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포커스] 安哲秀의 귀환 : 월간조선

안철수(安哲秀) 전 서울대 교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정치 복귀 선언을 했다. 작년 대선(大選) 투표일인 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한 지 82일 만에 귀국해 지난 대선 패배에 대해 사과한 뒤 4월에 치러지는 서울 노원병(丙)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 선언에서 “국민이 주인 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 어떤 가시밭길도 가겠다”면서 “새 정치는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즉 소통의 정치, 서로 아무리 당이 다르더라도 국가 중대사에 대해서는 서로 화합하고 뜻을 모으는 통합의 정치, 그리고 단순히 이념으로 다투는 게 아니라 민생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문제 해결의 정치”라고 말했다. 그는 노원병 출마에 대해서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서 민심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로운 정치 씨앗을 뿌리고자 결정했다”고 했다.

그의 핵심 측근인 송호창(宋皓彰) 의원(무소속)은 “지금의 정치상황이 안 전 교수의 결단을 촉구한 것 같다”며 “주변에서도 취임 초부터 장관도 제대로 임명 못 하는 등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국정운영의 난맥상이라든지, 제1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무기력함 등 한심한 정치상황이 안 전 교수가 이번 선거에 출마한 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與野)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구태(舊態) 정치에 빠져 있는 것이 표면상 안 전 교수의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안 전 교수가 예상을 깨고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철저히 안 전 교수의 관점에서 추론(推論)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도출된다.

바람만으로는 안 된다

첫째, 조기(早期) 정치 세력화의 절박함이다.

안 전 교수는 작년 대선 때 “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냉혹한 정치 현실 속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문재인(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競選)을 앞두고 안 전 교수가 후보직을 사퇴한 것도 결국 정치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는 타는 목마름으로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에게 바람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지역과 이념이라는 큰 틀 속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치에서 정당 조직도 없고 국회의원도 한 명밖에 없는 제3후보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대선에서 초반 지지율 강세를 보이며 바람을 일으켰던 제3후보도 막상 11월에 접어들면 지지율이 급락하는 ‘11월의 저주’가 지난 대선에서도 또다시 입증되었다.

<표1>에서 보듯이 작년 11월에 접어들면서 박근혜 지지자 제외 기준 야권 단일 후보 지지도에서 안 전 후보의 지지도는 추락했고,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경선 협상이 막판으로 치달았던 11월 중반부터 문재인 후보에게 큰 차이로 역전당했다.

물론 이런 지지도 추락이 안 전 교수의 후보 사퇴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 없이 바람만으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부정적 이미지 早期 불식 필요

둘째, 정치 세력화는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안 전 교수는 2011년 9월 서울시장 재(再)선거를 기점으로 그야말로 ‘안철수 바람’을 점화(點火)시켰고 2012년 7월 19일 《안철수의 생각》을 발간한 후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9월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까지 1년여 기간 동안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정치 세력화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정치 세력화 과정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이 길게 호흡하면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정치판의 빅뱅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올 10월 재보궐선거나 내년 지방선거에 임박해서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여야 정치권이 혼돈 상태에 빠져 있는 지금이 적기(適期)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야만 충분한 시간과 함께 정치 세력화의 시동을 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셋째, 지난 대선 때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를 조기에 불식시키지 못하면 지지 세력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 대선 때 안 전 교수의 지지율이 시간이 흐를수록 낮아진 이유 중의 하나는 중요 정치 현안에 대해 결정을 하기까지 지루하게 간만 본다는 부정적 여론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간철수’라는 닉네임이 나왔겠는가.

