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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原電 수출 10기” 선언한 황주호 한수원 사장

“원자력은 善한 에너지, 그러나 안전·수출 경쟁은 목숨 걸어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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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생태계 회복은 한미 원전 동맹으로 풀어야”
⊙ “전력 수요 고려할 때 향후 대형·소형 포함 원전 15기 더 필요”
⊙ 해외 첫 사례인 2010년 UAE 원전 수출로 철탑산업훈장 받아
⊙ “원전 더 지을 데가 없다? 대한민국 의외로 넓어”
⊙ 2030년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 10기… 尹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계속운전’ 반영

黃柱鎬
1956년생. 서울대 핵공학과 졸업, 미국 조지아공과대 대학원 졸업(핵공학 박사) /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경희대 교수·공대 학장·국제부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비상임위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한국원자력학회장 역임 /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 공로로 대통령 표창(2005), 철탑산업훈장(2010)
사진=조준우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권의 탈원전(脫原電)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우리 국민은 경제성을 부풀린 엉터리 태양광 사업이 초래한 재앙에 분노했다.
 
  취임 후 윤 대통령은 원전 강화 정책을 맡을 수장으로 황주호(黃柱鎬)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작년 8월 22일 취임 후 10개월 가까이가 흘렀다. 1만2000여 명의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은 어깨가 펴지고 눈빛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더는 탈원전이란 말 앞에 괜히 눈치를 보거나 의기소침할 필요가 사라졌다.
 
  기자가 지난 4월 20일 서울 충정로역 근처에 있는 한수원 방사선보건원을 찾았을 때 황 사장은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동참하기 위해 분주한 시점이었다. 어머니 상(喪)으로 겪은 천붕지통(天崩之痛)의 슬픔도 마음속에 담아둔 듯 보였다.
 
 
  황 사장과 APR1400
 
제10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으로 취임한 황주호 사장이 2022년 8월 22일 한수원 경주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원전 수출 10기가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황주호 사장이 자신의 집무실 곁에 있는 접견실 소파에 앉았을 때 그의 머리 뒤로 ‘APR1400’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보였다. APR1400은 1400메가와트(MW)급 대용량 한국형 차세대 원전을 말한다. 새울 1·2호기(옛 신고리 3·4호기), 신한울 1~4호기, 새울 3·4호기(신고리 5·6호기) 등 국내 8호기와 UAE 바라카 원전 1~4호기 등 해외 4호기가 이 노형(爐型)이다. 1000MW급인 APR1000, SMR(소형 모듈 원전)과 더불어 한국 원전 기술의 상징이다.
 
  관료들에게서 듣기 어려운, 정확한 발음의 확신에 찬 음성을 들으며 얼굴을 쳐다보는데 기자의 눈길이 자꾸 APR1400으로 향했다.
 
  황 사장은 한수원이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뒤 첫 학계 출신 사장이지만,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오래 관여해온 최고 전문가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 전문위원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수출자문위원장 등을 거쳤고 기관장(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과 학회장(한국에너지공학회장, 한국원자력학회장), 경희대 부총장과 공대 학장을 지냈다.
 
  황 사장은 해외 첫 원전 수출 사례로 꼽히는 2010년 UAE 원전 수출 공로로 철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그는 작년 8월 22일 취임사에서 “기술도 없이 원전을 도입해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한 저력과 긍지로 새 역사를 쓰자”며 “원전 수출 10기가 목표”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3조원대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사업권을 따냈다. 그리고 체코와 폴란드를 찾아가 원전 수주 활동을 펼쳤다. 대단한 공격적인 행보였다. 폴란드와 2~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고려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호우(好雨) 소식이 들려왔다. 중단된 지 6년 만에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신한울 3·4호기는 2017년 2월 허가를 받았으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건설이 전면 중단됐었다.
 
  ― 윤 대통령이 한수원 사장을 맡기신 의중(意中)은 뭐라고 보십니까.
 
  “국정과제로 정해져 있는 것들(탈원전 폐기)을 해결해달라는 게 가장 1순위고, 그것이 전부가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그런 임무를 맡아 추진하게 된 것은 영광이죠.”
 
  ― 사실 원전 수출은 한수원 사장의 힘만으론 역부족이지 않나요?
 
