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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공개

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①

북한판 10·26 계획한 北 혁명조직 2004년 발족, 금수저 중심의 소수 정예로 구성

글 :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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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독재체제 무너뜨리는 방법 연구
⊙ 보안 이유로 소수 정예 구성… 과거 중앙당 간부 자녀로 구성된 ‘反김정일 조직’, 규모 늘어나면서 모두 적발
⊙ 북한 주민이 민주주의의 등불로 바라볼 수 있는 민주 정권의 설립자 내세워야
⊙ 북한 주민 성급히 못 나서는 이유… 南이 개입해 통일될 경우 南의 식민지인으로 천대받을 가능성 우려

도희윤
1967년 출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뉴라이트 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주]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지난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이란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와 메신저를 통해 맨 처음 나눈 대화 등이 담겨 있었다.
  10여 년 전 미국 국방부 소속 미군유해발굴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무척 부러워한 것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늘 다짐했다. 우리가 모든 의례(儀禮)에서 빠지지 않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올리듯이, 우리의 하고자 하는 일들에서 먼저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잊지 않고, 또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들마저 감싸안고 성심껏 보살피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라는 것을….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라는 것이 죽은 자들의 숭고한 희생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미약한 것이겠지만, 이러한 결의는 모두의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크나큰 용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신념으로 서려는 세력은 늘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이번에 연재하는 글도 그 연장선에 있음을 먼저 밝힌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북한 내부의 노예처럼 사는 주민들을 사람답게 살게 하려는 저항세력들이 사느냐 죽느냐 결판난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만 한다.
 
  오늘의 행동이 역사에 큰 죄악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반도에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이 지극히 당연한 문제의식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할지 조금은 서글픈 질문을 던지면서 남북 혁명가의 대화를 시작한다.(대화록은 북한식 표기 수정 없이 실음.)
 
 
  혁명조직원에게 ‘최이상’이란 닉네임 지어준 이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의 대화에서 우린 ‘도’ ‘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도는 필자를 지칭하는 것이고, 최는 닉네임으로 필자가 미리 정해서 보내준 대화명인데 ‘최이상’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시 필자의 아우 김씨는 자신이 왜 최이상인지 모르고 있었을 거다. SNS상의 대화는 처음이었을 테니 말이다.
 
  필자는 아우에게 대화명으로 ‘최고의 이상’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기로 했다.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사회로 만들겠다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마 아우에게 보이는 필자의 닉네임은 ‘인간사랑’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SNS상의 공간에서 만났고, 밤새 새벽이 멀다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아주 큰 사상적(?) 차이로 말미암은 다툼도 여러 차례 있었다. 돌이켜보면 무슨 대화를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아마 체력이 달려서도 안 될 것 같다.
 
 
  첫 번째 교신
 
도희윤 대표가 북한의 내부 혁명조직원인 김씨(최이상이라 표현)에게 처음으로 보낸 메신저의 캡처 이미지. 사진=도 대표 제공
  첫 번째 교신에 성공한 이야기다. 대화방에 남아 있는 그대로를 옮긴다.
 
  도: 하이
 
  도: 이제 시작합시다.
 
  도: 이게 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도: 기도합니다.
 
  도: 여기는 sk(south korea)!
 
  도: nk(north korea) 나오세요.
 
  도: 제발 되어야 할 텐데요.
 
  도: 이게 보이면 되는 건데요.
 
  도: 아직 안 되는 거 같은데요.
 
  한참을 혼자서 미친 듯이 문자를 날렸다. 아직 저쪽에서는 답장이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우의 신변에? 아니, 아니 조금 전에 통화는 했으니까. 그러면 기계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러면 정말 곤란해진다. 이 기계가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걸 다시 해야 한다면 아이고 정말이지 큰일이다. 어쩌지. 아아~.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연락이 왔다.
 
  최: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도: 오호 되네요.
 
  도: 된다!
 
  도: 오호!!
 
  도: 축하합니다. 이것은 별도의 라인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안전은 최고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은 이것으로 하면 됩니다. 사진도 보낼 수 있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걸로 하면 됩니다.
 
  도: 사진 보이죠? (필자는 사진전송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몇 개의 사진을 보낸다.)
 
