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개헌 동력(動力)을 끌어내기 위해 뭔가를 줘야 합니다. 그게 선거구제 개편입니다. 사회통합이란 명분에서도, 국회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게 MB의 생각입니다.”(여권 고위 관계자)
대통령제라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리 정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 어느 정부 형태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현실에 적용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그런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수준에 달려 있다(국회 법사위 용역보고서)
⊙ 친이의 ‘월박(越朴)’을 막으려는, 공천 줄세우기 속셈
⊙ 4년 중임제,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 提高” VS. “초선엔 포퓰리즘, 재선엔 단임제 같은 결함”
⊙ 이원정부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분점” VS. “동거체제하에서 양측이 대립충돌”
⊙ 의원내각제, “국가 통합과 국가 역량 결집” VS. “정당 간 긴장 심화로 정치 불안”
대통령제라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리 정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 어느 정부 형태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현실에 적용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그런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수준에 달려 있다(국회 법사위 용역보고서)
⊙ 친이의 ‘월박(越朴)’을 막으려는, 공천 줄세우기 속셈
⊙ 4년 중임제,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 提高” VS. “초선엔 포퓰리즘, 재선엔 단임제 같은 결함”
⊙ 이원정부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분점” VS. “동거체제하에서 양측이 대립충돌”
⊙ 의원내각제, “국가 통합과 국가 역량 결집” VS. “정당 간 긴장 심화로 정치 불안”
- 2011년 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 관련 한나라당 의원총회 이틀째 회의 모습. 많은 의원이 불참해 앞쪽에 빈자리가 보인다.
다시 개헌의 봉화가 올랐다. 이재오(李在五) 특임장관이 군불을 때고 안상수(安商守) 한나라당 대표가 부지깽이를 들고 있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짐짓 뒤에서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친이(親李), 친박(親朴) 의원들이 다투면서 이미 얼굴에 탄가루가 묻기 시작했다.
몇몇 친이계 의원들이 개헌에 ‘합창’하고 있으나 응집력은 ‘중창’ 내지 ‘이중창’ 정도다. 들여다보면, 친이끼리도 회의적이다. 정두언(鄭斗彦) 최고위원은 “개헌은 필요하지만 정권말기에 개헌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라는 입장이다. 그의 말이다.
“사실 개헌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논의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정권말기에 개헌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한나라당이 세종시 수정안을 내서 결국 무산됐거든요. 개헌은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얘기입니다. 사실상 현실성 없다는 얘기죠.”
그러나 팔짱을 낀 친이계 반응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MB의 ‘교지(敎旨)’가 직접 내려질 경우다. 그럴 경우 친이가 기꺼이 개헌의 불쏘시개로 산화(散華)할지 모른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를 중심으로 모인 친박 의원들은 “개헌은 좋다. 그러나 구제역, 물가대란 등 민생현안을 제쳐놓고 개헌을 논의할 때이냐?(徐秉洙 최고위원)”고 반대한다. 개헌특위 참여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정현(李貞鉉) 의원은 “헌법은 국가, 법의 근간이어서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되는 사안이다. 손을 대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특히 털끝만큼이라도 사감이나 사욕이 개입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친박 때문에 개헌이 안 된다’는 시각에 대해선 친박 측도 고민스럽다. 반대는 하지만 ‘반대 투쟁’은 삼가려 한다. 일종의 무시 전략이다. 친박계 김태환(金泰煥) 당 홍보기획위원장은 “개헌 필요성은 공감한다. 선호하는 안(案)도 있지만 시기가 문제”라며 “여태껏 아무 말도 없다가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것 자체가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개헌논의) 과정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또 어떤가. 박지원(朴智元)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민생을 팽개치고 되지도 않을 개헌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권의 어떤 개헌논의에도 일단은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헌, 이재오 장관에게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지난 2009년 11월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던 김성조(金晟祚) 의원은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6·2 지방선거 이후 대선주자가 부각되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물 건너갈 수 있다. 2010년 1~2월 중 개헌안 발의가 이뤄져야 현실적으로 이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년 가까이 지났다. 현재 친이 개헌론자들도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가능하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개헌 관련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로 개헌 논의를 주도해 온 이주영(李柱榮·국회 예결특위 위원장) 의원의 말이다.
“특정 정파가 아닌 국회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만 ‘차기 정권에서 내각을 특정계파가 차지하려는 의도’라는 의구심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 권력구조 개편은 ‘차차기’ 국가수반부터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어요.”
