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여간 1만1172건 조사완료… 현대史 이면의 그늘 끄집어내
⊙ 위원들 반대의견에도 ‘문세광 사건’ 직권조사 결정… 2년 반 뒤 결국 조사중지
⊙ 고창사건, 사실과 다른 발표로 전면 재조사 실시
⊙ 일부 편향된 조사관들, 입맛대로 조사하고 자유게시판에선 위원회 공개 비난
⊙ “‘일부 위원들이 재심권고란 파생상품 만들어 내 민변 먹여 살리고 있다’는 풍문 돈다”
(申志鎬 의원)
⊙ 위원들 반대의견에도 ‘문세광 사건’ 직권조사 결정… 2년 반 뒤 결국 조사중지
⊙ 고창사건, 사실과 다른 발표로 전면 재조사 실시
⊙ 일부 편향된 조사관들, 입맛대로 조사하고 자유게시판에선 위원회 공개 비난
⊙ “‘일부 위원들이 재심권고란 파생상품 만들어 내 민변 먹여 살리고 있다’는 풍문 돈다”
(申志鎬 의원)
2007년 7월 10일 오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전원위원회 6번째 안건이 발표됐다. 주제는 ‘8ㆍ15 저격사건’, 1974년 8ㆍ15 광복절 기념 행사장에서 발생한 육영수(陸英修) 여사 저격사건에 대한 조작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을 왜 조사해야 하나. 이유가 뭔가.”
“육영수 여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지 않았다면, 조작의혹으로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이 죽은 사건을 조작이라고 조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정권이 좋고 권력이 좋고 정치가 좋아도, 자기 마누라를 쏴 죽이라고 하는 대통령은 없다. 잡동사니 루머와 같은 의혹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위원 대부분 사건 조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재적 위원 15명 중 한나라당 추천 3명을 제외한 12명이 여권(대통령, 열린우리당, 민주당, 대법원장)의 지명 또는 추천으로 임명된 위원이었지만, 이처럼 인터넷에서 떠도는 수준의 황당한 의혹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았다.
이날 제기된 의혹은 ▲저격범 문세광이 비표 없이 행사장 출입이 가능했다는 점 ▲한일(韓日) 수사당국의 수사결과 차이 ▲격발자, 탄착점, 탄두의 개수, 감정여부 등을 근거로 했다. 외부적인 요인은 사건 발생 전일인 8월 14일이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 수사종결’ 발표일이라 일본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던 시점이란 상황이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회의록에 따르면 이 사건은 토의의 흐름상 거의 기각(棄脚)으로 결정되는 듯했다. 그런데 김갑배(金甲培) 상임위원이 나서 발언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가 일거에 뒤집힌다. 김 상임위원은 “3소위원회에서 나온 결과들은 50년, 100년 후에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더 많은 확정적인 자료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서 역사적으로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 관해서는 조사관과 소위에서도 그렇게 논의를 할 것으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회의록은 김 상임위원의 이 말이 있자 곧바로 송기인(宋基寅) 위원장이 “원안대로 결정하겠다”며 10여 분 동안의 안건에 대한 회의를 종료했다고 적고 있다.
다음 날 진실화해위 홈페이지를 통해 ‘8ㆍ15 저격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가 알려졌다. 사실상 육영수 여사의 저격에 특정 세력의 음모가 있었다는 내용의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이 조사는 2년 반 넘게 ‘조사중’이었다. ‘특정 세력의 음모’는 애초부터 황당한 것이었기에 확인될 리가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결국 시간만 끌었다. 정권이 바뀌고 2010년 상당수 위원이 “황당한 주장”이란 이유로 ‘조사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날 위원 중 유일하게 조사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김갑배 상임위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변호사로, 열린우리당의 추천으로 진실화해위 출범 때 상임위원(차관급)에 임명됐다. 조사를 최종 결정한 송기인 위원장(장관급)은 노무현(盧武鉉) 전(前)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인물이다. 12:3이란 수적 열세에 선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반대의견을 개진했을 뿐이었다.
‘노무현式 과거사 정리’
진실화해위가 지난 6월 30일 공식 조사활동을 종료했다. 2005년 12월부터 1년간 접수한 1만860건의 사건에 대해 2006년 4월 25일 첫 조사를 시작한 후 4년2개월 만에 총 1만1172건(분리사건 274건, 직권조사 38건)의 사건을 조사 완료했다. 진실화해위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종합보고서 작성 등을 마무리한 뒤 연말에 해산할 예정이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일제강점기, 6ㆍ25전쟁 전후,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기까지 항일독립운동과 민간인집단희생 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목적으로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4년여 동안 좌ㆍ우파 간 이념 대립과 피해자 유족 및 국가기관과의 갈등으로 많은 정치적, 역사적 논란을 일으켜 왔다.
초기 위원회 구성부터 말이 많았다. 15명의 위원 중 8명이 여권(與圈) 추천(청와대, 열린우리당 각 4명)이다. 나머지 7명은 대법원장 3명, 한나라당 3명, 민주당 1명 추천으로 이뤄져 위원들의 이념 편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유기준(兪奇濬) 의원 등은 송기인 위원장에 대해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코드 인사 논란이 인다”며 자진사퇴를 요구했고, 일부 언론에선 코드인사 지적과 함께 “‘노무현식(式) 과거사 정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좌파단체는 한나라당이 추천한 3명의 위원이 모두 17대 총선 낙천자들이라며 ‘정치권 인사’를 비판했다. 또 “‘보수신문들’이 칼럼 등을 통해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한 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으며 이념공세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했다. 출범부터 화해가 아닌 불화(不和)로 시작한 것이다.
