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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년 1월호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 당선자 대변인 朱豪英

“7명의 비선 ‘핫라인’이 장관·수석 검증”

글 : 金泰完 월간조선 기자  
사진 : 趙焌祐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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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수위원을 검증할 팀이 없었어요. 결국 직전 정부에다 검증을 의뢰해야 하는데 정권이 순탄하게 재창출됐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이쪽에서 묻기도 그렇고, 저쪽에서 답하기도 애매합니다. 그때는 (10년간 이어졌던 좌파 정부가 종식돼서) 묻기가 어려웠어요. 또 MB정부가 추천하는 인재풀과 노무현(盧武鉉) 정부 쪽 인재풀이 서로 달라 우리 쪽이 원하는 인사의 데이터를 저쪽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호영
53세. 영남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17·18·19대 국회의원, 대구지법 부장판사·특임장관 역임.
  법관 출신 주호영 의원은 온화함과 치열함을 갖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좌우명은 계영노겸(戒盈勞謙).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 겸손하게 노력하라’는 뜻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여러 인사가 삼고초려(三顧草廬)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 경선 후보 시절 ‘후보 비서실장’, 대선 후보 시절 ‘비서실 부실장’, 인수위 시절 ‘당선자 대변인’을 맡았다. 2007~2008년의 치열한 정점(頂點)에서 그는 대통령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보았다.
 
  주 의원은 “아직 대통령이 현직에 계시는데 집권 초 비화를 꺼내기가 곤란하다”며 주저했다. 거듭된 요청에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먼저 인수위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대선을 치르는 데 사력(死力)을 다하기 때문에 인수위 구성에 대한 준비는 거의 할 수 없어요. 당선되면 그때부터 부랴부랴 인수위 준비에 들어가는 식이죠. 인수위 구성이 늦어지고 인수위원에 대한 검증도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수위원은 청문절차를 밟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검증을 통해 흠이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또 대선기간 중 미리 인수위원을 인선해 두면 ‘정권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어요.”
 
  —당시 인수위 상황은요.
 
  “우리는 인수위원을 검증할 팀이 없었어요. 결국 직전 정부에다 검증을 의뢰해야 하는데 정권이 순탄하게 재창출됐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이쪽에서 묻기도 그렇고, 저쪽에서 답하기도 애매합니다. 그때는 (10년간 이어졌던 좌파 정부가 종식돼서) 묻기가 어려웠어요. 또 MB정부가 추천하는 인재풀과 노무현(盧武鉉) 정부 쪽 인재풀이 서로 달라 우리 쪽이 원하는 인사의 데이터를 저쪽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심스러웠던 것은 자칫 인사(검증)를 직전 정부에 맡기는 격이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또 자기들이 싫어하는 인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달 수도 있어 조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수위원을 組閣 인선에서 배제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인수위원들이 장차관으로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는 그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의 말이다.
 
  “제 생각은 그랬어요. 향후 장차관 할 사람이 인수위에 들어가 사전에 정부 업무를 파악하는 데 인수위 목적이 있다고요. 실컷 인수작업만 하다가 정작 정권이 출범할 때 빠져버리면…. 그러면 인수위 존재 목적이 없지 않나요.
 
  사실 인수위에 오는 사람은 새 정부에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옵니다. 정치인이야 인수위에 왔다가 입각(入閣)이 안 되면 국회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일정한 직업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인수위에) 와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을 괜히 불렀다가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손해가 얼마나 많겠어요. 주위에서 ‘저 사람 흠이 있어 안 쓴다’는 오해도 살 수 있고요. 그래서 MB께 건의를 드렸습니다.”
 
  —어떤 건의를요.
 
  “‘향후 같이 일할 사람을 인수위에 불러야 한다’고요. 입각 안 시키려면 데려올 때 미리 양해를 구하자는 말도 했어요. 그러나 MB는 마음이 약해서인지 당사자에게 직접 말을 못했어요. 인수위 첫 전체회의 때 ‘인수위원 중 일부는 새 정부에서 일을 못할 수도 있다’ 알리는 정도였어요.”
 
  —인수위원을 조각(組閣) 인선에서 배제하는 게 대통령 뜻이었나요.
 
