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盧武鉉 대통령 탄생 65주년 음악회에 관객 4000명 몰려
⊙ 權良淑, ‘노무현’ 추모 행사에서 소외된 현지 주민 달래려 오찬 마련
⊙ ‘봉하대군’ 盧健平, 출소 후 낚시와 블랙베리 재배로 消日
⊙ “내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노”(노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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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노”(노건평)
- 정치평론가들은 민주당에 영향력을 가진 이희호 여사와 달리 정치경험이 부족한 권양숙 여사는 그 힘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부산ㆍ경남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한나라당 텃밭인 이 지역의 민심이 향후 정국(政局)을 가늠하는 중요 지표로 부상하고 있다.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친노 세력이다. 김두관(金斗官ㆍ52) 경남지사의 동생 김두수(金斗守ㆍ48) 사회디자인 연구소 상임이사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와 관계가 깊었던 사람들은 노 전(前) 대통령 ‘서거’ 이후 분화했다. ‘친노’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거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의 말처럼 친노 진영은 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김두관 경남지사, 한명숙(韓明淑ㆍ67) 전 총리, 안희정(安熙正ㆍ47) 충남지사와 이광재(李光宰ㆍ46)씨, 유시민(柳時敏ㆍ52) 국참당 대표 그리고 사실상 정치 무대에 데뷔한 문재인(文在寅ㆍ58) 변호사는 ‘친노’ 타이틀로 각개약진하는 상황이다.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이들의 집결지는 권양숙 여사가 사는 ‘봉하마을’이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이곳은 소위 ‘노빠’에겐 성지(聖地)나 다름없어 ‘노무현’을 그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잠자는 노짱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지난 8월 27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주년 음악회’가 열렸다. 기자가 진영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역전에는 노란 스카프를 목에 두른 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봉하마을로 향했다.
봉하마을은 이미 동구(洞口) 밖 도로까지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아이와 함께한 젊은 부부, 지팡이를 짚은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전경(全景)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앞에 가던 중년 부부가 전방을 가리켰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投身)한 부엉이 바위를 보면서 “노무현이가 뇌물만 안 먹었어도”라며 혀를 찼다.
공연장은 부엉이 바위 밑자락에 마련돼 있었다. 이미 2000석 규모의 객석은 만원(滿員)이었다. 무대를 볼 수 있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어 헤치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시작한 음악회는 전(前) 국립오페라단 단장 정은숙 교수(세종대)의 사회로 진행됐다. 정 교수는 문익환(文益煥) 목사의 장남인 고 문호근씨의 부인이자, 배우 문성근씨의 형수(兄嫂)다. 이날 주요 참석자는 권양숙 여사와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변호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기인 신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김진애 민주당 의원 등이었다.
음악회 초반은 성악가들의 공연이 이어져 여타 공연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특이한 점은 문재인 변호사의 부인 김정숙씨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김씨는 경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서울시립합창단에 몸담은 바 있는데, 문 변호사가 부산에 자리 잡고 나서 그만뒀다. 사회자에 따르면 김씨는 퇴직 후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이제 막 ‘정치 행보’를 시작한 남편의 내조(內助)를 위해 30년간 하지 않았던 노래를 했다는 얘기다. 문 변호사의 지지율이 높은 만큼 김씨에 대한 객석의 환호도 컸다.
이어 영화감독 이창동씨의 시(詩) 낭송이 끝나고,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희아(26ㆍ여)씨가 피아노 연주를 했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시민 대표로 헌화하며 “너무너무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억울함과 분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씨는 마이크를 잡고서 “(이명박 대통령은) 삽질만 하는데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며 울먹였다.
공연은 한명숙 전 총리의 차례부터 정치색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한 전 총리는 가수 한영애의 ‘조율(調律)’ 끝 부분을 “잠자는 노짱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사람 사는 세상으로 조율 한 번 해주세요”라고 가사를 바꿔 불렀다. 기자 주위의 몇몇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때 문재인 변호사가 무대에 올랐다. 야권(野圈) 대선주자 지지율 1위답게 객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문 변호사는 대중집회에 익숙지 못한 탓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가운데 계시더라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권양숙 여사는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있다”고 소개했다. 권 여사는 뒤돌아서서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문 변호사는 “이 멋진 음악회를 생신선물로 바친다”면서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조율’을 불렀다. 무대와 객석은 ‘노짱’을 연호했고, 봉하의 ‘밤’은 점점 노란색으로 물들어갔다.
