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음악회 성공을 시발로 야나기 가네코(柳兼子)는 그 후 수차례 조선에서 음악회를 열어 남편 무네요시(宗悅)의 조선민족미술관 건립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인간에게 다가오는 생의 마지막을 피할 자 어디 있으랴. 1961년 어느 날 남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씨가 눈을 감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7년째인 1968년 코스모스의 계절. 가네코(兼子)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시모노세키(下關)가 아닌 김포공항을 통해서다. 장장 34년만의 일이다. 5박 6일의 한국 방문 중 그녀는 남편의 발자취와 흘러간 메아리를 떠올리면서 희망 가득한 한국에 감격했다.
노래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나이와 관계가 없었다. 그녀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이화여대에서 미니 음악회를 열었다. 탱자나무 가시처럼 세월이 아팠을까. 그녀가 부른 노래는 기타하라 하쿠슈우(北原白秋, 1885-1942: 시인 겸 아동작가)가 작사한 소박한 가사의 <탱자나무 꽃>이었다.
"탱자나무 꽃이 피었네/ 하얀, 하얀 꽃이 피었네/ 탱자나무 가시는 아프네/ 푸른, 푸른 바늘 가시라네...."
34년 만에 이루어진 한국 방문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한강에 홀로 앉았다. 마음으로 찾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시인 남궁벽이다. 남궁벽은 그녀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순수했고, 가장 고귀한 영혼이자 가슴 속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강물을 타고 떠내려갔다.

남궁벽과 가네코(兼子)의 사랑은 사실입니까?

작가 다고 기치로(多胡吉郞, 53세)씨는 사실적 근거가 있다고 했다. "남궁벽(南宮壁) 시인과 가네코(兼子) 씨의 사랑이 문장으로 남겨진 기록 속에 직접 '사랑'을 증언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가네코(兼子) 씨가 1921년 한국 공연에서 노래를 불렀던 곡(曲)의 세계와 남궁벽 씨가 '폐허'의 창간호에 게재한 시의 세계에 근접성, 공통성을 나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꿈을 키우고 신뢰를 바탕으로 지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부를 때는 남궁벽 씨의 시를 연상하거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불렀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 남궁벽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했다. "상상이라고 하면 약간은 상상화(絵空事)같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나는 근거가 되는 재료를 깔고 추리하고 추측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인간적 동지의 사랑(人間愛), 남녀 간에 키우는 가장 아름다운 우정이라고 이해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남궁벽 씨는 시인이기도 했지만, 음악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20대부터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근대 일본에서 몇 안 되는 한국의 이해자로서 영웅적인 전설처럼 언급될까?, 또는, '비애의 미' 비판 등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한국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규탄 받을까? 극단적인 논조가 두드러져 나 자신도 시계추처럼 흔들림 속에서 미혹하며, 이 땅에서 '리얼리티'를 얻는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만, 무네요시(宗悅)가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가장 높고 위험한 '벽'이 우뚝 선 시대에, 그 '벽'을 넘으려고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스스로 매료되고 있었습니다. '벽을 넘어서'라는 것은 PD시절부터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중요한 주제이고, 작가가 된 이후에도 나 자신을 지탱하는 기둥(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나는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음악이 음악을 넘는 순간'에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네요시(宗悅)와 한국과의 관계가 지금까지 여러 번에 걸쳐서 언급되면서, 그의 부인인 알토 가수 야나기 가네코(柳兼子)의 한국 공연에 대해서는 대부분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조선에서 어떤 노래를 불렀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있는지 등 아무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1920 년)의 동아일보를 보면 무네요시(宗悅) 이상으로 가네코(兼子)의 활약이 크게 거론되어 한국 사람들로 부터 환영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99년 이후,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10 년간의 유럽 체험이 더해져 음악에 보다 깊게 익숙해지는 가운데 무네요시(宗悅)와 한국의 관계를 부인인 가네코(兼子)의 관점을 통해서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뭔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미술'의 세계에서만 언급되어 온 무네요시(宗悅)와 한국의 관계를 부인인 가네코(兼子)를 통해서 '음악'의 세계로부터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한국의 독자들께 오해 하시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자인 제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탄압하고 유린했던 암흑의 시대에도 좋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저자의 집필 의도에서 크게 벗어난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로 부터 면죄부를 얻기 위하여, 나는 이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닙니다. 한·일 사이에서 가장 엄격한 대립이 있었던 시대에도 국가를 넘어 민족을 넘어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사이에 맺어진 꿈과 인연을 인간적인 드라마로써 그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번 나의 작품은 일본과 한국이 '벽'을 넘어서기를 바라면서 쓴 것입니다. 동시에, 문학과 음악의 '벽'을 넘겠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벽'을 넘어서 다가오는 인간의 확실한 드라마를 나는 믿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관련한 책을 쓰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앞으로도 사실을 기초로 한 역사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과 관련한 것은 하나의 큰 기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일, 일·한 사이에서만 발상(發想)하고 있으면 작품도 좁아집니다. 패턴화된 생각에 빠지기 쉬울 수 있으므로 넓게 펼쳐진 가운데 그야말로 '벽'을 넘어선 곳에서, 인간의 진실을 응시하고 싶습니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찾은 신유한(申維翰)과 그의 일행을 맞이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88-1755),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에 이름을 떨친 천재 무용가 최승희,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 활약한 소설가 다치하라 마사아키(立原正秋/한국명: 김윤규, 1926-1980),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시인 윤동주(尹東柱) 등 여러 테마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시모노세키(下關)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하는 시모노세키(下關)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으신지요?