대선을 전후해 세력이 안 전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캠프를 하나둘 떠나간 데서 엿보이듯 안 전 교수는 지난 대선 때 결성된 지지 세력들을 계속 결집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와해될 수 있다는 초조함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기계적 단일화’는 곤란

작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는 안철수 전 교수. 작년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안 전 교수에게는 더 많은 성찰과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넷째, 거대 여당에 맞서 무조건 뭉치고 보자는 ‘기계적 단일화’는 더 이상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확신이다.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에 대한 야권의 반발이 커지자 송호창 의원이 최근 “지금까지 야권은 대안과 비전이 아닌 반여(反與) 후보 단일화에 모든 것을 건 ‘반대의 연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요구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정치도, 거대 여당을 뛰어넘는 대안 세력의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야권이 단일화 프레임에 매몰돼 새 정치에 대한 대안 제시를 소홀히 하면 선거에서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따라서 야권 연대에 일정 거리를 두면서 ‘독자 행보’로 정치 시동을 거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안 전 교수의 결단은 대선 실패 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한 치밀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작년 9월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밝혔지만 미완에 그친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는 결심이다. 여하튼 안 전 교수의 ‘새 정치를 위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향후 안 전 교수가 가시밭길을 걸을지 아니면 비단길을 걸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안철수 전 교수의 예상보다 빨리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온 선택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특정 정치인에 대한 열광과 환멸의 주기가 지극히 짧고 정치 환경이 급변하는 한국 정치의 특성상 쉽사리 결론을 예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치 상식의 차원에서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안 전 교수는 아직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에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막판까지 대선의 최정점(最頂點)에 서 있었던 사람이 대통령 취임 일주일 만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것은 기존 정치 상식의 문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 패배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있다. 하지만 안 전 교수 또한 상당한 책임이 있다. 본인 스스로가 “국민들의 열망을 제대로 잘 수렴시키지 못했고 무한(無限)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상당수 야권 지지자들은 여전히 안 전 교수가 지난 대선 때 일방적인 후보 사퇴와 민주당 문재인 전 후보를 제대로 돕지 않았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치 상식으로 보면 안 전 교수는 지난 대선의 좌절과 실패, 대선 결과에 나타난 민심을 읽으면서 성찰과 숙고(熟考)의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로 안 전 교수는 작년 9월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패배한 사람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같이 약속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겁니다.”

대선이 끝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았는데, 안 전 교수가 느닷없이 보궐선거에 뛰어든 것은 아무리 새 정치의 시작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안 전 교수는 ‘국민의 시각’이 아니라 ‘안철수의 시각’에서만 정치를 바라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안보 위기 속 정계 복귀는 실수

현재 박근혜 정부가 처한 안보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당장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포기, 정전 협정 파기 및 남북 간 불가침 합의 전면 무효화로 군사적 긴장도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 북한은 ‘키 리졸브’ 한미 군사훈련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반발하며 ‘핵 불바다’, ‘제2의 조선전쟁’, ‘핵 선제타격’을 언급하면서 군사적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안 전 교수의 정치 복귀 선택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타이밍도 좋지 않았고 명분도 약했다. 만약 안 전 교수가 정치 복귀 대신 “국가안보에는 여야,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치권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 초당적(超黨的)인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자신도 박근혜 정부를 적극 돕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면 어떠했을까?

“안보는 보수고 경제는 진보다”는 자신의 평소 신념과 맥을 같이할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위기 상황에서도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 전 교수의 이번 결정은 본인은 “여러 가지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고 하지만 정치 아마추어리즘의 단면을 잘 보여준 것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50%대로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상당히 낮다. 또한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기대한 만큼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철수 전 교수로서는 이런 상황이 자신이 움직일 호(好)조건으로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새 정부에 쏠려 있다. 따라서 안 전 교수가 작년 대선 때와 똑같은 새 정치 메시지를 들고 정치에 복귀한 것은 국민 대다수 가슴 속에 큰 울림을 낳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진보정의당과 야당 일부에서 거센 반발과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진보정의당의 대표이자 삼성 X-파일 공개로 노원병에서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魯會燦) 전 의원은 안 전 교수의 행보에 대해 맹비난했다. “安하무인이고 새 정치와도 맞지 않으며 ‘힘이 곧 정의’라는 낡은 정치 철학의 발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지어 “가난한 집 가장이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올 생각을 해야지 집안 식구들 먹는 걸 뺏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신기남(辛基南) 민주당 의원도 “안 전 후보가 4월 국회 입성이라는 눈앞 과제에 매몰돼 야권 전체에 분열 반목의 앙금을 남기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민주당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 가져온 틈새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근시안(近視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안 전 교수의 출마를 반대하는 여론(46.0%)이 찬성하는 여론(34.1%)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이 나온 것은 이런 정치권의 비난과 국민들의 우려가 교차되어 나온 것이다.