공연장을 빠져나와 마을 입구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 사저(私邸)로부터 동구까지는 길 양쪽에 주민들이 영업하는 노점들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다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이나 사진을 천막에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나 추모 여부를 떠나 봉하마을에서 장사하려면 필수 아이템이다. 노점상을 보며 ‘친노’ 간판을 달고 ‘노무현 정신’을 얘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치인들, 이벤트 있을 때 권 여사 찾아
이튿날 아침 기자는 봉하마을을 다시 찾았다. 마을 주차장에는 이미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있었다. “봉하의 버팀목 권양숙 여사님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란 현수막도 보였다. 권양숙 여사가 아침에 운동하러 나온다는 말에 근황을 듣기 위해 나선 길이었지만, 기대와 달리 권 여사는 집 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동네 주민은 “아침에 운동하는데 나오지 않을 때도 잦고 시간도 불규칙해서 언제라고 꼭 집을 수 없다. 봄에 운동하는 걸 본 것이 최근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생일 때 동네 주민들을 초청해 밥을 먹은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관계자는 “마을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외출은 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지난 5월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을 통해 “사저에서 봉하마을 내 다른 장소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밝혔다.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권 여사의 근황을 알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인, 전(前) 진영농협 조합장 이재우(李在友ㆍ64)씨를 만났다. 이씨는 “권 여사가 돈 받은 건 솔직히 부끄러운 일인데 밖에 제대로 나올 수 있겠느냐”면서 “요즘은 사저에 자주 가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모친하고 같이 살고 있으니까 적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1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꽃배달 차량이 계속 마을로 들어갔다. 사저 앞 초소에는 ‘김현종’이란 이름으로 온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오전 11시쯤 유시민 대표가 국참당 관계자들과 함께 묘역을 참배하고 사저로 들어갔다. 국참당 관계자에 따르면 약 40일 만의 방문이라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도 왔다. 사저 경호 관계자는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니까 주 1회 정도 오는데 다른 정치인들은 이벤트나 있어야 방문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르자 도의원, 시의원, 봉하마을과 인접한 동네 이장, 조합장 등 진영읍 유지들이 사저로 들어갔다. 권양숙 여사가 남편의 생일을 맞아 초청한 것이다. 한 참석자의 전언(傳言)에 따르면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참모나 외부 단체들이 봉하마을에서 추모행사를 주도하는 데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쌓인 것을 알고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문 변호사와 유 대표는 권양숙 여사와 따로 얘기를 나눴다.
12시20분쯤 문재인 변호사와 유시민 대표가 웃으면서 나왔다. 문 변호사에게 “오늘 권 여사와 무슨 특별한 얘기를 나눴나” 물었지만, 그는 “예, 뭐 얘기를 했습니다”라고 얼버무리며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떠났다. 그날 저녁 문 변호사는 야권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이 주관하는 ‘정치 콘서트, 당신이 꿈꾸는 나라’에 김두관 지사, 문성근씨 등과 함께 참석했다. ‘혁신과 통합’은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친노 진영, 노무현의 후광(後光)에만 의존한다
친노 진영의 대표는 문재인 변호사인 듯하지만 명실상부한 대표는 아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대권 도전 선언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상황 자체가 판이하다”며 “언론도 문재인 변호사의 발언과 동정만을 보도하지 검증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김두관 지사가 여러 차례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 지사직을 수행하며 성과를 쌓는다면 기회는 많을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친노 인사들은 각자 ‘포스트 노무현’을 꿈꾸며 잰걸음을 걷고 있다. 당분간 문 변호사는 ‘혁신과 통합’을 통해 야권 통합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도 8월 말 열린 자서전 ‘북(Book) 콘서트’에서 선(先) 야권통합, 후(後) 거취표명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가 ‘대권’에 대해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선거 기여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0·26 서울시장, 부산 동구청장 재보선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통해 자신의 성과를 보이는 것이 대권 가도의 제1 관문이다. 유시민 대표는 민노당과의 통합 작업에 집중하고 있고, 한명숙 전 총리는 9월 13일 ‘서울시장 보선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리틀 노무현’ 김두관 경남지사는 강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지만, 차기 대권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들 정치적 미래를 위한 수지타산을 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할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구심점이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친노 정치인들의 봉하마을 내방을 두고 권양숙 여사가 친노 진영에 실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희호(李姬鎬ㆍ89) 여사처럼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노건호의 총선 출마 가능성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권양숙 여사가 영부인이었기 때문에 영향력을 갖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권 여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일했던 참모들과 인간적ㆍ정치적 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 여사가 인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계파 교통정리를 하거나, 정치노선을 정하는 등의 개입은 할 수 없습니다. 