‘차차기’에 적용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몸이 달 이유가 없다. 이 장관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는 정략(政略) 때문이라는 게 친박 의원의 생각이다. 당 전국위 의장인 친박계 이해봉(李海鳳) 의원은 “개헌을 계기로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국민이 갖고 있다”고 했다. 친이의 ‘월박(越朴)’을 막으려는, 공천 줄세우기의 속셈이란 얘기다. 중립성향의 나경원(羅卿瑗) 최고위원 말이다.
“실질적으로 대선후보들이 가시화돼 있고 대선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된 상황에서 개헌논의가 공정하게 이뤄질지 회의적입니다. 지금 개헌 논의는 다른 의도가 있거나 또 하나의 줄세우기가 될 수 있어 국민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한 초선 의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재오 장관으로선 야당의 협조를 얻어 개헌이 실제 이뤄지면 대박이겠지만 개헌이 안 되더라도 친이계 의원들은 당분간 자신 주위에 묶어두는 효과는 거둘 수 있어요. 이 장관에겐 밑지는 장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선거구제의 폭발력이 변수
정치공학상의 얘기지만, 친박 의원들이 모두 개헌논의에서 빠져버린다면 친이로서는 민주당을 개헌 파트너로 구상할 수 있다. 현재로선 불가능한 얘기다. 민주당을 개헌논의에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이 필요하다. 당근은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이다. 중대선거구제 개편은 지난해 6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사회통합위원회가 이미 제안한 사안이다.
특임장관을 역임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주호영(朱豪英) 의원의 말이다.
“최대 득표자 한 사람만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소위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원칙이 적용되는 소선거구제도는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후보가 늘 승리하는 형태가 되기 쉬워, 선거 때마다 지역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만약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할 경우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합니다. 반면, 민주당이 영남에서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높지요. 만약 청와대나 여권이 중대선거구제를 받아들일 경우 개헌은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한나라당 영남의원들의 반대가 극심하겠지요.”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전국에 생방송된 좌담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유독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영남에서 야당 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여당 의원이 나와서 지역을 대표해야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지지 않겠느냐. 그래서 선거구제를 바꾸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안상수 대표도 지난 1월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선거구제 논의는 물론 비례대표제의 개혁도 필요하다” “영남과 호남에서도 여와 야의 의원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지역별 석패율(惜敗率)제를 언급했다.
문제는 한나라당 영남의원이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 익숙한 그들이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영남의원 중 다수가 친박 성향이거나 월박을 고민하는 친이들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권력구조 개편에 여야 의원 모두 공감합니다. 문제는 시기입니다. 친박이 개헌에 끝까지 반대하면 (친이는) 친박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 민주당의 개헌동력(動力)을 끌어내기 위해 뭔가를 줘야 합니다. 그게 선거구제 개편입니다. 아직까진 불가능한 얘기죠. 만약 영수회담이 이뤄지면, 그 과정에서 모종의 이야기가 오갈 것으로 압니다. 단순한 친이, 친박의 계파싸움에서 권력구조 개편안을 바라보지 마세요. 여러 소란이 있겠지만 선거구제 개편은 사회통합이란 명분에서도, 국회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게 MB의 생각입니다.”
이와 관련, 친이계인 호남 출신 정운천(鄭雲天)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호남 31명의 국회의원 중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고 지방선거직 591명 중 비례를 제외하면 한나라당 소속은 단 한 명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영남의 경우는 호남과 반대 양상입니다. 지구상에 민주주의 하는 나라에서 이런 지역구도를 갖는 나라는 없어요. 상극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주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석패율 제도’를 최우선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친이계가 만지작만지작 하는 ‘선거구제 개편’ 카드는 화력이 센 인화물(引火物)이다. 영남의 친이, 친박 의원 모두가 반대하는데다 내년 총선에서 자칫 한나라당에 독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정치를 ‘혐오’하는 이 대통령이 ‘극약 처방’을 선호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제라는 제도보다 우리 정치 자체에 문제”
사실 개헌의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한다. 다만 시기와 방식, 누가 논의를 주도하느냐의 문제지 친박이든, 민주당이든 5년 단임의 현 대통령제가 불행을 잉태하고 있다는 데는 공감한다.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돼 부정부패가 반복되며 5년 단임제와 국회의원 임기가 엇박자가 나 불필요한 갈등이 잦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헌법학회 고문인 윤명선(尹明善) 경희대 명예교수는 “헌법상 대통령 단임제와 국회의원 선거와의 불일치 등 역기능이 많다. 국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많은 학자와 국민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고 올해가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5년 단임을 골자로 하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29 선언으로 인해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함으로써 탄생했다. 이 헌법은 제정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정치권이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합의한 것은 현존하던 정치세력인 3김(金), 즉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씨 등이 돌아가며 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울산대 법학과 도회근(都會根) 교수는 <한국의 헌법개정 논의>라는 연구논문에서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탄생했다. 당시 개헌안은 여야 의원 8명의 정치협상 회의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불과 2개월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급조됐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헌법에 대한 깊은 연구의 결과도 없었고, 주로 대통령과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부 형태에 초점을 맞춘 개헌이었기에 학자들은 일찍부터 수십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나온다. 2008년 12월 발간된 국회 법사위원회의 정책연구개발 용역보고서(한국 헌법의 개헌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자.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담겨 있다.
