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안철수에 끌려다녀 쟁점도, 정책도 실종
⊙ 경기·인천에서의 善戰으로 수도권 전체에서 문재인에게 불과 5만7849표 뒤져
⊙ 박근혜, 민주당의 약화와 새누리당 내 非主流 不在로 강력한 통치환경 조성
金亨俊
⊙ 56세. 한국외대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경기·인천에서의 善戰으로 수도권 전체에서 문재인에게 불과 5만7849표 뒤져
⊙ 박근혜, 민주당의 약화와 새누리당 내 非主流 不在로 강력한 통치환경 조성
金亨俊
⊙ 56세. 한국외대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박근혜 당선자는 506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 덕에 2040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사진은 12월 19일 서울 여의도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 모습. 중장년층 유권자들이 목도리, 장갑 등으로 무장한 채 투표장을 찾고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새누리당의 재집권으로 끝났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막판 맹추격을 따돌리고 100만 표 이상의 큰 차이로 승리했다. 박 후보는 51.6%의 득표로 1987년 이후 대선에서 첫 반수를 넘는 승리를 했지만 여전히 48%의 강력한 반대가 존재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이번 대선은 20년 만에 총선과 같은 해에 치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통상적인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정하고 사회의 틀을 새로 만드는 ‘주춧돌 선거’가 되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참으로 희한하고 특이한 일들이 많았다.
첫째, 여야 대선 후보들보다 장외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선거판을 주도했다. 2012년 9월 19일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11월 23일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기까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안철수 전 교수에 집중되었다.
이런 안철수 돌풍은 여야 후보들로 하여금 정치쇄신 경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 과거와 같이 ‘한탕주의’와 ‘한방주의’의 유혹에 빠지도록 하는 역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문·안 두 후보 간 지루하게 전개되었던 야권 단일화는 선거의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후보의 자질과 능력, 비전과 정책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특히, 야권은 후보 단일화만 성사되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한방주의에 매몰되어 여당과 차별화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보수와 진보의 총체적 진검승부
둘째, 이번 대선은 한국 대선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보와 보수가 총결집해서 치른 선거였다.
새누리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 등 비박(非朴)세력, 이회창과 이인제의 통일선진당 세력, 박세일 한선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합리적 보수세력을 모두 묶었다. 더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한광옥, 민주당 전 대표였던 한화갑 등 친 DJ계 호남 인사들과 재야의 김지하까지 대거 영입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에선 처음으로 보수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됐다.
문재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지지세력, 진보정의당, 다양한 시민사회를 포함한 ‘국민연대’를 구성했다. 2002년 대선에서 진보를 대표했던 권영길 후보는 3.9%를 득표했었다. 이번에는 선거 사흘을 남기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전격 사퇴함으로써 범(汎)진보 대 범보수의 초(超) 양강 구도가 형성되었다.
셋째, 산 사람보다는 오히려 죽은 사람이 주목받는 ‘유령 대선’이 되었다. 여야 후보는 사라지고 ‘박정희 대 노무현’, ‘독재자의 딸 대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비정상적인 구도가 힘을 받았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대선이 ‘과거 대 과거’의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거꾸로 갔다.
박 후보는 ‘참여정부 실패 책임론’을 들고 나왔고,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MB)정부 실패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다. 두 후보 모두 심판론에 사활을 걸었다.
더구나,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다”면서 “과거 정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정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다. 현 정부를 민생 실패 정부로 규정하면 집권당 후보는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새누리당은 야권이 제기하는 ‘이명박 정부 실패 공동 책임론’에 적절히 대응하고, 의도적으로 MB와 차별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런 전략을 선택했다.
넷째, 후보 간 정책 차별성이 거의 없는 선거였다. 실제 박·문 두 후보가 제시한 핵심 공약은 경제민주화, 복지, 정치쇄신, 일자리 창출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정책 차별화 실패
선거 용어로 표현하면 유권자 거의 모두가 동일한 선호를 갖는 ‘합의쟁점’(valence issue)만 부각되었지 유권자의 선호가 찬성과 반대의 상반되는 입장으로 나눠지는 ‘대립 쟁점’(position issue)은 없었다.
