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국회에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의 세부사용내역을 비공개한 것은 위법한 처분’이라는 요지로 이의신청을 해 두었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절차이다. 국회는 아마도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을 보내올 것이다. 만약 이의신청을 통해서도 공개가 되지 않는다면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국회에 압력을 가할 생각이다
⊙ 국회가 자기 예산부터 투명하게 하면 행정 관료집단도 변한다
⊙ 국가채무 늘지만 국회 씀씀이는 오히려 커져…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전체 규모만 공개,
세부 내역은 非공개
⊙ 국회 非공개 정보, 행정소송으로 요구…대법원 판결까지 3년 걸려
河昇秀
⊙ 44세.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공인회계사(27회), 변호사(사시 37회).
⊙ 국세청 과세자료관리위원,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임. 現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 국회가 자기 예산부터 투명하게 하면 행정 관료집단도 변한다
⊙ 국가채무 늘지만 국회 씀씀이는 오히려 커져…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전체 규모만 공개,
세부 내역은 非공개
⊙ 국회 非공개 정보, 행정소송으로 요구…대법원 판결까지 3년 걸려
河昇秀
⊙ 44세.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공인회계사(27회), 변호사(사시 37회).
⊙ 국세청 과세자료관리위원,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임. 現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필자는 1998년부터 정부의 예산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998년이라는 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첫해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정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권에 관심을 가졌었다. 필자 역시 정부예산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 본 예산서는 서울시 자료였다. ‘업무추진비’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무슨 명목으로 쓰는 돈인지 궁금해서, 서울시에 업무추진비 사용내역과 영수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랬더니 서울시가 공개를 거부했다. 그래서 결국 행정소송까지 갔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정부예산에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 정부예산이 불투명하게 쓰이고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0년쯤에는 국회나 중앙정부 예산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 예산서를 보니, 너무 간단했다. 어디에 쓰는지 도저히 알기 어려웠다. 드러난 정보가 적다는 얘기는 감출 것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회 예산부터 자세히 들여다보고 의문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예산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일부 찾아냈다.
당시 찾아낸 문제점 중 하나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전직 국회의원 지원금’이다. 국회가 ‘대한민국 헌정회’라는 단체를 통해서 만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5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돈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재직기간이나 현재의 재산상황 등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돈이었다. 따라서 연금으로도 볼 수 없는 성격의 돈이었다. 이런 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었다.
만약 생활이 어려운 일부 전직 국회의원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법률로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회는 그렇게 하지 않고 변칙적인 방법을 쓰고 있었다.
법에도 없는 전직 국회의원 지원금
2000년 당시 국회 예산에서 찾아낸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가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 성격의 돈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다. 특수활동비란 예산 관련 지침에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영수증도 첨부하지 않고 쓸 수 있는 특례가 인정되는 예산항목이다.
그런데 정보기관도 아니고 수사기관도 아닌 국회에서 1년에 수십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쓰고 있었다. 또 국회에서 쓰는 업무추진비도 적지 않았다. 업무추진비란 과거에 판공비라고도 불리던 돈이다. 주로 밥 먹고 선물 주고 격려금, 축·조의금 명목으로 쓴다.
그렇지만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부문에 대해서는 국회가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사용실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정보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국회는 반응이 없었다. 결국 당시에 필자가 활동하고 있던 참여연대에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최종판결은 몇 년 후에 내려졌다. 대법원은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정보공개를 거부하던 당시의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난 후였다.
국회, ‘예산 잘 쓰고 있으니 믿어달라?’
그 후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필자도 국회의 예산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지원금은 액수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2000년에 5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매월 120만원씩 지급되고 있다. 이 돈만 합쳐도 1년에 100억원이 넘는다.
게다가 전직 국회의원에 대해 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되자 작년 초에 국회의원들은 법 개정을 통해 근거조항을 만들었다. 자기들을 위한 특혜성 법을 만든 셈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국민이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이를 모른 체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비서진 수도 늘렸다. 국회 의원회관 공간이 부족하다면서 제2 의원회관을 짓는 데 2200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국가채무가 늘고 있지만, 국회 씀씀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서 국회에서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같은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다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난 1월 30일 국회에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국회가 보인 반응은 ‘전체 규모만 공개, 세부내역은 비공개’라는 것이었다.
