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의 시각] 大選의 변수 ‘反朴 보수층’의 正體 : 월간조선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대담집(對談集), 그가 좋아하는 사람, 그를 좋아하는 사람, 그가 쓰는 사람들을 종합 평가하면 안철수 교수는 좌파적(左派的) 생각의 소유자란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려는 일들이 좌파정당인 민주당의 정책과 거의 겹친다.

그럼에도 보수(保守)성향 유권자들 가운데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과 대화를 해 보면 안철수 교수가 좌경적(左傾的)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더라도 ‘박근혜(朴槿惠)가 싫어서…’라는 이가 많다. 필자가 ‘반박보수(反朴保守)’라고 이름 붙인 이들 중엔 매우 반공적(反共的)인 사람도 많은데 박근혜 후보의 좌경 포퓰리즘적 정책에 실망한 경우이다. ‘반박보수’ 그룹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變數)가 될 것 같다.

지난 9월 9일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드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대선(大選)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교수를 46.3% 대(對) 43.9%(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로 앞섰다. 안철수 지지자가 더 많은 쪽은 19~49세, 남성(47.1%), 서울 및 호남 거주자, 대학재학 이상, 월(月)소득 301만원 이상, 화이트칼라, 학생층이었다.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 66.5%가 박근혜 후보, 25%가 안철수 교수를 지지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79.9%가 박 후보를 지지하지만 안 교수 지지도 15.1%였다. ‘중도(中道)’라는 이들은 41.9%가 박 후보, 47.2%가 안 교수를 지지했다. ‘진보’의 24.9%가 박 후보, 68.1%가 안 교수 지지였다. 그동안 새누리당과 언론이 안철수 교수의 이념적 성향을 덮고 넘어간 게 보수 및 중도성향 표를 많이 빼앗기는 주요 원인이 된 것 같다.

고(高)소득층에서 안철수 교수 지지가 높고(월 500만원 이상층에선 53.2%), 저(低)소득층(월 200만원 이하)에선 박 후보 지지율(63.6%)이 높은 것이 흥미롭다. 좌파진영의 복지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한 박 후보의 공약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 같은데, 고소득층이 좌파성향 인물을 지지한다는 건 정보 공유(共有)에 문제가 생긴 결과일 것이다.

왜 화가 났는가?

박근혜-문재인(文在寅) 양자(兩者) 대결 구도에선 ‘반박보수’ 현상이 약해진다. 자신이 보수라는 유권자들의 76.1%가 박근혜 지지(안철수와 대결할 때의 박 후보 지지율보다 9.6%포인트 높음), 17.7%가 문재인 지지였다(박근혜-안철수 대결 시 보수층의 안철수 지지율보다 7.3%포인트 낮음). 중도층에선 박 후보 55%, 문재인 36.7%, 이른바 진보층에선 박 후보 37.2%, 문재인 57.1% 지지였다.

보수-중도층은 문재인 의원을 이념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한데 안철수 교수에겐 그런 이념적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것 같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상당수, 중도의 거의 반(半), 고소득층의 다수(多數)가 안철수 지지 의사를 보인 것은 보수성향이면서도 박근혜 후보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 즉 ‘반박보수’ 그룹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반박보수층’은 두 부류이다.

첫째는 새누리당이 안철수 교수의 이념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박근혜 후보도 종북(從北)과 안보(安保) 문제를 철저히 배제하고 복지 중심의 공약(公約)을 내걸었기 때문에 안 교수의 좌파적 성향을 모르는 이들이다.

둘째는 확고한 반공 세력으로서 박 후보의 반(反)보수적 행태에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이다. 그러나 ‘반박 골수 보수층’은 5·16과 유신체제 등 박정희(朴正熙) 노선을 적극 지지한다.

새누리당 경선에서 박근혜씨가 후보로 확정된 뒤 한 수락연설이 대표적으로 반박보수층을 화나게 만든 예(例)이다. 한글전용(專用)-한자(漢字)말살로 한국인의 어휘력이 감퇴하기 시작한 이후 기자들과 정치인들은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예사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연설문도 그러했다.

<이 순간에도 많은 나라들이 경제위기 속에서 표류하고 있고, 그 위기의 파고가 우리한테 밀려오고 있습니다.>

‘파고’는 한자로 쓰면 ‘波高’인데, ‘파도의 높이’를 뜻한다. ‘波高 2m’ 식이다. ‘위기의 파고’보다는 ‘위기의 파도’가 적절한 표현이다. ‘파고’를 ‘위험한 상태’라는 비유어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한자어의 의미에 충실하려면, ‘위기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가 아니라 ‘위기의 파고가 높아졌다’고 해야 한다.