한 언론사가 선거를 열흘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두 후보의 공약을 알아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지지 후보의 공약을 맞힌 유권자가 55.9%에 그쳤다. 이는 두 후보가 정책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항에서도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의 공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선거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식 선거운동 시작부터 공약과 국정운영 비전 경쟁은 사라지고 자신들이 마련해 놓은 프레임에 상대 후보를 가두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쳤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선 민심은 선거 막판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이었다. <표1>에서 보듯이 각종 언론사의 여론조사 공표 금지 시점인 12월 13일 직전에 실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박·문 후보 간 격차가 크게 줄었다. 박 후보는 문 후보보다 평균 1.2%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국 대선에서 거론되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는 가설이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박 후보는 50.1%, 문 후보는 48.9%로 1.2%포인트 차이가 났고, 실제에서는 박 후보 51.6%, 문 후보 48.0%로 그 격차가 3.6%포인트였다.
[박근혜 승리 요인]
첫째, 인물경쟁력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를 압도했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일관성 있게 나타난 현상들이 있었다. 우선, 새누리당 재(再)집권보다는 정권교체 욕구가 훨씬 많았다. 실제로 대선 후보 등록 시점인 11월 25일에 실시한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 당선’ 은 39.7%, ‘야권 후보 당선’은 47.8%였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월 12일 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정권이 재창출돼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2%,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응답자는 45%였다.
또한 일반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개인의 경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2012년 10월 7일부터 9일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개인의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18.0%에 불과했고 ‘나빠졌다’(51.0%)는 그보다 2.8배 이상 많았다.
문 후보가 박 후보보다 ‘새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인식과 평가가 훨씬 많았다. 야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문 후보의 지지도가 박 후보를 압도하지 못한 것은 인물경쟁력에서 문 후보가 밀렸기 때문이다.
文, ‘안철수 의존형’ 선거
통상 대선은 후보가 중심이 돼서 치른다. 야권이 정권을 교체하려면 야권 후보가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문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철수 전 후보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자체 동력(動力)이 약했다. 문 후보의 이런 태생적 한계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월 12일 조사에 따르면, 박 후보 지지자들은 선호 이유로 ‘능력·경력’(33.3%)을 가장 많이 꼽았고, ‘정책과 공약’은 25.2%였다. ‘이념적 성향’ 9.9%, ‘이미지 및 인상’ 6.7%, ‘상대 후보가 싫어서’ 5.1%, ‘소속 정당’ 3.3% 순이었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정책 및 공약’(28.6%)을 가장 많이 꼽았다. ‘능력·경력’은 16.2%에 불과했다. 그다음으로 ‘상대 후보가 싫어서’ 15.2%, ‘이념적 성향’ 11.9%, ‘이미지 및 인상’ 6.9%, ‘소속 정당‘ 6.6%였다.
두 후보 모두 ‘소속 정당’, ‘이념적 성향’,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문 후보는 자신보다는 ‘경쟁 후보가 싫어서’ 지지를 받는 반사 이익이 훨씬 컸다.
SBS·TNS가 12월 10~12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공동유세를 벌이며 선거 공조에 나선 이후에, 선생님께서 지지하시는 대선 후보에 변화가 생겼나요? 변화가 없었나요?”라는 질문에 ‘지지후보 변화가 있었다’는 19.5%, ‘변화가 없었다’는 78.3%였다.
그런데 안 전 후보 사퇴 전 안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경우, 그 비율이 각각 47.2% 대 50.7%였다. 사퇴 전 안 전 후보의 지지도가 29.5%였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 유권자의 약 14%가 안철수 전 후보의 공동 유세로 ‘지지후보 변화가 있었다’고 응답한 것이다. 선거 막판 문 후보의 지지도 상승은 안 전 후보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안철수 의존형’ 행태는 문 후보의 존재를 약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유권자 구성 지형 변화
둘째, 중도 외연(外延) 확대보다는 보수대결집을 통한 지지층 강화 전략이 성공했다. 박 후보는 선거 전반부에는 평소 진보가 점유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정책을 펼치며 중도를 선점하기 위한 좌클릭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후반부터 선거 구도를 여 대 야,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 젊은 세대 대 기성 세대의 양강(兩强) 구도로 만드는 지지층 강화 전략을 채택했다.
