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지 좋았으나 초기부터 삐걱… 청와대, 지경부와 여전히 마찰
⊙ 정운찬·곽승준은 찬성했고, 백용호·최중경은 애시당초 반대했다
⊙ “구색 맞추려 위원회 만들었는데, 정운찬 지나치게 열심이다 얘기” (청와대 전직 관료)
⊙ “두부·순대·청국장 등 중소기업 업종 지정할 때 회의실서 고성” (동반성장위 관계자)
⊙ 정운찬·곽승준은 찬성했고, 백용호·최중경은 애시당초 반대했다
⊙ “구색 맞추려 위원회 만들었는데, 정운찬 지나치게 열심이다 얘기” (청와대 전직 관료)
⊙ “두부·순대·청국장 등 중소기업 업종 지정할 때 회의실서 고성” (동반성장위 관계자)
-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11일 퇴임식을 갖는 정운찬 총리 참석 마지막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기에 앞서 정운찬 국무총리와 악수를 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
지난 3월 9일,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정운찬(鄭雲燦)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성장위) 위원장이 오찬을 겸한 독대를 했다. 정 위원장의 요청에 의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정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동반성장위의 예산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相生)을 위해 2000억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이자로 위원회를 꾸려가겠다는 제안이었다. 이 대통령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은 정치 전반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독대 사실은 언론을 통해 흘러나갔다.
정운찬 위원장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란 앞서 언급한 위원회의 ‘운영비 확충 문제’이다. 정 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내비친 것은 벌써 두 번째다. 정운찬의 동반성장위에서는 지난 1년 반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반성장위의 태동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밀 추적했다.
2010년 8·15 경축사
청와대의 전직 고위 관료는 ‘동반성장’의 태동을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로 기억했다. 그의 얘기다.
“MB정부는 정권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습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복지’, ‘상생’ 등을 화두로 썼고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를 언급했습니다. 주된 내용은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국정 방향의 기조가 친(親)서민 위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물가 상승과 서민층의 팍팍한 삶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역시 이에 통감하면서 국정 운영을 소외계층, 서민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 동반성장의 모태(母胎)가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같이 ‘친서민정책’의 기조를 내세운 데에는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가 일조했다.
정운찬 전 총리 시절,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몇몇 중소기업체 대표가 그를 찾았다. 이들은 입을 모아 “대기업이 후려치기를 해도해도 너무 한다. 이민이라도 가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운찬 당시 총리는 실태 조사를 시켰고, 이들의 얘기가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IMF 이후 망가진 경제를 살려내겠다는 일념으로 ‘절대 경쟁체제’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큰 기업은 더욱 커졌고, 중소기업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이로 인한 폐해를 담은 보고서를 총리실 명의로 작성했다.
MB정부 경제팀, 2008년 고환율로 도움 준 대기업에 섭섭했을 것
곽승준(郭承俊) 당시 청와대 대통령실 미래기획위원장의 뜻도 같았다. 곽 위원장은 대기업에 대해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기업프렌들리’라는 용어에 눌려 서민 친화적인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곤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몸담아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던 한 인사의 의견은 이렇다.
“대통령에 처음 취임했던 2008년 당시 국내 경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로 인해 전(全) 세계가 경기 침체 일로를 걷게 됐죠. MB정부는 ‘고환율정책’을 펴 수출 위주의 국내 대기업을 도왔습니다. 당시 정부가 정한 마지노선은 1달러당 1300원이었는데, 2009년 중반에는 1500원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덕분에 국내 대기업은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충분히 ‘친기업’이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자신들의 잇속만 챙겼을 뿐 사회에 환원했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분기마다 쏟아지는 ‘대기업 사상 최대 이익 실현’이라는 보도 앞에 허탈해했습니다. MB정부 당국자들로서는 수출 위주의 대기업에 섭섭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백용호(白容鎬) 당시 청와대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최중경(崔重卿) 당시 대통령실 경제수석 비서관의 생각은 달랐다.
청와대 전직 관계자의 얘기다.
“백 실장과 최 비서관은 철저한 시장주의 신봉자입니다. 동반성장은 결국 정부의 개입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이에 반대했습니다. ‘누가 삼성에 가서 중소기업체에 돈을 주라고 말할 것이냐’는 식(式)의 반응이었습니다. 시장주의자 입장에서 생각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정부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최중경 당시 비서관의 반대는 나중에 사실로 확인된다. 그는 나중에 지식경제부 장관(2011년 1~9월)에 선임된 이후 정운찬 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공격하게 된다.
정운찬 당시 총리의 중소기업 실태조사와 곽승준 위원장의 생각, MB정부 경제팀의 대기업에 대한 섭섭함은 결국 백용호 당시 실장, 최중경 비서관의 뜻을 누르고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킨다. 2010년 12월이었다.
동반성장위의 수장은 당연히 최초 아이디어를 낸 정운찬 전 총리로 의견이 모였다. 정 전 총리는 위원회가 꾸려지기 넉 달 전에 총리직을 사임하고, 초야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의 조직 구성을 두고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위원회를 정부 산하의 기구로 두자니, 대기업들에 정부가 압력을 가하는 모습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시켜 민간기구로 운영하자니, 위원회 운영비를 비롯해 실효성 여부가 문제가 됐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수장직’을 요청받고, 청와대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해주지 않으면 맡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의견은 달랐다.