우선 국회는 특수활동비의 전체 규모만 공개했다. 국회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에 쓴 특수활동비만 해도 86억원이 넘었다. 국회가 밝힌 몇 가지 명목을 보면, ‘입법활동지원’에 12억원, ‘입법 및 정책개발’에 20억원, ‘상임위원회 운영지원’에 18억원, ‘사무처 기본경비’로 11억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운영지원’으로 2억3000만원, ‘의원외교활동’에 6억5000여만 원 등을 썼다.
국회는 구체적인 사용내역을 밝히지 않았다. 국회는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해왔다.
<…동 경비의 성격상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고 집행하는 지출 증빙의 특례가 인정되는 경비로, 교섭단체나 위원회 등 고도의 정치활동과 의원외교 등의 특수한 의정 활동에 지원되는 경비로서 상세내역이 공개되는 경우 국회 본연의 정치 및 정책형성 등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상세내역 공개는 불가하며, 국회운영상 꼭 필요한 경비에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회 답변을 보면, ‘고도의 정치활동과 의원외교 등의 특수한 의정활동’에 사용하고 있으니 무작정 믿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답변을 보고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본래 특수활동비는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기밀유지가 필요한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돈이다. 그런데 국회는 성격상 그런 활동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규모가 너무 크다. 필자는 국회가 연간 86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만약 꼭 필요한 돈이라면, 그에 대해 설명·입증할 책임은 국회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서, 그리고 폐쇄적으로 정보를 감추면서 ‘잘 쓰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뽑아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세부내역 非공개, 법을 만든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행위
특수활동비와는 별개로 국회가 쓴 업무추진비도 80억원이 넘었다. 각 위원회와 부서별로 업무추진비를 쓰는데, ‘입법활동지원’ 3억7000여만 원, ‘입법 및 정책개발’ 3억9000여만 원, ‘의원외교활동’ 12억8000여만 원, ‘예결위 운영지원’ 2억1000여만 원 등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국회에 존재하는 상임위원회별로도 적게는 4000여만 원에서 많게는 1억4000여만 원까지 업무추진비를 쓰고 있었다. 결국 비슷비슷한 명목으로 특수활동비도 쓰고 업무추진비도 쓰는 것이다.
국회는 ‘업무추진비의 경우에도 상세한 사용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영수증의 양이 많아 세부적인 내역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의 이런 답변은 국회 스스로 만든 법률이나 대법원 판례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보공개법 제13조 제2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공개대상 정보의 양이 과다해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양이 너무 많으면 일정기간 내에 정보를 분할해서 공개할 수 있게 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회가 양이 많다는 이유로 정보공개 자체를 거부한 것은 스스로 만든 법률에 어긋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 관련 정보에 대해 공개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대법원의 입장은 업무추진비의 경우 개인정보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세부적인 사용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용날짜, 사용금액, 사용장소, 사용목적, 영수증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는 그런 대법원 판례도 무시하고 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인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요즘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 얼마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고, 참석한 인원은 몇 명이며, 카드로 사용했는지, 현금으로 사용했는지까지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국회의 태도는 매우 불성실한 것이다.
판결도 무시하니 소송으로 대응할 수도 없고
문제는 국회의 행태에 대해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이런 비공개 행태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이런 방법으로는 국회의 자의적인 비공개 행태를 바꿀 수 없었다. 소송을 해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으려면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지루한 소송 끝에 정보가 공개돼도 그때에는 정보의 가치가 상실된 후이다.
국회는 이런 점을 악용해 반복적으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해외에 나가 외교활동을 한다면서 사용한 돈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몇 년이 지나 그 건에 대해서만 공개하고, 다시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면 또 비공개하는 식이다. 이런 모습은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태이다.