  “꼭 누구의 뜻이라기보다…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대선이 끝나고 인수위 발표가 늦어져선 곤란하니 일단 (인수위에) 참여할 사람부터 빨리 뽑아야 합니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에는 장관에 대한 검증청문회가 없었어요. 그러니 인수위원이 장차관으로 쉽게 연결됐지만, 이명박 당선인 시절에는 청문회를 거쳐야 했어요. 그러니 시작부터 어떠했겠습니까.
 
  게다가 장관은 고려할 게 많아요. 지역·출신학교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 실컷 업무를 파악하고 인수에 관여한 사람은 정작 나가고, 인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이 장차관이 되는 경우가 발생했던 것이죠.”
 
 
  인수위의 법적 미비점
 
2008년 2월 4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관광산업인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 주호영 대변인과 함께 승합차에 올라 인수위를 나서고 있다.

  —인수위 당선자 대변인의 역할은 뭔가요.
 
  “당선인의 국정철학과 생각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또 국민의 기대와 바람을 당선인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막상 대변인을 맡고 보니,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정리하는 게 큰 과제였어요. 그때 내외신을 포함, 220여 매체가 인터뷰를 해달라는 겁니다. 한 매체를 하면 다른 매체의 요구가 들어오고… 고민거리였어요. 고르고 골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도 후유증이 많았습니다.”
 
  —MB는 인수위에 어떤 기대를 했나요.
 
  “대통령 속마음까지야… 당신의 국정 철학을 가장 잘 설계해 줄… 뭐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겠어요?”
 
  서울대 김광웅(金光雄) 명예교수는 정권인수를 ‘조심스럽고 세심한 배제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차기 정권에서 무엇을 받고, 또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를 가려내는 조심스러운 과정이란 얘기다.
 
  “당시 인수위는 그때그때 새로운 정책발표를 많이 했어요. 각종 매체에서 기자들이 인수위에 진을 치고 있었잖아요. 인수위가 어떤 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있나요? 그건 좀 잘못됐다고 봅니다.
 
  인수위는 부처 업무보고만 받고, 대통령 임기에 맞춰 의사결정을 거쳐 국정과제와 정책을 결정하면 됩니다. ‘점령군’처럼 미리 정책을 발표했다가 나중 뒤집히는 경우가 생겨나게 되고 그러면 혼란이 생깁니다. 어떤 정책의 앞뒤, 장단점을 다 못 봐서 부작용이 있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인수위가 휘청일 수도 있고요. 인수위는 확정되지 않은 정책을 함부로 발표하는 것은 삼가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수위의 권한과 역할, 법적 성격에 대한 이견이 없지 않다. 주 의원은 “인수위에 참여하며 느낀 불편을, 인수위가 끝나도 바꾸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게 되면, 뒤에 새로 올 정권이 다시 불편을 느끼게 된다. 당시 우리도 불편을 바꾸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게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표적인 예가 청와대 경호처장의 임용 문제였어요. 국무위원은 미리 인사청문을 요청해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임명하면 됩니다. 그러나 경호처장은 대통령이 취임하고 임용절차를 받게 돼 공백이 생겨요. 경호는 조선시대 시종무관(侍從武官)처럼 충성심이 통해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 시작과 동시에 같이 임기가 시작돼야 해요.
 
  현재는 전임 대통령의 경호처장이 후임 대통령의 경호를 일정기간동안 맡게 됩니다. 국무위원처럼 사전에 청문을 요청해 경호처장도 대통령 임기 시작과 동시에 발령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 의원은 대통령 임기 시작 문제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밤 12시에 대통령 임기가 시작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잠든 시각에,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셈이죠. 임기가 끝나니 전임 대통령은 자정에 청와대를 나가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러다 보니 과거엔 퇴임 전날 대통령이 미리 청와대에서 나왔어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에 집이 없다고 해서 임기 끝나는 날까지 청와대에서 자겠다고 했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할 수 없이 임기 첫날, 청와대 밖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어요.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입니다. 전군을 지휘할 수 있는 통신체계를 반드시 구축해야 합니다. 자정부터 취임식 후 청와대에 입성하기까지 몇 시간 동안에 필요한 통신체계를 마련하는 데 2억원가량의 예산이 들었어요. 불필요한 예산이죠. 대통령 임기 시점만 바로잡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봅니다.”
 