이 대통령은 “단기 효과를 거두기에는 좋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의를 통해 결정하려면 민간기구인 것이 낫다. 중장기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운찬 전 총리 역시 대통령의 얘기에 수긍을 하며,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하고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대기업, 1차 회의 때 “법적근거 있는 기관이냐”
2010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파이낸셜뉴스 빌딩에서 정운찬 위원장을 비롯한 24명의 위원이 참석해 1차 회의를 열었다. 앞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준수와 우월적 지위남용 금지, 중소기업의 기업역량 확보 및 하도급 윤리준수 등을 담은 8개항의 ‘동반성장 이행헌장’을 채택했다. 출범식에는 최경환(崔炅煥)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정호열(鄭浩烈) 당시 공정거래위원장, 손경식(孫京植)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기문(金基文)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이 참석해 정운찬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동반성장위의 설립목적은 ‘민간위원회로서 대·중소기업 간의 갈등문제를 발굴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운찬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대기업 9명, 중소기업 9명, 공익요원 6명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포스코,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롯데쇼핑이 참여했다. 중소기업은 디지캡, 이지디지털, 비엠금속, 다산네트웍스, 솔빛아이텍, 광명전기, 현대산기, 웰섬, 피엔알시스템이 참여했고, 교수 4명과 산업연구원장 등 두 명이 멤버였다.
위원회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제2차 회의에서는 위원회 실무위원이 구성됐다. 제3차 회의(2011년 2월 23일)에서는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이 되는 대기업 56개사를 결정했다.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H그룹 관계자의 얘기다.
“당시 대기업들은 불만이 높았습니다. MB정부가 ‘기업프렌들리’를 앞세웠는데 실질적으로 해준 것이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총리 출신이 이런 기구를 출범시키다 보니 ‘또 얼마의 돈을 내라는 것이냐’는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사실상 대기업을 옥죄기 위해 위원회가 구성됐다는 시선이었지요.”
실제로 동반성장위 회의에 참석한 한 대기업 사장은 “법적 근거가 있는 기관이냐”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동반성장위의 태생적 한계
이는 동반성장위의 태생적 한계와 맞물려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 정권 들어 갑자기 생긴 조직이 아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시절인 2004년, 정부는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및 기업 간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의거해서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중소기업청 산하의 조직이었고, 중기청은 당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소관이었다. 일종의 중소기업 보호법에 따라서 지난 2006년 8월에는 국무총리 산하에 ‘대·중기상생협력위원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불과 2년 만에 실적 저조로 폐지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의 얘기다. 그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직원이다.
“노무현 정부 때 중소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유명무실(有名無實)했습니다. 상생협력법에 따라 산업자원부가 컨트롤을 하고, 대·중소협력재단은 실질적인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비를 중소기업청에서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반성장 얘기가 나오면서, 이 업무가 협력재단으로 떨어진 겁니다. 정운찬 위원장이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 겸 위원회장을 맡고 있는데, 좀 애매모호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기금을 대기업들로부터 걷은 적이 있습니다. 전경련이 이 기금을 지식경제부에 지급하면, 지경부에서 동반성장위에 연간 36억원 주는 형식입니다. 동반성장위는 독립기구 상태이고, 민간위원회이기 때문에 일종의 NGO단체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시민단체들의 운영기금도 사실상 기업체에서 나오지만, 우리는 지급 당사자가 전경련이라는 점이죠.”
―궁극적으로는 전경련에서 운영비를 받기 때문에 대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런 부분이 있지요. 정부의 돈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꼬리표가 붙어서 온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전경련에서 받자니 그렇고, 중소기업을 위한답시고 사정이 안 좋은 중소기업에 회비를 걷기도 뭣합니다. 동반성장위의 목표 중 하나는 중소기업의 생존에 관한 것들을 여러 곳에 전파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운영비 3억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동반성장위의 목적인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이 안 됩니다. 홍보 비용이 없는데 어떻게 문화를 확신시킵니까?”
출범 두 달 만에 꺾여버린 날개
동반성장위는 사실 제대로 일을 하기도 전부터, 한 차례 날개가 꺾였다. 정운찬 위원장이 추진한 ‘초과이익공유제’가 문제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기업이 해마다 설정한 목표의 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을 남겼을 때, 이를 협력 중소기업에 일부 나눠주자는 소리다. 즉 회사가 연말에 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경영자에게 스톡옵션을 주듯이, 이윤의 일부를 자사(自社)의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에도 주라는 얘기다.
정운찬 위원장은 출범 초기부터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다. 정 위원장은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로 초과이익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이익 배분 규모를 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 이를 잘 실천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거나,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 참여할 때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 뒤따랐다. 그는 ‘이윤공유(profit sharing)’를 연구했고, 검토 끝에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하지만 정운찬 위원장은 끝까지 ‘공유’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공산주의식의 느낌 때문이었다. 정 위원장은 조금 부드러운 ‘공여제도’로 단어를 바꾸기로 했는데, 실무진이 이미 이와 관련된 문건을 인쇄했다고 해서 그만뒀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발언이 있자마자, 그는 여·야·재계를 막론해 공격의 대상이 됐다.
홍준표(洪準杓)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아니면 공산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경제학 책에서 그런 용어를 배우지도 못했고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손욱 전 농심 회장도 “이건희 회장이 옳다”고 지지했다.
최중경 당시 지경부장관은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최 장관은 과거 동반성장위의 출범을 논의할 때부터 이 기관의 역할에 대해 반대해 온 이다.
최 전 장관은 “초과이익공유제는 현실적으로 정형화하기 어렵다. 더 이상 논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직접 간담회를 자청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 일이었다.