그 이면에는 유권자 구성 지형의 변화가 한몫했다.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수도권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가 낮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 같다. <표2>에서 보듯이, 이번 대선의 총 유권자 수는 4046만4641명이다. 이번 대선은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유권자 수가 4000만명을 넘어선 선거였다.
40대가 880만4425명(21.8%)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이하 732만7794명(18.1%), 30대 815만405명(20.1%)으로 그 비율이 29.2%인 반면, 50대 777만75명(19.1%), 60대 이상 841만1942명(20.8%)이었다.
이회창-노무현의 양자대결로 치러진 2002년 대선에서는 전체 유권자가 3499만1529명이었다. 연령대별로 20대 810만6862명(23.2%), 30대 879만697명(25.1%), 40대 784만4964명(22.4%), 50대 452만7243명(12.9%), 60대 이상 572만1763명(16.4%) 등이었다.
2002년과 비교할 때 이번 대선에서는 20대와 30대 젊은 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8.3%에서 38.2%로 9.1%포인트 감소했다. 유권자 숫자로는 1689만명에서 1547만명으로 142만명이 줄었다. 50대와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29.3%에서 39.9%로 10.6%포인트 증가했다. 유권자 숫자로는 1024만명에서 1618만명으로 594만명이 늘었다. 5년 전인 2007년 대선과 비교해 50대는 195만여 명, 60대 이상은 160만여 명 증가한 반면, 2030세대는 116만8000명가량 줄었다.
세대 간 대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고령 인구가 진보 성향의 젊은 층 인구를 앞섰다는 것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유권자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구나, 박 후보의 핵심 지지층인 50대의 투표율이 무려 89.9%라는 경이적인 일이 벌어졌고, 60대 이상에서도 투표율이 78.8%로 높게 나왔다. <표3>에서 보듯이 50대와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보다 각각 25.1%포인트와 44.8%포인트 앞섰다. 박 후보는 보수 이념적 성향이 강한 5060세대의 이 같은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2040세대에서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박 후보 승리의 핵심 요인은 보혁(保革) 대결구도에서 위기감을 느낀 5060세대의 보수층이 총결집했고, 동시에 안철수를 지지했던 5060세대의 표를 대폭 흡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北미사일 발사 영향 작지 않아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월 12일 조사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이번 대선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응답은 과반이었다.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응답자가 39.9%였고,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사람도 16.7%였다. ‘많은 영향을 줄 것’(7.5%) 또는 ‘약간 영향을 줄 것’(30.7%)이라는 응답자는 합쳐서 38.2%였다.
국민 10명 중 4명 정도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다. 보수 성향이 강한 5060세대가 안보 위기를 크게 느끼면서 박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연결된 것 같다.
셋째, 박 후보가 여당의 취약지역이었던 인천·경기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한 것이다.
통상 야권 후보는 수도권에서 강세를 보인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보다 서울(4.0%p), 인천(2.1%p), 경기(3.8%p) 등 수도권 전체에서 3.7%(429,947) 앞섰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보다 서울(6.3%p), 인천(5.2%p), 경기(6.5%p) 등 수도권 전체에서 6.3%포인트(720,144) 앞섰다. 그런데 <표4>에서 보듯이,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에게 서울에서 3.2%포인트(203,607표) 뒤졌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경기(23.1%)에서 1.2%포인트(86,531표), 인천에서도 3.6%포인트(58,387표) 앞섰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전체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에게 5만7849표 뒤지는 데 그쳐 선방(善防)한 것이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 때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범진보 정당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수는 509만3139표(48.6%)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 범보수정당들의 467만1175표(44.6%)보다 42만1964표(4.2%) 앞섰다.