친노 정치인들 개개인의 정치경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권 여사의 간섭이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작년에 만류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권 여사가 노건호씨를 출마하도록 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노건호씨가 다른 지역에서는 힘들겠지만, 김해라면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김해 을(乙)’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건호씨의 득표로 연결되겠지요. 정치에 입문하는 쉬운 길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선택은 말리고 싶습니다. 만약 정치를 하고 싶다면 정치적 신망(信望)을 쌓은 다음, 노 전 대통령처럼 부산이나 수도권에서 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정치컨설팅업체 조원 씨앤아이 김대진(34) 대표도 “권 여사는 상징성만 갖고 있다. 정치인들이 방문하는 이유는 예우 차원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現職)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고인이 됐는데 정치경험도 없는 권 여사의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친노 진영이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의 후광(後光)효과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문들이 제기되는 겁니다. 현재 친노 인사들이 언론에 비중 있게 등장하고 ‘노무현 정신’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지만, 말과 이미지뿐입니다. 빨리 실체를 보이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봉하빵집에서 일하는 건평씨 부인 민미영씨
한편 봉하마을에는 노건평씨도 있다. 노씨는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 과정에 개입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ㆍ추징금 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0년 8월 광복절 특사(特赦)로 출소했다.
출소 당시 노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형이 못나서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괴로웠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출소하자마자 동생의 묘역을 가장 먼저 찾아가 못난 형을 용서해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했다. 또 “당분간은 봉하마을에 머물며 동생 묘역관리로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혔었다. 노씨는 이후 언론에 2~3차례 짧게 등장한 적이 있지만, 근황이 소개된 적은 없었다.
비록 동생은 고인이 됐지만, 만약 노씨가 예전처럼 ‘사업’을 한다면 동생의 대통령 재임 당시보다 훨씬 좋은 환경일 수도 있다. 동생을 주군(主君)으로 모신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김맹곤 김해시장이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직접적 지원이 아닌 배경만으로도 지역사회에서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봉하대군’ 노건평씨는 정말 근신(謹愼)하며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촌부(村夫)’로 지내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영중학교 동창인 건평씨의 지인 중 한 명은 “지난봄에 건평씨 조카 결혼식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라며 “출소 이후에는 읍내도 잘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최근 몇 달간 못 봤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시의원은 “약속하는 건 아니지만, 봉하마을에 갈 때 만나곤 한다”며 “아무래도 자신이 동생 사망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자중(自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봉하마을에서 노점을 하는 한 주민은 “그 집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피곤할 거다. 기자도 많이 오고 다른 사람도 많이 찾는다”며 위치를 알려줬다. 마을 어귀에 있는 노건평씨의 집을 찾았다. 인기척이 없었다. 최근 노씨가 자주 들른다는 봉화산 사자 바위 바로 밑 블랙베리 밭에도 가봤지만 보이질 않았다. 마을회관을 비롯해 곳곳을 다녔지만 그를 찾을 순 없었다.
다음 날 또다시 찾아갔지만, 이번에는 문이 잠겨 있었다. 부인 민미영(閔美迎ㆍ54)씨가 일한다는 ‘봉하마을 찰보리빵’ 매장으로 갔다. 당초 이 빵집은 경주에서 온 백모씨가 운영하다 2009년 12월 처분한 곳이다. 현재 대표는 건평씨의 장남 노상욱(盧尙煜ㆍ37)씨. 상욱씨와 민씨를 포함한 마을 주민 8명이 일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민씨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주 2~3회 정도 나와서 일한다고 했다.
―노건평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오늘 새벽에 (전남) 여수로 낚시하러 갔는데, 한번 나가면 하루 만에 올 때도 있지만, 며칠씩 있다가 올 때도 있습니다.”
―낚시를 자주 갑니까.
“원래 낚시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대통령이 변호사를 할 때는 제주도에 갔다가 조난당해 구조된 적도 있어요. 지금도 자주 다니고요.”
―출소하면서 금연ㆍ금주를 하겠다고 했는데 건강은 어떻습니까.
“건강해요. 담배는 예전에도 잘 피우지 않았는데, 술은 조금씩 마십니다.”
―지난해 출소 후 동생에게 바로 갔다는데요.
“예, 원래 자기가 걱정하는 걸 비치거나 힘든 걸 내색하는 사람이 아닌데 지금도 대통령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난다면서 말을 안 하려 합니다.”
