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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⑧ 천지인(天地人)과 별[星]의 노래

우리는 고난을 통해 별로 간다(ad astra per aspera)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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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의 두 가지 마음, ‘별을 노래하는 마음’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
⊙ 시인의 마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흔들리고 설레는 마음… 윤동주는 역사 속 ‘영웅’이 아니라 ‘햄릿’과 같아
⊙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부끄럽지 않을 때(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 추운 겨울날, 언 손을 비비며 연을 날려본 기억이 있는 이가 윤동주의 마음을 아는 사람
⊙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V’, 윤동주의 ‘밤, 별, 바람’의 ‘ㅂ’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3개월이 되어간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였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였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였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하늘로 연과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같다. 사진=조선DB
  하늘과 땅 사이에 길이 있습니다. 무슨 그런 길이 다 있냐고요?
 
  당연히 있지요. 눈에 안 보일 뿐 마음의 눈으로 보면 누구나 길을 그릴 수 있지요.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고 해요. 밤하늘에 별똥별이 휙 나타났다가 떨어지는 찰나에 진심을 다해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혜성도 태양을 중심으로 포물선의 궤도로 움직이고 있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길을 꿈꿀 수 있겠지만 하늘의 길은 어쩌면 포물선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땅에서 하늘로 향하든,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든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 연과 포물선
 
‘불’ 같았던 젊은 시절의 이어령 선생.
  땅에서 얼레를 들고 있는 아이와 하늘에 떠 있는 연 사이에 있는 실이 그려내는 선이 포물선입니다. 이 포물선을 이야기하기 전에, 아이들은 그 추운 날 왜 그렇게 덜덜 떨면서도 밖에 나가 연을 날렸을까요? 지금 어른들이 로켓과 비행기 같은 것을 만들어서 하늘로 가고 싶어 하는 그 마음과 하늘로 연과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같습니다. 이 연은 비행기의 모델이에요.
 
  연을 날려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연이라는 게 떨어지기 쉬워요. 전선줄에 걸리고 나뭇가지에 걸려 추락할 때의 좌절감은 참 크죠. 내 연이 높이 높이 날았으면 좋겠는데 반드시 떨어져요.
 
  연을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낼 때, 연은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지만 동시에 끝없이 떨어지려고도 하지요.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과 땅으로 끌어당기는 중력, 그 두 개의 마음이 윤동주(1917~1945년) 시인에게도 있잖아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처럼요.
 
  ‘모든 죽어가는 것’은 현실에서의 괴로움이고, ‘별을 노래하는 것’은 이상과 꿈입니다. 그러니 끝없이 가벼워져서 별까지 올라가는 마음과 땅의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 미움, 현실에서의 어려움이 하늘로 날아가는 연과 얼레를 잡고 있는 아이 사이의 긴장감 있는 포물선으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포물선과 逆說, 그 아름다움
 
  아이가 연을 날린다고 했을 때, 하늘을 나는 연과 얼레를 잡고 있는 아이 사이에는 반드시 올라가려는 것과 내려오려는 것 사이의 포물선이 그려집니다. 이것이 포물선의 아름다움이에요. 우리나라의 기본은 이러한 포물선으로 이루어집니다. 말하자면 역설(逆說)이지요. 하늘로 올라가려 하는 가벼움과 끝없이 지구가 끌어당기는 중력이 팽팽하게 긴장을 이루는 가운데 포물선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에요. 그러니 이 포물선은 아름답지요.
 
  운명으로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데 그 운명의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이 길은 나에게 주어진 것이니까 자기가 선택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그냥 끌려가는 것만도 아닙니다.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속에서 끝없이 별을 노래하고 하늘을 우러러볼 줄 알기 때문에, 짐승처럼 그냥 죽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 추위 속에서도 연을 날리는 것은 중력과 그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의 대립이지요. 이것이 시몬 베유(1909~1943년)가 말하는 ‘중력과 은총’입니다.
 

  중력이라고 하는 것은 뉴턴(1643~ 1727년)의 사과처럼 밑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식물들은 그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올라가요. 힘없는 넝쿨이라도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손을 뻗어요.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지향점은 영원의 하늘이지요.
 
  윤동주 시인이 그랬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이 죽음, 중력에 지배되는 땅을 향한 마음과 별을 우러르는 하늘을 향한 마음,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포물선과 같은 곡선이 생깁니다.
 
