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 한나라당을 찍을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데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열정을 심어줬지만, 동시에 불을 꺼버렸어요”(서른 여덟의 직장인)
⊙ 한나라당은 가진 자, 부자를 위한 당… 정책, 사람 참신하지 않아
⊙ ‘서태지 세대’가 ‘넥타이 부대’로… 유권자의 23% 차지
⊙ 제2의 노무현 나온다면 몰표 줄 수 있는 세대
다른 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데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열정을 심어줬지만, 동시에 불을 꺼버렸어요”(서른 여덟의 직장인)
⊙ 한나라당은 가진 자, 부자를 위한 당… 정책, 사람 참신하지 않아
⊙ ‘서태지 세대’가 ‘넥타이 부대’로… 유권자의 23% 차지
⊙ 제2의 노무현 나온다면 몰표 줄 수 있는 세대
- 광우병 사태 당시 유모차 시위대는 현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30대의 의식의 산물이다.
지난 4월 27일 치러진 재ㆍ보궐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분당을(乙)이었다.
분당을이 어떤 곳인가. 한나라당이 ‘천당’ 다음이라고 여겼던 곳이다. 그런 이곳 주민들이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민주당의 손학규(孫鶴圭) 후보를 주민 대표로 뽑은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놀람을 넘어, 경악 그 자체다.
반란의 주역은 40대(代) 이하, 특히 30대였다. YTN의 출구조사를 보면 20대의 58.2%, 30대의 72%, 40대의 68.6%가 손 후보를 찍은 것으로 집계됐다.
30대의 ‘민주당 밀어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6월 2일에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는 이랬다.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56.7%와 30대의 64.2%가 한명숙(韓明淑)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경기도에서는 30대의 68.3%가 야당 단일후보였던 유시민(柳時敏) 국민참여당 후보를 찍었고, 인천에 출마한 송영길(宋永吉) 민주당 후보에게는 70.5%가 표를 던졌다.
30대의 이런 성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갤럽에 의뢰한 내년 총선에 대한 설문조사(3월 23일) 결과를 보자. 30대 중에서 ‘야권(비한나라당)에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48.3%, ‘여권(한나라당) 후보를 뽑겠다’는 18.1%에 불과했다. 20대는 52.8%(야권 후보) 대(對) 29%(여권 후보)였다.
황상민(黃相旻)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대통령 선호도 및 지지정당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황 교수의 얘기다.
“대통령 선호도를 5점 만점으로 볼 때 30대가 가장 낮습니다. 20대는 2.6점, 40대는 2.5점, 50대는 3.4점을 준 반면에 30대는 2.2점이라고 답했습니다. 표본이 60명이긴 했지만 세대별 지지정당을 보면, 20대 중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27%인데 30대는 0%였습니다. 정치적인 성향으로 보자면 20대와 40대가 비슷하고 30대는 전혀 다릅니다.”
인터뷰에 응한 30대 전원, 2002년 노무현 후보 찍어
젊은 진보 세력은 통상 야당을 지지한다. 이 상식을 적용하자면 민주당에 대한 선호도는 20대〉30대〉40대 순(順)이어야 정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0대가 왜 이렇게 민주당을 좋아할까.
고향, 학력, 직업이 전혀 다른 30대 10여 명을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솔직한 답변을 하는 대신 익명보도를 요청했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원이 노무현(盧武鉉)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뽑았다고 밝혔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후보, 문국현(文國現) 창조한국당 후보,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후보 등 다양한 후보들에 표를 던졌다.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꼭 찍어야 할 것 같아서 투표장에 갔지만 2007년에는 여느 때처럼 투표를 하지 않고 놀러갔다”는 이도 있었다.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일부러 공격적으로 했다.
서른다섯인 A씨는 재벌계열사 L건설사 과장이다. 그는 “한나라당에 비하면 민주당이 낫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가진 사람을 위한 정치,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당 아닙니까. 보수적 성격이 너무 강하고요. MB정부가 집값, 물가를 잡는 데 전부 실패했습니다. 집권당으로서 서민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한 겁니다.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견제의 기능을 잘못한 탓이 있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이 잘못한 것만 하겠습니까. 민주당이 내놓는 정책은 그나마 한나라당에 비하면 진보적이죠.”
강재섭 내세우는 순간, ‘아, 한나라당은 달라지지 않겠구나’ 생각
―민주당의 정책이 마음에 와닿아 좋아하는 겁니까.
“적어도 개혁이나, 변화를 추구한다는 느낌은 듭니다. 한나라당을 보세요. 당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하고, 만날 밥그릇 싸움하는 모습이나 보이잖습니까. 정치인이 말로 싸우는 일이야 당연지사지만, 적어도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추구하는 노선이 같아 보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중구난방이죠. 이번에 분당을에 강재섭(姜在涉) 후보를 내세운 것 보세요. 강 후보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오래 해먹고, 무리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니 나빠질 수밖에요.”
―민주당에도 그런 국회의원들이 많지 않습니까.
“한나라당보다는 덜하죠. 게다가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의 언행(言行)이 창피할 정도 아닙니까. 당 대표라는 사람이 ‘보온병’ 얘기(安商守·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일행이 연평도 피격 현장을 찾아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말했던 사건을 뜻함)를 하지 않나, 아나운서 하려면 다 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康容碩·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대학생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을 뜻함)을 안 하나, 한심하기 짝이 없죠. 아나운서 되려면 저래야 한다는 얘기는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할 얘기지 지도자라는 사람이 할 얘긴가요. 생각이 없다고밖에 안 보이죠.”
―박지원(朴智元) 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압니까. 중국 국가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를 두고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고 표현을 했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얘기를 했는데요.
“압니다. 민주당도 말실수를 많이 하죠. 그래 봐야 안상수 보온병 발언만 하겠습니까.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저 사람들은 당해도 싸’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 정책이나 국회의원이나 참신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A씨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기보다 한나라당이 하도 한심해서 민주당을 선호한다”고 했다.
K대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서른한 살의 B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B씨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둘 다 싫지만 비교 우위를 둔다. 한나라당이 더 싫으니까 민주당이 좋다”고 했다.
중견기업 D사에 입사한 지 2년째인 서른한 살 C씨의 얘기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건 좀 무섭습니다. 한나라당이 원래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당인데 국회까지 장악하면 힘이 더 세질 것 아닙니까. 거기다 너무 일방통행이에요. 의사소통이 안되고 조율이 안되고, 자기들을 위한 거는 억지로 밀어붙이고 그러잖아요. 트위터에 말 잘못했다고 잡아가고, 포스터에 쥐 그렸다고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은 그냥 그 자체로 힘이 센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권력까지 장악 못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투표를 합니다.”
‘X세대’, ‘서태지 세대’가 어느새 ‘넥타이 부대’로
오늘날의 30대는 1971~1981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로, 대부분 200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이들을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은 ‘X세대’와 ‘서태지 세대’이다.
당시 기성세대는 이들에 대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로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1990년대에 워크맨과 삐삐의 유행으로 인해 이들이 감각 문화의 소비자로 떠오르고, 심리를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X세대’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는 파격적인 음악과 춤으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 발표한 1집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X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개성’을 무기로, ‘인생의 가치관을 심각함보다 즐거움’에 두는 X세대들이 어느새 30대 ‘넥타이 부대’ 아저씨가 되어 중요 유권자가 된 것이다. 유권자로서의 30대는 그 중요도가 얼마나 될까.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의 얘기다.