노건평씨한테 얻어마신 냉수 두 잔
―아직도 외부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까.
“집에 잘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질 않습니다.”
―권양숙 여사와는 왕래가 있습니까.
“사저에 자주 가고 식사도 합니다.”
―노건호씨가 내년 총선에 나올 거라고 하던데요.
“지금 중국에 있는데 본인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대요.”
8월 30일 세 번째로 노건평씨 집을 찾았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은색 체어맨이 차고에 있었다. 노건평씨가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노씨가 타는 노란색 스쿠터가 보였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1시간이 지나고 청바지 차림의 노씨가 나타났다. 그는 기자가 소개를 하는데도 대꾸하지 않았다. 2분쯤 지났을 때 노씨가 입을 열었다.
“직무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난 시간도 없고, 할 얘기도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존재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조용히 사는 사람이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만 돌아가시오.”
결국 냉수 두 잔만 얻어 마시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봉하마을 주민에게 노건평씨를 탐문한 결과, 그가 봉하마을에 ‘쉼터’로 제공하던 건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뒤에 딸린 공터까지 합하면 대지 면적만 1320㎡(400평)로 매매가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현재 마을에서 노점을 하는 이들이 입주할 상가가 들어선다고 했다.
지난 5월 《시사저널》은 노씨 지인의 입을 빌려 하는 일은 없는데 빚이 많아서 곧 건물을 처분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노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정원토건은 2010년 6월 20일 벌금 14억원을 맞고 폐업신고했다. 같은 해 광복절 특사 얘기가 나올 때 추징금 3억원도 완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일인 9월 1일에 다시 건평씨의 집에 갔다. 현관에는 열쇠가 꽂혀 있었고, 선물인 듯한 거창사과 상자 2개가 놓여 있었지만, 집은 비어 있었다. 1시간 뒤 갔을 때, 건평씨가 현관을 열었다. 얼굴만 내민 채 “미안하지만 할 얘기가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3시간 후 다시 갔다. 무슨 일인지 기자에게 거실을 개방했다. 집 안은 예상외로 소박했다. 건평씨 집 거실 벽면에는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황금색 보자기에 싸인 선물이 놓여 있었다. 노씨는 “날도 더운데 막내딸하고 나이가 비슷한 것 같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어 들어오라고 한 것이지 인터뷰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이 상당해 보였다.
노건평씨, 기자에게 밸런타인 30년 권해
“나는 원래 기자들 만나는 걸 싫어한다. 특히 《조선일보》는 더 만나기 싫은기라. 저수지 앞 잔디밭에서 손녀 장난감 골프채로 자세 좀 잡았더니 ‘호화 골프장’이라고 하고. 알선수재로 3억원 받은 걸 30억원이라고 쓰고. 너무 악의(惡意)적이다 아이가.”
그는 근황을 묻자 “출소 후 블랙베리도 키우고, 낚시도 자주 간다”고 답했다. 8월 29일은 전남 여수, 31일에는 전남 보성으로 낚시를 다녀왔다고 했다. 노씨는 “내가 모자를 쓰고 가도 전라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반겨준다”며 “경상도에 살고 있지만, 전라도 사람들이 더 좋다”고 말했다.
노씨의 낚시 이야기는 ‘4대강’ 사업 비판으로 흘렀다. 그는 “내가 밀양으로 낚시를 자주 가는 데 시간이 있으면 데리고 가고 싶다. 수만 평 옥토가 있던 곳인데, 지금 4대강 사업으로 다 망가졌다. 나는 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라서 더 안타깝다”고 했다.
노건평씨의 비판은 확고했지만, 발음은 부정확했다. 노씨는 “동생 생일이라 사저에서 아침식사를 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아 오후에 한잔했다”며 기자에게도 ‘밸런타인 30년’을 권했다. 밸런타인 30년산은 면세점에서도 25만원쯤 하는 최고급 위스키다. 불콰해진 그는 “내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노”라며 “40년 된 집은 바닥이 푹푹 꺼지고, 겨울에 터진 수도관은 돈이 여유가 없어서 고치지도 못한다”고 궁핍을 강조했다.