入黨이냐 合黨이냐

향후 안철수 전 교수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표2>에서 보듯이,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민주당 입당(入黨) 방안이다. 독자 노선을 걷다가 적당한 시점에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이다.

지난 1996년 2월 ‘대쪽’ 이미지로 평판이 좋았던 이회창(李會昌) 전 총리는 줄곧 독자 노선을 걷다가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朴元淳)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런 사례들이 제시된 시나리오에 부합한다. 이 시나리오는 안 전 교수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치 행보를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새 정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고, 민주당 내 차기 대권 후보들과 치열한 경선을 치러야 하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야당 합당(合黨) 방안이다. 신당을 창당해 독자 노선을 걷다가 기존 야당과 합당해 새로운 단일 야당을 만드는 방안이다.

2011년 친노(親盧) 세력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혁신과 통합’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과 합당해서 민주통합당을 만들어 당권(黨權)과 대권(大權)을 장악한 것과 유사하다.

이 방안은 당 밖의 인사와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 없이 당내 경선으로 대선 후보가 선정되고 합당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합당 이후 친안(親安)과 반안(反安) 세력 간 내전 수준의 계파 갈등으로 새 정치가 훼손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김영삼(金泳三)과 김대중(金大中)이 만든 신한민주당이 예상을 깨고 원내 제1야당이었던 민한당을 격침시키고 흡수·통합했던 적이 있다. 정치 거목(巨木)이었던 이들이 야권발(發) 정계 개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관제(官制) 야당이었던 민한당보다 신한민주당이 전두환 군부통치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정통성과 힘을 갖고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권이 대립과 갈등, 계파 정치의 구태를 반복하면서 정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안철수 현상’을 재점화시킬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안철수 전 교수에게 과거 YS나 DJ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

최장집의 조언

안철수 전 교수가 ‘제3신당’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세 번째 시나리오는 제3정당 창당 방안이다. 신당을 창당하고 외부 세력과의 연대 없이 끝까지 독자 노선을 걷는 방안이다.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文國現) 후보가 창조한국당이라는 독자 신당을 만들어 대선에서 완주했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시나리오는 새 정치 원칙에 충실한 장점이 있지만 야권 분열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더구나, 지난 대선 때와 같이 대선 승리를 위해 다른 야당 대선 후보와 기계적이고 지루한 후보 단일화 경쟁에만 몰입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민주당 문희상(文喜相) 비상대책위원장이 “안철수에게 신당을 만들자고 하는 건 악마의 유혹이고 신당이 뜨면 야권 전체가 공멸(共滅)한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가 안 전 교수가 생각하는 새 정치 구상에 부합하는 것 같다. 최장집(崔章集)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 언론사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안 전 교수의 향후 진로에 대해 “민주통합당과의 결합보다는 제3신당을 만들어 양당(兩黨) 구조를 깨는 게 한국 정치에 더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민주당에 들어가서 개혁하는 것을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제3의 정당을 만든다면 그것 자체가 한국 정치사와 정당체제의 중대한 변화이다. 민주당의 개혁을 위해서라도 외생적(外生的) 정당의 충격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전 교수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의 저자가 최 교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향후 행보는 이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일 개연성이 크다. 여하튼 안 전 교수의 결단이 어리석은 자충수(自充手)인지 아니면 절묘한 타이밍의 승부수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식 새 정치가 지금 국민의 가슴을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안철수의 미래는?

