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4·11 총선 이후 - 통계로 본 총선과 대선 관계 : 월간조선

4·11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수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선거의 여왕인 박근혜의 힘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선거였다.

이번 총선은 역대 총선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면서 정권심판론에 바탕을 둔 회고적 투표가 희석화되었다. 원래 총선은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12월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면서 정부 심판만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선거학회·YTN이 선거 3일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투표 기준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을 생각하며 투표할 것이다’는 응답은 35.5%인 반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할 후보를 염두에 두고 투표할 것이다’는 응답은 53.5%였다.

이번 총선에서는 최초로 전국적 야권연대도 성사되었다. 민주통합당(이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공식적인 선거운동 개시 전에 20개 정책과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고, 민주당은 16개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에 단일 후보를 양보했다. 더구나, 76개 선거구에서 두 정당 후보 간 경선을 실시했다. 야권연대를 위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의 경선에서 여론조사 조작 파문으로 진보 세력이 도덕성에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연대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표1>에서 보듯이, 3월 5일~4월 5일 발표된 각 언론사 여론조사 중 1, 2위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5%포인트 미만인 초박빙의 수도권 22곳 선거구 18곳(민주당 16곳+통합진보당 2곳)에서 야권연대 후보(81.8%)가 승리했다.

보수의 ‘불안한 승리’

문제는 이런 야권연대가 수도권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거 초기부터 ‘박근혜 대 노무현’의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정권심판론이 무력화되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되고 야권에서는 폐족이라 자처했던 친노가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심판의 대상인 이명박 정부가 사라졌다. 한나라당이 당명을 개정하고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 등 진보 세력들이 주도했던 정책들을 새로운 정강 정책에 반영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했던 것도 주효했다.

둘째, 야권의 정권심판론에 대항하는 새누리당의 대항 심판론이 먹혀들었다. 새누리당은 선거 초기부터 한미FTA 폐기와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지를 주장하는 야권에 대해 ‘말 바꾸기 세력 심판론’을 제기했다. 선거 막판에 터진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막말 세력 심판론’을 제기, 정권심판론에 맞섰다.

선거 막판에 박 비대위원장의 “좌파 이념세력에 국회를 맡길 수 없다”는 ‘거야 견제론’은 여당이 제기했다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막판 보수성향의 부동층을 투표장으로 이끈 요인으로 작용된 것 같다. 더구나, 투표 전날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준비를 완료했다는 발표는 결과적으로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 보수 세력의 절박함이 정권심판론을 잠재웠다. 만약 새누리당이 완패하면 박근혜가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보수 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 같다. 특히, 영남과 강원 지역 등 보수층이 강한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번 총선 결과는 누가 뭐래도 새누리당의 완승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불안한 ‘홍길동 승리’이고 ‘반사적 승리’이기도 하다. 서자라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새누리당도 향후 대선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도권에서 완패해 대놓고 승리를 승리라고 부르지 못하는 형국이다. 분명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이 잘했다기보다는 민주당이 못해서 얻은 반사 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총선 다음 날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이슈’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막말 파문’(22.3%), ‘한미FTA 폐기’(10.7%), ‘야권 여론조사 조작파문’(9.7%), ‘제주해군기지 건설논란’(3.7%) 등 여권에 유리한 이슈들이 차지한 비율은 46.4%였다. 반면 ‘민간인 불법사찰’(14.9%) 등과 같이 여권에 불리한 이슈들이 차지한 비율은 20.0%에 불과했던 것이 이런 주장을 입증해 주고 있다.

총선 결과가 대선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이번 4·11 총선에서 나타난 표심의 특성은 진보와 보수 간 힘의 절묘한 균형이다. 따라서 12월 대선의 초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표2>에서 보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 범진보 세력(58.4%)은 정당투표에서 범보수 세력(38.6%)을 크게 압도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4개월 만에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범보수 세력이 57.5%로 범진보 세력(37.6%)을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이번 19대 총선의 정당투표에서는 보수성향의 정당이 얻은 득표는 48.2%, 진보성향의 정당이 획득한 표는 48.5%였다. 보수와 진보, 48% 대(對) 48%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들의 정당별 득표수 자료에 따르면, 총 유효투표수 2154만5326표 가운데 새누리당 후보들은 932만4911표(43.3%), 민주당 후보들은 815만6045표(37.9%)를 각각 얻었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들보다 전국적으로 116만 표를 더 얻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들의 득표수에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얻은 129만1306표를 합하면 총 944만7351표가 돼 새누리당보다 12만2440표가 많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은 올해 대선에서 여야가 각자 뭉쳐서 일대일 대결을 펼친다면 초박빙의 혼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보수 진영에 불리하게 작용될 수도 있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 결과는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의 여야 대결 양상을 미리 볼 수 있는 민심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표3>에서 보듯이,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민주통합당은 777만5737표를, 통합진보당은 219만8082표를 얻었다. 합계 997만3819표이다. 이는 새누리당(912만9226표)보다 무려 84만4593표가 많은 것이다. 새누리당이 얻은 득표수에다 자유선진당이 얻은 68만9843표 전부를 합쳐도 야권연대에 여전히 15만4000표가량 모자란다.