이날 대화는 약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지만, 소득은 없었다. 노건평씨는 기자를 배웅하며 “사저에서 저녁식사가 있는데 가지 않고 집에 혼자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가서 뭐하겠나, 동생한테 절할 수도 없는 기고”라고 말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만은 동생을 먼저 보낸 ‘형’의 쓸쓸함이 느껴졌지만, 문득 세종증권 매각 관련 2심 재판을 맡은 조병현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서울행정법원장)의 훈계가 떠올랐다. 당시 푸른색 수의(囚衣)를 입고 휠체어에 탄 채 법정에 들어선 노건평씨는 훈계가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원심 판결 선고 뒤 피고인이 그토록 자랑스러워 했고 언필칭 내가 키웠노라고 큰소리쳤던 동생이 자살했다. 피고인은 이제는 해가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이나 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의 외양을 하고 있다.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으로 전락(轉落)한 노씨를 감형(減刑)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 이사의 말처럼 친노 진영은 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김두관 경남지사, 한명숙(韓明淑ㆍ67) 전 총리, 안희정(安熙正ㆍ47) 충남지사와 이광재(李光宰ㆍ46)씨, 유시민(柳時敏ㆍ52) 국참당 대표 그리고 사실상 정치 무대에 데뷔한 문재인(文在寅ㆍ58) 변호사는 ‘친노’ 타이틀로 각개약진하는 상황이다.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이들의 집결지는 권양숙 여사가 사는 ‘봉하마을’이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이곳은 소위 ‘노빠’에겐 성지(聖地)나 다름없어 ‘노무현’을 그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잠자는 노짱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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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권양숙 여사는 “사저에서 봉하마을 내 다른 장소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밝혔다. |
봉하마을은 이미 동구(洞口) 밖 도로까지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아이와 함께한 젊은 부부, 지팡이를 짚은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전경(全景)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앞에 가던 중년 부부가 전방을 가리켰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投身)한 부엉이 바위를 보면서 “노무현이가 뇌물만 안 먹었어도”라며 혀를 찼다.
공연장은 부엉이 바위 밑자락에 마련돼 있었다. 이미 2000석 규모의 객석은 만원(滿員)이었다. 무대를 볼 수 있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어 헤치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시작한 음악회는 전(前) 국립오페라단 단장 정은숙 교수(세종대)의 사회로 진행됐다. 정 교수는 문익환(文益煥) 목사의 장남인 고 문호근씨의 부인이자, 배우 문성근씨의 형수(兄嫂)다. 이날 주요 참석자는 권양숙 여사와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변호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기인 신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김진애 민주당 의원 등이었다.
음악회 초반은 성악가들의 공연이 이어져 여타 공연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특이한 점은 문재인 변호사의 부인 김정숙씨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김씨는 경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서울시립합창단에 몸담은 바 있는데, 문 변호사가 부산에 자리 잡고 나서 그만뒀다. 사회자에 따르면 김씨는 퇴직 후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이제 막 ‘정치 행보’를 시작한 남편의 내조(內助)를 위해 30년간 하지 않았던 노래를 했다는 얘기다. 문 변호사의 지지율이 높은 만큼 김씨에 대한 객석의 환호도 컸다.
이어 영화감독 이창동씨의 시(詩) 낭송이 끝나고,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희아(26ㆍ여)씨가 피아노 연주를 했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시민 대표로 헌화하며 “너무너무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억울함과 분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씨는 마이크를 잡고서 “(이명박 대통령은) 삽질만 하는데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며 울먹였다.
공연은 한명숙 전 총리의 차례부터 정치색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한 전 총리는 가수 한영애의 ‘조율(調律)’ 끝 부분을 “잠자는 노짱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사람 사는 세상으로 조율 한 번 해주세요”라고 가사를 바꿔 불렀다. 기자 주위의 몇몇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때 문재인 변호사가 무대에 올랐다. 야권(野圈) 대선주자 지지율 1위답게 객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문 변호사는 대중집회에 익숙지 못한 탓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가운데 계시더라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권양숙 여사는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있다”고 소개했다. 권 여사는 뒤돌아서서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문 변호사는 “이 멋진 음악회를 생신선물로 바친다”면서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조율’을 불렀다. 무대와 객석은 ‘노짱’을 연호했고, 봉하의 ‘밤’은 점점 노란색으로 물들어갔다.
