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추적] 군수 당선 못 시킨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달성군에 무슨 일이 : 월간조선

6·2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4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 있는 한 도로에는 ‘군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한나라당 대구시 달성군 당원협의회와 한나라당 달성군수 후보로 나섰던 이석원(李石原)씨 이름이었다. 이 플래카드는 이틀 만에 돌연 사라졌다.

선거에 패한 후보들은 보통 ‘보내 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적는다. 그런데 이 플래카드는 ‘사죄(謝罪)’라는 이례적인 표현을 썼다. 죄(罪)를 지었고, 그것을 뉘우친다는 얘기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일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후보 측이 이 플래카드의 제작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후보 본인이 거리에 내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니 말이다. 이 후보 측은 즉각 달성군 당협 측에 철거를 요청했다. 항의의 요지는 “후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당협 측은 이 후보 측의 항의를 받아들여 이틀 만에 플래카드를 뗐다.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의 출신 지역구(대구 달성)에서 6·2 지방선거 후 벌어진 광경은 선거 결과(한나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 패배)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박근혜에 대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도 했지만…

한나라당 대구 달성군 당협위원회가 내건 현수막. 군민들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4일 플래카드가 걸린 바로 건너편. ‘선거의 여왕’이 공천한 후보를 물리치고 당당히 군수가 된 무소속 김문오(金文澳) 후보의 선거사무소 해단식이 열리고 있었다. 약 99㎡(30평)인 사무실 안은 뜨거웠다. 1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의 건배 구호, 축하의 악수, 선거 후일담으로 뒤엉킨 사무실 분위기는 30도를 웃도는 이날 날씨보다 훨씬 후끈 달아올랐다. 사무실이 좁아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민선 1기 달성군수를 역임한 양시영(梁始榮)씨가 나섰다. 양씨는 김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뛰었다.

“남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했죠. 우린 10%의 희망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박근혜 대표에게 대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도 했지만, 밑바닥 민심은 달랐습니다.”

일방적인 자축(自祝) 연설이 아니었다. 승리를 만끽하는 자리였지만 그들의 말에는 아직도 박근혜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묻어났다. 선거 중 ‘그렇다고 박근혜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경고를 어지간히 들었던 모양이다.

어찌됐든 달성군 선거 결과는 ‘전국적인 충격’이었다. 영남이 으레 그렇지만 달성군이야말로 한나라당 텃밭 중의 텃밭 아닌가. 남의 지역구에 가서도 후보를 당선시키는 ‘괴력(怪力)의 정치인’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군수를 무소속에 내줬다는 사실을 믿으란 말인가. 실제 대구에서 만난 시민(달성군 주민은 아니지만)들 일부는 오히려 기자에게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대구시 달성군은 15년 전까지만 해도 경북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 대구시가 광역시로 되면서 1995년 대구에 편입됐다. 3개 읍과 6개 면으로 구성된 달성군의 인구는 2010년 4월 현재 17만9000여 명이다. 행정구역상 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농사 짓는 사람도 많은 도농(都農)복합지역이다. 노인인구도 많고 입소문도 빠른 농촌의 특성을 상당부분 그대로 갖고 있다.

재출마 준비하던 현직 군수, 돌연 불출마 선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에 있는 달성군청, 달성군의회 전경.

1995년 첫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 이곳에선 4명의 군수가 나왔다. 민선 1기에는 무소속 양시영, 민선 2·3기는 한나라당 소속 박경호(朴京鎬), 4기는 한나라당 소속인 현 이종진(李鍾振) 군수가 달성군의 살림을 맡았다. 민선 1기는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 입문 전이다. 그러니 박 전 대표는 박경호씨를 두 번에 걸쳐 군수 후보로 공천해 당선시켰고, 3번째인 2006년에는 다른 사람으로 바꾼 것이다.

민선 5기인 이번 6·2 선거는 또다시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현 이종진 군수의 재출마가 유력했고, 이 군수에 대한 군민의 지지도도 제법 높았기 때문이다. 이종진 군수가 재공천만 받는다면 감히 도전할 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군수도 실제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관내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명함 공세를 벌였다는 것이다. 재출마를 계획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주변에서 이 군수의 재출마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랬던 이 군수가 지난 2월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측근들조차 깜짝 놀라게 한 전격 발표였다. 경로당, 고아원 등을 도는 계획까지 세워 놓았는데 불출마 선언으로 한꺼번에 일정이 뒤엉켜 버렸다.