진실화해위 출범 하루 전인 2005년 11월 30일, 한나라당은 “진실화해위가 정권차원의 정략물이나 특정집단과 세력에 의해 정치보복의 수단이 돼선 안 되며, 사실이 왜곡되어 세월이 흐른 후에 과거사위 자체가 진실규명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건 끼워넣기’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5년 12월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너무 오래된 일을 갈등을 무릅쓰고 왜 다시 끄집어내려고 하느냐, 누구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들이 있고,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탓하려 하는 것만이 목적인 것처럼 자꾸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며 “진실을 찾는 과정이 새로운 갈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이 객관적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 효용성에 있어서 사회통합에 오히려 장애를 만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말만 따지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의 위원 임명부터 모든 과정은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는 그런 방향’의 연속이었다.
진실화해위의 4년7개월은 어떤 성과와 논란을 남겼을까. 그 결과에 대한 시각도 극명하게 갈렸다. 활동이 종료되자 좌파매체들은 “주요 권고사항이 사회에서 제대로 토의조차 되지 못했다” “신청기간이 짧아 30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실제 민간인 희생자의 10% 정도밖에 조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우파 인사들은 정반대의 시각을 보였다. 고영주(高永宙)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변호사)은 “일부 과거에 억울하게 당하신 분들을 신원(伸)한 점도 있겠지만, 그 시대의 안보 상황과 법 절차에 맞게 집행한 사건을 현재의 사법절차 기준으로 다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했다.
강경근(姜京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숭실대 법대 교수)은 “헌법상 모든 국민은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제27조)”며 “사법부 내부에 재심(再審) 절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아닌 독립기관이 과거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사건 처리 과정과 내부 이념 갈등 등 ‘진실화해위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다수의 진실화해위원과 관계자를 취재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좌파 성향의 위원은 인터뷰에 아예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우파 성향의 위원들은 관련법에 명시된 ‘비밀 준수 의무’를 근거로 내부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국정감사와 인터넷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위원회의 사례를 보면 일부 위원과 조사관들의 편법과 탈법 행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소위원회에서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론 내린 사건을 다시 조사해 위원회로 올리는 행위다. 소위 결정은 법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수정 없이 전원위원회에 회부해야 하는데, 결정을 번복한 후 다시 회부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특히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관들이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입맛에 맞는 결정’을 만들기 위해 예산 낭비를 했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다.
입맛대로 탈법 행위한 몇몇 조사관들
대표적인 사례가 ‘박순애 간첩조작 의혹사건’이다. 최초 소위원회에서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사항을 한 상임위원이 다시 조사를 하게 해 내부 논란을 일으켰다. 전원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을 소위원회가 그 내용을 임의로 수정해 다시 사전조사를 한 것이다. 해당 소위원회를 담당하는 상임위원이 교체되면서 4~5차례의 비슷한 사례가 적발됐다. 모두 손해배상 소송과 연관이 많은 조사3국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한 재심 관련 사건의 경우, 6건의 사건이 전원위원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소위원회가 슬쩍 6건의 사건을 추가로 ‘끼워넣은’ 사고도 발생했다. 추가된 6건 중 5건은 소위원회에서 상정할 자격이 없는 법원 확정 판결 사건이었다.
위원회 회의 후 수정 또는 보완된 결정문을 조사관들이 제대로 수정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사결정보고서 등 대다수의 정식 문서는 일단 조사관들이 초안을 작성한다. 해당 조사국과 소위원회를 거친 보고서는 전원위에서 최종 결정을 하게 되는데, 전원위에서 위원들이 수정한 내용을 조사관들이 그대로 반영하지 않거나 왜곡해서 공개하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한 진실화해위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당 조사관은 자신이 최초 조사한 대로 ‘조작’이란 결론을 내고 싶은데, 전원위에서 다른 결정이 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조사관은 당연히 전원위의 결정대로 수정해야 하는데, 전혀 수정 없이 슬쩍 올려버리죠. 그들의 지나친 행위에 대해 심지어 진보(좌파)적 시각을 가진 위원들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엔 진실화해위 내부망의 자유게시판에 한 직원이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정면 비판해 논란을 일으켰다. “권위주의 통치 시기 논란에 부쳐”란 제목의 글을 쓴 직원 임모씨는 “노태우 정권의 성격은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5공화국의 연장”이라며 “우리 위원회에서 권위주의 통치 시기문제를 다룸에 있어 정치학 교과서를 운위하거나, ‘법적 안정성’이란 논리 아닌 논리를 제기하는 데에는 그 망측스러움에 손이 오그라든다”고 주장했다.
발단은 한 달 전인 1월 위원회가 ‘부산 동의대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노태우(盧泰愚) 정권이 ‘권위주의 통치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정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좌파단체들의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자유게시판 통해 위원회 공개 비난한 직원
“정부 형태와 체제는 헌법을 기준으로 나뉜다. 1987년 개헌이 이뤄졌으므로 노태우 정권 이전까지를 권위주의 통치 시기로 봐야 한다”고 밝힌 정승윤(鄭勝允) 상임위원의 발언을 두고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수많은 열사가 노태우 정권 시기에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며 “무지하거나 최소한의 양심이 없는 말”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각하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군사쿠데타에 의해 집권한 5공 세력의 후신인 노태우 정권하에서 권위주의 통치행태가 지속됐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아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은 이미 5년 전 여야가 과거사법안을 합의할 때부터 예고된 사안이었다. ‘권위주의 통치’라는 모호한 표현 때문에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노태우 정부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 직선에 의해 선출된 노태우 정부는 제외해야 한다”고 맞섰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제2조 4항)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범위를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게시판 사건은 관련법 해석에 대한 논란이 겹치면서 ‘예정된 충돌’이 발생해 조사관이 위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사례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직원(조사관)에게 사실 조사에 대한 권한과 책무는 있지만, 법령 해석과 관련한 권한은 위원회에 부여돼 있다”며 “논란의 내용을 떠나 일단 방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위원들의 左右 편향 놓고 또다시 不和
조사관이 언론을 상대로 진실규명에 대한 예정사항을 자의적으로 설명한 것도 논란을 불러왔다. 지난 5월 재일교포 간첩 사건과 관련해 자신을 ‘진실화해위 관계자’라고 밝힌 사람이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일부 진실규명’ 방식을 추진 중”이라고 인터뷰한 내용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일부 위원들은 “아직 위원회의 결정도 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일부 진실규명’방식을 추진 중이라고 표현한 것은 심각한 월권행위”라며 “인터뷰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정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관뿐 아니라 위원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송기인 신부 다음으로 위원장에 임명된 안병욱(安炳旭) 가톨릭대 교수는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소 추진위원 공동대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기획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등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김준곤(金焌坤) 상임위원, 이기욱(李基旭) 위원, 최일숙(崔一淑) 위원, 김외숙(金外淑) 위원은 모두 민변 출신이다. 박상훈(朴尙勳) 위원은 ‘법원 내(內) 좌파성향 사조직’ 논란을 부르는 우리법연구회 회장이었고, 정재근 위원(법안 스님)은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노무현탄핵무효행동,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등에 참여한 불교 단체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명예대표다.