공연장을 빠져나와 마을 입구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 사저(私邸)로부터 동구까지는 길 양쪽에 주민들이 영업하는 노점들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다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이나 사진을 천막에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나 추모 여부를 떠나 봉하마을에서 장사하려면 필수 아이템이다. 노점상을 보며 ‘친노’ 간판을 달고 ‘노무현 정신’을 얘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치인들, 이벤트 있을 때 권 여사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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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회에 참석한 권양숙 여사가 문재인 변호사, 한명숙 전 총리 등과 함께 공연을 즐기고 있다. |
동네 주민은 “아침에 운동하는데 나오지 않을 때도 잦고 시간도 불규칙해서 언제라고 꼭 집을 수 없다. 봄에 운동하는 걸 본 것이 최근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 생일 때 동네 주민들을 초청해 밥을 먹은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관계자는 “마을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외출은 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지난 5월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을 통해 “사저에서 봉하마을 내 다른 장소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밝혔다.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권 여사의 근황을 알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인, 전(前) 진영농협 조합장 이재우(李在友ㆍ64)씨를 만났다. 이씨는 “권 여사가 돈 받은 건 솔직히 부끄러운 일인데 밖에 제대로 나올 수 있겠느냐”면서 “요즘은 사저에 자주 가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모친하고 같이 살고 있으니까 적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1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꽃배달 차량이 계속 마을로 들어갔다. 사저 앞 초소에는 ‘김현종’이란 이름으로 온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오전 11시쯤 유시민 대표가 국참당 관계자들과 함께 묘역을 참배하고 사저로 들어갔다. 국참당 관계자에 따르면 약 40일 만의 방문이라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도 왔다. 사저 경호 관계자는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니까 주 1회 정도 오는데 다른 정치인들은 이벤트나 있어야 방문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르자 도의원, 시의원, 봉하마을과 인접한 동네 이장, 조합장 등 진영읍 유지들이 사저로 들어갔다. 권양숙 여사가 남편의 생일을 맞아 초청한 것이다. 한 참석자의 전언(傳言)에 따르면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참모나 외부 단체들이 봉하마을에서 추모행사를 주도하는 데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쌓인 것을 알고 이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문 변호사와 유 대표는 권양숙 여사와 따로 얘기를 나눴다.
12시20분쯤 문재인 변호사와 유시민 대표가 웃으면서 나왔다. 문 변호사에게 “오늘 권 여사와 무슨 특별한 얘기를 나눴나” 물었지만, 그는 “예, 뭐 얘기를 했습니다”라고 얼버무리며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떠났다. 그날 저녁 문 변호사는 야권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이 주관하는 ‘정치 콘서트, 당신이 꿈꾸는 나라’에 김두관 지사, 문성근씨 등과 함께 참석했다. ‘혁신과 통합’은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친노 진영, 노무현의 후광(後光)에만 의존한다
친노 진영의 대표는 문재인 변호사인 듯하지만 명실상부한 대표는 아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대권 도전 선언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상황 자체가 판이하다”며 “언론도 문재인 변호사의 발언과 동정만을 보도하지 검증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김두관 지사가 여러 차례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 지사직을 수행하며 성과를 쌓는다면 기회는 많을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친노 인사들은 각자 ‘포스트 노무현’을 꿈꾸며 잰걸음을 걷고 있다. 당분간 문 변호사는 ‘혁신과 통합’을 통해 야권 통합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도 8월 말 열린 자서전 ‘북(Book) 콘서트’에서 선(先) 야권통합, 후(後) 거취표명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가 ‘대권’에 대해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선거 기여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0·26 서울시장, 부산 동구청장 재보선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통해 자신의 성과를 보이는 것이 대권 가도의 제1 관문이다. 유시민 대표는 민노당과의 통합 작업에 집중하고 있고, 한명숙 전 총리는 9월 13일 ‘서울시장 보선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리틀 노무현’ 김두관 경남지사는 강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지만, 차기 대권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들 정치적 미래를 위한 수지타산을 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할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구심점이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친노 정치인들의 봉하마을 내방을 두고 권양숙 여사가 친노 진영에 실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희호(李姬鎬ㆍ89) 여사처럼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노건호의 총선 출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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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ㆍ27 재보선 때 김해 을(乙) 출마설이 나돌았던 노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 민미영씨에 따르면 건호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
“권 여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일했던 참모들과 인간적ㆍ정치적 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 여사가 인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계파 교통정리를 하거나, 정치노선을 정하는 등의 개입은 할 수 없습니다. 친노 정치인들 개개인의 정치경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권 여사의 간섭이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작년에 만류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권 여사가 노건호씨를 출마하도록 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노건호씨가 다른 지역에서는 힘들겠지만, 김해라면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김해 을(乙)’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건호씨의 득표로 연결되겠지요. 정치에 입문하는 쉬운 길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선택은 말리고 싶습니다. 만약 정치를 하고 싶다면 정치적 신망(信望)을 쌓은 다음, 노 전 대통령처럼 부산이나 수도권에서 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정치컨설팅업체 조원 씨앤아이 김대진(34) 대표도 “권 여사는 상징성만 갖고 있다. 정치인들이 방문하는 이유는 예우 차원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現職)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고인이 됐는데 정치경험도 없는 권 여사의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다만 친노 진영이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의 후광(後光)효과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문들이 제기되는 겁니다. 현재 친노 인사들이 언론에 비중 있게 등장하고 ‘노무현 정신’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지만, 말과 이미지뿐입니다. 빨리 실체를 보이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봉하빵집에서 일하는 건평씨 부인 민미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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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사자 바위 밑에 있는 노건평씨 소유의 블랙베리 밭. 노씨는 출소 후 낚시와 블랙베리 재배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
출소 당시 노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형이 못나서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괴로웠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출소하자마자 동생의 묘역을 가장 먼저 찾아가 못난 형을 용서해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했다. 또 “당분간은 봉하마을에 머물며 동생 묘역관리로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혔었다. 노씨는 이후 언론에 2~3차례 짧게 등장한 적이 있지만, 근황이 소개된 적은 없었다.