전직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 발언을 했을 때 청와대에서 깜짝 놀랐다. 사전에 이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정운찬 위원장은 결국 사퇴의 뜻을 밝혔다. 청와대는 이를 반려했고, 그는 다시 위원회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때부터 언론에서는 ‘용두사미가 된 위원회’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82개 선정
동반성장위 관계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 중 하나는 ‘성장위의 유명무실론’이다. 한 관계자는 “출범 이후에 이룬 일이 많은데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년 반의 가장 큰 성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꼽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지난 2011년 4월 대기업이 진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82개의 품목’을 뽑았다. 두부, 어묵, 김치, 순대, 단무지, 햄버거 빵, 식용유, 청국장, 떡, 원두커피, 막걸리, 세탁비누, 골판지 상자 등이다. 위원회 관계자들은 이 작업을 위해서 미리 중소기업협동조합에 공고를 하도록 했다. 총 234개의 품목이 신청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예상한 것보다 많은 품목이 신청돼 놀랐다. 어떤 품목이 중소기업에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렸다”고 했다. 동반성장위는 이들 사업에 진출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당사자들을 5~10여 차례 사무실로 불렀다. 그때마다 사무실은 온통 고성이 오갔다. 동반성장위 관계자의 얘기다.
“품목별로 회의를 하면 1, 2차 때는 서로 소리만 지르고 싸우다가 끝났습니다. 서로 다른 업주들이 모여서 감정풀이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이런 일이 두세 번 일어난 다음에야 진정을 하고 회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대기업 아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봐야
―가장 많은 안건으로 올라온 것은 뭐였습니까.
“두부였습니다. 대기업부터 영세한 1인 기업까지 모두 뛰어든 사업이었습니다. 두부식품조합, 연두부식품조합 등 조합이 다양했고, 대기업에 상표만 붙여서 OEM으로 납품하는 곳 등 다양한 사업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과거 조합원이었다가 사세(社勢)가 확장되어 탈퇴한 풀무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장 진출을 허용해야 하느냐 등을 놓고 이견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두부의 원료인 콩을 수입하는 이권이 있어, 의견을 조율하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겠다는 기본 취지는 이해하지만, 규제 범위나 대상이 너무 막연하지 않습니까.
“언론에서 그렇게 말하지만 실상 업계에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 생산하는 제품의 시장 규모가 얼마인지, 그중 자신의 마진이 얼마이고 타사가 얼마인지 알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82개의 품목을 선정했는데 기준이 전부 달라서 그 과정을 조율하기 어려웠지만, 저희가 터무니없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텐데, 언론 보도가 좀 아쉬웠습니다.”
―왜요.
“저희가 적합업종을 지정한 것을 두고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최소 15조원의 시장을 중소기업에 돌려줬다고 분석합니다. 유예기간은 3년입니다. 대다수의 언론이 대기업의 입장에서 ‘대기업은 향후 3년 동안 두부 시장에 들어가지 말아라’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입장을 봐주십시오. ‘중소기업에 향후 3년 동안 두부를 더 팔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아니겠습니까. 중소기업이 좀 더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데, 대기업 것을 무조건 뺏었다는 식으로 바라봐서 아쉬웠습니다.”
―두부의 예를 들어보죠. 3년 동안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중소기업이 판매 루트를 못 뚫으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판매루트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업 부문 위원회별로 시정권고가 되는데, 유통 부문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또 논의될 겁니다.”
―3년만 유예기간을 두는 겁니까.
“저희는 중소기업이 두부, 순대, 김치, 청국장 시장에서 3년 동안 좀 더 파이를 키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중소기업의 몫입니다. 대기업의 진출을 무작정 막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82개의 품목 중에서 3년 이후에도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싶으면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대기업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일단 법적 가능성은 없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부분은 강력하게 권고한다. 실제로 권고를 통해 시정된 케이스가 있다”며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파업조정심의위원회에 고발할 수 있고, 사업조정심의위원회 법에 따라 패널티를 물게 된다”고 했다.
“대기업 진출 막았더니 편법으로 진출한다”(조명회사 대표)
조명기구를 20여 년째 생산하는 중소기업체의 김모 대표는 요즘 들떠 있다. 동반성장위의 권고로 인해, 대기업이 향후 3년 시장에 진출하지 못해서다. 김 모 대표는 “대기업에 납품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익명으로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가능성 있다 싶은 사업은 다 들어왔습니다. 세계 조명시장의 강자는 이태리, 스페인의 가업을 잇는 전통 중소기업들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조명산업에 진출해서 중소상인이 다 죽었습니다. 그 결과 몇몇 업체의 담합으로 조명기구 가격이 한국보다 10배 비쌉니다. 이들은 당연히 수출도 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현실을 알고 제재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중소기업은 자본의 논리에 밀려 전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쟁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과거 150대 1이었다면, 지금은 120대 1이지만 그게 어딥니까. 3년 만에 대기업을 이길 정도로 기술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정부가 정말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면 이런 토대를 만들었으니,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이 기술을 가질 수 있는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법 업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규제하고요.”
―무슨 얘깁니까.
“중소기업들에 기회가 생기니까 대기업들이 편법으로 진출하려 합니다. GS그룹은(인터뷰이가 그룹명을 실명화해 줄 것을 요청했음) ‘알토’라는 조명회사를 세워서 100% 수의계약을 주고 있고, KCC는 그룹 내부에 LED 조명사업부가 있습니다. 현대가 오너인 정몽혁씨는 차명으로 ‘H애비뉴’라는 회사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중소기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규제가 생긴 것만 해도 동반성장위에 감사하지만, 앞으로 감시 역할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중소기업들의 숨을 터준 것은 확실해요.”