안 전 교수의 행보가 정치권에 던지는 보다 본질적인 화두는 크게 두 가지로 축약된다. 하나는 안 전 교수의 조기 정계 복귀가 정치판에 지각 변동(big bang)을 가져올 수 있는가. 또 다른 하나는 ‘안철수 현상’을 재점화시켜 2017년에 의미 있는 대권 주자로 재부상할 수 있을까에 있다. 아래 <표3>에서 보듯이 안철수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가장 긍정적인 요인은 대한민국 대선에서는 10년마다 정권이 교체되었고,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당장 민주당에는 안 전 교수와 같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대권후보가 없다. 분명 대선 패배 이후 계파 갈등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민주당의 허약한 정당체제도 안 전 교수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요인이다. 민주당의 몰락으로 인해 안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해서 정당 개편을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에 미래는 없다?

지난 2012년 총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일반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정당 일체감은 참담한 수준이다. <표4>에서 보듯이, 평소 특정 정당에 대해 가깝게 느끼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에서 새누리당을 지목한 사람은 48.3%로 민주당(39.4%)보다 10%포인트가량 많았다. 또한 의견을 잘 대변해 주는 정당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 새누리당을 지목한 사람은 52.1%로 민주당(34.0%)보다 훨씬 많았다. 이 수치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얻은 51.6%와 근접한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가 지난 3월 6일 여론조사에서 ‘현재 지지하는 정당’을 물어본 결과 새누리당 46.3%, 민주당 20.1%, ‘모름·무응답’ 27.6% 등이었다. ‘만약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어느 정당을 지지하겠는가’란 질문에는 새누리당(36.1%)에 이어 안철수 신당(23.6%)이 2위에 올랐고 민주당(10.6%)은 3위였다. 민주당은 기존 지지층 중에서 46.5%가 안철수 신당으로 이동하면서 지지율이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일부가 안 전 교수의 신당 쪽으로 지지를 옮기면서 지지율이 10.2%포인트 하락했다.

더구나 역대 야당의 텃밭임과 동시에 향후 야권발 정계 개편의 방향타 역할을 할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34.4%로 민주당(24.1%)을 큰 차이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안철수 신당이 창당될 경우 호남의 민주당 지지율이 40.9%에서 16.8%포인트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분명 호남 지역에서 “민주당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미래가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안 전 교수가 야권발 정계 개편을 주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방증이다.

이런 민심의 흐름 속에서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4·24 재보선과 5·4 전당대회까지 전열을 정비하지 못할 경우 존립 기반이 위태로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40과 수도권의 응원

그 밖에 안 전 교수의 핵심 지지층인 20~30대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인 것이다.

<그림1>에서 보듯이, 2030세대의 투표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이들 세대의 결집은 예전보다 크게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등장으로 젊은 층의 돌풍이 매서웠던 2002년 16대 대선과 비교해도 20대 전반과 20대 후반의 투표율은 각각 13.2%p와 10.5%p 상승했다. 반면 30대 전반과 30대 후반의 투표율은 각각 2.0%p와 1.5%p 상승했다. 이에 비해 50대 투표율은 16대 대선보다 오히려 1.7%p 감소했고 60세 이상 투표율은 2.2%p만 증가했다. 여하튼 젊은 세대의 응집력과 투표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과 비례해서 안 전 교수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표5>는 역대 대선에서 지역별 유권자 수이다. 인구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가설(假說)이 존재하는 한 안 전 교수가 수도권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결정적인 요인은 인천·경기 지역에서 예상을 깨고 문재인 후보에게 이겼기 때문이다.

安哲秀의 딜레마

이런 긍정적인 요인 못지않게 부정적인 요인들도 많다.