비록 동생은 고인이 됐지만, 만약 노씨가 예전처럼 ‘사업’을 한다면 동생의 대통령 재임 당시보다 훨씬 좋은 환경일 수도 있다. 동생을 주군(主君)으로 모신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김맹곤 김해시장이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직접적 지원이 아닌 배경만으로도 지역사회에서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봉하대군’ 노건평씨는 정말 근신(謹愼)하며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촌부(村夫)’로 지내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영중학교 동창인 건평씨의 지인 중 한 명은 “지난봄에 건평씨 조카 결혼식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라며 “출소 이후에는 읍내도 잘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최근 몇 달간 못 봤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시의원은 “약속하는 건 아니지만, 봉하마을에 갈 때 만나곤 한다”며 “아무래도 자신이 동생 사망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자중(自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봉하마을에서 노점을 하는 한 주민은 “그 집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피곤할 거다. 기자도 많이 오고 다른 사람도 많이 찾는다”며 위치를 알려줬다. 마을 어귀에 있는 노건평씨의 집을 찾았다. 인기척이 없었다. 최근 노씨가 자주 들른다는 봉화산 사자 바위 바로 밑 블랙베리 밭에도 가봤지만 보이질 않았다. 마을회관을 비롯해 곳곳을 다녔지만 그를 찾을 순 없었다.
다음 날 또다시 찾아갔지만, 이번에는 문이 잠겨 있었다. 부인 민미영(閔美迎ㆍ54)씨가 일한다는 ‘봉하마을 찰보리빵’ 매장으로 갔다. 당초 이 빵집은 경주에서 온 백모씨가 운영하다 2009년 12월 처분한 곳이다. 현재 대표는 건평씨의 장남 노상욱(盧尙煜ㆍ37)씨. 상욱씨와 민씨를 포함한 마을 주민 8명이 일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민씨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주 2~3회 정도 나와서 일한다고 했다.
―노건평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오늘 새벽에 (전남) 여수로 낚시하러 갔는데, 한번 나가면 하루 만에 올 때도 있지만, 며칠씩 있다가 올 때도 있습니다.”
―낚시를 자주 갑니까.
“원래 낚시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대통령이 변호사를 할 때는 제주도에 갔다가 조난당해 구조된 적도 있어요. 지금도 자주 다니고요.”
―출소하면서 금연ㆍ금주를 하겠다고 했는데 건강은 어떻습니까.
“건강해요. 담배는 예전에도 잘 피우지 않았는데, 술은 조금씩 마십니다.”
―지난해 출소 후 동생에게 바로 갔다는데요.
“예, 원래 자기가 걱정하는 걸 비치거나 힘든 걸 내색하는 사람이 아닌데 지금도 대통령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난다면서 말을 안 하려 합니다.”
노건평씨한테 얻어마신 냉수 두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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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퇴임 후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형 노건평씨가 선영을 성묘한 뒤 얘기하는 모습. 지난 9월 1일, 작고한 동생의 생일에 노건평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술잔을 드는 것뿐이었다. |
“집에 잘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질 않습니다.”
―권양숙 여사와는 왕래가 있습니까.
“사저에 자주 가고 식사도 합니다.”
―노건호씨가 내년 총선에 나올 거라고 하던데요.
“지금 중국에 있는데 본인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대요.”
