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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일가 800억 원대 횡령 혐의 받고 있는 삼양식품은 어떤 회사?

1963년 국내 최초 ‘삼양라면’ 출시... 1989년 발생 우지파동 대법원서 무죄 받았지만 회사 큰 타격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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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 식품매장에서 고객이 라면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조선DB
      
라면의 원조 '삼양식품' 오너 일가가 800억 원대의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과 언론 등에 따르면, 삼양식품 전인장 회장과 부인 김정수 사장은 지난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앞서 검찰은 삼양식품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주요 경영진을 출국 금지했다.
         
검찰은 전 회장 부부가 몇 개의 페이퍼 컴퍼니(위장회사)를 만들어 삼양식품에 라면 원료와 박스 등을 납품하는 식으로 수백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 회장 부부의 횡령액이 최대 80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현재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삼양식품 관련 회사는 테라윈프링팅, SY캠퍼스, 프루웰 등이다. 
    
이에 대해 삼양식품 측은 해당 회사들이 위장회사가 아니라 실제 운영하는 기업들이며 매년 매출도 발생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농심과 함께 ‘라면기업’ 쌍벽을 이뤄온 삼양식품의 대표 제품은 ‘삼양라면’이다. 이 라면은 대한민국 최초 라면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삼양라면 외에 짜짜로니, 나가사키 짬뽕, 붉닭볶음면 등도 귀에 익숙한 제품이다. 특히 나가사키 짬뽕은 꼬꼬면(한국야쿠르트 제품)과 함께 ‘라면 국물은 빨개야 한다’는 기존 공식을 깬 혁신제품으로 평가받았다.
     
삼양식품 창업주는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다. 6·25 때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 출신으로 전쟁 이후 남대문시장에 몰려든 사람들이 ‘꿀꿀이죽’을 먹는 것을 보고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신념으로 1961년 ‘삼양식품’을 설립했다.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당시 그는 사업차 일본을 자주 드나들면서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라면을 눈여겨봐 왔다. 우리보다 앞서 라면을 개발한 일본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만든 것. 일본 식품회사 ‘닛싱식품’의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가 1958년 처음으로 ‘라멘’을 만들어 큰 인기를 모았다. 그는 일본에서 ‘라면왕’으로 통했다.
     
전중윤 명예회장은 한국의 ‘안도 모모후쿠’를 꿈꿨다. 1963년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민보건 향상과 식량자원 개발 정책을 추진하면서 삼양식품에 자금을 지원했고 전 회장은 그 돈으로 일본에서 라면 기계를 들여와 1963년 국내 최초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중량 100g, 가격 10원이었다. 당시 시장에서 팔던 꿀꿀이죽 한 그릇 가격이 5원이었다.
출시 3년 만인 1966년 삼양라면 판매량은 240만 봉지에 달했다. 1969년에는 월 평균 1500만 봉지가 팔려나갔다.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린 것이다.
     
삼양식품은 1969년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라면을 수출한 데 이어 1972년에는 국내 최초로 ‘컵라면’을 시장에 내놓았다.
    
견고했던 삼양라면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당시 후발주자였던 롯데공업이 ‘농심라면’을 출시하면서부터. 롯데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라면 광고 문구로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농심라면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롯데공업은 회사 이름까지 ‘농심’으로 바꿨다. 농심은 1986년 신라면을 내놓으면서 삼양식품과의 격차를 더 벌려갔다.
    
이 시기 삼양식품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른바 ‘우지(牛脂)파동’을 겪게 된다. 1989년 발생한 이 사건은 삼양이 라면에 비식용 소기름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적 사건으로 비화했다. 이 사건은 7년 8개월간 법정공방이 진행됐다. 마침내 1997년 대법원은 삼양식품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양식품의 시장 점유율이 10%대로 ‘추락’한 뒤였다.
    
우지파동 전까지 농심-삼양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국내 라면시장은 사건 직후부터 농심 단독 무대로 변했다. 이 구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양으로서는 억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삼양식품은 IMF 외환위기 당시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5년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전 명예회장의 장남 전인장 회장이 그룹을 총괄했다.
     
전 회장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 2010년 제주우유와 호면당을 인수했고, 이듬해 히트작 ‘나가사키 짬뽕’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후 시장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신규 제품은 출시하지 못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71억 원대에 불과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전인장 부부의 횡령 사건의 결과에 따라 국내 라면 원조 기업 ‘삼양식품’의 사활이 걸려 있다.
          
한편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삼양사’는 삼양식품과 전혀 관련 없는 회사다. 삼양사는 플라스틱과 산업자재용 섬유 외에 설탕·밀가루·식용유 등을 만들어 판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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