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가 〈‘학술 한류’ 사업에… “일제 덕에 경제 발전”〉 보도한 후 국내외 서점에서 판매 중단
⊙ 출판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
⊙ 같은 시기 외국과 비교해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식민지 지배하에서] 상당히 빨랐다’고 한 것을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은 빠른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로 왜곡
⊙ 식민지 경제의 취약성과 빈곤 등 지적한 것은 외면
⊙ 권위주의 시절의 성장 모델이 민주화 이후 작동하지 않게 된 점을 지적한 것을 ‘민주화의 성과 폄훼’로 왜곡
金載昊
1964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同 대학원 경제학 박사 / 現 전남대 경제학 전공 교수 / 저서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한말 궁방전의 지대》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 등
⊙ 출판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
⊙ 같은 시기 외국과 비교해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식민지 지배하에서] 상당히 빨랐다’고 한 것을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은 빠른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로 왜곡
⊙ 식민지 경제의 취약성과 빈곤 등 지적한 것은 외면
⊙ 권위주의 시절의 성장 모델이 민주화 이후 작동하지 않게 된 점을 지적한 것을 ‘민주화의 성과 폄훼’로 왜곡
金載昊
1964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同 대학원 경제학 박사 / 現 전남대 경제학 전공 교수 / 저서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한말 궁방전의 지대》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 등
필자는 작년 12월 초 《Economic History of Korea: An Overview》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2016년에 출간된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 경제학 히치하이커를 위한 한국사 여행안내서》(생각의 힘)라는 별난 제목의 책을 개정 증보하여 영역(英譯)한 한국 경제사 개론서다.
선사(先史)시대부터 현대까지를 다루는 한국 경제사 통사(通史)를 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생각조차 안 했었는데 2014년 연초부터 약 1년간 《한국경제》의 청소년판에 일주일에 한 번씩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할 기회가 생겨 이를 바탕으로 책으로 만들었다. 경제학 개념을 적극 이용하고 한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간명하게 서술하려고 애를 썼고 제목도 그러한 취지로 정한 것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신문에 연재할 때에도, 책으로 나왔을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책을 영역하게 된 것은 2021년부터 시작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주한 사업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발전을 외국에 소개하는 학술 사업이었는데 영어로 된 한국 경제사 개론서가 없었기 때문에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를 개정하여 영역하기로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AKS press 출판사에서 출판하기로 결정된 것은 2023년이었고, 2024년에 들어와 출판사 편집자에게 영문 원고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출판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영문 원고는 국문판에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으며 북한에 관한 37장과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 동향을 설명하는 38장을 추가하여 작성하였다. 서문도 새로 썼다.
MBC의 왜곡 보도
그런데 지난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MBC 뉴스데스크〉는 〈‘학술 한류’ 사업에… “일제 덕에 경제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MBC 뉴스데스크〉는 4곳의 인용문을 근거로 이 책이 식민지 지배와 군사 정권의 개발 독재를 미화하고 민주화의 성과를 폄훼하였다고 방송하였다. 그것도 ‘단독’이라는 간판까지 달아서. 방송이 되기 전날 조의명 기자로부터 책에 관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여 전화상으로는 곤란하다고 거절하였는데 몇 마디 한 것이 방송에 나왔다.
다음 날 1월 2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사가 악의적으로 방송이 나왔다고 동영상을 첨부하여 알려주었다. 같은 날 연구원에서 국회 상임위 질의에 답하는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의를 하여 전화상으로 답을 해주었는데, 바로 다음 날(1월 3일)에는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의 판매가 모두 중단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중에 저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 중단 조치를 한 것을 사과하는 서면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부터 국회 질의, 판매 중단까지 이렇게 신속하게 이뤄진 것은 사전에 계획이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할 터인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국내 온라인 서점의 경우 책이 품절로 표시되어 있고, 미국 아마존 또한 ‘out of print’로 표시, 구입할 수 없게 되었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저자는 왜곡 보도에 대해 방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MBC의 방송 기사가 복제되어 유포되었으며 급기야 광주(光州)에서는 100여 개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필자가 재직하는 전남대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는 규탄대회까지 열었다. 이에 《월간조선》 지면을 빌려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MBC의 왜곡 보도를 지적하고자 한다.