<저 박근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하거나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위를 위협하는’에서 ‘안위’는 ‘安危’라고 쓴다. ‘安危’는 ‘안전(安全)과 ‘위험(危險)’이라는 의미다. ‘안위를 위협하는’은 틀렸고, ‘안전을 위협하는’이 맞다. ‘나의 안위를 떠나 여러분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할 때 ‘안위’는 적확한 선택이다.

정통 보수를 허전하게 만드는 公約들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박근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박 후보의 이날 연설에서 보수의 가치는 보이지 않았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습니다.>

계층과 지역과 세대를 넘어 대통합을 하는 건 옳지만 ‘이념을 넘어서’ 대통합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말하는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를 가리키는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넘어 대통합의 길’을 갈 수는 없다. 한반도에선 국가를 부정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공산주의 이념을 제거하는 게 대통합의 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뒤섞는다든지,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건 국체(國體) 부정이다. 새누리당의 ‘국민 대통합, 함께 사는 대한민국’이란 구호는 흠 잡을 데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어떤 종류의 차별도 인정하지 않으므로 국민을 ‘1% 대(對) 99%’, ‘부자와 민중’, ‘특권층 대 보통사람’ 식으로 이간질하는 건 헌법정신 위반이다.

<국가의 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정(國政)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습니다.>

국가는 국민과 영토와 주권(主權)을 포괄한다. 국가와 국민을 서로 다르거나 맞서는 것인 양 대치시키는 국가관(國家觀)은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좌경적이란 의심을 살 수 있다. 좌파는 국가와 법을 지배계급의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가 성장하면 국민도 따라서 성장하는 것이지 국가만 성장하고 국민은 손해를 보는 경우는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선 일어날 수 없다.

<저는 경제 민주화, 복지, 일자리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5000만 국민행복 플랜’을 수립하여 추진하겠습니다. 각계 전문가와 국민대표로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행복 청사진을 마련하겠습니다.>

위원회를 만들어 ‘국민 행복’을 추진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 원론적이고 거대하여 공허하다. 자칫하면 국가가 국민의 행복과 불행까지 통제한다는, 즉 《1984》(조지 오웰) 식의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는 비판을 부를 수 있다.

‘경제 민주화’는 좌파적 개념이다. ‘민주화’는 정치에 한정될 때 유효한 개념이지 만병(萬病)통치약이 아니다. ‘학문의 민주화’ ‘가정 민주화’ ‘군대 민주화’는 학문과 가정과 군대의 해체를 부르듯이.

이 연설문에선 한국의 보수층이 간절히 원하는 몇 개 단어가 빠졌다. 한국의 가장 큰 고민이고 정치의 주제(主題)인 종북척결, 법치(法治)확립, 자유통일, 북한인권이란 단어가 없다. 이런 보수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서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발상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直視)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유리해진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념으로 분단되고 이념으로 전쟁 중인 한반도에서 이념은 가장 큰 전략인데도….

左 3, 右 7

‘보수층은 어차피 나를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집토끼를 냉대하면서 중도와 좌파 표를 잡겠다고 나선 박근혜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 후보에겐 유효할지 몰라도 안철수 교수에게 적용될 경우 치명적 실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의 종북좌파성에 대하여는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순진한 이미지를 가진 안철수의 좌파성에 대하여는 집중적인 비판과 설명이 들어가야 유권자들이 알게 된다. 박근혜 후보 진영이 탈(脫)이념적 선거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안철수 교수의 좌파적 이념-안보-법치 문제를 덮어 버린다면 보수 및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안 교수를 ‘보수-중도적’이라고 오해하고 표를 던질 것이다. 이는 산토끼를 쫓다가 집토끼를 놓치는 실수이다.

대한민국 정통세력 대표답게 선거판에서 안보-통일-종북-법치 문제를 중심으로 놓고, 안철수씨의 좌경성을 집중적으로 드러내면서 2012년 대선의 의미를 ‘통합 대통령인가, 분열 대통령인가’, ‘통일 대통령인가, 종북 대통령인가’로 집약시킨다면 여론구도를 7(右) 대 3(左) 내지 6 대 4로 가를 수 있다. 한국인의 이념성향은 대체로 좌(左) 3, 우(右) 7로 나타난다. 여기서 ‘좌’는 계급투쟁론을 기반으로 한 정치성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종북’과는 다른 의미이지만 좌파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 중에서 종북성향 인물이 많다. ‘박근혜 50% 대 안철수 45%’의 현재 수치는 몰(沒)이념적 전략의 한계를 상징한다.

