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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흔들리는 국정원 향해 作心한 廉燉載 前 국정원 차장

“국정원장들이 국정원 다 망쳐 놨다”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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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개혁’인 사례 많지요. 對北정보 강화한다면서 예산·인원증원 없이 말로만 강화합니다. 人事 3심제가 있지만 부서장이나 원장의 의중인물이 선정 안 되면 再審해 의중인물을 관철시킵니다. 정보분석 요원의 전문성을 강화한다면서 해당지역에 가 보지도 못한 직원이 정보분석을 합니다. 직원교육 강화한다며 2, 3급 간부 직원을 1년 동안 교육시키는데, 이들 중에는 2~3년 내 퇴직하는 직원이 많지요. 직원교육을 ‘자리 만들기’, ‘물 먹이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힘들여 만든 국가정보대학원도 폐지했어요. 미국의 정보개혁 역점 사업 중 하나가 학·석사 과정의 국가정보대학교 설치였다는 사실도 모른 겁니다. 미국 CIA 분석관의 80%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입니다. 1년 동안 비싼 돈 들여 간부 해외연수를 시키는데 외국어 능력도 없는 간부가 선발돼 어학연수나 관광만 하고 오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 국정원, 시대변화 못 읽고 관료주의에 젖은 행정기관 돼
⊙ 남재준, 안보강화 높이 평가하지만 증거조작 의혹으로 국정원 불구로 만들어
⊙ 원세훈, 對北공작 강화·從北세력 척결 노력했으나 국정원 독단적 운영하고 정보요원 전문성 훼손
⊙ 국정원의 최우선 업무는 對北·해외정보… TECHINT 역량 대폭 강화해야,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은
    낮아

廉燉載
⊙ 71세. 연세대 정외과 졸업, 서울대 행정학 석·박사.
⊙ 중앙정보부 공채 5기 수석합격 및 정규과정·영어과정 수석졸업,
    駐샌프란시스코·시카고 총영사관 영사, 대통령 정책비서관, 안기부 제1국 부국장,
    駐독일 공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 경희대·강릉대·신성대 객원 및 초빙교수,
    現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 <국가정보기관의 산업정보활동의 근거와 범위에 관한 연구>
    <한반도 안보환경 전망과 국가정보의 과제> 등 논문 다수 발표,
    저서 《독일 통일의 과정과 교훈》이 문광부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
⊙ 홍조근정훈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훈.
  “병폐가 너무 누적됐어요. 대부분의 국정원장들이 비(非)전문가였고, 개혁한다면서 오히려 개악(改惡)했으며, 그 결과 조직 전체가 망가졌어요. 직원 교육도 부실했고 정보기관이 일반 행정기관처럼 변했어요.”
 
  염돈재(廉燉載) 전 국정원 차장이 친정집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평생을 국정원에 몸담았던 그는 국정원을 그만둔 후 대학에서 국가정보학을 가르치며 자신이 근무했던 국정원을 옹호했었다. 비판이라고 해야 논문이나 학술세미나를 통해 우회적으로 ‘국정원이 나아가야 할 길’을 언급해 왔을 뿐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였다. 더 이상 국정원을 이대로만 놔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인 듯하다. 이번에야말로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걱정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국정원장들은 자의적으로 국정원을 운영해 왔어요. 국민의 눈, 외부 감시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무소불위의 내부 권한과 자의적 판단으로 국정원을 지휘해 왔습니다. 제 역할을 한 국정원장은 매우 드물었다고 봅니다.”
 
 
  改革 아닌 改善으로 방향 정해야
 
외교관 출신으로 정치 현장을 오래 경험한 이병기 신임 국정원장.
  —지난 1년 반 동안 국정원은 댓글사건, 원세훈 원장의 뇌물의혹,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유우성 간첩의혹 증거조작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직접적으로는 비전문가인 원장들이 지휘를 잘못했기 때문이죠. 보다 근본적으로는 오랫동안 누적돼 온 병폐 요인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거죠. 한마디로 그동안 국정원이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안이하게 지내 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병폐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대부분 원장들이 정보 문외한인 데다 재임기간이 1년 반을 넘지 않아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했는데, 전(前) 원장과의 차별화를 하다 보니 개악(改惡)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신임 원장 부임 시마다 인적 개혁을 한다면서 수많은 전문요원을 내쫓거나 정실(情實)인사를 해 조직이 엉망이 돼 버렸고 조직의 효율성과 직원들의 자부심도 크게 손상됐습니다. 이러니 조직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국정원을 맡은 이병기(李丙琪) 신임 원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우선 신임 원장은 사려 깊은 언행으로 정치권, 국민 및 직원들에게 ‘이 사람은 잘하겠구나’ 하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개혁을 하겠다고 조직을 한꺼번에 들쑤셔 놓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세부사항을 중심으로, 개혁 아닌 개선(改善)을 해 나가야 합니다. 과거의 개혁이 ‘무늬만 개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신(神)은 디테일(detail) 속에 있다고 합니다.”
 