MBC의 보도는 심각하게 책의 진의를 왜곡하고 있다. 먼저 방송의 제목을 〈일제 덕에 경제 발전〉이라고 책에 없는 구절을 붙여 제시함으로써 책을 접하지 않은 시청자를 오도(誤導)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덕분에 한국 경제가 성장했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민주화를 폄훼하는 내용의 책”이라고 방송하였다.
방송에서는 그 근거로 다음의 4개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번역도 원문(原文)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축약(縮約)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가 반감(反感)을 가지도록 변조(變造)하여 번역하고 있다. 전후(前後) 맥락과 상관없이 고립된 한 문장만 제시함으로써 사전(事前) 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의 반감을 유도하려는 뜻이 명백히 엿보인다. MBC의 왜곡 보도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은 빠른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Above all, industrialization and economic growth were quite rapid [under the colonial rule].”(p.231)
“무엇보다도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식민지 지배하에서] 상당히 빨랐다.”
이 문장 바로 앞에 있는 식민지 기간 동안 도시화율은 1940년에도 16%에 불과하였으며 인구의 대다수는 농촌 지역에서 살았고 절반이 넘는 농민들은 봄에 식량이 부족한 심각한 빈곤 속에서 살았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위의 문장의 근거가 바로 뒤에 제시되어 있지만 역시 언급하지 않았다.
식민지 시기 GDP 추계(推計)를 위한 공동연구의 결과로 1911~1940년 1인당 GDP의 연평균 성장률은 2.3%로 추계되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저성장의 시기였기 때문에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부문 간 성장률의 차이로 인하여 광공업 부문의 비중이 높아졌다. 1911~1940년 광공업은 연평균 9.7% 성장하여 GDP에서의 비중이 1911년의 6.7%에서 1940년 26.0%로 높아졌다. 이러한 추계 결과를 서술한 것일 뿐이지 정치적 무권리 상태인 식민지 지배를 미화(美化)할 목적을 가지고 서술한 것이 아니다.
2 “조선왕조와 달리 총독부는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In contrast to the Choson dynasty, the Government-General of the colonial period began to escape from the ‘fiscal-capacity trap’ and was able to make investments essential for economic growth.”(p.233)
“조선왕조와는 대조적으로 식민지 기간의 총독부는 ‘재정 능력 함정’에서 탈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하여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책에는 인용문에 이어서 총독부 재정에 의한 투자에 관하여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총독부의 재정 규모(지방재정을 포함)는 1911년 GDP의 10.3%에서 1940년 25.0%로 증가하였고, 조세부담률(조세수입/GDP)은 같은 기간 3.2%에서 8.0%로 증가하였다. 총독부는 조세뿐만 아니라 철도와 전매(專賣) 등의 관업(官業)에서도 수입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수입을 기초로 총독부는 ‘재정투융자’, 즉 철도·도로 등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행하였다. 총독부는 재정 지출의 20~30%를 투자(고정자본 형성)를 위해서 지출하였다. 투자는 자본 형성을 위한 것이며 이러한 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를 하였다는 점에서 총독부는 조선왕조와 크게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MBC 보도에서 총독부 투자에 의해서만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것처럼 인용한 것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총독부는 일본 자본이 조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물적·제도적 기반을 형성한 것이며 이러한 기반 위에 일본으로부터 기업이 진출하는 형태로 자본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유입된 자본과 식민지의 노동력이 결합하여 생산이 증대하였다는 사실, 즉 경제 성장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장기간의 공동 연구에 의한 GDP 추계에 의해서 입증되었다.(〈한국의 장기통계: 국민계정〉; 〈한국의 장기통계〉I,II; Historical Statistics of Korea). 농업 생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경제활동이 일본 자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성장의 모멘텀이 일본 자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일본 ‘덕분에’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3 “독립 이후 일본과 경제 관계가 단절된 후 한국의 산업 생산은 급격히 위축됐다.”
“This limitation suffered by the colonial economy is supported by the fact the economy shrank for a long time after economic links with Japan were severed as a result of national independence.”(p.238)
“식민지 경제가 겪었던 이러한 한계는 독립의 결과로 일본과의 경제적 연계가 단절된 이후 오랫동안 경제가 위축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지지된다.”