[박근혜 당선자의 통치환경]
박근혜 당선자는 “국민께 드린 약속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대통령이 돼서 여러분이 기대하시던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런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통치 환경에 대한 장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국정운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박 당선자의 통치 환경을 SWOT 분석하면 <표5>와 같다.
장점(strength)으로는 1987년 이후 실시된 대선에서 처음으로 과반 득표를 달성했다는 것과 집권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여대야소(與大野小)’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본 정치 환경이 조성된 것은 큰 장점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동안 형성된 미디어 환경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
반면 기회(opportunity) 요인으로는 민주당 지도 체제가 절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을 재편할 구심점이 없고,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을 상대로 강력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유력한 대권 후보도 없다. 따라서 민주당의 구조적 특성상 세력 개편은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될지 모른다.
민주당의 무기력함과 반개혁적 태도가 국민들의 비난과 분노를 사게 되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박근혜 당선자가 시간을 벌면서 자신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될 수 있다.
또한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비(非)주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큰 행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31만 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지만 집권당 내에 친박(親朴)이라는 지역과 이념에 기반을 둔 강력한 비주류가 존재했다. 미디어 법, 세종시 수정 등을 둘러싸고 친이(親李)와 친박 간의 내전은 결국 MB의 효율적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았다.
현재 새누리당은 비주류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박 당선자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성도 국민을 통합하고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복합갈등균열구조
박 당선자가 좋은 정치를 펼쳐서 ‘국민 모두가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장점과 기회 요인보다는 약점(weakness)과 위협(threat) 요인들을 잘 파악해서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박 당선자의 최대 약점은 취약한 리더십이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를 펼치는 것은 좋지만 불통과 수직적 리더십은 국민을 설득하고 경쟁자를 포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통 없는 원칙주의는 독단으로 흐를 수도 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이전부터 오랜 기간 동안 가신으로서 박 당선자를 도왔던 친박 인사들과 이번 대선 때 영입한 인사들 간에 논공행상을 둘러싸고 권력 투쟁이 심화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은 약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집권당-국회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철저하게 대통령 측근 인사들로 구성되게 된다. 이런 구성은 외형상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서 일방주의로 빠질 수 있다.
박 당선자 통치의 위협 요인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가장 큰 위협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형성된 ‘복합갈등 균열구조’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와 보수가 총집결해서 싸움으로써 사회가 이념적 극단주의로 돌입했다.
더구나, 최근에 약화 조짐을 보였던 망국적 지역 분할 구도가 다시 재편된 것은 향후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서울과 호남에서만 승리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지난 1992년 대선에서 충청과 영남이 연대해서 호남을 배제했던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세대 갈등 구조도 고착화되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30대, 40대 연령층이 하나로 묶여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50대와 6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대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박 당선자가 집권 초기 인수위 시절부터 이런 복합 갈등 구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통합의 대통령이 아니라 절반의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선거연합’ 와해 가능성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선거 때 도움을 받았던 세력을 통치하면서 배제하면 민심이반이 일어나고 실패하기 쉽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호남과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대북 특검을 받아들여 박지원 등 DJ 핵심 인물을 제거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통치 연합이 선거 연합과 충돌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집권 초기에 이런 충돌이 노무현 정부 실패의 가장 큰 이유였다.
박 당선자는 승리하기 위해 범보수 연대를 구축했다. 문제는 박 당선자가 집권 후에 국민에게 약속했던 새 정치를 펼치고 정치쇄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선거 때 영입한 ‘올드 보수 세력’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통치 연합이 선거 연합을 깨는 빌미를 제공해서 보수 분열의 씨앗이 되고 통치 기반을 흔들지도 모른다.