"나는 도쿄에서 출생하여 도쿄에서 성장했지만, 1980년에 NHK에 입사하여 처음 부임한 곳이 기타규슈(北九州)였습니다. 저는 4년간을 거기서 살았습니다, 시모노세키는 간몬해협(関門海峡)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인접 도시라서 자주 방문했습니다. 또한,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경우 잘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는 관부(関釜)페리를 탔습니다, 그래서 시모노세키는 나름대로 익숙한 도시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깊은 관계가 있는 도시이며, 재일 교포도 많은 곳입니다. 도쿄에서 성장한 제가 기타규슈에 가지 않았다면 한국을 문자 그대로 '이웃 나라'로, 어디까지 의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기타규슈(北九州), 시모노세키(下關)와 같은 곳에 생활하면서 사람도 물건도 교류가 활발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항상 반복되는 '가깝고도 멀다'는 일·한 이미지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국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관념적이 아닌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왕래하는 이웃 관계로 보는 '눈(目)'은 젊은 시절, 기타규슈(北九州)에서 생활하면서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한·일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 하나요?

"나는 정치가도 외교관도 아니기 때문에 '일·한, 한·일 관계'라는 큰 보자기를 펼쳐서 평론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가 항상 노력하고 있는 것은 정치의 차원, 경제의 차원이라는 것을 넘어 '인간 차원'에서 발언하고 싶은 것입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톱뉴스는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의 견실한 만남과 교류의 더미가 곧 큰 물결이 되어 정치의 차원에서 가로막고 있는 높은 '벽'을 넘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역시=야하리'라는 선입견과 고정 관념을 버리고 시작하는 것이 훨씬 마음에 와 닿을 것 같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집이자,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입니다. 선입견과 고정 관념에서 색안경(色眼鏡)을 끼고 무엇을 보는 것은 눈을 흐리게 합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진지한 상호 이해에 있어서 '마음의 벽'이 될 것입니다."
다고 기치로(多胡吉郞) 씨의 말에는 힘이 들어 있었고. 마디마디에 정이 넘쳐났다. 그는 분명 한·일 관계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는 작가였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다'는 윤동주의 삶이 그토록 마음에 들었을까? "윤동주를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긴 여운을 남겼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