‘박근혜와 안철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

‘반박보수층’이 커진 한 이유는 박근혜 후보가 4·11 총선 후 시대의 화두(話頭)가 된 ‘종북 문제’에 애써 무관심한 데 대한 골수 보수층의 실망감이다.

지난 총선은 종북좌파 세력의 득세(得勢)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막판에 대거 투표장으로 나가 새누리당을 선택, 종북좌파 연대(민주당-진보당)의 국회 장악을 저지한 역사적 선거였다. 총선으로 여론이 크게 우(右)회전하니 겁을 먹은 종북진영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났다. 대중이 처음으로 ‘진보’로 위장한 종북의 실체(實體)를 직시하게 된 것이다.

300명 국회의원 중 61명이 전과자이고, 그 가운데 29명이 국가반역죄(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실형(實刑)을 받았던 이들이며, 19명은 반국가단체 및 이적(利敵)단체 구성원 출신들이다.

법치국가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종의 ‘선거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정치인들과 언론이 종북분자들을 ‘진보’나 ‘민주’라는 이름으로 미화(美化)하고 은폐해 줌으로써 유권자들의 다수가 이들의 정체를 오판(誤判)한 때문일 것이다. ‘종북척결’ 없이는 자유통일도, 일류(一流)국가 건설도 무망(無望)하다는 국민적 각성에 대하여 이명박(李明博) 정부와 박근혜 후보는 아무런 정치적·헌법적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종북세력에 대한 국회 청문회, 이들 세력에 의한 ‘김현희 가짜 몰이’나 ‘2002년 서해교전시(時)의 이적행위’에 대한 국회 차원의 조사도 없다. 박근혜 후보는 종북척결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민주당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진보당과 정책연합을 한 데 대하여도, 그 민주당이 김일성 숭배자 두 사람이 작사, 작곡한 당가(黨歌)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침묵한다.

우파 세력이 열심히 이런 문제를 폭로해도 공명(共鳴)이 없다. 누적된 배신감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약 30%를 안철수 지지로 돌게 한 원인 중 하나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를 외면하고 대통령이 된다 한들 종북좌파의 공세를 견딜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박근혜 후보가 선거 때는 그렇게 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엔 종북좌파 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도 많다. ‘공약 따로’ ‘국정 따로’라는 이야기인데, 세종시 건설 찬성의 예에서 보듯이 박 후보는 선거공약을 어기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선거로 드러난 ‘안보와 종북문제 경시(輕視)-좌파적 복지 중시(重視)’가 국정방향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박근혜와 안철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50세 이상과 이하는 투표자 수가 같다!

지난 4·11 총선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투표장에 나섰던 50대 이상 유권자들을 계속 실망시키면 박근혜 후보는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을지 모른다.

‘위대한 나라에선 젊은이가 망친 나라를 노인들이 구제한다’(키케로)는 말이 실감 난다. 천안함 폭침(爆沈)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젊은이들이 40%나 되는 나라에서 그래도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는 50대(代) 이상 기성세대의 분투가 있었다. 박근혜 캠프와 새누리당은 교육이 필요한 젊은 층에 영합하고, 고마운 노장층(老壯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자세가 과연 표가 되는 전략인지는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4·11 총선 직후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총선 투표행태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39.6%였는데 투표율이 높아 투표자 중에선 47.7%를 차지했다. 노장층의 영향력이 19~49세 층과 거의 맞먹는다는 뜻이다.

50대는 투표율이 62.4%, 60세 이상은 68.6%였다. 40대는 52.6%, 30대 후반은 49.1%, 30대 전반은 41.8%, 20대 후반은 37.9%, 20대 전반은 45.4%, 19세는 47.2%였다. 20대 전반이 높은 것은 군인들의 부재자(不在者) 투표율 덕분이다.

투표자 중에서 60세 이상은 26.1%로서 40대(21.2%)나 30대(17%)보다 많았다. 한국에서 최강(最强)의 유권자 집단은 60세 이상 노인들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50세 이상 유권자는 약 40%이고, 투표율이 높을 경우 투표자 중에선 약 5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19대 총선의 유권자 기준은 1993년 4월 12일 이전 출생자, 18대 대선은 1993년 12월 20일 이전 출생자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보수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젊은 표를 얻기 위한 좌경적 공약을 남발하다가는 50세 이상을 화나게 하여 이들의 투표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50세 이상의 투표율 저하’는 박근혜 후보에겐 치명적 독(毒)이다.