  미국은 새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면서 임기가 시작된다. 신구(新舊) 대통령이 동시에 백악관에 들어가 구 대통령은 떠나고 신 대통령은 남는 구조다.
 
 
  비정치인 인수위원장은 실패
 
  —조각 인선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조각은 인수위 후반기에 주로 논의했고, 처음에는 인수위 활동방향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선인 시절, 이 대통령 업무 스타일은요.
 
  “하여튼 부지런하고 철저했어요. 어떤 선택을 하거나 무슨 무슨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검토하면 여러 안이 올라오는데 담당자가 A 안이 좋다고 하면 왜 좋은지 철저히 따졌어요. A 안의 허점이 뭔지, B 안의 장점은 뭔지 꼼꼼히 따지더군요. 사전 준비가 부족하면 보고가 엉망이 돼요. 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수위원장은 이경숙(李慶淑) 숙명여대 전 총장이었다. 부위원장은 4선의 김형오(金炯旿) 전 국회의장이 맡았다. 비정치인 출신 위원장과 정치인 출신 부위원장의 기용은 나름 파격이었다.
 
  —이 인선에 어떤 배경이 작용했나요.
 
  “‘인수위원장-비정치인, 부위원장-정치인’ 구도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었어요. 저는 인수위원장은 정치인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위원장을 비정치인에게 맡기다 보니 직책과 역할에서 매치가 안 되더군요. 복잡한 인수작업을 하려면 정치나 정책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인수위를 김 전 의장이 주도하게 됐어요. ‘인수위원장-비정치인, 부위원장-정치인’ 구도는 미스매치(mismatch)였다 생각합니다.
 
  무슨 의도로 그런 구도를 택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정치인이 인수위원장이 되면 주위에서 ‘왜 그 사람이냐’는 얘기가 나오기 쉽고, 서로 하고 싶어하는 이가 많아 비정치인을 인수위원장으로 택한 것 같아요. 그러나 효율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MB가 당초 인수위에 정치인을 가급적 배제하려 했다고 합니다.
 
  “MB는 여의도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정치인에 대해 크레디트를 많이 안 준 것 같아요. 반대로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의전 비서관을 지냈던 서갑원(徐甲源) 의원 얘기를 들어보면, 노 대통령은 정치인을 높이 쳤다고 해요. YS도 그렇고요. 대개의 전임 대통령들은 정치인을 중시했습니다.”
 
  이명박 인수위는 7개 분과와 인수위원장 직속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로 구성됐다. 7개분과는 기획조정, 정무, 외교·통일·안보, 행정, 경제1, 경제2, 사회·교육·문화 분과 등으로 나뉘었다.
 
  —7개 분과위는 어떻게 당선자에게 보고했나요.
 
  “분과위에서 논의된 중요 정책을 대통령께 보고하는 식이죠. 필요하면 전체회의 소집해서 보고받기도 했는데 수시로 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신이 없었어요.”
 
  —당선인을 만나려는 사람도 많았겠어요.
 
  “그럼요. 국정자문도 받아야 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고, 만나자는 면담 신청도 많았고 (당선인이 직접)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면담신청을 정리하는 일이 참 어려웠어요. 그러니 대통령 의중을 많이 반영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명박 조각 인선의 비하인드 스토리
 
  인수위원 인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인수위원 인선에서 당선인의 역할은 적극적이었나요. 위임하는 스타일이었나요.
 
  “저도 속속들이는 모릅니다. 처음에는 저와 박영준(朴永俊)·정두언(鄭斗彦)씨 등이 관여했는데 정두언 전 의원은 초기에 관여하다가 업무에서 빠져버렸고, 그다음에 류우익(柳佑益) 장관, 임태희(任太熙) 전 장관 등이 관여했어요. 이재오(李在五)·이상득(李相得)·강재섭(姜在涉)씨 등이 당선인에게 추천했을 수도 있어요. 박재완(朴宰完·현 기획재정부 장관) 인수위원은 이런저런 인연이 섞여 여러 사람이 추천했던 걸로 압니다. 이들을 묶어 전체적으로 봐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전체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될 겁니다. 역할이 전부 달랐으니까요.”
 