대기업의 상생지수 1위부터 순서 매겨
하지만 정운찬 위원장과 최중경 전 지경부 장관, 허창수(許昌秀) 전경련 회장의 밀고 당기기는 끝이 없었다.
정 위원장이 지난 2011년 6월에 허 회장에게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이 전경련이 아닌 GS그룹 회장실을 직접 접촉한 끝에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동반성장위원회 정식 9차 회의에 대기업 대표들은 전원 불참했다. 하지만 정운찬 위원장은 올 초,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이름을 ‘협력이익배분제’로 바꾸고 안건을 상정했다. 물론 역시 강제성은 없다. 또 동반성장위는 오는 4월에는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할 계획이다. 동반성장위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지수를 내놓는다. 업계는 이미 지난 1월 말에 공정거래위원회에 동반성장협약 시행 실적을 제출했다. 상위 56개 대기업의 전체 순위를 발표할지, 상·하위 몇 곳을 발표할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대기업이 회의에 불참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지수발표 등으로 순위를 매기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며 “성장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틀린 관계를 바로잡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야당에서는 ‘재벌 해체론’이라는 강공수를 들고 나올 정도다. 정운찬의 지난 1년 반은 어떤 성과로 기억될까.⊙
[인터뷰] 鄭雲燦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MB정부에 ‘대기업주의자’들이 너무 많다”
정운찬 위원장은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대권(大權) 도전 의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비밀리에 진행됐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3월 9일)이 세간에 공개돼서인지, 정 위원장은 썩 편치 않아 보였다.
그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형입니다. 재작년 GDP가 1조 달러를 넘었는데, 그중 4600억 달러가 수출액입니다.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성장했지만, 글로벌 기업에 비해 부족함이 많습니다. 글로벌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데, 원가 절감의 방향 중 하나가 중소기업의 납품가를 후려치는 방법입니다. 수출 대기업 정도면 목표액이 있습니다. 그걸 초과하는 것이 초과이익인데, 일부를 임직원에 인센티브 명목으로 주는 겁니다. 제 주장은 그중 일부를 ‘후려치기’ 당한 중소업체에 줘서 그들의 기술개발을 돕고, 고용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 공정하다는 얘기입니다. 초과이익배분제나 협력이익배분제나 똑같은 내용을 가진 다른 이름인데, 사람들은 초과이익배분에 발끈합니다.”
―사회주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 아닙니까.
“크게 얘기하면 이익공유제, 판매수익공유제 같은 것들입니다. 1920년대에 미국 영화산업에서 이미 나온 얘기입니다. 지금은 제조업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골자는 협력하자는 겁니다. 용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달리 생각지 않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 미국 좌파 경제학자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시 교수에게 이 문제를 물었더니 기업의 주주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 했습니다.
“국내 주주도 있고 해외 주주도 있는데 해외 주주들이 반발하지 않겠느냐는 것은 굉장히 미시적인 얘기입니다. 회사 경영에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 아주 일부를, 상생의 차원에서 나누자는 것인데, 일부 후려치기를 당한 사람에게 준다 해서 해외 주주들이 큰 불만을 말하긴 힘들 겁니다. 한국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갑을 관계가 뚜렷한 곳이 세상에 없습니다. 라이시 교수가 이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사가 마음속으로는 목표를 10조를 잡았는데, 실제 17조원이 됐다 칩시다. 그러면 15조원으로 목표이익을 높게 잡자는 얘기들을 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회사의 목표치는 달성 가능하고, 직원들이 사기 진작을 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만일 터무니없는 목표이익을 잡으면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상식선에서 목표이익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몇 %의 이윤을, 어떤 기준으로 협력 중소기업에 주자는 소립니까.
“그래서 자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기업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협력업체 중 어느 곳에 가장 후려치기를 했고, 어느 곳이 덜한지를요. 그래서 자율에 맞춰, 몇 %를, 자신들이 알아서 나눠주라는 것 아닙니까. 구체적인 숫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런 취지를 정하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목표라고 봅니다. 무슨 목적으로요? 고용안정하고, 기술개발 목적, 자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강제성이 없는데 들을까요.
“국세청 세무, 공정관리위원회의 조사에 혜택을 주고, 조달청을 통한 관급 공사에 인센티브를 줍니다. 요즘 동반성장위원회의 힘이 약해졌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 출발 때보다 요즘 더 우호적이라고 봅니다. 상장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찰이 100조원입니다. 후려치기를 근절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교수 시절에 쓴 논문을 보면, 기본 성향이 좌파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저는 케이스주의자로 분류되는 걸 좋아합니다. 케인스가 좌파라면 저도 좌파예요. 그런데 저는 중도파입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비시장경제적인 방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케인스의 기본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성장과 분배의 적당한 조화, 시장과 정부의 적당한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더구나 지금 좌파, 우파를 따질 겨를이 없잖습니까.”
―이런저런 발언으로 외로운 싸움을 해왔는데요.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청와대 실장들이 혁명적 사고라고 말할 때 참 외로웠습니다. 저를 지지하는 발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반성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청와대 있는 분들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이 세상을 잘못 보는 겁니다. 양극화는 세계적 현상이고, 한국의 문제입니다. 정부에 자유시장 신봉자도 아니고, 대기업주의자들인, 대기업에 대해 이해해 주는 관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해하는 건 좋은데, 중소기업도 이해하면서 밸런스를 맞춰야지, 참 곤란합니다.”