“투표권자로서 30대의 힘은 막강합니다. 전체 유권자의 23%가 30대입니다. 이번 4ㆍ27 재보궐 선거에서 분당을은 30대의 힘을 보여준 선거였습니다. 오히려 20대 중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숫자가 적지 않았지만, 30대는 70~80%가 손학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선거 초반에는 30대가 손 후보 쪽으로 가 있지 않았습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진 겁니다.
손학규가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닙니다. 손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 MB 지지도입니다. MB가 싫고 나라 꼴이 싫어서 손 후보를 뽑은 겁니다. 30대 유권자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이들은 50대 이후의 세대처럼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그리로 쏠릴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집단이 중요한 겁니다.”
30대는 ‘말 안 듣는 고등학교 남학생’ 심리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투표권자’ 30대의 중요성을 이렇게 바라봤다.
“30대는 20대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집단입니다. 단지 정치 성향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동참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30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 중 하나가 유시민(이하 존칭 생략)입니다. 30대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다’는 겁니다. 30대의 심리는 ‘말 안 듣는 고등학교 남학생’의 심리입니다. 올바른 얘기를 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고, 그렇다고 나쁜 일에 동참하지도 않습니다. ‘좀 내버려두세요’의 심리가 있고, 가르치려 들지 않을 때 오히려 자기 마음이 동하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의 삶을 살면서도 독특한 면이 있는 유시민이나 진중권(陳重權), 이외수(李外秀) 같은 사람한테 끌리는 겁니다.
투표소에 들어갈 때까지 마음에 찍어둔 사람이 없었는데 그냥 한나라당이 죽어라 싫으니까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찍는 층이 30대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로서는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집단입니다.”
기자는 지난 5월 9일 한 맛집 동호회모임에 나온 30대 직장인 여럿을 만났다. 이들에게 대화의 주제를 알리거나, 사전 질문지를 건네지 않았다. 맛집 탐방차, 또 또래의 직장인들과 만나기 위한 평범한 카페 번개 모임(갑자기 약속해 만나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정치에 관한 주제가 등장하자, 이들은 앞다퉈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0대를 두고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난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최근 정치권의 이슈, 정치인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민주당을 선호하고 한나라당에 비호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작정이 아니라, 나름 탄탄한 논리로 무장돼 있었다.
D씨(31세)는 영어학원 강사로 근무 중인 여성이고, E씨(38세)는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F씨(38세)는 부친의 뒤를 이어 중소 가구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G씨(35세)는 강남, 강북에서 음식점 경영, H씨는 정치권의 한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그들과의 대화 내용을 지면으로 잠시 옮긴다.
30대, “어느 덧 서민이 됐네"
영어강사 D씨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D씨: “저는 좌파는 아니에요. 사실 우파라고 생각했는데 요새 저축은행 사건이 난 다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둥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저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가 돼 보니까 사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대기업이라고 가봤자 샐러리맨의 삶이 빤하고, 내 집 한 칸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체험하고 있어요.
한나라당 의원들이 양도세를 폐지한다, 9억 이하 아파트는 어떻다 얘기를 하니까, 황당한 거죠. ‘억’ 얘기를 아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저랑은 맞지 않는 거예요.
저는 자본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사회주의적 평등 같은 얘기를 하면 거부 반응이 생기는데, 그래도 한나라당은 너무 심한 거죠. 그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아, 내가 서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G씨: “서민이다, 그거 정말 명언이네요. 20대 때는 대부분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서민이라고 하면 내 얘기가 아닌 줄 알았는데, 30대가 돼 보니까 내가 바로 서민이더라고요.”
H씨: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가 정권을 잡아도 똑같을 것 같아요. 그냥 판 자체를 갈아야 할 것 같아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까 국민들이 먼저 깨어나야죠. 그냥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등장시켜야 돼요.”
D씨: “저는 박경철씨 좋은데 그분은 정치하면 안 되겠죠? 그럼 손석희(孫石熙)?”
E씨: “손석희도 아니죠. 손석희는 분석하는 사람이잖아요. 정치인은 자기가 걸레가 돼서 닦아내는 사람들 아닌가요. 더러운 물이 튀면 잘 닦아내야 하는데 그걸 잘할 것 같지 않은데요. 유시민은 하려나?”
G씨: “별로 신통치 않잖아요.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 있으면 좋은데요. 하긴 저도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지만 민주당 별로예요.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똑같은 우파잖습니까. 지역적 차별이랑 대북(對北) 정책에서 한나라당이랑 차이가 있다뿐이지, 그것 빼고는 같죠. 제가 생각하는 진보는 새로운 거예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진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민노당은 큰 틀에서는 전부 우파예요.”
E씨: “솔직히 유시민은 말과 행동이 너무 왔다갔다해요. 손해를 보더라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안 그렇잖아요. 그래도 한나라당에 비하면 낫죠 뭐.”
박정희와 김대중 모두 좋아하는 세대
D씨: “맞아요. 당이라는 게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정책은 정말 한심해요. 한나라당이 하는 말은 질렸어요. 뉴타운이다, 감세 정책이다, 말이 워낙 많이 바뀌니까. 신뢰가 안 가는 거죠.”
E씨: “단언컨대 한나라당은 조만간 이름 또 바꿀 겁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전부 남 탓이잖습니까. 친이(親李)니 친박(親朴)이니 소리나 나오고.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그래도 못 믿습니다. 한나라당이 보수라서 싫은 게 아니에요. 사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이 원조 꼴통 보수죠. 한민당부터 시작해서 극보수 계층이죠. 한나라당은 거짓말을 너무 했어요. 그래서 싫은 거지.”
G씨: “30대는 박정희(朴正熙), 김대중(金大中) 둘 다 좋아하는 세대예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는 막연히 싫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어했는데, 커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서민이 돼 보니까 박정희 마음을 알 것 같고, 방법이 틀렸지만 지도자로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보여요.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안 싫어요. 어른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박정희랑 김대중을 전부 좋아하는 게 우리거든요. 인간적 매력은 노무현이죠. 노무현 정부 때 미숙했던 관료들이 문제였던 거죠.”
D씨: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일찍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E씨: “그때니까 될 수 있었지. 다음이었으면 힘들었을걸요.”
D씨: “이명박 대통령은 실망스러워요. 개인적인 삶을 보면 대단한 분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역시 정치는 대통령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닌가 봐요. 바뀌고 나아질 거라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되지 않네요.”
G씨: “이명박 대통령이 부자라서 강남 부자들을 지켜준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런 음모론은 정치를 모르는 20대나 할 얘기지 우리가 할 얘기는 아니잖아요. 대통령 입장에서 재벌들에 ‘기업 프렌들리’라고 말하면 맞춰줄 줄 알았는데, 안 되니까 투정부리고 짜증내는 식이죠. 이 대통령 역시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졌다고 봐요.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결국 못 했다고 생각해요.”
H씨: “30대가 못 먹고 못 살아본 세대는 아니거든요. 내 집도 갖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고, 좋은 옷도 입고 싶거든요. 영화 <웰컴투동막골>에 나오잖아요. ‘위대한 영도력은 어떻게 나옵니까?’라고 했더니 ‘주민들 배부르고 등 따시면 된다’고요. 그게 기본인데 이명박 정부는 그걸 못 하고 있으니 당연히 국민들 반응이 싸늘하지 않겠어요.”