사실 국회나 정부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예산낭비를 감시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돈이 들어간다. 정보공개 받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요구하면 수수료까지 납부해야 한다. 그야말로 공익(公益)을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산낭비를 감시할 주체가 없다. 그래서 작은 힘이지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필자가 소장을 맡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도 그런 단체 중 하나이다.
참고로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된 단체이다. 예산낭비를 감시하려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국회든 그 누구든 간에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예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예산낭비를 없애고 투명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수든 진보든 부정할 수 없는 과제다.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국가재정과 지방재정 모두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채무의 증가추세는 이미 우려스러운 상황까지 갔다. 정부 관료들은 OECD 평균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은 안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공기업 부채와 같은 숨어 있는 부채까지 합하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낭비를 없애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만연해 있는 예산낭비 없애려면, 국회예산부터 개혁해야
국민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국가재정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낭비를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예산낭비에 분노할 것이다. 연말이면 파헤쳐지는 보도블록을 보면서 ‘차라리 이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지’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한두 명이 아니다. 사실 정부예산이 ‘눈먼 돈’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예산낭비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정보공개이다.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예산낭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 그 낭비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 관련 정보가 공개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민 세금을 써서 만들어진 정보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국회예산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회가 1년에 쓰는 예산이 4400억원이 넘지만, 우리나라 전체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된다.
필자는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예산낭비를 없애려면, 국회예산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산낭비의 책임 중 상당부분이 국회에 있고, 입법기관인 국회부터 개혁되어야 예산개혁을 위한 입법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말에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하는 행태를 보면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예산을 챙기기 위해 예산 계수조정을 밀실에서 진행한다. 회의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그 과정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여한 국회의원이나 소위 ‘실세’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늘어나는 것은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 온 문제이다. 이런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입장에서 행정부의 예산낭비를 감시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국회의원들도 할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예산과정을 보면 국회의 역할이 적다. 행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면 국회는 그것을 일부 조정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재정 관련 법률을 만들어놓은 주체는 국회이다.
만약 국회가 예산과 관련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싶으면, 국회가 예산과정에서 행정부를 견제·감시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보완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지역구 예산이나 챙기고 자기 민원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국회의원들이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견제받지 않는 행정권력은 곳곳에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부터 개혁하고 국회예산부터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가 자신이 쓰는 예산부터 낭비를 없애고 투명하게 해야만, 행정관료집단에 대해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가 가지는 입법권을 통해 예산개혁을 위한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예산낭비를 근절할 방법이 없다.
이미 대안들은 많이 나와 있다. 예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안도 국회에 상정돼 있고, 예산낭비를 없앨 수 있는 여러 개혁방안도 논의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개혁방안들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다는 점이다.
위에서 새니 아래에서도 샌다
윗물의 혼탁함을 개혁하지 않고서 아랫물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국회나 청와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예산을 함부로 쓰는데 밑에 있는 부처나 공무원들이 투명성 확보나 예산낭비 근절에 대한 의지를 가질 리 없다.
현실을 보면 가장 상위의 권력이 가장 불투명하다. 국회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찾은 자료에 의하면, 청와대에도 1년에 220억원이 넘는 특수활동비가 책정돼 있다. 청와대는 업무특성상 특수활동비를 써야 하는 활동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 규모가 지나치다. 특수활동비는 1년에 1600억원대인 청와대 예산의 13%를 넘는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만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공개방식도 문제이다. 대략적인 명목과 금액만 공개할 뿐이기 때문이다. 2010년 하반기의 경우 ‘정책조정 및 현안관련 간담회비’ 13억7000여만 원, ‘내외빈 주요인사 초청행사비’ 8억7000여만 원, ‘각계각층 경·조화비 및 기념품비’ 16억여 원 같은 식으로만 공개한다. 언제 어디서 얼마를 썼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투명해지려면 이런 최상위 권력기관들부터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고민이다. 일단 국회예산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산낭비부터 줄여야 한다. 그리고 국회가 입법기관 및 행정부 감시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국회를 움직일 힘은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한 가지 희망을 보는 것은, 늘 큰 변화는 작은 시작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필자와 정보공개센터는 작은 힘이지만 몇 가지 일을 해나가려고 한다.