  주 의원은 인수위원 인선 최종 단계에서 자신이 강하게 의견을 제기해 두 사람이 빠졌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잘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이 특검까지 요구하며 검찰에 고발했던 사람인데, 나중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새 정부에 참여할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대선 과정에서 조언도 많이 받은 분인데 ‘삼성 특검’과 관련해 공직에서 물러났던 분입니다. 그게 완전히 정리가 안 된 마당에 정부 인수 작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의견을 MB가 받아들였지요.”
 
  주 의원은 이어 조각 과정에 참여했던 비선(秘線)조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선인의 지시로 7명의 비선 인사가 예비 조각작업을 벌였는데, 별도의 장소에서 보안을 유지하며 머리를 맞댔지요. 저를 비롯해 류우익 장관, 이윤호(李允鎬) 전 지경부 장관, 김병국(金炳局)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서대원(徐大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박영준 전 지경부 2차관과 현직 고위 공무원 모씨 등이었습니다.
 
  각종 인사자료는 주로 박영준·윤한홍(尹漢洪·현 청와대 행정자치 비서관)씨가 준비했어요. 박영준씨가 언젠가 ‘5000명의 인사파일을 봤는데 눈이 아프다’는 말을 했는데 바로 그 즈음이었어요.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 후보 명단이 올라오면 검증하고 걸러, 당선인에게 보고하면서 후보 범위를 줄여나가는 작업이었습니다.”
 
  —10년 만의 정권교체였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우선 인재풀이 극히 적었어요. 10년간 이전 정부에서 핵심적으로 관여한 이는 쓸 수 없으니 인재풀이 좁을 수밖에요. 또 인물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 존안 자료는 기껏 2쪽밖에 안 되더군요. 풀 텍스트가 따로 있을 텐데,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자료만 왔어요.”
 
  —군이나 관료 등 기존 기득권 집단의 반발은 없었나요.
 
  “큰 반발은 없었어요. 각 부처에서 최고 엘리트들, 인수위원과 인맥이 닿은 사람을 보내 자기 이익을 관철하려 노력했어요.”
 
 
  부서 폐지된 중앙인사위·비상기획위 로비 엄청 해
 
  —친박 문제나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당선인은 어떤 고민을 했었나요.
 
  “당선되자마자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 전 대표와 40분간 뵈었어요. 그 외에 특사로 오가면서 두 번 뵙고, 경선 뒤의 앙금을 털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18대 총선 공천이 끝나고 확 악화됐어요.
 
  —인수위에 친박 참여에 대한 논의는요.
 
  “최경환(崔炅煥) 의원이 인수위원으로 들어갔잖아요. 참여 비율이 높으냐 적으냐의 문제지만 고려는 했었어요. 당선인실에도 친박의 허용범(許容範)씨가 참여하지 않았나요?”
 
  이명박 인수위는 2008년 1월 1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통일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여성부, 과학기술부 등 5개 부의 운명이 불과 21일 만에 결정됐다.
 
  “조직개편은 박재완 장관과 이달곤(李達坤) 청와대 정무수석(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주도했어요. 부처 통폐합을 두고 당시 교수가 쓴 논문이 13~14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각 교수의 논문에서 통폐합 의견이 중복된 순으로 통폐합안을 채택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국정홍보처였어요. 기자실을 없앤다며 대못질을 하지 않았나요? ‘통일저해부’라는 말을 듣던 통일부도 존폐가 막판까지 논의됐어요.
 
  MB는 여성부를 없애는 대신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려고 했어요. 부처가 되면 다른 부처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위원회는 부처보다 상위개념입니다. 각 부처에다 양성평등을 맞춰달라고 요구하기가 쉬워 여성부의 존재목적을 훨씬 더 달성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여성운동권 일부에서 꼭 필요하다고 해 여성가족부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부처가 사라졌던 중앙인사위, 비상기획위는 엄청난 로비가 있었고요.”
 