 
  # 맹자의 〈진심편〉과 서시
 
  그런데 윤동주가 시인이 아니라 군자(君子)라면 어떻게 될까요.
 
  군자는 이미 초월한 사람입니다. 땅에 사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에요. 맹자(BC 372~289년)는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부모님과 형제가 모두 무사하면 첫 번째 즐거움(父母具存 兄弟無故 一樂也)이고, 둘째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부끄럽지 않을 때가 두 번째 즐거움(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을 함이 세 번째 즐거움(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이라 하였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이 두 번째 즐거움에서 나옵니다.
 
  ‘앙불괴(仰不愧)’—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부부작어인(俯不怍於人)’—땅을 내려다봐서 사람을 향해서도 당당하게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가 군자의 즐거움이지요.
 
  괴(愧)도 부끄러움을 뜻하는 한자어고 작(怍)도 부끄러움을 뜻하는 자입니다. 요즘은 여간해서는 잘 쓰지 않는 글자지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는 ‘자괴(自愧)’라고 합니다. ‘자작(自怍)’이라고 하면 남 앞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자괴는 하늘 앞에 부끄러운 것이고 자작은 남 앞에 부끄러운 것이니까 요즘 말로 바꾸면 “쪽팔리는 것”이지요. 그러니 군자삼락의 두 번째 구절을 거칠게 해석하면 ‘사람을 봐서 쪽팔리는 일이 없고, 하늘을 봐서 부끄러움이 없으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문구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에 해당할까요?
 
 
  현재에도 과거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하늘의 별. 윤동주 시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했다. 사진=조선DB
  미래에 그럴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군자가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다 해야 그것이 군자이지요. 그러니 전부 과거형이어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현재에도 과거에도 ‘없었고’ 사람을 봐서도 부끄러움이 ‘없다’, 이것이 군자입니다.
 
  윤동주의 ‘서시’를 전부 과거형으로 고치면 윤동주는 시인이 아니라 군자가 됩니다.
 
  ‘하늘을 우러러서 나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주어진 길을 내가 오늘 갑니다.’ 이건 시가 아니라 자랑이죠. 남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 자랑을 들은 사람은 “와~ 저 사람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네. 예수님이네”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과거형으로 바꾸어버린 시에는 망설임과 노력하려는 마음과 현실에서의 부딪침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시인의 마음인데요, 남에게 말하는 것은 시가 아니라 자랑이에요. 과거형으로 바꾼 ‘서시’에서 윤동주는 시인이 아니라 군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윤동주가 쓴 ‘서시’의 본래 문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원문을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어요. 이루어진 것은 보통 과거형, 완료된 문장으로 서술되는데 이 시에서 과거형으로 쓴 것은 ‘괴로워했다’ 단 하나예요. 그러니까 괴로워한 것만은 사실이고 현실이지요. 나머지 서술부의 시제를 보면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하는 미래의 다짐, 미래의 원망(遠望)과 의지만이 나타납니다.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맹세지요.
 
  그리고 현재시제 역시 단 하나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에 나타난 동사에는 ‘보다, 노래하다, 부끄럽다, 괴롭다, 사랑하다, 걷다’가 있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시제가 붙어 있습니다.
 
  시제를 보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볼 수 있지요.
 
  첫 구절은 시제를 붙일 서술어를 생략해버리는 것으로 시제를 넘어섰어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튼 자신의 결심이니까 과거에 했든, 현재에 하든, 미래에 할 것이든 상관이 없어요. 어쨌든 된 것이고 될 것이니까요.
 
 
  # 상승직선, 수평선, 포물선
 
윤동주 시인.
  현재형과 미래형으로 쓴 윤동주의 시들이 모두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길’로 그려보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가장 낮은 잎새에서 바람은 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위로 올라가는 길을 똑바로 직선으로 그으면 그것은 군자의 경지예요.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서 쭉 뻗어나가면 그것은 현실 정치인, 현실인의 경지지요.
 