―성장위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 들었습니다.
“연간 36억원이던 예산이 늘어서 올해 49억원이라고 합니다. 직원은 고작 22명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보 중요성과 비교할 때 너무 적습니다. 게다가 동반성장위의 목적이 문화의 조성과 확산입니다. 얼마 전에 지경부에 홍보 비용으로 40억원을 요청했는데 4억4000만원을 준다고 해서 관두라고 했습니다. 인력도, 권한도 없지만 제 평생에 이렇게 열심히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혹자는 총리를 하다가 힘을 못 쓰는 곳에 가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제 학자로서의, 교수로서의 신념에는 맞습니다.”
―평소 재벌 견제 발언을 많이 하는데 오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교체되지 않는 권력, 황제 같지 뭐. 골목 상인들은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예요. 대기업이 말하는 사상 최대의 순이익에는 소규모 업체로부터의 ‘후려치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걸 좀 돌려주라는 건데, 안 하면 욕심꾸러기지요. 황제의 욕심 맞지, 뭡니까.”⊙
이날 정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동반성장위의 예산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相生)을 위해 2000억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이자로 위원회를 꾸려가겠다는 제안이었다. 이 대통령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은 정치 전반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독대 사실은 언론을 통해 흘러나갔다.
정운찬 위원장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란 앞서 언급한 위원회의 ‘운영비 확충 문제’이다. 정 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내비친 것은 벌써 두 번째다. 정운찬의 동반성장위에서는 지난 1년 반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반성장위의 태동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밀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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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 대한 국민경제 대책 회의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2010년 8·15 경축사
청와대의 전직 고위 관료는 ‘동반성장’의 태동을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로 기억했다. 그의 얘기다.
“MB정부는 정권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습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복지’, ‘상생’ 등을 화두로 썼고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를 언급했습니다. 주된 내용은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국정 방향의 기조가 친(親)서민 위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물가 상승과 서민층의 팍팍한 삶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역시 이에 통감하면서 국정 운영을 소외계층, 서민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 동반성장의 모태(母胎)가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같이 ‘친서민정책’의 기조를 내세운 데에는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가 일조했다.
정운찬 전 총리 시절,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몇몇 중소기업체 대표가 그를 찾았다. 이들은 입을 모아 “대기업이 후려치기를 해도해도 너무 한다. 이민이라도 가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운찬 당시 총리는 실태 조사를 시켰고, 이들의 얘기가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IMF 이후 망가진 경제를 살려내겠다는 일념으로 ‘절대 경쟁체제’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큰 기업은 더욱 커졌고, 중소기업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이로 인한 폐해를 담은 보고서를 총리실 명의로 작성했다.
MB정부 경제팀, 2008년 고환율로 도움 준 대기업에 섭섭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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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몸담아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던 한 인사의 의견은 이렇다.
“대통령에 처음 취임했던 2008년 당시 국내 경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로 인해 전(全) 세계가 경기 침체 일로를 걷게 됐죠. MB정부는 ‘고환율정책’을 펴 수출 위주의 국내 대기업을 도왔습니다. 당시 정부가 정한 마지노선은 1달러당 1300원이었는데, 2009년 중반에는 1500원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덕분에 국내 대기업은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충분히 ‘친기업’이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자신들의 잇속만 챙겼을 뿐 사회에 환원했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분기마다 쏟아지는 ‘대기업 사상 최대 이익 실현’이라는 보도 앞에 허탈해했습니다. MB정부 당국자들로서는 수출 위주의 대기업에 섭섭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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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
청와대 전직 관계자의 얘기다.
“백 실장과 최 비서관은 철저한 시장주의 신봉자입니다. 동반성장은 결국 정부의 개입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이에 반대했습니다. ‘누가 삼성에 가서 중소기업체에 돈을 주라고 말할 것이냐’는 식(式)의 반응이었습니다. 시장주의자 입장에서 생각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정부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최중경 당시 비서관의 반대는 나중에 사실로 확인된다. 그는 나중에 지식경제부 장관(2011년 1~9월)에 선임된 이후 정운찬 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공격하게 된다.
정운찬 당시 총리의 중소기업 실태조사와 곽승준 위원장의 생각, MB정부 경제팀의 대기업에 대한 섭섭함은 결국 백용호 당시 실장, 최중경 비서관의 뜻을 누르고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킨다. 2010년 12월이었다.
동반성장위의 수장은 당연히 최초 아이디어를 낸 정운찬 전 총리로 의견이 모였다. 정 전 총리는 위원회가 꾸려지기 넉 달 전에 총리직을 사임하고, 초야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의 조직 구성을 두고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위원회를 정부 산하의 기구로 두자니, 대기업들에 정부가 압력을 가하는 모습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시켜 민간기구로 운영하자니, 위원회 운영비를 비롯해 실효성 여부가 문제가 됐다.
정운찬 전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수장직’을 요청받고, 청와대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해주지 않으면 맡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의견은 달랐다.
이 대통령은 “단기 효과를 거두기에는 좋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의를 통해 결정하려면 민간기구인 것이 낫다. 중장기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운찬 전 총리 역시 대통령의 얘기에 수긍을 하며,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하고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대기업, 1차 회의 때 “법적근거 있는 기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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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동반성장위원회 1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대기업 대표들. |
동반성장위의 설립목적은 ‘민간위원회로서 대·중소기업 간의 갈등문제를 발굴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운찬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대기업 9명, 중소기업 9명, 공익요원 6명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포스코,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롯데쇼핑이 참여했다. 중소기업은 디지캡, 이지디지털, 비엠금속, 다산네트웍스, 솔빛아이텍, 광명전기, 현대산기, 웰섬, 피엔알시스템이 참여했고, 교수 4명과 산업연구원장 등 두 명이 멤버였다.