우선, 정치 세력화와 새 정치와의 충돌이다. 새 정치를 한다고 기존 정치 세력과의 연대를 멀리하면 정치 세력화는 힘들어지고, 그렇다고 정치 세력화를 한다고 기존 정치권과 타협하면 새 정치는 물거품이 된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안철수 캠프 출신 일부 인사들이 만든 ‘새 정치 연대 준비모임’은 “안 전 교수의 민주당 입당은 정치적 무덤”이라며 조기 창당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역과 이념 기반이 취약한 안 전 교수가 ‘새 정치 실현’이라는 가치만을 앞세워 신당을 만들 경우 성공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안 전 교수의 행보에 실망한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안철수=새 정치’라는 등식이 효력을 다했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민주당과 벌이는 대선 진실게임과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의 안 전 교수에 대한 파상적인 인신공격으로 국민들이 ‘안철수식 새 정치’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안 전 교수가 작년 단일화 협상 때 문재인 후보를 만나서 “민주당에 입당할 테니 후보 양보하라”고 했다,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 지원 조건으로 “차기 대통령은 안철수라는 취지의 얘기를 해달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안 전 교수는 새 정치와는 거리가 먼 탐욕스러운 기존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 말로는 새 정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철저하게 실속을 챙기는 기회주의적 행보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유권자 구성의 변화

안 전 교수의 미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은 유권자의 세대별 구성 변화이다. <표6>에서 보듯이, 즉 2002년 대선 때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8.3%였던 2030세대는 10년 후인 2012년 10%포인트 줄어 전체 유권자의 38.2%이다. 반면 2002년 대선 때 29.3%에 불과했던 50대 이상 세대는 10%포인트 이상 늘어 전체 유권자의 40%가 되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인구 고령화(高齡化) 현상이 앞으로 더욱 강화되면서 대선에서 진보 후보가 더욱 고전(苦戰)할 것이라는 추론이다. 정치 경험이 없는 인적 풀의 한계와 누구와 함께 어떤 과정을 거쳐 중요한 정치 결정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정책 결정 구조도 안 전 교수가 세를 모으고 대권을 도모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노원병 보궐선거가 안 전 교수 정치력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발하는 야권 세력을 다독이며 새로운 관계 구도를 설정하고, 또 새누리당 후보를 꺾어 새 정치 행보의 발판을 마련할 능력이 있는지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원병 보선에서 당초 안 전 교수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지만 현재 분위기는 야권 연대 불발시 누구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보정의당이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을 전략 공천했기 때문이다.

아래 <표7>에서 보듯이 노원병 지역구의 경우, 2008년 총선에서는 야권이 분열되어 석패(惜敗)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야권 연대가 성사되어 큰 차이로 승리했다.

안 전 교수는 정치공학적 시각에서 야권 연대를 반대하고 있지만, 노회찬 전 의원이 두 번의 총선에서 40%대의 득표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불리한 상황으로 작용한다.

안 전 교수는 일단 야권 연대보다 독자 생존 방식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교수가 여러 위험 요인을 뚫고 노원병 보선에서 승리해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면 정치권의 새판 짜기 흐름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안 전 교수도 귀국 기자회견에서 “서울 노원병에서 선택을 해주신다면 뜻을 같이하시는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교수가 원내에 진입해서 정치력을 보여주면 10월 보궐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신당 창당이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 일부 세력이 이탈해 안 전 교수 측에 합류할 수 있는데다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새누리당 개혁 세력이 안 전 교수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시 시작된 안 전 교수의 새 정치 실험이 성공으로 귀결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안 전 교수의 새 정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정치 세력화’와 ‘정치 세속화’(secularization) 간의 조화 속에 대변신을 해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세력화의 길은 곧 ‘정치 세속화’의 길과 맥을 같이한다. 정치 현실을 무시한 채 새 정치를 한다고 이상주의(理想主義)에 빠져버리면 미래는 없다. 안 전 교수는 평소에 “나는 변신을 잘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의사→CEO→교수→대선 후보로 그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변신해 왔다. 이제 진정한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변신을 할 때다.