  “원전 수출은 ‘대통령의 비즈니스’입니다. 우리가 UAE에서 원전을 수주할 때도 각국 정상들이 다 UAE를 방문했죠. 그때(2009년 5월) 프랑스 대통령은 막판에 루브르 박물관 아부다비 분원, UAE 전투기 교체, 심지어 소르본대학 아부다비 분교 설립까지 제안할 정도였어요.”
 
 
  과학자가 받은 철탑산업훈장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2022년 8월 30일 고리원전을 찾아 발전소 운영현안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 2010년 UAE 원전 수출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지요?
 
  수출공로훈장을 기업인이 아닌 개인이, 그것도 과학자가 받은 사례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산업부와 청와대가 원전 수출을 준비할 때 조언하는 역할을 했었죠. 그때만 하더라도 과연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공기업(한수원) 사람들이란 게 항상 규칙 속에서 사는데, 그 규칙을 뛰어넘는 일도 때로 해야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풀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몇 가지 조언을 한 일이 있습니다.
 
  원전 수출이 성사된 다음에 UAE 정부기관지인 《더 내셔널》 기자가 절 찾아왔어요. 인터뷰의 핵심은 이거였어요. ‘너네, 이번에 원전 수출해서 얼마 남겨?’
 
  당시 야당은 ‘출혈(出血) 수출’이라 그랬고 여당에선 ‘그럴 리 없다’고 했는데 제가 말할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계약 사항이 모두 비밀입니다. 이렇게 답했어요.
 
  ‘이제까지 한국은 국내 원전 건설에만 치중해왔는데 4기 규모의 원전 수주는 해외 사업으로 전환하는 데 충분한 양이다.’ 그 답변을 정부 관계자가 나중에 듣고 산업훈장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 윤 대통령이 미국에 국빈 방문하는데 함께 동행하지요?
 
  “한수원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가 우라늄 공급 문제입니다. 미국에 가서 관련 회사와 접촉해 협력각서 같은 걸 맺을까 합니다. 러시아 우라늄 이슈가 있잖아요. 우리가 우라늄 공급선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학교에 있을 때부터 주장해왔는데 한수원에 와서,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라늄 공급 다양화 논거가 좀 더 정당화된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농축 우라늄은 원전 가동에 있어 핵심 원료다.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이나 유럽 역시 원전 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의 상당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 우라늄 단가가 많이 올랐지요?
 
  “많이 올랐어요. 러시아가 세계 우라늄 농축 시장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요. 우리도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국도 러시아의 농축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황 사장의 말을 듣다 보니 자원 무기화 전략이 전 세계 화두라는 사실이 절감되었다. [기자는 미국에서 돌아온 황 사장과 지난 5월 11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 우라늄 농축역무 공급사인 센트러스(Centrus)와 안정적인 원전 연료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반가운 소식을 알려왔다.]
 
  ― 우리나라 적정 원전 수는 몇 기로 보십니까.
 
  현재 한수원은 2032년과 2033년 준공을 목표로 신한울 3·4호기의 신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고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은 계속운전 10기 및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준공을 반영해 2036년까지 총 30기의 원전을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른바 ‘넷 제로(Net Zero by 2050)’를 목표로 하지 않습니까. 에너지 컨설팅 기업 우드 매킨지가 ‘넷 제로’를 하려면 2050년까지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어요.
 
  현재 22%가량인 우리 사회의 에너지 전기화율을 2050년까지 60% 이상 올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재 발전량 530TWh(테라와트시)의 3배 가까이를 끌어올려야 해요. 그러니까 1500~1600TWh가 돼야 합니다.
 
  그런 규모의 전력 수요에 맞추려면 현재 원전 수가 25기인데 10기 정도를 추가해야 합니다. 10기라기보다 원전 발전용량을 15기가와트(GW) 정도 더 늘려야 하죠.”
 
 
  “대한민국, 의외로 넓습니다”
 
  여기서 잠깐! 국내 대부분 원전 1기 설비 용량이 1GW급인 점을 감안하면 15GW는 원전 15기와 맞먹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계속된 황 사장의 설명이다.
 