요약하면, 이번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얻었다고는 하나 내용적으로는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수도권에서 진보가 보수보다 4.2% 앞서

4월 11일 저녁 한명숙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굳은 표정으로 개표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정당 정당득표수는 467만1175표(44.6%)인 데 반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509만3139표(48.6%)로 42만1964표(4.2%) 앞섰다. 이는 지난 18대 총선 당시 보수정당이 진보정당에 14.7% 우세했던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결과이다. 각 지역구 후보들이 얻은 표를 살펴보면 야권연대 출마자들이 얻은 표가 새누리당 후보들보다 12만2440표가량 많았다.

새누리당은 부산·울산·경남(PK) 전체 40개 선거구 중 36석(90.0%)을 차지했지만 이 지역에서 비례대표 득표율은 52.1%에 불과했다. 반면, 민주당(28.3%)과 통합진보당(10.4%)의 정당투표 득표율은 38.7%였다. 지난 2004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 지역에서 얻은 29.4%,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얻은 30.0%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만약 이런 정당투표 현상이 12월 대선에서도 이어진다면 새누리당의 대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질 수도 있다.

총선 결과는 야권 대선후보 중 누구에게 유리한가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박 위원장은 다시 한 번 ‘선거의 여왕’임을 입증했고 동시에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실제로 선거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위원장의 지지도가 양자 대결 구도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총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안철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더 좋으냐’는 물음에 박근혜 비대위원장 45.1%, 안철수 원장 35.9%였다. 올 들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이 박 위원장을 줄곧 5%포인트 이상 앞질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을 계기로 판도가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총선 결과는 분명 박 비대위원장에게 축복이지만 동시에 많은 과제를 안겨줬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2030세대, PK에서 열세라는 ‘박근혜 3개의 벽’이 확인되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PK지역 못지않게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 화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박 비대위원장의 영향력은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와 같이 미미했다. 설상가상으로 박 비대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종로 홍사덕, 중구 정진석, 영등포을 권영세, 서대문갑 이성헌, 도봉갑 김선동, 노원을 권영진, 강서갑 구상찬, 고양 일산서 김영선 등 핵심 친박 현역의원들이 대거 몰락했다.

<표4>는 선거 D-20일에 한국선거학회와 YTN이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를 토대로 여야 유력 대권후보들에 대한 호감도를 분석한 결과이다. 응답자들에게 이들 후보들에 대해 ‘아주 싫어한다’면 0점, ‘보통’ 5점, ‘아주 좋아한다’ 10점으로 배점하도록 했다. 조사결과, 박근혜의 평균 점수는 5.40, 안철수 5.20, 문재인 4.75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세분화해 보면, 우선 2030세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박근혜, 여전히 안철수보다 호감도 뒤져

4월 12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과반수 의석을 만들어준 국민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박근혜의 경우, 전체 응답자에서는 ‘좋아한다’(42.9%)는 응답이 ‘싫어한다’(28.3%)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2030세대에서 ‘싫어한다’(40.3%)가 ‘좋아한다’(28.2%)보다 12.1%포인트 많았다. 그런데 안철수의 경우는 반대로 ‘좋아한다’(55.8%)가 ‘싫어한다’(18.5%)를 압도했다.

수도권에서는 박근혜와 문재인의 경우, ‘싫어한다’와 ‘좋아한다’는 비율이 비슷했지만, 안철수의 경우는 여전히 ‘좋아한다’(47.2%)가 ‘싫어한다’(29.1%)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 대선의 결정적 변수인 화이트칼라층의 호감도 분석에서도 안철수가 박근혜를 압도하고 있다. 안철수의 경우 ‘좋아한다’는 비율이 ‘싫어한다’보다 2.79배 많지만, 박근혜는 거꾸로 ‘싫어한다’가 ‘좋아한다’보다 1.24배 많았다. 다만, 중도층에서는 박근혜, 안철수 둘 다 비슷한 호감도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호감도 분석은 새누리당이 왜 수도권에서 완패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요약하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향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대세론에 도취하지 말고 이들 취약 계층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 전력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 승리가 아니라 야당의 자멸