F씨: “지금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면 서민을 울리는 정책만 있어요. 솔직히 전세대란이다, 부동산 관련 정책 뉴스를 보면 화가 날 정도예요.”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제각각
E씨: “저는 민주당이 낫다고 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대북정책 때문이에요. 햇볕정책이 맞았다고 보거든요. 북한이 원래 깡패 정권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잖아요. 막가파들을 팰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 구슬려야 하는 건데 한나라당은 분위기를 경색시켰잖아요.”
F씨: “저는 생각이 달라요.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결과적으로 군사 무기를 사서 우리를 깠는데, 칼 던져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봐요.”
D씨: “햇볕정책 자체는 좋았는데 우리 상황에는 맞지 않다고 봐요. 우리가 퍼주면 북한이 우리한테 우호적으로 변할 걸 기대한 건데, 북한은 얻을 것만 얻어가고 우리를 쳤잖아요. 결과적으로 아무 결과물을 내지 못한 정책이 됐죠.”
G씨: “다음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가 햇볕정책과 같은 유화책을 북한에 편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E씨: “제 투표와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 워낙 당해서 한나라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는 거죠. 그래, 너희는 그렇게 떠들어라. 그래 봐야 내 표는 못 가져간다 하겠죠.”
H씨: “선거 때문에 급하니까 유권자들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한나라당이 힘이 생기면 어차피 또 바뀔 텐데요 뭐.”
E씨: “어차피 제 인생에 한나라당을 찍을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당을 찍겠지만,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열정을 심어줬지만, 동시에 불을 꺼버렸어요.”
내년에 무조건 바꿀 것
기자는 이즈음,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 전원이 2002년도에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선택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물었다.
E씨: “진정성이죠. 정말 진심이라는 것이 마음에 와닿잖아요.”
D씨: “저는 인권변호사 할 때 모습에 정말 감명을 받았었어요.”
G씨: “저는 CF가 좋았어요. 한나라당이 무슨 버스 운전사 CF를 내보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민주당이 내보낸 CF를 TV에서 보는데 가슴이 짠하더라고요. 사실보다는 감성이 먼저 동했죠.”
E씨: “누가 뭐래도 정몽준(鄭夢準)이 X맨(SBS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으로, 팀원이 일부러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함)이었어.”
G씨: “맞아요. 30대 정서 중의 하나가 배신감을 싫어하는 거거든요. 또 우리가 약자니까 약자를 편드는 심리가 강하죠. 야구 경기를 보는데 두 팀의 팬이 모두 아니라고 쳐요. 그러면 지고 있는 팀을 편드는 것이 우리 세대거든요. 지는 팀이 이겨서 역전을 바라는 것이 로망인데, 누가 봐도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이 약자잖아요. 그러니까 민주당 편을 드는 거죠.
2002년에 별로 대통령 투표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몽준이 전날 노무현 지지를 철회한다니까, ‘저런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잘것없는 내 표라도 주자는 생각이 들어서 새벽부터 투표하러 갔어요. 요즘은 그때랑 심정이 많이 달라요. 한마디로 ‘못살겠다 갈아보자’예요. 자유당 정권을 바꾼 캐치프레이즈를 요즘 마음속에 다시 새기고 있어요. 이런 구호는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가장 힘든 시절에 나오잖아요. 유권자로 20여 년 가까이 지내왔지만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어요. 비전도 없고, 폭발할 것 같고.”
E씨: “내년에 무조건 바꿔야죠. 바꿀 수밖에 없는 시점인 거죠. 특히 한나라당은 절대 아닌 거죠.”
D씨: “저는 법조인 출신은 안 뽑으려고요. 직업이라는 거 무시 못 하거든요. 한나라당은 대부분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이 국회의원을 하잖아요. 기득권이었던 사람들이 들어가서 서민정책을 내놔봐야,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공부 잘해서 스카이(서울대ㆍ연고대) 들어간 것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준법감시인 제도라는 걸 운운하는 법조계에서 국회의원까지 배출한다는 건 좀 우습잖아요? 한나라당은 공천할 때도 꼭 있는 사람들만 추천하는데 그게 싫어요.
국회의원이 머리 좋고 성공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말과 내 마음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인 건데, 한나라당은 왜 그러죠?”
G씨: “차라리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다양한 연령대가 뽑혔으면 좋겠어요. 음식점 하는 사람, 공무원 출신, 수퍼 하는 사람, 회사원 뭐 이렇게 다양하게요. 직능 대표제에다, 나이 대표제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광장 축제 문화, 인터넷 세대
30대들의 ‘수다’는 계속됐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30대가 한나라당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이 예상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민주당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너무 싫어서 그 분노를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앞으로 한나라당이 어떤 변화를 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일은 내 인생에는 없을 것”이라는 한 참석자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30대에게는 20대나 40대 이상의 ‘386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어떤 코드’가 있었다.
윤성이(尹聖理)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40대 중반 이상의 이른바 386세대는 이성(理性)의 세대입니다.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고, 시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던 시간을 지냈습니다. 이성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이성으로 무장된 세대였죠. 1990년대 들어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다음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X세대들은 다릅니다.
X세대를 알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2002년 월드컵입니다. 새로운 광장 문화의 시작인데, 노사모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광장’의 개념이 40대와 30대가 전혀 다릅니다. 40대에게 광장은 치열하고 비장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30대는 즐기러 나가는 겁니다. 광장을 ‘축제의 광장’이라고 표현하죠. 이들은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따지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느낌, 감성 그것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성향이 무척 강합니다.
더구나 이들은 인터넷 세대의 첫 출발 세대입니다. 인터넷 세대는 책을 한 권 잡고 집중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다가 새로운 관심사가 나오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또 링크를 통해 검색을 하는 세대입니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전환하고, 좋은 것은 ‘그냥 좋다’, 싫은 것은 ‘그냥 싫다’고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세대입니다.”
명품백 들고 데모에 동참하는 세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40대는 민주화의 잔상을 가진 이념의 세대입니다. 20대는 ‘애지중지’ 세대입니다. 이제 50대 초ㆍ중반인 부모들이 하나, 둘의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애지중지 기른 세대입니다.
반면 30대는 사회생활과 인식, 의식을 독자적으로 해오면서 홀로 커온 세대입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와 같이 살자고 하면 20대는 ‘그럼 그럴까?’하고 생각합니다. 부모나 사회에 대한 반감이 적다 보니, 부모 세대가 어떤 기성 정치인에 대해 좋게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겁니다.
30대는 전혀 다릅니다. 부모가 어떤 정치인을 선호하면 무작정 그 사람이 싫은, 반감이 많은 세대예요. 대학입시를 치르는 시기에 학력고사, 수능, 본고사 등 수많은 변수를 당했고, 졸업할 무렵에 IMF의 늪에 허덕이는 대한민국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혜택받지 못하고 힘들었는데, 30대가 되면 나아질 것으로 믿었던 현실이 더욱 팍팍해진 겁니다.
