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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스시(壽司)와 바란(葉らん)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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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한 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는 일본의 후쿠오카(福岡)는 참으로 가까운 곳이다. 지난 주말 급한 일로 가벼운 가방 하나를 챙겨들고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입국장에서 지문과 사진을 찍는 절차가 번거로웠다. '매번 찍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도, 공항의 출입국관리 직원들은 '그렇지요' 하면서 기계적인 손놀림만 계속했다. 그래도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가 날로 늘어난다는 뉴스다.

가급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에 일본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일본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필자를 유혹(?)했다. '모처럼의 개인 시간을 빼앗긴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들의 문화를 배운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텐진(天神)의 스시(초밥) 집

 

후쿠오카의 중심지가 바로 텐진(天神)이라는 곳이다. 우리의 명동쯤으로 보면 된다. 이 지역은 유명 백화점이나 고급 쇼핑 몰이 모여 있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인파가 운집하는 곳이다.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 66세)' 씨는 필자를 텐진(天神)의 지하상가에 있는 작은 스시(壽司)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작지만 깔끔한 스시(壽司) 집은 40년의 역사가 있다고 했다. 음식 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아 샐러리맨들이 즐겨 찾는 집이었다. 여느 스시 집과는 달리 이타마에(板前: 일본의 요리사)들이 젊다는 사실이 특이했다.

 

 필자는 오츠보 씨와 함께 '스시(壽司) 카운터'에 자리를 잡았다.  'Face To Face'의 카운터는 먹는 즐거움 외에 세상 이야기와 고달픈 인생사를 주고받는 재미가 있다. 34세의 젊은 요리사인 '우에다 스스무(上田進)' 씨의 얼굴에서 고달픈 인생사를 엿 볼 수는 없었다.

 

 필자는 두리번거리면서 스시 집의 특징을 찾아보았다. 단순히 음식을 취한다는 것보다는 뭔가 취재거리를 찾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행한 '오츠보' 씨도 자연스럽게 필자의 취재에 응원을 해주는 분위기였다.

 

에도시대에 탄생한 바란(葉らん)

 

일본의 사시미나 스시는 대단히 정갈하게 나오며, 나름대로의 기교가 손님의 입맛을 부추긴다. '감질 난다'면서 열정적(?)으로 먹다가는 호주머니가 바닥나기 십상이다.

 

 스시에 아름답게 멋을 부리는 것이 에도시대(江戶時代)로부터 전해졌다는 바란(葉らん)이다. 실제 발음은 하란(葉らん)인데, 대체로 바란(葉らん)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바란(葉らん)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시미(刺身)나 스시의 예쁜 접시에 딸려 나오는 일종의 장식이다. 이 장식은 대나무 이파리로 만들어 진다. 일본에는 칸나 잎처럼 넓은 이파리를 가진 대나무가 있다. 요리사는 '이러한 대나무는 시코쿠(四國) 지방에 많이 있다'고 했다. 원래의 바란(葉らん)은 중국으로부터 일본에 귀화(?)한 식물로서, 잎이 넓어 기존의 가느다란 대나무(笹)에 비해 용이하게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요리사는 휴식시간을 이용해 넓은 대나무 이파리에 거북이나 학 등의 모양을 정성스럽게 오려서 스시와 함께 접시 위에 살포시 얹혀 놓는다. 에도 시대에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풍습이라고 했다. 요즈음은 요리사의 손이 모자라고 귀찮기도 하지만, 인공 비닐의 등장으로 천연적인 바란(葉らん)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런데 텐진(天神) 지하상가의 작은 스시 집에서는 옛 풍습을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다.

 

요리사 우에다(上田) 씨는 "손님들은 이 바란(葉らん)을 보시면 무척 즐거워 하십니다"면서, "음식은 혀로 맛을 즐기지만 눈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음식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펼쳤다. 또한 그는 "요즈음은 이러한 풍습이 대부분 사라져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덤덤하게 넘어가지만, 나이가 드신 손님들은 대단히 즐거워하십니다. 바란(葉らん) 때문에 저희 가게를 자주 찾는 단골손님도 많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바란(葉らん)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는 책자를 들고 나와 하나하나 설명했다.
 필자는 물론이고 일본인인 오츠보 씨도 '바란(葉らん)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듣는다'면서 호기심을 높였다. 필자의 접시에는 거북이 모양의 바란(葉らん)이 나왔다. 우에다 씨는 거북이와 학 등의 동물을 주로 만든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거북이와 학이 만들기 쉽기 때문 입니다"는 요리사의 겸손한 말에 대해, '거북이와 학은 장수를 의미하는 뜻도 있을 것'이라는 필자의 해석에 모두가 동감을 표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바란(葉らん)은 요리사(包丁)가 요리를 하는데 있어서 미적 감각을 키우게 하는 훈련의 의미도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요리사의 섬세한 기술력 향상을 위해서 바란(葉らん)을 만들도록 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성은 하늘도 감동

 

후쿠오카 씨티 은행의 총재를 지내고 '규슈 아시아 경영숙(塾)'을 운영하고 있는 시시마 츠카사(四島司, 82세) 씨는 <사람에 반함>이란 책에 '천 마리의 학'에 대한 글을 썼다. 은행의 부하직원 부인이 위암에 걸린 남편의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눈물의 종이학을 접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5년이면 안심해도 되고, 8년만 지나면 걱정이 없습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한 마리 접어도 눈물, 두 마리 접어도 눈물........눈물의 학이 1,000마리가 되었습니다."
 8년이 되는 어느 날 그녀는 1,000마리의 종이학을 가까운 친지들에게 공개하면서 '남편이 완벽하게 쾌유된 것'을 알리는 작은 잔치를 열었다.
부인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하였을까? 그 남편은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 지금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단다.

 

 사람이 살면서 정성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더 큰 감동이 돌아온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정성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고 있는 요즈음의 세태를 보면서, "눈으로도 음식 맛을 느낀다"는 젊은 요리사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얼마 전 한 케이블 TV가 내보낸 '알몸초밥'은 지나치다 못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람 바란(葉らん)이 등장한 것일까? '나체여자의 몸에 스시를 올려놓고 즐겼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식이하의 일이다.

 

 철학자 러셀은 "우리가 일상생활에 있어서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도 잘 검토해보면 그것들은 명백한 모순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입력 : 200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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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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