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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21일 오후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 초청 특별대담'에서 슈뢰더 전 총리가 특강을 하고있다. /조선DB |
‘9·15 노사정 대타협’, 파탄 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월 13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 5법 중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이를 제외한 노동개혁 4법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1월 임시국회 처리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얼마나 답답했던지 “정치권의 비협조와 무능을 해결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이 나서달라”며 호소했다.
‘전 국민 서명운동’이라도 벌여달라는 간청이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담화 발표 5일 지난 18일 조간 신문에 ‘경제살리기 서명운동’ 광고가 실렸다. 전경련을 비롯한 40여개 경제단체가 전 국민의(?) 참여를 호소했다. 저런, 광고 실린 날 대통령이 직접 길거리로 나와 ‘1000만 인 서명운동’에 서명하지 않는가! 박 대통령은 담화 발표 다음날 한 신문의 가십난에 실린 내용을 읽어봤어야 한다. “朴 대통령, 국민께 ‘위기 상황 도와 달라’ 요청. 위기 땐 지도자가 국민 끌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들보다 노동개혁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 집권 3년차인 2015년 미래세대를 위해 ‘노동·금융·공공·교육’을 대상으로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노사정위원회가 2014년 12월 2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기본 합의문’을 채택하여 ‘5대 의제 14개 세부 과제’를 다루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약속된 2015년 3월 말까지 최종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한국노총이 2015년 4월 8일 노동개혁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후 9월 15일에야 노사정위원회가 가까스로 협상테이블에 모여 노동개혁을 합의하기로 ‘합의했다.’ 기껏해야 ‘일반해고 요건이나 취업규칙을 바꾸는 것뿐’인데도 박 대통령은 ‘9·15 노사정 대타협’이라며 축배(?)까지 들었다.
노동개혁을 둘러싼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한국노총이 2016년 1월 11일 ‘노사정 대타협은 전면 파탄 났다’고 선언하여 노동개혁은 4개월 만에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한노총은 파업에 들어갈 태세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어젠다 2010 도입하다
‘독일 노동시장 개혁’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줄을 선다. 이를 한 마디로 엮으면, ‘노동개혁은 공짜가 아니고, 결코 공짜일 수가 없다’다.
1990년 통일 후 독일은 실업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2001년 308만 명이던 실업자는 2005년 457만 명으로 증가했다.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이 미래 독일을 맡아야 한다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정도’로 실업자 문제는 정치적으로 비중이 컸다. 1998년 좌파 성향의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정권을 잡았다. 개혁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슈뢰더는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에 힘입어 노동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헬무트 콜 정부가 도입한, 노·사·정위원회 격인 ‘일자리창출연대(Alliance for Jobs)’에 힘입어 노동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통치 1기가 끝나도록 노동개혁은 합의를 얻지 못했다. 그는 외교 정책에 힘입어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슈뢰더는 실업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자리창출연대’를 버리고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이에 관해 슈뢰더는 2015년 5월 21일 전경련에서 가진 <독일 어젠다 2010의 경험과 한국에 주는 조언>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밝혔다.
“노동시장 개혁을 할 때 노동자와 사용자 등 이해 당사자들에게 결정권을 줘서는 안 됩니다.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노조, 사측이 한 테이블에 모여 의논을 했지만, 노사가 모두 적대적인 위치에서 정부에 요구만 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정부가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개혁의 당위성이 충분했기 때문에 ‘하르츠위원회’를 구성해 개혁안을 만들었습니다.”1)
슈뢰더는 침몰하는 ‘독일호 개혁’의 선장에 폭스바겐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페터 하르츠 전 인사담당 이사를 임명했다. 여야 정치인·기업인·노조·학자 등 15명으로 구성된 노동개혁위원회가 2002년 2월 ‘하르츠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슈뢰더는 2003년 3월 14일 연방의회에서 구조개혁안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어젠다 2010에 하르츠위원회가 마련한 노동개혁안이 포함되었다. 슈뢰더는 어젠다 2010 이 의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정치적 배수진까지 쳐가며 그 해 10월 17일 연방의회 표결에 부쳤다.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우파 성향의 야당 기민당이 개혁안에 동의하여 근소한 차이로 어젠다 2010이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노동개혁으로 정권 잃다
정책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노동개혁이 내포한 복지혜택 축소 때문에 실업자들은 물론 노동자들마저 강하게 반발했다. 사민당의 2006년 총선 참패가 확실시되었다. 정치적 위기에 처한 슈뢰더는 2005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야당 기민당이 승리했다. 메르켈은 사민당과 연정을 꾸렸다. 메르켈은 부총리 겸 노동부장관에 사민당 대표를 지명하는 등 장관직 14자리 가운데 핵심 8개 부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내줬다. 기민당의 여러 정책들이 좌파인 사민당 장관 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메르켈은 슈뢰더 개혁안을 고수해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대연정을 택한 것이다.
