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년간 노동시장 학력과잉으로, 대졸자 79만 명은 실업자 된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이른 아침 일어나기가 바쁘게 거실 커튼을 젖히고 강남역 쪽 삼성타운을 건너다보는 버릇이 있다. 삼성타운의 창문 불빛이 얼마나 밝은가가 궁금해서다. 삼성타운의 창문은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도 으레 3분의 2 정도는 불이 밝게 켜져 있곤 한다. 손꼽히는 세계적 글로벌 기업이니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 아침 삼성타운의 창문 불빛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돌아서자 눈에 들어오는 조간신문의 1면 기사―“청년들은 고용절벽… 향후 10년 노동시장 학력과잉, 대졸자 79만 명은 실업자 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순간 역대 대통령들의 포퓰리즘 노동정책에 분노가 치솟는다. 전두환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노동정책을 살펴보자.
전두환 대통령, 기업별 노조 허용하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정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전두환 대통령은 역대 정권에서 푸대접 받아오던 노조를 ‘기업별 노조’인 경우에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기업별 노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기업별 노조는 일찌감치 일본에서 자리 잡은 노조 조직이다. 노조 조직은 기업별 노조, (전교조 같은) 직업별 노조, (현대·기아차 같은 금속노조가 소속된) 산업별 노조로 나뉜다. 다양한 조직 형태의 민노총은 김대중 대통령이 허용하여 자리 잡게 되었다.
“노동시장 학력과잉”, 노태우 대통령 탓이다
‘노동시장 학력과잉’―누구 탓일까? 노태우 대통령이 선봉장(先鋒將)이다. 그는 1986년 대선 후보 때 전국을 누비며 대학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후 대학설립은 우후죽순처럼 이어졌다. 미국 크기의 100분의 1, 앨러바마주 크기 정도인 한국에 전문대 이상의 고등교육 기관이 한 때 402개나 건재했다. 학력 인플레이션―그 책임은 먼저 노태우 대통령에게 있다.
김영삼 대통령, 노동개혁을 끝내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요즘 일반화되어 있는 글로벌화(globalization)라는 말 대신 ‘세계화(segyehwa)’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면서 금융자율화, 외환자유화, 자본시장 개방 등을 추진했고, 한국을 OECD 회원국으로 가입시켰다. 그는 특히 글로벌 추세에 맞춰 1996년 ‘변형근로시간제와 정리해고제 입법화, 파업 요건 강화, 무노동무임금 법제화,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도입 등 노동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노동개혁 입법이 여의치 않자 1997년 초 급기야 날치기 통과 수법을 동원했다. 그러자 당시 김대중 대표가 이끈 평민당이 기를 쓰고 반대투쟁에 나섰고, 노동계가 합세하여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노동관계법 개정을 백지화시키고 말았다. 그 때 노동개혁이 이뤄졌더라면 오늘날 ‘고용절벽’은 훨씬 낮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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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6월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2기 노사정위원회 위원11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인상 한국노총위원장. |
김대중 대통령, 정규직 과보호로 고용절벽 기초를 놓다
한국은 외환위기로 1997년 12월 3일 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IMF는 우리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구조개혁을 요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구조개혁 차원에서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원회’를 신설했고, 이를 발판 삼아 1998년 2월 ‘정리해고법’과 ‘파견근로법’ 등을 도입했다. 노조 파워에 밀려 28개 업종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파견근로법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정리해고법은 정규직 보호만 강화시켜 ‘고용절벽’의 기초를 놓았다. 현행 근로기준법 23∼26조 및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정규직 해고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정리해고법이 도입된 1998년 OECD는 회원국들의 고용보호 수준을 조사했는데, 한국은 정규직 해고가 어렵기로 OECD 회원국 가운데 포르투갈에 이어 2위였다. 그 후 정규직 해고가 어렵다보니 신규채용이 막혀 청년들은 ‘고용절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도입한 ‘정규직 과보호’는 한국 노동시장을 경직시킨 주범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잘못된 교육정책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노래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며 대학 진학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결과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한 때 82%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노동시장 학력과잉”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노무현 대통령, 비정규직 보호로 한국을 파업공화국 만들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 때 ‘한국 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비해 힘이 약하다’며 노동자 편을 들어 주었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제공한 ‘잘못된 비정규직 통계’를 십분 활용했다. 노무현 대선 후보는 한국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56.7%나 된다며 (이 수치는 과장된 것으로, 노동연구원에 의해 27.3%가 맞는 것으로 후에 밝혀졌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에 가진 대국민 첫 TV 담화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맨 먼저 꺼내들었다.