위원회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제2차 회의에서는 위원회 실무위원이 구성됐다. 제3차 회의(2011년 2월 23일)에서는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이 되는 대기업 56개사를 결정했다.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H그룹 관계자의 얘기다.
“당시 대기업들은 불만이 높았습니다. MB정부가 ‘기업프렌들리’를 앞세웠는데 실질적으로 해준 것이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총리 출신이 이런 기구를 출범시키다 보니 ‘또 얼마의 돈을 내라는 것이냐’는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사실상 대기업을 옥죄기 위해 위원회가 구성됐다는 시선이었지요.”
실제로 동반성장위 회의에 참석한 한 대기업 사장은 “법적 근거가 있는 기관이냐”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동반성장위의 태생적 한계
이는 동반성장위의 태생적 한계와 맞물려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 정권 들어 갑자기 생긴 조직이 아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시절인 2004년, 정부는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및 기업 간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의거해서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중소기업청 산하의 조직이었고, 중기청은 당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소관이었다. 일종의 중소기업 보호법에 따라서 지난 2006년 8월에는 국무총리 산하에 ‘대·중기상생협력위원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불과 2년 만에 실적 저조로 폐지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의 얘기다. 그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직원이다.
“노무현 정부 때 중소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유명무실(有名無實)했습니다. 상생협력법에 따라 산업자원부가 컨트롤을 하고, 대·중소협력재단은 실질적인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비를 중소기업청에서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반성장 얘기가 나오면서, 이 업무가 협력재단으로 떨어진 겁니다. 정운찬 위원장이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 겸 위원회장을 맡고 있는데, 좀 애매모호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기금을 대기업들로부터 걷은 적이 있습니다. 전경련이 이 기금을 지식경제부에 지급하면, 지경부에서 동반성장위에 연간 36억원 주는 형식입니다. 동반성장위는 독립기구 상태이고, 민간위원회이기 때문에 일종의 NGO단체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시민단체들의 운영기금도 사실상 기업체에서 나오지만, 우리는 지급 당사자가 전경련이라는 점이죠.”
―궁극적으로는 전경련에서 운영비를 받기 때문에 대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런 부분이 있지요. 정부의 돈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꼬리표가 붙어서 온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전경련에서 받자니 그렇고, 중소기업을 위한답시고 사정이 안 좋은 중소기업에 회비를 걷기도 뭣합니다. 동반성장위의 목표 중 하나는 중소기업의 생존에 관한 것들을 여러 곳에 전파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운영비 3억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동반성장위의 목적인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이 안 됩니다. 홍보 비용이 없는데 어떻게 문화를 확신시킵니까?”
출범 두 달 만에 꺾여버린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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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이건희 회장. 홍준표 한나라당 전 대표.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왼쪽부터).‘초과이익 공유제’에 한마디씩 거들었다. |
정운찬 위원장은 출범 초기부터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다. 정 위원장은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로 초과이익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이익 배분 규모를 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 이를 잘 실천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거나,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 참여할 때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 뒤따랐다. 그는 ‘이윤공유(profit sharing)’를 연구했고, 검토 끝에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하지만 정운찬 위원장은 끝까지 ‘공유’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공산주의식의 느낌 때문이었다. 정 위원장은 조금 부드러운 ‘공여제도’로 단어를 바꾸기로 했는데, 실무진이 이미 이와 관련된 문건을 인쇄했다고 해서 그만뒀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발언이 있자마자, 그는 여·야·재계를 막론해 공격의 대상이 됐다.
홍준표(洪準杓)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아니면 공산주의에서 쓰는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경제학 책에서 그런 용어를 배우지도 못했고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손욱 전 농심 회장도 “이건희 회장이 옳다”고 지지했다.
최중경 당시 지경부장관은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최 장관은 과거 동반성장위의 출범을 논의할 때부터 이 기관의 역할에 대해 반대해 온 이다.
최 전 장관은 “초과이익공유제는 현실적으로 정형화하기 어렵다. 더 이상 논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직접 간담회를 자청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 일이었다.
전직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 발언을 했을 때 청와대에서 깜짝 놀랐다. 사전에 이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정운찬 위원장은 결국 사퇴의 뜻을 밝혔다. 청와대는 이를 반려했고, 그는 다시 위원회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때부터 언론에서는 ‘용두사미가 된 위원회’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82개 선정
동반성장위 관계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 중 하나는 ‘성장위의 유명무실론’이다. 한 관계자는 “출범 이후에 이룬 일이 많은데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년 반의 가장 큰 성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꼽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지난 2011년 4월 대기업이 진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82개의 품목’을 뽑았다. 두부, 어묵, 김치, 순대, 단무지, 햄버거 빵, 식용유, 청국장, 떡, 원두커피, 막걸리, 세탁비누, 골판지 상자 등이다. 위원회 관계자들은 이 작업을 위해서 미리 중소기업협동조합에 공고를 하도록 했다. 총 234개의 품목이 신청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예상한 것보다 많은 품목이 신청돼 놀랐다. 어떤 품목이 중소기업에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렸다”고 했다. 동반성장위는 이들 사업에 진출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당사자들을 5~10여 차례 사무실로 불렀다. 그때마다 사무실은 온통 고성이 오갔다. 동반성장위 관계자의 얘기다.