이 문장의 목적은 식민지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해방 후 경제가 위축되었다). ‘This limitation’은 조선총독부가 제국주의 본국(本國)에 종속된 권력이기 때문에 총독부에 식민지 조선의 기업을 보호하고 본국과 경쟁하는 자립적인 지역 경제를 수립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일본 본토와 관계가 단절되면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자본재·원료 등의 수입이 불가능해지고 기술자의 귀환으로 인적 자원도 급감했기 때문에 생산이 위축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이중의 단절’이 초래되었기 때문에 급격히 생산이 위축되었다. 생산이 위축되는 것과 1인당 GDP가 감소하는 것은 같은 뜻이다. 1940년의 1인당 GDP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식민지 경제가 갖는 취약성 때문에 해방 후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4 “1987년 민주화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틀을 무너뜨렸고, 그 결과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
“By replacing the authoritarian political system, the democratization of 1987~1988, marked by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of the direct presidential elections, shattered the institutional framework that made rapid economic growth possible. The long-suppressed labor movement erupted, and wages soared, eventually outpacing labor productivity. As a result, export competitiveness was eroded, making it difficult to sustain the economic structure built up during the rapid growth period.”(p.260).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대체함으로써,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대표되는 1987~1988년의 민주화는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던 제도적 틀을 무너뜨렸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노동운동이 분출하였고 임금이 치솟아 결국 노동생산성을 앞질렀다. 결과적으로 수출경쟁력이 침식되어 고도성장기에 수립되었던 경제구조를 지속하는 것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1987~1988년의 민주화와 관련하여, 노동운동을 억압하여 저임금체제를 유지함으로써 가능하였던 민주화 이전의 고도성장체제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폭발하고 임금이 급속히 상승하였다. 단기간의 임금 상승은 노동생산성 증가를 초과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켰고, 이것이 한 가지 요인이 되어 1990년대는 그 이전 시기보다 성장률이 저하하고 국제수지도 악화되었다. 1990년대는 저임금에 기반한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이행하지도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외부적 요인과 결합하여 1997년 IMF 외환(外換)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왜 민주화의 성과를 폄훼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도성장이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의한 노동운동의 억압에 의한 저임금체제 위에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민주화 이후 이러한 억압적 경제구조가 더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것인데 말이다.
경제사를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해석
방송에서는 이상의 경제적 측면에 국한해서 서술한 내용을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개발 독재를 미화하며 민주화를 폄훼한다고 평가하고 비난을 하고 있다. 경제사 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경제적 측면에 국한해 서술한 것에서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빚어진 왜곡이라고 판단된다.
앞으로 이러한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 있다. 식민지 시대는 경제 성장이 일어나지 않아서 항상 마이너스 성장만 일어났고, 공업화는 불가능하여 언제까지나 농업사회로 머물러 있었다고 쓰는 것이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고도성장이 일어나지 않았고 민주화 이후 고도성장기보다 더 높은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경제사 서술을 정치적 관점 또는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킨다면 경제적 변화의 실상과 변화의 요인에 대한 설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도 예외가 아니다. 자기가 사는 세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회가 만드는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식민지 시기의 경제 성장에 대해서 연구하고 언급하는 것은 그 시기도 한국인의 생활이 이루어진 시공간(時空間)이며 해방 이후 국민 경제 수립을 위한 초기 조건을 이루기 때문이다. 초기 조건에 따라서 이후 발전 경로가 크게 달라졌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였지만 근대적 제도와 문물이 유입되었고 새로운 경험과 학습이 이루어져 해방 이후 한국사에 어쩔 수 없이 융합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고는 한국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시기에 진행된 변화, 경제사와 관련해서는 경제적 변화, 경제 성장을 이해해야만 한다. 식민지 시기에 대한 객관적 이해는 한국 사회가 지적(知的)으로 성숙하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 책을 전체적으로 읽으면 책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고 오해도 해소되리라고 생각한다. 현재 판매가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방송 이후에 책도 읽지 않고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원문(33~38장)을 보면 식민지 경제의 경제 성장 외에 식민지 지주제와 농민의 빈곤, 부의 불평등, 노동동원 등 다양한 측면을 언급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MBC는 마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외국에 무상(無償)으로 배포할 책으로 기획하여 출판한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의 저작으로 일반 책과 마찬가지로 판매되는 책으로 기획되었으며 작년 12월 초에 출판되어 2025년 1월 3일 판매가 중단되기까지는 온라인 서점에서 일반 책과 동일하게 유통되었다. 아마존에서도 판매를 시작하였는데 같은 날 판매가 중단되었다.
