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의 여름은 무척 뜨거웠다. 태풍의 영향인지 바람이 제법 불었으나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쿄(東京)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고 음성 메시지만 남겼을 뿐 그와 직접적인 통화는 없었다. 일본의 전문지(專門紙) 중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일간건설공업 신문사’ 사장 이츠카 히데키(飯塚秀樹, 49세) 씨의 얘기다. 업무적으로 특별히 그를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일본의 경제 ‧ 건설 전반에 대한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국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한국에 자주 오는 사람이 아닌데도 한국 노래를 썩 잘 부른다. ‘사랑의 미로’ ‘동행’ ‘아파트’ 등의 노래는 가사도 다 외우고 있다.

“아! 지금 손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30분 후에 다시 한 번 전화해 주세요. 참 어느 호텔입니까?” 그와의 짤막한 대화 후 필자는 1시간 쯤 지나서 긴자(銀座)의 한 호텔에 들어섰다. 그런데 호텔 로비에는 이츠카(飯塚) 사장과 편집국장, 비서실장까지 총 출동하여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가지 물을 것이 있다’고 했더니 편집국장까지 대동하고 온 것이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이다. 발행 부수 33만의 신문사 사장이지만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할까? 모든 일정을 뿌리치고 뛰어 온 것 같아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커피숍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내년에 80주년을 맞는 전문지(專門紙)

“저희 신문사가 내년이면 80주년이 됩니다. 자동차, 섬유 등 모든 전문지 중에서 저희 신문이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서 남보다 앞서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경영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일간건설공업신문’은 1928년 10월 15일(昭和 3년), 그의 할아버지(飯塚傳 氏)에 의해서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철도신문」이었단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다 그런 법. 언론통제법에 따라 ‘일간토목건축신문’으로 통합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츠카(飯塚)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45년 10월, 신문을 복간하여 격일간 타블로이드 4면으로 재출발하였다.
 “풍설(風雪)의 역사 속에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건설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는 그의 말에서 낙천적인 자연인이 아닌 경영자의 결연함이 엿 보였다. 지금의 제호인 「일간건설공업신문」은 1953년에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73년 본사를 도쿄의 교바시(京橋)에서 신바시(新橋)로 이전하였다고 했다.

 이 신바시(新橋)는 1872년 일본 최초의 기관차가 시커먼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이 역에서 출발하여 요코하마(橫浜)까지 29킬로미터를 달리게 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철도 신문으로 탄생한 「일간건설공업신문」이기에 이 신바시(新橋)에 새 둥지를 틀었을 것 같다.
 이츠카 히데키(飯塚秀樹) 사장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8월에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건설성 출입기자 시절에 만나

필자와  이츠카 히데키(飯塚秀樹) 씨와의 만남은 1988-89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기업에서 근무하던 그는 1987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일간건설공업신문사에 입사하여 신문기자의 길을 걷는다. 기자로서의 첫 출입처가 일본의 건설성(建設省)이었다. 그 때가 공교롭게도 WTO에 의한 시장개방 압력으로 미국의 벡텔, 파슨스 등을 비롯하여 한국의 현대, 대우, 삼성 등 유수의 건설 회사들이 일본의 건설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고, 일본 건설인연합회의 특별 회원이 되었다. 그 때 건설 전문지인 일간건설공업신문이 주축이 되어 미국과 한국건설업체 CEO들의 특별 인터뷰 기사가 지면을 장식했고, 한국 특집 판까지 기획하게 되었다. 홍보담당인 필자와  이츠카(飯塚) 씨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 졌다.

“제가 건설업계를 떠났습니다만, 요즈음도 한국 업체들과 교류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한국 건설업체가 일본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기술력의 차이일까요?”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상호 메리트를 찾지 못해서 일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봇물을 이루던 한국건설업체의 일본 건설 면허 취득이 하나의 요식행위로 끝나버린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일본의 문턱이 높은 것도 있지만 우리 업체 스스로도 「win-win」 전략을 강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가 얼마 전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15년만의 방문이었습니다. 서울이 참으로 많이 변했더군요. 하늘을 찌르는 고층 빌딩들은 도쿄보다 더 높아 보였습니다. 한국의 토목, 건축의 기술력이 모든 면에서 발전한 것이지요.”
 그는 한국과 일본의 건설 기술력에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한국의 IT기술은 일본 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면서 해외건설시장에의 공동 진출을 강조했다.

‘청계천 복원은 놀라운 일’

그는 청계천의 복원을 보고 한국인의 저력을 느꼈다면서 “대-한민국, 짜잔짠 짠짠”의 구호를 외쳤다. 커피숍의 손님들이 쳐다봐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필자에게 선물로 내민 것이 「청계천 복원」이라는 일본어 책이었다. 그의 회사인 일간건설공업신문사에서 2006년 1월에 발행한 것이었다.
그 책의 부제(副題)는 ‘서울시민 갈등의 이야기(物語)’로 되어 있으며 한글로 ‘프로젝트 청계천 갈등관리전략’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갈등관리’라는 것은 공공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공적시책의 실시에 관련한 각각의 주체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대립을 사전에 예방하고, 발생후에 정확히 대처해서 해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다. 일본어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으나 원문의 취지를 살리기 위하여 직역하였다.」고 쓰여 있었다.
결론적으로 청계천(淸溪川)은 ‘서울시민이 하나가 되어 이룩한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문명전환인 이 사업에서 서울시민은 고뇌, 고통, 의논, 난삽(難澁)을 선택해서 역사적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었다’고 했다.
이츠카 히데키(飯塚秀樹) 사장은 이러한 한국인의 탁월한 선택을 일본에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발간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열정’이라는 출중한 능력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이 열정을 하나로 모으는 노정(路程)이 멀고도 험하다.
 권연옥 교수는 ‘인간관계론’에서 “오늘날 개인들 사이의 대립과 경쟁의 관계를 우호와 협조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이 앞으로의 공동과제다”고 했다.
개인의 대립과 경쟁이 사회의 갈등으로 비화되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무더운 도쿄(東京)에서 이츠카(飯塚) 씨와의 대화를 통해 느꼈던 작은 소회(所懷)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