메르켈은 어젠다 2010 기조를 유지하면서 슈뢰더가 도입한 노동개혁안을 그대로 추진하여 독일경제를 살려냈다. 노동개혁 때문에 정권을 잃은 슈뢰더는 메르켈이 추진한 노동개혁의 성과를 놓고 2012년 ‘노동개혁은 독일경제 회생의 주역’이라고 평가했다.2)
독일은 노동개혁으로 실업률 대폭 감소하고 고용률 또한 엄청 증가
독일 노동시장 개혁의 주목적은 실업률 감소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개혁 내용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한 예로, 독일은 실업자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32개월이던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12개월로 단축했는데, 이는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 이제 우리와 관련이 있는 정책 몇 가지만 소개한다.
• 단시간 근로제 도입하여 고용과 임금 안정을 유지
• 소규모·수공업의 경우 ‘5인 이하’를 ‘10인 이하’로 바꿔 해고 허용 대상을 확대
• 파견근로 자유화
• 주당 노동시간 조건을 삭제하여 주당 15시간 미만의 미니잡(mini-jobs)과 미디잡(midi-jobs)이라는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
• 실업자가 자영업자가 되는 경우 보조
• 창업기업의 경우 기간제 근로계약을 4년간 허용
• 임금교섭 형태를 기존의 산업별 단체교섭에다 기업별 교섭도 추가로 도입
• 실업자나 훈련생을 고용한 기업에 감세와 저리 융자로 10만 유로까지 지원
독일이 노동개혁을 통해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 ‘효자 정책’은 미니·미디잡 도입, 단시간 근로제 도입이다. 현재 미니·미디잡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9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르츠가 밝혔다. 주당 15시간 미만의 미니잡(월급 상한 450유로로 한화 약 54만5천 원)과 미디잡(월급 상한 850유로)은 출산과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실업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정부가 미니·미디잡 근로자들에게 주거비·의료비·교육비 등을 지원한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박근혜 정부는 4대 보험을 정부가 지원키로 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민간 기업의 참여가 저조하여 활성화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시간근로제(short-time work)란, 경기 불황이나 계절적 이유로 근로시간이 감소할 때 사용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연방고용서비스청에 신고한 후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단축 이전 임금의 60∼70%를 지급하면 나머지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제도다. 이를 놓고, OECD는 ‘독일의 일자리 기적(German job miracle)’이라고 표현했다.1)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독일 노동개혁 내용
이제 우리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정책 내용 두 가지를 언급한다.
① 파견근로 자유화: 일자리 55만개 늘어나
독일은 2003년 ‘한 근로자를 2년 이상 같은 기업에 파견할 수 없다’는 기간 제한 규제를 철폐했다. 그 결과 2003년 전체 취업자의 1.2%(2667만 명 중 33만 명)이던 파견 인력이 2014년 2.9%(2835만 명 중 88만 명)로, 55만 명 정도 증가했다.