필자는 이 사태가 필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의 근간인 출판의 자유 그리고 지식 발달의 기초인 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로 생각한다. 21세기가 4분의 1이나 지난 선진국 한국에서 문명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픔마저 느낀다.⊙
선사(先史)시대부터 현대까지를 다루는 한국 경제사 통사(通史)를 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생각조차 안 했었는데 2014년 연초부터 약 1년간 《한국경제》의 청소년판에 일주일에 한 번씩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할 기회가 생겨 이를 바탕으로 책으로 만들었다. 경제학 개념을 적극 이용하고 한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간명하게 서술하려고 애를 썼고 제목도 그러한 취지로 정한 것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신문에 연재할 때에도, 책으로 나왔을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책을 영역하게 된 것은 2021년부터 시작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주한 사업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발전을 외국에 소개하는 학술 사업이었는데 영어로 된 한국 경제사 개론서가 없었기 때문에 《대체로 무해한 한국사》를 개정하여 영역하기로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AKS press 출판사에서 출판하기로 결정된 것은 2023년이었고, 2024년에 들어와 출판사 편집자에게 영문 원고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출판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영문 원고는 국문판에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으며 북한에 관한 37장과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 동향을 설명하는 38장을 추가하여 작성하였다. 서문도 새로 썼다.
MBC의 왜곡 보도
그런데 지난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MBC 뉴스데스크〉는 〈‘학술 한류’ 사업에… “일제 덕에 경제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MBC 뉴스데스크〉는 4곳의 인용문을 근거로 이 책이 식민지 지배와 군사 정권의 개발 독재를 미화하고 민주화의 성과를 폄훼하였다고 방송하였다. 그것도 ‘단독’이라는 간판까지 달아서. 방송이 되기 전날 조의명 기자로부터 책에 관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여 전화상으로는 곤란하다고 거절하였는데 몇 마디 한 것이 방송에 나왔다.
다음 날 1월 2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사가 악의적으로 방송이 나왔다고 동영상을 첨부하여 알려주었다. 같은 날 연구원에서 국회 상임위 질의에 답하는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의를 하여 전화상으로 답을 해주었는데, 바로 다음 날(1월 3일)에는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의 판매가 모두 중단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중에 저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 중단 조치를 한 것을 사과하는 서면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부터 국회 질의, 판매 중단까지 이렇게 신속하게 이뤄진 것은 사전에 계획이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할 터인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국내 온라인 서점의 경우 책이 품절로 표시되어 있고, 미국 아마존 또한 ‘out of print’로 표시, 구입할 수 없게 되었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저자는 왜곡 보도에 대해 방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MBC의 방송 기사가 복제되어 유포되었으며 급기야 광주(光州)에서는 100여 개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필자가 재직하는 전남대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는 규탄대회까지 열었다. 이에 《월간조선》 지면을 빌려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MBC의 왜곡 보도를 지적하고자 한다.
MBC의 보도는 심각하게 책의 진의를 왜곡하고 있다. 먼저 방송의 제목을 〈일제 덕에 경제 발전〉이라고 책에 없는 구절을 붙여 제시함으로써 책을 접하지 않은 시청자를 오도(誤導)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덕분에 한국 경제가 성장했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민주화를 폄훼하는 내용의 책”이라고 방송하였다.
방송에서는 그 근거로 다음의 4개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번역도 원문(原文)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축약(縮約)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가 반감(反感)을 가지도록 변조(變造)하여 번역하고 있다. 전후(前後) 맥락과 상관없이 고립된 한 문장만 제시함으로써 사전(事前) 지식이 없는 시청자들의 반감을 유도하려는 뜻이 명백히 엿보인다. MBC의 왜곡 보도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은 빠른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Above all, industrialization and economic growth were quite rapid [under the colonial rule].”(p.231)
“무엇보다도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식민지 지배하에서] 상당히 빨랐다.”