  —이병기 원장이 이런 일을 잘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잘해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려 깊은 분이고 정치경력과 국정원 근무경험도 있고 인간관계도 퍽 좋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론과도 관계가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 능력과 국정원장으로서의 능력은 별개일 텐데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신임 원장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국정원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신임 원장이 국정원을 잘 아느냐는 측면에서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국정원 업무가 대북정보, 국제정보, 해외공작, 대공수사, 보안·방첩, 기획·행정 등으로 매우 다양한데 신임 원장의 국정원 경력은 안기부 특보, 해외담당 차장으로서 3년 근무한 것이 전부지요. 그래도 역대 원장 가운데는 가장 좋은 경륜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어 기대가 큽니다.”
 
 
  원세훈·남재준의 功過
 
  —이병기 원장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요.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병기 원장이 주(駐) 제네바대표부 서기관으로 근무할 때 노신영 대사가 ‘저 사람은 지금 장관을 시켜도 잘할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병기 하면 늘 그 생각이 납니다.”
 
  —국내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책임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안보업무에 대한 폭넓은 식견, 투철한 사명감과 추진력, 그리고 아집에 빠지지 않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국정원의 탈(脫)정치화가 중요한 과제인데 정치감각이 왜 필요한가요.
 
  “국정원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식견이 필요해요. 정치인들이 국정원을 정치에 끌어들이려 할 때 말려들지 말아야 하고, 정보업무 강화를 위해서는 휴대전화 감청을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테러 및 사이버테러 방지법 제정 등 입법조치가 필수적이어서 정치권과의 협력과 소통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재준(南在俊) 원장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재준 원장은 확고한 안보관을 가지고 안보강화에 노력했고, ‘이석기 수사’와 장성택 관련 첩보수집, 그리고 국정원 직원들을 존중하고 사기를 높여 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남북정상 대화록 공개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증거조작 의혹을 받아 국정원을 불구로 만들었다는 점, 개혁을 한다고 했으나 정치 소용돌이에 묻혀 뭐 하나 제대로 개혁한 것이 없다는 점, 전례 없이 많은 측근을 데리고 온 데다, 특히 3차장, 감찰실장, 총무국장, 비서실장 등 핵심요직에 외부 인사를 기용한 것 등은 매우 아쉬운 점이지요.”
 
  —국정원의 개혁과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나 측근인사를 데려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국정원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6개월이 안 되는데 외부 인사나 측근 기용이 많으면 비밀유지가 어렵고 원장 사임 후에는 조직에 큰 부담이 됩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원장들은 수행비서나 기사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어떤가요.
 
  “대북(對北)공작 강화와 종북(從北)세력 척결에 노력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겁니다. 그러나 4년1개월 동안 장기 재임하면서 국정원을 독단적으로 운영해 폐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수 측근이 인사를 좌지우지했고, 원칙 없는 순환보직으로 직원들의 전문성이 많이 훼손됐습니다. 또 정규과정과 정보대학원 직제를 폐지해 차후 발전을 어렵게 만들었고, 나이 많은 직원들에게 징벌성 육체훈련을 시키고 팀제라는 이름으로 상위 직급자를 하위 직급자 밑으로 보직하여 직원들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줬습니다. 직원들의 전직(前職) 직원 접촉을 금지해 선후배 관계도 망쳐 놓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잘못은 댓글사건으로 정치개입 의혹의 빌미를 제공했고, 국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국정원장직의 명예에 먹칠했다는 점입니다. 의욕이 넘쳤던 반면, 정보업무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합니다.”
 