② 창업 기업은 기간제 근로계약 4년으로 연장: 경력 지속으로 정규직 얻기 쉬워져
독일은 창업기업의 경우 기간제 근로계약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해주었다. 이렇게 되면 기간제 근로자는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되어 정규직 전환이 쉬워지고, 사용자는 경력 쌓은 근로자를 쉽게 고용할 수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가 2015년 12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72%가 정부안대로, 현행 고용기간 2년을 2년 연장하여 4년으로 개혁하는 데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개혁으로 독일 노동시장은 2005년 전후로 그 상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독일 노동시장은 규제가 심하기로 2005년 141개국 가운데 17위였는데(같은 해 한국은 67위) 2013년 157개국 가운데 79위(같은 해 한국은 15위로 악화)로 개선되었다.
독일은 실업률이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05년 역대 최고치인 11.3%를 기록한 후 2015년 10월 4.5%로(OECD 국가 중 낮기로 3위 정도), 10여년 만에 6.8%포인트나 감소했다. 독일은 고용률이 2005년 65.5%였는데 2014년 3분기에 74.0%로(OECD 국가 중 높기로 6위), 10여년 만에 8.5%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는 슈뢰더가 도입하고 메르켈이 추진해온 노동시장 개혁의 성과다.
독일 노동시장 개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독일 노동시장 개혁이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노동계에 주는 교훈을 정리한다.
박 대통령은 ‘읽기나 말하기’로 노동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를 버리고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라는 슈뢰더의 조언을 따라야 노동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팔을 걷어붙이고 과감하게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마거릿 대처는 석탄가루 흩날리는 탄광까지 찾아가 노조 대표와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슈뢰더는 노동개혁을 추진하다가 정권을 잃었다. 노동개혁은 결코 공짜일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팔을 걷어붙이고 야당 대표, 노동계 대표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의회제도에서 국민서명이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기 당이 수권정당이 되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5대 쟁점 법안을 놓고, 문재인 대표는 한 때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에게 크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입법에 반대하지 않겠지만 ‘기간제근로법과 파견근로법’ 개혁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수권 정당 되기를 바란다면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이 ‘기간제근로법’ 논의는 뒤로 미뤘다 할지라도 5대 법안 입법을 통과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 특히 청년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한 비정규직 보호법에 더 이상 매달릴 이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정규직으로 2년 일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게 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2007∼15년간 감소는커녕 56만8천명이나 증가했다. 독일 노동개혁은 문 대표와 노동계가 이제 그만 ‘비정규직 악령’에서 벗어날 것을 밝혀준다.
독일은 창업기업의 경우 기간제 계약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여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쉽게 했다. 또 독일은 파견근로 자유화로 2003∼14년간 일자리를 55만개나 늘렸다. 이 같은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문재인 야당 대표와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며 파견근로 규제 완화를 반대한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이 줄어들고 정규직이 늘어나는가.
노동계는 국가경제가 튼튼해야 노동계도 설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으로 일했을 때 쌍용자동차가 처했던 어려움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쌍용자동차는 잘나가고 있어 해직근로자들을 속속 복직시키고 있지 않는가.
페터 하르츠의 조언: ‘대화하는 자세를 가져야’
노동개혁과 관련하여 페터 하르츠가 한국에 와서 우리에게 남긴 말을 인용한다.
“한국은 매우 강하고 성공적인 국가이며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부지런한 국민이 있는 나라입니다. 노사 모두 ‘원하지 않는 조건이라도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화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감수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2)
주석
1) 이 글은 <미래한국> 2016년 1월 26일자에 발표 예정인 글을 이슈의 중요성 을 감안하여 다소 수정하여 발표하게 된 것임을 밝힌다.
2) OECD(2013), Economic Survey of Germany 2012, p.47.
3) 조선일보는 2015년 5월 19∼20일 이틀간에 걸쳐 국내외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서울 호텔신라에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를 개최했다. 페터 하르츠는 이 자리에 초청받아 ‘하르츠에게 듣는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주제로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과 대담했다. 이 대담은 다음 책에 실려 있다. 조선일보 미래기획부(2015.10), 『미래를 여는 리더』, p151.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2015년 5월 11자 신문에서 “‘病者 통일독일’ 구한 노동개혁… 실업복지 줄이고 ‘비전’을 줬다”라는 페터 하르츠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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