<대통령제라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리 정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 어느 정부 형태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현실에 적용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그런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수준에 달려 있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방승주(方勝柱) 교수는 “현행 대통령제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 제도의 소지가 있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집중돼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부형태를 도입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보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대통령제의 유지·보완·수정을 포함해 현재 학계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의 실체를 좀 더 들여다보자.
4년 중임제, 국무총리제 존폐 여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방향의 논의 중 하나로 4년 중임(연임)제를 고려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지난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4년 중임제를 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었다. 친박 의원 다수와 친이계 일부도 4년 중임제에 공감한다.
장기집권을 방지하면서 임기 동안 장기계획을 수립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과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의 역사적 사명을 다했으니 4년 중임제야말로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폐해는 없을까. 윤명선 명예교수는 “4년 연임의 첫 임기 중에는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국정운영을 하게 돼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고, 재선된 후에는 단임제의 경우와 같은 결함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얘기할 때, 국무총리제의 존폐와 부통령제 도입여부가 도마에 오른다. 이주영 의원은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국무총리제나 의원·장관 겸직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제를 부활시켜 4년 중임제의 순수한 미국식 대통령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국무총리제가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국무총리를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하는 것은 의원내각제적 요소”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역대 총리들이 실질적 권한이 없었다는 점도 작용한다.
박상철(朴相哲)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권력구조의 개헌쟁점과 민주주의 논쟁>이란 논문을 통해 “제헌헌법 제정 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나온 국무총리 제도가 권위주의적 대통령제하에서 ‘방탄(防彈)총리’, ‘대독(代讀)총리’로 불리는 현실은 역대 총리들이 실질적 권한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대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무총리제를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은, 국무총리제가 대통령제와 맞지 않다는 점과 대통령 유고(有故)시 국민의 ‘선출’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것의 문제점 때문이다.
고려대 임혁백(任爀伯) 교수는 <새로운 헌법 필요한가>라는 논문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와 달리 부통령은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이 점이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어 대통령과 실질적인 권력분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헌과정에서 부통령제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정·부통령 선출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우선 전체 후보자 중 제1득표자를 대통령으로, 2득표자를 부통령으로 하는 방법은 부적합해 보인다. 패배한 경쟁자를 부통령으로 둘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영호남 간 지역대결 양상을 없애기 위해 정·부통령 후보가 지역연합으로 이뤄진다면 지역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회자된다. 임 교수는 “대통령 후보로 하여금 자신의 출신지역이 아닌 타지역 출신 인사를 러닝메이트로 할 경우 지역 간 공존, 협력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주영 의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극복해야 할 대상인 지역주의를 전제로 제도를 입안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발상”이라는 반응이다.
親李가 미는 이원정부제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정부 형태인데 대통령은 단임제다. 안경률(安炅律)·권택기(權宅起) 의원 등 이재오 특임장관과 가까운 친이 의원이 선호하는 안이다.
김형오(金炯旿) 국회의장 시절인 지난 2009년 8월 31일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 헌법연구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이원정부제’에 따르면,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이며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대신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지위만 가진다.
반면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재적 과반수로 선출한다. 국회에서 선출한 국무총리(혹은 수상·다수당 또는 연립 시 연립다수당의 당수)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일상적인 국정 전반의 통할권과 내각구성권, 국군통수권 등을 모두 가진다. 또 국회(하원)의 내각 불신임권을 인정하되 미리 국무총리를 선출하는 ‘건설적 불신임제’를 채택, 내각제적 요소까지 갖췄다. 이원정부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을 분담하는 권력분점론 내지 권력분산론도 대두될 수 있다.