2008년 이명박(李明博) 정부 출범과 2009년 총선이 끝난 후, 임기가 끝난 위원이 대폭 물갈이되면서 이번엔 위원들의 보수성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진실화해위 출범 당시부터 상임위원으로 활동해 오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영조(李榮祚) 경희대 교수는 바른사회시민연대 초대 사무총장,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김용직(金容稙) 성신여대 교수는 ‘뉴라이트싱크넷’ 상임집행위원 출신이다. 이어 18대 총선 한나라당 예비후보자 출신의 정승윤 상임위원,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재교(李在敎) 위원, <시대정신> 편집위원 출신의 강규형(姜圭炯) 위원 등 우파 교수들이 가세하면서 “해체하고 싶은 기관에 성향이 맞지 않는 인물을 보냈다”는 등 좌파단체의 반발이 일었고, 우파단체들은 “오히려 균형 잡힌 위원회 구성이 이뤄졌다”며 맞섰다.
월권과 편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진실위원회의 내부 분란은 과거사 조사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많은 사건이 조사결정 발표 후 정치권과 사회단체로부터 ‘부실ㆍ왜곡조사’라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을 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창 11사단 사건’이다.
2008년 4월 진실화해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창 11사단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11사단장의 견벽청야(堅壁淸野ㆍ성에 들어가 지키며 적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기 위해 들판을 비운다는 뜻으로, 적의 양식 조달을 차단하는 전술) 작전에 따라 전북 고창지역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에 의해 인근 지역 피란민과 마을 주민 등 최소 273명이 희생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신지호(申志鎬) 의원이 희생자 후손과 참고인 57명의 증언을 확인한 결과 사건조사가 사실과 다르게 진행됐음이 밝혀졌다. 신 의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건 관련 희생자 105명 중 17명이 빨치산에 의해 희생됐거나, 누구에 의해 희생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고창 11사단 사건’ 전면 再조사
조사보고서에 희생자로 실린 하종영씨의 조카 하모씨는 “일본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와 집에 자동차가 있었는데, 빨치산들이 차를 한 번 타자고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앙갚음으로 백부(하종영)의 집을 습격해 총으로 쏴 죽였다”고 했다. 희생자 허연씨의 동생은 “당시 조사관에게 분명히 ‘빨치산에게 희생됐다’고 증언했는데, 어떻게 국군한테 죽었다고 기록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희생자 박양채, 오덕순, 배범장 등의 후손들은 모두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고 증언했다.
신 의원은 “당시 담당 조사관이 면사무소에 유족과 관련자 수백 명을 단체로 모아놓고 사망원인을 물어보는 단답식 조사가 이뤄졌다”며 “진실화해위는 2008년 상반기 진상보고서를 통해 11사단이 고창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수행한 공식기록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불구, 11사단을 가해자로, 당시 사단장(최덕신)을 양민학살의 책임자로 단정해 진실화해위의 친북성향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진실화해위의 조사에 참여한 조사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사 내용을 조작하거나 왜곡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유족들이 과거사위 발표 내용과 다른 말을 했다면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약 한 달 후인 5월 18일, 진실화해위는 전체회의에서 조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창 11사단 사건 진실규명 결정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재조사를 시작했다. 2008년 6월 사단법인 6ㆍ25남침피해유족회(회장 백한기)가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이의신청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현재 재조사까지 마치고 최종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재조사 결과는 당초의 ‘학살사건’이 상당 부분 잘못됐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창사건은 진실화해위가 최종 결정한 사건을 전면 재조사한 케이스다. 그 외에도 유럽 간첩단 사건, 조봉암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 등 여러 사건이 조작 또는 확대로 결정돼 법원의 재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실체 분명한 간첩사건도 ‘조작’으로 왜곡 보도케 해
‘유럽 간첩단 사건’은 1969년 영국 유학생 박노수씨와 공화당 국회의원 김규남씨 등 7명이 이한기(李漢基) 당시 서울대 법대학장의 제보로 중앙정보부에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 사형 또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사건 자체가 확대·과장됐다’란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상당수 좌파 매체는 ‘1967년 유럽 간첩단 사건은 조작’, ‘40년 전 유럽 간첩단 사건은 조작’ 등의 제목을 내세우며 앞다퉈 보도했다. MBC는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최근 중앙정보부가 영국 유학생들이 동베를린과 북한을 단순 방문한 것을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고, <한겨레>는 “유럽 간첩단 사건이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고문 등을 통해 확대·과장됐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진실화해위의 한 위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압적인 수사와 가혹한 사형 집행 등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지, 사건 자체가 조작이어서 국가가 사과하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다”며 “이 사건은 간첩 사건이 맞다”고 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위원은 “‘유럽 간첩단 사건’은 진실화해위의 문제점이 가장 압축(壓縮)적으로 나타난 사건”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위원회 결정을 보면 이 사건의 ‘제안이유’란 항목이 있습니다. ‘제안이유’는 의혹을 제기한 쪽의 주장이죠. 여기에 ‘조작 의혹’이란 단어가 있을 뿐입니다. 당시 정식 보도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특별한 목적’으로 언론에 흘렸습니다. 조작이란 단어를 포함해서. 이를 특정 언론사들이 확인도 않고 그대로 받아 보도한 것이죠. 더 황당한 것은 진실화해위가 이렇게 ‘진실도 사실도 아닌 보도’를 인터넷 홈페이지 ‘언론보도’ 코너에 버젓이 올려놓은 것입니다.
