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칼럼

【서봉대의 ‘되짚기’】 갈 길은 멀고… 尹대통령과 국민의힘 活路는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3월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전 김중권 비서실장으로부터 회의 자료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조선DB

정치판은 세() 대결의 장()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지지 세력의 외연확대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DJYS가 정치판에서 리더로 부상했던 것이나, 대권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회자돼 왔던 동진(東進)이니 서진(西進)이니 하는 것들도 이들이 만들어 냈던 외연확대 전략이다. 그러나 성과를 제대로 내는 건 쉽지않았다. 하물며 기존의 지지세력조차 분열될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험난해지기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4·10총선에서의 집권당 참패로 위기국면에 처해있다. 탄핵 저지선만을 가까스로 넘겼을 정도로 지지기반이 축소돼 버렸다. 거대 야당의 벽에 막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야당 측은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몰아붙이며 탄핵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23년 앞둔 차기 대선정국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다.

 

윤 대통령과 집권당에는 지지세 확산이 절박한 시점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둔 DJ의 경우 대권 4수이자 마지막 도전이었기에 절박했다. 소속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김중권 등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지역의 정치인들을 잇따라 영입, 세 불리기에 나섰다. 이른바 동진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안팎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추스르며 보수 측 JP TJ(박태준)와도 대선공조 체제를 구축, 충청과 영남 쪽으로 지지 세력을 더욱 확대했고 결국 대권을 차지했다.

 

3당 합당을 통해 거대여당의 리더가 됐던 YS도 서진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대통령 임기 후반기였던 1996년 총선을 앞두고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DJ와 영입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기도 했다(당시에는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직했다). YS는 민중당 출신 정치인 등 진보나 중도 성향 인사들에게, DJ는 민정당 출신의 중진 등 보수성향 인사들에게 공을 들였다.

 

양김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지기반조차 제대로 다지지 못함으로써 나락으로 떨어졌다.

 

01242013121601333074.jpg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박 전 대통령도 지지층의 외연확대에는 적극적이었다. 후보시절 동서화합을 연결고리로 동교동계 정치인들 상당수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집권 후에는 이들을 청와대 비서실장, 국민대통합위원장, 홍보특보 등으로 잇따라 임명, ‘서진을 추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집권 4년차였던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후보 공천과정에서 비박(박근혜) 학살논란을 초래했을 정도로 내분을 격화시켰으며, 결국 선거를 전후해 비박 인사들의 탈당이 잇따르는 등 여권 분열이 본격화 됐다.

 

이같은 상황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로 이어졌고 결국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탄핵 사태를 초래했다. 곧바로 대선정국이 전개됐고 새누리당은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 기반마저 허물어졌던 상황이었기에 무기력했던 것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친박계 공천학살논란의 파장은 달랐다. 탈당과 친박연대 창당사태로 보수분열이 가시화됐으나 이들의 구심점인 박 전 대통령이 당내에 잔류해 있었기에 총선 후 복당과정을 거치면서 수습됐고 정권재창출로 이어졌던 것이다.

 

윤 대통령도 후보시절부터 지지층의 외연 확대를 위해 적극 나섰다. DJ정부에서 요직을 지냈던 인사들의 지지선언도 잇따랐고 대선 기간에 정권교체동행위원회를 후보직속으로 설치,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호남 정치인 등을 다수 합류시켰다. 대통령 취임 후 국민통합위원회로 명칭을 바꿔 DJ정부 때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공동대표를 지냈던 김한길을 위원장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01242023091604372184.jpg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1년 11월 21일 서울 용산구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 사무실에서 회동하고 있다. 김한길 전 대표는 윤석열 대선 후보 직속으로 설치되는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사진=국회 사진기자단

 

하지만 집권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정부출범 직후부터 친윤(윤석열)과 비윤 간의 갈등이 고조돼 왔으며 당대표까지 탈당하는 사태에 직면,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게 된 주요 원인들 중 하나로 꼽혔다. 총선 압승에 고무된 야권에선 대통령 탄핵으름장까지 놓고 있는 상황이다.

 

흔들렸던 지지기반조차 추스르지 못하면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냥 여소야대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인 힘을 갖게 된 거야(巨野)체제에 맞서 국정을 운영한다는 건 지난한 일이다. 대통령 임기를 절반도 못채운 상황이기도 하다. 갈 길이 멀고 험난해 보인다.

 

집권당을 쇄신하는 게 시급하다. 무엇보다 비윤 인사들을 끌어안고 이들의 활동공간을 넓혀줘야 한다. 집권당과 대통령실의 관계도 일방 통행식에서 탈피,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대통령은 양김 때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총재가 아니라 평당원이기도 하다. 이런 수직적 구조를 깨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정분리까지 추진했다. 현실적으로는 적잖은 문제점들을 노출했으나 집권당과 대통령실의 수직적 관계에 따른 폐해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

 

지지 세력의 외연 확대도 시급하다. 현재의 정치판 역학구도로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민생에 주력하는 것이 회생책이다. 정치판에선 이성보다 감성의 호소력이 더 강하다고 한다. 평생 검사로 살아왔고 정치판 초짜인 윤 대통령에게는 이런 점이 부족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 대통령들처럼 정치판을 뒤흔드는 정계개편을 모색하기에는 여권 형세가 곤궁해 보인다. 물론 복잡한 야권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그 향배에 따라 지렛대가 될 여지는 있지만.

입력 : 2024.04.21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