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워 시를 쓰고 시집을 펴낸 시인의 정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누군가 함께 시를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리뷰를 쓴다.

- 사진 배경은 2024년 12월 부산 해운대 빛 축제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태양의 뒷면
-정혜선
태양의 뒷면에는 복숭아가 자란다
홍조를 띤 과즙이 터지던 날
토끼의 전갈은 일식 아니면 월식
눈물 아니면 웃음
비통이 아니면 태양의 타오르는 눈
반반인 빛과 어두움
반반의 룰렛은 계속 돌았다
태양이 지구를 지구가 달의 주변을
반으로 접히는 앉은뱅이의 나무통
솔향 가득한 바다의 옆구리
열어 재낀 뚜껑 속
그득한 꼼지락거리는
굼벵이 떼의 웃음소리
손을 뻗을라치면
타들어가 녹아 없어지는
그득한 촛농의 미지근한 인생
북두칠성의 빛나거나 잿빛일 검은 바다
모나 도의 오후
태양의 뒷면이 춤을 추는
장대비 속 오전의 브런치
세상의 편린
암흑의 뒷면
태양의 뒷면
다시 도는 구름의 빳빳한 운명
별자리의 다트
타서 사라질 이카로스의 꿈
대롱대롱 걸린 수레바퀴의 행운
끝도 없이 돌아가는 우주의 궤적
태양의 뒷면에 살고 있는
녹아버린 천사의 날개
어둡거나 밝을 뿐인
태양의 뒷면
단순한 망치
내일의 앞면
태양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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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Sunday
억울한 누추함의 질투
부정에 관한 무능력
화성, 목성, 수성의 화병
심장과 불면의 기대치
조현과 착란의 광견병
다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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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겉장에 이런 '경고문'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신에게 다다를 하나의 단어를
주우려 하나 보다
그가 보호할 한 모금의 샘물을
구하려 하나 보다
생각에 잠겨도 본다>
시집을 읽기 전에 다다이즘 작품 읽기에 대한 각오부터 다졌다.
전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든 서정시를 읽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실험적인 시를 쓰는 시인을 오랜만에 만난 셈이다. 참고로 '다다'는 프랑스어로 장난감 목마를 가리킨다.
시집 속 시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태양의 뒷면, 재의, 회색의 송가, 생존자의 고뇌, 별들의 숫자, 눈썹 위의 평화, 옷고름의 자줏빛 얼룩, 코로네이션은 투비컨티뉴겠죠, 주제는 제일 모르고 분수는 당연히 모르고, 님께 바친 인어의 꼬리….
이어지는 낯선 단어의 거침없음과 공감각적 이미지의 연쇄, 이성적 질서정연함의 거부, 직관에 의한 무의식적인 진술, 장난스런 말놀이 같은 게 느껴지나 행을 오가는 문장의 '맛'을 위해선 다소간 시간과 의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몰입 속에서 시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문득 시인은 시작(詩作)의 즐거움을 얼마나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설을 쓴 조명제 시인은 "동시다발의 다중첩적 묘사로 대상의 실체를 흐려 놓음으로써 실체에 대한 의문과 그 진실을 숙고하게 만든다"고 썼다. 평설을 읽고 다시 시를 읽으니 좀 더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래도 이런 '폭넓고 활달한'(조명제) 도전이 놀랍고 범상치 않았다. 시인의 시적 발성 문법이 무척 뜨겁거나 기발하거나 열정적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게 무척 고단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재미 없음의 경계, 기발함 너머의 아름다움, 긴 행(行)이 미덕일 수 없다는 점을 느꼈으면 한다.
<웃음, 기쁨 주고
사랑 환호 받는 것은 나쁘지 않은 딜
그니까 요지는
결코 댁들을 함할 생각은 없다는 거예요.
결혼식 전날 그 함 말하는 건 아닌 건 아시죠?
아니, 그 '아시나요' 가사 생각하는 건 아니죠?
가사 도우미라구요?
'라구요'의 가수가 누구였더라?
엿먹고 간호사 시험 준비한다구요?
유체이탈만 하지 않으면 되요.
얼굴, 입, 말, 신체
한 사람이라는 신뢰
합격증의 고유번호 이니까요.
마음과 정신
사랑, 관계들
물론 하나시죠?
-시 '삐에로의 인형 : 하나 카드' 일부>
정혜선 시인은 홍익대를 졸업하고 St. Andrews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중등교사를 지냈고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사진집 《하얀 그림》, 《회색편지》, 《빨간 필통》 등을 펴냈다. 2024년 월간시인을 통해 등단했으며 《님께 바친 인어의 꼬리》는 그의 첫 시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