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읽는 시집 ⑯] 매운 생강 먹고 흐르는 눈물 같은 시들... 차성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초절임 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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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작》 신인상으로 등단한 차성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초절임 생강》(문학동네)은 기괴하고 우스우며 동시에 서늘한 시집이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익숙한 세계를 비틀어 낯설게 만드는 상상력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전통적인 서정시와 거리가 멀다. 감정을 직접 토로하기보다 이야기 형식을 빌린다. 일상을 소재로 삼지만 비현실적인 감각이 만드는 판타지 같은 시들이다. 한 편 한편 저마다 비슷한 변주가 반복된다. 나선형 달팽이처럼 변주와 반복이 이어져 괴기스럽다.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이다. 일반 상식을 뒤집는 금기의 상상력이 총천연색 서사로 이어진다. 악당의 동화라고 할까. 슬픈 의인화라고 할까. 말장난 같으면서도 깔깔 웃게 만드는 비틀기, 해학의 느낌도 든다. 시집 전체가 하나의 우화집이다. 개 이야기도 많고 똥 이야기도 많고 소 가죽이야기도 많다. 지저분한 것은 한번씩 다 거론된다.

 

심지어 자신의 시쓰기도 풍자 대상이다. 시의 요청이 탁구채를 들고 골프 연습을 하면서 시에 대해 짐짓 훈계하는 장면도 우습다. 식당에서 밥이 아니라 시집을 한 장 찍더니 입에 마구 쑤셔넣고 씹는다는 발상은 그렇다 쳐도 시집 한 권을 통째로 먹은 사람이 초록 형광물질 초절임 생강이 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히다. 그런데 매운 생강을 먹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생강 좀 보자고 하는데 화자는 울면서 안 된다고 하는데 진짜 슬퍼서 우는 건 절대 아니라고 항변한다. 

 

개가 사람과 대화하고, 가죽 재킷은 한밤중 식탁에 앉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읽다 보면 웃음 끝에 묘한 서늘함이 남는다. 현실과 환상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차성환의 시는 독자를 불편하게 흔든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습니다. 저보다 먼저 온 한 남자가 식사하고 있더군요. 그 앞에는 시집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도 맛있게 먹길래 곁눈질로 뭘 드시나 봤더니 세상에…… 남자는 밥이 아니라 시집을 한 장 찢더니 자기 입에 마구 쑤셔넣고 열심히 씹는 게 아니겠습니까. 놀라운 구경거리였지요. 염소가 종이를 씹어 먹는 것은 봤어도 멀쩡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그렇게 시집 한 권을 통째로 먹어치운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알싸한 초록 형광물질 초절임 생강이 되어버렸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좋았어요. 그는 웃으면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물론 얼굴이 없어졌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어떤 표정이랄 것이 떠올랐거든요. 자기 자신도 몹시 만족스러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저는 갑자기 목이 메었어요. 고기만두를 한입 가득 씹고 있었거든요. 주변을 둘러봐도 물은 없고 마침 눈앞에 이 남자가. 아니 알싸한 초록 형광물질 초절임 생강이 보였던 거죠. 살짝 망설이던 저는 그걸 젓가락으로 집어다 입속에 쏙 넣어버렸습니다. 시큼하고 알싸하니 눈물이 고이고 또 헛헛한 웃음이 나면서 위장부터 서서히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리고 보다시피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시집 먹기’ 전문


걸어가다가 생강을 주웠다. 아주 맵고 알싸한 생강인데 내 머리통만했다. 너무 매워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렇게 크고 매운 생강은 처음이야. 집에 가져가 커다란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런데도 생강의 향은 강력해서 집에 있으면 눈물이 나왔다. 그새 소문이 났는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내 생강 좀 보자고 한다. 나는 울면서 안 된다고 하는데 진짜 슬퍼서 우는 건 절대 아니다. 딱 한번 만 만져보자는 놈, 자기 거라고 우기는 놈, 전 재산을 줄테니 자기한테 팔라는 놈. 항아리에 있는 생강 탓인지 눈물 콧물 흘리면서 애걸복걸한다. 울고불고해도 소용없다. 결국은 포기하고 생강의 향이 밴 몸으로 흐느끼면서 자기들 집으로 돌아간다. 끌끌끌… 그놈들이 하도 못살게 굴어서 대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에 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강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강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봐왔지, 아름답고 슬프고 외롭고 또 이상한 일을 겪었단다. 이제 나를 여기서 꺼내줘. 내가 본 것을 저 밖에 가서 말해야 돼.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너를 잃을 순 없다고 (하략)