  그런데 인간은 신과 짐승의 중간에 있고 하늘과 땅을 모두 볼 수 있는 인간의 눈은 아름다운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지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흔들리고 설레지요. 군자는 이런 설렘이 없어요. 모든 것을 완전히 졸업하고 초월한 존재입니다. 또 악인이면 괴로워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아요. 현실에 그저 적응하고 살면 되지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 시인의 마음입니다. 저항시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윤동주는 독립운동하는 사람의 결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적인 것에서 우주적인 것으로 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는 역사 속 ‘영웅’이 아니라 ‘햄릿’과 같아요. 시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면서 죽음 앞에서 영원으로 가고, 현실 앞에서 이상으로 가고, 괴로움 앞에서 노래하고 사랑을 하는 존재이지요.
 
  땅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고 가장 낮은, 모든 죽어가는 것의 현실에서 영원히 불멸하는 별을 향해서 가는 마음을 노래하고 그 길을 걷는 것을 실천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시인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린 아이가 그 추운 날 날린 연에 묶여 있는 실처럼 포물선이 그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드리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날아가려는 연과 중력으로 떨어지려는 연 사이에 팽팽한 연실의 그 중력! 그 추운 겨울날에 언 손을 비비며 연을 날려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윤동주의 시를 알고, 윤동주의 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연에는 날개가 없어요. 그리고 그 연과 사람 사이에는 묶인 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실이고, 그것이 길입니다.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시를 볼 때 어떤 것이든 여러 가지 의미 층위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명사 하면 ‘하늘, 별, 땅’ 그다음이 풀잎이에요. 이 풀잎을 정치적으로는 민초(民草)라고 합니다. 글래스 루츠(Grass Roots). 민주주의(Democracy)와 비유할 때는 민초라는 뜻을 가지지요. 월트 휘트먼(1819~1892년)의 시 ‘풀잎’처럼 우리가 땅에서 하는 것이에요. 또 김수영(1921~1968년)의 유명한 시 ‘풀’에서 바람이 불면 풀들은 다 눕습니다. 울다가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었다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김수영 시인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고 ‘풀’을 노래했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 일부

 
  이렇게 하찮은 것, 바람이 불면 운명에 거스르지 못하고 복종하는 것! 이런 존재에서 시작해 전혀 다른 차원의 하늘까지 가는 하늘의 별이니까 하늘, 땅, 사람을 그리면 공간이 생겨납니다. 이번엔 시간을 볼까요? ‘잎새에 일던 바람’은 춘하추동, 밤낮과 같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점점 하늘로 올라갑니다. 계속 가다 보면 변하지 않는, 바람이 꽉 차 있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사실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끝없이 변하는 시간을 뜻하니까 시간의 축이 돼요. 시간은 곧 탄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처럼 말이죠.
 
  그러니까 이 시 전체에서 ‘별’과 가장 가까운 동사를 찾아낸다면 ‘사랑해야지’입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모든 것이 멸망하는 밤이 되어도 빛이 사라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는, 그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힘이 됩니다.
 
 
  # 서양과 동양의 서로 다른 별 모양
 
라틴어 ‘ad astra per aspera’는 ‘고난을 통해 별로 간다’는 뜻이다.
  미국 국기에는 별[星]이 많습니다. 미국 주(州)의 수만큼 왼쪽 상단 네모난 칸에 별을 그려 넣었는데, 지금은 별이 50개입니다. 이 성조기의 별의 모양을 보세요. 익숙하지요. 우리에게 지금 별을 그려보라 하면 다들 이런 모양으로 그립니다. 미국 국기에 그려진 별의 모양과 동일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백 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에게 별을 그리라고 하면 단추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여러분이 별을 그릴 때 단추처럼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다섯 모서리가 있는 별을 그리는 것은 유럽 서양문명이 자기의 ‘밈(Meme)’, 문화적 유전자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처음 한국 사람, 중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우리에게 익숙한 저 별이 그려져 있는 미국의 국기를 보고는, “아, 웬 놈의 깃발에 저렇게 꽃이 많냐” 해서 화기(花旗)라고 했어요. 꽃이 있는 깃발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도 처음에는 미국을 ‘화기국’이라고 했어요. 이런 것들을 볼 때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별은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별과 다릅니다.
 
  오각형의 별 모양은 사람을 나타냅니다. 머리, 양손, 양발. 그래서 별을 거꾸로 놓으면 큰일 나는 거예요.
 