동국대 사회과학부 황태연(黃台淵) 교수는 “외교·국방·안보 등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국정은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이 맡고 나머지 나라 살림은 총리가 맡으면 된다”며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부딪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증오와 미움과 비판이 잦아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원정부제는 의원내각제 개헌에 비해, 헌법조문의 부분적 개정만으로 현행의 정부형태를 이원정부제로 바꾸기 쉽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홍익대 법과대학 장용근 교수는 “현행 헌법상의 정부형태 속에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성격을 가미한 이원정부제적 요소를 상당부분 가지고 있다”며 “직선 대통령제와 대통령의 비상적 권한(국가긴급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총리의 실질적 권한 범위를 명시하거나, 국회에서 총리 선출,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을 추가하면 이원정부제 정부형태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원정부제에 대한 역기능도 상당하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소속일 경우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므로 사실상 집행권을 행사하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
또 정당배경을 달리하는 동거체제하에서 양 기관이 대립충돌하게 되면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윤명선 명예교수는 “사실 이원정부제에서 대통령은 국정조정자로서의 지위, 총리에게는 국정관리자로서의 지위가 부여돼 권한의 상당부분이 중첩돼 있다”고 했다.
양원제와 맞물린 선거구제 개편문제
대통령제에서, 다시 말해 이원정부제든, 4년 중임제든, 미국식 정·부통령제든 양원제를 도입할 수 있다.
양원제(兩院制)에 대해 김종인(金鍾仁) 전 헌법연구자문위원장은 “상·하원 양원이 서로 견제할 수 있고 여야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며 “하원은 소선거구제로, 상원은 대선거구제로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될 경우 특정 지역의 1당 독식을 막고, 현행 비례대표보다는 훨씬 민주적 대표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연구자문위는 하원의원 임기를 4년, 상원은 6년으로 하되, 하원은 직선으로 4년마다 전원 교체하고 상원은 2년마다 1/3씩 교체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지역주의라는 폐습을 떨치고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회 양원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정착, 발전된 나라치고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가 드물어요. 지역대표성을 지닌 하원(소선거구제)과 거대광역에서 선출된 상원(대선거구제)을 조합한 양원제가 바람직합니다. 양원제는 수의 정치, 밀어붙이기식 정치, 떼쓰기 정치를 막아주고 충분한 대화와 토론, 신중한 의안 심사로 볼썽사나운 대결국면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박관용(朴寬用) 전 의장 역시 “국회를 양원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원제에서는 경솔하고 위험한 결정이 너무 쉽게 법이란 옷으로 갈아입고 국가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민주성과 신중성 측면에서 양원제가 훨씬 낫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현행 의원수에 비춰 하원 220명, 상원 80명 선을 제안했다.
양원제에선 하원과 상원의 다수당이 불일치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양원제를 유지 중인 미국, 영국과 달리 일본 참의원은 중의원과 역할 구분도 분명하지 않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양원제 역시 여야 간에 효율적인 정책공조 체제를 구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본 중·참의원 양원제와 관련, 게이오대 국제경제학부 다케모리 순페이(竹森俊平) 교수는 지난 2월 초 방한해 “일본은 중·참의원 양원제도와 소선거구, 중선거구가 혼재돼 있다. 사실상 2년 만에 한 번씩 선거가 열리는데다 총리 교체가 수시로 이뤄지기 때문에 연속성 있는 정책을 집행하기 어려운 구도”라며 “국민이 직접 총리를 뽑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민의(民意)가 제대로 반영되는지도 불투명하고 글로벌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노출됐다”고 했다.
군주제 국가에 유리한 의원내각제
우리에게 대통령 중심제가 보편적인 권력구조 형태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의원내각제가 보편적인 권력구조다. 실제로 대통령제는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등에 주로 분포된 반면, 유럽 등 정치선진국은 대부분 내각제를 택하고 있다.