그럼에도 책임감은 막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현실 정치를 외면하지는 못합니다. 한없이 혜택을 받은 20대는 필요에 따라서는 쉽게 현실을 외면할 수 있지만요. 30대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집회 장소에까지 나오는 것은 이런 복잡한 심리가 녹아 있어서입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30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가르치려고 드는 방식입니다. 한나라당이 어떤 정책을 내고 무작정 이끌고 가려는 제스처를 취하면 30대는 ‘잘난 아버지’, ‘구닥다리 아저씨’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당이 왜 대한민국에 있어야 하는지에 의구심을 느끼는 30대의 심정에 기름을 붓는 겁니다.
30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념입니다. ‘가치’라고 표현하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좌파, 우파 이념은 구닥다리거든요.
30대는 명품백 들고 데모에 동참하는 세대입니다. ‘강남좌파’라는 말이 있죠. 이들은 지금 이념을 넘어선, 감성적이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수퍼스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30대는 생각보다 정치에 관심이 컸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맞부딪쳤던 정책, 그들의 발언들을 대부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황당했다’고 꼽은 첫 번째는 안상수 전(前)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발언’이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11월에 연평도 피격 현장을 방문해 불에 그슬린 두 개의 원형 물체를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잠시 뒤 그 ‘포탄’은 보온병으로 밝혀졌다.
대기업 S그룹의 과장으로 있는 서른다섯 H씨의 얘기다.
“솔직히 말하면 안상수가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긴박한 순간에 그럴 수도 있다 싶어요.
그런데 그 얘기 나오자마자 ‘그래, 너희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한나라당이 하는 것들이 사사건건 눈엣가시처럼 비쳤거든요. 그 얘기가 보도되니까, 뭐랄까 ‘그래 딱 걸렸어’하는 심정이 드는 거죠. ‘잘났다는 사람들이 보는 눈이 저 정도뿐이지 뭐’ 하는 생각이 들고요.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제일 많이 안줏거리로 삼았던 얘기였다는 기억이 나네요.”
30대가 꼽은 두 번째 ‘황당사건’은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이었다. 이 사건은 마포을이 지역구인 강용석 의원이 지난 2010년 7월에 대학생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학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은 사건이다. 30대의 대부분은 강 의원의 이 발언에 대해 “지도자가 할 얘기는 아니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30대의 대다수는 민주당 의원의 실언(失言)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송영길 시장은 연평도에서 불에 그슬린 소주병을 보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했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중국 정부가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 훼방꾼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등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
박 원내대표가 안상수 전 대표 아들의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해 물의를 빚은 것(사실무근임이 곧바로 드러났다)이나, 민주당 광주지역 의원들이 민노당을 ‘한나라당의 2중대’, ‘반미(反美) 과격 정당’이라고 비난해 물의를 빚은 사건도 있었다.
30대에게 이런 발언들을 물었는데 반응이 비슷했다. ‘맞다, 그런 사건이 있긴 있었지’라는 식(式)이었다. 마치 한나라당은 조금의 잘못을 해도 크게 기억하고, 민주당은 큰 잘못을 해도 흘려버리는 듯한 식이었다.
여성 대통령? 신선하고 좋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이야 당연히 말로 싸우는 사람들 아닌가요. 일부러 막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하잖아요.
민주당 의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제정신인가 싶다가도, ‘그래 한나라당만 하랴. 너희도 마음에 안 들지만 한나라당이 상처받는 모습이 통쾌하니까, 그냥 더 해라’ 싶은 심정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실언하는 것이 더 뇌리에 깊게 박히는 것 같습니다.”
30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은 ‘이제는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고도 했다.
영어학원 강사인 서른한 살 D씨의 얘기다. 그는 여성이다.
“저는 예전에 강금실(康錦實)이나 한명숙 괜찮게 봤거든요. 여성 정치인이 참신하게 보였어요. 신선하고, 한번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요. 그동안 군인, 정치인, CEO 출신 등 다양한 사람이 대통령 해봤으니까 이제는 여자가 한번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할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좀 꺼려지죠. 민주당의 여성 후보라면 더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박근혜(朴槿惠)라는 사람에 대해 여자라서 꺼려진다는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워낙 말을 안 하는 사람이니까, 저런 사람을 찍어도 좋을까, 의중이 뭘까 싶은 생각은 있죠.”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서른여덟의 대기업 직장인 E씨 역시 ‘여성 대통령’에 대한 껄끄러움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박근혜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니까 굉장히 큰 부채를 갖고 있기는 해요. 박 대통령의 공과는 몇 날 며칠 밤을 새도 안 끝날 부분이잖아요. 사실 이 부분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군대도 안 갔다온 사람이 국가 안보를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도 20대나 하는 생각이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참석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이슈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나라당,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라져야 그나마 승산
풍요를 누려본 적이 없으나 최악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것을 경험한 것도 아닌 30대. ‘말 안 듣는 고등학교 남학생’ 같지만, 인생 역전을 바라며 혜성처럼 나타날 ‘수퍼스타’를 꿈꾸는 세대. 이들은 대한민국 유권자의 약 4분의 1이다. 이들의 마음을 잡을 방법은 없을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30대의 마음을 잡는 것이 대선주자들의 숙제”라고 했다.
“30대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후보가 나오면 큰 표를 얻을 겁니다. 친서민·중도실용이라는 등의 말은 너무 뜬구름입니다. 30대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입니다.
20대는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화를 내지만, 30대는 화를 내다가도 조근조근 설명을 하면 납득을 하는 세대입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이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한나라당이 30대의 마음을 잡고자 한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전통의 한나라당 운영 스타일, 당정 간 협의에 의한 고루한 국정 운영을 고수하는 한 30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30대의 민주당 지지는 앞으로 계속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만약 30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큰 착각입니다. 한나라당이 싫어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겁니다.
그들 중에는 민주당을 한나라당 못지않게 싫어하는 사람도 다수입니다. 언제든지 민노당, 또 다른 대안의 정당 후보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카운터 파트 차원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짜야할 겁니다.”
―만약에 2002년도의 노무현 후보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30대의 표심이 한순간에 쏠릴 겁니다. 30대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자신의 바람을 실현시켜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투표장에 가지 않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들을 달래준다면, 그들의 감성을 건드린다면 핵폭발하는 듯한 힘을 발휘할 겁니다.
열린 귀를 가지고 소통하고, 마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다면, 30대는 그 사람이 자신의 ‘아바타’라고 받아들일 겁니다.
30대가 서울대 조국(曺國) 교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한번 보세요. 전통적인 서울대 교수라면 대통령을 헐뜯고, 권위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서울대 교수야’라고 어깨에 힘 줄 것 같은 사람이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왔습니다. 조 교수의 언변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깬 파격을 30대가 좋아하는 겁니다.”
30대가 나이가 든다면?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이렇게 내다봤다.
“30대가 무조건 기득권 세력에 대해 반감만 가지는 세대는 아닙니다. 2002년에 왜 노무현 후보가 그토록 인기였는지를 한번 보십시오.
노 대통령은 기득권에 반기를 들면서도 새로운 정치질서, 탈지역·정치개혁이라는 포지티브한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비전을 보여줬고, 정치개혁이라는 희망을 보여줘 ‘안티 한나라당’을 흡수한 겁니다.
‘노사모’의 잔류를 가진 정동영(鄭東泳)이나 유시민은 왜 안 됐는지를 보십시오. 그들은 기존의 바탕 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더 이상 늘 수 없었던 겁니다. 30대는 지금 기존의 질서를 바꾸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비전 있는 후보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당 소속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개의치 않습니다.”