  “15GW 정도를 늘리기 위해선 전력요금을 60% 가까이 올려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비용에 대한 얘기를 안 하죠.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전기요금과 연동돼 있는데 탄소중립 계획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비용 문제를 짚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탄소중립을) 좀 더 실감할 수 있어요. 그럴 경우 대형·소형 원전을 다 합쳐 원전 15기가 더 필요하다는 전망이 가능합니다.”
 
  ― 원자력 학계 내부에서조차 국내에 대형 원전을 더 짓는 것은 힘들다고 합니다.
 
  황 사장의 답은 분명했다.
 
  “대한민국, 의외로 넓습니다. 의외로 넓어요.”
 
  ‘의외로 넓다’는 말을 동어 반복한 뒤 이렇게 답했다.
 
  “발전회사 사람들 중에 ‘원전 더 지을 데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말하는 분, 전력회사 사람들 중에 ‘송전탑 더 세울 데가 있냐’고 반문하는 분이 있어요. 저는 두 케이스 다 자기의 임무를 방기(放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제대로 안 되면 우리 사회가 탄소중립으로 못 가는 것을 넘어 정말 발전이 뒤처질 겁니다. 지금 수도권에 데이터센터 짓기를 원하는 업체의 전기 수요를 모두 더하면 전기 용량이 20GW가 넘습니다.
 
  삼성의 경기도 용인 반도체 공장이 가동하려면 7GW가 필요합니다. 누가 해줘야 합니까. 저희 같은 발전회사,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가 다 해줘야 되잖아요. 이런 중요한 임무를 놔두고 ‘원전, 더 지을 데가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적어도 전력 생산과 공급에 관여하는 분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봅니다.”
 
  황 사장의 목소리는 점점 올라갔다.
 
  “그 사람들이 왜 여기서 월급을 받습니까.”
 
  그러더니 배석한 한수원 홍보실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김 실장, 절대로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이 말은 ‘김 실장’이 아니라 ‘김 기자’에게 하는 말 같았다.
 
  “앞으로 2030 NDC(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중립의 실질적 이행,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수요 등 전력 수요의 증가를 고려할 때 원전의 필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 원전 건설에 앞서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민적 신뢰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국내 25기의 가동 원전 중 10기가 오는 2030년 이내에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고리 2~4호기, 월성 2~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가 대상이다.
 
  “한수원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발전소 오퍼레이터만, 작업자만 안전에 대해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 한수원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원전 주변에서 살고 있는 지역 주민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소셜미디어가 활발한 시대에 안전에 위배되는 내용이 있다면 벌써 다 알려졌겠죠?”
 
 
  계속운전과 원전 10기의 운명은…
 
황주호 사장은 2030년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 10기에 대해 “국가 차원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계속운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 현안을 어떻게 풀 계획인가요.
 
  “계속운전은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기술입니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된 252기의 원전 중 92%인 233기의 원전이 계속운전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데이터로도 명확히 증명됩니다.
 
  또 규제기관은 관련 법령에 따라 인허가 과정에서 발전소의 안전성을 중점적으로 심사합니다.”
 
  대개의 원전 국가들이 계속운전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과 환경성 때문이다. 단순 비교해 보면, 계속운전이 필요한 10개 원전의 지난 10년간의 전력판매량을 LNG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약 107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계속된 황 사장의 설명이다.
 
  “국가 차원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계속운전이 꼭 필요합니다.”
 
  지난 4월 8일 정지해 계속운전을 준비 중인 고리 2호기는 총 3248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설비 개선과 발전소 성능 개선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왔다고 한다.
 
  “2030년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원전 10기의 계속운전이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과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돼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여러 우려에도 독일 정부가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하며 ‘원전 0(제로)’를 선언했다.
 
  “그들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제가 《에코 파시즘》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절대 환경론자, 그 사상이 나치즘하고 닿아 있다고 기술했더군요. 독일은 정말 사상·철학·문학·예술 등 전 분야에서 뛰어난 나라입니다. 그런 만큼 한쪽으로 생각이 몰릴 때 큰 위험이 발생합니다. 나치즘이 그렇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가요. 에너지는 신념과 이념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과학과 경제, 사람들의 삶으로 다뤄야 될 문제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세속적으로 얘기하면 독일의 태양광 관련 유권자 숫자가 수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정당들이 표심(票心)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요.”
 