  최: 보입니다.
 
  도: 좋아요^^
 
  최: 대표님 오늘은 시험통신으로 그치고 래일 기본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도: 아예 알았습니다. 편히 쉬세요.
 
  손에 땀을 쥐는 첫 교신은 이렇게 아쉽게 끝났지만, 필자는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조금 전의 고뇌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아직은 서로 존칭을 사용하는 수준으로, 처음 SNS로 연락이 시작된 2014년 10월 23일의 밤 교신내용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고 온 답변
 
도희윤 대표는 최이상과의 첫 대화와 관련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마냥 서로에게 향하는 들뜬 마음으로 새벽까지 메신저를 했다”고 전했다.
  첫 교신 다음 날인 10월 24일 필자는 출근을 서두르면서까지 문자를 보냈다. 최이상이 볼 수 있을 시간에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라는 일종의 신호였다.
 
  도: 이제 전화보다는 이것(메신저)으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박 선생(아우는 자신을 박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물론 가명이지만 말이다)을 뵈러 11월에 그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상호 간 안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화상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쪽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되나, 박 선생의 신변에는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내로 저와 통화를 하면서 논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뭐냐 하면 전화로 상호 간 다투는 거죠. 말로 싸움을 하고. 우리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약간의 연기인 셈이죠. 그곳에서 만나더라도 특정장소에서 긴급히 의견 나누면 큰 무리는 없을 거로 예상합니다.
 
  모쪼록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저는 박 선생과 연결된 것이 하늘이 내린 우리 민족의 소중한 기회라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상호 간 꼭 살려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을 첫째로 두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굳게 믿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유의 파도가 되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함께 갑시다. 언제나 시작의 마음으로.
 
  최이상은 하루가 거의 지나서야 답장을 했다. 그때 시각이 한국시각으로 오후 10시경이었다. 그날의 대화는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처럼 서로에게 향하는 들뜬 마음으로 진행했다. 대화를 마무리한 시각은 새벽 2시를 넘어서였다.
 
 
 
“만나게 될 날짜와 시간 장소는 본인의 의견을 따라달라”

 
도희윤 대표가 공개한 최이상의 라디오. 북한 당국은 ‘우리민족끼리’ 유튜브 방송에서 최이상을 일개 중졸의 노동자라 했지만, 최이상은 스스로 라디오를 만들 수도 있고 자기 혼자 쓰는 독방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진=도 대표 제공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더욱 깊이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고, 한반도의 명운이 우리에게 달린 양 숙연하고도 무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최: 대표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이곳의 당국이 잠을 자고 있지 않다는 데 대하여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정이 넘어서 서울과 통화한 내용을 그들이 못 들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의 감청원들도 한국어에 능한 이곳의 사람들이 아니고 북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생각과 생활 문화까지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갑자기 서로 다투고 의절하는 것으로 연기하면 그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폭탄 테러리스트들입니다. 그러니 며칠 지나서 대표님이 저에게 전화를 여러 번 걸고, 제가 몇 번 거절하다가 평양으로 돌아가니 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헤여지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사용하던 전화기는 작동을 멈추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대표님과의 만남인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시간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24시간에 분할되여 일대일 대응되게 됩니다. 이 시공간을 따지는 것이 수사학의 초보적 공식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만나게 될 날짜와 시간 장소는 저의 의견을 따라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조직이 대표님과 만나게 된 것은 하늘이 준 행운입니다. 앞으로 나의 고향 평양에 자유와 민주주의 깃발을 휘날릴 때까지 손잡고 싸워나가기를 바랍니다.
 
  도: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곳을 방문할 때는 무엇보다 박 선생의 의견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호텔이나 기타 만나는 장소와 방식 등은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두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김씨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법 연구하는 조직”
 
최이상은 도희윤 대표에게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대해 “김정은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연구 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님에게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어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우리 동무들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글로 남긴 적은 없기 때문에 저의 이야기가 매우 산발적이고 체계성이 없더라도 리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 그럼요. 그렇게 해주세요. 편하게 천천히 쓰시면 됩니다.
 