우선 국회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부터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활동할 생각이다. 필자는 국회에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의 세부사용내역을 비공개한 것은 위법한 처분’이라는 요지로 이의신청을 해 두었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절차이다. 국회는 아마도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을 보내올 것이다. 만약 이의신청을 통해서도 공개가 되지 않으면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국회에 압력을 가할 생각이다.
결국에는 국민의 여론이 최대의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 관심을 가진 시민이 자기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론이 형성된다면 국회도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정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권에 관심을 가졌었다. 필자 역시 정부예산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 본 예산서는 서울시 자료였다. ‘업무추진비’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무슨 명목으로 쓰는 돈인지 궁금해서, 서울시에 업무추진비 사용내역과 영수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랬더니 서울시가 공개를 거부했다. 그래서 결국 행정소송까지 갔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정부예산에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 정부예산이 불투명하게 쓰이고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0년쯤에는 국회나 중앙정부 예산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 예산서를 보니, 너무 간단했다. 어디에 쓰는지 도저히 알기 어려웠다. 드러난 정보가 적다는 얘기는 감출 것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회 예산부터 자세히 들여다보고 의문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예산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일부 찾아냈다.
당시 찾아낸 문제점 중 하나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전직 국회의원 지원금’이다. 국회가 ‘대한민국 헌정회’라는 단체를 통해서 만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5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돈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재직기간이나 현재의 재산상황 등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돈이었다. 따라서 연금으로도 볼 수 없는 성격의 돈이었다. 이런 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었다.
만약 생활이 어려운 일부 전직 국회의원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법률로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회는 그렇게 하지 않고 변칙적인 방법을 쓰고 있었다.
법에도 없는 전직 국회의원 지원금
2000년 당시 국회 예산에서 찾아낸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가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 성격의 돈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다. 특수활동비란 예산 관련 지침에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영수증도 첨부하지 않고 쓸 수 있는 특례가 인정되는 예산항목이다.
그런데 정보기관도 아니고 수사기관도 아닌 국회에서 1년에 수십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쓰고 있었다. 또 국회에서 쓰는 업무추진비도 적지 않았다. 업무추진비란 과거에 판공비라고도 불리던 돈이다. 주로 밥 먹고 선물 주고 격려금, 축·조의금 명목으로 쓴다.
그렇지만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부문에 대해서는 국회가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사용실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정보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국회는 반응이 없었다. 결국 당시에 필자가 활동하고 있던 참여연대에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최종판결은 몇 년 후에 내려졌다. 대법원은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정보공개를 거부하던 당시의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난 후였다.
국회, ‘예산 잘 쓰고 있으니 믿어달라?’
 |
| 2010년 11월 15일 국회 농림수산위 회의실에 회의에 앞서 의원들에게 배포할 예산안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국회의예산이 투명하지 않은데 행정부처에 예산절감을 요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게다가 전직 국회의원에 대해 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되자 작년 초에 국회의원들은 법 개정을 통해 근거조항을 만들었다. 자기들을 위한 특혜성 법을 만든 셈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국민이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이를 모른 체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비서진 수도 늘렸다. 국회 의원회관 공간이 부족하다면서 제2 의원회관을 짓는 데 2200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국가채무가 늘고 있지만, 국회 씀씀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서 국회에서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같은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다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난 1월 30일 국회에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국회가 보인 반응은 ‘전체 규모만 공개, 세부내역은 비공개’라는 것이었다.
우선 국회는 특수활동비의 전체 규모만 공개했다. 국회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에 쓴 특수활동비만 해도 86억원이 넘었다. 국회가 밝힌 몇 가지 명목을 보면, ‘입법활동지원’에 12억원, ‘입법 및 정책개발’에 20억원, ‘상임위원회 운영지원’에 18억원, ‘사무처 기본경비’로 11억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운영지원’으로 2억3000만원, ‘의원외교활동’에 6억5000여만 원 등을 썼다.
국회는 구체적인 사용내역을 밝히지 않았다. 국회는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해왔다.