‘정부 형태 및 권력구조에 관한 헌법연구회’ 대표의원을 역임한 조일현(曺馹鉉) 전 의원은 “OECD 30개 국가 중 순수 대통령 중심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극소수”라며 “유엔회원국 중 의원내각제는 65개국, 대통령 중심제는 43개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내각제는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최구식(崔球植),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등 중진그룹뿐 아니라 국회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우윤근(禹潤根), 자유선진당 김창수(金昌洙) 의원 등이 선호하는 안이다. 안경률 의원 역시 “이원집정부적인 형태를 한 번 거쳐서 내각제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며 최적안은 내각제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도 “의원내각제는 국가 통합과 국가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내각제를 선호하는 이유로 “선진국이 내각제 확립에서 국가발전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을 발판으로 내각제가 확립돼 18세기 산업혁명을 성공시켰고, 일본 역시 1945년 종전 이후 내각제를 확립시켜 경제발전과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내각제에 대해 “형식적 역할을 맡는 대통령과 실질적 정책 결정권을 갖는 총리로 권한이 분리된다”며 “총리는 의회에 책임을 지고, 의회의 감독과 당내(黨內) 경쟁자의 견제를 받기 때문에 효과적인 권력분산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점과 한계도 안고 있다. 국회와 정부 간 경쟁 내지 긴장관계가 약화돼 대통령제 못지않게 권력남용이 가능하다.
반대로 정당 간 경쟁·긴장 관계가 심화돼 정치 불안이 가중될 위험이 높다. 태국에서 몇 년 동안 수상이 5번이나 바뀌는 불안정이 그 사례다.
또 의원내각제는 전통적으로 군주제 전통이 있는 나라에 맞는 제도다. 영국이나 일본의 예가 그렇다. 귀족제에 바탕을 둔 원로 정치적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경남대 북한대학원장인 윤대규(尹大奎) 교수는 “내각제로의 전환이 국민통합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견해 역시 설득력이 없다”며 “내각제하에서도 대통령제와 같이 실권자 또는 특정 정당이 지역 연고에 따라 특혜 정책을 펼 수 있어 지역 할거주의를 고착화할 소지가 강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몇몇 친이계 의원들이 개헌에 ‘합창’하고 있으나 응집력은 ‘중창’ 내지 ‘이중창’ 정도다. 들여다보면, 친이끼리도 회의적이다. 정두언(鄭斗彦) 최고위원은 “개헌은 필요하지만 정권말기에 개헌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라는 입장이다. 그의 말이다.
“사실 개헌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논의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정권말기에 개헌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한나라당이 세종시 수정안을 내서 결국 무산됐거든요. 개헌은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얘기입니다. 사실상 현실성 없다는 얘기죠.”
그러나 팔짱을 낀 친이계 반응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MB의 ‘교지(敎旨)’가 직접 내려질 경우다. 그럴 경우 친이가 기꺼이 개헌의 불쏘시개로 산화(散華)할지 모른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를 중심으로 모인 친박 의원들은 “개헌은 좋다. 그러나 구제역, 물가대란 등 민생현안을 제쳐놓고 개헌을 논의할 때이냐?(徐秉洙 최고위원)”고 반대한다. 개헌특위 참여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정현(李貞鉉) 의원은 “헌법은 국가, 법의 근간이어서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되는 사안이다. 손을 대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특히 털끝만큼이라도 사감이나 사욕이 개입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친박 때문에 개헌이 안 된다’는 시각에 대해선 친박 측도 고민스럽다. 반대는 하지만 ‘반대 투쟁’은 삼가려 한다. 일종의 무시 전략이다. 친박계 김태환(金泰煥) 당 홍보기획위원장은 “개헌 필요성은 공감한다. 선호하는 안(案)도 있지만 시기가 문제”라며 “여태껏 아무 말도 없다가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것 자체가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개헌논의) 과정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또 어떤가. 박지원(朴智元)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민생을 팽개치고 되지도 않을 개헌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권의 어떤 개헌논의에도 일단은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헌, 이재오 장관에게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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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구제 개편에 관심이 많다. “영남에서 야당 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여당 의원이 나와서 지역을 대표해야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그리고 2년 가까이 지났다. 현재 친이 개헌론자들도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가능하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개헌 관련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로 개헌 논의를 주도해 온 이주영(李柱榮·국회 예결특위 위원장) 의원의 말이다.
“특정 정파가 아닌 국회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만 ‘차기 정권에서 내각을 특정계파가 차지하려는 의도’라는 의구심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 권력구조 개편은 ‘차차기’ 국가수반부터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어요.”
‘차차기’에 적용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몸이 달 이유가 없다. 이 장관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이유는 정략(政略) 때문이라는 게 친박 의원의 생각이다. 당 전국위 의장인 친박계 이해봉(李海鳳) 의원은 “개헌을 계기로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국민이 갖고 있다”고 했다. 친이의 ‘월박(越朴)’을 막으려는, 공천 줄세우기의 속셈이란 얘기다. 중립성향의 나경원(羅卿瑗) 최고위원 말이다.