―지금의 30대가 40대, 50대가 된다면 보수적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현재의 40대는 권력에 대항해 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생활이 안정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화되고 기득권 집단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30대는 40대가 경험한 구체화된 권력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신무기로 인해 그들이 생각하는 권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피라미드형의 권력형 구조에서 수평적 권력으로의 이동이랄까요. 저는 이들이 나이가 들어도 리버럴 해지고(자유주의적이고), 진보에 가까운 모습일 거라고 봅니다.
때문에 나이 든 분들이 말하는 ‘나이 들면 철 든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 역시 “사회적 풍요를 마음껏 누린 20대는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처럼 나중에 보수화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의 30대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보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본인들조차 스스로의 성향을 가늠하지 못하는 30대.
어찌되었든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년에 총선과 대선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할는지는 현재로서는 도통 알 길이 없다. 본인들도 모른다는 것이 이 글의 요약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점은 ‘비전 있는 제3자’가 나온다면 30대가 월드컵 때처럼 열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분당을이 어떤 곳인가. 한나라당이 ‘천당’ 다음이라고 여겼던 곳이다. 그런 이곳 주민들이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민주당의 손학규(孫鶴圭) 후보를 주민 대표로 뽑은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놀람을 넘어, 경악 그 자체다.
반란의 주역은 40대(代) 이하, 특히 30대였다. YTN의 출구조사를 보면 20대의 58.2%, 30대의 72%, 40대의 68.6%가 손 후보를 찍은 것으로 집계됐다.
30대의 ‘민주당 밀어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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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30대의 이런 성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갤럽에 의뢰한 내년 총선에 대한 설문조사(3월 23일) 결과를 보자. 30대 중에서 ‘야권(비한나라당)에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48.3%, ‘여권(한나라당) 후보를 뽑겠다’는 18.1%에 불과했다. 20대는 52.8%(야권 후보) 대(對) 29%(여권 후보)였다.
황상민(黃相旻)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대통령 선호도 및 지지정당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황 교수의 얘기다.
“대통령 선호도를 5점 만점으로 볼 때 30대가 가장 낮습니다. 20대는 2.6점, 40대는 2.5점, 50대는 3.4점을 준 반면에 30대는 2.2점이라고 답했습니다. 표본이 60명이긴 했지만 세대별 지지정당을 보면, 20대 중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27%인데 30대는 0%였습니다. 정치적인 성향으로 보자면 20대와 40대가 비슷하고 30대는 전혀 다릅니다.”
인터뷰에 응한 30대 전원, 2002년 노무현 후보 찍어
젊은 진보 세력은 통상 야당을 지지한다. 이 상식을 적용하자면 민주당에 대한 선호도는 20대〉30대〉40대 순(順)이어야 정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0대가 왜 이렇게 민주당을 좋아할까.고향, 학력, 직업이 전혀 다른 30대 10여 명을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솔직한 답변을 하는 대신 익명보도를 요청했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원이 노무현(盧武鉉)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뽑았다고 밝혔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후보, 문국현(文國現) 창조한국당 후보,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후보 등 다양한 후보들에 표를 던졌다.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꼭 찍어야 할 것 같아서 투표장에 갔지만 2007년에는 여느 때처럼 투표를 하지 않고 놀러갔다”는 이도 있었다.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일부러 공격적으로 했다.
서른다섯인 A씨는 재벌계열사 L건설사 과장이다. 그는 “한나라당에 비하면 민주당이 낫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가진 사람을 위한 정치,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는 당 아닙니까. 보수적 성격이 너무 강하고요. MB정부가 집값, 물가를 잡는 데 전부 실패했습니다. 집권당으로서 서민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한 겁니다.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견제의 기능을 잘못한 탓이 있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이 잘못한 것만 하겠습니까. 민주당이 내놓는 정책은 그나마 한나라당에 비하면 진보적이죠.”
강재섭 내세우는 순간, ‘아, 한나라당은 달라지지 않겠구나’ 생각
―민주당의 정책이 마음에 와닿아 좋아하는 겁니까.
“적어도 개혁이나, 변화를 추구한다는 느낌은 듭니다. 한나라당을 보세요. 당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하고, 만날 밥그릇 싸움하는 모습이나 보이잖습니까. 정치인이 말로 싸우는 일이야 당연지사지만, 적어도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추구하는 노선이 같아 보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중구난방이죠. 이번에 분당을에 강재섭(姜在涉) 후보를 내세운 것 보세요. 강 후보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오래 해먹고, 무리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니 나빠질 수밖에요.”
―민주당에도 그런 국회의원들이 많지 않습니까.
“한나라당보다는 덜하죠. 게다가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의 언행(言行)이 창피할 정도 아닙니까. 당 대표라는 사람이 ‘보온병’ 얘기(安商守·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일행이 연평도 피격 현장을 찾아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말했던 사건을 뜻함)를 하지 않나, 아나운서 하려면 다 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康容碩·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대학생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을 뜻함)을 안 하나, 한심하기 짝이 없죠. 아나운서 되려면 저래야 한다는 얘기는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할 얘기지 지도자라는 사람이 할 얘긴가요. 생각이 없다고밖에 안 보이죠.”
―박지원(朴智元) 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압니까. 중국 국가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를 두고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고 표현을 했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얘기를 했는데요.
“압니다. 민주당도 말실수를 많이 하죠. 그래 봐야 안상수 보온병 발언만 하겠습니까.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저 사람들은 당해도 싸’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 정책이나 국회의원이나 참신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A씨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기보다 한나라당이 하도 한심해서 민주당을 선호한다”고 했다.
K대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서른한 살의 B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B씨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둘 다 싫지만 비교 우위를 둔다. 한나라당이 더 싫으니까 민주당이 좋다”고 했다.
중견기업 D사에 입사한 지 2년째인 서른한 살 C씨의 얘기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건 좀 무섭습니다. 한나라당이 원래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당인데 국회까지 장악하면 힘이 더 세질 것 아닙니까. 거기다 너무 일방통행이에요. 의사소통이 안되고 조율이 안되고, 자기들을 위한 거는 억지로 밀어붙이고 그러잖아요. 트위터에 말 잘못했다고 잡아가고, 포스터에 쥐 그렸다고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은 그냥 그 자체로 힘이 센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권력까지 장악 못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투표를 합니다.”
‘X세대’, ‘서태지 세대’가 어느새 ‘넥타이 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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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와 아이들. 오늘날의 30대는 1990년대 초 ‘X세대’ ‘서태지 세대’로 불리던 세대이다. |
당시 기성세대는 이들에 대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로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1990년대에 워크맨과 삐삐의 유행으로 인해 이들이 감각 문화의 소비자로 떠오르고, 심리를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X세대’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는 파격적인 음악과 춤으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 발표한 1집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X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개성’을 무기로, ‘인생의 가치관을 심각함보다 즐거움’에 두는 X세대들이 어느새 30대 ‘넥타이 부대’ 아저씨가 되어 중요 유권자가 된 것이다. 유권자로서의 30대는 그 중요도가 얼마나 될까.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의 얘기다.
“투표권자로서 30대의 힘은 막강합니다. 전체 유권자의 23%가 30대입니다. 이번 4ㆍ27 재보궐 선거에서 분당을은 30대의 힘을 보여준 선거였습니다. 오히려 20대 중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숫자가 적지 않았지만, 30대는 70~80%가 손학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선거 초반에는 30대가 손 후보 쪽으로 가 있지 않았습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진 겁니다.