더 놀랄 일은 진실화해위가 자기들의 조사 결과와 상반되는 결과를 일부 언론이 보도한 데 대해서 아무런 해명자료를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진실화해위 내부의 일부 세력과 언론이 합작해서 실체가 있는 사건을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진보당 당수가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당한 ‘조봉암 사건’도 지난 7월 1일 대검찰청이 최근 ‘재심개시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9월 이 사건에 대해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대가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수사에 나서 재판을 통해 처형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이라며 “국가는 유족에게 사과하고 피해구제와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그의 장녀 조호정씨는 이 결정을 근거로 이듬해인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현재까지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검 공판송무부는 지난 4월 13일 대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진실화해위가 조봉암 사건에 대해 내린 재심권고 결정은 엄격한 증거 판단 없이 역사적, 주관적 가치판단에 근거해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무죄 확정 20건 중 16건이 민변 담당 사건
의견서에 따르면, 육군특무부대가 민간인 신분인 조봉암과 공범 양이섭을 수사한 것이 형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해 재심청구 사유가 된다는 데 대해 “양이섭은 육군 HID 첩보원, 즉 군인 신분이므로 양이섭의 간첩죄 및 이와 관련된 조봉암의 간첩죄는 특무부대의 수사대상”이라고 밝혔다.
의견서 내용이 뒤늦게 공개됨에 따라, 시대 상황에 대한 관련 기관들의 관점과 재심 제도에 대한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재심 개시 여부가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09년 9월 법원에서 재심 결정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91년 강기훈씨가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이 사건은 2007년 진실화해위가 국과수에 유서 필적을 재감정한 결과 유서의 필적이 강기훈이 아닌 김기설임을 확인해 재심을 권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결정했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즉시 항고했다. 검찰의 항고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검찰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다시금 유족을 폄훼하고 2차 대필까지 주장하고 있다”며 “더이상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과거 조작흔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졸렬한 검찰의 ‘유서대필’ 재심 훼방”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검찰은 (무죄를 인정할 증거에) 반박하는 논리 대신 추측과 막말을 앞세웠다”면서 “법적 쟁점에 대해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서 분명히 드러난 제 잘못은 한사코 부인하는 꼴이니 비겁하기 짝이 없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영조 위원장은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위원회가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른 견해와 주장이 나왔으니 새로운 조사의 출발점일 뿐인데, 그걸 근거로 과거를 뒤집어버렸다”며 사건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1990년대 운동권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금도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하면, 유가족이나 본인의 신청 등을 통해 법원에서 재심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현재 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한 59건 중 ‘아람회 사건’ ‘오송회 사건’ ‘이수근 간첩 조작의혹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등 20건이 무죄로 확정됐으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납북귀환어부 백남욱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 나머지는 재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무죄 확정된 20건 중 80%인 16건을 민변 소속 변호인이 맡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될 경우, 일부 사건은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진다. 진실화해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손해배상이 걸린 사건은 대부분 조사3국에 배정된다”면서 “그 이유에서인지 1국이나 2국에선 복잡하다며 꺼리는 사건을 3국에선 악착같이 조사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진짜 진실’의 심판받아야 할 과거사委
“재심의 경우 사실상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판결이 납니다. 국가를 상대로 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계속 줄 이을 거예요. 이런 손해배상 소송은 변호사 입장에서도 사건 하나로 돈이 꽤 되는 장사죠.”
신지호 의원은 “진실화해위의 상당수 위원과 직원이 민변 출신인 상황에서 재심 결정과 사법부의 재판을 둘러싸고 특정단체 출신 인물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며 “이를 두고 ‘일부 위원들이 재심권고라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내 민변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풍문이 회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진실화해위였지만, 4년여간 현대사 이면의 인권탄압과 사건 조작을 규명한 공적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67년 납북됐다 귀환한 후 간첩으로 몰려 7년 동안 옥살이를 한 납북어부 서창덕씨 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임을 밝혀냈고, 1981년 이태복(李泰馥)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지식인 25명을 불법구금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던 ‘학림(學林)사건’도 수사기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실상 ‘완전 처리’가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방대한 사건들을 목표한 조사활동 기간에 모두 마무리해 한국 현대사 정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상당수 조사 및 결정 과정에서 일부 위원과 조사관들이 이념적 편향 속에서 예단을 한 채 조사했던 것, 특정인을 공격할 목적으로 한쪽의 진실에 눈감았던 것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다는 설치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진실화해위의 한 위원의 말이다.
“진실도 없었고, 화해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출범 이전부터 시작된 조직 내외부의 갈등이 활동 종료까지 이어져 오면서 화해는커녕 분란만 더 일으킨 셈이 됐죠. 또 과거 재판과정에서 발생한 고문 등 일부 문제를 확대해 ‘증거 효력이 없다’며 조작 결론을 내버립니다. 범인의 실체는 분명히 존재하는 데 말이죠. 진실화해위 기준으로 모든 사건을 조사하면 1980년대 이전 사건은 명백한 살인사건도 무죄가 나올 겁니다.”