“실질적으로 대선후보들이 가시화돼 있고 대선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된 상황에서 개헌논의가 공정하게 이뤄질지 회의적입니다. 지금 개헌 논의는 다른 의도가 있거나 또 하나의 줄세우기가 될 수 있어 국민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한 초선 의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재오 장관으로선 야당의 협조를 얻어 개헌이 실제 이뤄지면 대박이겠지만 개헌이 안 되더라도 친이계 의원들은 당분간 자신 주위에 묶어두는 효과는 거둘 수 있어요. 이 장관에겐 밑지는 장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선거구제의 폭발력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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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호영 여의도연구소장. |
특임장관을 역임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주호영(朱豪英) 의원의 말이다.
“최대 득표자 한 사람만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소위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원칙이 적용되는 소선거구제도는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후보가 늘 승리하는 형태가 되기 쉬워, 선거 때마다 지역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만약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할 경우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합니다. 반면, 민주당이 영남에서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높지요. 만약 청와대나 여권이 중대선거구제를 받아들일 경우 개헌은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한나라당 영남의원들의 반대가 극심하겠지요.”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전국에 생방송된 좌담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유독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영남에서 야당 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여당 의원이 나와서 지역을 대표해야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지지 않겠느냐. 그래서 선거구제를 바꾸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안상수 대표도 지난 1월 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선거구제 논의는 물론 비례대표제의 개혁도 필요하다” “영남과 호남에서도 여와 야의 의원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지역별 석패율(惜敗率)제를 언급했다.
문제는 한나라당 영남의원이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 익숙한 그들이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영남의원 중 다수가 친박 성향이거나 월박을 고민하는 친이들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권력구조 개편에 여야 의원 모두 공감합니다. 문제는 시기입니다. 친박이 개헌에 끝까지 반대하면 (친이는) 친박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 민주당의 개헌동력(動力)을 끌어내기 위해 뭔가를 줘야 합니다. 그게 선거구제 개편입니다. 아직까진 불가능한 얘기죠. 만약 영수회담이 이뤄지면, 그 과정에서 모종의 이야기가 오갈 것으로 압니다. 단순한 친이, 친박의 계파싸움에서 권력구조 개편안을 바라보지 마세요. 여러 소란이 있겠지만 선거구제 개편은 사회통합이란 명분에서도, 국회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게 MB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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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 |
“호남 31명의 국회의원 중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고 지방선거직 591명 중 비례를 제외하면 한나라당 소속은 단 한 명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영남의 경우는 호남과 반대 양상입니다. 지구상에 민주주의 하는 나라에서 이런 지역구도를 갖는 나라는 없어요. 상극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주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석패율 제도’를 최우선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친이계가 만지작만지작 하는 ‘선거구제 개편’ 카드는 화력이 센 인화물(引火物)이다. 영남의 친이, 친박 의원 모두가 반대하는데다 내년 총선에서 자칫 한나라당에 독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정치를 ‘혐오’하는 이 대통령이 ‘극약 처방’을 선호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제라는 제도보다 우리 정치 자체에 문제”
사실 개헌의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한다. 다만 시기와 방식, 누가 논의를 주도하느냐의 문제지 친박이든, 민주당이든 5년 단임의 현 대통령제가 불행을 잉태하고 있다는 데는 공감한다.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돼 부정부패가 반복되며 5년 단임제와 국회의원 임기가 엇박자가 나 불필요한 갈등이 잦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헌법학회 고문인 윤명선(尹明善) 경희대 명예교수는 “헌법상 대통령 단임제와 국회의원 선거와의 불일치 등 역기능이 많다. 국정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많은 학자와 국민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고 올해가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5년 단임을 골자로 하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29 선언으로 인해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함으로써 탄생했다. 이 헌법은 제정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정치권이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합의한 것은 현존하던 정치세력인 3김(金), 즉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씨 등이 돌아가며 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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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특임장관 등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61주년 제헌절 기념식 모습. |
물론 반론도 나온다. 2008년 12월 발간된 국회 법사위원회의 정책연구개발 용역보고서(한국 헌법의 개헌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자.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담겨 있다.
<대통령제라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리 정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 어느 정부 형태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현실에 적용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그런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수준에 달려 있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방승주(方勝柱) 교수는 “현행 대통령제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 제도의 소지가 있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집중돼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부형태를 도입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보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대통령제의 유지·보완·수정을 포함해 현재 학계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의 실체를 좀 더 들여다보자.