이를 계기로 2003년부터 한국은 파업공화국이 되었고, 민노총은 노무현 정부 취임 직후부터 현재까지 ‘비정규직 철폐’를 투쟁 슬로건으로 받들어왔다.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25일 동안 조계사에 피신해 있다가 지난 12월 10일 조계사를 나오자마자 ‘비정규직 철폐’ 머리띠를 동여맨 장면을 국민들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감치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턴 월급 수준’의 ‘사회적 일자리’는 그의 퇴임과 함께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퇴임 무렵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계획했는데 이 유산은 이명박 정부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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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0일 한상균 민노총위원장이 경찰에 출두하기에 앞서 관음전을 빠져나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 명분 없는 비정규직 보호법 도입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여는 뭘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동정책은 사실상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전반기에 노동부장관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계획한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만 시행하다가 ‘돈 먹는 하마’만 배불렸다. 어이없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2006년 말경 명분이 없었는데도 30개 항의 ‘비정규직 보호법’을 발표하여 노동시장 경직화에 일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읽기와 말하기’ 대신 야당·노조대표와 담판 벌어야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들보다도 노동정책에 관심이 많았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고용률 올리기, 정년 연장, 공공부문 일부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부문 채용 늘려 4명 중 1명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뽑기,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조정, 임금체계 개편, 임금피크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등 세기에도 힘들 만큼 노동정책을 풍성하게 제시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차에 들어와 미래세대를 위해 ‘노동·금융·공공·교육’을 대상으로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맞춰 노사정위원회가 2014년 12월 2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기본 합의문’을 채택하여 ‘5대 의제 14개 세부 과제’를 다루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약속된 2015년 3월 말까지 최종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노총은 처음부터 불참한 가운데 한국노총이 2015년 4월 8일 노동개혁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후 한국노총의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 9월 13일에야 노사정위원회가 가까스로 협상테이블에 모여 노동개혁 합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합의된 내용이란 ‘일반해고 기준 완화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능케 하는 취업규칙 변경’이다. 따지고 보면 현 시점에서 노동개혁은 사실상 이루어진 것이 없다.
왜 그럴까? 첫째, 노동정책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든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정년 60세 의무화’다. 이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임금피크제 시행’을 전제로 했어야 한다. 임금피크제 시행은 공공부문은 마무리되었지만 민간부문은 아직 노사정위원회 협상테이블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정년 60세 의무화’가 만들어낸 ‘고용절벽’은 무너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둘째, ‘통상임금’ 문제를 가볍게 보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 후 방미했을 때 미국 GM 임원이 통상임금 해결을 부탁하자 즉석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장면을 TV로 보고 있던 나는 박 대통령의 대답이 너무 쉽다고 더럭 겁이 났다. 대통령은 ‘외교관’이 되어야 하는데! ‘고정적이고, 정기적이고, 일률적인’ 보너스 같은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노조는 머지않아 김치수당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들이댈 것이다. 사용자는 몫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기업을 경영해갈까?
나는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읽기나 말하기’ 자세를 버리고 마거릿 대처처럼 팔뚝을 걷어붙이고 야당과 노조대표들과 담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야당과 노조의 ‘저항절벽’이 무너뜨려지리라고 기대한다.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올 데만큼 와버렸다!
역대 대통령들의 포퓰리즘 노동정책으로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올 데만큼 와버렸다.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심하기로 2013년 157개국 가운데 15위로, 아프리카 미개국들이나 남미 독재국가들 수준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한국 노동시장 규제가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왔다는 데 있다. 한국 노동시장은 규제가 약하기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123개국 가운데 58위였는데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141개국 가운데 107위로,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152개국 가운데 134위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157개국 가운데 143위로(심하기로 15위) 순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지나친 노동시장 규제 때문에 한국경제가 가라앉고 있다. 머지않아 20대 총선과 18대 대선이 치러진다. 우리에게 마거릿 대처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