당 상임위원장들과 회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 새누리당 競選에 中立 지켜야
둘째, 강제적 당론에 의존하는 당·청 관계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 여야 모두 강제적 당론을 정해 격돌하면 대화와 타협의 상생(相生) 국회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의원들은 거수기(擧手機)로 전락하고 오로지 과반(過半)의 의석(議席)을 가진 정당의 당론만이 채택되거나 이를 막기 위한 여야 간 죽기살기 식의 대립과 파행만 있을 뿐이다.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해 국회의원 3/5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국회 선진화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형태의 당·청 관계 모델로는 새롭게 형성된 의정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지난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결국 여당이 야당에 모든 것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를 입증(立證)해 주고 있다.
셋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으로 하여금 무게감을 갖고 정치력을 발휘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들이 청와대의 지시나 하달하는 일방통행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5월에 치러질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청와대는 철저하게 중립(中立)을 지켜야 한다. 청와대가 섣불리 개입해 박심 논쟁을 촉발시키면 향후 당·청 관계가 잘못되었을 경우 모든 책임을 대통령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청 관계는 상황이 바뀌면서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새 정부 집권 초기부터 당·청 관계가 이렇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예기치 않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작금(昨今)의 불안한 당·청 관계를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대통령에게 불행이고 국민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인내심은 강하지 않다
역대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총체적으로 실패하는 과정을 면밀히 고찰해 보면 공통된 패턴이 발견된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청와대는 이를 언론 탓, 제도 탓, 야당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대통령은 집권 여당을 무시하면서 “나는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면서 오기(傲氣) 정치를 펼친다. 뒤이어 권력에서 소외된 정권 창출 세력이 노골적으로 ‘청와대 때리기’에 나서고 향후 재보선에서 집권당은 참패한다. 급기야 차기 총선(總選) 승리와 정권 재(再)창출을 위해 집권당이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지게 되고 그 와중에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면서 대통령은 정치적 뇌사(腦死)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로 이런 실패의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나는 당에 빚진 것이 없다”,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 소통을 멀리한 채 기존의 당·청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 결과는 뻔하다. 대통령이 목청껏 외치는 ‘국민 행복 시대’는 사라지고 ‘국민 걱정 시대’만이 도래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열광과 환멸의 주기(週期)는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체념으로 변하고 새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난 두 달간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정치 무시 대신 정치 존중으로, 불통 대신 소통으로, 오기 대신 겸손으로, 무서움 대신 따뜻함으로, 나 홀로 결정 대신 집단이성(集團理性)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