-‘초절임 생강’ 일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초절임 생강’은 이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거대한 생강을 주워 항아리에 넣어두자 사람들이 몰려와 생강을 보여달라며 울고 매달린다. 화자는 “진짜 슬퍼서 우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미 시 전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기괴한 열기가 배어 있다. 생강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욕망과 집착, 상처와 결핍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알싸한 매운맛은 결국 눈물을 불러온다. 웃기지만 아프고, 우습지만 슬프다.


하루 종일 가죽 재킷을 입고 뽐내고 다녔다. 집에 돌아와 옷걸이에 걸어두고 잠이 들었는데 가죽 재킷이 식탁으로 나를 부른다. 이리 와서 대화 좀 해. 졸려 죽겠는데 억지로 식탁에 않으니 가죽 재킷이 따듯한 커피를 내준다. 커피 마시면 잠 안 오는데. 홀짝거리며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나는 가죽구두가 되고 싶었어. 내가 소였을 때는 늘 딱딱한 발굽으로 대지를 딛고 서 있었지. 여물을 먹다가도 발급을 땅에 구르고 주인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도, 축사에 따스한 붉은 빛이 기분좋게 번지는 황혼 무렵에도 나는 이 발굽으로 대지에 노크를 했지. 그땐 내 영혼이 살아있는 것 같았어. 내 유일한 기쁨이었지. 그런데 죽어서 재킷이 되고 나니까 알량하고 경박하게 허공에 떠돌아다니고 있어. 나는 바닥이 없어. 질 좋은 가죽구두가 되고 싶었는데. 걸을 때마다 울려퍼지는 묵직한 굽소리와 대지의 감각에 마음껏 취해 이 굽이 닳아서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싶었는데,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놈이 구두가 안 되길 다행이다.

-‘가죽 재킷’ 전문


차성환의 시 세계에는 유난히 동물과 사물이 자주 등장한다. 개, 소, 가죽 재킷, 손목, 똥 같은 존재들이 인간과 뒤엉킨다. 그런데 시인은 이 사물들을 단순한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에 인간보다 더 생생한 욕망과 감정을 부여한다. ‘가죽 재킷’ 속 재킷은 “가죽구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허공에 떠도는 존재가 되었다고 슬퍼한다. 우스운 독백 같지만, 읽다 보면 인간 역시 어디에도 단단히 발붙이지 못한 채 떠도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내 주위를 맴도는 개가 있다 개는 내 귓속에 말한다 너는 내가 싼 똥이야 금방이라도 먹어버릴 수 있지 내가 말한다 나는 개고기를 좋아해 너를 먹고 똥을 싸겠어 누가 먼저 개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똥 같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것저것 훈계하는 개 때문에 짜증도 나지만 또 개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기도하지만 이제는 개가 없으면 쓸쓸할 거 같다

-‘개똥’ 전문


내 손목을 입에 물고 달아나는 개를 쫓다가 잠에서 깼다. 너덜너덜한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꿈 속에 피 흘리는 손목을 두고 올 수 없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안개가 자욱이 낀 문 앞에 개가 손목을 입에 물고 마중나와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 ) 소리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우스운 모양인지 개는 꼬리들 흔들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손목이 발 앞에 떨어졌다. 네 손목은 돌려줄게. 어떤 개는 사랑하는 주인의 손을 핥으며 잠이 든단다. 주인은 손이 아니라 지금 너를 껴안은 내 두 팔도 다 줄 수 있단다, 하고 속삭이지. 그날 밤 개는 주인이 던진 고깃덩이를 받아먹는 꿈 속을 헤맨단다. 달콤한 피맛이 느껴질 때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지만 이미 늦어버렸지. 꿈속에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주위의 손목을 갈기 길기 찢어놓은 거야. 잠에서 깬 개는 피 흘리는 주인을 보고 어쩔 술 놀라 손목을 입에 문 채 팔층 창문을 깨고 달아난다. 주인은 개를 뒤쫓아 몸을 던졌고 지금 여기 내 눈앞에 온 거야. 나는 개의 이야기에 약간 감동한 것 같다. 기억에도 없는 나의 개를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대사를 마치고 쓸쓸히 뒤돌아 가는 개를 보니 문득 심심해졌다. 피 흘리는 손목을 제자리에 끼우다 말고 헤이 퍼피! 순간 귀를 쫑긋 세운 개에게 손목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멀리 힘차게 더 멀리 하늘 높이 던졌다.