지난 6월 말 조사활동을 끝냄으로써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도 이제 ‘과거사’가 됐다. 이런 진실화해위의 역사도, 말도 안되는 표현이지만 ‘진짜 진실’의 심판을 받을 날이 왔다.⊙
“이 사건을 왜 조사해야 하나. 이유가 뭔가.”
“육영수 여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지 않았다면, 조작의혹으로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이 죽은 사건을 조작이라고 조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정권이 좋고 권력이 좋고 정치가 좋아도, 자기 마누라를 쏴 죽이라고 하는 대통령은 없다. 잡동사니 루머와 같은 의혹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위원 대부분 사건 조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재적 위원 15명 중 한나라당 추천 3명을 제외한 12명이 여권(대통령, 열린우리당, 민주당, 대법원장)의 지명 또는 추천으로 임명된 위원이었지만, 이처럼 인터넷에서 떠도는 수준의 황당한 의혹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았다.
이날 제기된 의혹은 ▲저격범 문세광이 비표 없이 행사장 출입이 가능했다는 점 ▲한일(韓日) 수사당국의 수사결과 차이 ▲격발자, 탄착점, 탄두의 개수, 감정여부 등을 근거로 했다. 외부적인 요인은 사건 발생 전일인 8월 14일이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 수사종결’ 발표일이라 일본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던 시점이란 상황이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회의록에 따르면 이 사건은 토의의 흐름상 거의 기각(棄脚)으로 결정되는 듯했다. 그런데 김갑배(金甲培) 상임위원이 나서 발언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가 일거에 뒤집힌다. 김 상임위원은 “3소위원회에서 나온 결과들은 50년, 100년 후에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더 많은 확정적인 자료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서 역사적으로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 관해서는 조사관과 소위에서도 그렇게 논의를 할 것으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회의록은 김 상임위원의 이 말이 있자 곧바로 송기인(宋基寅) 위원장이 “원안대로 결정하겠다”며 10여 분 동안의 안건에 대한 회의를 종료했다고 적고 있다.
다음 날 진실화해위 홈페이지를 통해 ‘8ㆍ15 저격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가 알려졌다. 사실상 육영수 여사의 저격에 특정 세력의 음모가 있었다는 내용의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이 조사는 2년 반 넘게 ‘조사중’이었다. ‘특정 세력의 음모’는 애초부터 황당한 것이었기에 확인될 리가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결국 시간만 끌었다. 정권이 바뀌고 2010년 상당수 위원이 “황당한 주장”이란 이유로 ‘조사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날 위원 중 유일하게 조사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김갑배 상임위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변호사로, 열린우리당의 추천으로 진실화해위 출범 때 상임위원(차관급)에 임명됐다. 조사를 최종 결정한 송기인 위원장(장관급)은 노무현(盧武鉉) 전(前)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인물이다. 12:3이란 수적 열세에 선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반대의견을 개진했을 뿐이었다.
‘노무현式 과거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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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역대 위원장. 왼쪽부터 현재 위원장인 이영조 경희대 교수, 2대 위원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초대 위원장 송기인 신부. |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일제강점기, 6ㆍ25전쟁 전후,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기까지 항일독립운동과 민간인집단희생 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목적으로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4년여 동안 좌ㆍ우파 간 이념 대립과 피해자 유족 및 국가기관과의 갈등으로 많은 정치적, 역사적 논란을 일으켜 왔다.
초기 위원회 구성부터 말이 많았다. 15명의 위원 중 8명이 여권(與圈) 추천(청와대, 열린우리당 각 4명)이다. 나머지 7명은 대법원장 3명, 한나라당 3명, 민주당 1명 추천으로 이뤄져 위원들의 이념 편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유기준(兪奇濬) 의원 등은 송기인 위원장에 대해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코드 인사 논란이 인다”며 자진사퇴를 요구했고, 일부 언론에선 코드인사 지적과 함께 “‘노무현식(式) 과거사 정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좌파단체는 한나라당이 추천한 3명의 위원이 모두 17대 총선 낙천자들이라며 ‘정치권 인사’를 비판했다. 또 “‘보수신문들’이 칼럼 등을 통해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한 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으며 이념공세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했다. 출범부터 화해가 아닌 불화(不和)로 시작한 것이다.
진실화해위 출범 하루 전인 2005년 11월 30일, 한나라당은 “진실화해위가 정권차원의 정략물이나 특정집단과 세력에 의해 정치보복의 수단이 돼선 안 되며, 사실이 왜곡되어 세월이 흐른 후에 과거사위 자체가 진실규명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건 끼워넣기’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5년 12월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너무 오래된 일을 갈등을 무릅쓰고 왜 다시 끄집어내려고 하느냐, 누구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들이 있고,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탓하려 하는 것만이 목적인 것처럼 자꾸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며 “진실을 찾는 과정이 새로운 갈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이 객관적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 효용성에 있어서 사회통합에 오히려 장애를 만들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말만 따지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의 위원 임명부터 모든 과정은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는 그런 방향’의 연속이었다.
진실화해위의 4년7개월은 어떤 성과와 논란을 남겼을까. 그 결과에 대한 시각도 극명하게 갈렸다. 활동이 종료되자 좌파매체들은 “주요 권고사항이 사회에서 제대로 토의조차 되지 못했다” “신청기간이 짧아 30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실제 민간인 희생자의 10% 정도밖에 조사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우파 인사들은 정반대의 시각을 보였다. 고영주(高永宙)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변호사)은 “일부 과거에 억울하게 당하신 분들을 신원(伸)한 점도 있겠지만, 그 시대의 안보 상황과 법 절차에 맞게 집행한 사건을 현재의 사법절차 기준으로 다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했다.