4년 중임제, 국무총리제 존폐 여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방향의 논의 중 하나로 4년 중임(연임)제를 고려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지난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4년 중임제를 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었다. 친박 의원 다수와 친이계 일부도 4년 중임제에 공감한다.
장기집권을 방지하면서 임기 동안 장기계획을 수립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과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의 역사적 사명을 다했으니 4년 중임제야말로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폐해는 없을까. 윤명선 명예교수는 “4년 연임의 첫 임기 중에는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국정운영을 하게 돼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고, 재선된 후에는 단임제의 경우와 같은 결함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얘기할 때, 국무총리제의 존폐와 부통령제 도입여부가 도마에 오른다. 이주영 의원은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국무총리제나 의원·장관 겸직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제를 부활시켜 4년 중임제의 순수한 미국식 대통령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국무총리제가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국무총리를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하는 것은 의원내각제적 요소”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역대 총리들이 실질적 권한이 없었다는 점도 작용한다.
박상철(朴相哲)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권력구조의 개헌쟁점과 민주주의 논쟁>이란 논문을 통해 “제헌헌법 제정 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나온 국무총리 제도가 권위주의적 대통령제하에서 ‘방탄(防彈)총리’, ‘대독(代讀)총리’로 불리는 현실은 역대 총리들이 실질적 권한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대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무총리제를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은, 국무총리제가 대통령제와 맞지 않다는 점과 대통령 유고(有故)시 국민의 ‘선출’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것의 문제점 때문이다.
고려대 임혁백(任爀伯) 교수는 <새로운 헌법 필요한가>라는 논문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와 달리 부통령은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이 점이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어 대통령과 실질적인 권력분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헌과정에서 부통령제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정·부통령 선출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우선 전체 후보자 중 제1득표자를 대통령으로, 2득표자를 부통령으로 하는 방법은 부적합해 보인다. 패배한 경쟁자를 부통령으로 둘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영호남 간 지역대결 양상을 없애기 위해 정·부통령 후보가 지역연합으로 이뤄진다면 지역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회자된다. 임 교수는 “대통령 후보로 하여금 자신의 출신지역이 아닌 타지역 출신 인사를 러닝메이트로 할 경우 지역 간 공존, 협력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주영 의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극복해야 할 대상인 지역주의를 전제로 제도를 입안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발상”이라는 반응이다.
親李가 미는 이원정부제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정부 형태인데 대통령은 단임제다. 안경률(安炅律)·권택기(權宅起) 의원 등 이재오 특임장관과 가까운 친이 의원이 선호하는 안이다.
김형오(金炯旿) 국회의장 시절인 지난 2009년 8월 31일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 헌법연구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이원정부제’에 따르면,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이며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대신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지위만 가진다.
반면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재적 과반수로 선출한다. 국회에서 선출한 국무총리(혹은 수상·다수당 또는 연립 시 연립다수당의 당수)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일상적인 국정 전반의 통할권과 내각구성권, 국군통수권 등을 모두 가진다. 또 국회(하원)의 내각 불신임권을 인정하되 미리 국무총리를 선출하는 ‘건설적 불신임제’를 채택, 내각제적 요소까지 갖췄다. 이원정부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을 분담하는 권력분점론 내지 권력분산론도 대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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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연 동국대 교수. |
이원정부제는 의원내각제 개헌에 비해, 헌법조문의 부분적 개정만으로 현행의 정부형태를 이원정부제로 바꾸기 쉽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홍익대 법과대학 장용근 교수는 “현행 헌법상의 정부형태 속에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성격을 가미한 이원정부제적 요소를 상당부분 가지고 있다”며 “직선 대통령제와 대통령의 비상적 권한(국가긴급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총리의 실질적 권한 범위를 명시하거나, 국회에서 총리 선출,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을 추가하면 이원정부제 정부형태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원정부제에 대한 역기능도 상당하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소속일 경우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므로 사실상 집행권을 행사하게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
또 정당배경을 달리하는 동거체제하에서 양 기관이 대립충돌하게 되면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윤명선 명예교수는 “사실 이원정부제에서 대통령은 국정조정자로서의 지위, 총리에게는 국정관리자로서의 지위가 부여돼 권한의 상당부분이 중첩돼 있다”고 했다.