  육각형 별, 우리가 흔히 다윗의 별(Star of David)이라고 하는 삼각형 두 개를 엇갈려 겹쳐놓은 별은 유대교의 상징이지요. 두 개의 삼각형 중 하나는 올라가는 것 불, 하나는 내려가는 것 물을 나타내요. 이런 것을 상징코드라고 하는데, 이런 상징코드를 알고 보면 별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별에게 가는 길
 
  별이란 무엇입니까. 바람이란, 길이란 무엇입니까. 길은 선(線)이고 시간이잖아요. 공간이면서도 시간입니다. 그래서 길 위에 서 있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특히 밤에 그런 짓 하면 큰일 나요. 밤에 길거리에 서 있으면 이건 법률적으로 안 되는 겁니다.
 
  그와 관련된 법률이 있는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개를 산책시킬 때도 사람이 한곳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맴돌아야 해요. 주변을 맴도는 것은 괜찮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강도나 도둑, 아니면 이상한 여자로 오해를 받습니다. 길은 걸어가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길에 멈춰 서면 멋쩍고 이상한 것이지요.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은 프로세스(Process)를 의미합니다. 과정이지요. 죽는 날까지의 과정을 길로 나타냈어요. 길의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직선으로, 평지를 향하여 쭉 뻗은 길을 그냥 가면 길 끝에서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죽어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시인이니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가면 이 길은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성인군자는 아니니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듯’ 땅에게 끌어당겨지지요. 하늘로 올라가는 연과 중력의 사이에서 그려지는 연실과 같은 아름다운 포물선이 그려지지요.
 
 
  # 시와 현실의 이야기 - 시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현실
 
  별을 노래했던 윤동주는 별에 닿았을까요? 시인은 영원히 별에 닿지 못합니다. 영원히 세속을 초월한 군자가 못 되는 존재예요. 그렇다고 세속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상상력의 날개가 있어요.
 
  시인들이 현실에서는 성인군자로 존경받기보다는 뭔가 우리와는 다른 이상한 사람, 변태적인 사람, 생활력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지요. 보들레르(1821~1867년)의 말처럼 귀양 온 신선이거나, 귀양 온 천사가 아니면 앨버트로스가 시인입니다. 앨버트로스(Albatross·한자문화권에서는 신천옹[信天翁]으로 불렸다-편집자)는 단숨에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새인데 이 새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배의 갑판에 앉으면 우스꽝스러운 새가 됩니다. 단번에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거대한 날개가 오히려 걷는 데 방해가 되어 뒤뚱거리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선원들은 그 새의 큰 부리에다 담뱃재를 터는 학대도 했다고 해요.
 
  그것이 오늘날의 시요, 시인의 상상력입니다. 하늘 위 시의 세계를 날아다닐 때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기가 막힌 날개가 땅 위의 현실세계에서는 보행을 방해하지요. 시인들이 참 살아가기 힘든 세상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시인(詩人)은 실제로 시집을 출간하고 등록되어 있는 시를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을 뜻하는 것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가지고, 풀잎의 괴로움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부끄러움이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별을 보고 하늘을 보는 여러분이 시인입니다.
 
  시(Poem)와 시인(Poet)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명사 Poietes는 ‘만들다(Make)’는 뜻입니다. 만든다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로 있게 하는 것이지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기술자고 마음이나 꿈을 만드는 사람은 시인이에요.
 
  언어와 상상력을 가지고 시를 만들었는데 그 시가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 ad astra per aspera 고난을 통해 별들로
 
“아이 라이크 아이크(I Like Ike)”는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선거 구호였다.
  라틴어 ‘ad astra per aspera’는 ‘아드, 아스트라, 페르, 아스페라’로 읽습니다. 나는 프랑스어는 했지만 라틴어는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장의 정확한 발음은 몰라도 의미는 알죠.
 
  ‘고난을 통해서 별로 간다.’
 
  세네카(B.C. ?~65년·고대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편집자)의 구절인데, 뜻이 중요한 것만이 아니라, ‘A.A.A’의 두음을 보세요. ‘아드, 아스트라, 아스페라.’ 이것이 바로 시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년)가 로마 시민과 원로원에 보낸 승전보에 쓴 유명한 문구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도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라틴어 경구 “Veni, vidi, vici”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어로 번역된 문구가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왔기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문구도 보세요. ‘비니, 비디, 비치’, ‘V.V.V’의 두음이에요. 이런 것이 시입니다. 영어로 번역해서는 시가 안 돼요.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1890~1969년·재직 1953~1961년)가 대통령 선거 당시 내건 구호는 “I Like Ike”였어요. Ike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젠하워의 별명이었습니다. ‘아이, 아이, 크크.’ 두음·흉음·말음의 운율이 정확히 일치하죠. 이 말은 그대로 시가 됩니다. ‘나는 아이젠하워를 좋아합니다(I Like Eisenhower)’라고 하면 ‘I Like Ike’와 같은 뜻이지만 시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시는 의미 이상의 것입니다. 의미에 날개를 단 것이에요.
 