분명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다. 야당이 야권 연대와 나꼼수에 대한 맹신으로 자만에 빠져 자신들 스스로가 자초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신속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의 위기관리 리더십에 의해 선거를 승리로 이끈 면도 있지만 이것에 너무 집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독주 체제는 결국 당의 역동성과 자율성을 막아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 독주 체제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한나라당이 정권 창출에 실패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어떤 조건이 되면 정권을 빼앗길 수 있는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文風’은 微風이지만, ‘낙동강벨트’는 형성돼

4월 11일 밤 당선이 확정된 문재인 후보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문재인 상임 고문이 “바람이 다르다”며 부산에서 일으키려고 했던 ‘문풍’은 일단 ‘미풍(微風)’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얻은 표는 29.9%(58만7486표)였다. 이번 총선에서 이 지역의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정당투표 득표율 합은 40.2%(62만4548표)였다. 문 고문이 당초 지역구 의석 확대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야권 전체 득표율을 상당부분 높였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낙동강 벨트’는 이미 형성됐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 고문은 2002년 대선에서 호남의 전폭적 지지와 ‘충청 연대, 영남권 25% 잠식’ 전략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노무현 승리 모델’의 재시동을 걸 수 있는 의미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수혜자이다.

문 고문이 야권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단지 다른 유력 후보들의 완주를 도와주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아니라 ‘대권주자 문재인’으로서의 독자 행보를 하려면 현 시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친노를 넘어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다. <표5>에서 보듯이 자신의 텃밭인 PK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박근혜의 지지도는 37.7%인 데 반해, 문 고문의 지지는 12.3%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웅변해 준다. 지나치게 취약한 5060세대에서의 지지도 확산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의 안정적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가 얻은 것들

안철수 원장이 지난 4월 4일 대구 경북대에서 열린 강연회 도중 질문을 한 학생에게 미리 준비해온 ‘앵그리 버드’인형을 던져주고 있다.

문 고문과 함께 야권의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원장의 이번 총선 손익 계산서를 살펴보면 플러스 요인이 더 많다.

안 원장은 민주당 인재근, 송호창 후보를 지원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선거일 이틀 전에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투표 독려 동영상을 띄웠다. 안 원장은 이 동영상에서 “앵그리 버드가 ‘나쁜 돼지’에게 저항하는 퍼포먼스까지 했고, 투표율이 70%를 넘기면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앵그리 버드 전략은 투표율이 54.3%에 그쳐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안 원장이 한동안 적극적 행보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원장은 이번 총선을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과실을 챙겼다.

무엇보다 명쾌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작년에 안 원장이 제시한 화두가 ‘상식과 비상식’의 개념이었다. 최근에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제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메시지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이런 안 원장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탈정당, 탈이념, 탈지역주의’이다. “만약 (정치에) 참여한다면 특정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영호남, 충청, 서울 강남은 어느 당이라는 게 정해져 있으며 시민의 선택으로 얼마든지 교체될 수 있다”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국 대선에서 정당과 지역, 이념의 지지를 받지 않고 성공한 후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기존의 시각에서 보면 안 원장의 최근 행보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며 비정치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정치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놀라운 정치 실험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여하튼 한국 대선에서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담대한 정치 실험을 한 세력이 승리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현재까지는 안 원장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정치적 역할’로서 변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취해야 한다. “대선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는 사고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또한 안 원장이 줄곧 언급했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안 원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올라가야지, 승리에만 집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리 사회에는 갈등을 풀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계층 간 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국민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안 원장이 대선에 관심이 있다면 이제는 예고편이 아니라 그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50%가 정권교체 희망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지역 후보 투표에서는 새누리당에, 정당투표에서는 야권연대에 승리를 안겨주는 절묘한 선택을 했다. 여야 모두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새누리당에는 총선 승리에 도취되어 오만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승자의 저주’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야권도 정권심판과 야권연대에만 의존하지 말고 수권 능력을 키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선거학회·YTN 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투표할 정당의 대선후보를 12월 대선에서도 지지할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43.5%가 ‘계속 지지할 것이다’고 응답한 반면,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는 응답은 53.6%였다. ‘새누리당이 다시 집권하는 것이 좋다’는 35.1%,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으면 좋겠다’는 50.0%였다. 여야 모두 깊이 음미해야 할 민심의 현주소이다.

총선은 끝났고 이제는 대선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담대한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12월 대선에서 분명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