이 군수는 당시 “서기(9급 공무원)를 시작으로 군수까지 42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고, 모름지기 공직자는 물러설 때를 잘 알아야 한다. 젊고 유능한 인사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시 얘기를 듣기 위해 달성군 공무원들을 만나 봤다.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며 상황 설명을 요청했다. 한 간부의 얘기다.

“이 군수님은 원래 선거에 나오려고 했죠. 그전에 명함도 나눠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잘하던 이 군수가 왜 나오지 않나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이 군수님이 박경호 전 군수에게 지난해 저녁을 두 번이나 같이 하자고 했는데 (박 전 군수가) 시간 없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 군수님은 (날) 공천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박경호 전 군수가 공천 좌지우지’는 비밀도 아냐

달성군의 실질적인 공천권자는 박 전 대표가 아니라 박경호 전 군수였는데 그가 이종진 현 군수를 피하니 이 군수로선 재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박경호 전 군수는 한나라당 당협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군청을 나와 달성군에서 고위 간부로 근무했던 사람을 만났다.

“(이 군수가)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군수 자신은 재선에 나서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죠. 그런데 갑자기 나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온다면 원래 아무도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이 군수가 안 나오면 부군수라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었죠. 일각에서는 이 군수가 박 전 군수에게 말 못할 약점을 잡힌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달성군 사정을 잘 안다는 한 전직 국회의원의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이다.

“원래 박경호 전 군수는 자신이 나오려고 했는데 도덕성 같은 전력 때문에 꿈을 접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궁극적으로는 2012년 박근혜 대표가 대선 출마를 위해 총선에 나서지 않으면 자신이 나서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박 전 군수가 박 대표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공천을 다 하고 다녔다는 얘기는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출마하려는 사람은 박근혜에 줄서는 것이 아니라 박경호에 줄서야 한다’ 얘기도 공공연히 돌았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박경호 전 군수는 1998년과 2002년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민선 2·3기 두 차례 달성군수를 지냈다. 그는 원래 개인사업을 했다. 첫 번째 군수 임기 초반 그는 월급도 받지 않는 등 성실하게 일해 군민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박 군수 주변에 각종 추문(醜聞)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좁은 바닥에 비밀이 얼마나 있겠는가.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군민들로부터도 박 군수의 인기는 식어 갔다.

박 군수가 두 번째 임기를 거치는 동안에 문제가 터졌다. 박 군수가 지난 2003년 4월 달성군 내 개발제한구역 해제 정보를 사전에 알고, 동생 등에게 달성군 토지를 매입하도록 한 혐의(부패방지법 위반)로 기소된 것이다. 이에 법원은 박 군수에게 벌금 3000만원에 추징금 3억4840만원을 선고했다.

박근혜 측 “시스템에 의한 공천을 실천한 것”

이 때문에 박 군수는 2006년 재선을 끝으로 군수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 전 대표는 박 전 군수를 달성군 당협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임명했다. 박 전 대표가 중앙정치에 바빠 지역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이 지역에서 박 전 군수의 힘은 날로 커져 갔다는 것이 당 간부들의 설명이다. 박 전 군수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적어도 박 전 군수 주변에선 대다수가 그렇게 알고 있다. 달성군 화원읍에서 만난 한 전직 한나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천은 사실상 박 전 군수가 다 했다고 보면 됩니다. 박근혜 대표가 전권을 위임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후보자는 박 전 군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되고, 또 그런 중에 하나둘씩 곪아 가면서 달성군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거예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한나라당 이정현(李貞鉉) 의원은 “박 전 군수가 공천을 좌지우지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 의원의 말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에도 공천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시발점은 공천의 투명성 확보죠. 당 대표가 되자마자 17대 총선 때 지역구 비례대표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전권을 맡겼습니다. 자신의 눈치를 볼 사람은 넣지 않고, 중간보고를 절대 받지 않았죠.

이번에도 달성군 당협위에 전적으로 맡겼던 것입니다. 상향식·투명 공천을 중시하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원들의 의사를 존중했습니다. 결정된 그 다음부터는 당협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 다음은 지역 주민들이 선택한 거죠.”

박 전 군수에 대해서는 당뿐만 아니라 군청 업무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전직 달성군 간부의 얘기다.

“군청 업무도 사실상 박 전 군수가 좌지우지했습니다. 현직 군수가 박 전 군수의 천거로 군수가 됐으니 영향력이 당연히 미쳤겠죠.”

달성군 사정에 정통한 다른 인사의 말이다.