 
  국정원 손발 묶어 놓은 반쪽짜리 국정원법
 
  —현재 국정원 개혁논의는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댓글사건을 계기로 국회가 추진한 개혁논의는 올해 1월 국정원법 개정으로 끝났고, 이를 통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국정원 직원이 상부지시에 따라 정치개입이나 불법활동을 할 경우 처벌되지 않았으나 이번에 부당지시에 대한 직무거부권이 신설됨으로써 간여직원이 모두 처벌받도록 됐습니다. 때문에 직원들이 정치개입을 할 가능성은 크게 줄었지요. 하지만 국정원 직원이 내부규정을 위반해 정부부처와 민간기관에 상시 출입하는 것이 금지됐고 국회와 감사원의 예산통제권도 강화됐습니다. 쓸데 없는 규정으로 정보기관의 손발만 묶어 놓았지요. 그리고 정보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테러 및 사이버테러 방지법 제정은 이뤄지지 않아 반쪽 개혁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국정원 개혁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정치개입 금지를 위해 어떤 추가적인 조치들이 필요할까요.
 
  “국정원의 탈정치화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원장을 제외하고는 일단 정당활동을 했거나 정당 선거캠프에 가담했던 사람은 다시 국정원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 간에 ‘캠프 안 가?’ 하는 말이 유행이라 합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정치권에 줄 댔거나 선거캠프에 들어갔던 전·현직들이 국정원에 영전 복귀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치권에 줄 대는 직원이 많아지고 국정원의 탈정치화는 요원하게 됩니다. 검찰이나 경찰출신이 선거캠프에 들어갔다가 원소속 기관에 승진 복귀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캠프 가담자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다른 기관에 자리를 줘야지요.”
 
  —국정원은 정권교체 때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뭐죠.
 
  “요컨대 전 정권, 전 원장과의 차별화에 치중한 개혁을 하거나 비전문가 원장들이 독단적 판단이나 소수 측근에 의존한 개혁을 함으로써 개악 또는 누더기 개혁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개혁안 만든다고 태스크포스 구성하고 난리를 치지만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무슨 탁월한 개혁안을 만들겠어요. 최종 개혁안은 기획조정실 팀이 만드는데, 세부토론이 없어 기조실 담당자의 생각대로 되기 일쑤지요. 그렇다 보니 ‘무늬만 개혁’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무늬만 개혁’, 사례가 있나요.
 
  “많아요. 예를 들어 대북(對北)정보를 강화한다면서 예산이나 인원증가 없이 말로만 강화합니다. 또 인사 3심제도가 있지만 부서장이나 원장의 의중인물이 선정되지 않으면 재심(再審)을 해 의중대로 합니다. 전문성 교육을 강화한다는데 이론적 지식과 실무지식을 겸비한 박사급 교수요원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양성할 계획도 없습니다. 정보분석 요원의 전문성을 강화한다면서도 대상지역에 가 보지도 못한 분석관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일도 있지요. 직원교육을 강화한다면서 2, 3급 간부직원을 1년 동안 교육시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2~3년 내 퇴직하는 직원들이 많아요. 직원교육을 ‘자리 만들기’ 또는 ‘물 먹이기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지요.”
 
 
 
직업외교관·軍 출신은 국정원 책임자로 부적합

 
지난 4월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해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염돈재 전 차장은 ‘무늬만 개혁’인 사례를 쉴 새 없이 열거했다.
 
  “힘들여 만든 국가정보대학원을 원세훈 원장 때 폐지했습니다. 공직자는 직무지식만 있으면 되고 학위는 필요 없다고 했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의 80%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인데도 말이지요. 미국이 역점 정보개혁 사업의 일환으로 학사, 석사 과정의 국가정보대학교(NIU)를 설치했다는 사실도 모른 것 같아요. 1년 동안 비싼 돈 들여 간부 해외연수를 시키는데 외국어 능력도 없는 간부가 선발돼 어학연수나 관광만 하고 오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이런 문제점들을 제기해도 순환보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답변만 돌아옵니다. 모두 비전문가 원장들이 해 놓은 일들이죠. 앞서 언급한 여러 사례는 10여 년 전 제가 현직에 있을 때 겪은 것들입니다. 지금은 고쳐졌으리라 생각하지만…”
 
  —2003~2004년 국정원 1차장으로 재직했을 때도 이런 병폐가 있었다면 염 차장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 점 항상 후배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당시 원장님께 그런 문제점들을 수시로 제기하곤 했는데 원장님도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합디다. 관련부서에서 예산 부족, 인사순환 필요성 등을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한답니다. 이런 관료주의를 타파하려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원장이 돼야 하는데 보통 사람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지요. 그리고 그렇게 통 큰 원장들은 그런 작은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런 일들이 고쳐지지 않고 계속 반복됩니까. 고칠 방법이 없나요.
 