  최: 우리 조직은 평양에 존재하는 김씨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조직입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독재체제가 어떻게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는가를 깊이 연구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어떤 기계를 조립한 조립도가 있어야 그 기계를 분해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독재체제를 분해하는 데서 어느 부분이 분해의 시작점인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보안상 소수 정예로 구성

 
  도: 예 이런 식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제가 받고 충분히 이해하고 답장을 하겠습니다.
 
  최: 우리 조직은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여 있고 조직의 보안관계로 더는 늘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제가 조직성원들의 소속과 직무,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우리 조직의 보안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독재체제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 좋게 나무랄 데 없는 계급적 토대를 가지고 태여났고, 또 우리의 부모들 역시 독재체제를 위하여 한 생을 성실하게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독재체제가 오직 자기 개인의 영원한 집권과 영원한 세습이라는 욕심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화의 근원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했기에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 스스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조직의 공식명칭은 없고 활동원칙과 활동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최: 독재체제가 어떤 시스템으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는가에 대하여서는, 우리만 아니고 남한에 있는 많은 북한문제연구소나 단체들이 자기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있고 자기의 견해들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90% 이상이 우리와 의견을 동일시하고 있는 데 대하여 우리도 놀랐습니다. 단지 차이나는 것은 남한의 전문가들은 북한은 주민들의 내부 반정부 폭동이나 시위는 기대할 수 없고, 권력층 내부의 반변이나 쿠데타에 의한 가능성만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의견을 반대로 가집니다. 독재체제는 자기의 특성으로부터 권력층 내부의 반란이나 쿠데타는 불가능하고 일반주민들의 반독재 폭동만이 가능합니다.
 
 
  권력층 내부 쿠데타 아닌, 주민 폭동으로 김정은 체제 무너질 수도
 
  최: 그러면 그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정치대학의 심리정보강좌의 한 교수가 로므니아 사태(루마니아 사태)에 대하여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차우세스크 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소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권의 교체가 선거에 의하여 진행됩니다. 국민이 정권이 교체되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다음번 선거 때를 기다려 선거를 통하여 새 정권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정권은 선거를 통하여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폭발적인 폭동에 의하여 교체됩니다. 일반적으로 정권은 인민들 모두가 100%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권은 상시적인 반항력을 지탱해내야 합니다. 그 반항력이 정권 유지력보다 크면 무너집니다. 비유해 말하면 물의 압력을 받는 언제(댐)와 같습니다. 그래서 정권을 언제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차이나는 것은 물은 언제가 넘어가든 안 넘어가든 상시적으로 언제를 밀고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권에 불만이 있어도 정권이 무너질 것 같지 않을 때에는 행동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정권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면 반정부 폭동에 급작스럽게 합류합니다. 자그마한 불꽃이 급작스럽게 커집니다. 이를 막기 위하여서는 정보기관이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를 상시적으로 장악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폭동진압 군사력이 강해 폭동에 나서야 정권은 무너지지 않으며 죽음밖에 차례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어 불만이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정권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다는 인식을 주어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대중으로부터 환호와 지지를 받는 행사를 자주 연출해야 합니다.
 
  시간은 금세 밤 12시가 됐다. 최이상은 그칠 줄 몰랐고 봄날의 봇물 터지듯 속에 품은 많은 이야기를 오늘로 끝장을 낼 것같이 계속 쏟아냈다.
 
  최: 차우세스크 정권은 이 점을 놓쳤습니다. 대중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를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부인인 엘레나 차우세스크가 국가안전위원회위원장을 하였지만, 그의 무능으로 해서….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재정권은 자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北 주민이 민주주의의 등불로 바라볼 수 있는 정권 설립자 만들어내자
 
  도: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제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글을 쓰실 거면 편하게 보내세요.
 
  최: 피곤하지 않으시다면.
 