<…동 경비의 성격상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고 집행하는 지출 증빙의 특례가 인정되는 경비로, 교섭단체나 위원회 등 고도의 정치활동과 의원외교 등의 특수한 의정 활동에 지원되는 경비로서 상세내역이 공개되는 경우 국회 본연의 정치 및 정책형성 등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상세내역 공개는 불가하며, 국회운영상 꼭 필요한 경비에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회 답변을 보면, ‘고도의 정치활동과 의원외교 등의 특수한 의정활동’에 사용하고 있으니 무작정 믿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답변을 보고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본래 특수활동비는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기밀유지가 필요한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돈이다. 그런데 국회는 성격상 그런 활동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규모가 너무 크다. 필자는 국회가 연간 86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만약 꼭 필요한 돈이라면, 그에 대해 설명·입증할 책임은 국회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서, 그리고 폐쇄적으로 정보를 감추면서 ‘잘 쓰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뽑아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세부내역 非공개, 법을 만든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행위
특수활동비와는 별개로 국회가 쓴 업무추진비도 80억원이 넘었다. 각 위원회와 부서별로 업무추진비를 쓰는데, ‘입법활동지원’ 3억7000여만 원, ‘입법 및 정책개발’ 3억9000여만 원, ‘의원외교활동’ 12억8000여만 원, ‘예결위 운영지원’ 2억1000여만 원 등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국회에 존재하는 상임위원회별로도 적게는 4000여만 원에서 많게는 1억4000여만 원까지 업무추진비를 쓰고 있었다. 결국 비슷비슷한 명목으로 특수활동비도 쓰고 업무추진비도 쓰는 것이다.
국회는 ‘업무추진비의 경우에도 상세한 사용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영수증의 양이 많아 세부적인 내역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의 이런 답변은 국회 스스로 만든 법률이나 대법원 판례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보공개법 제13조 제2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공개대상 정보의 양이 과다해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양이 너무 많으면 일정기간 내에 정보를 분할해서 공개할 수 있게 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회가 양이 많다는 이유로 정보공개 자체를 거부한 것은 스스로 만든 법률에 어긋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 관련 정보에 대해 공개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대법원의 입장은 업무추진비의 경우 개인정보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세부적인 사용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용날짜, 사용금액, 사용장소, 사용목적, 영수증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는 그런 대법원 판례도 무시하고 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인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요즘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 얼마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고, 참석한 인원은 몇 명이며, 카드로 사용했는지, 현금으로 사용했는지까지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그것과 비교하면 국회의 태도는 매우 불성실한 것이다.
 |
| 2010년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 |
 |
| 정부기관별 특수활동비 내역. 정보기관도 아니고 수사기관도 아닌 국회에서 1년에 수십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쓰고 있다. |
판결도 무시하니 소송으로 대응할 수도 없고
문제는 국회의 행태에 대해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이런 비공개 행태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이런 방법으로는 국회의 자의적인 비공개 행태를 바꿀 수 없었다. 소송을 해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으려면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지루한 소송 끝에 정보가 공개돼도 그때에는 정보의 가치가 상실된 후이다.
국회는 이런 점을 악용해 반복적으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해외에 나가 외교활동을 한다면서 사용한 돈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몇 년이 지나 그 건에 대해서만 공개하고, 다시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면 또 비공개하는 식이다. 이런 모습은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태이다.
사실 국회나 정부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예산낭비를 감시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돈이 들어간다. 정보공개 받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요구하면 수수료까지 납부해야 한다. 그야말로 공익(公益)을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산낭비를 감시할 주체가 없다. 그래서 작은 힘이지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필자가 소장을 맡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도 그런 단체 중 하나이다.