 
  ‘아드, 아스트라, 아스페라’ ‘비니, 비디, 비치’
 
전남 나주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꿈은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별 모양을 만들었다. 사진=조선DB
  다시 고난을 통해서 별들로, 즉 ‘ad astra per aspera’를 봅시다. 우연히도 ‘별’이라는 아스트라(astra)와 ‘고통’이라는 아스페라(aspera)가 발음이 비슷해요. 우연이겠지만 기적 같지 않아요? 밤이라는 고난이 있을 때 별은 빛납니다. 낮에는 별을 보지 못해요. 깜깜한 밤, 폭풍이 부는 때에 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렇게 별과 고난은 연결이 되는 것인데 언어까지도 유사한 거예요.
 
  그런 말들은 많아요. 어머니의 자궁은 움(womb)인데 무덤은 툼(tomb)입니다. ‘W’와 ‘T’ 글자 하나 차이지요. 무덤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고 자궁은 우리가 태어나는 곳인데 어쩌면 태어나는 곳과 죽어서 가는 무덤이 하나는 ‘움’이고 하나는 ‘툼’일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극과 극인데 차이는 고작 ‘W’와 ‘T’의 차이로 나타내는 그것이 시입니다. 언어에 대한 아름다움, 언어의 운율을 알기 시작할 때 시를 아는 것이지, 단순한 의미만을 알아서는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이만수 전 SK와이번스 감독이 좋아하는 문장이 ‘Scars Into Stars’입니다. 번역하면 ‘상처는 별이 된다’입니다. 생략된 영어 문장을 살리면 ‘Turn your scars into stars(당신의 상처를 별로 바꾼다)’입니다. ‘상처’와 ‘별’의 단어가 한 자(c, t)만 다르고 같습니다.
 
  ‘h’가 반복되는, ‘상처’를 뜻하는 hurt와 ‘별’과 비슷한 뜻의 halo(성상의 머리나 몸 주위에 둥글게 그려지는 광륜 혹은 후광이라는 뜻-편집자)를 써서 ‘Turning hurts into halos(상처를 빛으로 바꾼다)’라는 문장도 자주 사람들에게 회자됩니다.
 
 
  # ‘서시’의 별, 바람, 밤 - 반복되는 ‘ㅂ’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이다. 올림픽대교 등 한강다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조선DB
  윤동주는 ‘서시’에서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어요. ‘도’라는 것은 반복의 의미지요. 어젯밤에도 내일밤에도 무한히 계속될 거예요. 잎새에서 별까지 바람이 이는 그 길을 향해서 나는 걸어갑니다.
 
  그런데, ‘밤, 별, 바람’ 이상하지 않아요? ‘ㅂ’이 공통적으로 겹쳐요. 세 개의 ‘B, ㅂ’ 두운입니다.
 
  시를 가르칠 때 저항시인이다 하는 정치적인 의미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으로 한국말의 두운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있게 가르쳐줘야 합니다. 이런 ‘ㅂ’ 두운을 가진 시가 또 있어요.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에 보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생각해봐요. 하늘과 땅 사이에 다양한 길 말입니다. 지금부터 한국이 할 일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일, 하늘에서 한국을 내려다보는 별이 되는 일입니다. 그걸 꿈꾸어봐요. 그것은 어쩌면 우리 역사 속에서 ‘천지인’의 천(天)을 가지는 일과 같을지 모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그 길이 아름다운 포물선임을 가르쳐준 이가 윤동주입니다.
 
  우리는 윤동주를 역사 속에서 그 시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시를 쓴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만약 윤동주가 역사적 차원에서 저항시로만 ‘서시’를 썼다면 독립한 후에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는 않았겠지요. 윤동주의 시는 우리 생각의 틀을 한 번 더 깨주고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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