  “외부에서는 국정원 일을 알 수 없지요. 대통령 측근이 임명되면 누구도 함부로 국정원 얘기를 못 꺼내요. 직원들은 보안의식, 처벌 때문에 외부발설은 절대 안 해요. 우리 같은 퇴직자는 친정이 다칠까 봐, 역적으로 몰릴까 봐 얘기하지 않아요. 나도 이 인터뷰 나가면 천하역적으로 몰릴 가능성이 많아요. 국회 정보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능력이 안 돼요. 미국처럼 대통령정보감독위원회를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조선일보》 기고에서 외교관, 군인 출신은 차장급으로 부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요.
 
  “일하는 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사 중의 신사’인 직업외교관은 음모, 기만, 유인, 배신 등 ‘더러운 일(dirty work)’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정보업무에는 유연성과 창의성이 중요한데 표준운영절차(SOP)에 익숙해진 군(軍) 출신은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국정원에도 30년 이상 길러진 우수 요원들이 많은데 굳이 직업외교관이나 군 출신을 데려다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청와대 인사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현재 국정원 2차장은 로펌 출신 변호사이고, 3차장은 통신장교 출신입니다.
 
  “개개인의 능력과 그동안의 실적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지만 원론적으로는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형의 인사들이 국정원장 및 차장에 임명되는 이유는 뭔가요.
 
  “청와대나 선거캠프를 기웃거리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유능한 국정원 간부들은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데다 청와대 참모진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인물을 국정원에 배치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국정원장들이 청와대 인사에 제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런 불합리한 인사는 원장이 나서서 막아야 해요. 내가 원장으로 모셨던 한 분만 그렇게 했지요.”
 
 
  최근엔 신건 원장에 대한 호평 많아
 
2013년 8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특위에 출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일한 국정원 출신 김만복(金萬福) 원장은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내부 출신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직원 출신 국정원장이 적은 것은 국정원 직원의 자질문제 때문 아닌가요.
 
  “김만복 원장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인질교섭 사실과 비밀요원을 공개한 것이 문제가 됐지요. 이건 자질문제가 아니라 총선출마 의도가 강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사례를 이유로 국정원 직원들의 자질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역대 원장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원장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흔히 7대 신직수(申稙秀) 부장과 25대 신건(辛建) 원장이 회자됩니다. 신직수 부장은 직원 생계를 안정시켜 부패를 척결하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고, 신건 원장도 국정원 직원 신분을 공안직으로 바꿔 보수를 인상했다는 것이 자주 거론됩니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업무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직원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부심을 살려 준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을 가장 잘한 원장으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세 분을 들 수 있습니다. 방금 얘기한 신직수 부장은 직원 생계안정과 부패척결로 조직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불과 두 달 근무한 9대 이희성(李熺性) 부장은 모든 보고서를 필경사(筆耕士)의 손을 거치지 않고 타자로 작성토록 해 업무능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지요. 26대 고영구(高泳耉) 원장은 탈정치, 탈권위 개혁을 단행하여 그 무렵 국정원은 정치개입 의혹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시기입니다. 이분들의 개혁은 원포인트 개혁이었지만, 업무발전에 크게 기여했지요. 차후 개혁에 참고할 점들입니다.”
 
  —국정원의 역량강화 방향을 종합한다면.
 
  “먼저, 백화점식 업무추진 관행에서 벗어나 북한정보, 국제정보, 비밀공작, 대공수사, 보안·방첩 등 각 분야에서 핵심업무에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정보이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론의 발전은 체계적 업무추진과 장기 역량강화에 필수적이죠. 그 다음으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테러 및 사이버테러 방지법 등 정보업무 관련 법제도 보완·강화해야 합니다. 아울러 선진국의 발전된 제도를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공개정보센터 설치와 정부기관 간 실시간 정보공유 체제의 구축이 이에 해당합니다. 요원선발 방식도 달라져야 해요. 시험공채에서 특기 위주의 개별모집, 우수학생에게 장학금을 준 후 채용하는 ‘캠퍼스 모집’으로 바꿔야 합니다. 시험 잘 치는 서생은 정보기관에서는 쓸모가 없지요. 또한 요원들의 지적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석·박사 모집과 학위과정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료주의를 타파해야 해요. 창설 50년이 넘은 지금의 국정원은 규정중시 등 관료주의에 빠져 있어요.”
 