강경근(姜京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숭실대 법대 교수)은 “헌법상 모든 국민은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제27조)”며 “사법부 내부에 재심(再審) 절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아닌 독립기관이 과거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사건 처리 과정과 내부 이념 갈등 등 ‘진실화해위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다수의 진실화해위원과 관계자를 취재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좌파 성향의 위원은 인터뷰에 아예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우파 성향의 위원들은 관련법에 명시된 ‘비밀 준수 의무’를 근거로 내부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국정감사와 인터넷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위원회의 사례를 보면 일부 위원과 조사관들의 편법과 탈법 행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소위원회에서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론 내린 사건을 다시 조사해 위원회로 올리는 행위다. 소위 결정은 법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수정 없이 전원위원회에 회부해야 하는데, 결정을 번복한 후 다시 회부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특히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관들이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입맛에 맞는 결정’을 만들기 위해 예산 낭비를 했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다.
입맛대로 탈법 행위한 몇몇 조사관들
대표적인 사례가 ‘박순애 간첩조작 의혹사건’이다. 최초 소위원회에서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사항을 한 상임위원이 다시 조사를 하게 해 내부 논란을 일으켰다. 전원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을 소위원회가 그 내용을 임의로 수정해 다시 사전조사를 한 것이다. 해당 소위원회를 담당하는 상임위원이 교체되면서 4~5차례의 비슷한 사례가 적발됐다. 모두 손해배상 소송과 연관이 많은 조사3국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한 재심 관련 사건의 경우, 6건의 사건이 전원위원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소위원회가 슬쩍 6건의 사건을 추가로 ‘끼워넣은’ 사고도 발생했다. 추가된 6건 중 5건은 소위원회에서 상정할 자격이 없는 법원 확정 판결 사건이었다.
위원회 회의 후 수정 또는 보완된 결정문을 조사관들이 제대로 수정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사결정보고서 등 대다수의 정식 문서는 일단 조사관들이 초안을 작성한다. 해당 조사국과 소위원회를 거친 보고서는 전원위에서 최종 결정을 하게 되는데, 전원위에서 위원들이 수정한 내용을 조사관들이 그대로 반영하지 않거나 왜곡해서 공개하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한 진실화해위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당 조사관은 자신이 최초 조사한 대로 ‘조작’이란 결론을 내고 싶은데, 전원위에서 다른 결정이 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조사관은 당연히 전원위의 결정대로 수정해야 하는데, 전혀 수정 없이 슬쩍 올려버리죠. 그들의 지나친 행위에 대해 심지어 진보(좌파)적 시각을 가진 위원들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엔 진실화해위 내부망의 자유게시판에 한 직원이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정면 비판해 논란을 일으켰다. “권위주의 통치 시기 논란에 부쳐”란 제목의 글을 쓴 직원 임모씨는 “노태우 정권의 성격은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5공화국의 연장”이라며 “우리 위원회에서 권위주의 통치 시기문제를 다룸에 있어 정치학 교과서를 운위하거나, ‘법적 안정성’이란 논리 아닌 논리를 제기하는 데에는 그 망측스러움에 손이 오그라든다”고 주장했다.
발단은 한 달 전인 1월 위원회가 ‘부산 동의대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노태우(盧泰愚) 정권이 ‘권위주의 통치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정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좌파단체들의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자유게시판 통해 위원회 공개 비난한 직원
“정부 형태와 체제는 헌법을 기준으로 나뉜다. 1987년 개헌이 이뤄졌으므로 노태우 정권 이전까지를 권위주의 통치 시기로 봐야 한다”고 밝힌 정승윤(鄭勝允) 상임위원의 발언을 두고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수많은 열사가 노태우 정권 시기에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며 “무지하거나 최소한의 양심이 없는 말”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각하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군사쿠데타에 의해 집권한 5공 세력의 후신인 노태우 정권하에서 권위주의 통치행태가 지속됐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아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은 이미 5년 전 여야가 과거사법안을 합의할 때부터 예고된 사안이었다. ‘권위주의 통치’라는 모호한 표현 때문에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노태우 정부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 직선에 의해 선출된 노태우 정부는 제외해야 한다”고 맞섰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제2조 4항)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범위를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게시판 사건은 관련법 해석에 대한 논란이 겹치면서 ‘예정된 충돌’이 발생해 조사관이 위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사례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직원(조사관)에게 사실 조사에 대한 권한과 책무는 있지만, 법령 해석과 관련한 권한은 위원회에 부여돼 있다”며 “논란의 내용을 떠나 일단 방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위원들의 左右 편향 놓고 또다시 不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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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2월 1일 공식 업무를 시작한 진실화해위 사무실 모습. 진실화해위는 4년여 동안 총 1만1172건의 사건을 조사 완료했다. |
조사관뿐 아니라 위원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송기인 신부 다음으로 위원장에 임명된 안병욱(安炳旭) 가톨릭대 교수는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소 추진위원 공동대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기획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등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김준곤(金焌坤) 상임위원, 이기욱(李基旭) 위원, 최일숙(崔一淑) 위원, 김외숙(金外淑) 위원은 모두 민변 출신이다. 박상훈(朴尙勳) 위원은 ‘법원 내(內) 좌파성향 사조직’ 논란을 부르는 우리법연구회 회장이었고, 정재근 위원(법안 스님)은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노무현탄핵무효행동,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등에 참여한 불교 단체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명예대표다.
