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역사의 얼굴...일본은? : 월간조선

2009년에 발행되는 5만 원, 10만 원 권의 초상 인물 후보가 10명으로 압축되었다는 뉴스가 나오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열분 모두 훌륭하신 분이다. 범인(凡人)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덕망과 인품, 학식 등을 두루 갖추신 분들이다. 한국은행의 이승일 부총재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번영의 상징이자 후세대까지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면서 누구를 뽑을지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퇴계, 이율곡 등이 기존의 화폐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李) 씨는 아예 배제했다는 얘기다. 지역 안배, 성 안배, 종친회 안배....안배 공화국(按排共和國)이라고 해야 할 일이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일본의 1만(萬) 엔짜리 지폐에는 일본 메이지(明治, 1868-1911) 시대의 계몽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초상이 들어 있다. 1834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1854년 일본의 나가사키(長崎)에서 난학(蘭學: 네델란드어)을 배웠다. 그리고 1858년에 에도(江戶: 현 도쿄)에서 난학숙(蘭學塾)을 연 사람이다.
1860년 막부(幕府)의 미국파견 사절단 수행원, 1861-1862년 유럽 6개국 파견 사절단, 1867년 미국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을 다니면서 새로운 서구문화를 흡수하고 돌아와 일본의 봉건주의를 깨트리려고 앞장선 인물이다.
1869년 세계 각국의 역사와 정치제도를 소개한 ‘서양사정’을 간행하여 일본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일찍이 교육의 중요성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난학숙(蘭學塾)을 게이오숙(慶應塾: 현 게이오대학)으로 개칭하고 교육과 언론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메이로쿠사(明六社)’ 동인으로서 ‘학문의 권유(1872-96)’를 저술하였다.
1882년 ‘시사신보’를 창간하였으며, 일본의 변혁과 부국강병, 관민조화론, 남존여비의 철폐, 여성의 해방 등을 주장하여 민주주의 및 일본 근대문명 발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학문의 권유’는 수리학과 독립심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의 유명한 계몽서인 ‘학문의 권유’라는 그의 책은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서양 문명을 수입하여 소개하는 책을 쓰던 그가 자기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다. 그 책에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도 않았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두 같은 위치에 있으며, 상하귀천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봉건적 신분제도를 비판하고 인간의 평등과 독립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일상에 가까운 실학을 서양에서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川村眞二의 ‘福澤諭吉’).

후쿠자와(福澤)는 또 서양의 두 가지 원리, 예를 들면 유형에 있어서는 수리학(數理學), 무형에 있어서는 독립심(獨立心)을 일본에 도입하였다. 그의 ‘학문의 권유’도 수리학과 독립심의 의의를 일반 민중에게 설파한 것이다. 수리학은 오늘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일부를 포함한 「實學」이다. 실학(實學)에 의해서 일신(一身)이 독립하고, 일신의 독립에 의해서 일국이 독립한다는 설(說)이다.

후쿠자와(福澤)의 평가는 현재 일본에서도 양분되고 있다. 근대 합리주의적 측면이나 독립자존의 정신은 높게 평가 받고 있지만, 국가주의, 제국주의적 측면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탈아론(脫亞論)의 주창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근대 일본의 문명개화를 선도한 계몽사상가로 일본에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정 반대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탈아론(脫亞論)을 통해서 서구 열강과 같은 대열에 끼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아시아 침략을 주장했다.
교토(京都)대학 문학부 ‘일본사철학사 연구실’ 자료에도 “관민 조화와 함께 강력한 국가를 세워서 구미(歐美) 열강으로부터 일본의 독립을 도모하고, 아시아의 악우(惡友: 나쁜 친구)를 사절해서 서양 열강의 대열에 끼는 ‘탈아론(脫亞論)’을 제창하였다”고 쓰여 있다.

후쿠자와(福澤)와 우리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1882년 박영효를 비롯한 제3차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오자 조선의 문명개화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다. 그는 조선의 문명개화를 위해 신문의 발행을 제의 한 것이다. 그가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주겠다고 자청한 것은 어디가지나 일본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의 개화파를 후원하여 조선의 문명개화를 도모함으로써 청나라를 배제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신장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일본의 국익을 신장시킬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다(채백의 ‘신문’).

배움을 위하여 처절한 삶을 살다

가와무라신지(川村眞二)는 ‘후쿠자와 유키치(이혁재 옮김)’라는 책을 통해 그의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1901년 2월, 6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삶의 전반기 34년은 에도(江戶) 막부정권 말기의 봉건 세상에서, 후반 34년은 문명개화 세상이라고 하는 메이지 시대 속에서, 한 몸으로 두 삶을 살았다.”

후쿠자와(福澤)는 “나의 인생 역정을 뒤돌아 봤을 때 유감스럽게도 허망했던 일은 하나도 없다. 모두 유쾌한 일 뿐이었다”고 술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배움을 위하여 처절한 삶을 살았다.

“세상에는 무서운 것이 많다고들 하지만, 암살만 빼고 빚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는 그의 말 속에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삶의 고뇌가 들어 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문을 위해 그 한 몸을 불살랐다는 사실은 국적에 관계없이 본받을 만한 일이다.

“더 이상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공부했다”는 그는, 난학과 영어학을 처절하게 공부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인재육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이 어우러져 일본 최고의 ‘역사적 얼굴’이 된 후쿠자와(福澤)는 지금 이 순간에도 1만 엔짜리 지폐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누구를 10만 권속에서 살아 숨 쉬도록 해야 할까?
인기나 안배에 치우치지 말고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인물이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 그분 -’이라고 묵시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