박근혜 당선자는 자신의 핵심 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제시하면서 많은 국민에게 기대감을 안겼다. 하지만 집권 초기 글로벌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수출이 세계 경기 침체로 탄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경제가 침체되면 경제민주화는 추진하고 싶어도 추진할 수가 없게 된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수출과 성장이 멈추면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실이 국민들이 기대 상승(rising expectation)과 동떨어질 때 민심은 이반되는 법이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는 언제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지 모른다. 박 당선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 또는 국제 금융 위기와 같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변수 때문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집권 초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후보는 자신이 집권하면 대통령 산하에 ‘국정쇄신정책회의’(가칭)를 설치해 자신의 공약뿐 아니라 야권 후보의 공약 등 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회의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의 약점과 위협 요인을 완화시키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박 당선자가 성공하는 첫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 두 쪽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통합해야 한다. 5년 단임제의 구조적 한계를 깨닫고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과제 하나라도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야당을 악의 축으로 여기고 편 가르기와 극단의 정치에 매몰되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은 20년 만에 총선과 같은 해에 치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통상적인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정하고 사회의 틀을 새로 만드는 ‘주춧돌 선거’가 되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참으로 희한하고 특이한 일들이 많았다.
첫째, 여야 대선 후보들보다 장외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선거판을 주도했다. 2012년 9월 19일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11월 23일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기까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안철수 전 교수에 집중되었다.
이런 안철수 돌풍은 여야 후보들로 하여금 정치쇄신 경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 과거와 같이 ‘한탕주의’와 ‘한방주의’의 유혹에 빠지도록 하는 역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문·안 두 후보 간 지루하게 전개되었던 야권 단일화는 선거의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후보의 자질과 능력, 비전과 정책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특히, 야권은 후보 단일화만 성사되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한방주의에 매몰되어 여당과 차별화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보수와 진보의 총체적 진검승부
둘째, 이번 대선은 한국 대선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보와 보수가 총결집해서 치른 선거였다.
새누리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 등 비박(非朴)세력, 이회창과 이인제의 통일선진당 세력, 박세일 한선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합리적 보수세력을 모두 묶었다. 더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한광옥, 민주당 전 대표였던 한화갑 등 친 DJ계 호남 인사들과 재야의 김지하까지 대거 영입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에선 처음으로 보수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됐다.
문재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지지세력, 진보정의당, 다양한 시민사회를 포함한 ‘국민연대’를 구성했다. 2002년 대선에서 진보를 대표했던 권영길 후보는 3.9%를 득표했었다. 이번에는 선거 사흘을 남기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전격 사퇴함으로써 범(汎)진보 대 범보수의 초(超) 양강 구도가 형성되었다.
셋째, 산 사람보다는 오히려 죽은 사람이 주목받는 ‘유령 대선’이 되었다. 여야 후보는 사라지고 ‘박정희 대 노무현’, ‘독재자의 딸 대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비정상적인 구도가 힘을 받았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대선이 ‘과거 대 과거’의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거꾸로 갔다.
박 후보는 ‘참여정부 실패 책임론’을 들고 나왔고,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MB)정부 실패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다. 두 후보 모두 심판론에 사활을 걸었다.
더구나,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다”면서 “과거 정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정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다. 현 정부를 민생 실패 정부로 규정하면 집권당 후보는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새누리당은 야권이 제기하는 ‘이명박 정부 실패 공동 책임론’에 적절히 대응하고, 의도적으로 MB와 차별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런 전략을 선택했다.
넷째, 후보 간 정책 차별성이 거의 없는 선거였다. 실제 박·문 두 후보가 제시한 핵심 공약은 경제민주화, 복지, 정치쇄신, 일자리 창출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정책 차별화 실패
선거 용어로 표현하면 유권자 거의 모두가 동일한 선호를 갖는 ‘합의쟁점’(valence issue)만 부각되었지 유권자의 선호가 찬성과 반대의 상반되는 입장으로 나눠지는 ‘대립 쟁점’(position issue)은 없었다.
한 언론사가 선거를 열흘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두 후보의 공약을 알아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지지 후보의 공약을 맞힌 유권자가 55.9%에 그쳤다. 이는 두 후보가 정책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항에서도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의 공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정책선거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식 선거운동 시작부터 공약과 국정운영 비전 경쟁은 사라지고 자신들이 마련해 놓은 프레임에 상대 후보를 가두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쳤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선 민심은 선거 막판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이었다. <표1>에서 보듯이 각종 언론사의 여론조사 공표 금지 시점인 12월 13일 직전에 실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박·문 후보 간 격차가 크게 줄었다. 박 후보는 문 후보보다 평균 1.2%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국 대선에서 거론되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는 가설이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박 후보는 50.1%, 문 후보는 48.9%로 1.2%포인트 차이가 났고, 실제에서는 박 후보 51.6%, 문 후보 48.0%로 그 격차가 3.6%포인트였다.