손학규가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닙니다. 손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 MB 지지도입니다. MB가 싫고 나라 꼴이 싫어서 손 후보를 뽑은 겁니다. 30대 유권자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이들은 50대 이후의 세대처럼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그리로 쏠릴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집단이 중요한 겁니다.”
30대는 ‘말 안 듣는 고등학교 남학생’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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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안 듣는 고등학교 남학생 심리’에 사로잡힌 30대는 이외수(왼쪽)나 진중권(오른쪽) 같은 이들을 좋아한다. |
“30대는 20대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집단입니다. 단지 정치 성향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동참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30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 중 하나가 유시민(이하 존칭 생략)입니다. 30대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다’는 겁니다. 30대의 심리는 ‘말 안 듣는 고등학교 남학생’의 심리입니다. 올바른 얘기를 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고, 그렇다고 나쁜 일에 동참하지도 않습니다. ‘좀 내버려두세요’의 심리가 있고, 가르치려 들지 않을 때 오히려 자기 마음이 동하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의 삶을 살면서도 독특한 면이 있는 유시민이나 진중권(陳重權), 이외수(李外秀) 같은 사람한테 끌리는 겁니다.
투표소에 들어갈 때까지 마음에 찍어둔 사람이 없었는데 그냥 한나라당이 죽어라 싫으니까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찍는 층이 30대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로서는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집단입니다.”
기자는 지난 5월 9일 한 맛집 동호회모임에 나온 30대 직장인 여럿을 만났다. 이들에게 대화의 주제를 알리거나, 사전 질문지를 건네지 않았다. 맛집 탐방차, 또 또래의 직장인들과 만나기 위한 평범한 카페 번개 모임(갑자기 약속해 만나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정치에 관한 주제가 등장하자, 이들은 앞다퉈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0대를 두고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난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최근 정치권의 이슈, 정치인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민주당을 선호하고 한나라당에 비호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작정이 아니라, 나름 탄탄한 논리로 무장돼 있었다.
D씨(31세)는 영어학원 강사로 근무 중인 여성이고, E씨(38세)는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F씨(38세)는 부친의 뒤를 이어 중소 가구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G씨(35세)는 강남, 강북에서 음식점 경영, H씨는 정치권의 한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그들과의 대화 내용을 지면으로 잠시 옮긴다.
30대, “어느 덧 서민이 됐네"
영어강사 D씨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D씨: “저는 좌파는 아니에요. 사실 우파라고 생각했는데 요새 저축은행 사건이 난 다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둥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저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가 돼 보니까 사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대기업이라고 가봤자 샐러리맨의 삶이 빤하고, 내 집 한 칸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체험하고 있어요.
한나라당 의원들이 양도세를 폐지한다, 9억 이하 아파트는 어떻다 얘기를 하니까, 황당한 거죠. ‘억’ 얘기를 아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저랑은 맞지 않는 거예요.
저는 자본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사회주의적 평등 같은 얘기를 하면 거부 반응이 생기는데, 그래도 한나라당은 너무 심한 거죠. 그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아, 내가 서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G씨: “서민이다, 그거 정말 명언이네요. 20대 때는 대부분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서민이라고 하면 내 얘기가 아닌 줄 알았는데, 30대가 돼 보니까 내가 바로 서민이더라고요.”
H씨: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가 정권을 잡아도 똑같을 것 같아요. 그냥 판 자체를 갈아야 할 것 같아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까 국민들이 먼저 깨어나야죠. 그냥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등장시켜야 돼요.”
D씨: “저는 박경철씨 좋은데 그분은 정치하면 안 되겠죠? 그럼 손석희(孫石熙)?”
E씨: “손석희도 아니죠. 손석희는 분석하는 사람이잖아요. 정치인은 자기가 걸레가 돼서 닦아내는 사람들 아닌가요. 더러운 물이 튀면 잘 닦아내야 하는데 그걸 잘할 것 같지 않은데요. 유시민은 하려나?”
G씨: “별로 신통치 않잖아요.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 있으면 좋은데요. 하긴 저도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지만 민주당 별로예요.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똑같은 우파잖습니까. 지역적 차별이랑 대북(對北) 정책에서 한나라당이랑 차이가 있다뿐이지, 그것 빼고는 같죠. 제가 생각하는 진보는 새로운 거예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진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민노당은 큰 틀에서는 전부 우파예요.”
E씨: “솔직히 유시민은 말과 행동이 너무 왔다갔다해요. 손해를 보더라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안 그렇잖아요. 그래도 한나라당에 비하면 낫죠 뭐.”
박정희와 김대중 모두 좋아하는 세대
D씨: “맞아요. 당이라는 게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정책은 정말 한심해요. 한나라당이 하는 말은 질렸어요. 뉴타운이다, 감세 정책이다, 말이 워낙 많이 바뀌니까. 신뢰가 안 가는 거죠.”
E씨: “단언컨대 한나라당은 조만간 이름 또 바꿀 겁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전부 남 탓이잖습니까. 친이(親李)니 친박(親朴)이니 소리나 나오고.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그래도 못 믿습니다. 한나라당이 보수라서 싫은 게 아니에요. 사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이 원조 꼴통 보수죠. 한민당부터 시작해서 극보수 계층이죠. 한나라당은 거짓말을 너무 했어요. 그래서 싫은 거지.”
G씨: “30대는 박정희(朴正熙), 김대중(金大中) 둘 다 좋아하는 세대예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는 막연히 싫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어했는데, 커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서민이 돼 보니까 박정희 마음을 알 것 같고, 방법이 틀렸지만 지도자로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보여요.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안 싫어요. 어른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박정희랑 김대중을 전부 좋아하는 게 우리거든요. 인간적 매력은 노무현이죠. 노무현 정부 때 미숙했던 관료들이 문제였던 거죠.”
D씨: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일찍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E씨: “그때니까 될 수 있었지. 다음이었으면 힘들었을걸요.”
D씨: “이명박 대통령은 실망스러워요. 개인적인 삶을 보면 대단한 분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역시 정치는 대통령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닌가 봐요. 바뀌고 나아질 거라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되지 않네요.”
G씨: “이명박 대통령이 부자라서 강남 부자들을 지켜준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런 음모론은 정치를 모르는 20대나 할 얘기지 우리가 할 얘기는 아니잖아요. 대통령 입장에서 재벌들에 ‘기업 프렌들리’라고 말하면 맞춰줄 줄 알았는데, 안 되니까 투정부리고 짜증내는 식이죠. 이 대통령 역시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졌다고 봐요.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결국 못 했다고 생각해요.”
H씨: “30대가 못 먹고 못 살아본 세대는 아니거든요. 내 집도 갖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고, 좋은 옷도 입고 싶거든요. 영화 <웰컴투동막골>에 나오잖아요. ‘위대한 영도력은 어떻게 나옵니까?’라고 했더니 ‘주민들 배부르고 등 따시면 된다’고요. 그게 기본인데 이명박 정부는 그걸 못 하고 있으니 당연히 국민들 반응이 싸늘하지 않겠어요.”