  ― 한전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태양광 발전소 사업을 하는 등 내부 비리가 상당해 감사원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가족 명의로 원자력 사업을 하는 이가 없어요.(웃음) 에너지 기술은 어려운 기술입니다. 그래야 따라오는 나라를 멀리 둘 수 있어요. 최근에 ‘초격차 원자력 강국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개천을 막고서 수차를 돌리는 것도 에너지 기술입니다. 그런 기술은 누구나 다 따라 하죠. 만약에 한수원에서 수차를 만든다면 한수원 직원들도 밖에 나가 그런 장사를 하겠죠. 그러나 에너지 기술은 어렵고, 어려울수록 밀도 높게 만들 수 있으며, 밀도가 높을수록 한 곳에서 확산(擴散)하는 효과가 있어요.
 
  그러니까 원전은 세상에 기여하는 효과가 큽니다. 그런 측면에서 (태양광 비리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봅니다. (태양광 사업에) 접근하는 루트 자체가 너무 쉽지 않습니까?”
 
 
  원전 생태계와 韓美 원전 동맹
 
2022년 8월 29일 황주호 사장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을 찾아가 주요 시설을 점검했다.
  ― 5년간 무너졌던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중책도 맡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수원은 원전 생태계에 1960억원의 추가·조기 발주 분량을 포함해 1조3726억원의 일감을 공급했다고 한다. 정부는 올해도 3조5000억원대의 일감 공급을 밝혔고 이 중 한수원이 약 2조원가량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5년간 힘들었던 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굉장히 짧은 시기에 많은 계약 물량을 만들어냈어요. 취임하고 8개월 만에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공급계약에 성공했거든요. 과거에는 계약 최초 검토부터 최종 체결까지 30~37개월 걸렸다고 합니다. 원래 조달처는 굉장히 보수적인 곳입니다. 반면 건설처는 조금 어그레시브한(공격적인) 곳이고요. 이 두 부서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계약을 성사시킨 겁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황 사장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제작 물량은 3년이면 또 소진됩니다. 3년이면 없어져요. 그런 다음엔 어떡하죠?”
 
  물량 공급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원전 생태계의 흐름이 또 끊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출? 우리가 폴란드와 계약해 원전을 수출해도 건설 착공까지 한참이 걸립니다. 그러면 (원전 산업 생태계가) 계속 먹었다, 굶었다, 먹었다, 굶었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생태계가 이어지려면 지속성이 필요해요. 그렇기에 미국과의 협력, 한미 원전 동맹이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미국의 원자력 노형, 한국의 원자력 노형, 이 둘에다가 서로 필요한 설비를 제공하는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원자력연구소와 한필순 소장
 
  황 사장의 말을 들으니 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놓고 벌어진 한수원·한전과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 간 국제중재가 실마리를 찾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10월 미국 법원에 한수원의 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들렸었다.
 
  ― 조심스러운 질문인데요.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은 어떻게 될까요.
 
  “공식적인 답은 ‘소송 중이라서 이야기를 못 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인데, 저는 이렇게 봐요. 그 회사나 우리나 다 완벽하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지만, 원자력 에너지는 선(善)한 에너지입니다. 아니 선한 에너지여야 합니다. 이 얘기는 뭐냐 하면, 굉장히 밀도 높은 에너지 기술이기에 잘 활용해 자유세계에 널리 이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핵의 비확산을 전제로 원자력 확대가 필요하죠. 러시아나 중국은 핵 비확산 쪽에 별 그게(관심이) 없으니, 미국하고 우리가 힘을 합쳐 선한 에너지를 세계에 펼쳐야 합니다.
 
  지금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협력할 것으로 봅니다. 너무 조바심 낼 건 없어요. 조급할 필요도 없고….”
 
  ―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풀어야겠지요?
 
  “그것까지 대통령께 맡기면 곤란하죠.(웃음) 잘될 거예요.”
 