2008년 이명박(李明博) 정부 출범과 2009년 총선이 끝난 후, 임기가 끝난 위원이 대폭 물갈이되면서 이번엔 위원들의 보수성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진실화해위 출범 당시부터 상임위원으로 활동해 오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영조(李榮祚) 경희대 교수는 바른사회시민연대 초대 사무총장,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김용직(金容稙) 성신여대 교수는 ‘뉴라이트싱크넷’ 상임집행위원 출신이다. 이어 18대 총선 한나라당 예비후보자 출신의 정승윤 상임위원,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재교(李在敎) 위원, <시대정신> 편집위원 출신의 강규형(姜圭炯) 위원 등 우파 교수들이 가세하면서 “해체하고 싶은 기관에 성향이 맞지 않는 인물을 보냈다”는 등 좌파단체의 반발이 일었고, 우파단체들은 “오히려 균형 잡힌 위원회 구성이 이뤄졌다”며 맞섰다.
월권과 편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진실위원회의 내부 분란은 과거사 조사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많은 사건이 조사결정 발표 후 정치권과 사회단체로부터 ‘부실ㆍ왜곡조사’라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을 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창 11사단 사건’이다.
2008년 4월 진실화해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창 11사단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11사단장의 견벽청야(堅壁淸野ㆍ성에 들어가 지키며 적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기 위해 들판을 비운다는 뜻으로, 적의 양식 조달을 차단하는 전술) 작전에 따라 전북 고창지역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에 의해 인근 지역 피란민과 마을 주민 등 최소 273명이 희생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신지호(申志鎬) 의원이 희생자 후손과 참고인 57명의 증언을 확인한 결과 사건조사가 사실과 다르게 진행됐음이 밝혀졌다. 신 의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건 관련 희생자 105명 중 17명이 빨치산에 의해 희생됐거나, 누구에 의해 희생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고창 11사단 사건’ 전면 再조사
조사보고서에 희생자로 실린 하종영씨의 조카 하모씨는 “일본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와 집에 자동차가 있었는데, 빨치산들이 차를 한 번 타자고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앙갚음으로 백부(하종영)의 집을 습격해 총으로 쏴 죽였다”고 했다. 희생자 허연씨의 동생은 “당시 조사관에게 분명히 ‘빨치산에게 희생됐다’고 증언했는데, 어떻게 국군한테 죽었다고 기록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희생자 박양채, 오덕순, 배범장 등의 후손들은 모두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고 증언했다.
신 의원은 “당시 담당 조사관이 면사무소에 유족과 관련자 수백 명을 단체로 모아놓고 사망원인을 물어보는 단답식 조사가 이뤄졌다”며 “진실화해위는 2008년 상반기 진상보고서를 통해 11사단이 고창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수행한 공식기록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불구, 11사단을 가해자로, 당시 사단장(최덕신)을 양민학살의 책임자로 단정해 진실화해위의 친북성향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진실화해위의 조사에 참여한 조사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사 내용을 조작하거나 왜곡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유족들이 과거사위 발표 내용과 다른 말을 했다면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약 한 달 후인 5월 18일, 진실화해위는 전체회의에서 조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창 11사단 사건 진실규명 결정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재조사를 시작했다. 2008년 6월 사단법인 6ㆍ25남침피해유족회(회장 백한기)가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이의신청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현재 재조사까지 마치고 최종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재조사 결과는 당초의 ‘학살사건’이 상당 부분 잘못됐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창사건은 진실화해위가 최종 결정한 사건을 전면 재조사한 케이스다. 그 외에도 유럽 간첩단 사건, 조봉암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 등 여러 사건이 조작 또는 확대로 결정돼 법원의 재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실체 분명한 간첩사건도 ‘조작’으로 왜곡 보도케 해
‘유럽 간첩단 사건’은 1969년 영국 유학생 박노수씨와 공화당 국회의원 김규남씨 등 7명이 이한기(李漢基) 당시 서울대 법대학장의 제보로 중앙정보부에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 사형 또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사건 자체가 확대·과장됐다’란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상당수 좌파 매체는 ‘1967년 유럽 간첩단 사건은 조작’, ‘40년 전 유럽 간첩단 사건은 조작’ 등의 제목을 내세우며 앞다퉈 보도했다. MBC는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최근 중앙정보부가 영국 유학생들이 동베를린과 북한을 단순 방문한 것을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고, <한겨레>는 “유럽 간첩단 사건이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고문 등을 통해 확대·과장됐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진실화해위의 한 위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압적인 수사와 가혹한 사형 집행 등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지, 사건 자체가 조작이어서 국가가 사과하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다”며 “이 사건은 간첩 사건이 맞다”고 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위원은 “‘유럽 간첩단 사건’은 진실화해위의 문제점이 가장 압축(壓縮)적으로 나타난 사건”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위원회 결정을 보면 이 사건의 ‘제안이유’란 항목이 있습니다. ‘제안이유’는 의혹을 제기한 쪽의 주장이죠. 여기에 ‘조작 의혹’이란 단어가 있을 뿐입니다. 당시 정식 보도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특별한 목적’으로 언론에 흘렸습니다. 조작이란 단어를 포함해서. 이를 특정 언론사들이 확인도 않고 그대로 받아 보도한 것이죠. 더 황당한 것은 진실화해위가 이렇게 ‘진실도 사실도 아닌 보도’를 인터넷 홈페이지 ‘언론보도’ 코너에 버젓이 올려놓은 것입니다.