참고로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된 단체이다. 예산낭비를 감시하려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국회든 그 누구든 간에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예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예산낭비를 없애고 투명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수든 진보든 부정할 수 없는 과제다.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국가재정과 지방재정 모두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채무의 증가추세는 이미 우려스러운 상황까지 갔다. 정부 관료들은 OECD 평균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은 안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공기업 부채와 같은 숨어 있는 부채까지 합하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낭비를 없애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
| 정보공개청구 처리절차 |
만연해 있는 예산낭비 없애려면, 국회예산부터 개혁해야
국민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국가재정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낭비를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예산낭비에 분노할 것이다. 연말이면 파헤쳐지는 보도블록을 보면서 ‘차라리 이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지’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한두 명이 아니다. 사실 정부예산이 ‘눈먼 돈’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예산낭비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정보공개이다.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예산낭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 그 낭비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 관련 정보가 공개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민 세금을 써서 만들어진 정보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국회예산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회가 1년에 쓰는 예산이 4400억원이 넘지만, 우리나라 전체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된다.
필자는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예산낭비를 없애려면, 국회예산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산낭비의 책임 중 상당부분이 국회에 있고, 입법기관인 국회부터 개혁되어야 예산개혁을 위한 입법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말에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하는 행태를 보면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예산을 챙기기 위해 예산 계수조정을 밀실에서 진행한다. 회의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그 과정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여한 국회의원이나 소위 ‘실세’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늘어나는 것은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 온 문제이다. 이런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입장에서 행정부의 예산낭비를 감시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국회의원들도 할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예산과정을 보면 국회의 역할이 적다. 행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면 국회는 그것을 일부 조정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재정 관련 법률을 만들어놓은 주체는 국회이다.
만약 국회가 예산과 관련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싶으면, 국회가 예산과정에서 행정부를 견제·감시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보완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지역구 예산이나 챙기고 자기 민원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국회의원들이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견제받지 않는 행정권력은 곳곳에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부터 개혁하고 국회예산부터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가 자신이 쓰는 예산부터 낭비를 없애고 투명하게 해야만, 행정관료집단에 대해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가 가지는 입법권을 통해 예산개혁을 위한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예산낭비를 근절할 방법이 없다.
이미 대안들은 많이 나와 있다. 예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안도 국회에 상정돼 있고, 예산낭비를 없앨 수 있는 여러 개혁방안도 논의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개혁방안들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다는 점이다.
위에서 새니 아래에서도 샌다
윗물의 혼탁함을 개혁하지 않고서 아랫물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국회나 청와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예산을 함부로 쓰는데 밑에 있는 부처나 공무원들이 투명성 확보나 예산낭비 근절에 대한 의지를 가질 리 없다.
현실을 보면 가장 상위의 권력이 가장 불투명하다. 국회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찾은 자료에 의하면, 청와대에도 1년에 220억원이 넘는 특수활동비가 책정돼 있다. 청와대는 업무특성상 특수활동비를 써야 하는 활동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 규모가 지나치다. 특수활동비는 1년에 1600억원대인 청와대 예산의 13%를 넘는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만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공개방식도 문제이다. 대략적인 명목과 금액만 공개할 뿐이기 때문이다. 2010년 하반기의 경우 ‘정책조정 및 현안관련 간담회비’ 13억7000여만 원, ‘내외빈 주요인사 초청행사비’ 8억7000여만 원, ‘각계각층 경·조화비 및 기념품비’ 16억여 원 같은 식으로만 공개한다. 언제 어디서 얼마를 썼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투명해지려면 이런 최상위 권력기관들부터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고민이다. 일단 국회예산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산낭비부터 줄여야 한다. 그리고 국회가 입법기관 및 행정부 감시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국회를 움직일 힘은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한 가지 희망을 보는 것은, 늘 큰 변화는 작은 시작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필자와 정보공개센터는 작은 힘이지만 몇 가지 일을 해나가려고 한다.
우선 국회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부터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활동할 생각이다. 필자는 국회에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의 세부사용내역을 비공개한 것은 위법한 처분’이라는 요지로 이의신청을 해 두었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절차이다. 국회는 아마도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을 보내올 것이다. 만약 이의신청을 통해서도 공개가 되지 않으면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국회에 압력을 가할 생각이다.
결국에는 국민의 여론이 최대의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 관심을 가진 시민이 자기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론이 형성된다면 국회도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