“품목별로 회의를 하면 1, 2차 때는 서로 소리만 지르고 싸우다가 끝났습니다. 서로 다른 업주들이 모여서 감정풀이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이런 일이 두세 번 일어난 다음에야 진정을 하고 회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대기업 아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봐야
―가장 많은 안건으로 올라온 것은 뭐였습니까.
“두부였습니다. 대기업부터 영세한 1인 기업까지 모두 뛰어든 사업이었습니다. 두부식품조합, 연두부식품조합 등 조합이 다양했고, 대기업에 상표만 붙여서 OEM으로 납품하는 곳 등 다양한 사업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과거 조합원이었다가 사세(社勢)가 확장되어 탈퇴한 풀무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장 진출을 허용해야 하느냐 등을 놓고 이견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두부의 원료인 콩을 수입하는 이권이 있어, 의견을 조율하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겠다는 기본 취지는 이해하지만, 규제 범위나 대상이 너무 막연하지 않습니까.
“언론에서 그렇게 말하지만 실상 업계에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 생산하는 제품의 시장 규모가 얼마인지, 그중 자신의 마진이 얼마이고 타사가 얼마인지 알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82개의 품목을 선정했는데 기준이 전부 달라서 그 과정을 조율하기 어려웠지만, 저희가 터무니없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텐데, 언론 보도가 좀 아쉬웠습니다.”
―왜요.
“저희가 적합업종을 지정한 것을 두고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최소 15조원의 시장을 중소기업에 돌려줬다고 분석합니다. 유예기간은 3년입니다. 대다수의 언론이 대기업의 입장에서 ‘대기업은 향후 3년 동안 두부 시장에 들어가지 말아라’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입장을 봐주십시오. ‘중소기업에 향후 3년 동안 두부를 더 팔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아니겠습니까. 중소기업이 좀 더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데, 대기업 것을 무조건 뺏었다는 식으로 바라봐서 아쉬웠습니다.”
―두부의 예를 들어보죠. 3년 동안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중소기업이 판매 루트를 못 뚫으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판매루트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업 부문 위원회별로 시정권고가 되는데, 유통 부문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또 논의될 겁니다.”
―3년만 유예기간을 두는 겁니까.
“저희는 중소기업이 두부, 순대, 김치, 청국장 시장에서 3년 동안 좀 더 파이를 키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중소기업의 몫입니다. 대기업의 진출을 무작정 막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82개의 품목 중에서 3년 이후에도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싶으면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대기업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일단 법적 가능성은 없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부분은 강력하게 권고한다. 실제로 권고를 통해 시정된 케이스가 있다”며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파업조정심의위원회에 고발할 수 있고, 사업조정심의위원회 법에 따라 패널티를 물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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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7일 오전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동반성장위원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기업 측 위원들이 불참한 채 이익공유제 도입방안을 논의했다. |
“대기업 진출 막았더니 편법으로 진출한다”(조명회사 대표)
조명기구를 20여 년째 생산하는 중소기업체의 김모 대표는 요즘 들떠 있다. 동반성장위의 권고로 인해, 대기업이 향후 3년 시장에 진출하지 못해서다. 김 모 대표는 “대기업에 납품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익명으로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가능성 있다 싶은 사업은 다 들어왔습니다. 세계 조명시장의 강자는 이태리, 스페인의 가업을 잇는 전통 중소기업들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조명산업에 진출해서 중소상인이 다 죽었습니다. 그 결과 몇몇 업체의 담합으로 조명기구 가격이 한국보다 10배 비쌉니다. 이들은 당연히 수출도 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현실을 알고 제재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중소기업은 자본의 논리에 밀려 전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쟁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과거 150대 1이었다면, 지금은 120대 1이지만 그게 어딥니까. 3년 만에 대기업을 이길 정도로 기술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정부가 정말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면 이런 토대를 만들었으니,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이 기술을 가질 수 있는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법 업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규제하고요.”
―무슨 얘깁니까.
“중소기업들에 기회가 생기니까 대기업들이 편법으로 진출하려 합니다. GS그룹은(인터뷰이가 그룹명을 실명화해 줄 것을 요청했음) ‘알토’라는 조명회사를 세워서 100% 수의계약을 주고 있고, KCC는 그룹 내부에 LED 조명사업부가 있습니다. 현대가 오너인 정몽혁씨는 차명으로 ‘H애비뉴’라는 회사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중소기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규제가 생긴 것만 해도 동반성장위에 감사하지만, 앞으로 감시 역할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중소기업들의 숨을 터준 것은 확실해요.”
대기업의 상생지수 1위부터 순서 매겨
하지만 정운찬 위원장과 최중경 전 지경부 장관, 허창수(許昌秀) 전경련 회장의 밀고 당기기는 끝이 없었다.
