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칼럼

'구사야'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필자는 '오다 줄리아' 제(祭)에 참가 한 후 이즈(伊豆)제도 고우즈시마(神津島)의 민박집 우메다장(梅田莊)에서 숙식을 하게 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래층 식당 방으로 모여 들었다. 평소의 복장으로 밥상 앞에 앉은 사람도 있지만, 온천장 같은 유카타(浴衣) 차림의 손님들도 제법 있었다. 저녁 식사는 형편에 따라 삼삼오오 편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도쿄의 도미자와 히테코(富澤日出子, 67세) 할머니와 하치오지(八王子) 성당 신자인 츠카모토 세치코(塚本世智子, 54세) 여사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들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식단은 섬의 특산물인 생선과 나물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덴죠우야마(天上山)에서 난다는 산나물인 두릅(楤穂)이 많이 나왔다.

 뒤이어 필자 옆으로 3-4명의 남자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자리했다. 조용하던 민박집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일본 사람들도 꽤나 시끄럽다'고 생각하면서, 개의치 않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구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필자는 주인아줌마를 불러 창문 좀 열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도를 더해갔다. 필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이 썩은 계란을 먹고 방귀를 뀌었거나, 발을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낚시꾼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들도 별 수 없군. 이토록 지저분하다니....'

 필자는 밥을 먹든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놓고 서둘러서 민박집을 빠져 나왔다. 민박집 아줌마는 "아직도 나갈 음식이 많은데 왜 그러느냐?"면서 만류했다.
 덴죠우야마(天上山) 산자락 아래 자리한 민박집을 떠나 맹목적으로 골목길을 나섰다. 특별히 갈 곳도 없었기에 좁은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무작정 걸었다. 20여 분 쯤 걷다보니 '오다 줄리아' 묘지 푯말이 눈 안에 들어왔다. '오다 줄리아'의 묘지 앞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교차되어 꽂혀 있었다.

'줄리아 님! 이토록 지독한 냄새를 어떻게 견디십니까?'

이즈(伊豆) 제도의 명물 '구사야'

필자는 해변으로 나가 하얀 백사장을 거닐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절해고도의 노을을 보면서 '혼자라는 것은 외롭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필자는 불빛이 요란한 특산품 가게에 들러서 '이 지역의 특산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것은 다름 아닌 '구사야'라고 했다. '구사야'라는 말은 일본의 초가집(草屋)을 연상케 한다. 발음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구사야'는 건어물의 이름이다.
 필자는 아차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낚시꾼인 듯한 민박집 사람들에게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민박집에서 '구사야'를 구웠었구나."

 필자는 이십여 년 전에 도쿄의 한 일식집에서 일본 친구와 함께 '구사야'를 맛본 적이 있다. 일본 사람들도 싫어한다는 별미(?)에 도전했으나, 종국에는 손을 들고 말았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이 '구사야'의 본 고장에 왔다는 말인가-.

 '구사야'는 전갱이를 썩혀서 발효한 액체에 갈고등어를 절였다가 굴비처럼 건조시킨 어류를 말한다. 갈고등어를 일본에서는 '무로아지(室鯵)'라고 하는데, '아지(鯵)'의 어원이 '비린내 소(鯵)'라는 것만 보아도 냄새와 관련이 많은 어류다.
 아무튼, 이 '구사야'가 이즈(伊豆) 제도의 특산품이란다. '구사야'는 신선한 생선을 '구사야 액(液)'에 넣어 장시간(8-20시간) 절인 후에 햇볕에 말린다. 흔히 '구사야'를 발효식품이라고 하지만, 발효시킨 것은 생선이 아니고, '구사야 액(液)'이다. 독특한 냄새라기보다는 차라리 악취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다. '구사야'는 강렬한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확연하게 갈라진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짠맛이면서도 순함이 있어서, 맛으로 느끼는 염분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에도시대의 진상품

'구사야'의 역사는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도시대에는 막부의 장군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구사야'의 정확한 발상지는 알 수 없으나, 이즈(伊豆) 제도의 니이지마(神島)가 원조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이즈(伊豆) 제도의 하치오지마(八丈島)는 니이지마(神島)로부터 구사야 액(液)을 얻어다가 그 지역의 '구사야'를 만들었다고 한다. 에도시대의 어시장에서는 '냄새가 지독하다(臭い-구사이:구리다)'고 해서 '구사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나, 정확한 어원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즈(伊豆) 제도는 산이나 경사면이 많아서 벼농사나 밭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금이 많이 나기 때문에 에도막부는 쌀의 대용으로 소금을 공물로 바치도록 했다. 또한, 섬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을 에도까지 옮길 수 없었기에 소금에 절인 건어물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공물로 바치는 소금의 양이 많아서 부득이 기 사용했던 소금물을 반복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절인 생선의 맛이 손상되는 줄로 알았던 섬사람들은 나중에 절일수록 더욱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묵은 장맛이랄까?' 사람들은 오래된 소금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구사야 액(液)'은 이렇게 탄생했다.

<장은 묵을수록 좋다더니
  우릴 두고 한 말 같네. 

  세월은 우리를 떼어놓았지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만났지
  이것도 세월의 장난이던가.......(중략)

  이제는 부둥켜안고
  상봉의 맛을 보다니
  세상은 변했어도
  우정은 그대로이지
  남은 것은 우정뿐 이라네.
  천 년이 가도 만년이가도
  묵어가는 장맛처럼.... >(묵은 장맛/박찬덕)

혼수감으로 사용된 구사야 액(液)

 '구사야 액(液)'은 다갈색의 끈끈한 액체로서 젓갈(魚醬)에 가까운 고상한(?)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액체는 초산, 프로피온산 등이 함유하고 있어 특징적인 냄새를 자아낸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배어나온 물고기의 성분을 국물로 사용하기 위해 숙성시키는데도 많은 세월이 걸린다. 따라서 이 액체는 새로 만든 것이 거의 없다. 대체로 예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개중에는 400년에 가깝게 사용하는 액(液)도 있다고 한다. 제조업자들은 이 액체를 가보(家寶)로 여기고, 그 맛이 대대로 전해지게 한다. 맛의 계승을 위하여 온 가문이 애를 쓴다는 것이다. '구사야'의 냄새나 맛은 섬마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니이지마(神島)의 '구사야'가 가장 냄새가 강하다고 했다.
 이즈(伊豆) 제도의 일반 가정에서는 집에서 만든 '구사야 액'을 딸이 시집갈 때 혼수 감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만큼 소중한 보물이라는 얘기다.
 비타민이나 아미노산 등이 대단히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구사야'는 항균작용도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섬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구사야 액'을 마시거나 환부에 액(液)을 바르면 치료가 된다고 했다.
'구사야'를 굽는 냄새가 어느 정도 일까?
도시에서나 외국에서는 '구사야' 굽는 냄새를 '시체 태우는 냄새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하여, 큰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단다. 우리가 해외에서 청국장을 끓이면, 이웃에서 소동이 일어난다는 것과 흡사하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식생활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맛이있고 자기가 선호하는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서는 구운 '구사야'가 진공포장 되어 일본 전역에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진공 포장된 '구사야'에 도전장을 내어볼 참이다.

입력 : 2008.06.27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