  —관료주의의 사례를 들어 주시죠.
 
  “보안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얘기할게요. 내가 차장으로 있을 때 원장님을 보좌하는 아주 유능한 통역사가 퇴직했어요. 월급이 외부기관의 절반도 안 됐기 때문이죠. 이후 다른 통역사를 채용했지만 시원찮았습니다. 그래서 원장님이 그 직원을 다시 불러 파트타임으로 활용했습니다. 특별수당을 줘서라도 유능한 통역사를 채용했어야 했는데 기조실과 인사과가 반대해 못한 거죠. 사실 파트타임으로 활용한다는 건 보안상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튼 국정원은 유능한 통역사를 절대 고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까.
 
  “국정원 사업에는 영수증 첨부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회계담당자들은 위조 영수증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수증을 구비하라고 억지를 써요. 가짜 영수증인 줄 알면서 형식에 얽매여 그냥 처리합니다. 관행을 이유로 잘못된 표기를 고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보용어 가운데 ‘국가정보목표우선순위(PNIO)’라는 게 있는데 ‘국가정보우선목표’가 정확한 표기입니다. ‘징후계측정보(MASINT)’라는 것도 ‘계측및표지정보’가 맞아요. 내가 국정원에 얘기를 해 줬는데도 안 고쳐요.”
 
 
 
통일대박과 국정원 역할 상관관계

 
  —현재 우리 국정원의 대북정보 수집능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정원의 규모와 능력은 대체로 세계 8위 내지 12위권이지만, 대북정보 능력은 세계 최고급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은 기술정보 수집능력은 우리보다 훨씬 낫지만 인간정보 능력과 정보판단 능력은 우리가 낫습니다.”
 
  —국정원의 대북정보 능력이 자주 도마에 오르는데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닌가요.
 
  “외국 정보기관들과 함께 일해 보면 대략 감이 옵니다. 북한정보 실패는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정보목표(target)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국경이 세 곳뿐이고 외국인이 적은 데다 엄격한 주민통제로 접근이 매우 어렵습니다. 또 정보활동 여건도 극히 나쁩니다. 외부인의 장기체류와 고급출처에의 접근이 어렵고 신속한 연락수단도 제한돼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정보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흔히 정보학자들은 정책결정자들이 정보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정확한 정보보다 더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국민이 이런 점을 좀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한계가 분명 있지만 지금의 국정원에는 북한 김정은의 생각을 읽어 내는 능력, 북한 정권의 향배에 대한 판단력이 거의 없는 게 아닌가요.
 
  “단기적으로,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김정은 자신도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할지 잘 모를 가능성이 많아요. 그러나 김정은의 장기적 의도는 정확히 판단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끔 정책결정자의 의도에 맞추기 위해 정보가 왜곡되는 것, 즉 정보의 정치화만 없다면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연초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얘기해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독일 통일 과정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대통령의 ‘통일대박’ ‘드레스덴 선언’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통일대박론은 우리 국민의 통일기피 심리를 바로잡고 통일의지를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드레스덴 선언은 5·24 조치나 유엔의 북한제재 조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겁니다. 박 대통령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경제발전을 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뻔한데 국민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너무 조급증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통일대박을 이루기 위해 국정원은 어떻게 움직여야 합니까.
 
  “현재로서는 튼튼한 안보태세 유지와 통일여건의 조성을 위한 정보적 지원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을 대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북한사정을 정확히 파악해 놓아야 합니다. 과거 서독은 동독 사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동독의 경제사정 등에 대해 잘못 안 것이 많아 동독 재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더 모르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문제점, 통일부 반성해야
 
2007년 9월 2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아프간 피랍자들의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검은 선글라스맨(국정원 직원)과 함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회견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대북공작을 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국정원 업무의 최우선 순위를 항상 대북문제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정보 수집역량, 즉 위성정보, 항공정찰, 통신정보, 신호정보 등 이른바 테킨트(TECHINT)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해요. 북한 같은 폐쇄체제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해서는 그길 밖에 없습니다. 흔히 휴민트(HUMINT), 즉 인간정보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냉전시절 미국 CIA도 소련 정치국 소속 요원 포섭에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외국과 접촉이 많은 정보기관 요원들만 포섭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정보를 기술정보 수단을 통해 수집했지요. 테킨트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국회가 테킨트 역량 강화를 도와줘야 해요.”
 