-‘캐치’ 전문


차성환 시집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인간 내부의 본능, 혐오, 외로움, 자기파괴 충동 같은 것들이 형체를 얻어 돌아다니는 존재에 가깝다. 나란히 배치된 ‘개똥’과 ‘캐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개의 뒤엉킨 관계를 보여주는데, 읽고 나면 우습고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쓸쓸하다.

 

‘개똥’은 거의 만담처럼 시작한다. ‘너는 내가 싼 똥이야’라고 말하는 개와 “나는 개고기를 좋아해”라고 응수하는 화자의 대화는 유치하고 황당하다. 그런데 이 저급한 농담 속에는 묘한 진실감이 있다. 서로를 먹고, 배설하고, 다시 개똥이 되는 관계. 인간과 개의 관계라기보다 자기혐오와 자기애가 뒤섞인 인간 내면의 독백처럼 읽힌다.

 

‘캐치’는 훨씬 음산하고 영화적이다. 손목을 물고 달아나는 개, 피, 안개, 깨진 창문 같은 이미지들이 악몽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이 시가 흥미로운 건 공포를 끝까지 공포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는 잔혹한 괴물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순진하고 슬픈 존재다. 주인을 사랑했지만 결국 상처 입히고 만 존재처럼 보인다. 화자 역시 개를 완전히 미워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손목을 멀리 던지는 장면은 잔혹하면서도 묘하게 유쾌하다.

 

두 시 모두 인간과 개의 경계가 무너져 있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짐승인지 모호하다. 개는 화자의 분신처럼 움직이고, 화자는 개를 혐오하면서도 개의 세계에 깊숙이 끌려 들어간다. 그래서 이 시들을 읽으면 단순히 ‘기괴하다’는 느낌보다,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아주 우스꽝스럽고 음습한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인상이 남는다.


하루는 시의 요정이 나타났다. 탁구채를 들고 드라이브 연습을 하면서 말이다. 시는 말이야 무게중심 이동이 중요해. 오른발에서 왼발로 영차. 몸통의 축이 회전하면서 파괴력이 생기거든. 네 시는 기본기가 부족해. 에지(edge)가 없어. 채부터 다시 잡으란 말이야. (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 척한다. 요정은 수전증이 있는지 채를 잡은 손을 덜덜 떤다. 머리숱도 별로 없다.) 시 쓴다고 시건방 떨지 말고 내 말 잘 받아 적어. 현실에서 꿈으로 꿈에서 시로 시에서 현실로 이렇게 중심을 이동하란 말이야. 이게 노력으로 되나? 아니란 말이지. 세상에는 몰라서 못하는 게 있고 알아도 못하는 게 있어. (중략) 가짜 재채기는 금방 티가 나지. 진짜는 흉내낼 수가 없어. 재채기와 재채기 사이의 긴 침묵이 바로 너야. (하략)

-‘재채기’ 일부


시집에는 해학도 강하다. ‘재채기’에서 시의 요정은 탁구채를 들고 시론을 설파한다. “현실에서 꿈으로 꿈에서 시로 시에서 현실로 이렇게 중심을 이동하란 말이야”라는 대사는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시 창작론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차성환은 근엄한 문학 담론조차 우화와 농담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 같다가도 어느 순간 불현듯 시의 본질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문학평론가 조대한은 해설에서 차성환의 시를 우화 혹은 알레고리의 계보 속에 놓는다. 다만 그의 알레고리는 단순한 비유에 머물지 않는다. 익숙한 사물의 감각을 비틀고 반복해 독자로 하여금 현실 자체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현대적 알레고리에 가깝다. 실제로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기묘한 이미지와 이야기의 운동 속에서 독자의 감각을 흔들어 놓는다.


《초절임 생강》은 쉽게 읽히는 시집이 아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지나치게 장난스럽고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혼란스러운 농담과 기괴한 우화 속에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자기혐오와 우울이 끈적하게 배어 있다. 마치 아주 매운 생강을 한입 베어 문 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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