[박근혜 승리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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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선은 후보간 정책 차별성이 사라진 선거였다. 장외의 안철수 전 후보의 말과 행동이 선거흐름을 주도했다. 사진은 2012년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첫 TV 토론 모습. |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일관성 있게 나타난 현상들이 있었다. 우선, 새누리당 재(再)집권보다는 정권교체 욕구가 훨씬 많았다. 실제로 대선 후보 등록 시점인 11월 25일에 실시한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 당선’ 은 39.7%, ‘야권 후보 당선’은 47.8%였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월 12일 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정권이 재창출돼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2%,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응답자는 45%였다.
또한 일반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개인의 경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2012년 10월 7일부터 9일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개인의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18.0%에 불과했고 ‘나빠졌다’(51.0%)는 그보다 2.8배 이상 많았다.
문 후보가 박 후보보다 ‘새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인식과 평가가 훨씬 많았다. 야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문 후보의 지지도가 박 후보를 압도하지 못한 것은 인물경쟁력에서 문 후보가 밀렸기 때문이다.
文, ‘안철수 의존형’ 선거
통상 대선은 후보가 중심이 돼서 치른다. 야권이 정권을 교체하려면 야권 후보가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문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철수 전 후보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자체 동력(動力)이 약했다. 문 후보의 이런 태생적 한계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월 12일 조사에 따르면, 박 후보 지지자들은 선호 이유로 ‘능력·경력’(33.3%)을 가장 많이 꼽았고, ‘정책과 공약’은 25.2%였다. ‘이념적 성향’ 9.9%, ‘이미지 및 인상’ 6.7%, ‘상대 후보가 싫어서’ 5.1%, ‘소속 정당’ 3.3% 순이었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정책 및 공약’(28.6%)을 가장 많이 꼽았다. ‘능력·경력’은 16.2%에 불과했다. 그다음으로 ‘상대 후보가 싫어서’ 15.2%, ‘이념적 성향’ 11.9%, ‘이미지 및 인상’ 6.9%, ‘소속 정당‘ 6.6%였다.
두 후보 모두 ‘소속 정당’, ‘이념적 성향’,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문 후보는 자신보다는 ‘경쟁 후보가 싫어서’ 지지를 받는 반사 이익이 훨씬 컸다.
SBS·TNS가 12월 10~12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공동유세를 벌이며 선거 공조에 나선 이후에, 선생님께서 지지하시는 대선 후보에 변화가 생겼나요? 변화가 없었나요?”라는 질문에 ‘지지후보 변화가 있었다’는 19.5%, ‘변화가 없었다’는 78.3%였다.
그런데 안 전 후보 사퇴 전 안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경우, 그 비율이 각각 47.2% 대 50.7%였다. 사퇴 전 안 전 후보의 지지도가 29.5%였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 유권자의 약 14%가 안철수 전 후보의 공동 유세로 ‘지지후보 변화가 있었다’고 응답한 것이다. 선거 막판 문 후보의 지지도 상승은 안 전 후보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안철수 의존형’ 행태는 문 후보의 존재를 약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유권자 구성 지형 변화
둘째, 중도 외연(外延) 확대보다는 보수대결집을 통한 지지층 강화 전략이 성공했다. 박 후보는 선거 전반부에는 평소 진보가 점유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정책을 펼치며 중도를 선점하기 위한 좌클릭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후반부터 선거 구도를 여 대 야,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 젊은 세대 대 기성 세대의 양강(兩强) 구도로 만드는 지지층 강화 전략을 채택했다.
그 이면에는 유권자 구성 지형의 변화가 한몫했다.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수도권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가 낮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 같다. <표2>에서 보듯이, 이번 대선의 총 유권자 수는 4046만4641명이다. 이번 대선은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유권자 수가 4000만명을 넘어선 선거였다.
