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모(歲暮)이야기 : 월간조선

사람들은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올 한해는 다른 해보다 더 다사다난 했다. 우리나라에서만 아니라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세월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파도처럼 출렁이면서 역사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허형만(1945년생) 시인은 「망망대해 눈물 꽃 피워내는 파도를 보면, 우리네 삶이란 눈물처럼 따뜻한 희망이다」고 했을까?
아무튼, 「세밑」을 맞으면 왠지 쓸쓸함과 아쉬움에 젖어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세밑」을 일본에서는 세모(歲暮)라고 한다. 일본의 세모(歲暮)는 어떠할까?

일본의 「크리스마스」분위기 고조(高調)되다.

일본인들의 종교는 비빔밥(?)이다. 한 사람당 2~3개의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편리한 나라다.
크리스마스에 교회(敎會)를 가는 일본인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위기는 최근 들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즐비하다.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는 때마침 일요일인지라 거리마다 인파(人波)가 넘쳤다.
일본경기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西) 일본 최대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후쿠오카(福岡) 캐널시티(Canal City)’의 ‘크리스마스’는 일본의 경기 회복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넘쳐나고, 양손에 매달린 선물꾸러미가 땅에 닿을 정도였다.
이 ‘캐널시티’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후쿠오카 지쇼(福岡地所)의 부사장 토 겐이치(藤賢一, 57세)씨는 “10년 만에 처음 느끼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지난 토･일요일에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고 했다. 이 ‘캐널시티’는 연건평 5만 평의 복합 상가 건물이지만 영화관, 뮤지컬 극장,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오락 공간이 상업 시설보다 더 많기로 유명하다.
또 강물을 끌어들여서 건물 사이로 물이 흐르게 하여 웅장한 음악과 워터쇼(Water Show),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트리(일루미네이션)’가 한데 어울려 시민들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거래(去來)의 장소가 아니라 즐기고, 느끼면서 기쁨 속에서 쇼핑을 하도록 하는 발상(發想)의 전환이 시민들로 박수를 받는다.

오세보(お歲暮)의 참뜻은?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연말 행사 중 의미 있는 것을 또 하나 든다면 바로 오세보(お歲暮)다.
이 ‘오세보’는 연말 「세밑」에 친지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전통적인 풍습중의 하나다. 이 ‘오세보’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중국은 1월 15일 을 상원(上元), 7월 15일을 중원(中元), 10월 15일을 하원(下元)으로 하여, 천신(天神)께 제사를 지낸다. 물론 음력이다.
일본은 이러한 중국의 풍습을 들여와 조상을 봉양하는 행사 즉, 세모(연말)와 중원(백중)에 선물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오세보’는 정월(正月, 설)에 각 가정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때 쓰는 물품을 ‘이웃친지나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는 무사가 조직(組)을 구성할 때 그의 우두머리에게 선물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또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1)에는 관리들에게 고가(高價)의 선물을 바쳐서 자기가 하는 일에 도움을 받는 뇌물적(?)인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의 뜻은 부모, 친척, 스승 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순수성이 있었다. 따라서 ‘오세보’는 나름대로의 금액기준(三和銀行 조사)이 있다.

• 친구, 지인, 스승        3,000엔(24,000원)
• 거래선 관계자          3,000엔(24,000원)
• 연장자, 선배           4,000엔(32,000원)
• 중매인                 5,000엔(40,000원)
• 양친, 친척, 상사        5,000엔(40,000원) 등이다.

이를 품목별로 보면 주류, 식료품 등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실용적인 물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오세보’는 전달자가 직접 찾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전달해야했지만, 요즘은 시대가 변하여 택배회사의 몫이 되었다.
전달 시점도 12월 초에서 20일 사이에 끝나는 지역이 많지만, 일부 지역은 말일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카다역 상가에서 주류 판매업을 하고 있는 이노구찌 스미에(井口壽美江, 61세, 여)씨는 “큐슈지역은 12월31일 까지 ‘오세보’의 배달이 이어진다.” 면서 “지난해보다 판매가 다소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좋아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노구찌(井口)씨는 “오세보의 으뜸 품목은 역시 주류(酒類)다.” 고 자신의 업종을 추켜세웠다.

마음의 선물이 중요

이웃친지들과 정(情)을 나누는 선물의 전달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선물에 다른 뜻이 들어 있어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오이타 현(大分)의 공무원인 아베 유이치(安部維一,53세)씨의 말이다.
“공무원들에게는 ‘오세보’의 전달이 금지되어있습니다. 아름다운 풍습(風習)이라고는 하지만 업무와의 관련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 했다.
민간기업의 경우도 업무와 관련된 ‘오세보’의 전달을 금지하고 있다. 또 회사에 직접 배달된 ‘선물’은 추첨을 통하여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렇다. 아무리 좋은 풍습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서, 목적에 따라서, 변질 될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따뜻한 마음의 선물’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보내자. 며칠밖에 남지 않은 「세밑」이지만 아직도 늦지 않다.
바로 지금이다. (스펜서 존슨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