  기자는 1986년 12월 14일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속 연구원 44명이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며 ‘필(必)! 설계 기술 자립’이란 액자 아래 서로를 얼싸안고 모두가 그 액자에 쓰인 글을 삼창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필은 ‘반드시’라는 뜻으로 원전 기술 자립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연구원들은 당시 세계 최고의 원자력 발전회사인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의 설계센터(미국 동부 코네티컷주 소재)에서 파견 근무를 하며 원자로 설계 기술을 배웠다. 훗날 이들이 돌아와 영광(현 한빛) 3·4호기의 원자로 설계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저는 유학(조지아공과대 대학원)을 마치고 그해 9월 1일자로 입사한 연구소 막내였어요. 방사성 폐기물 부서였어서, 원자로 부서를 굉장히 질투했었죠.(웃음) 우리 한필순(韓弼淳·1933~2015년) 소장님께서 워낙 그쪽으로 드라이브를 거시는 바람에 ‘우리는 무슨 개털이냐’ 뭐 이러고 있었어요. 그때 소장님이 참, 참 진심으로 일하셨어요. 그럼에도 연구소가 너무 한쪽으로 쏠렸었어요.
 
  연구원 노조를 만들 때 제가 노조에 가입했어요. 박사 1호 노조원! 한 소장님이 역정을 내셨어요. 제가 1991년 경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길 때 찾아뵙고 큰절을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10년 뒤 제가 정부에서 원자력 연구개발 사업을 총괄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됐어요.”
 
北 드론이 우리 原電을 공격한다면?
  “대응체계 구축 완비”

 
  한국이 북한의 무인기(드론) 침입에 준비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26일 우리 영공을 뚫은 북한 드론이 서울 강북·성북·은평구를 넘나들었다. 드론이 우리의 원전까지 날아오지 않을까. 황주호 사장의 말이다.
 
  “드론 공격에 대비한 한수원의 인력과 장비 등 대응체계는 충분합니다.
 
  한수원은 드론 대응을 위한 전 원전 운용인력 150명을 운영하고 있어요. 무력화 장비 ‘재머’ 및 탐지 장비 ‘RF 스캐너’를 전 원전에 도입해 드론 공격을 탐지하고 무력화하는 대응체계를 구축했습니다.”
 
  ― 훈련은 어떻게 하나요.
 
  “평시에는 원전 드론 대응 훈련을 군경 합동으로 본부별 연 1회 이상 시행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총 13회 시행했으며, 올해는 좀 더 늘려 드론 대응 훈련을 총 20회 계획해 시행 중이죠.”
 
  또 한수원은 통합방위법에 기반해 한수원 군경 합동 전·평시 방어계획을 수립해 원전 상주 군부대와 연계한 통합방호체계를 운영 중이다. 원전 상주 군부대는 무력화 장비 및 탐지 장비를 운용해 대응체계 구축을 완비하고 있다.
 
  전력을 다해, 목숨을 걸고
 
사진=조준우
  ― 갑을관계가 바뀌었네요.
 
  “원자력 연구개발 사업을 쭉 들여다보게 되면서 한 소장님이 고생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제’라는 게 다 특성이 다르거든요. 그런데 정부의 평가 방법은 대부분 일괄적이란 말이에요. 하나의 잣대로 여러 개를 평가해요. 그러다 보면 굉장히 힘들어지는 과제들이 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 정부가 그걸 평가할 잣대를 못 갖췄어요. 그런 시스템을 바꾸려 노력했고 성과를 냈어요.
 
  한 소장님이 나중에는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고 훗날 ‘원자력 대상(大賞)’을 드릴 때 선정위원회에 참여해 보람도 느꼈어요.”
 
  ― 한필순 소장의 어떤 점을 닮고 싶습니까.
 
  “어떤 책임을 맡으면 전력(全力)을 다하셨어요, 전력을…. 저도 그걸 배우려 많이 노력합니다.”
 
  ― 전력이라는 게….
 
  “총력(總力)을 다해 일하셨어요.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 한 소장님이 해외에서 젊은 과학자들을 많이 데리고 와 팀을 만들었어요. 사시던 아파트 옆에 아파트 한 채를 더 얻어서 야간 집무실로 삼았어요. 퇴근한 연구원들이 야간 집무실에 모여 밤새워 일을 하는 식이었죠. 그렇게 자료를 만들어 새벽 4시에 찾아오면, 그걸 들고 곧장 서울로 향합니다. 몇 날 며칠을 당시 한전 사장을 찾아가 설명하는 거예요.
 