유시민(柳時敏) 전 장관은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이 목표라면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한다”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하려면, 대통령을 목표로 삼는다면 권력투쟁을 놀이처럼 여기면서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시 말해 쉬운 길을 걷지 말고 끊임없이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국민의 가슴에 불을 댕겨야 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구를 버리고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부산에 출마해 그야말로 처절하게 패배했다. 노무현 후보가 소수·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스스로 찾아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 전 교수는 노원병 출마가 과연 가시밭길인지 다시금 깊이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변신을 해야

둘째,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 전 교수는 미국 체류 기간 영화 <링컨>을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이 영화에는 수정헌법 제13조 개정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안 전 교수는 “어떻게 여야를 잘 설득하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사고해서 일의 완수를 해내는가. 결국 정치는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링컨은 ‘노예 해방’이라는 큰 비전을 가지면서 다른 한편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반대파들과 뒷거래를 서슴지 않았고 거짓말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교활함을 가졌다.

새 정치를 부르짖는 안철수의 시각에서 보면 링컨은 경멸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 안 전 교수가 정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세속화(世俗化)의 길을 걷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정치 세속화는 현실과 야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국 정치의 고유한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고 도덕적 우월주의와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 정치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안 전 교수가 진정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나려고 한다면 이런 세속화의 길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만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새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 새누리당, 민주당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고 구태 정치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자신의 말처럼 “더 낮은 자세로 현실과 부딪치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편을 갈라 대립하는 높은 정치 대신에 국민의 삶과 국민의 맘을 중하게 여기는 낮은 정치”에 매진해야 한다.

변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변신을 해야 한다. 무모한 도전과 잘못된 변신은 실패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 개편에 나서야

셋째, 5060 기성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통계청은 2017년 세대별 유권자 구성이 ‘역(逆)피라미드 구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2017년 현재 60대 이상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25%로 가장 많고, 40대 유권자 20.2%, 50대 유권자 20.1%, 30대 유권자 18% 그리고 20대 유권자 16.7%의 순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5060세대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45.1%인 반면 2030세대 유권자는 34.7%에 불과하다. 50대 이상 유권자의 수는 더욱 증가하고 2030세대 유권자의 비중은 더욱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수치들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안 전 교수가 아무리 203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더라도 5060세대를 우군화(友軍化)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2017년 대선에서 반기문(潘基文) 유엔사무총장과 같이 506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2030세대의 롤모델로서 인정받는 인물이 부상되면 안 전 교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넷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대한민국 정치를 살리기 위한 정당 개편에 앞장서야 한다.

‘정당 재편성 이론’(party realign-ment)은 정당의 지지 기반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정당들 간 힘의 균형이 바뀌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정당 재편성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조건이 조성되었을 때 발생한다.

(1) 정당 간에 입장을 뚜렷하게 달리하는 중요한 쟁점의 등장으로 ‘이념적 분극화(分極化)’가 초래되고 (2) 이에 따라 주요 정당 지지기반 또는 유권자 지지 연합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며 (3) 이러한 지지 기반의 이동으로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새로운 다수당이 등장하게 되고 (4) 새로운 다수당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여 안정적인 통치연합을 구성하며…, 새롭게 등장한 집권연합은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정책 의제를 설정한다.

안철수, 자신의 말을 입증해야 할 때

안 전 교수는 신당 창당에 대해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야권발 정계 개편의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안 전 교수는 구호와 선언보다는 새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代案)을 내놓고 행동해야 한다. 생각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전 교수는 작년 대권 선언을 하면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희망을 담은 슬로건적 담론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제 안 전 교수는 자신이 했던 이 말을 입증(立證)해야 할 무한책임이 있다. 그런데 작년 안 전 교수 대선 출마 때 쏠렸던 관심은 강도가 약해졌다. 또한 안 전 교수는 작년 투표 당일 마치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버려 대선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했고 정치 복귀의 시점을 둘러싼 논란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번 돌아선 민심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 대통령만 되겠다’는 꼼수 정치로는 결코 꿈을 이루지 못한다. 반대로 대통령이 안 돼도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새 정치의 초석(礎石)이 되겠다고 행동하면 서광이 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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