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大選 포커스] 안철수와 싸이 : 월간조선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무소속 안철수(安哲秀) 대선(大選)후보. 그가 이번 18대 대선에서 승자가 될지 패자가 될지는 현재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실패해도 ‘안철수 현상’은 남는다는 점이다. ‘안철수 현상’이란 팬덤(fandom·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민은 2~3년에 한 번씩 ‘미친 듯’ 열광한다. 2002년 월드컵 때,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그랬다. 그리고 2012년, 가수 싸이(Psy)의 ‘말춤’에 만취되었으며, ‘안철수 현상’에 몸살을 앓는다. ‘강남 스타일’의 노랫말처럼 “갈 때까지 가 보자”는 것이다. 광풍은 이미 시작됐다.

군중심리의 형질전환

지난 10월 4일 밤, 8만 군중이 서울광장에 밀집했다. 특급호텔인 플라자호텔이 2층까지 개방하자, 미처 광장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비단 2040세대만이 아니라 노장층(老壯層)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호텔은 순식간에 서울역 대합실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자 서울광장과 호텔 안의 군중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성별, 나이, 국적은 물론 ‘광장과 호텔’이라는 공간의 경계까지 뛰어넘어 함께 ‘광분’한 것이다.

군중 사이로 ‘Psy 대통령’이라는 피켓이 넘실거렸다. 맞다. 이날 대통령은 그였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못생긴 사나이 싸이’가 대한민국을 점령한 것이다. 이날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인 이재국(李在國) 미디컴 대표는 이런 글을 남겼다.

“넘을 수 없다고 보는 벽이 한번 허물어지면 그 뒤부터 그것은 언제든 넘을 수 있는 보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편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티브가 된다.”

싸이 공연으로 폭발한 군중 퍼포먼스는 아주 작은 불씨나 트리거(trigger)만 닿으면 곧바로 전혀 다른 것으로 ‘형질전환’될 수 있다. 바로 사회학자 구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1841~1931)이 말한 ‘군중심리’다.

원래 그럴 목적으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뒤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빠르게 전염되면서 집단의 흥분이 커지고, 그 흥분을 어딘가로 확장시켜 발전시키고 싶은 열망이 생겨나고, 이는 급기야 대선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싸이’와 ‘안철수’는 만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지난 10월 7일 종로구 공평동 사무실에서 비전선언문을 공식발표하며 집권 후반 국정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문제가 아니라 답을 주는 정치 ▲개인과 기업이 함께 성공하는 경제 ▲모든 가능성이 발휘되는 사회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 ▲인간 존엄성을 지켜 주는 나라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 ▲강하고 당당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등 7가지 주제를 얘기했다.

그러나 그의 말의 핵심은 바로 다음의 말이다. “소수 기득권의 편만 들던 낡은 체제를 끝내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가 시작되었다. 밤새워 V3를 만들 때의 열의로 부정과 불의·부패한 낡은 체제와 싸울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안철수와 싸이의 공통점

안철수 후보는 지난 9월 19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변화’를 화두로 내걸었다.

‘낡은 체제’는 바로 ‘앙시앵 레짐(ancien r?gime)’이다. 앙시앵 레짐이란 1789년 프랑스혁명 때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절대왕정 체제인 구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즉 프랑스혁명 이전인 루이 14∼16세 시대 절대주의 아래에서 관습에 의한 신분계층이 분명하고, 국민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유린했던 절대왕정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철옹성 같았던 앙시앵 레짐은 왕, 귀족, 승려 등 소수의 특권계층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불만으로 인해 발생한 프랑스혁명에 의해 타도됐다.

안철수 후보는 이 점을 간파했다. 재벌과 정치인 등 소수 권력자에게 독점되었던 대한민국의 기득권 구조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아니, 낡은 체제에 절망한 유권자들이 ‘안철수 후보를 통해’ 끝내 보고 싶다는 희망이다. 낡은 구체제와의 결별, 그것이 바로 안철수 현상이다.

음악평론가들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완전 싼티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꽃미남’과 ‘식스팩’이 대세인 시대에 B급 외모와 뚱뚱한 사각 몸매, 저질 춤사위(cheesy dance)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달궜다. 대다수 B급 이하 인생들이 소수의 A급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A급 문화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안철수 현상 역시 동일선상에서 분석할 수 있다. 권력을 위탁했더니 오히려 주인이 되어 명령하는 부패·무능한 정치·경제 권력자들에게 철퇴를 내리겠다는 뜻이다.

대선 후에도 시한폭탄은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싸이 열풍과 안철수 현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더욱 강력해졌다는 사실이다. ‘강남 스타일’은 지난 7월 15일 처음 유튜브(YouTube)에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이후 현재(10월 12일)까지 조회수가 4억3000만 건을 넘었다. 급기야 ‘인터넷 빌보드 차트’에선 1위를 했고, 전체 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두고 마룬 파이브의 ‘One More Night’와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는 모두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소통기술의 획기적인 변화 덕분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정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아 ‘조직과 자금’에 있어 절대 열세일 수밖에 없는 안 후보가 존재하는 기반도 바로 SNS다. 그 때문에 메이저 음반사도,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지금 모두 ‘새된’ 모양새다.

메디치(Medici) 가문은 15~16세기 피렌체 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이며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그리고 이 가문을 일으킨 영리한 상인 코시모 데 메디치는 민중의 힘을 아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가문의 근거지인 그의 피렌체 저택은 1층에 업무 공간과 하인들의 거처가 있었는데, ‘피아노 노빌레(piano nobile)’라고 불린 접견실은 프레스코화(fresco畵)와 태피스트리(tapestry)로 장식됐으며 당시에는 귀한 유리로 창을 끼웠다. 2층에는 주방과 가족들이 사는 방이 있었다.

집이 화려해 보이지만 당시 다른 귀족들의 저택에 비하면 이 저택은 상당히 소박한 편이었다고 한다. 외부는 요새화하고 안뜰에는 햇빛이 잘 들도록 지은 ‘일반적인 피렌체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렌체 공화국 시민들은 코시모를 ‘겸손한’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불렀다. ‘겸손한 코시모’라고.

안철수 후보가 실패하고 새누리당 박근혜(朴槿惠) 후보 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18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안철수를 지렛대로 정당혁명·정치혁신을 꿈꿨던 민중의 힘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한폭탄’은 언제든지 다시 터질 수 있다. 가계부채, 높은 실업률, ‘하우스푸어’, 비싼 대학 등록금, 가족의 해체, 불안한 장래 등은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를 짓누르고 있다. 미래세대의 불안감은 청·장·노년층 모두를 ‘안전지대’ 밖으로 내몰고 있다.

누가 차기 정권 5년을 책임지게 되든 대다수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박탈감’의 불씨는 언제 화약고로 번질지 모른다. 1000조가 넘는다는 가계부채가 18대 대통령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다. ‘싸이와 안철수’를 통한 민심 대폭발, 누가 그 시한폭탄에 잠금장치를 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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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싸이

박근혜나 문재인이 이겨도 ‘안철수 현상’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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