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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고베(神戶)의 이진칸(異人館)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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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고베(神戶)라서 낯설게 느껴졌다. 필자는 지도를 펴들고 ‘이진칸(異人館: 외국인 관)’를 찾아 나섰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어서 거리가 붐비지는 않았다. 고베(神戶) 역을 기점으로 하여 나름대로 지름길을 찾아 언덕길을 걸었다. 고베시내가 한눈에 들어 왔다. 지진으로 망가졌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름드리나무들도 긴 팔을 벌리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가을의 문턱이라서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자 ‘이진칸(異人館)거리’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작고 질서정연한 간판들이 정갈했다. 질서가 없고 요란스러우며, 서로의 얼굴을 내밀려고 펄럭거리는 우리의 간판문화도 바뀌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진칸(異人館)’ 길목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원과 골목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쓸고 닦는 손길이 아름다워 보였다. 도심 한 복판에서 좀처럼 보기드믄 모습이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인지 골목길에는 휴지조각하나 없었다. 한 주민은 “마을의 아름다움은 자신들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했다.

 

흑선(黑船) 쇼크...그리고 개방

 

흑선(黑船)이란 옛날에 일본인들이 서양 배(船)를 부르는 말이었다. 배의 색깔이 검기 때문에 흑선(黑船)이라고 했다. 사회학자 ‘소노다 히데히로(園田英弘, 1947-2007)’ 박사는 “흑선(黑船)은 원래 일본에 내항한 서양의 범선을 일컫는 말이다”고 했다. 서양의 배는 방부제를 바르지 않는 일본 배와 달리 검게 칠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소노다(園田)’ 박사의 ‘흑선(黑船)’이라는 글에는 “멀리 유럽의 문물을 싣고 온 흑선은 이국적인 정감을 자아낸다. 에도시대에 편찬된 샤미센(三味線: 세줄로 된 일본의 고유 악기) 가요집 ‘마쓰노 하(松の葉)’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흑선-. 인연이 다하면 상어의 먹이가 되네. 산타마리아-’라는 가사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정감어린 이국의 흑선에 의해서 일본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 졌다.

 

 미국군함이 일본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46년 5월. 동인도함대 사령관 '비들(Biddle, 1783-1848)'에 의해서다. '비들' 사령관은 일본의 개국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 배가 돌아간 지 7년만인 1853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Perry, 1794-1858)'가 4척의 군함, 즉 흑선(黑船)을 이끌고 에도만(灣)의 ‘우라가(浦賀)’에 진입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페리' 사령관은 강경한 자세로 에도 막부(幕府)에 대해서 개국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페리는 미국대통령의 국서를 막부에 전하고 다시 올 것임을 통고하고 돌아갔다. 그 당시 막부는 흑선(黑船)의 위력에 겁을 먹고 미국의 국서를 정식으로 받아들였으며, 1년 후 요코하마에서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하였다(메이지유신의 대해부, 홍윤기).
 그로부터 4년 후인 1858년(安政 5년) 6월19일에는 마침내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고, 7월에는 네덜란드∙러시아∙영국과 통상조약 체결, 8월에는 프랑스와도 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1867년에 문을 연 고베(神戶) 항

이러한 개방의 물결을 타고 고베항도 1867년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리고, 개항과 함께 약 27ha의 외국인 거류지가 항구근처(현 시청사 서쪽 일대)에 설치되었다. 외국인 기사(技師)들에 의해서 서양상관(西洋商館)의 건설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거류지의 기본적인 설계는 영국인 토목기사 ‘J.W.Hard’와 초대효고현(兵庫縣) 지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에 의해서 그려졌다.
 1873년(明治6년)에는 정연한 도시계획에 의해서 마치 유럽의 소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1887년(明治 20년) 이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외국인들은 주거지를 전망이 좋은 야마테(山手) 방면으로 옮기게 되었고, 기타노무라(北野村)가 새로운 주택지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이진칸(異人館)은 영국인과 독일인 건축가에 의해서 설계된 목조양관으로 메이지(明治) 20년(1887년)과 다이쇼(大正) 초기(1912년)까지의 건축물이다. 당시 100동(棟) 이상의 이진칸(異人館)은 전화, 도시계획, 노후화, 재해 등에 의해서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는 20여동이 남아있다. 각각의 건물이 개성적인 모습을 담고 있고, 이국정서가 풍부하여 지금도 색다른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기타노초(北野町)’는 1980년에 주요 전통적 건조물 군(群)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국(異國)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건물들

 

이진칸(異人館)은 오전 9시부터 문을 연다. 필자는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이 그다지 여유가 없어서 대충 겉모양만 보고 오리라고 생각하고 밖에서 두리번거리면서 ‘오란다(네델란드) 언덕’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후미진 언덕 끝까지 올라갔다. 9시가 되려면 아직도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이 때 한 할머니가 숨을 몰아쉬면서 필자에게 다가왔다.
“아! 구경 오셨나요?”
“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외관만 보고 갈려고 합니다.”
“자- 이쪽부터 구경하시지요. 9개 전관을 구경하시는 티켓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할인해서 드리겠습니다.”
‘미나미 사치코(南幸子)’라는 70세 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야마테 하치반칸(山手八番館)’관리인이었다.
 3연식 옥탑이 특징적인 이 건물은 입구 상부의 스텐그라스가 유난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근대조각의 시조’인 로뎅(Rodin)과 그의 제자, 부르텔(Bourdelle)의 명작을 비롯하여 동아프리카의 마콘데(Makonde)족의 흑단(黑檀) 조각과 원시 미술이 가득했다.
그곳을 돌아본 필자는 ‘미나미(南)’ 할머니의 안내를 받아 앞 건물인 외국인 구락부(外國人俱樂部)로 발길을 옮겼다. ‘라이온 하우스 3호관’으로도 불리 우는 이곳은 개항당시 거류자들의 사교 클럽이었다. 여러 가지 놀이 기구는 물론 거대한 난로와 부엌, 정원에 있는 19세기 영국의 마차, 미니 예배당 등은 그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구 중국영사관, 우로코 미술관, 구 파나마 영사관, 큰 길을 지나 영국관, 프랑스관, 벤의 집 등 공개된 이진칸(異人館)은 생생한 역사의 산물들이었다.

 

건물보다는 사람을 중시해야

 

고대에는 외국인을 적으로 간주하여 범죄인 또는 법익피박탈자로 취급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는 그 당시 고대인들의 보편적 생각을 반영하듯, 비 그리스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여 생래적(生來的) 노예로 여겼다고 했다.
 근래 들어 여러 국가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많이 해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대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이진(外人)’이라는 일본말 속에도 ‘적대시하여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한류의 물결을 타고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외국인이 살았던 건물과 미술품, 조각품을 아끼고 관리하는 것보다는 ‘외국인의 인격’을 소중히 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난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숨을 죽이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에 더욱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입력 : 20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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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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