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작 의혹' 계기로 본 가난한 예술가 살리는 방법 : 월간조선

2011년 2월 25일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베낀 위작들. 손응성의 '석류' 위작.

최근 미술계에서 위작과 대작시비로 시끄럽다. 어쩌면 과거보다 미술 저작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함께 소장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미술품의 투자수익률이 연평균 7%라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가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계와 학자를 중심으로 미술품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미술저작권 보호를 위해 ‘추급권’의 도입 등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추급권이란 프랑스의 ‘Droit de Suite’라는 용어에서 나왔다. 영어로 번역하면 ‘Right to follow the Work’. 원작자가 자신의 미술저작물을 판매한 후에도 해당 작품 매매 시, 일정한비율의 배상금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가가 생전 생활의 궁핍으로 저가로 작품을 파는 경우가 허다했다. 반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애 중 880여 점의 유화를 남겼는데 팔린 그림은 딱 1점으로 1888년 400프랑(약 30달러)에 팔린 <붉은 포도밭>이 유일하다. 생전 고흐의 그림은 ‘야만적’이란 이유로 평론가들에게 배척 받았다. 물론 지금 고흐 작품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화가 드가는 화가를 ‘우승 경마’에 빗대며 “경마에서 말이 우승하면 말 주인만 부자가 되고 정작 말은 건초나 먹는다”면서 가난한 작가의 현실을 풍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로 모딜리아니 연인 잔느는 궁핍을 견디다 못해 모딜리아니 그림을 싼값에 팔았지만 그가 죽자 엄청난 값에 그림이 팔리는 것을 비관, 자살한 일도 있다. 이 소재는 나중 영화화되기도 했다. 사후 작품 가격이 오르자 일부 화가는 가짜 장례식을 올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모딜리아니(왼쪽)와 그의 연인 잔느

추급권은 가난한 작가를 보호하는 제도

프랑스는 1920년 추급권을 입법화했고, 1965년에 개정 저작권법에 이를 반영했다. 이후 이러한 권리는 독일, 영국 등지에서도 명문화돼 현재 70여개국이 추급권을 인정하고 있다. 저작권관련 국제협약인 ‘베른 조약’은 추급권을 명문화하면서 다만, 국가가 자유로이 결정하도록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California Resale Royalty Act’라는 주법(州法)이 제정되었으나 연방법 차원에서는 입법화가 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캘리포니아 주 법마저도 이후 예술가 그룹이 저명한 미술품 경매회사들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에서 위헌으로 판시되고 말았다. 이유는 ‘캘리포니아주만 추급권을 인정하는 것은 주 상호간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라는 것이 위헌이유였다. 다만 연방법으로의 추급권 입법화 작업여부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고흐가 유일하게 판매한 유화 <붉은 포도밭>

추급권은 법리적으로 논란대상

그러나 현실적으로 추급권을 인정할 경우 장단점은 무엇일까.

반면, 추급권을 인정할 경우 단기적으로 잠재적 거래자들의 미술품 거래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미술품 거래가 음성적으로 이뤄지게 조장시켜 미술품 거래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영국은 당초 우려와 달리 광범위하게 추급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예상했던 부정적인 면이 불거지지 않고 있다. 실제 연구보고서에도 추급권의 제도화가 미술시장을 위축하는 어떠한 현실적인 증거도 차지 못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부터 추급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지난 2007년 5월부터 진행된 EU와 자유무역협정 관련 협상 과정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추급권의 법제화는 추후 논의하고자 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현재 한류바람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미술계의 투명성 확보 내지 체질 개선작업이 시급하다. 한국의 고유한 미술문화의 진흥과 발전을 위해 추급권의 도입 내지 입법화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재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추급권의 입법화에 어려움을 걲고있는 점 등에 비추어 여전히 부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국제경쟁력을 선점하기 위해. 그리고 작가의 창작의욕을 높이고 미술저작물의 거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선행돼야 할 과제다.

추급권 인정 앞서 ‘문화기본법’ 제정도 필요

필자는 추급권의 인정여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문화전반에 관한 기본적인 이념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문화기본법’의 제정이 절실하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는 1983년 Art and Cultural Affairs Act를 제정하였고, 중국도 미술품의 경영에 대한 관리법 등을 제정하여 미술 등 문화분야의 범정부적인 지원과 관심을 표명한 바가 있다. 한국 역시 미술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제고하고 이를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는 사회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입법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추급권에 대한 논의는, 시행 초기엔 미술저작물 범위를 제한하고 잠정적으로 시범 운영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며 보완하면 어떨까. 이후 ‘추급권의 소급적용’을 배제하는 선에서, 적용범위를 확대하면 혼선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은 미술정보제공시스템의 구축, 공개적인 오프라인 및 온라인 경매의 활성화, 미술관련 산업의 건전한 발전 등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다소 혼란과 거부반응이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한국문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고 나아가 불가피한 제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