  —개인적으로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봅니까. 5년 내에 정권이 몰락할 것이라 예측한 대북 전문가가 많습니다.
 
  “김정은이 돌출적 행동을 많이 해서 급변사태에 대한 기대를 높여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흔히 통일문제 등에 대해 얘기할 때 5년 이내 또는 10년 이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데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기간이어서 그냥 그렇게들 얘기하는 것이지 확실한 근거를 가진 예측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실각하든 죽든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급변사태, 무정부적 혼란상태나 주민 대량탈출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급변사태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리고 통일을 위해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끈질기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통일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까.
 
  “최상의 통일방안을 마련하더라도, 어떤 뛰어난 협상가가 나타나더라도 북한주민의 자유의사가 통치체제 결정과 지도자의 선택에 자유로이 반영될 수 없다면, 즉 북한이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통일은 불가능하고 그런 통일은 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정부의 통일정책상 허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화해·협력 단계, 국가연합 단계, 통일국가 단계 등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매우 합리적인 통일방안이지만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주민의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김일성 세습체제가 화해·협력의 대상인지, 체제가 전혀 달라도 국가연합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통일교육을 하면서 이 통일방안에 따라 화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니까 북한이 핵을 개발하거나 무력도발을 해도 북한이 화해·협력과 지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이 점은 통일부가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세습정권은 불가피한 대화의 상대일 뿐 민족문제를 함께 풀어 나갈 화해·협력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북한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국가연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외국이 활용하는 ‘범위의 경제’ 논리, 우리도 적용해야
 
미국 CIA 분석관의 80%가 석ㆍ박사 출신이다. 미국은 학사, 석사 과정의 국가정보대학교(NIU)도 설치ㆍ운영하고 있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국정원법 제3조에 국정원이 국내보안정보를 수집, 작성, 배포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에서 정한 국내보안정보는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테러 및 국제범죄 조직에 한정토록 돼 있어 일반적인 정치・경제・사회 정보, 민심동향, 정부정책 관련 정보 등은 수집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조문을 다소 탄력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비밀공작(covert action)은 정보기관의 가장 중요한 핵심업무지만 국정원법에는 전혀 규정이 없습니다. 한정된 국가자원과 엄중한 안보상황하에서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민심동향, 위기징후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국민과 정치권의 동의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또 옛날 같은 정치개입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외국 정보기관들도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다소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CIA가 통신감청 등을 통해 수집한 산업정보를 관련부처에 제공한다든지 연방수사국(FBI)이 공직자의 신원조사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청와대와 국회의 소통, 국정운영 협조 차원에서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치정보가 입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일을 국정원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정치를 위한 정보’는 절대 수집해서는 안 되고 ‘정치에 관한 정보’ 가운데 국정원 고유업무와 관련된 사항, 국정운영에 극히 중요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있지만 제한된 인원으로 한계가 있어 국정원의 지원이 있으면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업무도 국가적·사회적 동의에 기초해야 하지요.”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가 정보기관의 정치관여 등의 문제로 노무현 정부 때 폐지됐다가 이명박 정부 때 부활됐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폐지됐는데 대통령과 정보 책임자의 독대가 필요하다고 봅니까.
 
  “독대 보고는 상례화가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민감한 출처로부터의 정보, 청와대 참모들과 관련된 정보, 대통령과 직접 관련된 보고 등 독대가 필요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시국판단력 저하, 왜곡된 정보 수용, 현실과 동떨어진 국정운영 방식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얘기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정원 업무와 관련해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과거에는 국정원이 위기징후, 민심동향 등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사항들을 파악해 정책정보 형식으로 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국정원이 그런 정보지원을 한다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정치개입이나 월권행위로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쓴소리’ 리포트
 
