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르고 있다. 한독(韓獨) 법률학의 상호 교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베르너 블라우(Werner Blau) 박사의 초청을 받아 변호사가 120명 정도 되는 독일 법률회사 ‘아네컷 시베트’의 방문 변호사(Visiting Lawyer) 자격으로 체류 중이다. 한 달간 머무르며 독일과 유럽문화를 자세히 둘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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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마르의 괴테하우스. 초상화 아래 그가 쓰던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두 번째 주말을 앞둔 금요일. 청명한 날씨, 기온은 20도가 안될 정도로 쌀쌀하다. 반팔에 느껴지는 바람의 촉감이 그리 나쁘지 않다. 외투 입은 사람도 더러 보인다. 이곳 로펌의 4개 본점과 지점 사무실(프랑크푸르트, 뮌헨, 베를린, 드레스덴) 사무실에서 한국 법 관한 세미나 주제발표를 해야 해서 발표 초안에 대한 정리를 마치고 관련 코멘트를 블라우 박사 등 몇 분의 변호사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남아 괴테의 뒤(?)를 추적하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괴테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천재다. 시인이자 극작가, 정치가, 과학자, 문학가, 자연연구가, 그리고 화가였다. 괴테가 태어나서 20대 중반을 보낸 프랑크푸르트보다 말년의 40여년을 보낸 바이마르가 궁금했다. 그는 왜 바이마르를 택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이 바이마르에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필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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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에르푸르트 역 인근의 모습이다. |
시인 실러와 괴테의 친분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래서 오늘 오후 그간 그리던 바이마르 행(行) 기차표를 예매하였다. 도이치반에서 일등석을 50% 할인해 주는 카드를 사서 가는 첫 여행지다. 직행은 없고 카를 막스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에르푸르트(ERFURT)를 거쳐 간다. 일등석 기차는 나름 여유가 있어 편안했다. 그리고 에르푸르트역에 도착하니 20분정도 시간이 남아 잠시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약간은 사회주의적 도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후 바이마르 역에 도착했는데 마치 군사(軍事)도시의 역사 같은 착각이 들었다. 중앙역에서 천천히 내려가니 독일의 전형적인 건물과 풍성한 수풀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아름답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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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마르 중앙역 부근. |
일부는 다소 투박한 맛도 들었지만 곳곳에 즐비한 동상과 조각물 같은 건물 등등 여기가 왜 독일고전주의 중심지였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것 같았다. 먼저 숙소에 짐을 내려놓으려고 구글맵을 통해 에어비앤비(AIRBNB)를 찾아가 초인종을 눌렸으나 응답이 없다. 때마침 와이파이도 안 터져 에어비엔비 메시지를 실행시킬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 본에서 겪은 경험을 살려 근처 맥주집에 가서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 겨우 작동을 하니 한참 있다가 “곧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기다리는 동안 생맥주를 시켜놓고 괴테하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니 여기서 100m 정도란다. 숙소의 호스트가 방을 안내하는데 한층 전체를 쓰는 그야말로 멋진 집이었다. 창문과 아름다운 침대, 테이블의 양초 등 모든 것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루 숙식비가 비싼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가족용 내지 단체용 숙소였던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공간이 방랑객인 필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호스트는 의외로 젊은 남자 대학생이었다. 바이마르대학에 다니면서 작년부터 호스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재미있다고 하였다. 유쾌한 친구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키를 받아 가볍게 사워를 하고 괴테하우스를 갔다. 생각보다 입장료가 비쌌지만 규모가 프랑크푸르트의 생가보다는 더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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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가 쓰던 탁자와 소파 |
안에는 멋진 조각, 책, 해부 대상물, 그림, 아름다운 장신구 등등이 즐비하였다. 소장품들이 훨씬 많아보였고 집도 좀 더 크게 느껴졌다. 본인의 초상도 곳곳에 걸려 있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해부, 자연과학도 즐겼던 그야말로 자유롭고 멋진 인생이었다.
근처 광장의 즐비한 야외식당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맥주와 와인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잘 정돈되고 깔끔하고 아름다운 고도시라는 느낌이 그대로 와 닿았다. 헤르만 헤세가 격찬한 바와 같이 괴테의 “단순하고 소박한 표현으로 삶의 본질을 전달”하는 것처럼 도시 전체가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괴테가 재상을 하다가 이탈리아로 장기여행을 떠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짜여있고 아름다우나 아무래도 답답함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바이마르는 단순함을 통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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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마르 도시 전경 |
괴테의 삶을 살펴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즉 괴테가 인류역사상 최고 천재가 된 이유는 어머니의 책 읽어주는 방법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괴테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이야기 결말 부분은 읽어 주지 않고 괴테가 상상토록 해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무한한 창조성을 키웠다고 한다.
이와 유사하게 《실락원》의 밀턴 역시 천재가 된 이유는 아버지와 산책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와의 대화는 예견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가 많다. 그러나 아버지는 좀 다르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아이들에게 신선하고 색다른 충격과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뜬금없지만 천재도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엄청난 영향 하에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필자의 아이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문득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지나간 일에 구애말라. 그리고 쉽게 화를 내지 말 것!
언제나 지금을 즐길 것이며 남을 미워하지 말고 앞날은 하느님께 의탁하라!"
때마침 교회의 종소리가 경건하게 울렸다. 그런데 몇 번 안 치고 그친다. 고인이 일찍 세상을 떠난 이인가 보다. 최근 부고(訃告) 소식을 전해들은 필자의 대학동기 얼굴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그는 멋지고 잘 생긴 친구였다. 괴테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은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에 충실하라는’ 마음 뿐이다. 이 현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성경에 어느 노부부가 모처럼 풍년을 맞이하여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며 “앞으로 2~3년은 양식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고 하면서 모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잤더니 그날 밤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래! 고민이 있고 삶이 힘들게 느낄 때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민이 없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지금에 충실하고 실타래 같은 고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느끼고자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