  각 정부마다 집권 초 정부조직 개편을 두고는 말들이 많다. 조직개편에 필요한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든지 아니면 인수위 안에 두든지, 하나하나의 직제까지 점검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 의원은 “정권을 인수하고 훗날 조직의 문제점을 찾아내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인수위의 탁상(卓上)에서 미리 조직부터 바꿔서 일을 시작하니, 중간에 문제가 생겨도 임기 중에는 못 바꾸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정부 직제를 법으로 정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해요. 외국은 큰 줄기만 만들고 대통령이나 수상이 필요에 따라 조직을 만든다고 해요. 프랑스는 부처 의견이 다르면 한 사람만 장관으로 임명해요. 예를 들어 환경부, 건설부가 서로 대립하면 한 장관에게 두 부처를 맡기는 식입니다. 우리는 정부조직이 너무 경직돼 있어요. 현실과 상황에 따라 조직을 만들거나 바꾸면 되는데 너무 경성(硬性)화돼 있어요. 인수위의 부처 통폐합 결정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봐요.”
 
  —대통령 4임 중임제가 되면 되겠네요.
 
  “하지만 그것도 4년간은 그냥 가야 하니까 문제가 될 수 있죠. 정부조직은 큰 줄기만 정해주고, 외국처럼 대통령 시행령으로 직제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검사·기자 출신과 교수 출신의 차이
 
  —당선자 대변인으로 가장 인상 깊은 일은요.
 
  “인수위에 검사와 기자 출신들이 보고를 잘하더군요. A, B, C 안을 가지고 와서 즉석에서 답변도 잘하고, (당선인에게) 의견도 활발히 개진하더군요. 기자와 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자기의견을 상사에게 관철하는 훈련을 많이 하는가 봐요. 검사는 부장·차장이 있고 기자는 데스크를 거치지 않나요? 그래서 당당하게 보고하고 자유롭게 말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교수는 그렇지 않더군요. 당선인이 ‘이게 아니질 않으냐’고 하면 금방 꼬리를 내리고 주저주저하더군요.”
 
  —또 어떤 점을 느꼈나요.
 
  “한 나라의 중요한 직책에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는데 이렇게 제한된 정보로, 그것도 철저한 조사 없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각과 청와대 수석 인선에 비밀스레 7명이 작업했는데 이 7명이 우리나라 모든 사람을 다 알 수 없잖아요. 그러니 내가 아는 사람 중심으로 추천할 수밖에 없고, 회자(膾炙)한 사람 중 우연히 그 사람을 잘 알면 좋은 평가를 받는 식이었어요. 인선을 여러 파트로 나눠, 예를 들어 16개 부처가 있다면 16개 파트가 각각 인선작업을 하면 좀 더 정교하게 사람을 뽑지 않겠습니까. 다방면의 다양한 의견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고 봅니다.”
 
  —인수위 활동시간이 67일밖에 안 돼 5년의 임기를 준비하기 벅차다는 의견도 있는데.
 
  “인수위 활동시간이 짧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이 역시 장단점이 있어요. 대선이 끝나고 당선인이 선출되면 그때부터 기존 대통령은 일손을 놓는 것처럼 비칩니다. 인수위 기간이 길면 다음 출발하는 정부야 준비기간이 길어 좋지만, 기존 정부는 그 기간에 제 역할을 거의 못하게 됩니다. 인수기간이 너무 길면 국정 공백기가 그만큼 길어지는 식이죠.”
 
  —집권 5년의 성패를 가름하는 국책사업을 두고 사회갈등이 많습니다.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가 추진할 국책사업을 선정, 집권 초에 일괄 발표하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세종시를 포함해 17개 광역자치단체가 한꺼번에 국책사업에 뛰어듭니다. 한 국책사업에 적게는 3~4개의 지자체가, 많게는 6~7개 지자체가 경쟁합니다. 서로 서명을 받고 광고전을 벌이며 현수막을 내겁니다. 못 받아내면 단체장·국회의원이 무능하다고 공격하고 이로 인한 국론분열이 너무 많아요. 국책사업 발표를 시차별로 하니, 한 지자체가 국책사업 가져가도 다음 국책사업에 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수위 기간 정무적, 정치적 판단을 해서 동시 발표하면 불필요한 사회갈등 비용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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