이 문장 바로 앞에 있는 식민지 기간 동안 도시화율은 1940년에도 16%에 불과하였으며 인구의 대다수는 농촌 지역에서 살았고 절반이 넘는 농민들은 봄에 식량이 부족한 심각한 빈곤 속에서 살았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위의 문장의 근거가 바로 뒤에 제시되어 있지만 역시 언급하지 않았다.
식민지 시기 GDP 추계(推計)를 위한 공동연구의 결과로 1911~1940년 1인당 GDP의 연평균 성장률은 2.3%로 추계되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저성장의 시기였기 때문에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부문 간 성장률의 차이로 인하여 광공업 부문의 비중이 높아졌다. 1911~1940년 광공업은 연평균 9.7% 성장하여 GDP에서의 비중이 1911년의 6.7%에서 1940년 26.0%로 높아졌다. 이러한 추계 결과를 서술한 것일 뿐이지 정치적 무권리 상태인 식민지 지배를 미화(美化)할 목적을 가지고 서술한 것이 아니다.
2 “조선왕조와 달리 총독부는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In contrast to the Choson dynasty, the Government-General of the colonial period began to escape from the ‘fiscal-capacity trap’ and was able to make investments essential for economic growth.”(p.233)
“조선왕조와는 대조적으로 식민지 기간의 총독부는 ‘재정 능력 함정’에서 탈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하여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책에는 인용문에 이어서 총독부 재정에 의한 투자에 관하여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총독부의 재정 규모(지방재정을 포함)는 1911년 GDP의 10.3%에서 1940년 25.0%로 증가하였고, 조세부담률(조세수입/GDP)은 같은 기간 3.2%에서 8.0%로 증가하였다. 총독부는 조세뿐만 아니라 철도와 전매(專賣) 등의 관업(官業)에서도 수입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수입을 기초로 총독부는 ‘재정투융자’, 즉 철도·도로 등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행하였다. 총독부는 재정 지출의 20~30%를 투자(고정자본 형성)를 위해서 지출하였다. 투자는 자본 형성을 위한 것이며 이러한 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를 하였다는 점에서 총독부는 조선왕조와 크게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MBC 보도에서 총독부 투자에 의해서만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것처럼 인용한 것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총독부는 일본 자본이 조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물적·제도적 기반을 형성한 것이며 이러한 기반 위에 일본으로부터 기업이 진출하는 형태로 자본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유입된 자본과 식민지의 노동력이 결합하여 생산이 증대하였다는 사실, 즉 경제 성장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장기간의 공동 연구에 의한 GDP 추계에 의해서 입증되었다.(〈한국의 장기통계: 국민계정〉; 〈한국의 장기통계〉I,II; Historical Statistics of Korea). 농업 생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경제활동이 일본 자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성장의 모멘텀이 일본 자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일본 ‘덕분에’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3 “독립 이후 일본과 경제 관계가 단절된 후 한국의 산업 생산은 급격히 위축됐다.”
“This limitation suffered by the colonial economy is supported by the fact the economy shrank for a long time after economic links with Japan were severed as a result of national independence.”(p.238)
“식민지 경제가 겪었던 이러한 한계는 독립의 결과로 일본과의 경제적 연계가 단절된 이후 오랫동안 경제가 위축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지지된다.”
