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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마르 도시 전경. |
가볍게 화이트와인을 먹고 멋진 침대에서 들어서 인지 모처럼 숙면을 한 느낌이다. 볼수록 숙소가 마음에 든다. 호스트가 바이마르대학 응용미술학도여서 그런지 실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근처 마트에 가서 과일, 방, 치즈 등을 사서 아침에도 가볍게 화이트와인을 먹었는데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나오기 싫은 숙소를 뒤로 한 채 실러하우스로 향하였다. 베토벤은 실러를 가장 존경하고 흠모했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은 실러의 시 <환희에 붙임>에 곡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실러의 위대한 문학과 베토벤의 음악적 영감이 합쳐져 최고의 역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가까운 곳에 있었으나 달리 표시가 없어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잘 보존된 실러의 생가는 시인답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문학이라는 예술의 통하여 유토피아를 꿈꾸어 왔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실러와 베토벤은 각자 46세와 56세라는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격정과 집중이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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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러(왼쪽)와 베토벤 동상. |
그런데 천재 괴테는 좀 달랐다. 소설을 쓰고 극장 대표도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고 출연하기도 했으며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에 식상하자 자연과학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훌쩍 이탈리아로 자유여행도 떠나는 등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괴테는 실러와 베토벤보다 장수하며 80여세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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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러 생가에 걸린 그의 자화상. |
필자는 괴테의 삶이 궁금하여 생가가 있는 프랑크푸르트를 찾았고, 그가 말년을 보낸 바이마르에 왔는데, 괴테가 왜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는지를 생각해 보니 바이마르라는 도시가 새롭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어떻게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이곳에 정착하고 삶을 마감하게 됐을까. 도대체 어떠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까. 사실 바이마르는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호수라는 의미의 ‘마르’와 합성어인 바이마르는 ‘신비한 호수’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헤어초크 독일대통령은 “독일의 문화는 바이마르가 없다면 생각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법학도에게 바이마르는 ‘바이마르 헌법’을 연상하지만 심오한 독일문화의 심장부다.
혹자는 ‘독일의 아테네’라고 부른다. 작은 도시 곳곳에 예술작품이 가득 차 있다. 그냥 사진 셔터를 누루는데 정신이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미를 느낄수록 더 예사롭지가 않다. 어쨌든 변호사로서 법과대학을 한번 찾아보려고 바이미르대학에 가서 물어보니 이곳은 법과대학이 없단다. ‘바우하우스 운동(건축예술 분야의 실험적 모던운동)’의 산실인 바우하우스 바이마르 대학이 있고, 시내 중심가에 음악대학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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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기마상. |
너무 무식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시내 곳곳을 돌아보니 유명한 국립극장 앞에 괴테와 실러가 함께 서 있는 동상이 있다. 조금 걸으니 바우하우스 미술관이 보이고, 좀 지나서 카를 아우구스츠 대공의 기마상이 보인다. 기마상 뒤의 건물이 바로 리스트 음악대학이라고 한다. 마침 배가 고파 시장이 들어선 광장에서, 빵 안에 소시지를 넣은 독일의 대표적인 음식을 주문했다. 2.50 유로에 푸짐한 성찬을 하게 될 줄이야….
어느 정도 요기는 채웠으니 이제 괴테의 ‘정원하우스’를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한참을 걸었는데 어느 건물이 눈에 띄어 들어가니 온통 꽃들이 자연스런 상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괴테의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기보다 단순하고 자연스러웠으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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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짐한 소시지 빵. |
이 집은 아우구스트 대공이 젊은 괴테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하우스를 어느 정도 이용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롯데(로테)에게 하루에도 여러 편의 편지를 이곳에서 써서 주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괴테가 바이마르에 오래 머물게 된 것도 정원하우스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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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정원하우스. |
누구라도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테의 삶을 벤치마킹해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필자 역시 1~2년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 방문변호사 내지 방문학자로 특강도 하고 현지 학자들과 토론을 겸한 담소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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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하우스 운동의 산실 바이마르 대학. |
그리고 며칠 전 갑자기 사망한 필자의 벗이 떠올라 인생의 허망함이 밀려왔다. 그래서인지 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 여생을 이방인으로 유럽 각국을 떠돌며 ‘나만의’ 게스트 하우스를 거점으로, 한국 업무는 ‘스마트워크’(일종의 모바일 오피스)로 보고 시간이 되는 대로 유럽 문화를 만끽하는 도전!!! 생각만 해도 설랜다. 어쨌든 바이마르는 필자로 하여금 유럽문화의 기행을 자극하는 멋진 만남으로 기억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