  그때도 우리가 웨스팅하우스랑 원전 관련 이슈가 있었고 핵연료 개발을 두고서도 문제가 많았거든요. 온갖 로비와 중상모략이 다 나왔었죠. 그걸 물리치고 일을 추진하셨어요. 그때 우리가 표방하던 게 뭐냐면,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였습니다.
 
  요즘 어떤 책임자가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서울로 달려가 보고를 하겠어요?
 
  저도 에너지기술연구원장 시절에 국회에서 예산 문제가 생겼을 때 한번 해봤어요. 새벽에 국회의원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만났지요. 또 국회 의원회관에 찾아가 1시간 반을 서 있었어요. 제가 온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겁니다. 결국 해결을 봤죠.
 
  ‘(기관)장’은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해요. ‘장’이 목숨을 안 걸면 되는 게 없어. 되지도 않고….”
 

  ― 황 사장께서 취임사에서 ‘원전 수출 신기록을 달성하자’고 했는데 목숨을 걸겠다는 뜻이지요?
 
  “CEO가 그 정도도 안 하면 직원들이 일을 하고 싶어 하겠어요?”
 
  ― 지금 한수원 직원 눈빛이 그래서 번쩍번쩍해졌군요.
 
  “되든 안 되든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일하겠다는 각오가 없이는 못 해요. 그리고 우리 경쟁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경쟁사들이 보통 우리보다 경험이 없는 쪽이 아닌데, 그네들과 경쟁하려면 우리는 정말 목숨을 서너 개씩 걸어야 해요.”
 
  지난 2020년 대학을 떠난 황 사장은 제자들 앞에서 행한 마지막 강연을 떠올렸다.
 
  “강연 제목이 ‘제법무상(諸法無相)’이었어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잊히지 않는 말씀이 있어요. 제게 영향을 미친 다섯 분의 말씀이죠.
 
  첫 번째가 아버지 황기영(黃基英· 1924~2010년)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봉급 생활을 40년 넘게 하셨는데, 제게 하신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이러합니다. ‘월급쟁이의 유일한 권리는 사표 쓰는 권리다!’ 봉급 생활자의 애환과 같은 말씀이셨죠. 대한주택공사에 다니신 당신은 퇴근 후에도 늘 책상에 앉아 공부하셨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3수 끝에 수석으로 합격하셨어요.
 
  두 번째가 어머니 김정자(金貞子·1927~2023년)님의 말씀입니다. 슬하에 다섯 자녀를 키우며 살림을 하신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으셨을 겁니다. 당신부터 철저하게 아끼며 사셨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어 다니셨죠. 굉장히 지혜로운 분이셨는데 어떤 상황에 대해 딱 한마디로 정리를 잘하셨어요. 이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남의 말은 사흘이다.’ 기관장 시절, 제가 힘들어할 때 이 말씀으로 다독이셨어요.
 
  세 번째가 원자력 실장을 하신 분의 말씀인데 언젠가 인사 불이익을 당하셨을 때 찾아뵌 적이 있었어요. 의외로 억울하다는 얘기는 안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황 교수, 돌아보니까 인사는 거의 대부분 객관적이야’라고요. 문제 원인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데 있다더군요.
 
 
  “잊히지 않는 다섯 분의 말씀”
 
  네 번째가 과학기술부 국장을 하신 분의 말씀입니다. 제가 마흔 중반에 (정부에 들어가) 원자력 연구개발 총괄관리를 맡았을 때, 혈기가 왕성할 때여서 조금이라도 틀렸다 싶으면 메스를 대어 수술을 했지요. 그랬더니 원자력계 연구개발자들이 저를 경원(敬遠)시 했어요. 그때 과기부 국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황 교수, 사람은 말을 하게 해야 해’라고요. 해명을 들어보지도 않고 잘라버리면 평생 한(恨)이 된다는 말씀이셨어요.
 
  다섯 번째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내신 정근모(鄭根謨) 박사님께서 ‘원자력은 선한 에너지’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원자력 기술로, 기술이 없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건 에너지가 아니라 장사죠.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원자력이 좀 더 세상에 많이 펼쳐져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셨어요.
 
  제법무상 시대에 평생 기억에 남아 영향을 미친 말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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