  도: 저는 상관없는데. 박 선생이 피곤하시겠어요. 그리고 저와 상관없이 쓰시면 됩니다. 저는 피곤하면 자고 일어나서 확인하면 되니까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보내세요. 이게 이 점이 좋아요. 언제든 확인하면 되니까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최: 북한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다달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넘길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고 다음으로는 행동으로 넘길 방향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남한사람의 경우에는 매우 단순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다음 대한민국에 귀속되면 될 텐데’라고. 그러나 이것은 남한의 욕심이고 북한사람들의 대부분은 북조선이 남조선에 먹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50년간은 한국의 식민지로 한국의 2부류 국민으로 천대를 받을 것이라는 공통된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겨울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우리 조직에서 평양 시민을 상대로 은근히 여론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27살밖에 안 된 어리신 전하께서 이제 위대한 수령이 됐으니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대로 나가다가는 5살 난 어린애를 수령으로 모시는 나라로 될 수 있다’고 물었더니 그래도 장성택이나 최룡해가 위대한 수령 되느니 김정은이가 낫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수령이 되든 김정일이를 본 따 더한 독재자가 될 뿐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여론을 접하고 우리는 ‘아직 북한이 로므니아(루마니아)나 동독과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조직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는데, 첫 번째가 ‘북한에는 아직 반독재 투쟁이 일어날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두 번째가 ‘북 주민들이 민주주의의 등불로 바라볼 수 있는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정권의 설립자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실현하자면 같은 동족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는 것 외 방법이 없으므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혁명조직 발족은 2004년 즈음
 
과거 북한 내부의 혁명조직은 김정일의 무능함을 무기명 투서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투쟁했는데, 이는 자신들의 필적을 남기는 치명적 실수였다. 이들은 모두 적발됐다.
  도: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박 선생의 조직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제가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조직이 언제부터 구성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박 선생이 말씀하신 인민들의 항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직이 어떤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조직이 박 선생 주변의 인원들로 구성된 것인가 하는 것과 독재체제의 탄압 속에 희생된 여러 조직과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명칭도 아니고 인원수도 아닙니다. 다만 이 같은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며, 이 같은 소중한 조직을 목숨으로 사수하고 지키고 승리하게 도와드리고 싶은 저의 마음입니다. 이 점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북한 보위부 출신의 탈북자가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조사를 담당했던 사건 중에 대학생들로 구성된 반체제조직이 있었는데, 끝까지 조직의 보위를 지켰으며, 김정일이 이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면서 조사에 참여한 성원들에게 ‘이들의 존재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만약 누설이 되면 그들과 똑같이 처리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 전율을 느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래서 박 선생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최: 우리 조직이 발족한 것은 한 10년 전입니다. 제가 구태여 우리를 ‘○○○’이라고 자칭한 것은 공식명칭을 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리유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이미 전에 존재하였던 여러 개의 반독재 운동단체의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독재 단체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체제에 개인적 원한을 품은 사람들의 조직이고, 다른 한 가지는 우리와 같은 부류입니다. 첫째 부류의 조직은 주로 물리적인 파괴활동으로 독재체제에 흠집을 내자는 것이고 이는 1980년대 중엽까지 거의 사멸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김일성종합대학과 중앙대학들에서 김정일의 정치가 아버지인 김일성의 정치제도 구상과 다르게 나가자, 주로 중앙당과 중앙기관의 간부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원시적인 조직체들이 김정일의 무능함을 무기명 투서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는데, 이는 자기들의 필적을 남기는 실수를 하여 모두 적발되었습니다. 1990년 이후에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공산주의가 인류의 배척을 받은 주의라는 것을 인식한 리과대학의 학생들과 평양시의 중앙대학생들로 이뤄진 반체제 조직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잦은 모임을 통하여 학술토론의 방법으로 변화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운동의 폭을 넓히려고 하였습니다.
 
 
  과거 혁명조직, 규모가 확대하면서 발각돼
 
  도: 잘 알겠습니다. 그쪽 시간이 3시를 넘겼는데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
 
  최이상의 계속되는 기세가 조금은 두려웠다. 혹시라도 발각이 된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게 뻔한데, 시작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노파심의 발로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최: 이들의 뜻과 기개는 장하나, 조직이 확대될수록 폭로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직을 확대하여 정면 대결로 나가기도 전에 소멸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래일 계속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도: 예 알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최이상의 조직이 하고자 했던 일들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대단한 발상이었다. 다음 호(《월간조선》 8월호 7월 17일 발간)에서는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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