“우리는 보통 박 전 군수를 ‘왕군수’라고 불렀습니다. 박 전 군수가 사실상 수렴청정을 한 거죠. 공무원들이 현 군수보다 전 군수의 눈치를 더 보고, 심지어 달성군 고위 간부는 박 전 군수한테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종진 현 군수와 박경호 전 군수 사이는 왜 틀어졌을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 다 아직은 말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 정치인의 말이다.

“처음에는 이 군수가 박 전 군수의 말을 듣다가 나중에는 소신껏 일 처리를 하는 바람에 잡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랬으니까 박 전 군수가 깨달은(이 군수를 재공천해선 안 되겠다는) 게 있었겠지요.”

2006년에도 문제였는데, 고쳐지지 않아 주민 불만 폭발

그렇다고 달성군이 어딘데 한나라당 후보를, 그것도 아무리 형식적이라 해도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한 사람인데 군민들이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었을까.

이번 선거에서 군수에 당선된 김문오씨 측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경호 전 군수 때문에 김 후보가 당선된 것을 인정합니다. 우린 처음부터 선거 전략도 안티 박경호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내려와서 총력 유세에 나섰기 때문에 표 차이가 그나마 이만큼으로 좁혀진 거지 아니면 거의 30% 이상 차이가 났을 겁니다.”

선거에서 김문오 후보는 3만1378표(47.22%)를 얻어 한나라당 후보(2만9351표·44.17%)를 3%포인트 차로 눌렀다. 두 명을 뽑는 시의원 선거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2006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박성태 후보가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김문오 후보를 찍었다는 화원읍의 한 주민은 “김 후보를 찍으면서도 ‘그래도 이 후보가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지역 정보기관 관계자 역시 “우리 기관조차도 한나라당 후보가 힘들지만 결국에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으로 봤다. 이 정도로 민심이 돌아섰는지는 솔직히 말해 몰랐다”고 말했다.

한 전직 달성군 간부의 얘기다.

“정말 군민들이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일어난 겁니다. 박 전 군수가 공천과 달성군의 업무를 모두 다 자기 멋대로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아무리 한나라당이고, 박근혜 전 대표라고 해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불만이 폭발한 거죠.

사실 2006년 선거 때도 공천 잡음이 있었고, 박경호 전 군수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많았지만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에도 전혀 바뀐 게 없는 거예요. (군민들은 박 전 군수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공천을 주고, 자신에게 대들었거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사람은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지경이 된 겁니다.”

김문오 당선자, 불출마 전제로 지난 5월 딸 결혼식까지 잡아

당선이 확정되자 축하받는 무소속 김문오 달성군수 당선자(목에 꽃다발 건 이).

원래 김문오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이후 출마에 대한 미련을 접고 각종 관련 서류도 버렸다. 김 당선자의 얘기다.

“저는 원래 동창인 정장식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이 경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그 부탁을 받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종진 현 군수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또다시 박경호 전 군수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후보가 공천을 받고 선거에 나오게 됐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에 출마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김 당선자는 실제 출마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딸의 결혼식을 5월 23일로 잡아 두기도 했다. 엉겁결에 출마하는 바람에 김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딸의 결혼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 당선자의 얘기다.

“평소 이렇게 달성을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 달성군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하도 출마를 권하기에 4월 초에 1차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상대후보와 단일화를 가정한 저의 지지율이 50대 50으로 거의 동일하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한나라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후광을 입는 곳이니까 50 대 50의 지지율이라도 저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죠. 다른 사람들은 출마를 접으면 안 된다고 강력히 말했습니다.

4년 전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나머지 무소속 후보들의 표를 다 합친 것과의 차이를 보면 한나라당 후보가 780표 정도 앞서 나갔던 것과 비교하면 그때보다 여건이 더 좋다는 판단도 들었고, 달성군을 더는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김 당선자는 박경호 전 군수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중심이 된 무소속 단일화 모임의 ‘추대’ 형식으로 출마를 하게 된 것이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당선자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했다. 한나라당 공천자를 20%포인트 이상 앞서갔다. 한나라당에 비상이 걸렸고, 지방선거 지원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던 박근혜 전 대표가 현지에 내려와 총력유세를 펼쳤다.

지역에서 선거운동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정말 자기 선거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선거 막바지에는 30분 단위로 시간을 나눠서 경로당을 다 돌았다고 합니다. 언론에는 서울에 있으면 선거 지원유세 같은 말이 나와서 지역구에 왔다고 했다지만 그건 대외 발표용이고 사실은 그만큼 다급했던 거죠.”