老壯層 투표율 저조는 박근혜의 毒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막판 역전승(逆轉勝)이 가능했던 것은 노장층의 투표율이 갑자기 높아진 덕분이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 2주 전인 3월 28일 투표참여 의향(意向)을 조사, 발표했다. 50세 이상층은 72.1%가 투표하겠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2008년의 총선 때보다 4.1%가 줄어든 수치였다. 40대의 투표의향도 18대 총선 때보다 1.2% 낮아졌다. 반면 30대는 12.7%, 19~29세층은 10%나 높아졌다. 새누리당 지지층인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낮아지고 반새누리당 여론이 높은 19~39세층의 투표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전문가들은 대체로 새누리당의 참패가 확실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선거 후 발표된 투표율 조사를 보면 선거 막판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50세 이상 유권자들의 실제 투표율은 18대보다 2.1%, 60세 이상은 3.1%포인트가 높아졌다. 40대는 4.7%, 30대는 9.7%, 20대는 13.1%포인트가 증가했다. 투표 전 선관위 투표율 예측치보다 50세 이상은 늘었고, 30대는 줄었으며, 20대는 늘었다. 40대는 비슷했다. 보수지지 성향이 높은 50세 이상층이 막판에 투표장에 많이 갔고, 좌파지지 성향이 높은 30대는 예측보다 덜 갔다. 20대는 예측치보다 훨씬 투표장에 많이 갔으나 20대, 특히 남자들은 이념성향이 30대보다 우경화(右傾化)되어 있어 이 층의 투표율의 증가가 그대로 민주당-진보당 지지로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선거 막판에 터진 ‘김용민의 욕설’과 종북좌파 세력의 대승(大勝) 예고에 노장층이 불안감을 느끼고 투표장으로 몰려간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大勢論)이 계속되고 탈보수적 선거전략이 이어진다면 50세 이상층의 절박감과 불안감이 약해져 2002년 대선 때 이회창(李會昌) 지지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장층 투표율이 낮아질지 모른다.

‘역사의 짐’을 진 사람과 인기를 얻은 사람

투표를 석 달 남긴 시점(時點)에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등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 유권자들의 31%가 ‘꼭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하고, 30%는 ‘대체로 되었으면 한다’는 사람이다. 일관된 권력의지와 아버지가 뒷받침하는 ‘역사의 힘’, 그리고 4·11 총선에서 종북좌파 세력의 국회 장악을 저지한 실적이 있다. 김대중(金大中) 이후 가장 탄탄한 지지기반을 가진, 다른 후보군(群)과는 격(格)이 다른 정치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 측근은 박근혜 후보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생각을 깊게 하고, 사물의 핵심을 정확하게 잡아 낸다. 이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한다. 아버지처럼 ‘정치적 쇼’를 싫어한다. 정직하려고 애쓴다. 지엽적인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

박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 마주 앉는 날이 온다면 국민들은 ‘역사의 짐’을 진 사람과 인기를 업은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박 후보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그의 모습과 행적에서 숙명적인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박정희(朴正熙)’라는 역사적 존재와 직결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이해찬(이해찬)과 박지원(朴智元)씨가 주도한 ‘역사 논쟁’은 박근혜 후보를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월 초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의 압도적 다수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층, 모든 이념층, 모든 학력층, 모든 소득층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심지어 민주통합당 지지자들도 긍정(53%)이 부정평가(44%)보다 더 높았다.

● 유신(維新)체제에 대한 긍정평가는 약 68%, 부정평가는 약 26%였다.
● 특히 19~29세 남자들은 71%가 긍정했다.
● 광주·전라도에서도 약 55%가 유신체제의 경제발전을 긍정했다.
● 자신을 진보성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55%도 ‘긍정평가’였다.
● 블루칼라 노동자들도 약 68%가 긍정했다.

敵과 동지를 구분하라

19~29세 남자들의 약 71%가 유신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50세 이상 연령층과 거의 같은 역사관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신을 긍정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19~29세층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안철수 교수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 지지 24.1%에 안 교수 지지 68.9%이다. 박 후보 진영이 19~29세 층을 겨냥하여 안철수 교수의 이념적 정체성(正體性)을 알리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한반도에서 이념이 가장 큰 전략(戰略)인 것은 이념이 ‘공동체의 이해(利害)관계에 대한 자각(自覺)’과 ‘자기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적과 동지를 정확하게 가른 다음 적을 고립시키고 동지를 불리기 위한 방도를 가르쳐 주는 게 이념, 즉 ‘이론화된 신념’인 것이다. 이념전쟁이 계속되는 한반도에서 이념을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집권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기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