F씨: “지금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면 서민을 울리는 정책만 있어요. 솔직히 전세대란이다, 부동산 관련 정책 뉴스를 보면 화가 날 정도예요.”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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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30대 중에서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이 많다. |
F씨: “저는 생각이 달라요.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결과적으로 군사 무기를 사서 우리를 깠는데, 칼 던져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봐요.”
D씨: “햇볕정책 자체는 좋았는데 우리 상황에는 맞지 않다고 봐요. 우리가 퍼주면 북한이 우리한테 우호적으로 변할 걸 기대한 건데, 북한은 얻을 것만 얻어가고 우리를 쳤잖아요. 결과적으로 아무 결과물을 내지 못한 정책이 됐죠.”
G씨: “다음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가 햇볕정책과 같은 유화책을 북한에 편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E씨: “제 투표와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 워낙 당해서 한나라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는 거죠. 그래, 너희는 그렇게 떠들어라. 그래 봐야 내 표는 못 가져간다 하겠죠.”
H씨: “선거 때문에 급하니까 유권자들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한나라당이 힘이 생기면 어차피 또 바뀔 텐데요 뭐.”
E씨: “어차피 제 인생에 한나라당을 찍을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당을 찍겠지만,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열정을 심어줬지만, 동시에 불을 꺼버렸어요.”
내년에 무조건 바꿀 것
기자는 이즈음,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 전원이 2002년도에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선택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물었다.
E씨: “진정성이죠. 정말 진심이라는 것이 마음에 와닿잖아요.”
D씨: “저는 인권변호사 할 때 모습에 정말 감명을 받았었어요.”
G씨: “저는 CF가 좋았어요. 한나라당이 무슨 버스 운전사 CF를 내보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민주당이 내보낸 CF를 TV에서 보는데 가슴이 짠하더라고요. 사실보다는 감성이 먼저 동했죠.”
E씨: “누가 뭐래도 정몽준(鄭夢準)이 X맨(SBS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으로, 팀원이 일부러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함)이었어.”
G씨: “맞아요. 30대 정서 중의 하나가 배신감을 싫어하는 거거든요. 또 우리가 약자니까 약자를 편드는 심리가 강하죠. 야구 경기를 보는데 두 팀의 팬이 모두 아니라고 쳐요. 그러면 지고 있는 팀을 편드는 것이 우리 세대거든요. 지는 팀이 이겨서 역전을 바라는 것이 로망인데, 누가 봐도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이 약자잖아요. 그러니까 민주당 편을 드는 거죠.
2002년에 별로 대통령 투표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몽준이 전날 노무현 지지를 철회한다니까, ‘저런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잘것없는 내 표라도 주자는 생각이 들어서 새벽부터 투표하러 갔어요. 요즘은 그때랑 심정이 많이 달라요. 한마디로 ‘못살겠다 갈아보자’예요. 자유당 정권을 바꾼 캐치프레이즈를 요즘 마음속에 다시 새기고 있어요. 이런 구호는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가장 힘든 시절에 나오잖아요. 유권자로 20여 년 가까이 지내왔지만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어요. 비전도 없고, 폭발할 것 같고.”
E씨: “내년에 무조건 바꿔야죠. 바꿀 수밖에 없는 시점인 거죠. 특히 한나라당은 절대 아닌 거죠.”
D씨: “저는 법조인 출신은 안 뽑으려고요. 직업이라는 거 무시 못 하거든요. 한나라당은 대부분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이 국회의원을 하잖아요. 기득권이었던 사람들이 들어가서 서민정책을 내놔봐야,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공부 잘해서 스카이(서울대ㆍ연고대) 들어간 것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준법감시인 제도라는 걸 운운하는 법조계에서 국회의원까지 배출한다는 건 좀 우습잖아요? 한나라당은 공천할 때도 꼭 있는 사람들만 추천하는데 그게 싫어요.
국회의원이 머리 좋고 성공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말과 내 마음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인 건데, 한나라당은 왜 그러죠?”
G씨: “차라리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다양한 연령대가 뽑혔으면 좋겠어요. 음식점 하는 사람, 공무원 출신, 수퍼 하는 사람, 회사원 뭐 이렇게 다양하게요. 직능 대표제에다, 나이 대표제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광장 축제 문화, 인터넷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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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30대가 한나라당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이 예상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민주당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너무 싫어서 그 분노를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앞으로 한나라당이 어떤 변화를 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일은 내 인생에는 없을 것”이라는 한 참석자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30대에게는 20대나 40대 이상의 ‘386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어떤 코드’가 있었다.
윤성이(尹聖理)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40대 중반 이상의 이른바 386세대는 이성(理性)의 세대입니다.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고, 시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던 시간을 지냈습니다. 이성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이성으로 무장된 세대였죠. 1990년대 들어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다음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X세대들은 다릅니다.
X세대를 알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2002년 월드컵입니다. 새로운 광장 문화의 시작인데, 노사모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광장’의 개념이 40대와 30대가 전혀 다릅니다. 40대에게 광장은 치열하고 비장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30대는 즐기러 나가는 겁니다. 광장을 ‘축제의 광장’이라고 표현하죠. 이들은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따지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느낌, 감성 그것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성향이 무척 강합니다.
더구나 이들은 인터넷 세대의 첫 출발 세대입니다. 인터넷 세대는 책을 한 권 잡고 집중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다가 새로운 관심사가 나오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또 링크를 통해 검색을 하는 세대입니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전환하고, 좋은 것은 ‘그냥 좋다’, 싫은 것은 ‘그냥 싫다’고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세대입니다.”
명품백 들고 데모에 동참하는 세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40대는 민주화의 잔상을 가진 이념의 세대입니다. 20대는 ‘애지중지’ 세대입니다. 이제 50대 초ㆍ중반인 부모들이 하나, 둘의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애지중지 기른 세대입니다.
반면 30대는 사회생활과 인식, 의식을 독자적으로 해오면서 홀로 커온 세대입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와 같이 살자고 하면 20대는 ‘그럼 그럴까?’하고 생각합니다. 부모나 사회에 대한 반감이 적다 보니, 부모 세대가 어떤 기성 정치인에 대해 좋게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겁니다.
30대는 전혀 다릅니다. 부모가 어떤 정치인을 선호하면 무작정 그 사람이 싫은, 반감이 많은 세대예요. 대학입시를 치르는 시기에 학력고사, 수능, 본고사 등 수많은 변수를 당했고, 졸업할 무렵에 IMF의 늪에 허덕이는 대한민국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혜택받지 못하고 힘들었는데, 30대가 되면 나아질 것으로 믿었던 현실이 더욱 팍팍해진 겁니다.
그럼에도 책임감은 막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현실 정치를 외면하지는 못합니다. 한없이 혜택을 받은 20대는 필요에 따라서는 쉽게 현실을 외면할 수 있지만요. 30대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집회 장소에까지 나오는 것은 이런 복잡한 심리가 녹아 있어서입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30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가르치려고 드는 방식입니다. 한나라당이 어떤 정책을 내고 무작정 이끌고 가려는 제스처를 취하면 30대는 ‘잘난 아버지’, ‘구닥다리 아저씨’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당이 왜 대한민국에 있어야 하는지에 의구심을 느끼는 30대의 심정에 기름을 붓는 겁니다.
30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념입니다. ‘가치’라고 표현하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좌파, 우파 이념은 구닥다리거든요.