김 당선자 측도 그때부터 더 바삐 움직였다. 김 당선자 측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양시영 전 군수의 말이다.

“박 전 대표 유세가 시작되니 역시나 맹추격해 왔습니다. 20%포인트를 넘던 표차이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결국 부동층이 승부를 가를 거라고 봤는데, 저희는 ‘이번만은 바꾸자’ ‘달성의 자존심을 찾자’로 더욱 ‘안티 박경호’를 부추기는 전략으로 바꿨습니다. 그게 먹혀든 거죠. 박 전 대표 쪽은 바닥 민심을 몰랐던 것입니다.”

박 전 대표를 외면하는 주민도 나타날 정도로 싸늘

지난 2009년 4월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에서 열린 참꽃축제에 참석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개막식 도중 미소를 지으며 박수 치고 있다.

박 전 대표와 함께 달성 지원유세에 나섰던 한 전직 의원의 경험담이다.

“정말 어렵더군요. 주민들에게 ‘선거에서 지면 박 대표님이 발목 잡히는 거 아니겠나’고 말씀을 드리니까 ‘박근혜 대통령 하는데 군수 하나가 뭐 대수냐’고 말하더라고요.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야겠다는 게 있더라고요.”

지난 6월 5일 토요일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현풍시장에는 선거가 끝난 뒤 처음 장이 열렸다. 5일마다 장이 서는 현풍시장에는 이곳에서 당선된 시의원 등이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난 지 사흘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상인들과 시장을 찾은 달성군민들의 표정에는 아직도 선거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현풍시장에서 잡곡을 파는 상인 강모(57)씨는 이번에는 김문오 당선자를 찍었다며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박 대표가 시장에서 악수하고 다니기에 난 그래도 악수는 했지만, 떠나간 민심을 확실히 느끼겠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박 대표가 한번 시장에 뜨면 서로 보려고 난리가 났는데 이번엔 아니었습니다. 저 멀리서도 하던 일 제쳐놓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악수 한 번 더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싸늘하게 외면합디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박 대표가 손을 내밀어도 빼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데요.”

달성군 현풍면에서 만난 주민 황모씨도 박 전 대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꼴 보기 싫어 김문오 군수를 찍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꼴불견이다. 옆에서 가방 들어 주면서 뭐 있는 척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정말로 능력도 안되는 사람들이 옆에 붙어서 활보하며 다닌다. 아예 일부 주민들은 그 사람들 들으라고 뒤에서 대놓고 욕을 한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박경호 전 군수의 문제가 다일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박 전 군수 문제가 100%는 아니라는 얘기를 달성 지역 한 공무원한테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이다.

“시장 상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앙정치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인데 한 달에 한 번은 내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박 전 대표는 그러질 못했죠. ‘니 뭐하러 내려오노. 니는 선거가 되면 잠시 내려오고. 은자 내려오지 마라’고 했다는 시장상인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내려오더라도 주민과 어울려야 하는데 박 대표는 그게 안됐죠. 시장에 오면 상인들과 국수도 같이 먹고, 된장도 같이 먹고, 고춧가루도 이빨 사이에 끼여 보고 해야 하는데 박 대표는 그런 스킨십이 없어요. 게다가 황제경호·과잉경호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게 이번 선거에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박 전 대표, 평소 ‘수석부위원장님 중심으로 알아서 하세요’라 말해

그렇다면 박 전 대표는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그대로 방치했을까? 아니면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을까?

달성군에서 만난 사람 상당수는 박 전 대표가 몰랐을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아니 이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모양이다. 이 부분에서도 박경호 전 군수를 지목했다.

달성군 화원읍에서 만난 전직 한나라당 당원 곽모씨의 말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무슨 문제나 잘못이 있어도 박 전 대표에게 전달이 안됐습니다. 박 전 군수하고 관계자들이 박 전 대표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 라인을 차단했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군민의 민심을 전달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눈과 귀가 막히니까, 박 전 대표에게 계속 민심과 동떨어진 결과가 보고되니까 이런 현상이 생긴 겁니다.”

심지어 한나라당을 탈당하기까지 한 이모씨도 같은 말을 했다.

“2006년 공천 때도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당원들 일부가 박근혜 대표한테 말하려고 했습니다. 박 대표가 귀머거리가 돼 있더군요. 그래서 서울 삼성동 박 대표 자택까지 찾아갔는데 제지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경북 성주나 김천 같은 곳에 박 대표가 온다고 해서 찾아갔는데도 주위 보좌진이 다 막아섰습니다. 그래서 운전기사한테 편지라도 전해 달라고 넣었는데 전달이 안됐더라고요. 민심을 챙길 통로가 완전히 차단돼 있었던 거죠.”