40대가 880만4425명(21.8%)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이하 732만7794명(18.1%), 30대 815만405명(20.1%)으로 그 비율이 29.2%인 반면, 50대 777만75명(19.1%), 60대 이상 841만1942명(20.8%)이었다.
이회창-노무현의 양자대결로 치러진 2002년 대선에서는 전체 유권자가 3499만1529명이었다. 연령대별로 20대 810만6862명(23.2%), 30대 879만697명(25.1%), 40대 784만4964명(22.4%), 50대 452만7243명(12.9%), 60대 이상 572만1763명(16.4%) 등이었다.
2002년과 비교할 때 이번 대선에서는 20대와 30대 젊은 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8.3%에서 38.2%로 9.1%포인트 감소했다. 유권자 숫자로는 1689만명에서 1547만명으로 142만명이 줄었다. 50대와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29.3%에서 39.9%로 10.6%포인트 증가했다. 유권자 숫자로는 1024만명에서 1618만명으로 594만명이 늘었다. 5년 전인 2007년 대선과 비교해 50대는 195만여 명, 60대 이상은 160만여 명 증가한 반면, 2030세대는 116만8000명가량 줄었다.
세대 간 대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고령 인구가 진보 성향의 젊은 층 인구를 앞섰다는 것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유권자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구나, 박 후보의 핵심 지지층인 50대의 투표율이 무려 89.9%라는 경이적인 일이 벌어졌고, 60대 이상에서도 투표율이 78.8%로 높게 나왔다. <표3>에서 보듯이 50대와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보다 각각 25.1%포인트와 44.8%포인트 앞섰다. 박 후보는 보수 이념적 성향이 강한 5060세대의 이 같은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2040세대에서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박 후보 승리의 핵심 요인은 보혁(保革) 대결구도에서 위기감을 느낀 5060세대의 보수층이 총결집했고, 동시에 안철수를 지지했던 5060세대의 표를 대폭 흡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北미사일 발사 영향 작지 않아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월 12일 조사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이번 대선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응답은 과반이었다.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응답자가 39.9%였고,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사람도 16.7%였다. ‘많은 영향을 줄 것’(7.5%) 또는 ‘약간 영향을 줄 것’(30.7%)이라는 응답자는 합쳐서 38.2%였다.
국민 10명 중 4명 정도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다. 보수 성향이 강한 5060세대가 안보 위기를 크게 느끼면서 박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연결된 것 같다.
셋째, 박 후보가 여당의 취약지역이었던 인천·경기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한 것이다.
통상 야권 후보는 수도권에서 강세를 보인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보다 서울(4.0%p), 인천(2.1%p), 경기(3.8%p) 등 수도권 전체에서 3.7%(429,947) 앞섰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보다 서울(6.3%p), 인천(5.2%p), 경기(6.5%p) 등 수도권 전체에서 6.3%포인트(720,144) 앞섰다. 그런데 <표4>에서 보듯이,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에게 서울에서 3.2%포인트(203,607표) 뒤졌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경기(23.1%)에서 1.2%포인트(86,531표), 인천에서도 3.6%포인트(58,387표) 앞섰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전체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에게 5만7849표 뒤지는 데 그쳐 선방(善防)한 것이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012년 4월 총선 때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범진보 정당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수는 509만3139표(48.6%)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 범보수정당들의 467만1175표(44.6%)보다 42만1964표(4.2%) 앞섰다.
[박근혜 당선자의 통치환경]
박근혜 당선자는 “국민께 드린 약속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대통령이 돼서 여러분이 기대하시던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런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통치 환경에 대한 장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국정운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박 당선자의 통치 환경을 SWOT 분석하면 <표5>와 같다.
장점(strength)으로는 1987년 이후 실시된 대선에서 처음으로 과반 득표를 달성했다는 것과 집권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여대야소(與大野小)’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본 정치 환경이 조성된 것은 큰 장점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동안 형성된 미디어 환경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
반면 기회(opportunity) 요인으로는 민주당 지도 체제가 절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을 재편할 구심점이 없고,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을 상대로 강력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유력한 대권 후보도 없다. 따라서 민주당의 구조적 특성상 세력 개편은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될지 모른다.
