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4일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누적관객수(5일 기준) 234만8330명을 기록했다. <아바타2>를 능가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으며, 슬램덩크 굿즈(기념품)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원작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슬램덩크>는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가 1990~1996년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한 농구만화로 이번 영화는 만화 슬램덩크의 내용 일부를 재해석한 것이다. 슬램덩크는 전 세계 누적 발행 부수가 1억2000만부를 넘겼고, 국내에서도 1500만부 가까이 판매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일본만화 중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은 많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명작으로 불리는 일본만화 작품은 두 개로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큰 수익을 올린 것은 물론, 굿즈와 피규어 등 판매도 이어지고 있고 문화현상으로 이어질 만큼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일본 최대의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의 연재작이라는 것, 그리고 잡지 편집자의 노력이 성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8년 창간한 주간 소년점프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발매부수를 자랑하는 잡지로, 수많은 대형 작품을 탄생시켰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시티헌터, 북두의권, 유유백서, 데스노트, 유희왕, 하이큐 등 유명 일본만화는 모두 이 잡지에서 연재한 작품이다. 출판물 시장이 침체되면서 위기도 있었지만 최근 <귀멸의 칼날>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2020년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은 역대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일본 만화잡지 편집자의 역할은 작가(만화가)의 역할만큼이나 절대적이다. 편집자는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고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신인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유명 작가의 작품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작가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지만 작가에 대한 압박도 만만치 않다.
일례로 주간 소년점프는 1980~1990년대의 메가히트작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마감을 위해 지방에 있는 작가의 집에서부터 공항까지 도로를 건설했다는 후일담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다만 편집부는 작품을 끝내고 싶다는 작가를 계속 압박했고 <드래곤볼>은 원래의 기획에서 세계관이 계속 확장돼 우주, 저승 등을 배경으로 끝없는 스토리가 이어졌다.
또 작품의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일본 잡지사의 구조도 메가히트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형 만화잡지사들은 매번 게재 작품에 대한 독자투표를 실시하고 1위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며, 하위권에 머무는 작품은 가차없이 잘라낸다.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역시 편집자들의 노력 끝에 태어난 인기작가다. 그는 첫 작품을 주간 소년점프에 투고했지만 거절당했고, 편집자는 "다른 작품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다음 작품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후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농구만화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독자투표에서 하위권을 맴돌았다. 편집자는 당시 인기였던 학원물이나 로맨스물을 그려보라고 했고, 편집자의 권유대로 그린 단편작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빨강머리 강백호' 주연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슬램덩크> 연재가 시작된 후에도 편집부는 끊임없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리얼한 농구만화를 원했던 작가에게 "독자들에게 어필하려면 학원물과 로맨스물의 성격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채소연과 정대만 등의 캐릭터가 힘을 얻었다. 또 농구부뿐만아니라 경쟁관계인 유도부를 넣자고 주장한 사람도 편집자였다. 편집자가 학원물의 요소를 강조하고자 해 생성된 캐릭터도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연인 송태섭, 그리고 각종 밈("농구가 하고싶어요" 등)의 주인공인 정대만은 불량한 생활을 하다 농구로 돌아온 캐릭터로, 독자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다.
최근 K-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로 실사화돼 성공한 사례도 많다. 다만 수십년을 이끌어갈 '명작'은 아직 보이지 않는 상태다. 웹툰은 작가 개인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등 일본과는 제작 구조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K-웹툰이 일본만화의 제작시스템을 따라가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면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