일부 전직 한나라당 당원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했다.

“박 대표는 가끔 지역구를 방문했을 때 당원들을 모아 놓고 주로 ‘수석부위원장님 중심으로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박경호가 점점 더 칼자루를 강하게 쥐게 되니까 전부 다 그 밑에 줄을 섰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한 박 대표에게도 큰 책임이 있는 겁니다. 자신의 눈과 귀가 막혀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렸어야죠.”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지역민심을 몰랐다고는 보지 않는다”라며 “박 전 대표가 귀와 눈이 막힌 사람이라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당직으로 참여하지 않은 지역민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공천도 결국 박 전 대표는 일절 간여하지 않고 시스템과 원칙을 중시하고 그렇게 당협위 당원 결정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와 박경호 전 군수는 어떤 관계일까.

한 전직 국회의원의 말이다.

“대표님도 박 전 군수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 정도는 아셨을 것으로 봅니다. 한번은 내가 ‘왜 그렇게 박경호 군수를 전적으로 신뢰하느냐’고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대표님 말씀이 예전 본인이 어려울 때 박 전 군수가 도왔는데 당신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98년 4월 김석원 당시 달성군 국회의원이 사퇴하고 대표님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달성에 후보로 나섰는데 그때 시의원이던 박 전 군수가 대표님을 도와주고 선거 운동을 해 주었다는 겁니다. 상대는 지금 고인이 된 새정치국민회의 엄삼탁 후보였죠.

그런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받은 것이 대표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거죠. 결과적으로는 그런 부분에서 대표님의 잘못이 있다고 봐야죠.”

박 전 군수, “결론적으로 선거에 져 죄송”

기자는 박경호 전 군수에게 전화로 연락을 했다. 그는 선거 직후 당협위 수석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그는 이런 당협위 관계자들의 증언, 주민들 사이에 퍼진 소문 등을 대부분 부인했다.

“전혀 근거가 없고 말도 안되는 얘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있지도 않은 얘기들이 떠도는 것이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왕군수 운운이 말이 됩니까. (군청에 인사 문제 등) 부탁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표현을 해서 되겠습니까. 다만 주민 여론이 그렇게 돌아간 것에는 책임을 느낍니다.

내가 (박 전 대표의 귀를) 막고 하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선거에 졌으니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표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박 전 군수 문제를 포함해 달성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 속에 휩싸여 있었다.

우선 박 전 군수가 당협 수석부위원장직을 사퇴하긴 했지만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평당원으로 있을 것이며 앞으로 정치를 하고 안 하고는 생각해 볼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박 전 대표의 신뢰가 남아 있는 한 다시 정치를 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사실 여부가 어떻든 박 전 군수가 여전히 달성군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민들이 믿고 있을 때 달성군의 민심은 어떻게 변할까.

“박 전 군수 계속 감싸면 박 전 대표도 어려워질 것”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해이다. 박 전 대표로선 그해가 ‘마지막 일전(一戰)’이 될지 모를 정도로 중요하다.

지난 6월 7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 사무실이 있는 한나라당 달성군 당협위 사무실은 한산했다. 사무직원 2명과 당협 핵심당원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박경호 전 군수가 쓰던 수석부위원장 자리에는 명패가 치워져 있었고, 의자와 컴퓨터 한 대만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당협위 핵심관계자를 어렵게 붙잡아 짧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신분을 당 관계자로 밝혀 달라고 했다. 그의 얘기다.

“달성군민들이 이렇게 무서운 줄은 몰랐습니다. 공천과정에 대해 주민들의 질책이 심하게 있었습니다. 대표님 모시고 있는 사람이 잘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말씀들이 많았습니다. 악화된 여론은 알고 있었는데 후보자를 교체할 시기를 놓쳤고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말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인의 견해는 이와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는 “달성군민들이 바보는 아니지 않으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먹혀들 수가 없다. 박 전 대표가 이대로 그냥 방치할 리는 없겠지만 계속 (박 전 군수를) 감싸면 본인 스스로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지역민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가 중앙정치에만 너무 몰두한다고 생각해서 섭섭했던 측면이 크고, 또 이 기회에 잘못된 공천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격차를 보이던 군수 선거를 박 전 대표가 유세에 나서 박빙으로 많이 따라잡은 점 등을 보면 앞으로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유권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