민주당의 무기력함과 반개혁적 태도가 국민들의 비난과 분노를 사게 되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박근혜 당선자가 시간을 벌면서 자신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될 수 있다.
또한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비(非)주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큰 행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31만 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지만 집권당 내에 친박(親朴)이라는 지역과 이념에 기반을 둔 강력한 비주류가 존재했다. 미디어 법, 세종시 수정 등을 둘러싸고 친이(親李)와 친박 간의 내전은 결국 MB의 효율적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았다.
현재 새누리당은 비주류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박 당선자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성도 국민을 통합하고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복합갈등균열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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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19일 밤 민주당 지도부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 유력하다는 보도를 보며 침울해 하고 있다. |
박 당선자의 최대 약점은 취약한 리더십이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를 펼치는 것은 좋지만 불통과 수직적 리더십은 국민을 설득하고 경쟁자를 포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통 없는 원칙주의는 독단으로 흐를 수도 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이전부터 오랜 기간 동안 가신으로서 박 당선자를 도왔던 친박 인사들과 이번 대선 때 영입한 인사들 간에 논공행상을 둘러싸고 권력 투쟁이 심화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은 약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집권당-국회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철저하게 대통령 측근 인사들로 구성되게 된다. 이런 구성은 외형상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서 일방주의로 빠질 수 있다.
박 당선자 통치의 위협 요인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가장 큰 위협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형성된 ‘복합갈등 균열구조’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와 보수가 총집결해서 싸움으로써 사회가 이념적 극단주의로 돌입했다.
더구나, 최근에 약화 조짐을 보였던 망국적 지역 분할 구도가 다시 재편된 것은 향후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서울과 호남에서만 승리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지난 1992년 대선에서 충청과 영남이 연대해서 호남을 배제했던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세대 갈등 구조도 고착화되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30대, 40대 연령층이 하나로 묶여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50대와 6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대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박 당선자가 집권 초기 인수위 시절부터 이런 복합 갈등 구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통합의 대통령이 아니라 절반의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선거연합’ 와해 가능성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선거 때 도움을 받았던 세력을 통치하면서 배제하면 민심이반이 일어나고 실패하기 쉽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호남과 민주당의 도움을 받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대북 특검을 받아들여 박지원 등 DJ 핵심 인물을 제거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통치 연합이 선거 연합과 충돌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집권 초기에 이런 충돌이 노무현 정부 실패의 가장 큰 이유였다.
박 당선자는 승리하기 위해 범보수 연대를 구축했다. 문제는 박 당선자가 집권 후에 국민에게 약속했던 새 정치를 펼치고 정치쇄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선거 때 영입한 ‘올드 보수 세력’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통치 연합이 선거 연합을 깨는 빌미를 제공해서 보수 분열의 씨앗이 되고 통치 기반을 흔들지도 모른다.
박근혜 당선자는 자신의 핵심 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제시하면서 많은 국민에게 기대감을 안겼다. 하지만 집권 초기 글로벌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수출이 세계 경기 침체로 탄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경제가 침체되면 경제민주화는 추진하고 싶어도 추진할 수가 없게 된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수출과 성장이 멈추면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실이 국민들이 기대 상승(rising expectation)과 동떨어질 때 민심은 이반되는 법이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는 언제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지 모른다. 박 당선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 또는 국제 금융 위기와 같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변수 때문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집권 초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후보는 자신이 집권하면 대통령 산하에 ‘국정쇄신정책회의’(가칭)를 설치해 자신의 공약뿐 아니라 야권 후보의 공약 등 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회의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의 약점과 위협 요인을 완화시키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박 당선자가 성공하는 첫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 두 쪽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통합해야 한다. 5년 단임제의 구조적 한계를 깨닫고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과제 하나라도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야당을 악의 축으로 여기고 편 가르기와 극단의 정치에 매몰되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