8월 30일 세 번째로 노건평씨 집을 찾았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은색 체어맨이 차고에 있었다. 노건평씨가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노씨가 타는 노란색 스쿠터가 보였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1시간이 지나고 청바지 차림의 노씨가 나타났다. 그는 기자가 소개를 하는데도 대꾸하지 않았다. 2분쯤 지났을 때 노씨가 입을 열었다.
“직무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난 시간도 없고, 할 얘기도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존재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조용히 사는 사람이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만 돌아가시오.”
결국 냉수 두 잔만 얻어 마시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봉하마을 주민에게 노건평씨를 탐문한 결과, 그가 봉하마을에 ‘쉼터’로 제공하던 건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뒤에 딸린 공터까지 합하면 대지 면적만 1320㎡(400평)로 매매가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현재 마을에서 노점을 하는 이들이 입주할 상가가 들어선다고 했다.
지난 5월 《시사저널》은 노씨 지인의 입을 빌려 하는 일은 없는데 빚이 많아서 곧 건물을 처분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노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정원토건은 2010년 6월 20일 벌금 14억원을 맞고 폐업신고했다. 같은 해 광복절 특사 얘기가 나올 때 추징금 3억원도 완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일인 9월 1일에 다시 건평씨의 집에 갔다. 현관에는 열쇠가 꽂혀 있었고, 선물인 듯한 거창사과 상자 2개가 놓여 있었지만, 집은 비어 있었다. 1시간 뒤 갔을 때, 건평씨가 현관을 열었다. 얼굴만 내민 채 “미안하지만 할 얘기가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3시간 후 다시 갔다. 무슨 일인지 기자에게 거실을 개방했다. 집 안은 예상외로 소박했다. 건평씨 집 거실 벽면에는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황금색 보자기에 싸인 선물이 놓여 있었다. 노씨는 “날도 더운데 막내딸하고 나이가 비슷한 것 같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어 들어오라고 한 것이지 인터뷰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한 불만이 상당해 보였다.
노건평씨, 기자에게 밸런타인 30년 권해
“나는 원래 기자들 만나는 걸 싫어한다. 특히 《조선일보》는 더 만나기 싫은기라. 저수지 앞 잔디밭에서 손녀 장난감 골프채로 자세 좀 잡았더니 ‘호화 골프장’이라고 하고. 알선수재로 3억원 받은 걸 30억원이라고 쓰고. 너무 악의(惡意)적이다 아이가.”
그는 근황을 묻자 “출소 후 블랙베리도 키우고, 낚시도 자주 간다”고 답했다. 8월 29일은 전남 여수, 31일에는 전남 보성으로 낚시를 다녀왔다고 했다. 노씨는 “내가 모자를 쓰고 가도 전라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반겨준다”며 “경상도에 살고 있지만, 전라도 사람들이 더 좋다”고 말했다.
노씨의 낚시 이야기는 ‘4대강’ 사업 비판으로 흘렀다. 그는 “내가 밀양으로 낚시를 자주 가는 데 시간이 있으면 데리고 가고 싶다. 수만 평 옥토가 있던 곳인데, 지금 4대강 사업으로 다 망가졌다. 나는 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라서 더 안타깝다”고 했다.
노건평씨의 비판은 확고했지만, 발음은 부정확했다. 노씨는 “동생 생일이라 사저에서 아침식사를 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아 오후에 한잔했다”며 기자에게도 ‘밸런타인 30년’을 권했다. 밸런타인 30년산은 면세점에서도 25만원쯤 하는 최고급 위스키다. 불콰해진 그는 “내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노”라며 “40년 된 집은 바닥이 푹푹 꺼지고, 겨울에 터진 수도관은 돈이 여유가 없어서 고치지도 못한다”고 궁핍을 강조했다.
이날 대화는 약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지만, 소득은 없었다. 노건평씨는 기자를 배웅하며 “사저에서 저녁식사가 있는데 가지 않고 집에 혼자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가서 뭐하겠나, 동생한테 절할 수도 없는 기고”라고 말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만은 동생을 먼저 보낸 ‘형’의 쓸쓸함이 느껴졌지만, 문득 세종증권 매각 관련 2심 재판을 맡은 조병현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서울행정법원장)의 훈계가 떠올랐다. 당시 푸른색 수의(囚衣)를 입고 휠체어에 탄 채 법정에 들어선 노건평씨는 훈계가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원심 판결 선고 뒤 피고인이 그토록 자랑스러워 했고 언필칭 내가 키웠노라고 큰소리쳤던 동생이 자살했다. 피고인은 이제는 해가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이나 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의 외양을 하고 있다.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으로 전락(轉落)한 노씨를 감형(減刑)하는 것이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