양원제와 맞물린 선거구제 개편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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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8월 31일 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개헌안 최종보고서를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최종 보고서에는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의 개헌 복수안 등이 담겨 있다. |
양원제(兩院制)에 대해 김종인(金鍾仁) 전 헌법연구자문위원장은 “상·하원 양원이 서로 견제할 수 있고 여야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며 “하원은 소선거구제로, 상원은 대선거구제로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될 경우 특정 지역의 1당 독식을 막고, 현행 비례대표보다는 훨씬 민주적 대표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연구자문위는 하원의원 임기를 4년, 상원은 6년으로 하되, 하원은 직선으로 4년마다 전원 교체하고 상원은 2년마다 1/3씩 교체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지역주의라는 폐습을 떨치고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회 양원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정착, 발전된 나라치고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가 드물어요. 지역대표성을 지닌 하원(소선거구제)과 거대광역에서 선출된 상원(대선거구제)을 조합한 양원제가 바람직합니다. 양원제는 수의 정치, 밀어붙이기식 정치, 떼쓰기 정치를 막아주고 충분한 대화와 토론, 신중한 의안 심사로 볼썽사나운 대결국면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박관용(朴寬用) 전 의장 역시 “국회를 양원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원제에서는 경솔하고 위험한 결정이 너무 쉽게 법이란 옷으로 갈아입고 국가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민주성과 신중성 측면에서 양원제가 훨씬 낫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현행 의원수에 비춰 하원 220명, 상원 80명 선을 제안했다.
양원제에선 하원과 상원의 다수당이 불일치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양원제를 유지 중인 미국, 영국과 달리 일본 참의원은 중의원과 역할 구분도 분명하지 않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양원제 역시 여야 간에 효율적인 정책공조 체제를 구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본 중·참의원 양원제와 관련, 게이오대 국제경제학부 다케모리 순페이(竹森俊平) 교수는 지난 2월 초 방한해 “일본은 중·참의원 양원제도와 소선거구, 중선거구가 혼재돼 있다. 사실상 2년 만에 한 번씩 선거가 열리는데다 총리 교체가 수시로 이뤄지기 때문에 연속성 있는 정책을 집행하기 어려운 구도”라며 “국민이 직접 총리를 뽑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민의(民意)가 제대로 반영되는지도 불투명하고 글로벌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노출됐다”고 했다.
군주제 국가에 유리한 의원내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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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가비전을 위한 개헌토론회에 참석한 이재오 특임장관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부 형태 및 권력구조에 관한 헌법연구회’ 대표의원을 역임한 조일현(曺馹鉉) 전 의원은 “OECD 30개 국가 중 순수 대통령 중심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극소수”라며 “유엔회원국 중 의원내각제는 65개국, 대통령 중심제는 43개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내각제는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최구식(崔球植),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등 중진그룹뿐 아니라 국회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우윤근(禹潤根), 자유선진당 김창수(金昌洙) 의원 등이 선호하는 안이다. 안경률 의원 역시 “이원집정부적인 형태를 한 번 거쳐서 내각제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며 최적안은 내각제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도 “의원내각제는 국가 통합과 국가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내각제를 선호하는 이유로 “선진국이 내각제 확립에서 국가발전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을 발판으로 내각제가 확립돼 18세기 산업혁명을 성공시켰고, 일본 역시 1945년 종전 이후 내각제를 확립시켜 경제발전과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내각제에 대해 “형식적 역할을 맡는 대통령과 실질적 정책 결정권을 갖는 총리로 권한이 분리된다”며 “총리는 의회에 책임을 지고, 의회의 감독과 당내(黨內) 경쟁자의 견제를 받기 때문에 효과적인 권력분산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점과 한계도 안고 있다. 국회와 정부 간 경쟁 내지 긴장관계가 약화돼 대통령제 못지않게 권력남용이 가능하다.
반대로 정당 간 경쟁·긴장 관계가 심화돼 정치 불안이 가중될 위험이 높다. 태국에서 몇 년 동안 수상이 5번이나 바뀌는 불안정이 그 사례다.
또 의원내각제는 전통적으로 군주제 전통이 있는 나라에 맞는 제도다. 영국이나 일본의 예가 그렇다. 귀족제에 바탕을 둔 원로 정치적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경남대 북한대학원장인 윤대규(尹大奎) 교수는 “내각제로의 전환이 국민통합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견해 역시 설득력이 없다”며 “내각제하에서도 대통령제와 같이 실권자 또는 특정 정당이 지역 연고에 따라 특혜 정책을 펼 수 있어 지역 할거주의를 고착화할 소지가 강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