30대는 명품백 들고 데모에 동참하는 세대입니다. ‘강남좌파’라는 말이 있죠. 이들은 지금 이념을 넘어선, 감성적이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수퍼스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30대는 생각보다 정치에 관심이 컸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맞부딪쳤던 정책, 그들의 발언들을 대부분 정확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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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수 전 대표의 ‘보온병 발언’은 30대의 반(反)한나라당 정서에 불을 질렀다. |
대기업 S그룹의 과장으로 있는 서른다섯 H씨의 얘기다.
“솔직히 말하면 안상수가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긴박한 순간에 그럴 수도 있다 싶어요.
그런데 그 얘기 나오자마자 ‘그래, 너희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한나라당이 하는 것들이 사사건건 눈엣가시처럼 비쳤거든요. 그 얘기가 보도되니까, 뭐랄까 ‘그래 딱 걸렸어’하는 심정이 드는 거죠. ‘잘났다는 사람들이 보는 눈이 저 정도뿐이지 뭐’ 하는 생각이 들고요.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제일 많이 안줏거리로 삼았던 얘기였다는 기억이 나네요.”
30대가 꼽은 두 번째 ‘황당사건’은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이었다. 이 사건은 마포을이 지역구인 강용석 의원이 지난 2010년 7월에 대학생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학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은 사건이다. 30대의 대부분은 강 의원의 이 발언에 대해 “지도자가 할 얘기는 아니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30대의 대다수는 민주당 의원의 실언(失言)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송영길 시장은 연평도에서 불에 그슬린 소주병을 보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했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중국 정부가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 훼방꾼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등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
박 원내대표가 안상수 전 대표 아들의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해 물의를 빚은 것(사실무근임이 곧바로 드러났다)이나, 민주당 광주지역 의원들이 민노당을 ‘한나라당의 2중대’, ‘반미(反美) 과격 정당’이라고 비난해 물의를 빚은 사건도 있었다.
30대에게 이런 발언들을 물었는데 반응이 비슷했다. ‘맞다, 그런 사건이 있긴 있었지’라는 식(式)이었다. 마치 한나라당은 조금의 잘못을 해도 크게 기억하고, 민주당은 큰 잘못을 해도 흘려버리는 듯한 식이었다.
여성 대통령? 신선하고 좋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이야 당연히 말로 싸우는 사람들 아닌가요. 일부러 막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하잖아요.
민주당 의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제정신인가 싶다가도, ‘그래 한나라당만 하랴. 너희도 마음에 안 들지만 한나라당이 상처받는 모습이 통쾌하니까, 그냥 더 해라’ 싶은 심정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실언하는 것이 더 뇌리에 깊게 박히는 것 같습니다.”
30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은 ‘이제는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고도 했다.
영어학원 강사인 서른한 살 D씨의 얘기다. 그는 여성이다.
“저는 예전에 강금실(康錦實)이나 한명숙 괜찮게 봤거든요. 여성 정치인이 참신하게 보였어요. 신선하고, 한번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요. 그동안 군인, 정치인, CEO 출신 등 다양한 사람이 대통령 해봤으니까 이제는 여자가 한번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할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좀 꺼려지죠. 민주당의 여성 후보라면 더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박근혜(朴槿惠)라는 사람에 대해 여자라서 꺼려진다는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워낙 말을 안 하는 사람이니까, 저런 사람을 찍어도 좋을까, 의중이 뭘까 싶은 생각은 있죠.”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서른여덟의 대기업 직장인 E씨 역시 ‘여성 대통령’에 대한 껄끄러움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박근혜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니까 굉장히 큰 부채를 갖고 있기는 해요. 박 대통령의 공과는 몇 날 며칠 밤을 새도 안 끝날 부분이잖아요. 사실 이 부분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군대도 안 갔다온 사람이 국가 안보를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도 20대나 하는 생각이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참석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이슈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나라당,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라져야 그나마 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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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가 관심을 보이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30대의 마음을 잡는 것이 대선주자들의 숙제”라고 했다.
“30대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후보가 나오면 큰 표를 얻을 겁니다. 친서민·중도실용이라는 등의 말은 너무 뜬구름입니다. 30대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입니다.
20대는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화를 내지만, 30대는 화를 내다가도 조근조근 설명을 하면 납득을 하는 세대입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이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한나라당이 30대의 마음을 잡고자 한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전통의 한나라당 운영 스타일, 당정 간 협의에 의한 고루한 국정 운영을 고수하는 한 30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30대의 민주당 지지는 앞으로 계속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만약 30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큰 착각입니다. 한나라당이 싫어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겁니다.
그들 중에는 민주당을 한나라당 못지않게 싫어하는 사람도 다수입니다. 언제든지 민노당, 또 다른 대안의 정당 후보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카운터 파트 차원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짜야할 겁니다.”
―만약에 2002년도의 노무현 후보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30대의 표심이 한순간에 쏠릴 겁니다. 30대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자신의 바람을 실현시켜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투표장에 가지 않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들을 달래준다면, 그들의 감성을 건드린다면 핵폭발하는 듯한 힘을 발휘할 겁니다.
열린 귀를 가지고 소통하고, 마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다면, 30대는 그 사람이 자신의 ‘아바타’라고 받아들일 겁니다.
30대가 서울대 조국(曺國) 교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한번 보세요. 전통적인 서울대 교수라면 대통령을 헐뜯고, 권위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서울대 교수야’라고 어깨에 힘 줄 것 같은 사람이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왔습니다. 조 교수의 언변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깬 파격을 30대가 좋아하는 겁니다.”
30대가 나이가 든다면?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이렇게 내다봤다.
“30대가 무조건 기득권 세력에 대해 반감만 가지는 세대는 아닙니다. 2002년에 왜 노무현 후보가 그토록 인기였는지를 한번 보십시오.
노 대통령은 기득권에 반기를 들면서도 새로운 정치질서, 탈지역·정치개혁이라는 포지티브한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비전을 보여줬고, 정치개혁이라는 희망을 보여줘 ‘안티 한나라당’을 흡수한 겁니다.
‘노사모’의 잔류를 가진 정동영(鄭東泳)이나 유시민은 왜 안 됐는지를 보십시오. 그들은 기존의 바탕 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더 이상 늘 수 없었던 겁니다. 30대는 지금 기존의 질서를 바꾸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비전 있는 후보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당 소속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개의치 않습니다.”
―지금의 30대가 40대, 50대가 된다면 보수적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현재의 40대는 권력에 대항해 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생활이 안정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화되고 기득권 집단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30대는 40대가 경험한 구체화된 권력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신무기로 인해 그들이 생각하는 권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피라미드형의 권력형 구조에서 수평적 권력으로의 이동이랄까요. 저는 이들이 나이가 들어도 리버럴 해지고(자유주의적이고), 진보에 가까운 모습일 거라고 봅니다.
때문에 나이 든 분들이 말하는 ‘나이 들면 철 든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 역시 “사회적 풍요를 마음껏 누린 20대는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처럼 나중에 보수화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의 30대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보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본인들조차 스스로의 성향을 가늠하지 못하는 30대.
어찌되었든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년에 총선과 대선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할는지는 현재로서는 도통 알 길이 없다. 본인들도 모른다는 것이 이 글의 요약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점은 ‘비전 있는 제3자’가 나온다면 30대가 월드컵 때처럼 열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