더 놀랄 일은 진실화해위가 자기들의 조사 결과와 상반되는 결과를 일부 언론이 보도한 데 대해서 아무런 해명자료를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진실화해위 내부의 일부 세력과 언론이 합작해서 실체가 있는 사건을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진보당 당수가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당한 ‘조봉암 사건’도 지난 7월 1일 대검찰청이 최근 ‘재심개시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9월 이 사건에 대해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대가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수사에 나서 재판을 통해 처형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이라며 “국가는 유족에게 사과하고 피해구제와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그의 장녀 조호정씨는 이 결정을 근거로 이듬해인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현재까지 대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검 공판송무부는 지난 4월 13일 대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진실화해위가 조봉암 사건에 대해 내린 재심권고 결정은 엄격한 증거 판단 없이 역사적, 주관적 가치판단에 근거해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무죄 확정 20건 중 16건이 민변 담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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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결국 사형당한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재판정에 나와 앉은 모습(왼쪽). |
의견서 내용이 뒤늦게 공개됨에 따라, 시대 상황에 대한 관련 기관들의 관점과 재심 제도에 대한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재심 개시 여부가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09년 9월 법원에서 재심 결정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91년 강기훈씨가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이 사건은 2007년 진실화해위가 국과수에 유서 필적을 재감정한 결과 유서의 필적이 강기훈이 아닌 김기설임을 확인해 재심을 권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결정했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즉시 항고했다. 검찰의 항고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검찰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다시금 유족을 폄훼하고 2차 대필까지 주장하고 있다”며 “더이상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과거 조작흔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졸렬한 검찰의 ‘유서대필’ 재심 훼방”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검찰은 (무죄를 인정할 증거에) 반박하는 논리 대신 추측과 막말을 앞세웠다”면서 “법적 쟁점에 대해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서 분명히 드러난 제 잘못은 한사코 부인하는 꼴이니 비겁하기 짝이 없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영조 위원장은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위원회가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른 견해와 주장이 나왔으니 새로운 조사의 출발점일 뿐인데, 그걸 근거로 과거를 뒤집어버렸다”며 사건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1990년대 운동권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금도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하면, 유가족이나 본인의 신청 등을 통해 법원에서 재심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현재 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한 59건 중 ‘아람회 사건’ ‘오송회 사건’ ‘이수근 간첩 조작의혹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등 20건이 무죄로 확정됐으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납북귀환어부 백남욱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 나머지는 재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무죄 확정된 20건 중 80%인 16건을 민변 소속 변호인이 맡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될 경우, 일부 사건은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진다. 진실화해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손해배상이 걸린 사건은 대부분 조사3국에 배정된다”면서 “그 이유에서인지 1국이나 2국에선 복잡하다며 꺼리는 사건을 3국에선 악착같이 조사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진짜 진실’의 심판받아야 할 과거사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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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유서 대필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3차 공판 모습. 강씨는 2007년 진실화해위에 의해 당시 판결을 뒤집었다. |
신지호 의원은 “진실화해위의 상당수 위원과 직원이 민변 출신인 상황에서 재심 결정과 사법부의 재판을 둘러싸고 특정단체 출신 인물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며 “이를 두고 ‘일부 위원들이 재심권고라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내 민변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풍문이 회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진실화해위였지만, 4년여간 현대사 이면의 인권탄압과 사건 조작을 규명한 공적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67년 납북됐다 귀환한 후 간첩으로 몰려 7년 동안 옥살이를 한 납북어부 서창덕씨 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임을 밝혀냈고, 1981년 이태복(李泰馥)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지식인 25명을 불법구금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던 ‘학림(學林)사건’도 수사기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실상 ‘완전 처리’가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방대한 사건들을 목표한 조사활동 기간에 모두 마무리해 한국 현대사 정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상당수 조사 및 결정 과정에서 일부 위원과 조사관들이 이념적 편향 속에서 예단을 한 채 조사했던 것, 특정인을 공격할 목적으로 한쪽의 진실에 눈감았던 것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다는 설치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진실화해위의 한 위원의 말이다.
“진실도 없었고, 화해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출범 이전부터 시작된 조직 내외부의 갈등이 활동 종료까지 이어져 오면서 화해는커녕 분란만 더 일으킨 셈이 됐죠. 또 과거 재판과정에서 발생한 고문 등 일부 문제를 확대해 ‘증거 효력이 없다’며 조작 결론을 내버립니다. 범인의 실체는 분명히 존재하는 데 말이죠. 진실화해위 기준으로 모든 사건을 조사하면 1980년대 이전 사건은 명백한 살인사건도 무죄가 나올 겁니다.”
지난 6월 말 조사활동을 끝냄으로써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도 이제 ‘과거사’가 됐다. 이런 진실화해위의 역사도, 말도 안되는 표현이지만 ‘진짜 진실’의 심판을 받을 날이 왔다.⊙
[인터뷰] 李榮祚 진실화해위원장
이영조(李榮祚) 위원장은 2005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출범부터 지금까지 활동해 온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출범 초기 ‘노무현 코드’의 위원들로 가득한 곳에서 자신의 신념과 역사관을 끝까지 지켜냈다고 평가받는다. 진실화해위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관련된 질문을 하려 했지만, 그는 “현재 합법적으로 밝힐 수 있는 부분만 말할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안병욱 전 위원장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조선일보>는 인터뷰 내용을 왜곡하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란 답변만 받았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공식활동을 종료한 진실화해위의 4년여간의 성과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 “1만1000여 건의 사건 모두를 법정 시한 내에 성공적으로 처리한 게 가장 큰 성과다. 무엇보다 6ㆍ25전쟁 때 발생한 크고 작은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정부기관이 처음으로 그 실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동시에 그동안 미처 확인되지 않은 인민군, 빨치산, 지방 좌익 등 적대세력에 의한 잔혹 행위도 함께 밝혀냈다.” ―많은 언론이 “한계가 존재했다”고 평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진실화해위의 한계는 무엇이었나. “법으로 부여된 책무를 모두 성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계라고 할 것은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좌파단체로부터 ‘보수성향 위원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어떻게 대응했나. “사실 업무 자체로 평가하기보다는 한나라당 추천의 보수 인사라는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위원회 활동에 있어선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증거에 입각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다.” ―위원회 결정 중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던 사건이 있었나. “소수의 사건이 있었지만, 그러한 사건들도 당시 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었고 위원회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것도 위원장으로서 그런 사건들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