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라 왔다. 일본 규슈의 오이타(大分) 현 의원의 부인 이노우에 유코(井上裕子, 56세)라는 사람이 보낸 편지였다. 이노우에(井上)씨는 우리나라로 치면 도(道)의원 부인이다. 그녀는 언제나 명랑하고 꾸밈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가을의 문턱입니다. 얼마 전까지 여름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습니다만, 이제 바람도 제법 시원해 졌습니다. 지난 번 서울에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실미도, 천국의 계단, 하나개 해안에 데려다 주신데 대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해변의 아름다움, 드넓은 바다, 갈매기들의 날개 짓.........모두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산마을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바다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임진각에 갔을 때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 철조망, 자유의 다리, 총을 들고 서 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분단된 나라의 아픔’ 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왠지 모르게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경의 엄격함도 함께 느꼈습니다.”

쓸쓸한 한류의 잔영들
 
이노우에(井上)씨 부부가 살고 있는 가미츠에(上津江)라는 곳은 오이타(大分) 현에 속해 있지만, 후쿠오카(福岡)에서 더 가깝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로 달리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이 산골마을은 인구가 1,100여명 쯤 된다. 이노우에 신시(井上伸史, 60세)씨는 이 산골마을에서 18년간 ‘손죠우(村長: 우리나라의 면장 급)’를 지낸 사람이다. ‘손죠우(村長)’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8년 전 오이타(大分)현 의원에 도전한 그는 이번에 3선에 성공했다. 그는 필자와 오랜 동안 참으로 격의 없이 지내온 사이다.
모처럼 시간이 났던지 이들 부부가 서울에 왔다. 선거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인의 속셈(?)은 다른 데에 있었다. 한류의 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2년 전 남이섬, 춘천의 준상이 집 등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돌아보고 감격하였던 그녀다.

 필자는 그들을 데리고 인천공항에서 가까운 무의도로 건너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배를 타고 건너는 것도 재미있어 했다. 무의도(舞衣島)라는 이름은 ‘옛날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했다. ‘실미도’가 보이는 실미 해변과 ‘천국의 계단’ 드라마의 세트장이 있는 하나개 해수욕장에 안내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실제로 보여줄 것은 없었다.
‘저 섬이 바로 실미도입니다.’
‘이 곳이 천국의 계단 세트장입니다.’
 여름의 끝자락이라서 인지 사람들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때마침 일본 관광객 5-6명이 ‘어디서 오셨나요?’ 하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이들이 무엇을 보았을까?’
 ‘실미도’와 ‘천국의 계단’ 세트장이 명성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인기의 잔영(殘影)’들로만 느껴졌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는 이노우에(井上) 부인의 몫이었다. 남편 이노우에(井上)씨나 동행한 아베 유이치(阿部祐一, 53세)씨는 ‘먼 나라의 이야기’인 듯 드라마의 내용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가미츠에(上津江)’ 촌장(村長)으로 정계 입문

특별한 감동을 얻지 못한 채 갈매기들에게 작별을 고한 우리는 무의도를 빠져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정치 얘기로 바꾸었다.
필자는 그에게 정치인이 된 동기에 대해서 물었다. 비교적 과묵한 그를 제치고 부인이 대답했다.
“저희 ‘가미츠에(上津江)’의 인구가 1970년에는 3,000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댐이 생기고 마을이 수몰되면서부터 인구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마을이 쓸쓸해졌습니다. 모두가 도시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어야지’ 마음먹고 산골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가미츠에(上津江)’ 마을의 ‘손죠우(村長)’ 선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간 이 마을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자고나면 보따리를 들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울컥 솟아올라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또박또박 이어진 부인의 말투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는 50대의 아줌마가 아니라 선거 유세를 하는 듯 힘이 있었다.

하루에 4만보 걸은 남편 도우미

음악대학 출신인 이노우에(井上) 부인은 이 산골마을에서 어린이들에게 피아노, 전통 북 등 장르를 넘나들며 지도하고 있다. 물론 자원봉사의 성격이 짙다. 선거기간에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만보기의 숫자가 하루에 4만을 넘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매일 아침 신문의 부음(訃音) 기사를 체크하고, 주민의 여론을 분석하는 것도 부인의 몫이었다.
“정치인의 아내는 참으로 피곤합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그녀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화장이라고는 모르고 사는 이노우에 부인. 남대문 시장에서 싸구려 옷을 사면서도 너무나 흡족해하는 모습에서 ‘피곤해도 행복하다’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가미츠에(上津江)’ 산골 마을은 2005년 3월 22일 ‘히타시(日田市)’로 편입되었다. 마을이 행정구역상 도시로 변한 것이다. 이노우에(井上)씨의 노력이 컸다. 그는 “주민들이 도쿄나 오사카 등에 가서 자기 주소를 쓸 때 ‘00무라(村)’이라고 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시(市)로의 편입 운동에 앞장섰다”고 했다. 시골 마을을 버리고 도시를 향해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무라(村)‘라는 이름이 없어진 사실에 대해서는 못내 아쉬워했다.
 임업(林業)을 주로 하는 이 지역은 통나무를 생산하여 국내 및 해외에 수출한다. 그는 통나무를 판매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오이타(大分) 현의 ‘일촌일품’으로 지정된 통나무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경주의 ‘도투락 월드’ 내에 청소년숙박시설을 지어서 시(市)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참마음(眞心)을 지녀야 유권자가 지지 한다

이노우에(井上) 의원은 26년 간 정치인 생활을 하고 있는 직업 정치인이다. 그는 앞으로도 정치인으로 살 것이다. 그에게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신조가 무엇이냐고 묻자 ‘진심(眞心)’이라고 했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眞心)입니다. 일시적인 인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가 아니라 「현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유권자에게 참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그의 선거 전단지에 들어 있는 “배려의 정치”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그가 비록 산골 마을에서 작은 정치를 시작하여 오이타(大分) 현 의원(3선)을 하고 있지만, 생각하는 바나 마음가짐은 크고 넓었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
국민에게 봉사하는 대통령이 탄생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