  —결국 국정원의 서비스를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은 대통령입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데요,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북·일(北日) 대화 조짐, 일본·중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양상, 미국·중국의 패권다툼 등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동향도 중요하지만 향후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가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국정원은 대북 및 국제정보 업무에 더욱 전념해야 해요. 과거 여러 대통령들이 청와대 참모진의 보고에 만족하지 못해 비선(秘線)조직에 의존하는 폐단이 있었고, 이 때문에 국정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국정원에 의존해 국정원의 월권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포괄안보 시대에는 국정원 업무도 너무 전통안보 개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국정원 직원들은 대통령에게 ‘쓴소리’ 보고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난국타개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정원의 국제정세 분석력, 해외정보 수집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재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몇 가지 보완사항을 얘기하자면, 첫째 미국처럼 범정부적인 공개정보센터를 만들어 공개출처정보(OSINT) 활용을 더욱 체계화해야 합니다. 둘째, 정부기관 간의 실시간 정보공유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분석요원의 학력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요즘 언론매체에 많은 시사분석가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국정원 분석관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정원이 직원들의 충성과 헌신만 요구했지 기본지식 배양기회를 전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이어 터진 국정원 관련 사건에서 국정원 요원의 아마추어리즘, 자질부족이 거론됐는데 염 차장께서 지적한 것과도 관련이 있겠군요.
 
  “국정원 직원의 지적 수준을 더욱 높여야 해요. 정보이론도 발전시키고 아이비리그 박사과정 교육도 보내야 합니다. 정보연수원의 교육체제도 재정비해야 하고 직원들이 스스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국정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국정원 소개’의 미션부분을 한번 보세요. 최고 역량의 요원을 지향한다면서 그 방법으로는 ‘모든 직원은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 담대한 도전정신과 헌신적 자세로 무장하여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 나가겠다’고 돼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전문지식’은 쏙 빠져 있어요. 국정원 지휘부의 인식이 이 정도입니다. 직원들의 전문지식 배양에는 관심이 없고 희생만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각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처지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휴일도 없이 격무에 지쳐 있는 데다 일과 후 수강을 위해 남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면 엄청난 눈총을 받습니다.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지 학위는 받아 무엇 하느냐고 핀잔 주는 윗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이러니 국정원 직원들이 아마추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통섭의 지식 시대에 한 분야의 직무지식만으로는 절대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국정원 직원들의 일생은 지식의 축적과정이 아니라 지식의 마모과정이 되었습니다. 지휘부의 큰 각성이 필요합니다.”
 
  -국정원 직원교육이 그렇게 부실합니까.
 
  “예를 들죠. 내가 차장 재직 시 어느 간부가 중요한 정보보고를 하면서 ‘이건 공작첩보입니다’라고 해요. 내가 공작첩보가 뭐냐고 했더니 ‘공작을 통해 수집한 첩보’라고 하더군요. 내가 다른 간부들에게도 물어봤어요. 같은 대답이었어요. 기가 찼습니다. 공작첩보란 공작을 통해 수집한 첩보가 아니라 공작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첩보, 영어로는 ‘operational intelligence’거든요. 실무경력 없는 교수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죠.”
 
 
  충성심만으로 所任 다하기 어려운 시대
 
  —최근 국정원 요원들을 보면, ‘일반행정 공무원’ ‘관료화된 정보요원’처럼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국가관이나 최고 정보기관 요원으로서의 사명감도 부족해 보이는데요.
 
  “저도 간혹 그런 얘기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국정원이 사회에서 몰매를 맞고 있으니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원장이 담대하고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하라고 하지만, 직원들은 수많은 실적평가와 감사에 시달리니 과감성이 없어지고 안전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감하게 일하라고 했으면 이를 뒷받침할 후속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휘부가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원장들은 지시만 내리면 다 되는 줄 알지요. 모든 원장이 자기 재임 중 뭔가 이루기 위해 직원들에게 무한대의 충성을 요구하니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나도 30년간 근무했지만, 휴가를 제대로 가 본 게 손가락 꼽을 정도에 불과해요. 미국에서 5년 근무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랜드캐니언도, 라스베이거스도 가 보지 못했습니다. 전문지식을 축적할 여유가 없었지요. 국정원 직원들의 전문지식 부족은 전적으로 역대 원장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 국정원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내가 국정원 직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직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나는 누가 뭐래도 국정원은 정부 내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조직이고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정원 직원들이 가장 헌신적으로 일하는 공직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충성심만으로는 소임을 다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전문지식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어렵더라도 좀 더 열심히 공부하기 바랍니다. 나는 1995년 이사관으로 퇴직 후 석·박사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중요한 일을 했구나, 내가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좀 더 일을 잘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은 국정원 밖에서는 거의 쓸모 없는 지식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신임 원장님 잘 모셔서 국정원을 바로 세워 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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