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네 번째 계획도시
경남 창원시는 호주 캔버라를 모델로 만들어진 세계 네 번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 도시」다. 「선배 도시」로 캔버라와 브라질리아, 인도 뉴델리 등이 있다. 창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계획 도시」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단초이다.
1974년 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고, 치밀한 배려와 연구 끝에 탄생된(1980년 4월1일) 덕분에 창원시는 전국 어느 시·군보다도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된, 우월한 도시기반을 갖고 있다. 곧게 뻗은 12.5㎞의 大路(대로)를 중심으로 남쪽은 공업단지, 북쪽은 주택지역으로 생산시설과 주거기능이 쾌적하게 분리돼 있다. 공원이 88개나 되고 1인당 녹지 비율도 전국 도시 평균의 3배 가까운 27㎡. 젊은 공장 근로자들이 많아 시민 평균 연령은 27세밖에 안되고, 대기업 비율이 높아 재정 자립도도 넉넉하다.
창원시는 199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의 지자체 평가에서 최우수단체로 선정됐었고, 최근 한 도시 경쟁력 평가에서도 전국 市(시) 중 종합 1등을 기록한 바 있다.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초市들을 객관적 지표로 비교하면 창원을 당해낼 곳이 없다」면서도, 「다른 곳과 달리 워낙 출발부터 정성껏 만들어졌고, 공단이 많아 세금까지 풍부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인색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능률협회가 창원시를 「최우수단체」로 평가한 것은 다름 아닌 「행정혁신」 부문이었고, 지난해 말 행정자치부도 창원의 경영행정을 우수하다고 평가했었다. 이를테면 「부잣집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공부만 떼어놓고 봐도 열심히 잘하는 학생」이라는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런 평가를 얻게 된 가장 큰 계기로는 창원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본격 실시한 大洞制(대동제)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기초市(注; 부산, 대구 등과 같이 道와 같은 급으로 인정받는 광역市가 아니라 郡과 같은 급의 기초자치단체라는 뜻)로 인구 50만이 넘으면 지방자치법에 따라 산하에 區(구)를 둘 수 있게 된다. 準(준)광역시 대접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 50만을 넘는 시점이던 1997년, 孔民培(공민배·45) 창원시장은 區를 신설하는 대신 기존의 24개 洞(동)을 12개로 묶어서 줄여버리는 「모험」을 했다. 孔시장과의 일문일답.
5백억원 절감 효과
―大洞制(대동제)를 하신 이유는?
『저는 평소 우리나라 지방행정에 계층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기초市에서 구청을 만들게 되면 그나마 3단계에서 道-市-區-洞, 이렇게 4단계로 더 늘어나 버리죠. 물론 區를 신설하면 공무원 자리도 늘고, 높은 자리도 생기고 해서 시장으로서 생색은 낼 수 있습니다만, 경쟁력은 떨어지는 거지요. 그래서 洞을 묶어서 같은 업무를 한 사람에게 몰고 남는 인력으로 늘어난 업무를 맡게 하자는 의도에서 大洞制를 한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그 해에만 5백억원 정도 예산을 절감한 셈이 됐습니다』
―갈등이 많았겠습니다.
『말은 쉽지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욕도 많이 먹었어요. 우선 공무원이 가장 반대했죠. 區가 생기기는커녕 있던 洞까지 줄어버리니까. 또 洞이 줄면 시의원 숫자도 37명에서 15명으로 줄게 되서 의회도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옳다고 생각한 일이니까 밀어붙였죠』
창원에서 大洞制가 비교적 쉽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계획된 신생 도시」라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 만일 토착 세력이 많은, 오래된 도시였다면 저항은 훨씬 거셌을 것이라는 얘기다. 창원의 大洞制는 다른 시에도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실행에는 잘 옮겨지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창원은 대한민국 어디보다도 새로운 실험과 성취의 가능성이 높은 무대이다.
―어떻게 추진했습니까?
『일단 외부 용역 등을 통해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그리고 공청회, 사업설명회, 언론사 토론회 등도 많이 했습니다. 학계에서 「참신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지원을 많이 해주었죠. 당시 토론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일반적 사회 인식이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아와서 교수 몇 년 한 사람이나 시민단체 사람들은 다들 대단한 전문가로 인정하면서도, 저처럼 行試(행시) 합격해 20년 동안 안 가본 곳 없고 나름대로 연구도 많이 한 내무 공무원은 그냥 행정이나 보는 사람, 非(비)전문가로 보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생중계되는 언론사 토론 때 「나도 전문가」라고 한마디 한 적도 있습니다』
곡절이 많았던 大洞制는 곧이어 닥친 IMF로 인해 오히려 「先見之明(선견지명)」으로 평가받았다. 구조조정을 앞당겨 한 셈이어서 다른 지역처럼 인사태풍이 몰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孔시장은 다음해 선거에서 80% 이상의 득표로 재선됐다.
경남고와 경희대 법대를 나와 行試(행시) 22회에 합격한 孔시장은 내무부와 경남道의 여러 자리와 함양군수, 대통령 민정비서실 행정관을 거친 후 1995년부터 民選(민선) 창원시장을 지내고 있다. 시 직원들은 『젊은 시장이라 몇 년 전 보고받은 통계 수치도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좋고 뚝심이 세다』고 孔시장을 평했다.
창원은 大洞制 이외에도 48개의 산하 공공시설 중 수익성 있는 12개는 공단으로 설립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36개는 민간에 위탁하거나 매각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행정 조직 감량과 경영 수지 개선을 이루는 행정 혁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 중소기업 육성 자금 1천억원을 융자 지원하고, 기초지자체로는 처음으로 해외 바이어 초청 무역 상담회를 개최한다거나 벤처기업 협동화 단지를 조성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에 정책의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아이덴티티 고민
시정방침을 「행복 자치시」로 정해놓을만큼 孔시장은 문화, 예술, 복지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기계공업 중심의 창원은 산업 변화에 따라 기계 공업이 쇠할 경우 도시 전체가 같이 쇠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이겨나가려면 결국 정신적인 것, 그러니까 문화의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시립교향악단 등으로 구성된 시립예술단을 중심으로 「토요 야외 어울림 마당」, 「아파트 음악회」, 「작은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다른 곳에 비해 「창원은 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시민 비율이 낮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이덴티티가 형성이 잘 안돼 있어요. 市 개청일에 축제를 해도 시청 행사에 그치고, 시민들은 「행사 하는 모양이다」 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걸 타개해 보려고 공무원들 상대로 창원시 역사 시험도 쳐보고 20년 이상 창원에 거주한 사람에게는 기념패도 주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더 걱정은 2세들입니다. 막말로 지금 어른들은 창원에 대해 고향 의식을 갖지 않아도 좋습니다만, 지금 자라는 애들 중 아버지 고향이 다른 곳인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