정 위원장이 지난 2011년 6월에 허 회장에게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이 전경련이 아닌 GS그룹 회장실을 직접 접촉한 끝에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동반성장위원회 정식 9차 회의에 대기업 대표들은 전원 불참했다. 하지만 정운찬 위원장은 올 초,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이름을 ‘협력이익배분제’로 바꾸고 안건을 상정했다. 물론 역시 강제성은 없다. 또 동반성장위는 오는 4월에는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할 계획이다. 동반성장위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지수를 내놓는다. 업계는 이미 지난 1월 말에 공정거래위원회에 동반성장협약 시행 실적을 제출했다. 상위 56개 대기업의 전체 순위를 발표할지, 상·하위 몇 곳을 발표할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대기업이 회의에 불참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지만 지수발표 등으로 순위를 매기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며 “성장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틀린 관계를 바로잡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야당에서는 ‘재벌 해체론’이라는 강공수를 들고 나올 정도다. 정운찬의 지난 1년 반은 어떤 성과로 기억될까.⊙
[인터뷰] 鄭雲燦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MB정부에 ‘대기업주의자’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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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경리 |
그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형입니다. 재작년 GDP가 1조 달러를 넘었는데, 그중 4600억 달러가 수출액입니다.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성장했지만, 글로벌 기업에 비해 부족함이 많습니다. 글로벌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데, 원가 절감의 방향 중 하나가 중소기업의 납품가를 후려치는 방법입니다. 수출 대기업 정도면 목표액이 있습니다. 그걸 초과하는 것이 초과이익인데, 일부를 임직원에 인센티브 명목으로 주는 겁니다. 제 주장은 그중 일부를 ‘후려치기’ 당한 중소업체에 줘서 그들의 기술개발을 돕고, 고용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 공정하다는 얘기입니다. 초과이익배분제나 협력이익배분제나 똑같은 내용을 가진 다른 이름인데, 사람들은 초과이익배분에 발끈합니다.”
―사회주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 아닙니까.
“크게 얘기하면 이익공유제, 판매수익공유제 같은 것들입니다. 1920년대에 미국 영화산업에서 이미 나온 얘기입니다. 지금은 제조업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골자는 협력하자는 겁니다. 용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달리 생각지 않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 미국 좌파 경제학자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시 교수에게 이 문제를 물었더니 기업의 주주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 했습니다.
“국내 주주도 있고 해외 주주도 있는데 해외 주주들이 반발하지 않겠느냐는 것은 굉장히 미시적인 얘기입니다. 회사 경영에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 아주 일부를, 상생의 차원에서 나누자는 것인데, 일부 후려치기를 당한 사람에게 준다 해서 해외 주주들이 큰 불만을 말하긴 힘들 겁니다. 한국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갑을 관계가 뚜렷한 곳이 세상에 없습니다. 라이시 교수가 이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사가 마음속으로는 목표를 10조를 잡았는데, 실제 17조원이 됐다 칩시다. 그러면 15조원으로 목표이익을 높게 잡자는 얘기들을 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회사의 목표치는 달성 가능하고, 직원들이 사기 진작을 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만일 터무니없는 목표이익을 잡으면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상식선에서 목표이익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몇 %의 이윤을, 어떤 기준으로 협력 중소기업에 주자는 소립니까.
“그래서 자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기업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협력업체 중 어느 곳에 가장 후려치기를 했고, 어느 곳이 덜한지를요. 그래서 자율에 맞춰, 몇 %를, 자신들이 알아서 나눠주라는 것 아닙니까. 구체적인 숫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런 취지를 정하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목표라고 봅니다. 무슨 목적으로요? 고용안정하고, 기술개발 목적, 자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강제성이 없는데 들을까요.
“국세청 세무, 공정관리위원회의 조사에 혜택을 주고, 조달청을 통한 관급 공사에 인센티브를 줍니다. 요즘 동반성장위원회의 힘이 약해졌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처음 출발 때보다 요즘 더 우호적이라고 봅니다. 상장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찰이 100조원입니다. 후려치기를 근절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교수 시절에 쓴 논문을 보면, 기본 성향이 좌파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저는 케이스주의자로 분류되는 걸 좋아합니다. 케인스가 좌파라면 저도 좌파예요. 그런데 저는 중도파입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비시장경제적인 방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케인스의 기본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성장과 분배의 적당한 조화, 시장과 정부의 적당한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더구나 지금 좌파, 우파를 따질 겨를이 없잖습니까.”
―이런저런 발언으로 외로운 싸움을 해왔는데요.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청와대 실장들이 혁명적 사고라고 말할 때 참 외로웠습니다. 저를 지지하는 발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반성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청와대 있는 분들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이 세상을 잘못 보는 겁니다. 양극화는 세계적 현상이고, 한국의 문제입니다. 정부에 자유시장 신봉자도 아니고, 대기업주의자들인, 대기업에 대해 이해해 주는 관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해하는 건 좋은데, 중소기업도 이해하면서 밸런스를 맞춰야지, 참 곤란합니다.”
―성장위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조직이라 들었습니다.
“연간 36억원이던 예산이 늘어서 올해 49억원이라고 합니다. 직원은 고작 22명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보 중요성과 비교할 때 너무 적습니다. 게다가 동반성장위의 목적이 문화의 조성과 확산입니다. 얼마 전에 지경부에 홍보 비용으로 40억원을 요청했는데 4억4000만원을 준다고 해서 관두라고 했습니다. 인력도, 권한도 없지만 제 평생에 이렇게 열심히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혹자는 총리를 하다가 힘을 못 쓰는 곳에 가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제 학자로서의, 교수로서의 신념에는 맞습니다.”
―평소 재벌 견제 발언을 많이 하는데 오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교체되지 않는 권력, 황제 같지 뭐. 골목 상인들은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예요. 대기업이 말하는 사상 최대의 순이익에는 소규모 업체로부터의 ‘후려치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걸 좀 돌려주라는 건데, 안 하면 욕심꾸러기지요. 황제의 욕심 맞지, 뭡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