이 문장의 목적은 식민지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해방 후 경제가 위축되었다). ‘This limitation’은 조선총독부가 제국주의 본국(本國)에 종속된 권력이기 때문에 총독부에 식민지 조선의 기업을 보호하고 본국과 경쟁하는 자립적인 지역 경제를 수립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일본 본토와 관계가 단절되면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자본재·원료 등의 수입이 불가능해지고 기술자의 귀환으로 인적 자원도 급감했기 때문에 생산이 위축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이중의 단절’이 초래되었기 때문에 급격히 생산이 위축되었다. 생산이 위축되는 것과 1인당 GDP가 감소하는 것은 같은 뜻이다. 1940년의 1인당 GDP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식민지 경제가 갖는 취약성 때문에 해방 후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4 “1987년 민주화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틀을 무너뜨렸고, 그 결과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
“By replacing the authoritarian political system, the democratization of 1987~1988, marked by the constitutional amendment of the direct presidential elections, shattered the institutional framework that made rapid economic growth possible. The long-suppressed labor movement erupted, and wages soared, eventually outpacing labor productivity. As a result, export competitiveness was eroded, making it difficult to sustain the economic structure built up during the rapid growth period.”(p.260).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대체함으로써,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대표되는 1987~1988년의 민주화는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던 제도적 틀을 무너뜨렸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노동운동이 분출하였고 임금이 치솟아 결국 노동생산성을 앞질렀다. 결과적으로 수출경쟁력이 침식되어 고도성장기에 수립되었던 경제구조를 지속하는 것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1987~1988년의 민주화와 관련하여, 노동운동을 억압하여 저임금체제를 유지함으로써 가능하였던 민주화 이전의 고도성장체제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폭발하고 임금이 급속히 상승하였다. 단기간의 임금 상승은 노동생산성 증가를 초과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켰고, 이것이 한 가지 요인이 되어 1990년대는 그 이전 시기보다 성장률이 저하하고 국제수지도 악화되었다. 1990년대는 저임금에 기반한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체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직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이행하지도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외부적 요인과 결합하여 1997년 IMF 외환(外換)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왜 민주화의 성과를 폄훼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도성장이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의한 노동운동의 억압에 의한 저임금체제 위에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민주화 이후 이러한 억압적 경제구조가 더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것인데 말이다.
경제사를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해석
방송에서는 이상의 경제적 측면에 국한해서 서술한 내용을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개발 독재를 미화하며 민주화를 폄훼한다고 평가하고 비난을 하고 있다. 경제사 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경제적 측면에 국한해 서술한 것에서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빚어진 왜곡이라고 판단된다.
앞으로 이러한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 있다. 식민지 시대는 경제 성장이 일어나지 않아서 항상 마이너스 성장만 일어났고, 공업화는 불가능하여 언제까지나 농업사회로 머물러 있었다고 쓰는 것이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고도성장이 일어나지 않았고 민주화 이후 고도성장기보다 더 높은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경제사 서술을 정치적 관점 또는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킨다면 경제적 변화의 실상과 변화의 요인에 대한 설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도 예외가 아니다. 자기가 사는 세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회가 만드는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식민지 시기의 경제 성장에 대해서 연구하고 언급하는 것은 그 시기도 한국인의 생활이 이루어진 시공간(時空間)이며 해방 이후 국민 경제 수립을 위한 초기 조건을 이루기 때문이다. 초기 조건에 따라서 이후 발전 경로가 크게 달라졌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였지만 근대적 제도와 문물이 유입되었고 새로운 경험과 학습이 이루어져 해방 이후 한국사에 어쩔 수 없이 융합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고는 한국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시기에 진행된 변화, 경제사와 관련해서는 경제적 변화, 경제 성장을 이해해야만 한다. 식민지 시기에 대한 객관적 이해는 한국 사회가 지적(知的)으로 성숙하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 책을 전체적으로 읽으면 책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고 오해도 해소되리라고 생각한다. 현재 판매가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방송 이후에 책도 읽지 않고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원문(33~38장)을 보면 식민지 경제의 경제 성장 외에 식민지 지주제와 농민의 빈곤, 부의 불평등, 노동동원 등 다양한 측면을 언급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MBC는 마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외국에 무상(無償)으로 배포할 책으로 기획하여 출판한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의 저작으로 일반 책과 마찬가지로 판매되는 책으로 기획되었으며 작년 12월 초에 출판되어 2025년 1월 3일 판매가 중단되기까지는 온라인 서점에서 일반 책과 동일하게 유통되었다. 아마존에서도 판매를 시작하였는데 같은 날 판매가 중단되었다.
필자는 이 사태가 필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의 근간인 출판의 자유 그리고 지식 발달의 기초인 학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로 생각한다. 21세기가 4분의 1이나 지난 선진국 한국에서 문명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픔마저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